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공덕 공력2021. 8. 7. 07:10

공덕((No.306))—가족 간에, 도반 간에 서로서로 불명(佛名)을 불러주면, 불명을 부른 사람도 공덕이 되고, 부름을 받는 사람도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1분 38초)

 

 


[법문] 송담스님(No.306)—1986년 8월 화두 불명 수계 법어(86.08.03) (용306)

여러분은 오늘 오계를 받고 또 화두를 타고 또 불명(佛名)을 받게 되겠습니다. 앞으로 스님네가 부르는대로 차례차례 나오셔서 이 불명을 받아 타셔서, 자기의 불명이 무엇인가를 잘 아셔야 합니다.



속에 이와 똑같이 생긴 계문(戒文)이 들어 있고 거기에 여러분의 불명이 쓰여 있습니다. 한문으로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받은 봉투에는 한글로 쓰여 있으니까 자기의 불명이 무엇인가를 똑똑히 아시고.

가정에서도 내외간에 서로 불명을 부르시면 더욱 좋고, 형제자매 간에도 불명을 부르고, ‘아무개 엄마, 아무개 엄마’하지 말고 ‘아무개 보살’ 이렇게 해서 불명을 서로 부르면 불명을 부른 사람도 공덕이 되고, 부름을 받는 사람도 공덕이 되는 것입니다.

피차 업장(業障)이 소멸이 되고, 불명 한번 부를 때마다 ‘이뭣고?’를 하는 데에 연결이 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가 동시에 되는 것이니만큼, 불명을 잘 스스로 잊지 말고 남의 불명도 잘 알아서 서로서로 불러주게 된다면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또 부처님의 아들로서 도반으로서 좋은 인연이 깊어지리라고 생각이 됩니다.(58분50초~60분2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공덕 공력2020. 6. 2. 11:26

공덕(No.345)—부처님 법문은 원음(圓音) | 법문 듣다가 죽은 그 공덕으로 도리천에 태어난 조개 이야기, 『善見律毘婆沙』 | 인신난득 불법난봉.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11분 12초)

 

[법문] 송담스님(No.345)—1988년 1월 첫째일요법회(88.01.03) (용345)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께서 선바국(瞻婆國)이라는 나라에 가셨습니다. 그 선바국 나라에 가라지(迦羅池)라고 하는 큰 못이 있었는데 그 못가에서 여러 대중을 향해서 법문(法門)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그 못 가운데에 살고 있는 큰 조개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조개가 부처님께서 법문하시는 그 소리를 듣고서 그 연못 밖으로 기어나왔습니다.

 

부처님의 법문은 원음(圓音)이라, 한 말씀으로 설하시되 모든 중생이 각기 자기 나름대로 그 부처님의 설법을 다 들을 수가 있습니다.

보살(菩薩)은 보살대로 듣고, 아라한(阿羅漢)은 아라한대로 듣고, 중생은 중생대로 듣고, 축생은 축생대로 다 듣고, 하늘나라 사람들은 하늘나라 사람대로 다 듣는 것입니다. 시방세계(十方世界) 모든 중생이 다 부처님의 설법을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설법을 원음이라 그러는 것입니다.

 

그 가라지라고 하는 못 속에 살고 있는 큰 조개도 그 부처님의 음성소리가 못 속에 울리니까 거기서 못 밖으로 기어나와 가지고 그 못 밖에 풀밭에 풀섶에 그늘에 딱 멈추어서 입을 떡 벌리고서 법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목동이, 그 소를 치는 목동이 작대기를 들고서 소를 몰다가 그 목동도 그 부처님 법문, 많은 신도들이 운집(雲集)을 해가지고 앉아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으니까 아! 자기도 가까이 가서 그 법문을 들어야겠다.

 

이래 가지고 가 가지고 그 풀섶에다 자기가 들고 있는 그 지팽이를 탁! 꽂아 놓고 그리고서 법석(法席)에 나아갈려고 했는데, 그 작대기를 탁! 풀섶에 꽂은 것이 하필 법문을 듣기 위해서 나와 있는 조개, 그 조개가 입을 떡 벌리고 귀를 기울이고 듣고 있는 그 조개 벌리고 있는 데다가 그 작대기를 탁! 꽂았다 그말이여.

그래 놓으니 그 입을 딱 다물고 있으면 여간 작대기를 꽂아도 그 깨지들 않을 텐데 입을 벌리고 있는 데다가 탁 꽂으니까 그 조개가 깩 소리도 못하고 그냥 죽고 말았습니다.

 

그 조개는 그 부처님의 법문을 듣다가 죽었습니다. 그 법문을 듣다가 죽은 그 공덕(功德)으로 도리천(忉利天)에 태어났습니다.

도리천에 태어나 가지고 그 한량없는 복을 받고 그 도리천에 12유순(由旬)이나 되는 큰 궁전, 가로 세로가 12유순이나 되어. 그 12유순은 굉장히 큰 아주 그 거리의 단위인데, 그 12유순이나 되는 그 넓고 큰 궁전에서 천녀들과 그 노래를, 천녀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그 잘 먹고 잘 입고 그 낙(樂)을 받고 있는데.

 

그러면서 그 천안(天眼)으로써 자기가 과거에 어떠한 연(緣)으로 해서 이렇게 도리천에 태어나 가지고 이런 천당의 낙을 받고 있는가 하고 전생에 자기 몸뚱이를 따악 관(觀)을 해 보니까,

전생에 자기가 한 마리의 조개로써 이 선파국의 가라지라고 하는 못에서 살고 있다가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나왔다가 그 목동에 작대기에 꽂혀서 죽은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부처님의 법문을 듣다가 죽기는 했지만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그 공덕으로 내가 이런 도리천에 태어나서 이러한 참 이 한량없는 낙(樂)의 보(報)를 받게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서 그 궁전에서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 회상(會上)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처님께 예배를 드리고 공양(供養)을 올리니까 부처님께서 설법을 해 주셨습니다.

 

그 조개의 후신(後身)인, 천당에서 내려온 그 조개를 향해서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시니까 바로 언하(言下)에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환희용약(歡喜踊躍) 해 가지고 다시 도리천으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희(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라고 하는 경(經)에 이러한 설화가 있습니다.

 

이 설화를 통해서 그러한 조개도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그 공덕(功德)으로—보통 부처님의 설법을 듣다가 죽지 않고 그냥 어떠한 사람의 작대기에 꽂혀서 죽었다면 원한심을 품고 세세생생에 서로 원수를 갚고 원수를 또 받고 하면서 악도(惡途)를 윤회(輪廻)할 텐데,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던 그 인연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났고, 다시 또 천상에서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께 공양—그 너무너무 감사하니까 부처님께 그 감사한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서 내려와서 예배를 드리고 공양을 올리고서 부처님께서 법문을 해 주셔 가지고 성인(聖人)의 그 수다원과를 증득을 하게 되었어.

 

한 마리의 조개도 법문을 의지해서 그렇게 깨달랐거든, 하물며 우리 사람!

우리 사람은 다른 중생들, 다른 짐승들보다는 훨씬 여러 가지 여건이 도(道)를 닦기 좋게 우리는 타고난 것입니다.

 

천상에 태어났던 이 조개는 다행히 참, 부처님의 법문을 들은 공덕으로 천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또 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가지고 부처님의 법문을 들었지만, 다른 어떠한 유루복(有漏福)을 지어서 천상에 올라가면 계속해서 천상에서 복을 받느라고 여간해서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불법에 귀의(歸依)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숙세의 깊은 인연이 있어서 사람 몸을 받아 가지고 금생에 또 이 불법(佛法)에 귀의해서 이렇게 최상승(最上乘)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람 몸을 받아서 정법(正法)을 만난다고 하는 것이 대단히 참 희유(稀有)한 것입니다. 저 천상에서 바늘 하나를 떨구어 가지고, 이 지상에 겨자씨를 향해서 바늘을 떨구어 가지고 그 바늘이 겨자씨에 딱 꽂힌 만큼 그만큼 이 불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또 눈먼 거북이가 천년 만에 한 번씩 바다 위에 떠올라 가지고 그때 마치 구멍이 뚫린 큰 고목나무 등걸을 만나 가지고 거기에 몸을 의탁해 가지고 숨을 쉬고서 들어가는데, 그 천년 만에 떠올라 가지고 하필 떠오른 그곳에 구멍 뚫린 고목나무 둥치를 만난 만큼 그만큼, 그보다도 더 어렵다 이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거북이는 눈먼 거북이입니다. 눈이 떠 있는 거북이도 그 고목나무를 만나기가 어려울 텐디, 눈먼 거북이가 더군다나 어떻게 그 나무를, 지척(咫尺) 간에 나무가 있은들 어떻게 그것을 붙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만큼 사람으로 태어나서 불법을 만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람으로서 불법을 만났으니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도(道)를 열심히 닦지 아니하고 또 도를 깨닫지를 못하고 그렁저렁하다가 이 몸뚱이를 잃게 되면 천당 아니면은 지옥이요, 그렇지 않으면 축생에 떨어지고 다행히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또 불법을 만나게 될지 아무도 보장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12분59초~24분1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법문을 듣다가 죽은 그 공덕으로 도리천에 태어난 조개 이야기 ;

[참고]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제4권. 승가발타라(僧伽跋陀羅) 한역(漢譯) | 동국역경원.

물었다. "부처님은 무엇 때문에 하늘과 사람들만의 스승이요, 축생의 스승은 아닙니까? 옛날 여래가 세상에 계시면서도 축생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하늘과 사람들만의 스승이라 합니까?"

 

수다라경(修多羅經)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에 부처님은 첨파국(瞻婆國)에 계시면서 가라(迦羅) 못가에서 첨파국 사람들을 위하여 설법하셨는데 이때 못 안에 무명조개[蛤 대합조개] 하나가 부처님의 설법하신 소리를 듣고는 기뻐하여 곧 못에서 나와 풀뿌리 아래에 들어갔습니다.

 

이때에 어떤 한 소를 치는 사람[牧牛人]은 대중들이 둘러서서 부처님 설법을 듣고 있음을 보고는 부처님에게 가서 법을 들으려고 하여 지팡이로 땅을 찌른 것이 무명조개 머리에 잘못 닿았습니다. 무명조개는 곧 목숨이 끊어져서 도리천에 나아 도리천왕이 되었으니, 그 복의 과보 때문이었습니다. 궁전의 세로와 너비는 바로 12유순이었습니다.

