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자기는 큰 죄(세등58)—생사호흡지간 | 우리는 사형언도 받은 몸 | 의단독로 확철대오 | 자포자기는 가장 큰 죄,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고 정진해야.

 

*자포자기(自暴自棄)는 큰 죄 ; '내가 나를 깨닫는 이 참선은 성현(聖賢)이나, 상근대지(上根大智)나 하는 것이다. 나는 틀렸다,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의 보리종자(菩提種子)를 끊어버리는 것이라, 이 죄(罪)야말로 살불살조(殺佛殺祖)하고 부모를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큰 죄입니다.

유 · 무식(有·無識)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습니다. 당장 이 자리에서부터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긍지를 가지고 정진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자포자기(自暴自棄) ; 절망 상태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내버리고 돌보지 않음.

 

 

(14분 26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8)—을축년 동안거 해제 법어(86.01.17) (세등58)

부처님 제자임에는 사부대중(四部大衆)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라도 불법에 귀의해서 여법(如法)하게 도를 닦으면 누구라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고, 깨달으면은 바로 불법은 그 사람을 통해서 전통(傳統)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우리 모두는 낱낱이 다 불법을 자기를 통해서 전통해 나갈 그러한 사명을 띠고 났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 전통의 사명(使命)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등한히 지낼 수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의 시비를 볼 겨를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일분일초라도 잡담하고 그럭저럭 지낼 수가 어떻게 있겠습니까?
그저 보리밥이 되었건, 쌀밥이 되었건, 잡곡밥이 되었건, 죽이 되았건 우리가 굶어 죽지 않게 한 숟갈을 먹으면 그저 화두를 들고, 벼락이 떨어지거나, 천둥이 치거나, 밤이 되거나, 해가 뜨거나 지거나, 옆에서 뭐 떠들거나 말거나, 그까짓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사실만 명심한다면 눈을 감으나 뜨나, 밥을 먹으나, 똥을 누나, 입선(入禪)을 하거나 방선(放禪)을 하거나, 산철이거나 결제거나 전혀 그런 것이 상관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원래 결제(結制)라 하는 것은 인도 지방에 비가 많이 오는 계절에 숲속에서 정진할 수가 없고 행각(行脚)도 할 수가 없으니까, 그 비를 피하기 위해서 결제를 하게 되었든 것입니다.
결제 중이라고 해서 공부를 더하고, 산철이라고 해서 비가 안 오는 때라고 해서 공부를 덜하고 그런 것이 아녀요.

겨울에는 워낙 추워서 행각을 못하고, 여름에는 또 너무 더워서 행각을 못하니까, 우리나라는 여름 석 달, 겨울 석 달을 안거 기간을 해서 결제를 하고, 요새는 또 산철 결제라 해서 또 중간에 2달씩을 이렇게 하고 대단히 좋은 현상입니다마는,
그런 것도 우리가 공부하는데 도움은 되겠으나, 실지로 발심(發心)을 해서 공부하는 분상(分上)에는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읍니까.

대중 따라서 결제하게 되면 하고, 대중 따라서 해제 하기는 하겠지만, 각자 개인의 마음에는 언제나 결제고, 언제나 입선(入禪)이여.
누구를 위해서 정진을 한 것도 아니고, 누구 보라고 한 것도 아니여. ‘아! 저이는 참 정진 잘한다’ 그따위 소리 들을라고 우리가 정진하겠습니까?

전혀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이 눈에 보일 수가 없고, 여러 대중 속에 살면서도 여러 사람이 보이지를 않어. 언제나 자기와 죽음과의 맞대결이여.
사형언도(死刑言渡) 받은, 금방 곧 몇 분 후에 사형을 집행받을 죄수와 같은 그런 마음인데, 무슨 놈의 결제 · 해제가 거기 문제가 되며, 뭐 수용이 좋고 나쁜 것이 상관이 있으며, 다른 사람 정진을 잘하고 못 한 것이 상관이 있으며, 무슨 분위기가 조용하고 시끄러운 것이 무슨 상관이 있어. 곧 앞으로 몇 분 후에 사형 받을 사람이.

해제(解制)를 맞이해서 앞으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해 나간다면 우리에게는 불일성지(不日成之)입니다.
반드시 확철대오(廓徹大悟)는 그 사람에게 멀지 않는 시일에 그 사람은 약속이 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한 생각,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속에도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이 그것이 태어난 것이고 생(生)이고, 한 생각 꺼지는 것이 그것이 죽음이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그것이 생사(生死)인데,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수없는 생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속에도 미세하게 따지자면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니 한 생각 속에 구백생멸이면은 하루 동안에는 천문학적 숫자의 생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 전기가 딱! 켜면은 계속해서 환히 밝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계속 꺼졌다 켜졌다, 꺼졌다 켜졌다 한 것이 워낙 빨리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에 계속 켜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와 마찬가진 것입니다.

