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오후보림(보림)2019. 5. 29. 13:37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용화선원刊) p139. (가로판 p134~135)

〇到伊麼時하얀  早訪高玄하야  機味를  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爾어든  再入林巒하야  茅庵土洞에 苦樂을  隨緣하야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10분 22초)

 

[법문] 전강선사(No.252) - 고담화상 법어 4 (72.06.05)[몽산법어 부록 07-2](전252)

 

도이마시(到伊麽時)해야, 이렇게 턱 깨달라 가지곤 조방고현(早訪高玄)해라. 이렇게 투철히 깨달라 가지고는 일찍이 고현을 찾아라.

 

고현(高玄)이라는 것은 '높을 고(高)' 자 '감을 현(玄)' 자인디, 조실(祖室) 스님을 찾아라. 제일 법 높은 조실 스님을,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조실 스님을 찾아라.

 

기미완전(機味完轉)하다. 그 네가 깨달은 도리가 완전(完轉)혀.

조금도 어김이 없이 (문 조금 통해라. 조금 통혀) 네 맛본 바와 고인(古人)의 깨달은 바가 조금도 틀림이 없이 완전해야 한다.

 

뭐, 혼자 뭣 좀 하다가 깨달랐다 해 가지고, 견성했다 해 가지고... 허! 되아? 된 법 없어.

 

무정무편(無正無偏)해야, 정(正)도 없고 편(偏)도 없다. 무슨 정(正)이 있고 편(偏)이 있나?

 

'정이 제일이고, 정각이 제일이고, 대각이 제일이고, 확철대오가 제일이고...'

정(正)도 없고 편(偏)도 없고 확철대오도 없다. 편벽됨도 없고. 무엇이 가 붙어 있겠나?

 

명사허이(明師許爾)라. 그래서 밝은 스승이, 밝은 조실 스님이 허이(許爾)를 해야 한다.

너를 '옳다! 너는 바로 깨달랐다' 이렇게 인가를 딱! 해야 된다.

 

어름허게, 인가도 없이, 아무데 지내다가 나와서 제가 제일이라고 도인 노릇 하고 선지식 노릇하고, 저 중간에 뭐 그 뭐고? 태백산서 나온 그 뭔 청공인가?

하따! 그것 공부허다 견성했다고 나와 가지고는 제가 제일이라고, 천하에 제일이라고, 고금에 제일이라고 야단을 치고, 대체 그 무슨 신통도 있든 것이여.

 

뭐 신통이 원 허공에서 잠을 잤든가 원, 허공을 그저 하늘을 마음대로 올라갔든가는 몰라도 별소리가 다 있으며 야단났구만 한참때. 한참때 그 야단을 치더니 어디로 간 종적 없어.

 

그런 명사(明師)가 허이(許爾)어든, 밝은 스승이 딱! 허락을 혀.

허락을 하되, 암만 밝은 스님이 허락을 했다 하드래도 그 인가가 확 돌아야 혀.

 

학자(學者)들도 인가한 법이 있거든. 학자도 눈 밝은 학자가 있거든. 눈 밝은 학자는 더 무서운 것이여.

 

눈 밝은 학자도 다 허락하고, 다 그 허락하거들란 그때에 재입임만(再入林巒)해라.

그때 가서는 확철대오해서 명사허이(明師許爾), 명사가 그저 명안 납승이라도 다 인가 있는 뒤에는 다시 산에 들어가거라. 인자 그때 산에 들어가는 법이여.

 

재입입산(再入入山)해라. 다시 산에 들어가거라.

산에 들어가되, 인자 그 뭐 그 대중처소, 뭐 대중처소 들어가라는 거 아니여.

 

자기 마음대로 인자 토굴(土窟), 토굴 마음대로 좋아. 어떤 토굴이든지 인연대로 인연 맞춰서 섬 중도 좋고, 그런 토굴에 혼자라도 좋고, 들어가서.

