ㅅ/심농(心農)2022. 6. 29. 20:24

심농((306))—화두 게문 설명(有一物於此~) | ‘이뭣고?’하고 한 생각 다스리면 바로 천당이나 극락 | 팔만대장경은 노정기(路程記) | 심농(心農), 법의 기쁨[法樂] | 참선은 우리의 본업(本業), 그 밖에 모든 것은 부업.


*심농(心農) ; 마음[心]의 농사(農事). 마음 밭[心田]의 농사.

보통 농부의 농사(農事)는 몸뚱이를 먹여 살리는 양식(糧食)을 가꾸는 농사이다. 수행자의 '마음의 농사'는 우리 스스로도 영원히 배부르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면케 하는 해탈도를 증득하는, 도를 성취하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농사이다.
농부가 짓는 농사도 때맞춰서 부지런히 잘 가꿔 나가야 수확을 거두는 것처럼, 수행자의 마음의 농사도 해탈도를 향해서 잠시도 방일하지 않고 올바르게 열심히 마음 밭[心田]을 가꿔 나가야 한다.

*심전(心田) ; 마음 밭. 마음[心]을 밭[田]에 비유한 말. 마치 뿌린 씨에 따라 온갖 식물이 자라는 밭[田]과 같이 마음도 능히 선악의 종자를 저장하며 인연 따라 선악의 싹을 틔워 자라나게 하므로 밭에 비유함. 심지(心地) · 심묘(心苗)와 같은 맥락.

‘이뭣고?’ 이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이 다 들어 있어서 ‘이뭣고~?’하고 화두를 들면 팔만대장경을 한번 다 읽은 거와 똑같해. 그리고 ‘이뭣고?’ 한번하는 공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육백만 번한 공덕보다도 더 낫다.

 

(17분 54초)


[법문] 송담스님(No.306)—1986년 8월 화두 불명 수계 법어(86.08.03) (용306)

지금부터서 그 오계(五戒)를 지키면서 부처님 제자로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기 위해서 닦아 가는 화두(話頭) 법문을 설하겠습니다. 불명(佛名)을 이제 타신 분이나, 또 화두를 타신 분이나, 오계를 받고자 하신 분도 다 같이 들으시면 좋습니다.

 

송담 스님



이 자(字)는 ‘보일 시(示)’자 입니다. 보일 시(示). ‘보인다’ 그말이여.
이 밑에 여러분의 불명(佛名)이 쓰여져 있습니다.

김 아무개에게 보인다. 아래와 같은 공부하는 법을 보여드린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말이여.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그런데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

‘아무개야’하고 부르면 ‘예!’하고 대답을 하는 그 대답할 줄 아는 놈.
욕하면은 파르르르 성을 내는데 그 성낼 줄 아는 놈.
칭찬하면 기뻐하는데 그 기뻐할 줄 아는 놈.
다치면은 아픈데 그 아플 줄 아는 놈.
배가 고프면 배고픈, 밥먹을 줄 아는 놈.

한 생각 악한 생각이 일어나면 독사와 같은 마음이 나는데, 나찰귀(羅刹鬼)와 같고 독사와 같이 되는데, 또 한 생각 탁! 돌이켜서 착하게 먹으면 또 천사가 되기도 한다 그말이여.
찰나(刹那)간에 독사도 되기도 하고, 찰나간에 천사도 되기도 하는 그러한 그 신기하고도 묘하고 소소영령한 놈이 우리 모두 가슴속에 있어.

그놈을 성이 날 때도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슬픈 일을 당해도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

중생들은 뭐 하나가 기분이 나쁘면 이 생각 저 생각, 점점 더 생각에 생각을 더 펴 가지고 점점 속이 상해 나가고, 또 누가 미우면 조금 잘못한 점이 있으면 과거에 몇해 전에 있었던 일까지 이 생각 저 생각 기억을 더듬어 가지고 점점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러는 법이고.
도(道)를 닦는 사람은, 지혜있는 사람은 언짢은 일을 당하더라도 그 생각이 두 번째 생각으로 다른 생각으로 번지기 전에 냉큼 ‘이뭣고?’ 이래 버리거든.
누가 미운 짓을 해도 냉큼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해 버리면, 구태여 계속해서 그 사람에게 욕을 하고 때리고 속상하는 소리를 해 가지고 그 사람과 다툴 필요도 없는 것이여.