그 삼세육추(三細六麤)의 그 기멸심(起滅心), 그 생사심이 일어나고 있는 바로 거기에서 화두(話頭)를 잡드리해 가는 것이 우리의 정진입니다.
잊어버렸다하면 또 챙기고, 잊어버렸다하면 또 챙기고,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사형언도를 받은 곧 몇 분 후에면 죽을 그 죄수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그 한 생각 골똘하므로 인해서 몇 분 후에 사형받을 것도 하나도 두려울 생각이 없어. 목을 쳐죽이거나, 목매를 달아서 죽이거나, 총을 쏴서 죽이거나 전혀 그런 것에 두려운 생각도 없고, 아무 관심이 없어.

다못 ‘어째서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라 했는고?’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그렇게 되어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말이여.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면은 거기에는 망상(妄想)도 끼어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망상도 끼어들지를 못할 때에 그것을 '적(寂)'이라 그러는데. '적적(寂寂)하다, 적멸(寂滅)이라' '적적(寂寂)하다'고 그 ‘고요 적(寂)’자를 쓰는데.

그 적적하면 너무나 적적하고 고요하고 깨끗해서 그 경계(境界)를 말로써 표현할 수가 없어. 그 경계를 맛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 적적하고 깨끗하고 그 경지에서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하다 보니까, 그 맑고 깨끗하고 고요한 경계에서 자칫하면 화두를 망각하기가 쉬우니라.

그러한 경계에서 화두를 들면 오히려 화두를 듦으로 해서 그 고요하고 성성(惺惺)한 경계가 깨질까 두려워서, 화두도 들고 싶은 생각이 없는 수가 있어. 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 거여.

적적하고 성성하고 맑고 고요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있어야 돼.

그때는 ‘어떻게 화두를 드냐?’하면—‘이뭐꼬!’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막 어거지로 힘을 써 가지고 막 그렇게 드는 것이 아니어.
「알 수 없는 의단(疑團)」이 있으면 그 의단만을 떠억 관(觀)할 뿐이지, 자꾸 뭐 ‘이뭣고! 이뭣고!’해 가지고는 그렇게 우악스럽게 그 화두를 드는 것이 아니어.

성성(惺惺)한 가운데 적적(寂寂)하고, 그 적적하고 성성한 가운데 의단이 성성하게, 그 고요한 호수에 달이, 저기 달이 비추듯이 그렇게 화두가 성성하고 적적하게 의단이 현전(現前)해야 하거든.

그렇게 되면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밥을 먹어도 고대로 있고, 똥을 눠도 그 화두가 고대로 있고, 어딜 걸어가도 고대로 있고, 울력을 해도 고대로 있고.
뭣헌 이는 옆에서 떠들면 화두가 없어져 버린다는데 그 아직 덜된 거여, 그것은.

옆에서 떠들어도 상관이 없고, 잡담을 해도 소용없고, 자기는 자기거든. 그렇게 되도록—그건 애를 쓰는 데에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그럭저럭 지내는 데에는 생전 해봤자 그렇게는 안되는 것이여.
정말 전체적으로 결제(結制)를 하지마는, 전체적으로 결제하는 속에서 다시 또 자가철주(自家鐵柱)를 세워서 자기의 결제가 새로 있어야 되거든. 그렇게 잡드리해 나가는데...(녹음 끊김)

그런 생각도 못쓰는 거여.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고, 누가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래지도 말고, 다못 그 성성적적한 가운데에 의단만이 독로(獨露)하도록,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만 그렇게 단속을 해 나가면,
일주일을 넘지 못해서 귀로 들리는 어떠한 소리나, 눈에 들어오는 어떠한 경계나, 스스로 무슨 발을 잘못 디디거나, 또는 자다가 벼개에서 뚝 떨어지거나, 어떠한 그러한 특수한 그런 사건을 만나면 통 밑구녁이 빠지듯이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계가 나타나면 반드시 그때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서 점검을 맡어 가지고, 그것이 잘못 되았다 하면 다시 새로 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른 경계면 공안에 맥힘이 없어야 하고.
천칠백 공안에 선지식과 탁마(琢磨)를 해서 그래서 맥힘이 없으면 다시, 진짜 그때부터서 정진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산중에 들어가서 정말 오후(悟後)에 보림(保任)을 철저하게, 몇백 배 철저하게 정진을 해서 다생 습기(多生習氣)를 다 소멸을 하고 그때에 가서 경(經)도 사교(四敎) · 대교(大敎)를 다 보고 심지어 유도백가제서(儒道百家諸書)까지 다 간과(看過)를 한 다음에, 그때 비로소 중생 교화를 하러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수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누구라도 정말 ‘죽을 사(死)’자를 써 가지고 바른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여법(如法)히 수행한다면, 누구라도 이렇게 될 수 있는 자격과 가능성을 우리가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성현(聖賢)이나 하지. 특수한 상근대지(上根大智)나 하지, 원’ 다른 사람한테 미루고 자기는 이미 될 수 없는 그러한 존재다. '나는 영 도(道)는 금생에 못 닦을 사람이다'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한 것만큼 큰 죄는 없는 것입니다.