이에 무명조개 천인은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기녀들의 오락 소리를 보고 깨달은 뒤에 곧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앞서 축생이었는데 무슨 인연 때문에 이 하늘 궁전에 태어났을까?'

곧 하늘 눈[天眼]으로 자세히 살피니, 앞서 못가에 부처님 설법을 들은 이 공덕 때문에 이 과보를 얻었기에 무명조개 천인은 곧 궁전을 타고 부처님에게 가서 닿아 땅에 엎드려 발아래 예배하였습니다.

 

問曰 佛何以獨爲天人師 不爲畜生師耶 昔如來在世亦爲畜生說法 何以獨稱爲天人師

修多羅經說 爾時佛在瞻婆國 於迦羅池邊 爲瞻婆人說法 是時池中有一蛤 聞佛說法聲歡喜 卽從池出入草根下 是時有一牧牛人 見大衆圍遶聽佛說法 卽往到佛所 欲聞法故以杖刺地 誤著蛤頭 蛤卽命終生忉利天 爲忉利天王 以其福報故 宮殿縱廣正十二由旬

於是蛤天人 霍然而悟 見諸妓女娛樂音聲 悟已尋卽思惟 我先爲畜生 何因緣故生此天宮 卽以天眼觀 先於池邊聽佛說法 以此功德得此果報 蛤天人卽乘宮殿 往至佛所頭頂禮足

 

부처님은 아시면서 일부러 '너는 어떤 사람인데 갑자기 나의 발에 예배하고 신통ㆍ광명ㆍ상호가 견줄 데 없이 여기를 환히 비추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무명조개 천인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옛날에 무명조개 몸이 되어

물속에서 먹이를 찾다가

부처님의 설법하신 소리 듣고

나와서 풀뿌리 밑에 있었습니다.

 

어떤 소치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팡이를 가져와서 법을 듣다가

지팡이로 저의 머리를 찔렀으므로

목숨을 마쳐서 천상에 났습니다.

 

부처님은 무명조개 천인이 말한 게송으로 사부대중을 위하여 설법하셨습니다. 이때에 대중 가운데 팔만사천 인은 다 불도의 자취를 얻었고, 무명조개 천인은 수다원 과위를 얻었습니다. 이에 무명조개 천인이 도의 과위를 얻고 기뻐하며 웃음을 머금고 떠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천인사라 합니다.

 

佛知故問 汝是何人 忽禮我足 神通光明相好無比 照徹此間

蛤天人以偈而答 往昔爲蛤身 於水中覓食 聞佛說法聲 出至草根下 有一牧牛人 持杖來聽法 杖攙刺我頭 命終生天上

佛以蛤天人所說偈 爲四衆說法 是時衆中八萬四千人 皆得道跡 蛤天人得須陀洹果 於是蛤天人得道果已 歡喜含笑而去 故稱爲天人師

 

[참고] 『법원주림(法苑珠林)』 제17권 「제7 경법편(敬法篇)」 ’제3 청법부(聽法部)‘ 서명사(西明寺) 사문(沙門) 석도세(釋道世) 지음 | 동국역경원.

 

『선견율론(善見律論)』에서 말하였다.

옛날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첨바라국(瞻婆羅國)의 가라못[迦羅池] 가에 가서 대중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때 못에 있던 대합조개 한 마리가 부처님께서 못가에서 설법하시는 소리를 듣고 못에서 나와 풀 속으로 들어가 법을 듣고 있었다.

그때 또 어떤 사람이 지팡이를 들고 소를 놓아 먹이고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앉아 대중을 위해 설법하시는 것을 보고 곧 부처님에게로 나아가 설법을 들으려고 지팡이를 땅에 꽂다가 잘못해 조개의 머리를 찔렀다. 조개는 곧 그 자리에서 죽어 도리천에 났다. 그 복의 과보로 그 궁전의 가로 세로가 12유순이 되었다. 그는 여러 천녀들과 향락하다가, 곧 궁전을 타고 부처님께로 가서 부처님 발에 예배했다.

 

善見律論云 昔佛在世時 到瞻婆羅國迦羅池邊 爲衆說法 時彼池中有其一蛤 聞佛池邊說法之聲 卽從池出 入草根下 聽佛說法 時有一人持杖放牛 見佛在坐爲衆說法 卽往佛所 欲聞法故 以杖刺地誤著蛤頭 卽便命終 生忉利天 以福報故 宮殿縱廣十二由旬 與諸天女 娛樂受樂 卽乘宮殿 往至佛所 頭頂禮足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 짐짓 물으셨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갑자기 와서 내 발에 예배하며 신통과 광명과 상호가 비할 데 없어 이 세간을 환히 비추느냐?"

조개였던 하늘 사람은 게송으로 대답했다.

 

저는 지난 세상에 대합조개로서

물 속에서 먹이 찾고 살다가

부처님 설법하는 소리를 듣고

못에서 나와 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소를 먹이는 어떤 사람이

지팡이 들고 법을 들었는데

지팡이 꽂다 저의 머리 찔러

저는 죽어서 천상에 났습니다.

 

부처님께서 이 조개였던 하늘 사람의 게송으로 사중(四衆)을 위해 설법하셨다. 그때 대중 가운데 팔만사천 인은 다 도의 자취를 보았으며, 그 조개였던 하늘 사람은 수다원과(須陁洹果)를 얻어 합장하고 떠났다.

 

佛知故問 汝是何人 忽禮我足 神通光明相好無比照徹此間

蛤天人以偈而答 往昔爲蛤身 於水中覓食 聞佛說法聲 出至草根下 有一牧牛人 持杖來聽法 杖劖刺我頭 命終生天上

佛以蛤天人所說偈 爲四衆說法 是時衆中八萬四千人 皆得道跡 蛤天人得須陀洹果 合掌而去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부처님 ; 불(佛).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 각자(覺者)·각(覺)이라 번역.

①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우주의 본성이나 참모습을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 청정한 성품을 깨달은 주체. ② 진리 그 자체. 우주 그 자체. ③ 석가모니.

*원음(圓音) ; 치우침 없는 원만한 음성. 들을 수 없는 이가 없는 음성. 모든 유정이 제각기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 부처님께서 한 음성[一音]으로 일체법을 설하실 때, 모든 중생이 제각기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평등하게 이해하는 원만한 부처님의 가르침.

*보살(菩薩) :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각유정(覺有情) • 개사(開士) • 대사(大士)등으로 번역。①성불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②대승교에 귀의, 사홍서원을 발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며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일체 중생을 교화하여 자리 • 이타(自利 • 利他)의 행을 닦으며 51위의 수행계단을 지나 드디어 불과(佛果)를 증득하는 이.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賊)·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시방세계(十方世界) ; 온 세계. 사방(四方 동•서•남•북)과 사유(四維 동북•동남•서남•서북)와 상하(上下)에 있는 무수한 세계. *풀섶 ; '풀숲(풀이 무성하게 꽉 들어찬 곳)'의 사투리.

*운집(雲集 구름 운/모일 집) ; 구름[雲]처럼 모인다[集]는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법석(法席) ; 대중이 둘러앉아서 설법, 독경, 강경, 법화(法話) 따위를 행하는 자리.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도리천(忉利天) ; 욕계에 있는 육욕천(六欲天)의 하나. 도리(忉利)는 33이라는 뜻, 천(天)은 신(神)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 33신(神)들이 사는 곳.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이 수미산인데, 이 수미산 정상에 있으며, 중앙에 왕인 제석(帝釋)이 있고 사방의 봉우리에 각각 8신(神)이 있어 33신.

*유순(由旬) ; 산스크리트어 yojana(요자나)의 음사. 고대 인도의 거리의 단위. 소달구지가 하루에 갈 수 있는 거리로서 소유순은 40리, 중유순은 60리, 대유순은 80리인 세 가지가 있다.

*연(緣) ;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보(報) ; 과보(果報),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수다원(須陀洹) ; 산스크리트어 srota-āpanna 팔리어 sota-āpanna의 음사(音寫). 예류(預流) · 입류(入流)라고 번역.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견혹(見惑)을 끊은 성자. 깨달음의 길을 하천의 흐름에 비유하여 그 흐름—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예류 · 입류라고 함.

이 경지를 수다원과(須陀洹果) · 예류과(預流果), 이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단계를 수다원향(須陀洹向) · 예류향(預流向)이라 함.

초기불교에서 - 성문(聲聞)으로서 - 해탈하는 길은 ‘성문사과(聲聞四果)’라고 하여, 수다원(須陀洹) · 사다함(斯陀含) · 아나함(阿那含) · 아라한(阿羅漢)의 4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견혹(見惑) ; ①사제(四諦)를 명료하게 주시하지 못함으로써 일어나는 번뇌. 이 번뇌에는 유신견(有身見) · 변집견(邊執見) · 사견(邪見) · 견취견(見取見) · 계급취견(戒禁取見) · 탐(貪) · 진(瞋) · 치(癡) · 만(慢) · 의(疑)가 있음. 

② 유식설에서, 후천적으로 습득한 그릇된 지식에 의해 일어나는 번뇌, 곧 분별기(分別起)를 말함.

*환희용약(歡喜踊躍 기쁠 환/기쁠 희/뛸·춤출 용/뛸 약) ; 기뻐서 뛰는(춤추는) 것. 마음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환희(歡喜)이고, 그것이 형태나 동작으로 나타나는 것이 용약(踊躍)이다. 수행 또는 문법(聞法)에 동반되는 기쁨. 기뻐서 힘이 솟음. 대단히 기뻐하고 있는 모양.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 ; 남제(南齊)의 승가발타라(僧伽跋陀羅) 한역. 18권 『선견론(善見論)』 · 『비바사율(毘婆沙律)』 · 『선견비바사율(善見毘婆沙律)』이라고도 한다. 소승 율부(律部) 5대 논서 중 하나로서 스리랑카 상좌부에서 전수된 율장에 대한 주석서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윤회(輪廻) : 세상의 온갖 물질과 모든 세력(勢力)은 어느 것이나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오직 인과(因果)의 법칙(法則)에 따라 서로 연쇄 관계(連鎖關係)를 지어 가면서 변하여 갈 뿐이다。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다시 물•수증기••• 이와 같이 모든 것은 돌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업식(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 새 없이 번민과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육신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을 따라 지옥 • 아귀 • 축생 • 수라 • 천상 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그러나 성품을 깨쳐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바가 없게 되면 윤회는 끊어지는 것이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4분 51초)

복(福)이라고 하는 것이, 부처님 말씀에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이 있는데,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 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우리는 이 사람 몸을 받아서 정법(正法)을 만난다고 하는 것이 대단히 참 희유(稀有)한 것입니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법(敎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말법시대는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다 반드시 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희유(稀有 드물 희/있을 유) ; 드물게[稀] 있음[有].

