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심우송(십우도송)2019. 11. 6. 18:56

*심우도(尋牛圖) ;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 우리의 마음자리를 '소'에다가 비유해서, 소를 찾아서 길들이는 과정을, 수행자가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해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보림(保任)을 다 완성을 한 다음에 중생을 교화하러 나가는 데까지 10단계로 구분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낸 그림. 게송으로 읊은 것을 심우송(尋牛頌), 십우송(十牛頌)이라 한다.

 

이 심우도(십우도)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보명(普明) 선사의 목우도(牧牛圖)와 곽암(廓庵) 선사의 십우도이고, 송(宋) 나라 때의 청거(淸居) 선사의 십이목우도(十二牧牛圖), 불국유백(佛國惟白) 선사의 팔목우도(八牧牛圖)가 있다. 곽암 선사의 십우도는 청거 선사의 십이목우도를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참고] 곽암 선사 십우도(十牛圖)의 제목[題].

①심우(尋牛) :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다.

②견적(見跡) : 소의 발자취를 보다.

③견우(見牛) : 소를 발견하다.

④득우(得牛) : 소가 보이니까 살살 다가가서 그 소를 얻다.

⑤목우(牧牛) : 소를 잡아 살살 먹여가지고 길들이다.

⑥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⑦망우존인(忘牛存人, 到家忘牛) : 집으로 돌아와서 소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다.

⑧인우구망(人牛俱忘) : 사람과 소를 다 잊어버리다.

⑨반본환원(返本還源) : 본래의 자기, 본태평(本太平) 자리에 돌아오다.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다.

⑩입전수수(入鄽垂手) : 저잣거리로 들어가 중생 교화를 위해 자비의 손길을 내밀다.

 

(8분 31초)

 

[법문] 송담스님(No.619)—99년 2월 첫째일요법회(99.02.07) (용619)

 

방금 우리 형제자매, 법보제자(法寶弟子) 여러분은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法門)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여러분께서 들으신 바와 같이 심우도(尋牛圖), 소를 찾는 그림, 소를 찾는 게송에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이 게송은 처음에 자기도 본래 부처님과 똑같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고, 조끔도 조사(祖師)와 다름이 없는 불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그리 막혀가지고 자기 본성을 잃어버리고 살았는데,

그 잃어버린 자기의 본성을 찾는 공부를 소에다가 비유해가지고 소를 찾으러 나가는 데에다가 비유해서 참선(參禪)해 나가는, 도(道)를 닦아 나가는 과정을 열 가지 단계로 설명을 한 것입니다.

 

처음에 소를 찾으러[①尋牛] 나갔다가 얼마만큼 가면 소를 발자취를 보고[②見跡],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니 소가 보이고[③見牛],

소가 보이니까 살살 다가가서 그 소를 얻고[④得牛], 소를 잡아가지고는 그놈을 살살 먹여. 먹여가지고 길을 들여가지고[⑤牧牛] 그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⑥騎牛歸家]

 

집으로 돌아와서 소는 잊어버리고 자기, 사람만 딱 있고[⑦到家忘牛], 거기서 더 나아가면 소도 사람도 다 잊어버려[⑧人牛俱忘].

그래가지고 아홉 번에 단계에 가서는 반본환원(⑨返本還源)이여. 정말 그 본태평(本太平)자리에 돌아온 것이다 그말이여.

 

그것이 인자 자기 수행의 구경처(究竟處)에 온 건데, 우리 수행이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정말 자비심을 일으켜가지고 중생 교화하는 데에 나아가는 것이 열 번째 입전수수(⑩入鄽垂手)의 단계다 그 말입니다.

 

이 십우도(十牛圖)는 중국에 어떤 선지식(善知識)이 읊은 게송인데, 전강 조실 스님께서 방금 조실 스님 자신의 수행의 경험을 거기에다가 비추어 가면서 우리에게 그 심우도 법문을 해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이 열 가지 단계를 얼마만큼 빨리 가느냐?

몇 번째 단계에서 애를 먹다가 그다음에는 또 수월하게 가다가 모다 그런 차등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빨리 빠르게 건너거나 천천히 건너거나 사람에 따라서는 첫 철에 툭 터지기도 하고, 삼 년 걸리기도 하고, 십 년 내지 삼십 년 걸리기도 하고 또 기운이 성숙하지 못하면 평생을 걸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꼭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그런 속효심(速效心)을 내서도 안 되고, 빨리 얻어지지 않는다고 마음이 변해가지고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갈팡질팡해서도 아니 되는 것입니다.

늦게 가더라도 소걸음처럼 착실히 걸어가면 결국은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하는 깊은 굳은 신념을 가지고 정진을 해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일요법회는 너무너무 전강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이 우리에게 적절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산승(山僧)은 그 선방에 스님네 몇 분과 시민선방(市民禪院)에 여러분과 청년회 법회 회원들이 화두를 타기를 원해서 간략히 전강 조실 스님을 대신해서 화두를 일러 드리고자 합니다.