사바라이(四波羅夷) 죄를 범하면 불통참회(不通懺悔)라고 그러는데, ‘나는 틀렸어’ ‘나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불통참회커녕은 이건 스스로 자기의 보리종자(菩提種子)를 끊어버리는 것이라, 이 죄(罪)야말로 살불살조(殺佛殺祖)하고 부모를 죽이는 죄보다도 더 큰 죄라고 하는 것을 여러분은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유 · 무식(有·無識)도 상관이 없고, 남녀노소도 상관이 없습니다. 당장 이 자리에서부터서 자기도 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긍지를 가지고 정진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36분28초~50분5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에 있는 네 가지 제자. 곧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등 출가 제자와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등 재가 제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사중(四衆)과 같은 말. 줄여서 사부(四部)라고도 한다.
[참고] 우바새 : upasa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남성 재가신도.(같은 말=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자와 승단을 가까이에서 돌보고 보호하며 한편 가까이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다. 선숙(善宿)은 선(善)을 품어 그것에 머물기[宿] 때문에 선숙이라고 한다.
우바이 : upasika의 음역. 삼귀의(三歸依)와 오계(五戒)를 받아 지니는 여성 재가신도. (같은 말=靑信女,信女,近事女,近善女,善宿女)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〇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행각(行脚) ; 스님이 일정한 거처를 가지지 않고, 스승의 밑을 떠나 참선의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지식이나 좋은 벗을 구해 마치 떠도는 구름이나 흐르는 물처럼 여러곳을 편력하는 것. 운수(雲水)와 같은 의미.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불일성지(不日成之) ; 어떤 일을 며칠 안 걸려서 이룸.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속에도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이 그것이 태어난 것이고 생(生)이고, 한 생각 꺼지는 것이 그것이 죽음이다' 그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것이 그것이 생사(生死)인데,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수없는 생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
[참고]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103-104.
念起念滅(염기염멸)을 謂之生死(위지생사)니 當生死之際(당생사지제)하야 須盡力提起話頭(수진력제기화두)호리니 話頭(화두)가 純一(순일)하면 起滅(기멸)이 卽盡(즉진)하리라
起滅卽盡處(기멸즉진처)를 謂之寂(위지적)이라하니 寂中(적중)에 無話頭(무화두)하면 謂之無記(위지무기)요 寂中(적중)에 不昧話頭(불매화두)하면 謂之靈(위지령)이라하나니 卽此空寂(즉차공적)과 靈知(영지)가 無壞無雜(무괴무잡)하야 如是用功(여시용공)하면 不日成之(불일성지)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삼세육추(三細六麤 석 삼/가늘 세/석 삼/거칠 추) ;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근본무명(根本無明)의 3상(相)과 지말무명(枝末無明)의 6상(相)을 말함. 3세(細)란 그 상(相)의 작용이 미세하므로 세(細)라 하고, 6추(麤)는 거칠고 엉성하기 때문에 추(麤)라 함.

청정한 진여의 마음이 근본무명에 의하여 망동하여 유전하는, 진실에서 어긋난 마음으로의 3가지 미세한 마음 상태[三細]와 이어지는 거칠은 6단계의 마음 상태[六麤]를 설명하는 '대승기신론'에서 밝힌 교설.
*기멸(起滅) ; 생(生)하고 멸(滅)하는 것. 생겨남과 없어짐. 즉 인연이 화합하면 생하고, 인연이 이산(離散)하면 멸한다는 뜻.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관(觀)한다 ;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한다.

2분.