*등걸 ; 나무의 줄기를 베어 내고 남은 밑동(나무줄기에서 뿌리에 가까운 부분).

*지척(咫尺 여덟 치·가깝다·길이 지/자·길이 척) ; 길이가 8치[咫 3.03cm]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 아주 가까운 거리.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공덕 공력2020. 5. 5. 09:16

공덕(No.593)—우란분재(盂蘭盆齋) | 목련존자의 효도, 목련존자가 수행자들에게 올린 공양 공덕으로 아귀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제 |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11장, 무심도인(無心道人).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15분 24초)

 

[법문] 송담스님(No.593)—1997년 정축년 하안거 해제 (용593)

 

오늘은 정축년 하안거(夏安居) 해제(解制)날입니다.

하안거 해제에다가, 백중(百中) 우란분재일(盂蘭盆齋日)에다가, 백일기도 회향을 겸해서 이렇게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하게 되었는데, 어째서 우란분재, 선망부모(先亡父母)를 천도(薦度)하는 우란분재에 법요식을 하안거 해제일에 행하게 되느냐?

이것은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신통제일(神通第一)인 목련존자의 효도(孝道)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목련존자의 어머니 청제(靑提) 부인은 남편이 남겨놓은 많은 재산을 삿된 생각으로 낭비를 하면서 살생(殺生)을 하고 갖은 죄(罪)를 지었습니다. 그 죄 지은 과보로 아귀도(餓鬼道), 무간지옥도(無間地獄道)에 떨어져서 참 한량없는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그 아들 목련이 효심(孝心)이 지극해가지고 그 어머니가 어디서 무얼하고 무슨 고통을 받고 계신가 그것이 궁금했고, 급기야는 지옥고(地獄苦)를 받고 있는 것을 알고서 갖은 방법으로 어머니를 그 지옥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 드리려고 애를 썼지마는 끝내 이루지를 못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부처님께 간청을 해서 어머니를 구제(救濟)하는 방법을 여쭈어보니까, '여름 하안거 해제날 석 달 동안을 더위를 무릅쓰고 열심히 도 닦은 스님네께 공양(供養)을 올림으로 해서 그 공덕(功德)으로 어머니를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가 있느니라' 그 방법을 가르켜 주셨어.

 

그래서 목련존자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양할 거리를, 백 가지 과일과 모다 맛있는 음식을 잘 마련을 해가지고 해제 때—부처님 회상(會上)에서 지내던 스님네는 말할 것도 없고, 멀고 가까운 데에서 각기 모다 공부하고 있던 수행자(修行者)들이 부처님 회상에 해제 때에는 모다 모여들었습니다.

그 많은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이 공양(供養)을 올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그 공덕으로 지옥에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그 어머니 청제 부인을 지옥고로부터 이렇게 벗어나게 해 드린 고사(故事)가 『목련경(目連經)』이라든지 『우란분경(盂蘭盆經)』이라든지 그런 경전을 보시면은, 사람으로서는 그 처절한 고통 받는 그 내용을 소상(消詳)하니 알 수가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인연(因緣)으로해서 부처님께서 열반(涅槃)하신지 삼천년이 되는 오늘날에 이르도록 동남아 여러 국가나 중국 · 한국 · 일본 불교국가에, 믿는 나라에서는 이 칠월(七月) 해제일을 기해서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저 선망부모를 위시(爲始)해서, 가족에 아들딸 형제자매 원근친척들의 영혼을,

물론 그 가운데는 비명(非命)으로 돌아가신 분—횡사(橫死)해서 돌아가신 분, 교통사고나 또는 물에 빠져죽고 목 매달아 죽고, 약 먹고 자살하고 한 온갖 비명횡사한 그런 영가(靈駕)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러한 영가들을 천도하는 법요식을 해마다 연례 행사로써 거행해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왜 백중(百中)날이 좋으냐 하면은 석달 동안을 열심히 수행해서 몸도 청정하고 마음도 청정한 수행자들, 수행자들에게 공양 올린 공양공덕(供養功德)이 얼마나 장(壯)한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에 보면은,

‘악(惡)한 사람 백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단 착한 사람 한 사람한테 공양(供養)하는 것이 낫고,

착한 사람 천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단 오계(五戒)를 지키는 한 사람에게 공양하는 게 낫고,

 

오계를 지키는 사람 만 명에게 공양하는 것보단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증득한 한 사람에게 공양한 것이 낫고,

수다원과를 증득한 백만 명에게 공양한 것보단 사다함(斯陀含)을 증득한 한 성현한테 공양한 것이 낫고,

사다함 천만 인에게 공양한 것보단 아나함(阿那含) 한 사람에게 공양한 것이 낫고,

아나함 일 억의 성현에게 공양한 것보단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한 분에게 공양한 것이 낫고,

 

십 억의 아라한에게 공양한 것보단 한 분의 벽지불(辟支佛)에 공양한 것이 낫고,

백 억의 벽지불에게 공양한 것보단 한 사람에, 삼세제불(三世諸佛)의 한 분에게 공양한 것이 낫고,

천 억의 삼세제불에 공양한 것보단 한 무심도인(無心道人)에게 공양한 것이 낫다’

 

『사십이장경』에는 '무념(無念) · 무주(無住) · 무수(無修) · 무증(無證)한 사람에게 공양(供養)한 것이 낫다' 그러는데.

무념(無念)이요, 무주(無住)요, 무수(無修)요, 무증(無證)한 사람은 한마디로 말해서 무심도인(無心道人)이라 그말인데.

 

이 무심도인은 어떠한 것이 무심도인(無心道人)이냐?

생각을 하되 생각 없는 생각을 하고, 행(行)을 하되 행이 없는 행을 하고, 닦되 닦음이 없이 닦고, 증(證)하되 증한 바가 없이 증하는 이것을 한마디로 말해서 무심도인(無心道人)이라 하는데, 이 무심(無心)이라 하는 것은 사실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이러한 것이 무심도인이다’ 이렇게 말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무심도인(無心道人)인지 아닌지를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석 달 동안을 열심히 수행한 수행자 가운데에는 몸도 마음도 청정(淸淨)해서 무심(無心)한 경계(境界)에 들어간, 들어갈 공부를 했고 그 가운데에는 이미 무심한 경계에 들어간 스님이 몇 분인가는 있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설사 오늘날 당장 완전히 진무심(眞無心) 경계에 들어가지 안 했다 하더라도 그 목적지를 향해서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도 준(準) 무심도인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름 해제 때 모이신 그 스님네들에게 공양을 올리면은 무간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비명횡사해서 거리 중천에서 갈 곳을 모르고 해매고 있는 우리의 선망부모와 가족들로 하여금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공덕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무심도인(無心道人).

 

'내가 무심도인이다'하면 그게 무심도인이 아니여.

'내가 한 소식을 했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이 무심도인이 아니고, '나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다'한 생각을 가지면 이미 그것이 무심도인이 아닌 거여.

 

어떻게 하면 무심(無心)의 경지에 들어가느냐?

 

본참공안(本參公案)—'이뭣고?' 화두가 되었건, '판치생모(版齒生毛)' 화두가 되었건, '무자(無字)' 화두가 되었건,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정(指定) 받은 그 본참공안을 하나를 가지고 일체처 일체시에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은산철벽(銀山鐵壁)에 탁! 부딪힌 것처럼, 나아갈라야 나아갈 데도 없고 물러설라야 물러설 수도 없고, 오직 꽉 맥힌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본참공안에 실참실수(實參實修) 해 나감으로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해서 마침내는 무심도인이 되는 것이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참나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왕궁에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설산(雪山)에서 고행(苦行)을 하셔가지고 일생, 일대사(一大事)를 해결해서 팔만사천 법문을 설(說)하신 요점이, 목적(目的)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해제법문(解制法門)은 전강 조실 스님께서 설하신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우리 사부대중(四部大衆)이 그것을 경청(敬聽)을 했음으로 해서 해제법문을 산승(山僧)이 설할 것은 없습니다. 또 설할 줄도 모릅니다.

다맛 석 달 동안을 그 삼복성염(三伏盛炎)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수행을 하고 모이신 여러 도반(道伴)들을 만났으니 너무 반갑고, 고향에 일가친척을 만난다고해서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일가친척은 만나봤자 거북하고 신경쓰이고 별로 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여기서 저기서 한 철을 지내고 모인 도반들은 안면이 있는 분이나, 안면이 없는 분이나 이렇게 해제를 하고 만나면 수십년 보고 싶었던 고향친구가 이보다 더 반가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변이 없어서 내가 반가운 척은 못합니다마는, 마음속으로는 정말 반가운 것입니다.

 

나와 같이 한 목적을 향(向)해서 가는 도반이요, 현재 한 목적을 향해서 고행(苦行)을 해 나가는 형제이기 때문에, 그리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또 다시 만나야 할 도반이요 궁극(窮極)의 목적지에서 다시 부처님 회상(會上)에서 또 만나가지고 중생교화(衆生敎化)를 해야 할 그러한 도반이기 때문에 그러리라고 생각을 합니다.(5분38초~21분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우란분재(盂蘭盆齋) ;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베푸는 재(齋).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악도(惡途) 중생과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일체 유주무주(有主無主) 영가를 구제하고자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재(齋)를 베푼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때부터 우란분재가 성행하였다고 전한다.

 

우란분회(盂蘭盆會) · 우란분절(盂蘭盆節) · 우란법회(盂蘭法會) · 우란재(盂蘭齋)라고도 한다.

우란분재일인 음력 7월 15일은 많은[百] 대중에게 공양하는 날이라 해서 백중(百衆), 많은 음식을 마련하여 공양한다 해서 백종(百種), 안거(安居)가 끝나는 날이라 해서 백종(百終)으로 부르고, 세시일로는 백중(百中 · 白衆 · 백족白足)이라 한다.