원효 큰스님 같은 어른도 그 견성 턱 해가지고는 인자 사방 댕기면서 인연 맞추어서 그 동쪽으로 똑 동향으로 집을 짓고 그 모두 보림(保任)허러 댕기시니라고 그렇게 애를 쓰시고.

 

'원효 스님도 견성 못했다'고 허는 사람이 있다등구마는. 자기는 원효 스님보담 더 나아서 그런가 원 모르지마는, 왜 그렇게 고인을 비방하고.

'보조 스님도 견성 못했다'고 비방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 하등구마는 내 누구라도 말하기는 곤란하고 듣기는 들었구마는, 나는 누가 그랬다 소리 한 법도 없고.

 

왜 그렇게 고인을 비방하고 우리 큰스님네를 비방하면 어찌 될 것인가?

원효 큰스님이 견성을 못허고, 보조 큰스님이 견성을 못허셨으면은 세상에 누가 했을 거냔 말이여? 우리 동양, 우리 나라의 부처님인데.

 

낱낱이 바로 제가 견성을 못허면은 고인부터 비방하는 법이여.

고인부터 비방하는 사람은 믿지 말아야 되아. 고인부터 비방한 것이 벌써 자기가 몰랐은께, 깨닫지 못했으니 비방을 허고 있거든.

 

학자면 밝게 가려야 되아! 도학자, 도를 배우는 도학자의 그 지혜라니!

우리 참선(參禪) 학자는, 활구(活句) 학자는 지혜 학자인데, 지혜 학자가 스승 하나를 못 가려 되아?

 

또 첫째 또 가닥을 똑! 추리란 말이여.

 

'스님이 견성을 허셨으면은 무슨 공안에 견성을 했습니까? 어떤 스님한테 어떻게 물어서 어떻게 답이 나왔습니까?'

안 나와 그것이? 딱딱 나오지 안 나와? 만공 큰스님 다 나오고, 혜월 큰스님 다 나오고, 어디 그런 큰스님네가 다 없어?

 

밝은 학자들은 말허나, 안 허나 알겠지마는 내가 여까장 말해 주어야 되지.

 

확실히 인가가 있거들랑 모암토동(茅庵土洞)에 고락수연(苦樂隨緣)해라.

 

뗏집, 어디 뗏집 좋다. 도학자들이 무슨 좋은 집, 화각보전 편안하게 뭐 복 받고 복 수용허고 그것 소용이 있어?

어디 가서 그저 뗏집이라도 들어가서 그저, 어쨌든지 그저 인자 참 견성을 했으니까.

 

견성 후(後)라도 어디 시은(施恩)에 뚝 떨어져 가지고는 그 시은 그런 것 받지 말고 토동(土洞)에 들어가서 고락(苦樂) 고(苦)면 고, 낙(樂)이면 낙,

뭐 그때 뭐 보림(保任)한 사람이 무슨 뭐, 고(苦)면 고, 낙(樂)이면 낙, 그거 무슨 뭐 걸리나? 하나 걸릴 것 없지.

 

고(苦)면 고, 낙(樂)이면 낙, 닥치는 대로 수용하고, 고락을 인연 따라서 해라.

 

무위탕탕(無爲蕩蕩)해야, 깨달라 가지고 인자 참 보림을 해서 함이 없이[無爲], 한정 없이 탕탕혀. 아주 탕탕(蕩蕩), 깨달은 도리가 참 그 탕탕하다 그말이여.

너룹고 너룹고 폭이 그렇게 너룹고, 그만 길이 그렇게 높고, 무위(無爲)해서 한정이 없이 탕탕혀.

 

탕탕해서 성약백련(性若白蓮)이라.

깨달은 도리가 백련 같애서, 백련(白蓮) 그놈 흰 연(蓮)이 향취가 진동한 놈이 암만 더러운 물에다가 집어넣은들 그 연꽃이 검어지나? 물들여지고?

암만 더러운 물에다 넣어봐라. 물이 묻는가? 연 자체라는 것은 물방울이 똘똘 궁글어 버리지, 묻도 않네. 흰 연꽃이 어디 묻나?