[참고]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疑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그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그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그 의심을 떠억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그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안 올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관(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될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때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다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들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때 ‘이뭣고?’를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알 수 없는 의심이 단전에 딱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39분12초~41분12초)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눈앞에 환히 드러나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자가철주(自家鐵柱) ; 자기 스스로 정한 규칙을 쇠기둥[鐵柱]을 세워 놓은 것과 같이, 움직임없이 지켜나감을 이르는 말.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①‘쳐서 한 조각(덩어리)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오후보림(悟後保任) ;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습기(習氣)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사교(四敎) ; 조선 중기 이후, 우리나라 스님들이 불경이나 그에 대한 논설 따위를 강론하고 학습하는 곳인 강원(講院)에서 배우는 중급 과정의 네 과목. 곧 《능엄경(楞嚴經)》, 《기신론(起信論)》,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이른다.
*대교과(大敎科) ; 우리나라 전통강원의 수학 과정 중 하나로 사미과(沙彌科) · 사집과(四集科) · 사교과(四敎科)에 이어 『화엄경(華嚴經)』 · 『전등록(傳燈錄)』 · 『선문염송(禪門拈頌)』 등을 배운다.
*유도백가제서(儒道百家諸書) ; 유교와 도교[儒道], 여러 학자들이나 작가[百家]들의 모든 책[諸書].
*간과(看過 볼 간/지날 과) ; 어떤 문제나 현상 따위를 대수롭지 않게 대강 보아 넘김.
*상근대지(上根大智)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질이 뛰어나고, 지혜가 큰 사람.
*자포자기(自暴自棄) ; 절망 상태에 빠져 스스로 자신을 내버리고 돌보지 않음.
*사바라이(四波羅夷) ; 사중금계(四重禁戒), 사중금(四重禁), 사중(四重).
(1)승단에서 추방되어 비구의 자격이 상실되는 네 가지 가장 무거운 죄.
①사람을 죽임(살생 殺生). ②도둑질함(투도 偸盜). ③음란한 짓을 함(사음 邪淫). ④깨닫지 못하고서 깨달았다고 거짓말함(망어 妄語).
(2)밀교에서 가장 무거운 죄.
①바른 가르침을 버림. ②보리심(菩提心)을 버림. ③가르침을 베푸는 데 인색함. ④중생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행위를 함.
*보리(菩提) ;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佛陀正覺)의 지혜. 올바른 깨달음으로 모든 것의 참된 모습을 깨닫는, 부처의 지혜를 뜻한다. 산스크리트 어 ‘Bodhi’의 한자 음역어이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거량(擧揚) ; ①설법할 때에,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르는 일. 법요식의 순서로서 설법하기 전에, 법회를 하는 법당에 계신 영가는 말할 것도 없고, 우주법계에 멀고 가까운 데에 있는 모든 영혼도 이 법회를 하는 법당에 왕림을 해서 같이 법문을 들으실 수 있도록 청혼(請魂)을 하는 것.
②화두, 공안(公案)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고 불교의 진수(眞髓)를 말하는 것. 불법을 선양하여 사람을 인도하는 것.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업연(業緣) ; 업(業)의 과보(果報)를 초래하는 인연(因緣). 선업은 낙과(樂果 열반의 경지)의 인연을 부르고 악업은 고과(苦果 마음과 몸을 괴롭게 하는 과보)의 인연을 부른다.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사십구재(49재, 四十九齋) ; 사십구일재(49일재, 四十九日齋) 또는 칠칠재(7 · 7재, 七七齋).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면서 또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천수경, 무상계, 반야심경, 장엄염불, 금강경 등), 한 생각 돌려 무상을 깨달아 윤회를 벗어나 해탈의 길로 들어서도록 하기 위해 죽은 날로부터 7일마다 7회에 걸쳐 행하는 영가를 위해 베푸는 법회의식.
불교의 내세관(來世觀)에서는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이 죽어서 다음 생을 받을 때까지의 49일 동안을 중음(中陰)이라 하는데, 이 기간 동안에 과보를 받을 다음 생이 결정되므로, 이때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영가가 죄업을 참회하고 지혜의 눈을 밝혀 해탈의 길을 가도록 이 재(齋)을 지냄.
특히,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날이 죽은 지 49일째 되는 날이라고 하여 7회째의 재(齋)를 중요시함.

불경(佛經)에서 설한 바에 의하면 사람의 존재 상태를 4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것은 ①생유(生有: 태어나는 순간) ②본유(本有: 生에서 死까지 생애) ③사유(死有: 죽는 그 순간) ④중유(中有: 이생에 죽어서 다음 生까지를 말함)이다.
이들 중 네 번째의 중유(中有)의 상태의 정상적인 기간이 49일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는 일반적인 경우 49일이면 중유(中有)가 끝나고 다음 생(生)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음 생이 결정되기 전인 48일째에 정성을 다하여 영혼의 명복을 비는 것이 49일재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게송) ‘심원화홍우~’ ; 『청허당집(清虛堂集)』 (서산휴정 著 | 朴敬勛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p59 ‘불일암(佛日庵)’ 게송 참고.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삼매(三昧) ; 정(定). [범] samadhi 삼매(三昧)로 음사(音寫).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 ; ‘깃’의 사투리. 깃(새의 몸을 덮고 있는 털. 새의 날개).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서산대사(西山大師) ; (1520~1604) 조선의 스님. 평남 안주 출신.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러 서산(西山)이라고도 함.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함.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동배(同輩) 여러 명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지내다 숭인(崇仁)의 설법을 듣고 남아 여러 경전을 정독하고 다시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3년 동안 지도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18세. 그 3년뒤 21세에 계(戒)를 받음.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 때 나이가 30이었다.


1552년(명종 7)에 새로 부활된 승과(僧科)에 합격하여 대선(大選)이 되고, 3년 후에는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지리산·묘향산에서 수행함.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니, 그는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평남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움.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난 후 79세의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감.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며 많은 제자를 이끌었다.
1604년(선조 37)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함. 세수 85세, 선납(禪臘) 65.