*우란분(盂蘭盆) ; 산스크리트어 ullambana. 우란은 오람바나(烏藍婆拏)라고도 음사(音寫)하고, 도현(倒懸 : 거꾸로 매달린 것처럼 극심한 고통), 또는 구도현(救倒懸 :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한다)이라 한역(漢譯)한다.

분(盆)은 그릇(식기)의 뜻으로, 한역하면 구기(救器)라고 하며, 뜻으로 구성해 말하자면 '거꾸로 매달린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음식을 가득 담아 삼보三寶에 공양 올리는) 그릇[救倒懸器]'이라 한다.

 

절에서, 음력 7월 15일에 지옥이나 아귀의 세계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님과 승가에 공양하는 의식.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력이 제일인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를 구해주려고 하였으나 신통력으로도 어찌 할 수 없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모두 모이는 하안거가 끝나는 7월 15일인 자자일(自恣日)에 삼보(三寶)에 공양하게 하여 목련존자의 어머니를 악도에서 벗어나게 한 것이 기원이라고 한다.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목련경(目連經) ; 목련 존자(目連尊者)가 지옥에 빠진 어머니를 건진 일을 다룬 경문으로, 음력 칠월 백중날이면 이 경을 읽고 기도한다.

*우란분경(盂蘭盆經) ; 1권.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 번역. 목련(目連)존자가 아귀(餓鬼)의 고통을 겪고 있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구원하기 위해 세존의 가르침대로 자자일(自恣日)에 여러 부처님와 보살, 그리고 스님에게 갖가지 음식과 과일을 지성으로 공양하여 어머니를 제도하였다는 효성을 설한 경.

*영가(靈駕) ; 망자의 넋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 후한(後漢)의 가섭마등(迦葉摩騰), 축법란(竺法蘭)이 함께 한역.

고(苦), 무상(無常), 무아(無我), 보시(布施), 애욕의 단절 등 불교의 요지를 42장에 걸쳐 적절한 비유로써 간명하게 풀어 설한 경(經). 최초의 한역(漢譯) 불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十一)』

佛言 飯惡人百 不如飯一善人

飯善人千 不如飯一持五戒者

 

飯五戒者萬 不如飯一須陀洹

飯百萬須陀洹 不如飯一斯陀含

飯千萬斯陀含 不如飯一阿那含

飯一億阿那含 不如飯一阿羅漢

 

飯十億阿羅漢 不如飯一辟支佛

飯百億辟支佛 不如飯一三世諸佛

飯千億三世諸佛 不如飯一無念無住無修無證之者

 

*무심도인(無心道人) ; ①모든 번뇌망상이 사라져 더이상 추구할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모든 것에 대하여 구하는 것이 없고 얻는 것도 없는 수행자.

②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 무심적적(無心寂寂)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 사량계교심을 다 놓아버리고 언제나 천진무구한 본연자성(本然自性)으로 살아가는 사람.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나 망상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구체적인 대상 속에 있으면서 그 대상에 대한 어떤 망상 분별도 없으므로 그것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어떤 생각이나 감정도 없다거나 사물에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며, 대상을 지향하되 그 대상에 대한 망상 분별과 집착이 없음을 나타낸다. 또한 일정하게 정해진 마음의 양태가 없이 대상에 응하며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자유롭게 변화하는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진무심(眞無心) ; [참고 ①] 『대혜보각선사어록(大慧普覺禪師語錄)』 제19권 대혜보각선사법어(大慧普覺禪師法語) '시청정거사(示淸淨居士)'에서. (김태완 옮김 | 소명출판) p25~26 참고.

古德有言 尋牛須訪跡 學道訪無心 跡在牛還在 無心道易尋 所謂無心者 非如土木瓦石頑然無知 謂觸境遇緣 心定不動 不取著諸法 一切處蕩然無障無礙 無所染汚 亦不住在無染汚處 觀身觀心如夢如幻 亦不住在夢幻虛無之境 到得如此境界 方始謂之眞無心 且非口頭說底無心 若未得眞無心 只據說底 與默照邪禪何以異哉

 

옛 스님이 말했습니다. '소를 찾으려면 모름지기 자취를 찾아야 하고, 도를 배우려면 무심(無心)해야 한다. 자취가 있으면 소 또한 있을 것이요 무심이 되면 도를 찾기 쉽다'

이른바 무심(無心 마음이 없다)이라는 것은 마치 흙 · 나무 · 기와 · 돌처럼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에 접촉하고 인연을 만남에 마음이 안정되어 움직이지 않고,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고 일체처에 탕연해 무장무애하고, 오염된 바가 없으나 오염이 없는 곳에 머물지 않고, 몸과 마음을 꿈이나 환(幻)같이 보면서도 꿈이나 환이라는 허무한 경계에 머물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경계에 이르러야 바야흐로 '진무심(眞無心 참으로 마음이 없다)'이라 할 수 있고, 입으로만 말하는 무심이 아닌 것입니다. 만약 아직 진무심에 이르지 못했으면서 단지 말만하고 있다면 묵조사선(默照邪禪)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참고 ②]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법어(法語)」에서 '상강종대왕심요(上康宗大王心要, 강종 대왕에게 심요를 올림)' (김달진 역주 | 세계사) p156~158 참고.

佛言此法 非思量分別之所能解 又云 菩薩住是不思議 於中思議不可盡 入此不可思議處 思與非思皆寂滅 是故若要廣談義路 不無萬論千經 若圓直造眞源 曷若無心無事 老龐偈云 無心心不起 超三越十地 究竟眞如果 到頭只這是

 

부처님 말씀에 「이 법은 사량과 분별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시고, 또 「보살은 이 불가사의한 경지에 머무르고, 거기서는 생각이나 헤아림으로는 다 알 수 없다. 이 불가사의한 경지에 들어가면 생각과 생각 아닌 것이 모두 적멸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의로(義路 뜻)를 널리 말하려면 만론천경(萬論千經)이 없지 않지만, 두렷이 참 근원에 바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어찌 마음이 없고 일이 없는 것만이야 하겠습니까?

노방(老龐)의 게송에, '마음이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 삼현(三玄)과 십지(十地)를 뛰어넘는다. 진여의 결과를 이루어 보면 필경에 다만 그것이니라' 하였고.

 

德山和尙云 但無心於事 無事於心 虛而靈 空而妙 若毛端許言之本末者 皆爲自欺 毫氂繫念 三途業因 瞥爾生情 萬劫覊鏁

聖名凡號 盡是虛聲 殊相劣形 皆爲幻色 汝若求之 得無累乎 是知直下無心 最爲省要 內若無心 外卽無事 無事之事 是名大事 無心之心 是名眞心

 

덕산 화상은 「다만 일에 마음이 없어야 한다. 마음에 일이 없으면 허(虛)이면서 신령하고 공(空)이면서 묘하다. 털끝만큼도 말[言]의 본말(本末)을 허락하면 그것은 다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털끝만큼이라도 생각에 매이면 삼도(三途)의 업이 잠깐 동안에 정(情)을 내어 만겁 동안을 얽매이고 만다. 그리하여 성인이란 이름과 범부란 이름이 모두 빈 음성이요, 뛰어난 모양과 못난 형상이 모두 허깨비의 빛깔이다. 만일 네가 그것을 구하려 한다면 어찌 누(累)가 없을 수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당장에 무심(無心)한 것이 가장 긴요한 일입니다. 안으로 마음이 없으면 밖으로 일이 없을 것이니 일이 없는 일이 큰 일[大事]이요, 마음이 없는 마음이 참 마음[眞心]입니다.

 

所謂無心者 無心無無心 亦無無心盡 是眞無心 無事者 無事無無事 亦無無事盡 是眞無事 若以事遣事 事事彌增 將心無心 心心却有

 

이른바 ‘마음이 없음[無心]'이란 마음도 없고 마음 없는 것도 없으며, 마음의 없음이 다했다는 것도 없는 것이라 그것이 '참 무심[眞無心]'이며, '일이 없음[無事]'이란 일도 없고 일의 없음도 없으며, 또 일의 없음이 다했다는 것도 없는 것이라 그것이 '참으로 일이 없는 것[眞無事]'입니다. 만일 일로써 일을 보내려면 일마다 더욱 늘 것이요,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없애려면 마음과 마음이 도리어 있게 될 것입니다.

 

不若一刀截斷左右葛藤 更不思前念後 直然放下放到無放下處 無放下處 亦放下 到者裏 方始大事現前 朗然獨耀 此是諸聖 放身捨命之處 成佛作祖之處 此名大眞佛 亦名法身佛 亦名如如佛

 

한 칼로 좌우의 갈등을 끊고, 앞뒤 생각을 하지 않고 당장 놓아버리되[放下], 놓아버림이 놓아버릴 것이 없는 데에 이르고, 놓아버릴 것이 없는 것까지도 놓아버리고 거기에 이르면 비로소 큰 일이 앞에 나타나 환히 홀로 빛날 것이니, 이것은 모든 성인이 몸과 목숨을 놓아버린 곳이요,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된 곳입니다. 이것을 대진불(大眞佛)이라 하고 또 법신불(法身佛)이라 하며 또 여여불(如如佛)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然若以此名句文義 掛在心頭 又却不是 所以道 微言滯於心首 飜爲緣慮之場 實際居於目前 盡是名相之境 知是般事 撥置一邊 但向十二時中四威儀內 看箇話頭

 

그러나 이런 이름이나 뜻을 마음에 두면 그것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세한 말도 마음에 걸리면 도리어 생각을 반연하는 마당이 되고, 실제가 눈앞에 있으면 모두 이름과 형상의 경계다' 하였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일은(이 일을 안 바에야) 한 쪽에 치워 두고, 다만 십이시(十二時)와 사위의(四威儀) 안에서 저 화두를 간(看)해야 할 것입니다.

 

 

僧問法燈 百尺竿頭 如何進歩 燈云啞 世出世間 善惡攀緣 種種分別 莫敎相續 亦莫斷除 念念起時 但擧話頭云啞 不得作瘖啞會 不得向意根下思度 不得向擧起處承當 不得將心待悟 莫管有味無味 悟與不悟 但時時擧覺 念念提撕 日久月深 知其功能耳

 

어떤 스님이 법등(法燈) 스님에게 「백 척의 장대 끝에서 어떻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을 때, 법등 스님은 「아(啞)!」 하였습니다.