 

아까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 그 화두에 대한 법문이 있었습니다마는, '이뭣고?' 이미 '이뭣고?'를 타고 가지고 공부하는 분은 다른 화두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이뭣고?'를 하시고.

은사 스님으로부터 '무자(無字)' 화두를 탄 분은 은사 스님이 그 당신의 상좌(上佐)의 근기(根機)를 잘 알아서 '무자' 화두를 일러 주신 것이니까 그대로 '무자' 화두를 하되, 화두 드는 법에 대해서는 조실 스님의 법문을 잘 들으면 그 (화두) 드는 적절한 요령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그 '무자(無字)'를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한 것이 아니라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그 '어째서'에다가 의심의 눈을 거기다가 초점을 대야 하는 것입니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그렇게 해 나가면 되고.

 

'이뭣고?'는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뭣고?'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지금 '이뭣고?'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다그쳐서 든다면은 더욱 절묘할 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해 나가되 미간(眉間), 눈과 눈썹 사이에다가 거기다 너무 힘을 주고 머리로 하다 보면 상기(上氣)가 오는 것이니까,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서서히 하면서 화두를 배꼽 밑에 단전에다 두고 관조(觀照)를 그렇게 하도록 하고.

구체적인 것은 '참선법문[참선법 A·B·C·D·E]'이라고 하는 녹음테이프가 있으니까 댁에 가셔서 그 녹음테이프를 열 번, 스무 번, 백 번을 틀면서 하시면 자연히 아주 자상하고 구체적인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에도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말씀하시다가—이제 '판치생모'를 들었으니까 '이뭣고?' 내동댕이쳐 버리고 '판치생모' 해야겠다. 그러시지를 말고 조실 스님이 '판치생모'에 대한 법문을 하셨지만 그전에 '이뭣고'를 주욱 하시던 분은 계속해서 그 '이뭣고?'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에 어느 스님한테 '관세음보살'을 부르라 하고 그렇게 법문을 듣고 '관세음보살' 해 왔는데, 하다가 여기 와서 '이뭣고?' 화두를 탔다 그말이여.

그런데 지난번 언젠가 산승이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야지 이 화두하다, 저 화두하다 그러면 못쓴다"고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 그 말씀을 듣고 그전에 어느 스님이 관세음보살 부르라고 했으니까 "에이! '이뭣고?' 내동댕이쳐 버리고 관세음보살만 해야겠다" 선방에 앉아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부르려면 여까지 오실 게 없잖아요.

그래서 과거에는 '관세음보살'을 했지만, 인자 '관세음보살'로써 신심과 수행해 나가는 기본을 잘 다졌다고 생각하시고 앞으로는 '이뭣고?'를 열심히 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5분28초~13분5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심우도(尋牛圖) ; 십우도(十牛圖). 목우도(牧牛圖). 우리의 마음자리를 '소'에다가 비유해서, 소를 찾아서 길들이는 과정을, 수행자가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해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보림(保任)을 다 완성을 한 다음에 중생을 교화하러 나가는 데까지 10단계로 구분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낸 그림. 게송으로 읊은 것을 심우송(尋牛頌), 십우송(十牛頌)이라 한다.

 

이 심우도(십우도)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보명(普明) 선사의 목우도(牧牛圖)와 곽암(廓庵) 선사의 십우도이고, 송(宋) 나라 때의 청거(淸居) 선사의 십이목우도(十二牧牛圖), 불국유백(佛國惟白) 선사의 팔목우도(八牧牛圖)가 있다. 곽암 선사의 십우도는 청거 선사의 십이목우도를 참조하여 만든 것이다.

 

[참고] 『십우도송(十牛圖頌)』 ; 곽암 선사 십우도(十牛圖)의 제목[題]과 송(頌).

①심우(尋牛 잃어버린 소를 찾아 나서다) ; 忙忙撥草去追尋 水闊山遙路更深 力盡神疲無處覓 但聞楓樹晩蟬吟

②견적(見跡 소의 발자취를 보다) ; 水邊林下跡偏多 芳草離披見也麼 縱是深山更深處 遼天鼻孔怎藏他

③견우(見牛 소를 발견하다) ; 黃鸝枝上一聲聲 日暖風和岸柳靑 只此更無回避處 森森頭角畵難成

④득우(得牛 소가 보이니까 살살 다가가서 그 소를 얻다) ; 竭盡神通獲得渠 心强力壯卒難除 有時纔到高原上 又入烟雲深處居

⑤목우(牧牛 소를 잡아 살살 먹여가지고 길들이다) ; 鞭索時時不離身 恐伊縱步惹埃塵 相將牧得純和也 羈鎻無拘自逐人

⑥기우귀가(騎牛歸家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 ; 騎牛迤邐欲還家 羌笛聲聲送晚霞 一拍一歌無限意 知音何必鼓唇牙

⑦망우존인(忘牛存人, 到家忘牛 집으로 돌아와서 소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다) ; 騎牛已得到家山 牛也空兮人也閑 紅日三竿猶作夢 鞭繩空頓草堂間

