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행(No.377)—우리는 언제나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 선가귀감은 팔만대장경의 골수 | 한 애기가 태어난 것은 바로 한 부처님이 태어난 것 | 갓난애기는 순수무잡하고 청정무구해서 바로 도인(道人)의 경지와 거의 흡사 | 도인의 81행 중에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영아행(嬰兒行 어린아이·갓난아이 영/아이·아기·젖먹이·나이가 어린 사람 아/행하다·행위 행) ;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도인(道人)의 81행(行)이 있는데, 81행 가운데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10분.
[법문] 송담스님(No.377)—1989년 2월 첫째일요법회(89.2.5)(용377)
방금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통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 ‘생사(生死)가 무상(無常)한 이 세상에 몸을 받아 났지마는 정법을 믿고 활구참선을 해서 금생에 결정코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해야 하느니라’ 이러한 고구정녕(苦口丁寧)하시고 절절한 그런 법문을 다 같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묵은 해가 가고 새해가 돌아올 때 새로 태어날 뿐만 아니라, 날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1분 1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하고, 1초 1초마다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새로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참 축복받을 만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 최웅식 동자(童子)가 오늘 백일(百日)을 맞이하는 날로, 그 백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선가귀감(禪家龜鑑)』이라고 하는 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의 골수가 똘똘 뭉쳐서 수록되어 있는,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저술하시고, 우리 용화사에서 84년도에 번역을 해서 간행한 이래로 이번까지 16판을 간행을 했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은 바로 팔만대장경이 바로 이 한 권 속에 축약(縮約)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한 경을 여러분께 법공양(法供養)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동자가 새로 태어난, 정말 어느 집에 어느 아들이라도 새로 태어났을 때에는 집안 식구뿐만이 아니라, 온 이웃사람 일가친척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들만 축복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법계(宇宙法界)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다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왜 새로 태어난 동자와 어린 애기를 축복하느냐’ 하면은, 원래 생(生)과 사(死)가 없는 것이고 또 생과 사가 둘이 아닌 것이지만, 생(生)하고 또 한평생을 살다가 인연 따라서 다시 또 몸을 바꾸고 하는 이러한 일들이, 낱낱이 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우주의 진리 체(體)인 진여불성이 있기 때문에 그 진여불성을 가지고 있는 증거로써 새로운 생을 받아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애기가 태어난 것은 바로 한 부처님이 태어난 것입니다.
물론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에는 '생(生)은 바로 그것이 죽음이다, 그러기 때문에 생(生)은 바로 고통이다, 나서 늙어서 병들어 죽는 것 이외에 뭣이 있느냐?'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마는, 진리를 깨달은 눈으로 볼 때에는 생(生)도 진리요, 늙음도 진리요, 앓는 것도 진리요, 이승을 하직하는 죽음도 진리의 한 모습인 것입니다.
마치 봄에 잎이 피고 꽃이 피며, 가을에는 단풍이 지고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눈 내리는 춘하추동 사시(四時)가 있듯이, 인생에는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고, 이런 것이 전부가 다 진리 체(體)의 하나의 살아 움직이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갓난애기가 태어나는 것은 온 우주법계로부터서 축복을 받고, 저 과거 · 현재 · 미래의 모든 부처님은 말할 것도 없고 저 하늘나라의 선신(善神)들도 축복을 하고, 저 축생이나 미물(微物)까지라도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개나 호랭이 같은 그러한 축생도 갓난애기는 절대로 해롭게 하지 않습니다. 어른은 보고 왕왕 짓고 물려고 하면서도 갓난애기는 보고 그렇게 저런 개들도 사랑을 하고, 사람이나 돼지를 막 잡아먹는 호랭이도 갓난애기는 그렇게 애끼고 사랑하는 뜻을 표하는 것입니다.
갓난애기는 순수무잡(純粹無雜)하고 청정무구(淸淨無垢)해서 조끔도 물들지를 안 했어. 그래서 그 갓난애기의 마음가짐은 바로 도인(道人)의 경지와 거의 흡사하는 것입니다.
도인의 여러 가지 그 도인의 행에, 도행(道行)에 있어서 81행(八十一行)이 있는데,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좋고 궂은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습니다. 광행(狂行) 미친 행도 있고, 승행(僧行)도 있고, 속행(俗行)도 있고, 남자행, 여자행, 뭐 심지어 화엄경에는 창녀, 53선지식 속에는 창녀도 있습니다. 마을의 장자(長者)도 있고.