세간과 출세간의 선악의 반연과 갖가지 분별을 계속하게 하지도 말고 또 끊어 버리려 하지도 말며, 생각이 일어날 때에는 다만 <아> 하고 화두를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로써 알려고 하지 말고(음아瘖啞라는 알음알이를 짓지 말고) 의근을 향하여 따지고 헤아리지 말며, 종사가 거량하는 곳을 향하여 알아맞히려 하지도 말고,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마십시오. 맛이 있고 없음과 깨닫고 깨닫지 못하는 것에 관계하지도 마십시오. 다만 때때로 들어 느끼고 생각을 거듭해, 세월이 오래 되면 그 공능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昔茶陵 郁和尙 常看此話 至於喫茶喫飯 未嘗忘却 一日因赴外請 騎驢過橋 橋陷驢倒 不覺失聲云啞 豁然大悟 便作偈云 我有神珠一顆 久被塵勞關鏁 今朝塵盡光生 照破山河萬朶 此是古今實參實悟底樣子也 請陛下 依此樣子參 隨有見處 宣問山僧 山僧敢不得穴加針 應病進藥 鍊金作礪 濟川作舟乎

 

옛날 다릉(茶陵)의 욱(郁) 화상은 항상 이 화두를 들되,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을 때에도 일찍이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외부 청을 받아 나귀를 타고 다리를 지나가다가 다리가 무너져 나귀가 거꾸러지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 하는 소리를 내어 활연히 깨우쳐 게송을 읊기를, '내게 있는 한 알의 신령한 구슬 오랫동안 티끌 속에 묻혔더니, 오늘에야 티끌이 없어지고 광명이 나서 모든 산과 물을 두루 비춘다'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나 지금이나 진실로 참구하고 진실로 깨우치는 본보기입니다. 청컨대 폐하께서도 이 본보기에 의하여 참구하시되, 보신 곳[見處]을 따라 산승에게 물으시면 산승이 어찌 감히 혈(穴)을 얻어 침을 놓고, 병을 따라 약을 쓰며, 금을 단련하는 데에 숫돌이 되고, 물을 건너는 데 배가 되지 않겠습니까.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 은(銀)으로 만든 산이요, 쇠로 만든 벽에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앞뒤가 다 끊어져 버린 절박한 상황에 직면(直面)하여 아무것도 사량분별(思量分別)이 거기서 있을 수가 없는 것을 가리킴.

 

수행자에게 이 은산철벽은 내 몸과 목숨을 다해서 뚫고 들어갈 수밖에는 없는 관문(關門)으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마치 모기가 쇠로 된 소 등어리에 올라타고서 그 입부리를 소 등에다가 처쑤셔박는 것처럼,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입부리와 머리와 몸을 압량해서, 합해서 처박고 돌격을 해 들어가야 한다.

자기의 근기(根機)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건강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어리석고 영리한 것도 따질 것도 없고, 남녀노소도 따질 것도 없고, 유식 무식도 따질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되 불급불완(不急不緩), 너무 용을 쓰고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늘어져 처져도 안 되고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어야 한다.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도 따질 것이 없다.[송담스님(No.577) 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 법문에서]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7~158 에서.(가로판 p150~151)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실참실수(實參實修)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수행하는 것. 실참(實參), 실답게 참구(參究)한다는 것은 공안(화두)을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을 말한다. 참(參)은 참선(參禪) 또는 참구(參究).

관념에 그치거나 들어서 아는 지식에 그치지 않고 참으로 실천하는 선수행을 말한다.

*공안(公案, 話頭)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 [‘참선법 A’ 에서]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 [ ‘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습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1600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공덕 공력2019. 11. 8. 14:31

공덕(功德) (No.619)—대장경 결집 역사 | 고려대장경 전산화 수희동참 | 수달장자 부부의 공양 공덕 이야기 | 아사세왕의 참회, 제1회 결집 외호공덕.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1) 12분 36초.

(2) 14분 27초.

 

[법문] 송담스님(No.619)—99년 2월 첫째일요법회(99.02.07) (용619)

 

(1)------------------

 

정말 여러분에게 참 오늘은 특별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28대, 육조 스님까지 33대, 현재 전강 조실 스님까지는 77대가 법(法)의 등불이 이렇게 이어져 왔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립문자(不立文字), 견성성불(見性成佛) 법으로 그렇게 법도 이어오면서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 우리나라 해인사에 봉안되어 있다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작년엔가 그 팔만대장경과 불국사 석굴암 부처님과 종묘(宗廟), 세 문화재가 유네스코로부터서 이 「세계의 문화재(세계문화유산)」로 지정받은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대단히 우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기는 합니다마는 문화재로 지정을 받아서 불이 타지 않도록, 습기가 침범하지 않도록, 벌레가 먹지 않도록 또 도적이 침범 못하도록 잘 보존해서 몇천 년이고, 몇만 년이고 보존을 잘 지키고 그렇게 해야 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써 팔만대장경을 모신 목표가 거기에서 끝나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얼마나 어렵게, 어렵게 해가지고 우리나라 해인사에까지 팔만대장경이 모셔졌는가 여러분은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실 것입니다.

 

부처님 열반하신 해에, 부처님 돌아가시니까 부처님 제자들이 통곡을 하고 머리를 땅에다가 부딪치면서 통곡을 하니까 어떤 늦게 된 스님, 조끔 머트럽게 말해서 늦깨끼 한 사람이 나와서 "여러분 통곡할 것 없습니다. 그동안에는 부처님이 계셔서 '이것은 해라, 이것은 하지 마라' 여러 가지 계율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를 꼼짝달싹을 못하게 하셨는데 인자 부처님이 돌아가셨으니 우리도 좀 자유롭게 좀 살 때가 되었는데 뭐 그렇게 울어쌌냐" 아! 그렇게 소리를 지른 스님이 한 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가섭 존자(迦葉尊者)께서 '아하! 안 되겠다' 그래가지고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 일 만에 오백 성승(五百聖僧)을 모아가지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결집(結集)을 했습니다.

지금처럼 속기술로 했는지, 그때는 녹음기가 없었으니까 녹음으로 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전해 온 바로는 외워가지고, 아란(阿難) 존자를 시켜서 죽죽죽죽 죽죽죽 '어데서 누구 있을 때 어떻게 이 법문을 하셨다' 죽죽 외우면 오백 성승들이 '과연 그렇게 했다'고 전부가 인정을 하면 그것으로써 또 한 경전이 결집이 되고 해서 외워가지고 결집을 했다고 전해 오고 있습니다마는.

 

'그렇게 외워가지고 무슨 결집이 되냐?' 생각하실는지 모르지만 한 토,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아란 존자는 외우셨던 것입니다. 그만큼 기억력이 좋았으니까요.

 

제1회는 그렇게 오백 성승이 모여서 왕사성 칠엽굴(七葉窟)에서 제1회 결집을 했고, 두 번째 결집은 부처님 열반하신 뒤 백 년 만에 야사(耶斯)라고 하는 존자가 제의를 해가지고 비사리성에서 칠백의 아라한(阿羅漢)들이 모여가지고 제2회 결집을 했습니다.

또 제3회 결집은 부처님 열반하신 뒤 삼백삼십 년 만에 아육왕(阿育王)의 보호 아래 제수라고 하는 존자의 사회로 파타리자 성에서 천 명의 아라한들이 모여가지고 제3회 결집을 했던 것입니다.

 

제 4회 결집은 불멸후 육백 년경에 가니색가왕의 적극적인 보호 아래 가습미라에서 협존자(脇尊者)와 세우 존자를 상좌로 오백의 성자들이 모여서 제4회 결집을 했습니다. 그때 삼장(三藏)을 결집을 하고 그 삼장에 대해서 주석도 달고 그랬습니다.

그 뒤로 대승경전이라든지 또 비밀장 밀교 그런 경전도 모다 결집이 되었습니다마는, 오늘은 그 자세한 것을 생략을 하고.

 

그렇게 해서 삼장법사 구마라습이라든지 현장법사 그밖에 많은 범어와 중국어에 통달한 성자들이 그것을 중국어로 번역하고, 티베트어로 번역하고 그렇게 해서 한문 경전으로 된 것을 고려 때에 그 고려 현종이 그것을 그 원본을 책으로 갖다가 우리나라에서 그것을 경판에다 새겼습니다.

 

새겼는데 무슨 목적으로 새겼느냐 하면은, 거란족들이 우리나라를 침범해 들어오니깐 그것을 물리치기 위해서 오천사십팔 권의 그 경전을 새겨가지고 부인사, 부인사가 아마 경북 영천에 있는 절로 전해지고 있습니다마는, 그것을 부인사에 설치를 했습니다.

그것이 1232년 고종 19년에 몽고병이 침입을 해왔습니다. 그래가지고 거기다 불을 질렀습니다.

 

그래 불타버리니까 1236년 4년 뒤에 그 고종이 다시 경판을 새기기를 시작했습니다. 16년 동안에 걸쳐서 강화도에서 1511부 6802권이고, 판수로는 81,258장이라고 그걸 완성을 해서 해인사에 봉안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강화 선원사에 보관했다가 이태조(李太祖) 7년에, 1398년에 서울 지천사에 옮겼다가 다시 해인사로 옮겨 모신 것이 오늘날까지 지금 해인사에 잘 봉안이 되어있습니다.

 

어떻게 잘했던지, 소금물에 담구고 말리고 모다 칠(漆)을 먹이고 해가지고 한 장도 버러지 먹은 것도 없고, 귀지도 않게, 그래서 잘 보존이 되어왔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국보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보물로 지정이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것이 그렇게 보존이 되어서 그걸 대단히 자랑스럽고 앞으로도 영구히 잘 보존해야 하겠지만 그것으로써 끝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말이여.

 

21세기를 우리는 맞이한 마당에 집집마다 컴퓨터가 있고, 세계가 다 자기 있는 곳에서 미국에서나 소련에서나 영국에서나 독일에서도 컴퓨터만 누르면 인터넷을 통해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열람할 수가 있게 된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근데 일본에서는 한국의 이 대장경을 본따서 신수대장경(新脩大藏經)이란 것을 만들어가지고 그것을 전산화를 해가지고 일본에 있는 신수대장경은 세계에서 다 열람할 수가 있는데 그보다도 훨씬 더 잘되고 좋은 경전이 우리나라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아가지고 우리나라 경전을 보려면 여기까지 와야만 됩니다.