그래서 도를 안 닦는 사람은 사소한 일로 해서 점점 죄를 짓게 되고 웬수를 만들고 시끄럽게 만들고 남과 웬수를 맺게 되는 거고, 집안을 결국은 수라장(修羅場)으로 만드는 거고.
이 도를 닦는 사람은 여간해서 그런 환경에 휩쓸리지를 아니하고 냉큼 돌이켜서 ‘이뭣고?’를 하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어. 남을 원망할 필요도 없고 언제나 마음속은 항상 부처님을 모시고 사는 또 귀빈을 맞이해서 사는 그런 마음, 항상 천당이나 극락(極樂)에서 사는 그런 마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노를 젓고 갈 때에 노 젓는 사람이 노 젓기에 따라서 동쪽으로도 가고 서쪽으로도 가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도 닦는 사람은 자기의 한 생각을 잘 조정함으로써 자꾸자꾸 승화되어 가고 도가 깊어지는 것이고, 도를 안 닦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 눈을 보면 봄으로 해서 죄를 짓고, 뭣을 들으면 들음으로 해서 점점 번뇌(煩惱)의 불집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법은 최상승법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 이 한마디 ‘이뭣고?’는 이 한마디 속에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팔만대장경, 해인사에 그 팔만대장경판이 있는데 그놈을 목판에다 찍어 놓으면 수천 권이 되는데 그놈을 읽을 수 있습니까? 읽어도 다 해석도 못하죠. 그러나 ‘이뭣고~?’ 한마디를 하면 팔만대장경을 한번 다 읽은 거와 똑같해.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부르고,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부르는 공덕이 다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지만, ‘이뭣고?’ 한번하는 공덕이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을 육백만 번한 공덕보다도 더 낫다.
아미타불을 육백만 번 할라면은 백일 동안을 계속 불러야 하는데, ‘이뭣고?’ 한번 하는데 1초도 안 걸립니다. 그만큼 ‘이뭣고?’는 공덕이 장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이뭣고?’는 ‘이뭣고?’할 때에 당장 그 자리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바로 실천하는 것이 되는 것이여.

노정기(路程記), '여기서 어느 목적지에 갈라면은 어디 행 기차를 타고 가서 내려 가지고, 그다음에 버스를 타고 얼마를 북쪽으로 가다가 뭐이 나오면 한다' 그렇게 적혀 있는 노정기만 자꾸 읽고 있는 사람과 직접 그런 것을 다 알아 가지고 당장 한 걸음 출발하는 사람과의 관계와 마찬가지거든.

밤낮 농사짓는 법을 책으로 연구하고 해 봤자 그 배가 부른 것이 아닙니다. 당장 논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서 밥을 지어 가지고 밥을 바로 입에다 떠 넣는 것이여, ‘이뭣고?’는.
당장 밥을 떠서 입에다 넣어서 깨물어 먹으면은 배가 부르지만, 밤낮 책만 펴 가지고 농사짓는 법만 연구해 가지고 언제 그것이 배가 부르겠습니까.

우리 자신이 농사짓는 법을 잘 연구를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농사를 짓는 법도 있지만, 이미 농사 잘 짓는 법 아는 사람과 같이 그 사람과 같이 농사를 짓고, 이미 다른 사람이 농사지어 논 놈을 갖다가 밥을 해서 딱! 놔주면 입에다 떠 넣어준 것입니다.

‘이뭣고?’하라고 가르켜 준 것은 밥을 여러분 입에다 떠 넣어준 거와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씹어서 삼키기만 하면 되는 거여.
입에다 이렇게 떠 넣어 주어도 뱉어 버리고 씹지도 않고 삼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처님의 힘으로도 어찌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번 해 보세요. ‘이뭣고?’
(대중) ‘이뭣고?’

'이뭣고?' 한번 할 때마다 여러분은 씹어서 삼키는 거와 같애. 그래서 ‘이뭣고?’ 이것이 법(法)의 양식(糧食)입니다. 법의 양(糧)이여, 도(道)의 양식이거든.
그래서 이 법의 양식을 부지런히 먹고 잘 씹어서 삼키면 여러분은 도를 성취를 하는 것입니다.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마음 심(心)’자, ‘농사 농(農)’자, 심농(心農)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하루는 수행하실 때에 들녘을 지나는데, 어느 불법(佛法)을 믿지 않는 바라문(婆羅門)이 부처님이 탁발(托鉢)을 하시니까, "밥을 못 주겠다"
"왜 못 주느냐?"