그 창녀(娼女)라 하면은 세속에 빈축을 받는 상대지마는 53선지식 속에 창녀가 있다 그 말이여. 그 창녀는, 사람이 그 창녀 얼굴만 봐도 마음이 맑아지고, 그 창녀의 손만 한번 잡아도 업장(業障)이 소멸하고, 그 창녀하고 한번 잠만 자도 해탈도(解脫道)를 증득하는 그러한 창녀도 있다 그 말이여.
그런 81행 가운데에 어떠한 행(行)을 최고로 치느냐 하면,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치거든.
갓난애기,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갓난애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다못 배고프면 울 줄만 알고, 뜨거워도 울 줄 알고, 너무 추워도 울고, 또 목이 말라도 울고, 다쳐서 아퍼도 울고. 어린 아기의 언어(言語)는 우는 것이 언어여. 어린 아기 우는 것은 그것이 바로 언어이면서 그것이 바로 설법이요, 그것이 바로 예술이고, 그것이 바로 진리다 그 말이여. 왜 그러냐?
어린 아이에는 아무 사량분별(思量分別)이 없거든. 완전히 깨끗하고 순수무잡해서 거의 무심(無心) 경계에 들어가는 도인(道人)의 심경(心境)과 같더라.
그래서 그 어린 아이는 우리집 애기가 아니고, 남의 집 애기라도 애기가 났다고 하면 모두가 다 축복을 하거든.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천국에도 간다’고 하는 그런 말도 있습니다. 이것이 다 까닭이 있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한 동자의 백일을 맞이해서 오늘 이 『선가귀감』을 공양(供養)을 올리니까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이 책을 받어 가시기 바랍니다. 이 책을 손에 드신 분은 삼계악도(三界惡途)에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떨어지지 아니하실 것이고 언제나 부처님 불법 문중에 태어나실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이 한 권 속에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깨달은 경지에서 설법하신 모든 법문(法門)의 골수(骨髓)가 이 속에 다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9분41초~19분4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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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범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苦]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백일(百日) ; 아이가 태어난 날로부터 백 번째 되는 날.
*선가귀감(禪家龜鑑) ; 서산대사(휴정, 1520~1604)가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될, 선종(禪宗)을 중심으로 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참고 ❶] 송담스님(No.235)—1984년(갑자년) 법보재 법회(84.04.16)
『선가귀감』은 서산대사(西山大師)께서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속에서 그 골수(骨髓)만을 뽑아서 만드신 한 권의 책입니다. 큰 책은 아니고 아주 간단한 책인데도 그 속에는 팔만대장경의 그 깊고 깊은 진리(眞理)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공부를 해 나가야 하느냐?' 하는 그 실천 상황에 이르기까지 세밀히 다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여러분의 가보(家寶)가 될 것입니다. 최상승 참선법을 닦아 가는 데 있어서 훌륭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이 책을 보시고 여법(如法)하게 수행(修行)을 해 나가시면 살아 있는 서산대사가 나오실 것이고, 살아 있는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이 나오실 것이고, 살아 있는 중생의 탈을 쓴 살아 있는 미륵(彌勒) 부처님이 도처(到處)에서 탄생(誕生)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참고 ❷] 송담스님(No.377)—1989년 2월 첫째일요법회.
『선가귀감』 이 책을 손에 드신 분은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계(三界)에 떨어지지 아니하실 것이고 언제나 부처님 불법(佛法) 문중에 태어나실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은 이 한 권 속에 부처님께서 49년 동안 설하신 팔만대장경과 역대조사가 깨달은 경지에서 설법하신 모든 법문(法門)의 골수(骨髓)가 이 속에 다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선가귀감』 이 책은 바르게 공부해 나가도록—이 책을 보는 사람에게 신심(信心)이 일어나고, 분심(憤心)이 일어나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 ①팔만사천 법문이 있다는 뜻으로, ‘대장경(大藏經 - 부처님의 가르침을 적은 경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달리 이르는 말.
②고려 고종23년(1236)부터 38년(1251)에 걸쳐, 16년만에 불경(佛經)과 장소(章疏)를 집대성하여 목판에 새겨 인간(印刊)한 대장경. 부처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만든 경판(經板)의 수가 8만 1258판에 이른다.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하고 있다.