 

그 쉽게 팔만대장경을 볼 수가 있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해가지고 우리나라에 모셔진 팔만대장경을 우리나라 국민은 누구라도, 외국에 있는 어떠한 불교 학자라도 그 팔만대장경을 거기에서 열람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바로 고려 팔만대장경의 전산화 불사(佛事)라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이런 불사는 국가적으로 해야 할만한 불사고 또 국가에서 못하면은 불교 종단에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야 할 텐데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나라는 아이엠에프(IMF) 사태로 인해서 경제가 말이 아니고, 종단은 참 내 입으로 벌리기도 참 안되었지마는, 종단이 저렇게 분규가 일어나가지고 시끌사끌 한데 그런 불사를 할 정신이나 있겠습니까?

 

다행히 불보살(佛菩薩) 화현(化現)이 우리나라에 나타나가지고 그것을 개인적으로 이 전산화 불사를 94년도부터서 시작해가지고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다행히 삼성문화재단에서 이 불사를 찬동해 가지고 꽤 많은 돈을 내서 참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서 기본 입력은 되었으나 그것을 한 자, 한 자 틀림없이 되었나, 그것을 낱낱이 다 대조를 해가지고 해야 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는 또 한글로 번역을 또 해서 한문을 모른 사람도 집안에 앉아서 팔만대장경을 무슨 경에 무슨 품에 몇 조에 이걸 딱 볼 수 있게 그렇게 해야 하고.

 

또 더 나아가서는 영어라든지 세계의 다른 나라 외국어로도 번역해가지고 외국 사람들도 자기 나라에서 자기집에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열람할 수 있게 이렇게 한, 그러한 역사 이래로, 불교 삼천년 역사 이래로 처음이라고 할 만한 그런 위대한 불사가 원력(願力)을 세운 불보살 화현에 의해서 이 불사가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불사는 우리 불교도(佛敎徒)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여기에 다 동참(同參)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아이엠에프 시대가 되어가지고 우리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불사를 하느냐? 동참을 하느냐?' 혹 그렇게 생각하실는지 모릅니다마는, 이렇게 어려울 때 불사에 동참을 하고 성의를 바쳐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예를 내가 경전에 나온 말씀을 빌려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14분6초~26분43초)

 

 

 

(2)------------------

 

수달장자(須達長者)라고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금강경(金剛經)』 첫머리 읽으면 기수급고독장자(祗樹給孤獨長者)라고, 그 기수급고독장자가 누구냐 하면 수달장자입니다.

그 수달장자가 처음에 대단히 부자로 살다가 마지막 가난해지고 또 가난해져 가지고 마지막 일곱 번째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저녁 끓일 것도 없고, 뭐 속담에 뭣이 짝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하지요.

 

그렇게 가난한데, 부부가 굶고 살다시피 그러다가 수달장자가 밖에를 슬슬 댕겨서 봤습니다. 혹 뒤엄이나 쓰레기통에 혹 먹다가 버린 쉰 빵 쪼가리라도 혹 있나하고 보다 보니까 나무토막 하나를 얻었습니다.

흠흠 맡아보니까 그 쓰레기 속에서 주었는데 향내가 진동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놈을 씻어가지고 보니까 전단향(栴檀香) 나무토막이라. 그놈을 가지고 팔았습니다. 팔아가지고 쌀 너 말을 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여러 날을 굶다시피 하다가 쌀 너 말을 구했으니.

그 쌀 너 말을 집으로 가지고 와서 그 부인 보고 '우선 한 말만 밥을 해가지고 오늘 좀 배를 채워야겠다. 밥을 하라'고. '나는 슬슬 다시 가서 쓰레기통에 배추 이파리나 무 이파리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주워가지고 와서 다글다글 끓여서 먹어야 할 테니까 밥을 하라'고 해서 밥을 해 놓고, 인자 밥이 있고 아직 수달장자 안 왔는데.

 

부처님이 가만히 정사(精舍)에서 관(觀)을 해 보시니까 '수달장자가 이제 참 때가 되었구나. 수달장자를 정말 제도할 때가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시고서 사리불(舍利佛)을 가서, 수달장자한테 가서 걸식(乞食)을, 바리때를 가져가서 밥을 얻으러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그 부인이 밥을 해가지고 냄새는 코로 술술술 들어오는데 속에서 회(蛔)가 동(動)해 가지고 견딜 수 없이 그런데, 아! 사리불 존자가 왔으니 안 드릴 수가 없으니까 기쁜 마음으로 한 말밥을 드렸습니다.

 

그다음에 다시 또 한 말을 퍼서 밥을 했는데, 부처님께서 '목련(目連) 존자, 네가 또 가서 밥을 빌어 오너라' 목련 존자가 가서, 밥을 다 익을만 할 때 들어가서 바리때를 떠억 펴니까 두말없이 또 두 번째 한 밥을 퍼줬습니다.

그리고 또 세 번째 한 말을 퍼서 또 밥을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부처님께서 가섭(迦葉) 존자를 시켜서 '가서 밥을 빌어라'하니까 가섭 존자가 또 가 가지고 밥이 김이 풀풀풀 난 데가 바리때를 떠억 가니까 두말없이 또 딱 퍼줬습니다.

 

그런 마지막 한 말 남은, 네 말 밥을 딱 밥을 했습니다. 그때는 부처님께서 몸소 바리때를 가지고 가서 딱 펴니까, 깜짝 놀랐습니다.

또 두말할 것도 없이 그놈을 퍼서 (드리니까), 이렇게 바리때를 받아 놓고 부처님께서 작관을 하시고 축원을 하시기를 "금일죄멸복생(今日罪滅福生)이니라, 오늘날 그 가난해야 할 그 죄는 없어지고 멸하고, 큰 복을 받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딱 축원(祝願) 한마디 하는데, 그때 마치 수달장자가 나물거리 주워가지고는 들어왔습니다.

와서 보니 부처님 와서 계시지, 크게 기뻐해가지고 부처님 받은 밥, 사리불, 목련, 가섭 존자 할 것 없이 다 와가지고 그 밥을 퍼 놓고 찌개를 끓여서 거기서 공양(供養)을 잡쉈는데, 공양이 끝나자 여기서 저기서 보물이 막 솟아오르는데 금은보화 칠보와 비단과 곡식과 또 그런 것이 와 가지곤 땅에서 솟아나가지고 옛날에 부자일 때와 같이 되었다 이거여.

 

그러니까 수달장자는 그때 다시 잘 차려놓고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을 다시 초청을 해가지고 공양을 올리고서 법문(法門)을 청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법문을 설하시니까 수달장자 내외는 말할 것도 없고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도를 다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과연 수달장자의 부인이라면 식구가 쫄쫄 굶다가 모처럼 얻은 거 밥해 놓은 거 스님네가 오면 탁 떨어주고, 탁 떨어주고 그럴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도 틀림없이 그렇게 하실 수 있으리라고 나는 믿습니다.

 

이렇게 경제가 어렵고 직장에 다니다가 다 퇴출 당하고 또 유학 간 애들도 다 불러들이고, 대학도 휴학을 시키고 군대에 보내고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으시겠지만 그렇다고 역사 이래로 없는 이런 불사에 빠지면 참 언제 업장(業障)이 소멸(消滅)이 되고 복을 받겠습니까?

이런 말씀을 안 해도 아까 말한 팔만장경의 그 전산화 불사가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다고 알기만 하셨다면 여러분은 진즉 하셨겠는데 아마 잘 모르고 안 하신 분은 이런 기회에 다 동참을 하시고.

 

'이 경전 불사에 동참하는 그것이 얼마나 공덕이 장하냐?'하면,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아사세(阿闍世)왕이라고 아실 것입니다.

부처님의 사촌동생인 조달(調達)이, 제바달다(提婆達多)라고 하는데, 그 조달이의 꼬임에—이 아사세왕에 뭐라고 꾀셨냐 하면은 아사세왕 아버지는 빈바사라(頻婆娑羅 bimbisāra 빔비사라)왕인데,

"빈바사라왕이 명이 길게 생겨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태자는 임금 맛도 못 보고 죽게 생겼어. 그러니까 나는 부처님을 어떻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처님을 죽이고 내가 신불(新佛)이 되고, 아사세 태자는 빈바사라왕, 부왕(父王)을 죽이고 신왕(新王)이 되라. 신왕과 신불이 나와 가지고 이 세계를 한번 휘어잡아 보자"

 

꾀서우니까 아사세왕이 솔깃해가지고 자기 아버지를 갖다가 칠중(七重) 감옥에다 가두고 굶겨 죽이려고 했습니다. 결국은 죽였단 말도 있고, 죽이러 올라온 줄 알고 자결을 했단 말도 있고 그럽니다마는, 하여간 경전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아사세는 자기 부왕을 죽인 걸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아사세왕은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되어가지고, 아조 문둥이처럼 되어가지고 아조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기파(耆婆) 어의(御醫)가 너무너무 볼 수가 없으니까, 부처님께 가서 참회(懺悔)를 하면은 어쩌면 낫을런지 모르니까 부처님께 가서 참회를 하라 그러니까,

'나 같은 이러한 대역죄(大逆罪), 오역죄(五逆罪)를 지었는데 부처님이 받아 주실까요?'

'틀림없이 받아 주실 테니까...'

 

'그러면 그대가 먼저 가서 내가 참회를 오면은 받아 주시겠느냐고 먼저 가서 말씀을 여쭤봐라'

가서 말씀을 드리니까, '그러면 진실로 참회한다면야 내가 왜 참회를 안 받아 주겠느냐' 그래서 참회를 하고 그래가지고는 차츰차츰 병도 낫고 그래가지고,

 

부처님 당시에 파사익왕이니 뭐 아사세왕이니 여러 왕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 삼보(三寶)를 외호(外護)하는 왕으로서 경전마다 나와 있고, 참 그런데다가 가장 뚜렷한 공적은 무엇이냐 하면은 제1회 결집(結集) 때 아사세왕이 공양 · 의복 · 약, 일체를 전부 뒷바라지를 해가지고 제1회 결집을 무난히 성취를 한 것입니다.