"우리는 피땀을 흘려서 농사를 지어가지고 이렇게 먹지만, 당신네들은 농사도 안 짓고 장사도 안 하고, 밤낮 서늘한 그늘 속에 앉아서 있다가 때만 되면 거저 밥을 얻어먹으러 오니 우리는 공밥 먹는 사람에게는 밥을 줄 수가 없다. 이 피땀 흘려서 농사지은 것을 어찌 당신들한테 줄 수가 있겠느냐"

부처님 말씀이 "당신만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나도 농사를 지었소. 당신보다도 더 열심히 농사를 짓고 있소"
"어찌 도를 닦는 사문(沙門)이 거짓말을 허요"

"아하, 거짓말이 아니요. 당신네들은 몸뚱이를 가지고 몸뚱이를 먹여 살리는 양식을 가꾸는 농사를 짓지마는, 우리는 영혼을 해탈케 하는 도를 이루게 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다.
당신이 짓는 농사 양식(糧食)으로는 먹어봤자 하루밖에는 참을 수가 없지만, 우리 마음의 농사는 금생 뿐만이 아니라 영원을 두고 배부르는 그런 농사를 짓는 것이고. 당신네 농사는 당신밖에는 배가 부르지 않지마는, 우리 마음의 농사는 우리 스스로도 영원히 배부르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면케 하는 해탈도를 증득하는 마음의 농사를 짓는 것이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에 감동이 되어서 보리심(菩提心)을 발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농사는 ‘마음의 농사’야!

농사는 짓는 때가 있고 그 때를 타서 열심히 해야지, 씨만 심어 놓고 가꾸지를 안 하면 그 농사는 폐농(廢農)을 하게 됩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때맞춰서 땅을 갈고, 모자리를 해서 그놈을 때맞춰서 심고, 그래 가지고 농약을 주고 비료를 주고 그래 가지고 그 피땀을 흘려서 농사를 짓게 되는데, 그걸 등한히 해 보십시오.
벌레가 다 먹어버리고 물을 맞춰서 주지 않으면 말라 죽거나 물에 너무 오랫동안 잠기면은 병이 생기고, 그렇게 해서 수확을 거두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잘 가꾸는데 있는 것입니다.

마음의 농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농사짓는 모자리의 씨를 심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부지런히 가꾸어서 때맞춰서 잘 가꾸어 나가야지, 일시라도 등한히 해 버리면 벌레가 와서 침식을 하게 되고 말라 죽거나 떠 죽거나 그렇게 해서 못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道)도 잠시도 등한히 하면 그렇게 안이비설신의, 육근(六根)을 통해서 팔만사천 마구니가 도를 이루지 못하도록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것입니다.

‘마구니가 왜 우리 도 닦는 것을 방해를 치냐’하면 도인(道人)이 생겨나면 자기네 설 땅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구니의 궁전이 흔들리게 되고 마구니가 소탕이 되어서 마구니 살 곳이 없기 때문에 마구니가 자기 설 땅을 지키고 자기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도 닦는 사람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방해를 놓는 것입니다.
그 마구니를 항상 우리는 잘 대항해서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우리 심왕(心王) 국토를 잘 지켜나가야만 우리는 도를 성취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마구니는 눈을 통해서 들어오고, 귀를 통해서 들어오고,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몸뚱이를 통해서 들어오고, 우리의 생각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들어올라고 하는 그 찰나에—이미 들어와 버리면 쫓아내기가 어려워—들어올라고 할 때 딱! 그놈을 문을 닫아 걸어야 되거든.

무슨 생각이든지 일어날 때, 무엇이 눈을 통해서 들어올 때, 어떠한 사물이 귀를 통해서 들릴 때, 코를 통해서 들어오고, 입을 통해서 들어오고, 몸뚱이를 통해서 들어올 때에 바로 그 즉시 ‘이뭣고?’ 이렇게 한다면, 마구니가 우리의 국토에 발을 디디지 못하고 물러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입니다.

별로 재미가 없는 것 같지만 자꾸 해 보면 말로써 표현할 수 없는 법(法)에 낙(樂)이 있는 것입니다. 법에 기쁨이 있어. 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달, 두 달, 석 달, 일 년, 이태 이렇게 열심히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날의 자기가 아닌 딴 사람으로 성장 또 향상되어 가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해탈도를 향해서 우리는 정말 부지런히 닦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세속에 다 직업이 있지만, 이 ‘이뭣고?’ 내가 나를 닦는, 나의 영혼을 갖다가 해탈케 하는 이 직업이 정말 우리의 본업(本業)인 것입니다.
다른 것은 그저 몸뚱이를 살찌게 하고 또 의식주를 위해서 다 필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까짓 것들이 우리의 영원한 영혼을 위하는 직업에다 대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실천하는 학자는 이 참선을 갖다가 본업으로 알고, 그 밖에 모든 것을 부업(副業)으로 알고서 본업과 부업을 열심히 또 충실히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가정이나 개인이나 사회 국가에 있어서 정말 충실하고자 하면 이 ‘이뭣고?’ 사업을 잘해야 그래야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 문제가 제대로 되어가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정말 훌륭하게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이루어져 봤자 별것도 아닌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정말 우리는 몸과 목숨을 다 바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몸 바칠 것은 오직 이것뿐인 것입니다.(32분47초~50분4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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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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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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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ㅅ/심농(心農)2021. 10. 16. 09:55