고려 현종(1009~1031 재위)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하여 판각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인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고종19년(1232) 몽골족의 침입으로 불타자 다시 불력(佛力)의 가호를 빌기 위하여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이라고 한다.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서산대사 약력」 p229~241 (가로판 p237~245)
대사(大師)의 법명(法名)은 휴정(休靜)이요, 자(字)는 현응(玄應)이며, 호(號)는 청허(淸虛)라 한다. 서쪽 묘향산(妙香山)에 오래 계셨으므로 서산(西山)이라고도 한다. 또 금강산 백화암(白華庵)에도 오랫동안 주석(住錫)하여 백화도인(白華道人)이라 자호(自號)하였으며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의 자리를 사임한 후에는 퇴은(退隱)이라 하였다.
속성(俗姓)은 완산 최씨(完山 崔氏)요, 속명(俗名)은 여신(汝信)이라 하였다. 또 아명(兒名)은 운학(雲鶴)이라 하였으니, 이는 대사의 세 살 때 사월 초파일 낮에 사(師)의 부친인 세창(世昌)이 누중(樓中)에서 잠들어 있노라니 몽중(夢中)에 한 노인이 와서 “소사문(小沙門)을 위탁하노라” 하며 사(師)를 품에 안고 몇 마디 진언을 마친 뒤에 사(師)의 이마를 만지며 “마땅히 ‘운학’이라 이름할진저!” 하고 갔다고 하여 소사문 또는 운학이라고 불렀다 한다.
조선 제11대 중종대왕(中宗大王) 15년(서기 1520) 경진(庚辰) 3월 26일에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다. 부(父)는 기성(箕城) 영전관(影殿官)을 지낸 세창이요, 그 모(母)는 한남 김씨(漢南 金氏)인데 그 부모님네는 동갑으로 나이 오십에 가까워서 대사를 낳았다.
대사는 어려서부터 착한 성품에 영오한 재질을 지녔건마는 불행하게도 9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0세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백 년 생계가 하루아침에 깨어지니 어린 대사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사(師)는 총명이 뛰어나고 글 재주가 있으므로 그해 겨울 그 고을 사또 이사증(李恩曾)이 대사를 불러 앞에 앉히고, 먼 산의 송설(松雪)을 가리키면서 「사(斜)」로 운자(韻字)를 부르니 대사는 곧 「향응고각일초사(香凝高閣日初斜 향기는 고각에 엉기고 해는 바야흐로 기울다)」라고 하였다. 또 「화(花)」 자를 부르자 「천리강산설약화(千里江山雪若花 천리강산에 눈은 꽃과 같다)」라고 응구첩대(應口輒對)하니 사또는 운학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우리 아해(兒孩)야!” 하면서 기뻐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었던지 사또가 전직(轉職)되어 가는 길에 대사를 서울로 데리고 가 성균관에 넣어 주었다. 이 때의 나이는 12세.
어떤 노학사(老學士)의 주선으로 유교의 경전을 대부분 독파(讀破)하고 1차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였다. 비로소 그 내막에 부정이 있음을 알고 과거를 단념하였다. 그 후 15세에 동배(同輩) 수인(數人)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화엄동(華嚴洞), 칠불동(七佛洞), 청학동(靑鶴洞) 등 대소사찰을 순방하면서 반 년을 지냈다.
어느 날 우연히 쌍계사에서 숭인장노(崇仁長老)의 설법을 듣고 다른 여러 벗들은 서울로 돌아가는데 그는 거기에 남아 전등(傳燈), 염송(拈頌), 화엄(華嚴), 원각(圓覺), 능엄(楞嚴), 법화(法華), 유마(維摩), 반야(般若) 등 수십 본의 경전을 얻어 정독한 후에 다시 영관대사(靈觀大師)에게서 3년간 지도를 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 18살이었다.
그 뒤 3년 만에 어느 날 밤 홀연히 깨친 바 있어 읊기를 「홀문두우제창외(忽聞杜宇啼窓外) 만안춘산시고향(滿眼春山是故鄕), 소쩍새 소리 듣고 창 밖을 내다보니, 봄빛 가득한 저 동산 내 고향 이 아닌가」라 하였고.