 

그랬는데 여기서 말씀을 드리고자 한 것은 아사세왕은 그 아버지를 죽이고 한—그 부모를 죽이고, 부처님 몸에 피를 내게 하고, 아라한(阿羅漢)을 죽이고 그런 것이 오역죄에 해당이 되는데, 그 오역죄를 지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게 돼.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지게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함지옥(生陷地獄)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사세왕은 그러한 죄로 해서 일단은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떨어지자마자 다시 거기에 고통도 받을 겨를도 없이 천상(天上)에 가서 태어났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부처님께 참회를 했고, 적극적으로 불법승(佛法僧) 삼보를 외호할 뿐만 아니라 제1회 결집을 하는데 물심양면으로 외호를 한 그 공덕으로 결국은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무량겁을 받을 죄가 소멸이 되어가지고 천상에 올라간 것이다 그말이여.

 

이 자리에 모이신 사부대중(四部大衆) 여러분은, 지금은 여러분들이 발심(發心)을 해서 불법을 믿는 여러분들이 무슨 큰 죄를 지었을까마는, 무량겁을 오면서 수천만 생을 오면서 산같이 지은 입으로 지은 죄, 바다와 같은 그 몸으로 지은 죄, 허공과 같이 지은 죄를 마음으로 지었다고...

안 지었다고 누가 보장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지은 죄도 낱낱이 빼놓지 않고 다 받게 될 것입니다마는, 오늘 내가 소개한 이런 팔만대장경의 전산화를 통해서 온 세계 사람에게 이 팔만대장경을 읽게 하는 그 공덕으로 그 죄도 소멸이 되리라고 저는 감히 보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편이 넉넉한 분은 좀 넉넉하니 하고 아무리 적어도 적은 돈이라도 아까 수달장자처럼 그것을 안 먹으면 굶어 죽게 생겼어도 탁! 갖다 바칠 때에 큰 부자의 복을 받게 되는 이런 경전에 말씀을 명심을 하시고 여기에 기쁜 마음으로 동참(同參)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전강 조실 스님 열반하신 뒤로 25년, 사석(私席)에서나 법석(法席)에서나 단 한 번도 여러분에게 시주(施主)를 하란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이 불사는 여러분의 어려운 난국을 해나가기 위해서도 또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도, 우리 국난을 맞이한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세계가 말세(末世)의 현상이 나가지고 도처에서 사람을 죽이고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이러한 세계를 구제하기 위해서도 이 전산화 불사는 하루속히 원만히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에 저의 역사를 깨고 불사(佛事)에 동참하시라고 감히 권고를 하는 것입니다.

 

형편 따라서 성의껏 하시면 되고 한 번에 안 내더라도 다달이 요렇게 해서 하셔도 되고, 구체적인 것은 앞으로 여기 고려대장경 연구소장으로 이 불사를 하고 있는 스님께서 구체적으로 여러분에게 설명을 해드릴 것입니다. 게송 하나를 읊고 내려가고자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事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그러면 소장님 잠깐 나와 주십시오.(26분44초~41분1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오늘날 부처님으로부터 달마 스님까지 28대, 육조 스님까지 33대' ; 삽삼조사(卅三祖師).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전 교단(敎團)의 어른을 한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그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법(法)을 전하고, 그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를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대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가 되고, 그로부터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로 내려왔는데, 위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6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불립문자(不立文字) ; 진리는 문자로 표현 할 수 없는, 개념으로 규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 선종에서 법(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것이므로, 따로 언어•문자를 세워 말하지 않는데 참 뜻이 있다고 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 국제 연합 교육 과학 문화 기구) ; 국제 연합(UN) 전문 기관의 하나. 교육, 과학, 문화의 보급과 국제 교류 증진을 통한 국제간의 이해와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 1946년에 창설되었으며, 본부는 파리에 있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UNESCO 世界文化遺產) ;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 유산 및 문화 유산들을 발굴 및 보호, 보존하기 위하여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의 규정에 따라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유산.

*머트럽다 ; 말이나 행동이 일정하게 바르게 하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늦깨끼(늦깎이) ; ①나이가 많이 들어서 스님이 된 사람. ②나이가 꽤 들어서 어떤 것을 시작하거나 성공한 사람.

*결집(結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aṃgīti  상기티는 결경(結經) · 집법(集法) 또는 합송(合誦) · 합창(合唱)으로 해석하며, 회의(會議)를 의미한다고도 한다.

많은 자격 있는 사람들이 모여 불전(佛典)을 올바로 평가하고 편찬하는 일을 의미한다. 인도에서는 붓다의 입멸 후부터 2세기경까지 4차례의 결집이 있었고, 그 후 현대에 오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여러 차례의 대장경(大藏經) 결집이 있었다.

*가섭 존자, 아난 존자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 · 응진(應眞) · 무학(無學) · 이악(離惡) · 살적(殺賊) · 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아육왕(阿育王) ; 산스크리트어 aśoka 팔리어 asoka의 음사. 무우(無憂)라고 번역.

찬드라굽타(candragupta)가 마가다국(magadha國) 난다(nanda) 왕조를 무너뜨리고 세운 마우리야(maurya) 왕조의 제3대 왕으로 인도 남단부를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함. 재위 기원전 270년경-230년경.

즉위 8년에 인도 북부 동해안의 뱅골만에 위치한 - 오늘날 오릿사주의 대부분 - 깔링가국과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살육, 사망, 이주의 대 참상을 매우 괴로워하고 비통하게 여겨, ‘무력의 정복’을 버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비폭력과 정의에 기초한 ‘다르마(法)의 정복’으로 전환하였다.

 

아육왕의 주선으로 도읍지인 화씨성(華氏城)의 아육승가람(阿育僧伽藍)에서 천여 명의 비구들이 제3차 결집(結集)을 행하여, 경(經)·율(律)·논(論)의 삼장(三藏)을 정리하였다. 불교에 귀의하여 수많은 탑과 사원을 세우고, 수많은 사절들을 인도 전역에 파견하여 불교를 전파하였고, 특히 자신의 아들 마힌다(mahinda)와 딸 상가밋타(saṅghamittā)를 스리랑카에 파견하여 그곳에 불교를 전하였다.

왕은 자신의 뜻과 행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암벽(바위)에 또는 석주(石柱 돌기둥)에 칙령(勅令)을 새겨 세웠다. 왕이 죽은 후, 마우리야 왕조는 서서히 분열되어 기원전 180년경에 멸망하였다.

*삼장(三藏) ;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의 세 가지 불서(佛書)를 통틀어 이르는 말.

*범어(梵語) ; 인도 · 유럽 어족 가운데 인도 · 이란 어파에 속한 인도 · 아리아어 계통으로 고대 인도의 표준 문장어. 고대 인도 문학이나 불경(佛經)은 이 언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고급 문장어이다. 산스크리트(Sanskrit) · 산스크리트어(Sanskrit語) · 천축어(天竺語).

*귀지다 ; '귀나다(모가 반듯하지 아니하고 한쪽으로 비뚤어지거나 기울어지다)'의 옛말.

*신수대장경(新脩大藏經) ; 일본에서 간행한 대장경. 원제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 다카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郞)의 주관으로 대정(大正) 11년(1922)에 기획하여 소화(昭和) 7년(1932) 2월에 완성됨.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고 여러 간행본과 사본등을 대조하여 많은 차이점을 각 페이지 하단에 자세히 주기(註記)하고, 여기에 팔리어와 산스크리트를 일부 병기(倂記)함.

총 100권 중 인도와 중국의 찬술부가 55권, 일본 찬술부가 29권, 돈황 사본이 1권, 도상부(圖像部) 12권, 목록 3권으로 이루어짐. 이중 도상부와 목록을 제외한 85권이 불전(佛典)으로 총 3,053부, 1만 1,970권에 이른다.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아이엠에프(IMF) ; ‘IMF 경제 위기’ ‘IMF 외환 위기’ ‘IMF 관리체제’ ‘IMF 시대’ 한국에서 기업부도와 금융위기가 확산되어 1997년 12월 정부가 IMF(국제 통화 기금 ; International Monetary Fund)로부터 구제금융을 신청함으로써 한국경제가 IMF 관리체제로 들어가게 된 사건.

한국은 외환 관리정책의 미숙과 실패, 금융기관의 부실과 방만한 기업경영으로 인한 대기업의 연쇄 부도, 대외 신뢰도 하락, 단기 외국 채무의 급증 등으로 외환위기를 겪게 되어 한국 정부는 모라토리움(채무지불유예) 선언을 할 사태에 이르자, 1997년 12월에 IMF에 구제금융을 실천하여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지원받아 외환위기의 고비를 넘겼으나, IMF의 구제금융 조건은 엄격한 재정 긴축과 가혹한 구조 개혁, 시장 개방 등을 요구하기 때문에 구제를 받는 나라는 금리가 상승되고 실업률이 상승되는 등의 상황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은 각종 경제 개혁과 전국민적 노력 덕분에 2001년 8월에 IMF 관리체제가 종료되었다.

*불보살(佛菩薩) ; 부처님과 보살을 아울러 일컫는 말. 불(佛)은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라 번역한다. 보살은 성불(成佛)하기 위하여 수행에 힘쓰는 이의 총칭이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원력(願力) : 원(願)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동참(同參) ; ①어떠한 일에 함께 참여함. ②스님와 신도가 한 법회에 같이 참석하여 불도(佛道)를 닦는 일. ③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문수학하는 '도반(道伴)'과 같은 말. 동학(同學)이라고도 한다.

 

 

 

------------------(2)

 

*수달장자 부부의 공양(供養) 공덕 '죄멸복생(罪滅福生)' 이야기 ; 잡비유경(雜譬喩經) (하권) '28(二八)'

*수달(須達)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Sudatta의 음사. 온전한 이름은 수달다(須達多). 소달다(蘇達多)라고도 음사. 선시(善施), 선수(善授), 선여(善與), 선급(善給), 선온(善溫) 등이라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과 같은 때 중인도 사위성(舍衛城)에 살던 부호(富豪)이자 파사익왕(波斯匿王)의 대신(大臣). 성품이 인자하여 평소에 고아나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보시하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급고독(給孤獨)이라고도 불렸음.