그 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 년 전 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후 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써 (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저서 : 삼가귀감(三家龜鑑) · 선가귀감(禪家龜鑑) · 선교석(禪敎釋) · 청허집(淸虛集) · 운수단(雲水壇).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ㅎ/화현 화신2021. 5. 6. 08:12

보살 화현((No.233))—(게송)惆悵沙河十里春~ | 백억 화신(化身)으로 출현을 하시는 보살 화현을 언제 어데서 어떻게 만날는지 알 수가 없는 것 | 자장율사(慈藏律師)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일화. 삼국유사 | 공부에 자포자기는 없다.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화신(化身) ; 화현(化現)한 몸[身]. 변화된 신체. 화신불(nirmaka-kaya 化身佛). 부처의 삼신(三身 : 法身 · 報身 · 化身)의 하나로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화하는 불신(佛身). 응화신(應化身) · 변화신(變化身) · 응신(應身)이라고도 한다.

*보살(菩薩) ;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bodhi는 깨달음, 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곧 중생을 뜻하므로—보살은 깨달을 중생,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 구도자(求道者)라는 뜻.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린다.
① 깨달음을 구하면서 중생을 교화하는 수행으로 미래에 성불(成佛)할 자. 자신도 깨달음을 구하고 남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행하는 자. ② 보살승(菩薩乘)의 준말. ③ 수행자. ④ 고승(高僧)에 대한 존칭. ⑤ 여자 신도를 일컫는 말.

 

 

(16분 18초)

 


[법문] 송담스님(No.233)—1984년 3월 첫째일요법회 (용233) (화현, 화신)

추창사하십리춘(惆悵沙河十里春)인데  일번화로일번신(一番花老一番新)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소루의구사양리(小樓依舊斜陽裏)헌데  불견당시수수인(不見當時垂手人)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추창사하십리춘(惆悵沙河十里春)에  일번화로일번신(一番花老一番新)이다.
쓸쓸한 바닷가 모래사장에 십리에 봄이 왔는데, 일번화로일번신(一番花老一番新)이여. 꽃이 한 번 늙으면, 늙어서 시들면 또 다시 봄이 오면은 다시 또 꽃이 새로워진다 그말이여.

소루의구사양리(小樓依舊斜陽裏)에, 다락집, 적은 다락은 예나 다름없이 저문 석양, 해 저문 석양 속에 서 있는데,
불견당시수수인(不見當時垂手人)이로구나. 옛날 그 당시에 손을 드리워 주던 그분은 볼 수가 없구나.


세월이 흘르고 흘러서 다시 또 갑자년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봄이 왔건만, 입춘 우수가 지냈건만 또 이렇게 엊그제 봄눈이 나렸습니다.
아무리 눈이 내려도 봄눈이라 순식간에 다 녹아져 버리고, 버드나무 가지에는 물이 오르고 여기저기 산에는 진달래와 개나리의 꽃몽우리가 피기 위해서 잎을, 몽우리 몽우리를 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봄이 갔다가 다시 오고 꽃이 졌다가 다시 피고 하건마는, 옛날에 우리를 위해서 자비를 드리워 주시던, 손을 드리워서 우리를 이끌어 주시던 스승님은 뵈올 수가 없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 56억 7천만 년뒤에 미륵불(彌勒佛)이 염부제(閻浮提)에 하강(下降)하셔서 출세(出世)해 가지고 무량 중생을 제도하시게 되는데, 그 56억 7천만 년 되기 이전에 간간이 화현 보살이 출현(出現)을 하셔서 불법을 펴시고, 또 중생을 제도하시고 그러시면서 불법의 혜명(慧命)을 이어 가게 됩니다.
그 보살 화현으로 나타나신 그러한 성현들은 '내가 보살(菩薩) 화현이다' 하고 써 가지고 나온 것도 아니요, 우리가 그 색상을 보아 가지고는 분간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보살 화현이 수십 가지, 백억 화신(化身)으로 출현을 하셔서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시게 됩니다. 돈독한 신심을 가진 이는 천백억 화신으로 나타난 그 보살 화현을 언제 어데서 어떻게 만날는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반사지(蟠蛇地: 갈반지葛蟠地)라고 하는 곳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만나게 될 때에, 그 전에 문수보살을 친견(親見)할 때, "이 다음에 어디에서 보살님을 만나 뵙게 될까요?" 하고 여쭈어보니까, "반사지(蟠蛇地)에서 만나게 될 거다"
그래서 반사지에다가 토굴을 짓고 거기서 그 문수보살을 친견(親見)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귀빈(貴賓)들이 와서 친견을 하고 가고 또 큰스님네도 와서 친견하고 가고 모다 그러는데, 그 자장 스님은 국사(國師)로서 일국(一國)에 융숭한 존경과 예우(禮遇)를 받고 계셨는데,
하루는 어떤 덥수룩한 거지같이 생긴 영감이 칡넝쿨로 엮은 광주리에다가 죽은 강아지 새끼를 담어 가지고 어깨에다가 메고 와서, "내가 자장을 좀 만나러 왔다" 그러니까,

