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업2021. 1. 12. 08:12

업((081))—무량겁을 두고 내려오면서 우리가 지은 행위[業]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그렇게 각기 다 다르게 받아 나는 것 | 어떠한 마음[業]으로 하루하루를, 한 시간 한 시간을, 일 분 일 분을 살아가느냐’ 이것에 따라서 우리의 앞날의 양상이 달리 표현이 되는 것 | 참선은 한 생각을 단속해, 영원히 괴로움이 없는 생사해탈을 하는 방법.


*업(業) ; 업(業)은 행위(行爲)이다. 우리의 행위, 행동에 의해 일어나는 일종의 세력(勢力) 또는 형성력(形成力)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력에 의해 하나의 행위는 반드시 그 때가 이르면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업의 종류 ; (1)중생이 행하는 모든 행위를 3가지로 나누어, ①몸으로 행하는 모든 행위를 신업(身業) ②입(口)을 통해 말로 하는 행위를 구업(口業) ③생각으로 짓는 모든 것을 의업(意業)이라 한다.

이 3가지 업(業)을 신·구·의 삼업(三業)이라 하는데, 삼업(三業)은 결국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2)업에 의하여 과보(果報)를 받는 시기에 따라 ①금생(今生:지금 살고 있는 생)에 업을 지어 금생에 과보를 받는 순현업(順現業) ②금생에 업을 지어 다음 생에 받는 순생업(順生業) ③금생에 업을 지어 삼생(三生) 후에 받는 순후업(順後業)이 있다. 위의 삼시업(三時業)은 갚음을 받는 시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정업(定業)이라 하고, 여기에 대해서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을 부정업(不定業)이라 한다.


(3)업의 성질(性質)에 따라 ①선심(善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선업(善業)과, ②악심(惡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불선업(不善業, 악업(惡業))과, ③선악(善惡) 어떤 것도 아닌 무기심(無記心)에 의해서 일어나는 무기업(無記業)의 셋을 삼성업(三性業)이라고 한다. 그 과보도 선업은 좋은 과보를 받고, 악업은 고(苦)의 과보를 받는다.



(4분 33초)

[법문] 송담스님(No.081)—1978년 4월 관음재일 법어(78.04.24.음) (용081)


그래서 이 참선할려면 첫째 몸을 잘 지혜롭게 관리를 해 나가야 하고, 단전호흡을 통해서 우리의 혈액순환을 촉진을 시키고 몸의 노폐물을 밖으로 깨끗이 배출을 시킴으로 해서 몸이 오장육부가 건강하게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는 생각을 무엇을 생각하느냐? 우리는 하루 종일 지내간 일이 생각이 났다, 또는 현재의 닥치고 있는 일이 생각이 났다, 또는 앞으로 다가올 일이 생각이 났다, 또는 얼토당토 않던 일이 이 생각 저 생각이 떠올랐다, 혼자 웃었다 성을 냈다 이러면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잠이 들면은 꿈속에서까지 별별 꿈을 꾸다가 꿈이 좋으면 좋아하고, 꿈이 조금 불길하면은 그것을 또 그 이튿날 근심 걱정을 하고 점을 치러 다니고 이러는데.


사실 이 세상에 사십 억이라고 하는 많은 인구가 있지마는 그 많은 사람 속에 전부 다 어디가 다르든지 다 다르게 생겼습니다. 다르게 생길 뿐만 아니라 그 성격도 다 다릅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 이렇게 사십 억 인구가, 사십 억 인구만큼 다 다르게 모든 여건을 태어나고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다 눈 · 코 · 귀 · 입 · 손 · 발 · 몸뚱이 다 달려 있는데, 달려 있는 가지 수는 같으면서 그 모습은 다르고 성격이 다르냐? 이것은 무량겁을 두고 내려오면서 우리가 한, 지은 행위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몸을 그렇게 각기 다 다르게 받아 나는 것입니다.

행위는, 왜 다르게 행위를 우리는 가져왔느냐? 우리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다름으로 해서 그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방에, 지금 법당에 여러분이 이렇게 사부대중이 앉아 계십니다마는 전부 귀를 저한테 귀울이고 저의 말씀을 듣고 있지마는 그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는 다 각기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참, 좋은 말을 한다’ 이렇게 들은 사람, ‘아하, 나도 다 알고 있는 걸 저렇게 말을 하느라고 애를 쓰고 있구나’ 이렇게 말하는 분, ‘법문하러 올 때마다 저런 얘길 하는데 다른 재미있는 얘길 해 줬으면’ 이런 생각을 하면서 들으신 분, ‘배가 고픈데 말을 그만했으면’ 이런 분, 별별 각기 다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듣고 계십니다.

