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畵餠) (No.568)—(게송)一切不留還有見~ | 그림의 떡으로는 배고픔을 면치 못한다 | 당장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본참화두를 챙겨야 한다.
*화병(畵餠 그림 화/떡 병) ; ‘그림으로 그려 놓은 떡’이라는 말. 그림의 떡은 맛이 있게 그려 놨다 하더라도 아무리 봐도 배고픔을 면하지 못하므로 실제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을 비유한다.
(4분 43초)
[법문] 송담스님(No.568)—96년 법보재 법회.(용568)
일체불류환유견(一切不留還有見)이요 요무가기상존지(了無可記尙存知)니라
나무~아미타불~
고가전지비친도(故家田地非親到)요 화병하증요득기(畵餠何曾療得饑)리요
나무~아미타불~
일체불류환유견(一切不留還有見)이여. ‘아무것도 나는 집착한 것이 없다. 아무것도 나는 집착하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없다’하더라도, ‘나는 머물른 것이 없고 집착한 것이 없다’고 하는 그 견해는 남아있는 것이고,
요무가기상존지(了無可記尙存知)다. 가히 요달(了達)해서, 요달한 그 생각이 없다고 해도 ‘없다’고 하는 그 알음알이가 남아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일체에 머물러 있는 바가 없다. 요달한 기약이 없다’고 한 그런 지견(知見)이 남아 있으면 고가전지비친도(故家田地非親到)여. 우리의 본래의 마음고향[故家田地]에는 아직도 친히 이르른 것이 아니다 그말이여.
마치 그림으로 된 떡—떡을 아무리 맛있게 보기 좋게 그려 놨다 하더라도, 그 그림의 떡을 봐가지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들여다보고 있어도 배고픔을 면틀 못한 것이다.(畵餠何曾療得饑)
지금 최상승법(最上乘法)에 대한 말씀을 했고, 정법(正法)에 대한 말씀을 했고, 생사해탈(生死解脫)에 관한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들었습니다마는 ‘나는 정법을 믿는다, 최상승법을 믿는다, 나는 참선을 한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만 있어 갖고는 정말 생사해탈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 지금부터, 이 자리에서부터 ‘이뭣고?’를 챙기셔야 합니다.
이 법회가 끝난 뒤에 여러분은 점심 공양을 하시고 가셔야 합니다. 비록 변변치 못합니다. 도시락도 싸고, 또 비빕밥도 했습니다. 무엇이 되었건, 질서있게 천천히 별로 맛은 없지마는 ‘이뭣고?’를 하시면서 잡수면 그래도 그런대로 감칠맛이 있을 것입니다.
‘이뭣고?’ ‘이뭣고?’를 항상 가시는 걸음걸음 ‘이뭣고?’를 하시고, 아주 이생을 다 사시고 숨 딱! 끊어질 때도 ‘이뭣고?’로 사시고, 이 몸을 버리고 가시는 걸음걸음에도 ‘이뭣고?’로 가신다면, 지옥 천당 어디를 가나 여러분 발 디딘 곳은 바로 그 길이 바로 해탈도(解脫道)가 되실 것입니다.(62분10초~67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송담스님(No.577)—96년 11월 첫째일요법회(96.11.03)에서. (7분 10초) (게송에 해당하는 법문 부분만 편집한 것입니다)
일체불유환유견(一切不留還有見)이요 요무가기상존지(了無可記尙存知)니라
고가전지비친도(故家田地非親到)하면 화병하증요득기(畵餠何曾療得饑)리요
일체(一切)를 불유(不留)라도 환유견(還有見)이다. ‘일체 모든 것을 자기는 가지고 있지 않다. 머무르지 않다’해도 ‘머물 자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는 그 견해가 오히려 있는 것이고,
요무가기상존지(了無可記尙存知)다. ‘전혀 기약한 것이, 기약한 욕심이 없다’고 해도 ‘없다’고 하는 알음알이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나 그것 생각이 없어’ ‘나 그것 전혀 생각이 없다’고 팔팔 잡아떼도 ‘전혀 생각이 없다’고 하는 그 생각이 있다 그거거든.