그 시자(侍者)가, 우리 큰스님을 그동안에 친견하러 온 분들이 수없이 많지만, 다 '자장 큰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다 이렇게 말하지 '나, 자장을 보러 왔다, 자장 집에 있느냐?' 이렇게 큰스님을 '스님' 소리도 넣지도 아니하고 막 마구잽이로 그러니까,
그 시자가 '참 고약한 사람이 왔구나' 그래 가지고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친견을 시켜야 할 것인가, 안 해야 할 것인가?' 망설이니까, "아,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고 되물으니까,

"너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여. 니 스승 자장을 만나러 왔으니까 빨리 자장보고 나 왔다고 해라" 막 그 위엄(威嚴)을 가지고 하니까, 그 위엄에 눌려서 그 시자가 들어가서 큰스님한테 가서, "밖에 이러이러한 사람이 와 가지고 막 큰스님을 함부로 이름을 부르면서 만나고 싶다고 그럽니다"

"그래 어떻게 생겼더냐?"
"약허(若何) 약허(若何)하게 생겼고, 미친 사람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래? 그 미친 놈이 왔는가보다. 그 보내 버려라" 아, 이랬단 말이여.
그러니까 시자가 나가서, "큰스님 지금 바뻐서 못 만나니까 가라"고 그러니까,

"니가 가라고 안 해도 내가 갈 거다. 지 놈이 그렇게 아만(我慢)이 탱천(撑天)해 가지고 보살(菩薩)을 친견을 해?"
그러면서 그 가지고 있는 광주리를 거꾸로 이렇게 쏟으니까 죽은 강아지가 툭 땅에 떨어지자마자 사자(獅子)로 변한단 말이여. 그래서 그 사자를, 청사자(靑獅子)를 타고 저 하늘 높이 휙- 하니 날아가는데, 아 시자가 그 광경을 보고서 급히 쫓아 들어가서 그 광경을 얘기하니까,

그 자장 스님이 깜짝 놀래 가지고 하! 나와서 보니까, 저 하늘갓으로 그 사자를 탄 그분은 날아가 버리고는 그 뒤 끝에 그 비행기 날아간 뒤에 하얀 흰구름이 꼬리가 길게 나부끼듯이 그런 자죽만 남기고서 이상한 향내가 진동을 한 것을 보고,
"하! 이거, 이 반사지(蟠蛇地)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親見)하기로 했는데, 내가 문수보살을 못 알아봤구나" 그렇게 후회를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 자장율사가 문수보살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널리 전해지는 일화(逸話)입니다마는, 꼭 이러한 특이한 양상(樣相)으로 보살이 출현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전혀 냄새가 없이, 완전히 거지면 거지, 미친 사람이면 미친 사람, 또 오늘 이 법회가 시작하자마자 나와서 한바탕 이 법거량(法擧揚)을 시도한 이러한 분도 문수보살(文殊菩薩)일런지, 보현보살(普賢菩薩)일런지 그것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세(末世)라고 해서 스스로 자포자기(自暴自棄)를 한다든지, 또는 여자라고 해서 자포자기를 한다든지,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자포자기를 한다든지, 또는 무식하다고 해서 자포자기를 한다든지—이 도(道)에 있어서는, 법(法)에 있어서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을 초월(超越)한 것인 만큼, 스스로 자기와 도와는 인연이 먼 것처럼 포기하는 것은 제일 큰 잘못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세에 태어났을수록에 백 배 더 노력을 할지언정, 또 여러 가지 여건이 좋지 못하게 태어났을수록에 백 배 더 노력할지언정, 여건(與件)이 안 좋다고 해서 스스로 포기해 버린다면 영영 공부와는 멀어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속(世俗)에서도 어려운 여러 가지 역경(逆境) 속에서 거기서 좌절하지 아니하고 두 번 실패하면 세 번, 세 번 실패하면 네 번, 이렇게 해서 끈질기게 계속 노력하고 극복해 나가면 마침내는 큰 성공을 하는 예가 너무너무 많은 것입니다.
흔히 좋은 여건하에서 모든 사업을 하게 되고 모든 학문을 하게 되고 하면 참 좋은 것 같지만, 좋은 여건하에서 성공한 사람보단 오히려 대단히 불리한 역경 속에서 참 피나는 노력 끝에 성공한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이고, 그러한 사람이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얻고 나아가서는 그 기쁨과 행복을 모든 사람에게 또 회향(廻向)을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선지식(善知識)이 열반(涅槃)하시고 안 계시지만, 우리는 그 우리를 위해서 남겨주신 그 법어(法語)를 통해서 생존시(生存時)나 다름없이 그 법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 법(法)에 의해서 열심히 노력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할 수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1분43초~17분5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대중생활2021. 5. 2. 10:55

대중생활((No.479))—(게송)一波纔動萬波隨~ | 선방(禪房) 대중, 외호(外護) 대중이 다 같이 청정(淸淨)한 한마음이 되어야만, 그 회상이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된다. 영산회상이 되어야 그 속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분이 나올 것. 이것이 바로 불사(佛事).