⑧인우구망(人牛俱忘 사람과 소를 다 잊어버리다) ; 鞭索人牛盡屬空 碧天寥廓信難通 紅爐焰上爭容雪 到此方能合祖宗

⑨반본환원(返本還源 본래의 자기, 본태평本太平 자리에 돌아오다.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다) ; 返本還源已費功 爭如直下若盲聾 庵中不見庵前物 水自茫茫花自紅

⑩입전수수(入鄽垂手 저잣거리로 들어가 중생 교화를 위해 자비의 손길을 내밀다) ; 露胸跣足入廛來 抹土塗灰笑滿腮 不用神仙眞秘訣 直敎枯木放花開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본태평(本太平 근본·본래 본/클 태/평평하다·편안하다 평) ; 본래 태평(마음에 아무 근심 걱정이 없음)함.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속효심(速效心 빠를 속/효과 효/마음 심) ; 빨리[速] 효과[效] 나기를 바라는 마음[心].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시민선원(市民禪院) ; 직장인, 학생, 주부 등과 같은 하루 종일 시간을 낼 수 없는 분들이 언제든지 시간 나는 대로 와서 정진할 수 있도록 용화선원에 개설되어 있는 신도 선원.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상기(上氣) ; ①[한의] 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 발한, 두통, 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1분 32초)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관조(觀照) ; ①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洞察 :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환히 꿰뚫어 봄)함. ②지(智)로써 사(事 모든 차별의 모양. 현상계. 차별 현상. 사물)와 이(理 모든 사물의 본체. 진리)를 관(觀)하여 바르게 아는 것.

[참고] 『돈황본 육조단경』

用智慧觀照 於一切法 不取不捨 卽見性成佛道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觀照] 온갖 법에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나니, 곧 성품을 보아 불도(佛道)를 이루느니라.

 

[참고]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보조국사 지눌 스님)

如或世間事務 種種牽纏或病苦所惱 或邪魔惡鬼所能恐怖 有如是等 身心不安 則於十方佛前 至心洗懺 以除重障 禮念等行 消息知時

 

만일 세상의 일에 가지가지로 얽매이거나 병으로 아프거나 삿된 악마나 귀신에 의해 공포에 떠는 등 이런 일로 몸이나 마음이 불안함이 있거든, 시방세계의 부처님 전에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여 무거운 업장(業障)을 제거해야 한다. 예불과 염불을 아울러 행하고, 업의 장애를 없애고 생각을 비우는 일을 때를 알아서 하라.

 

動靜施爲 或語或默 一切時中 無不了知 自他身心 從緣幻起 空無體性 猶如浮泡 亦如雲影 一切毀譽是非音聲 喉中妄出 如空谷響 亦如風聲

 

움직이고 그치고 말하고 침묵하는 모든 시간에 나와 남의 몸과 마음이 인연을 따라 허깨비처럼 일어난 것으로 공(空)하여 체성(體性)이 없음이 마치 물에 뜬 거품과 같으며 또한 구름이나 그림자와 같아서, 일체 비방하고 칭찬하며, 옳다 그르다는 음성이 목구멍에서 망령되이 남[出]이 빈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고 또한 바람 소리와 같은 것임을 환히 안다.

 

如是虛妄自他境界 察其根由 不隨傾動 全身定質 守護心城 增長觀照 寂爾有歸 恬然無間 當是時也 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自然斷除 功行自然增進

 

그와 같이 나와 남이 모두 허망한 경계에서 그 근본 원인을 살펴, 치우친 행동을 따르지 않고, 온 몸은 안정하여 마음의 성(城)을 굳게 지키어 비추어 보는[觀照] 힘을 증장하면 고요히 돌아갈 곳이 있고 편안하여 끊임이 없을 것이다.

그때에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엷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더욱 밝아지며 죄업은 저절로 끊어져 없어지고 공덕의 행[功行]은 저절로 더욱 나아갈 것이다.

 

煩惱盡時 生死卽絕 生滅滅已 寂照現前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是爲了事人分上 無漸次中漸次 無功用中功用也

 

그리하여 번뇌가 다할 때에는 생사가 곧 끊어지고 생멸이 멸하면 적(寂)과 조(照)가 앞에 나타나 응(應)해 씀이 무궁하여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리니 이것이 이른바 일 마친 사람의 분상(分上)에 점차(漸次) 없는 가운데 점차며, 공용(功用) 없는 가운데 공용이 되는 것이다.

*참선법(參禪法) A,B,C,D,E ;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 스님께서 하신 모든 법문은 참선법을 핵심으로 설하신 법문입니다. 그 가운데 ‘참선법 A~E’라고 하여 처음 참선하는 분을 위해 송담스님 법문 중에 5개를 선정하여 놓은 법문.

*녹음 테이프(錄音tape) ; 소리를 기록하는 테이프. 카세트(cassette)라고 하는 녹음기에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하는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 : 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종이나 플라스틱으로 된 얇고 긴 띠 위에 자성을 띤 가루를 입힌 자기 테이프)를 말한다.

 

소리나 영상[음성법문, 영상법문]을 재생하는 방식이 녹음 테이프에서 CD(compact disk)를 거쳐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