그 다르게 받아들인 만큼 저의 말씀은 여러분 가슴 속에서 달리 섭취가 될 것입니다. 달리 섭취된 만큼 그것은 여러분에게 각기 다른 모양으로 여러분에게 소화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느냐, 한 시간 한 시간을 살아가느냐, 일 분 일 분을 살아가느냐’ 이것에 따라서 우리의 앞날의 양상이 달리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잠시도 쉴 사이 없이 일어나는 그 생각을 어떻게 단속해 나가야만 당장 이 세상에, 이승에서 가장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으며, 이 몸을 버리고 저 내생 저 내생 무량겁을 두고 영원히 괴로움이 없는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수가 있는냐, 이것이 결정되어지는 것입니다. 참선(參禪)은 바로 그러한 문제를 해결짓는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41분33초~46분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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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인인본태평2021. 1. 11. 08:33

인인본태평((No.405))—(게송)巍巍落落赤裸裸~ |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사람 사람이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 ‘이뭣고?’ 일념 단속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를 증득(證得)하는 것이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 ;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깨달을 바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빠져야 할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부처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 받을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여.

얼굴이야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우리는 본래 조금도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송담 스님 법문 No.405, No.675 참고)


*본태평(本太平 근본·본래 본/클 태/평평하다·편안하다 평) ; 본래 태평(마음에 아무 근심 걱정이 없음)함.


*『청허당집(淸虛堂集)』 2권. (서산휴정) ‘찬불(讚佛)’ *謌(가) 노래. 歌와 동자.

觀他也不妄 覺自亦無生 出世謌何事 人人本太平


부처님께서는 다른 사람(중생)을 '망령(妄靈)되지 않다(不)'고 보시고, 부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는 '남(生)이 없다(無)'고 보셨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노래를 부르시느냐?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하다.



(8분 47초)

[법문] 송담스님(No.405)—1989년(기사년) 성도재 법회(90.01.04) (용405)


외외낙락적나라(巍巍落落赤裸裸)한데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오

나무~아미타불~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나무~아미타불~


외외낙락적나라(巍巍落落赤裸裸)한, 높고 높고, 높고 높아서 깨끗하고 깨끗해.

독보건곤수반아(獨步乾坤誰伴我), 건곤(乾坤)에, 천지에 홀로 가니 누가 나와 더불어 짝을 할 것인가.


약야산중봉자기(若也山中逢子期)인데, 만약 산중에서 자기(子期)를 만났던들,

기장황엽하산하(豈將黃葉下山下)오, 어찌 노란 이파리를 가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겠는가.


부처님께서는 어떠한 마음을 가지시고 일생을 살으셨을까?

부처님께서 항상 부르시는 노래가 있었다면 부처님께서는 무슨 노래를 부르셨을까?


부처님께서는 항상 다른 사람을 보되 ‘제도(濟度)할 중생(衆生)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이 아니여. 보통 우리 상식으로는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을 죄가 많고, 생각하는 것이 순 망상(妄想)만 들끓고 망령(妄靈)된 경계에 빠져 있는 그러한 불쌍한 중생들이라’ 이렇게 생각하실 것 같은데, 실지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들에게 망(妄)이 있다고 그렇게 보시지를 않혀.

그러면 부처님 자신은 어떻다고 생각하신가? ‘부처님은 깨달아서 진리와 하나가 된 그러한 경지’라고 우리 생각에는 그럴 것 같은데,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래가지고 이 세상에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부처님 자신은 '남이 없다' 무생(無生), 남이 없어!


부처님 자신이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일체에는 망(妄)이 없고, 당신은 남[生]이 없는데 무엇을 제도할 중생이 어디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무슨 노래를 부르시냐 하면은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다. 사람 사람이 본래 태평(太平)하다’


“인인본태평(人人本太平)이로구나!” 이렇게 노래를 부르셨을 것이다.


사람 사람이 다 본래부터 태평해. 깨달을 바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빠져야 할 지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중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도할 부처님이 있는 것도 아니요, 제도 받을 중생이 있는 것이 아니여.

얼굴이야 잘생겼거나 못생겼거나, 귀족이거나 천민이거나, 부자거나 가난한 사람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머리가 좋거나 나쁘거나,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해서 더 보탤 것도 없고 더 덜어낼 것도 없어. 원만구족한 본래 태평한 존재들이다 그말이여.


