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중사(箇中事) (세등선원No.58)—(게송)春早梅花發  秋深野菊開  欲識箇中事  浮雲空去來 | 인생 무상을 두려워해야, 생사호흡지간.

 

*개중사(箇中事 낱·이·이것 개/가운데 중/일 사) ; 기중사(其中事)와 같은 말. '이 가운데 일'. '이 속에 참다운 도리'. 근본적인 일. 불법(佛法)의 핵심적인 뜻.

 

(9분 49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8)—을축년 동안거 해제 법어(86.01.17) (세등58)

 

춘조매화발(春早梅花發)이요  추심야국개(秋深野菊開)니라

나무~아미타불~

욕식개중사(欲識箇中事)대는  부운공거래(浮雲空去來)니라

나무~아미타불~

 

춘조매화발(春早梅花發)이요  추심야국개(秋深野菊開)라.

봄이 이르니 매화가 피고, 가을이 깊으니 들국화가 피었구나.

 

욕식개중사(欲識箇中事)댄  부운공거래(浮雲空去來)라.

이 낱 가운데 일을 알고자 할진댄, 이 도리(道理)를 알고자 할진댄, 뜬구름이 허공에 갔다 왔다 하느니라. 부휴선사(浮休禪師)의 게송(偈頌)입니다.

 

봄이 이르니 다른 꽃은 아직 피지 아니하고 매화꽃이 눈 속에서, 눈이 아직 희낏희낏 다 녹지 아니한 그 눈 속에서 매화꽃이 피고, 가을이 깊으니 다른 꽃은 다 져버렸는데 들국화가 쌀쌀한 가을바람에 피고 있더라.

 

너무나 당연한 아무 별 뜻이 없는 평범한 일을 시(詩)로 읊었습니다. 그런데 이 별로 기특하지도 아니한 평범한 이 사실, 이 속에 참다운 도리를 알고자 할진댄 허공에 흰구름이 날아가고 날아오느니라.

 

이 허공에 흰구름이 날아가고 날아오는 것은 또 무슨 기특한 일인고?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고,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새가 우는 것은 또한 무슨 기특한 일인고?

 

이 기특할 것도 없는 이 사실이 설(說)할래야 설할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는 도리를 너무나 분명히 설하고 있다고 하는 데에 눈을 떠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병인년 삼동안거(三冬安居) 해제를 맞이해서 이 세등선원에 큰방에 35명이 났고, 또 이 자리에는 저 경상도 지방, 충청도 지방, 경향 각지에서 크고 작은 선방에서 정진을 하던 여러 비구니(比丘尼) 대중, 그리고 청신사 청신녀, 부처님을 믿는 형제자매 여러 도반(道伴)들이 많이 모이셨습니다.

 

지난 한철 동안 각기 자기가 거처하는, 안거하는 선원에서 가행정진(加行精進) ·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고, 그리고서 오늘 이 삼남 · 팔도에서 이렇게 한 자리에 서로 도반들의 얼굴을 보고 '지난 한철 동안 나는 정말 모든 정성을 다해서 정진을 했는데, 다른 도반들은 또 어떻게 정진을 했을까?'

서로 말없이 미소 짓는 가운데에 인사를 했지만 그 속에는 한없는 도반으로서의 넘치는 절렬(節烈)한 티없는 정이 오고갔으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의 그 엄숙하고 티없는 그리고 반짝거리는 눈동자 속에 도반으로서에 깊은 신심과 우정이 풍기고 있는 것을 나는 보고 대단히 감개가 무량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한철 한철을 정성을 다하고, 신심(信心)을 다하고, 분심(憤心)을 다해서 정진을 해 나간다면 어찌 금생에 이 몸뚱이를 가지고 결정코 도업(道業)을 성취할 수 없겠습니까.

 

인생은 참으로 무상(無常)한 것이어서 하루 일을 알 수가 없고, 하룻밤 일을 알 수가 없어.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의 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수행자가 마땅히 정신차려야 할 것은 그 무상함에 철저한 포구(怖懼),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그리고 한 생각 한 생각을 잡드리해 나간다면 오늘 눈을 감게 되고, 한 시간 후에 눈을 감게 된다 한들 무슨 포한(抱恨)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생사(生死), 죽음에 대해서 각기 느낀 바를 말해 보아라.

‘생사가 어떻게 되느냐?’

 

한 제자가 대답하기를 ‘생사는 하루 동안에도 죽음은 닥쳐 올 수가 있습니다’

‘너는 공부하기가 어렵겠구나’

 

또 한 제자가 ‘밥 한 그릇 먹는 가운데에도 죽음은 올 수가 있습니다’

‘너도 어렵구나’

 

한 제자가 나와서 ‘죽음은 숨 한번 내쉬었다 들어마시는 데에도 있습니다’

‘음, 너는 공부를 하겠다’

 

숨 한번 쉬는 사이에 죽음은 올 수가 있는 것이여.

죽음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공부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처음~10분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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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춘조매화발~’ ; 『부휴당대사집』 (부휴 선수 | 이상현 옮김, 동국대학교출판부) p63 ‘일 선화가 한마디 청하기에(一禪和求語)’ 게송 참고.

*부휴(浮休) ; (1543-1615) 조선시대의 스님. 전북 남원 출신. 법명은 선수(善修). 호는 부휴(浮休). 20세에 지리산에 들어가 신명(信明)에게 출가하고, 후에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사사(師事)하여 그의 법을 이어받음. 덕유산, 가야산 해인사, 조계산 송광사 등에 머물고, 지리산 칠불암(七佛庵)에서 입적함. 저서 : 부휴당대사집(浮休堂大師集).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삼동안거(三冬安居)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청신사(淸信士)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남자 신도, 곧 우바새(優婆塞).

*청신녀(淸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절렬(節烈)하다 ; 절의(節義 신념을 굽히지 않는 꿋꿋한 태도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굳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③‘내가 바로 부처다’라는 믿음. 그러기 때문에 ‘끊어야 할 생사도 없고, 버려야 할 번뇌도 없다’고 하는 믿음.

*분심(憤心, 奮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포한(抱恨) ; 한(恨)을 품음. 또는 그런 한.

*생사재호흡지간(生死在呼吸之間)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생사라 하는 것은 멀리 잡을 것이 아니라 하루도 멀고, 한끼도 멀고, 한 호흡 사이에 있다고 하는 것. 그렇게 무상하고 기약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생사인 것이다.

*호흡지간(呼吸之間) ; 한 번 내쉬고[呼] 들이쉬고[吸] 할 사이[間]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시간을 이르는 말.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38장’

佛問沙門 人命在幾間 對曰數曰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飯食間 佛言 子未知道 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 對曰呼吸間 佛言 善哉子知道矣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밥 먹을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아직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한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대답하기를 “호흡 사이에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너는 도를 아는구나”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