심농((No.245))—(게송)醉眠醒臥不歸家~ | 성불(成佛)을 하기 전에는 어디가 있던지 간에 타향살이 | 영원히 쓰고도 남아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의 농사(農事)』를 부지런히 가꾸어야.


*심농(心農) ; 마음[心]의 농사(農事). 마음 밭[心田]의 농사.

보통 농부의 농사(農事)는 몸뚱이를 먹여 살리는 양식(糧食)을 가꾸는 농사이다. 수행자의 '마음의 농사'는 우리 스스로도 영원히 배부르고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목마르고 배고픔을 면케 하는 해탈도를 증득하는, 도를 성취하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농사이다.
농부가 짓는 농사도 때맞춰서 부지런히 잘 가꿔 나가야 수확을 거두는 것처럼, 수행자의 마음의 농사도 해탈도를 향해서 잠시도 방일하지 않고 올바르게 열심히 마음 밭[心田]을 가꿔 나가야 한다.[송담스님(No.306) 법문에서 요약]

*심전(心田) ; 마음 밭. 마음[心]을 밭[田]에 비유한 말. 마치 뿌린 씨에 따라 온갖 식물이 자라는 밭[田]과 같이 마음도 능히 선악의 종자를 저장하며 인연 따라 선악의 싹을 틔워 자라나게 하므로 밭에 비유함. 심지(心地) · 심묘(心苗)와 같은 맥락.

우리는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가서 잡초에 우거진 밭과 논을 갈아 가꾸어서 영원히 쓰고도 남고, 쓰고 남아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의 농사(農事)』를 부지런히 가꾸고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4분 59초)

 


[법문] 송담스님(No.245)—1984년(갑자)년 하안거 해제 법회(84.08.11) (용245)

취면성와불귀가(醉眠醒臥不歸家)하고  일신유락재천애(一身流落在天涯)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불조위중유부주(佛祖位中留不住)하고  야래의구숙노화(夜來依舊宿蘆花)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취면성화불귀가(醉眠醒臥不歸家)하고, 잔뜩 술에 취해서 잠을 자고 또 겨우 잠에서 깨 가지고는 또 누워서 잔다 말이여. 그러면서 집에를 돌아가지를 안 해.
일신유락재천애(一身流落在天涯)여. 한 몸이 동서 사방으로 유랑(流浪)을 하면서 저 하늘갓—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저 하늘갓에 유랑을 하고 있더라 그 말이여.

우리가 본래는 부처님인데, 한 생각 잘못 먹은 탓으로 해서 우리의 본고향에서부터서 떨어져 나와 가지고 정처없이 타향살이 신세를 면치를 못하고 있는 것을 비유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부모가 있고, 내 집이 있고 하니까 ‘내 고향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실런지 모르지만 성불(成佛)을 하기 전에는 어디가 있던지 간에 타향살이여. 자기의 본마음 자리를 깨닫지를 못하고 중생의 오욕락(五欲樂)과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세계에서 계속해서 방황을 하고 있는 신세다 그 말이여.

불조위중유부주(佛祖位中留不住)하고, 부처와 조사(祖師)의 번듯한 그 자리는 마다하고 나와서,
야래의구숙노화(夜來依舊宿蘆花)여. 오늘 밤에도 또 갈대꽃 밭에서 또 밤을 지새게 되었어.

언제까지 이 타향살이 신세! 우리의 조상이 사시고 부모가 사시고, 그런 우리의 마음의 본고향으로 돌아가게 될런지. 계속 업(業)만 퍼짓고 생사윤회(生死輪廻)를 끝없이 하는 동안에 고향 땅은 잡초에 우거지고 누가 돌보아 줄 것인가?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를 낳아 주신 부모와 조상을 위해서, 또 우리의 몸에서 태어난 우리의 자손들을 위해서, 우리는 하루빨리 고향에 돌아가서 잡초에 우거진 밭과 논을 갈아 가꾸어서 영원히 쓰고도 남고, 쓰고 남아서 모든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의 농사(農事)』를 부지런히 가꾸고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1시간18분31초~1시간23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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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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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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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