납월팔일(臘月八日)을 맞이해서 우리는 본래 조금도 부처님과 조금도 모자랄 것도 없이 원만구족한 그러한 존재라고 하는 긍지를 가져야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을까요? 오장육부와 사지백체(四肢百體)는 성한 데가 없이 항상 아프고 괴롭고, 이 세상에 나서 늙어서 병들어 가지고 결국은 희로애락과 흥망성쇠(興亡盛衰)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그리고 버티다 버티다 못해서 왜 죽어갈까요?

죽으면 과연 어느 곳으로 갈까요? 천당에 아니면 지옥에 갈 것이다.


이러한 고달픈 생(生)이, 유랑(流浪)이 무량겁(無量劫)으로부터 무량겁으로 이어진다고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깨닫지 못한 분상(分上)에는 분명히 그럴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러나 깨달은 분상에는 지옥도 천당도 있다면 일념지간(一念之間)에 있는 것이여. 없다면 없는 것이지만 있다면 일념지간에 있어.

무량겁도 일념 속에 들어 있고, 그 일념간에 있는 천당, 일념 속에 있는 지옥, 그것만 해결해 버리면 무량겁의 생사고(生死苦)도 바로 해탈(解脫)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뭣고?’ 그래서 일념 단속(一念團束)을 해야 해.

일념 단속함으로 해서 일념 속에서 천당 · 지옥을 타파해 버려. 일념 속에서 영원한 해탈도(解脫道)를 증득(證得)하는 것이여.


기사년 납월팔일을 기해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이 산승(山僧)이 여러 사부대중, 여러 도반들을 향해서 간곡히 정진하실 것을 당부하는 것입니다.(42분3초~51분9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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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마구니(魔軍)2021. 1. 9. 11:11

마구니((No.405))—하루 하루를 바로 용맹정진 가행정진으로 정진해야 | 육근문두(六根門頭)에는 팔만사천 마구니, 딴생각[別念]을 일으켰다 하면 바로 침범해 들어온다 | 한 수좌의 잘못된 경계로 자해(自害). 이 공부는 선지식 밑에서 좋은 도반들과 같이 대중처소에서 정진을 해야 | 화두 의단(疑團) 이외의 어떠한 생각[別念]도 다 마구니를 불러들일 틈이 되는 것.


*마구니(마군 魔軍)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

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12분 19초)

[법문] 송담스님(No.405)—1989년(기사년) 성도재 법회(90.01.04) (용405)


용화선원에서는 납월팔일 용맹정진을 그렇게 행사로써 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개인 개인이 각자 자기의 신심과 분 따라서 7일 동안을 다른 때보다는 좀더 마음과 몸을 가다듬고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하기는 어찌하여 반드시 납월팔일뿐이리오? 결제(結制)한 날부터서 오늘날까지 하루 하루를 바로 용맹정진 가행정진으로 그렇게 정진을 해 오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용맹정진이요, 날마다 가행정진인데, 특별히 의식적으로 납월팔일을 기해서 그런 의식적인 행사로써 안 했을 뿐인 것입니다.


정진을 열심히 하다 보면 앉아서나 서서나, 밥을 먹을 때나, 화장실을 갈 때나, 세면장에를 가거나, 소지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 하게 되어.

그러면 걸어가되 가는 중도 모르고, 앉았으되 내가 앉았다는 생각도 없고, 밥을 먹되 밥맛도 모르고, 반찬을 먹되 짠지 싱거운 줄도 모르고,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나갔는지 반 시간이 지나갔는지, 오늘이 몇월 며칠인지 시간 날짜 가는 줄도 모르고, 마침내는 이 몸뚱이가 이 세상에 있는 것도 몰라. 다맛 의단이 독로해서 순일무잡 해.


정진을 애써서 한 사람이면 다 그러한 고비에 이르른 것입니다. 그러한 고비에 이르렀을 때에 항상 육근문두(六根門頭)에는 팔만사천(八萬四千) 마구니가 떠억 엿보고 있는 것입니다. 엿보고 있다가 한 생각만 삐끗 '딴생각[別念]'을 일으켰다 하면 바로 그 즈음을 타 가지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침입(侵入)해 들어와!

마치 호위병이, 간수나 수위가 성문을 지키고 있는데 잠깐 한눈을 팔거나, 그 자리를 잠깐 비우면 그 틈을 타서 도둑이나 적이 들어온 거와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 순일무잡하고 성성적적(惺惺寂寂)한 그러한 경지에서 무슨 마음을 일으키던지 그 일으키는 마음에 따라서, 그 어떠한 마음을 내는가에 따라서 마구니가, 팔만사천 마구니 가운데에 어느 마구니가 침범해 들어와.