 

깨끗한 백련같이 이렇게 보림을 해라.

 

다시 어디가 생사에 물들리면, 깨달라 가지고 미(迷)해서 도로 물들리면 쓰겄나?

이 숭악한 놈의 생사 속에서 한번 우리가 이렇게 참 발심(發心)해 나와서 도를 깨달라 가지고 증(證)했거들랑 다시 매(昧)하지 안 해야 할 것 아닌가? 다시 잃어버리지 안 해야 할 것 아닌가?

 

다시 매(昧)해지고 잃어버리고, 조금 가졌다가 도로 그만 이전 유랑생사(流浪生死) 한다면은 뭣 헐 것인가?(17분13초~27분3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용화선원刊) p135~141. (가로판 p131~136)

 

若欲參禪인댄  不用多言이니  趙州無字를  念念相連하야  行住坐臥에  相對目前하야  奮金剛志하야  一念萬年이라 廻光返照하야  察而復觀하야  昏沈散亂에  盡力加鞭하야 千磨萬鍊하면  轉轉新鮮이요  日久月深하면  密密綿綿하야 不擧自擧호미  亦如流泉하야  心空境寂하야  快樂安然하리라

 

만약 참선하려고 할진댄 말을 많이 하지 말지니, 조주(趙州)의 무자(無字)를 생각생각에 이어서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누울 때 눈앞에 두어 금강 같은 뜻을 세워 한 생각이 만 년 가게 하라. 빛을 돌이켜 반조하야 살피고 다시 관하다가 혼침과 산란에 힘을 다하야 채찍질을 할지어다.

천 번 갈고 만 번 단련하면 더욱더욱 새로와질 것이요,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지면 밀밀(密密)하고 면면(綿綿)하야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지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 같아서 마음이 비고 경계가 고요해서 쾌락하고 편안하리라.

 

善惡魔來커든  莫懼莫懽이어다  心生憎愛하면  失正成顚하리라 立志如山하며  安心似海하면  大智如日하야  普照三千하리라

 

선과 악의 마(魔)가 오거든 두려워하지도 말고 기뻐하지도 말지어다. 마음에 증애심(憎愛心)을 내면 정(正)을 잃고 미치광이가 되리라. 뜻 세우기를 산같이 하며 마음 편안하기를 바다같이 하면, 큰 지혜가 해와 같아서 널리 삼천세계(三千世界)를 비추리라.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到伊麼時하얀  早訪高玄하야  機味를  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爾어든  再入林巒하야  茅庵土洞에 苦樂을  隨緣하야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時至出山하야  駕無底船하야  隨流得妙하야 廣度人天하야  俱登覺岸하야  同證金仙이니라

 

시절이 이르거든 산에서 나와 밑 없는 배를 타고 흐름을 따라 묘를 얻어, 널리 인천(人天)을 제도하야 함께 깨달음의 언덕에 올라 함께 부처를 증득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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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기미(機味) : ①기질(氣質)。 소승(小乘)•연각(緣覺)•보살(菩薩)의 삼종(三種)이 있음。 수행자의 정신적 종교적 소질。 ②사물의 가장 요긴하고 종요로운 근본。 ③일의 종요로운 고동(예를 들자면 커다란 기계를 작동시키는 부분을 맡은 중요한 장치).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뗏집 ; 띳집(茅庵, 여러해살이풀인 '띠'로 지붕을 이은 집). 누추(陋醜)한 거처(居處).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보림(保任) ; 오후보림(悟後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탕탕(蕩蕩) ; ①넓고 큰 모양. ②평탄한 모양.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매(昧)하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유랑생사(流浪生死 흐를 유/물결·유랑할 랑/날 생/죽을 사)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으며 정처 없이 흐르는[流] 대로 삼계육도(三界六道)에 떠돌아다님[浪]. 생사유전(生死流轉). 생사윤회(生死輪廻).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