고가전지비친도(故家田地非親到)하면, 옛집 전지(田地) 밭 땅에—옛집 땅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本分), 진여(眞如) 불신(佛身)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깨달으신 바로 그 곳, 조사와 선지식들이 깨달은 바로 그 땅이 고가전지(故家田地)인 것입니다.
그 고가전지에 몸소 그 경지에 이르지 않는다면, 화병하증요득기(畵餠何曾療得饑)리요, 그림으로 그려 놓은 떡이 어찌 그것을 보기만 해 가지고 요기(療飢)를, 배고픈 것을 면할 수가 있겠느냐?
직접 떡을 먹어야지, 그림으로 그려 놓은 그 떡을 봐 가지고는 배가 부를 수가 없는 것처럼, 밤낮 경을 보고, 염불을 하고, 법회 때마다 법문을 듣고—법문을 들을 때는 참, 마음도 조용해지고 기쁜 마음으로 하지만, 집에 돌아가면 아무 소용없고 옛날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산다면은 그것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다 이거거든.
이것을 직접 마음으로 행하고, 몸으로 실천을 하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다같이 ‘참나’를 깨닫도록.
이건 참선을 열심히 하다 보면은 나름대로 어떠한 견해가 열릴 수가 있습니다. 크고 작은 경계가 나타날 수가 있으나, 그것이 정말 불조(佛祖)가 깨달은 그런 경지가 아니면 그건 스스로 부정을 해 버려야 하거든.
언제나 초학자(初學者)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해 나가야지, 뭐 조금 견해가 생겼다고 해서 ‘나는 그런 견해를 얻었다’하는 생각을 가지고,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로 큰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 무슨 소견 난 것을, 그것을 가지고 얻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생을 그렇게 말아 버린다고 해서는 그것은 참 부끄럽고 슬픈 일일 것입니다.
오늘 화두(話頭)를 새로 타 가지고 선방(禪房)에 가려고 하는 분은 ‘이뭣고?’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뭣고?’할 때 ‘이~’ 하는데, 『‘이~’ 하는 이놈이 뭣고?』 이렇게 가끔 한 번씩 그렇게 다그쳐도 상관이 없다.
알 수 없는 의심! 꽉 맥혀서 알 수 없는 의심만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해야지,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이렇게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어. 그렇게 공부하면 공부를 잘못하는 것이고.
어떠한 것이 보이거나 느껴진다 하더라도 그런 데에 집착을 하고 맛들이지 말고, 항상 ‘이뭣고?’를 듦으로써—그전에 있었던 생각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딱! ‘이뭣고?’를 들어버리면 저절로 다 없어지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으로만 잡드리 해 나가서, 앞에 탁 놓여 있는 그 은산철벽(銀山鐵壁)을 향해서 ‘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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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체불류환유견~’ ; [신심명(信心銘) 벽의해(闢義解)] 중봉 명본선사(中峰 明本禪師) (명정 역주, 극락선원,2014) p205 참고. *(頻伽藏本)天目中峰和尚廣錄 卷第十二之下 信心銘闢義解下 게송 참고.
*요달(了達 마칠•완전히 료/통달할 달) ; 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지견(知見) ; 배워서 얻은 지식과 보고 들어 쌓은 분별력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고가전지(故家田地) ; ‘옛집 땅’이라 하는 것은 우리의 본분(本分), 진여(眞如) 불신(佛身)을 말하는 것. 부처님이 깨달으신 바로 그 곳, 조사와 선지식들이 깨달으신 바로 그 땅이 고가전지(故家田地)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公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감칠맛 ; 음식물이 입에 당기는 맛.
*은산철벽(銀山鐵壁) ; 철벽은산(鐵壁銀山).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려움을 나타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