어떤 수좌는 저 남해에서 참! 정진을 애써서 하는데, 어떤 거룩하게 생긴 모습을 한 사람이 나와 가지고 설법을 하는데 장경(藏經), 경전에 있는 말씀과 똑같고, 경전에 있는 말씀보다도 더 한 걸음 나아간 그러한 심오한 그런 설법을 막 설한다 그말이여.

그리고 나서 ‘네가 정말 견성성불 하려면은 네 이마를 이 기둥에다가 부딪쳐라’ 막! 그냥 그 법문 끝에 막 그렇게 강요를 하니까 거기에 따르지 아니할 수가 없어서 막 기둥에다가 머리빡을 들이받아 가지고 유혈이 낭자해.


그러다가 또 어느 날에는 ‘네가 참으로 견성성불 하려면은 네 고추를 끊어 버려라. 그놈 때문에 무량겁을 두고 생사윤회를 하고 도를 이루지 못했는데 금생이라도 네가 결정코 도업을 성취하려면 고추를 잘라 버려라’

그 법문을 설하고 나서 막 그것을 짜르라고 하니까 그 말을 안 들을 수가 없어. 그 법문에 감동이 되어 가지고 있고, 도업 성취할 그 생각밖에 없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안 끊을 수가 없어서 고추를 잘라 버렸어. 유혈이 낭자해 가지고 참 어렵게 수습을 했다 그말이여.


이 정진을 애써서 하다 보면 특히 혼자 저 섬이나, 깊은 산중이나, 토굴에 들어가서 혼자 공부하다가 흔히 이런 경계(境界)가 나타나는 거여.

그래서 옛날부터 이 공부는 선지식(善知識) 밑에서 좋은 도반(道伴)들과 같이 정진을 해야지, 선지식이 없는 곳에 또 좋은 도반이 없는 곳에 혼자 가서, 아직 득력(得力)을 하지 못한 분상(分上)에 혼자 가서 한다는 것은 항상 이런 위험성이 수반(隨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모다 경계(警戒)를 했습니다.


대중처소(大衆處所)에 살면 모두 대중(大衆)의 규칙을 따라야 하고 또 여러 다른 대중을 위해서 항상 조심해야 하고 신경을 써야 하고, 그러니 자기의 성질에는 안 맞아도 대중의 뜻을 따라야 하고, 대중을 조심해야 하니까—자기 혼자 있으면 그러한 공연히 신경 쓰고 그럴 것이 없이 마음껏 잠도 안 자고 공부하려면 공부하고, 밥도 그저 먹고 싶으면 먹고 안 먹고 싶으면 안 먹고, 그저 뭐 정진도 4시간이고 5시간이고 꼼짝 않고 하려면 하고, 잠도 안 자고 하려면 하고, 마음껏 할 수가 있겠다.

그러니 대중처소에서 하니까 그런 것을 마음대로 못하고, 더 좀 공부하고 싶어도 시간되면 자야 하고 또 조금 늦게 일어나고 싶어도 시간 되면 일어나야 하고, 밥도 먹기 싫어도 대중과 같이 발우공양(鉢盂供養)을 해야 하고, 그러한 폐단을 피해서 토굴(土窟)에 들어가서 실컷 좀 공부하기 위해서 토굴을 찾고 토굴을 마련하고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공부에 득력을 하지 아니한 사람이 토굴에 들어가서 하다 보면 까딱하면은—참 그 정진을 애써서 계행을 철저히 지키면서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삐끗하면 이상한 경계가 나타나. 관세음보살이 나타나기도 하고, 뭐 부처님이라 해 가지고 나타나기도 하고. 그래가지고 아까 저 남해에 가서 공부하던 그 수좌처럼 그러한 경계가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능엄경(楞嚴經) 50상(相) 변마장(辨魔障)에 있는 그러한 경계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말이여.

이러할 때 좋은 도반이 옆에 있거나 선지식이 있으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백이면 백 다 그러한 마(魔)에 섭(攝)하게 되고, 사견(邪見)에 떨어지게 되고, 까딱하면 정신이상(精神異常)에까지 걸려서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단계에까지 이르를 수가 있는 것이여.


그런데 그 순일무잡한 경계에서 행여나 빨리 깨닫기를 바란다든지, 누가 와서 자기를 깨닫게 해 주기를 바란다든지 또는 어떠한 조사의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분별하고, 분석하고, 따져서 복탁(卜度)을 한다든지 또는 무슨 신통이 나기를 바란다던지, 그러한 화두(話頭)에 대한 의단(疑團) 이외의 어떠한 생각도 여기에 이르러서는 다 마구니를 불러들일 틈이 되는 것이다. 이 말씀입니다.(24분9초~36분2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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