왕사성(王舍城)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을 들은 뒤 귀의하였다. 당시 사위성에 정사가 없었으므로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동산을 사고 태자에게 숲을 보시 받아 기원정사(祇園精舍 : 祇樹給孤獨園)를 지어 부처님께 바침. 부처님은 20여 년간 이 정사에 머물면서 많은 설법을 하셨다.

*기원정사(祇園精舍) ; 기다원림수달다정사(祇陀園林須達多精舍)의 약어(略語).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살아 계실 때 가장 큰 불교사원으로서, 중인도 코살라국(國)의 수도 사위성(舍衛城:슈라바스티) 남쪽 1.6 km 지점에 있던 기타태자(祇陀太子) 소유의 동산에 지은 절.

부호(富豪)이자 파사익왕(波斯匿王)의 대신(大臣)인 수달(須達)은 왕사성(王舍城) 죽림정사(竹林精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 설법을 들은 뒤 귀의하였고, 당시 사위성에 정사가 없었으므로 기타(祇陀) 태자에게 황금을 주고 동산을 사고 태자에게 숲을 보시 받아 기원정사(祇園精舍 : 祇樹給孤獨園)를 지어 부처님께 바침.

이는 ‘기타태자의 동산에 수달(須達:給孤獨長者)이 지은 승원’이라는 뜻인데,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란 ‘고독한 이들에게 보시를 많이 한 부자’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단향(栴檀香) ; 전단향 나무. 인도에서 나는 향나무의 하나. 목재는 불상을 만드는 재료로 쓰고 뿌리는 가루로 만들어 단향(檀香)으로 쓴다.

*정사(精舍) ; vihara. 수행승들이 머물면서 불도(佛道)를 닦는 집. 사원. 절.

*사리불 존자, 목련 존자 ;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에서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걸식(乞食 빌·구할·청할 걸/밥·음식 식)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것.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회(蛔)가 동(動)하다 ; 뱃속에 있는 회충(蛔蟲)이 먼저 알고 요동(搖動)을 칠 정도로 입맛이 당긴다는 뜻이다. 뜻이 변하여, 어떤 음식이나 일을 앞에 두었을 때 입맛이 당기거나 즐거운 호기심이 일어나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말밥 ; 한 말가량의 쌀로 지은 밥. '말[斗]'은 부피의 단위로 곡식 · 액체 · 가루 따위의 부피를 잴 때 쓴다. 한 말은 한 되[升]의 열 배로 약 18리터에 해당한다.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께 간절히 원하고 빎.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아사세(阿闍世) ; (산스크리트) Ajātaśatru (팔리어) Ajātasattu 부처님 제세 시 중인도 마가다국(摩揭陀國)의 왕. 빈바사라(頻婆娑羅)왕과 위제희(韋提希)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성장하여 태자가 된 후, 제바달다의 꼬임에 넘어가 부왕(父王)을 감옥에 가둬 죽이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부왕을 시해한 죄로 인해 온몸에 부스럼이 생겼는데, 기파(耆婆) 어의(御醫)의 권유로 부처님 앞에서 참회한 뒤 치유되어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왕사성에 사리탑을 세우고 공양하였으며, 마하가섭을 비롯한 부처님 제자들이 칠엽굴에서 1차 결집을 행할 때, 대단월(大檀越)이 되어 음식 · 재물 · 당우(堂宇) 등을 지원하여 불교 교단을 외호하였다.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번역하여 천열(天熱), 천수(天授), 천여(天與).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imbisāra의 음사. 부처님 재세시 마가다국(magadha國)의 왕(재위 기원전 五八〇년경~기원전 五五〇년경). 빈비사라(頻毘娑羅), 빔비사라 등으로 음사하고 병사왕(缾沙王·萍沙王), 영승왕(影勝王), 안모단정왕(顔貌端正王) 등으로 한역한다. 왕비 위제희(韋提希)와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왕사성(王舍城) 부근에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지어 부처님께 바치고 그 제자들인 승가에 공양하고 불교를 호지(護持)하며 교단을 지원한 최초의 외호자(外護者)이다. 만년에는 궁전에 탑을 세우고 부처님의 머리카락과 손톱 등을 봉안하고 예배하였다. 후에 태자 아사세(阿闍世)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다가 아나함과를 증득한 후 죽었다.

*만신창이(滿身瘡痍 찰 만/몸 신/부스럼 창/상처 이) ; 온몸이 제대로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기파(耆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jīvaka의 음사. 고대 인도의 사위성에서 살던 의사.

덕차시라국의 반가라에서 7년간 배운 뒤 본국인 바가타성에 귀국, 여러 사람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고 남쪽 나라의 폭군의 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불교에 귀의하여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들의 병을 치료하였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대역죄(大逆罪 큰 대/거스를 역/죄 죄) ; 예전에, 국가와 사회에서 지켜야 할 도리를 크게[大] 거스르는[逆] 일을 저지른 죄(罪). 왕권을 범하거나 임금이나 부모를 죽이는 큰 죄를 이르던 말. 불교에서는 오역죄(五逆罪)에 해당한다.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함.

*삼보(三寶) ; 부처님(佛寶)과 부처님의 가르침(法寶)과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집단(僧寶) 의 3가지를 보배에 비유한 말. 이것은 불교를 구성하는 3가지의 중요한 요소임. 삼보(三寶)에 귀의하는 것은 불교도로서의 기본적인 조건임.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생함지옥(生陷地獄) ; 살아서[生] 지옥(地獄)에 떨어짐[陷].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시주(施主 베풀 시/주인 주) : ①스님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또는 그런 사람. ②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 단월(檀越 dana-pati)이라고도 함.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게송) ‘금생약불종사어(今生若不從斯語)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Posted by 닥공닥정
ㄱ/공덕 공력2016. 3. 18. 14:11

공력(功力) (No.508)—공(功) 안 들이고 되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 이 세상에 정말 목숨 바쳐서 할 것은 이것 밖에 없어.

 

*공력(功力) ; ①애써서 들이는 정성과 . 노력. ②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고 마음을 닦아 얻은 . 공덕력(功德力). 공덕의 .

 

(4분 31초)

 

[법문] 송담스님(No.508)−93 6 첫째 일요법회(93.06.06)(용508)

 

이뭣고?’하는 것이 무엇이 힘이 드냐 그말이여. 밥을 먹으면서이뭣고?’ ‘이뭣고?’ 돈이 것이 아니거든. 힘이 것도 아니고.

자꾸 챙기며 하다 보면 되는 때가 오고, 자꾸 하다 보면! 주머니, 검은 주머니 짊어지고 다니면서 내려놓았다, 검은 내려놓았다 갖고도 대도(大道) 성취하는데.

 

여러분도 망상이 일어나면 검은 여러분은 개를 짊어지고 다닐려면 힘이 드니까, 돌이건 검은 돌이건 주머니만 갖고 다니면 . 돌이 무거우면 콩을 가지고 다녀도 되어요.

이뭣고?’ 하다가이뭣고?’ 잊어버리고 생각났다 하면 왼쪽에 넣어 놨던 콩을 오른쪽으로 넣는 거여.

그러다 이뭣고?’ 잘되면 가만히 있다가, 생각느닷없이 생각이 일어나거든. 지나간 생각, 생각, 시집간 생각, 군대에 아들 생각, 생각이 하루에도 끊임없이 일어나는데 생각 일어났다 하면 이쪽 호주머니에다 살며시 넣어.

 

그러나 선방(禪房) 방부(房付) 드리고 입선(入禪) 시간에 자꾸 요리 넣다 저리 넣다 그러면 되니까, 방선(放禪) 시간이나 집에 가서 했을 때는 하셔도 괜찮아요. 시험 삼아서 대관절 콩이 개나 넘어간가? 시험해 보는 것도 대단히 심심치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옮기면서 자꾸 챙기고, 그래서 저녁에 때에는 개나 된가 세어 보거든. 그래서 달력에다가 천팔백 , 이튿날 가지고 오늘은 천오백 , 이튿날은 천이백 , 차츰차츰 줄어지다가 상태가 좋을 때는 이천 . 이것이 절대로 보면 알지마는 일양으로 계속 내려가지는 않아.

 

올라갔다 내려갔다 년쯤 가면은 줄어질런가? 줄어져도 계속 줄어지는 아니라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증권 올라가듯이 계속 올라가면 돈도 벌고, 계속 내려가도 벌지마는그게 마음대로 되거든. 결국은 뜻대로 되는 거야.

되지만 그렇게 공력(功力) 들여서 해야 . () 들이고 되는 것은 세상에 없어. 이뭣고?’ 하나도 든다니까 쉬울 같지마는 공력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고 날마다 부처님께 참회(懺悔)하고, 날마다 원력(願力) 세우고 그러면서 해야 하거든.

 

고인(古人)네는 일생을 묵언을 하기도 하고, 일생을 오후불식(午後不食) 하기도 하고, 일종(一種) 하기도 하고, 일생을 누데기 벌을 입고 그렇게 하기도 하고, 일생을 벼개를나무를 동글동글하니 나무로 깎아 가지고 벼개를 비었다 그말이여. 삐끗하면 ! 떨어지면 깜짝 놀라서 일어나서 참선을 할려고 그러기도 하고.

졸음이 오면 송곳으로 무릎을 찌르면서 하기도 하고그까짓 조금씩 집어뜯어 봤자 소용도 없어 멍만 들지, 송곳으로 찔러야지.

 

그렇게 () 들여서 분들은 그래도 정진력(精進力) 얻는 거고. 하다 말다 그럭저럭 된다고 짜증이나 내고, 그럭저럭 갖고는 밤낮 봤자 떠먹은 자리거든.

그러나 것은 이것 밖에는 없어! 세상에 정말 목숨 바쳐서 것은 이것 밖에 없어.(3741~421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 주머니, 검은 주머니 ;‘흰 돌, 검은 돌’ 법문을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 ②선원(禪院).

*방부(房付) 드리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참회(懺悔 뉘우칠 /뉘우칠 )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156~157 참고.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부끄러워할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改過自新),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罪隨心滅).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心本空寂),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罪業無寄).

*원력(願力) : ()하는 바를 이루려는 의지. 본원력(本願力)•숙원력(宿願力)•대원업력(大願業力)•서원(誓願)•행원(行願)이라고도 한다.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 사투리

*벼개 ; 베개(잠을 자거나 누울 때에 머리 밑에 괴는 물건) 사투리.

*집어뜯다 : ‘꼬집다 사투리.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