*대중생활(大衆生活) ; 대중이 함께 수행하는 생활. 많은 수행자가 함께 생활하면서 그 조직과 수행에 필요한 수도 규칙[청규淸規]이 그 시대와 상황에 맞게 만들어졌다.

*대중(大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mahā-samgha, mahā-sabhā. 음역하면 마하승가(摩訶僧伽)이다. 많은 사람의 모임이란 뜻으로 참선 수도하는 스님들의 모임 또는 일반적으로 법문을 청하여 듣는 사부대중(四部大衆 비구 · 비구니 · 우바새 · 우바이)을 일컫는다.

*입중오법(入衆五法) ; 대중 생활을 하면서 명심하고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덕목. ①하의(下意), 하심(下心). ②자비심(慈悲心). ③공경(恭敬). ④지차제(知次第). ⑤불설여사(不說餘事).

[참고] 『미사색부화혜오분율(彌沙塞部和醯五分律)』 제19권 第三分之四 ‘자자법(自恣法)' (동국역경원)
優波離問佛 若比丘入僧中 應以幾法 佛言 應以五法 一下意 二慈心 三恭敬 四知次第坐處 五不論說餘事 復有五法 不應反抄衣 不應左右反抄衣 不應扠腰 不應覆頭 應恭敬僧

우파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비구가 승가에 들어가려면 몇 가지 법으로 해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다섯 가지 법으로 해야 하느니라. 하나는 뜻을 낮추는 것이고, 둘은 자비심을 내는 것이고, 셋은 공경하는 것이고, 넷은 차례대로 앉는 자리를 아는 것이고, 다섯은 다른 일을 논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다섯 가지 법이 있느니라.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좌우로 옷을 걷어붙이지 않아야 하고, 뒷짐을 지지 않아야 하고, 머리를 덮지 않아야 하고, 승가를 공경해야 하느니라"

 

 

(14분 50초)

 


[법문] 송담스님(No.479)—1992년 하안거 해제(92.08.13) (용479)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허고  사의순환기요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나무~아미타불~
금일여군도할단(今日與君都割斷)하고  출신방호장부아(出身方號丈夫兒)니라
나무~아미타불~

일파자동만파수(一波纔動萬波隨)여. 한 물결이 움직이자마자 일만 물결이 따라서 일어나. 고요한 호수에 돌맹이나 낚싯대를 한번 던져 봐라 그 말이여. 그 찰나에 수천수만의 물결이 거기서 끝없이 일어나더라.
우리가 '한 생각' 딱! 돌이키면 될 일을, 한 생각을 돌이키지 못하고 탐진치 삼독으로 뻗어나갈 때에는 온 집안을 흔들어 놓고 온 세상을 꾸정커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의순환기요기(似蟻循環豈了期)리오. 그러한 그 한 생각을 돌이키지를 못하고 끝없이 되풀이를 하니, 마치 개미가 쳇바퀴를 돌듯이 돌고 돌고 또 돌고 해서 한량없이 도는데 언제 끝날 기약이 없더라.

금년에 이 법보선원(法寶禪院)에 선방 · 사무실 · 후원 · 보살선방 해서 이백 명 대중(大衆)이 이렇게 지내는데, 후원에서 행자들과 또 여러 보살님네들이 모다 참 그 더위 속에서 참 많은 애를 쓰셨는데, 그러한 속에서도 서로서로 말을 조심(操心)하고 행동을 조심(操心)하고, 그 가운데에 일을 잘한 사람도 있고 또 서투른 사람도 있고 그래서, 그 아침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석 달 동안을 그렇게 애를 쓰는 가운데에 참 많은 애를 썼지만, 서로서로 충고하고 서로서로 잘 아는 사람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가르켜주고 이렇게 해서 화합(和合)한 가운데 일을 잘 추려 나갔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패당(牌黨)을 지어서, '니가 잘한다, 내가 잘한다' '내 시킨 대로 해라' 자기의 주장을 앞세우고 상대방을 짓누르고, 그렇게 했다면 어떻게 이 석 달 동안에 무장무애하게 이렇게 해제를 맞이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만에 하나라도 자기의 패당(牌黨)을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직접 간접으로 압박을 주고 피해를 주는 그러한 사람이 있었다면, 한 쪽으로는 공덕(功德)을 쌓고 또 한 쪽으로는 공덕을 소멸(消滅)하는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은 공덕(功德)은 좁쌀만큼 짓고 나쁜 업(業)은 산만큼 지어서 그 지은 공덕과 악한 업을 비교하면 비교가 안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이여.

와서 일을 도운답시고 같이 일하는 대중에 직접 간접으로 피해를 주어서 모처럼 신심(信心)으로 와서 일하는 사람을 그렇게 흔들어 놓고 압박을 주고, 다시 와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도록 한다면 그 한 사람의 행동이, 어떻게 해서 그 사람의 행동을 무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백 명 식구를 석 달 동안 이렇게 외호(外護)를 하고 한다고 하는 것은 한 사람 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다 봉사하는 보살도(菩薩道)를 행(行)하는 그런 원력(願力)을 가진 신심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 용화사 후원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게 아니라, 어느 선방 어느 후원이라도, 후원에서 그 겨울에는 손이 꽁꽁 얼고 발이 꽁꽁 얼고, 여름에는 아무리 씻고 옷을 갈아입어도 금방 흠뿍 젖고 몸에는 땀띠가 돋고,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말없이 원주(院主) · 별좌(別座) ·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 그밖에 여러 후원 대중들의 그런 수고가 아니고서는 그 한 철 대중이 정진을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불법(佛法)이 있는 동안 선방(禪房)이 안 없어질 것이고, 선방이 있는 동안에는 어느 선방이나 후원에서 애쓰는 보살화현(菩薩化現)들이 없이는 선방이 잘 운영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원에서 소임(所任)을 보는 원주 스님이나 도감, 별좌나 공양주나 채공, 또 그걸 돕는 여러 자원봉사(自願奉仕)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들도 그런 긍지를 가지고 신심으로써 잘 함으로써 한량없는—그렇게 일을 하면서도 화두(話頭)를 들어야 하거든. 일하면서도 화두를 열심히 들면 남에게 피해를 줄 필요가 없고, 또 누가 자기한테 '잘하네 못하네' 말을 한다고 해도 조끔도 중심(中心)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선방(禪房)에서 정진하는 분들이나, 외호(外護)하는 대중(大衆)이 다 같이 청정(淸淨)한 마음이 되어서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만, 그 회상(會上)이 바로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될 것입니다.
영산회상(靈山會上)이 되어야 그 속에서, 선방에서 정진하는 대중 가운데에도 확철대오(廓徹大悟)하는 분이 나올 것이고, 후원에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나물을 무치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그 속에서 툭! 터지는 대중이 나올 수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불사(佛事)인 것입니다. 불사는 자기 하나만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를 위한 불사여. 일체 중생(衆生)을 위한 불사이기 때문에 불사는 아상(我相)이 없어야 하고, 자존심을 버려야 하고, 아상과 자존심을 버릴 때, 저 사람이 바로 나요, 내가 바로 저 사람이어서 우리가 모두 한 몸뚱이가 되는 것이고 한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큰 불사(佛事)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용화사(龍華寺)가 전강 조실 스님 열반(涅槃)하신 뒤로 17년이 되었습니다마는, 이렇게 여러분이 보신 바와 같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불사—법당이라든지 선방이라든지 또 이 각 기타 모든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이렇게 볼 수 있는 불사가 이렇게 잘 이루어지고,
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또 이렇게 신도님네들이 이렇게 많이 또 이 운집(雲集)을 하게 되는 것, 또 많은 분들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그것을 실천하게 되고 해서, 이 용화사 법보선원을 중심으로 해서 최상승법이 온 나라에 이렇게 자꾸 선양(宣揚)이 되고 외국에까지 이렇게 자꾸 선양이 되는 것은 이것이 온통 우리 법보제자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다 그와 같은 마음으로 정진(精進)을 하신, 그와 같은 신심(信心)으로 모든 불사(佛事)에 동참(同參)하신 그 공덕(功德)으로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라고 산승(山僧)은 믿고 있습니다.

이 살아 있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 법보전(法寶殿, 현 대웅전)에 모셔 있는 4만7천 위(位)의 이 법보영가, 우주법계(宇宙法界)에 수없는 우리의 선망부모들도 이 법회(法會)와 불사(佛事)에 모두가 다 동참을 하실 수 있도록 항상 이 법회 때마다 그러한 영가들을 이 법회에 청(請)하는 거량(擧揚)을 한 것입니다.
이 법당에 들어온, 또 이 법당에 들어오지 못한 밖에 있는 모든 영가들도 이 법문(法門)을 듣고서 이 불사에 동참을 한 그 공덕으로 다 이고득락(離苦得樂)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백종날, 이 해제(解制) 법회는 다른 법회보다도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 또 비명액사한 모든 영가(靈駕)들을 위해서 특별히 마련한 그러한 법회인 것입니다.
여러 사부대중(四部大衆)들께서도 이 법회의 그러한 특별한 의의(意義)가 있는 법회에 대해서 깊이 인식을 하시고 앞으로 이어지는 천도 법요식(薦度法要式)에 경건하게 임해 주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49분56초~64분4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