또 어느 날에는 「급수귀래홀회수(汲水歸來忽回首) 청산무수백운중(靑山無數白雲中), 물을 길어 돌아오다 고개 문득 돌이키니, 무수한 청산이 흰구름 속에 솟아 있네」라고 읊은 다음에 손에 은도(銀刀)를 쥐고 머리를 스스로 자른 후 다시 일구(一句)하되 「영작평생치애한(寧作平生痴獃漢) 불욕작연참아사(不欲作鉛槧阿師), 차라리 한 평생을 천치가 될지언정 속빈 문자승은 되고자 안하노라」라 하고,
드디어 일선대사(一禪大師)를 수계사(授戒師)로, 석희법사(釋𤋮法師) · 육공장노(六空長老) · 각원상좌(覺圓上座)를 증계사(證戒師)로, 영관대사를 전법사(傳法師)로, 숭인장노를 양육사(養育師)로 삼으니 그때(1540년)의 나이는 21세였다.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여 도솔산(兜率山) 학묵대사(學嘿大師)에게서 인가를 받았다.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때 나이가 삼십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32세 때에는 봉은사(奉恩寺)에서 승과(僧科)에 응시하여 중선(中選)에 오르고, 대선(大選)으로부터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에까지 올라 불가(佛家)에서는 그 명예가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그의 본의도 아니므로 얼마 후에 이 직책을 사임하고 주장자에 몸을 맡겨 북으로 묘향산(妙香山) 남으로 두류산(頭流山), 기타 제산을 편류하다가 금강산으로 들어가 그때 저 유명한 삼몽시(三夢詩)와 향로봉시(香爐峰詩)를 지었다.
삼몽시(三夢詩)
주인몽설객(主人夢說客) 객몽설주인(客夢說主人) 금설이몽객(今說二夢客) 역시몽중인(亦是夢中人)
주인(主人)의 꿈을 객(客)에게 말하고 객(客)의 꿈을 주인(主人)에게 말하니, 이제 두 꿈을 말하는 저 나그네, 어즈버 그도 또한 꿈 속의 사람이로다.
라 하였고 또 향로봉시(香爐峰詩)에
만국도성여의질(萬國都城如蟻垤) 천가호걸약혜계(千家豪傑若醯雞) 일창명월청허침(一窓明月淸虛枕) 무한송풍운부제(無限松風韻不齊)
만국의 서울은 개미집이요 천고의 호걸은 하루살이라. 밝은 달을 베개하고 고요히 누웠으니 끝없이 부는 솔바람 갖은 곡조 아뢰네.
라 하였다. 그 후 선조(宣祖) 22년(서기 1589년) 기축 10월에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요승 무업(無業)이 이 글로써 대사(그때의 나이 칠십)를 무고하였다. 즉 향로봉시는 임금을 모독한 글이요 또한 역적인 정여립과 음모가 있다하여 그것 때문에 어전(御前)에까지 잡혀갔었다.
그러나 말이 너무도 분명하고 그의 인격과 성품이 도리어 임금을 감동케 하여 선조는 묵죽(墨竹) 한 폭을 하사(下賜)하고 부시(賦詩)를 명하므로 대사는 곧 다음과 같이 일절(一絕)을 지어 올렸다.
소상일지죽(瀟湘一枝竹) 성주필단생(聖主筆端生) 산승향설처(山僧香爇處) 엽엽대추성(葉葉帶秋聲)
소상강의 이름난 대 한 가지, 우리님 붓 끝에 났구나. 산승이 향을 피우는 그곳에 잎사귀마다 가을 소리가 들리듯 하여라.
고 하였다. 선조께서도 이 시(詩)를 보고 친히 화답(和答)을 하였다.
엽자호단출(葉自毫端出) 근비지면생(根非地面生) 월래무견영(月來無見影) 풍동불문성(風動不聞聲)
잎은 붓 끝에서 나온 것, 뿌리도 땅에서 나온 것 아니다. 달이 와도 그림자를 볼 수 없으니 바람 분들 소리가 들릴 건가.
라 하였다. 그래서 대사와 선조대왕과는 시(詩)로써 깊이 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 뒤 선조 25년(서기 1592년) 4월에 임진난이 일어나니 대사의 나이 73세였다. 국가는 도탄에 빠지고 임금께서는 의주(義州)로 파천(播遷)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 대사는 묘향산(妙香山)으로부터 칼을 짚고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임금 앞에서 “전국의 승려들 가운데 늙고 병들어 나서지 못할 자는 각각 그들이 있는 곳에서 분향하고 불공을 올려 신불(神佛)의 도움을 받게 하고 그 나머지는 신(臣)이 통솔하고 전진 속에 뛰어들어 충성을 다하겠읍니다” 했다.
그래서 선조는 대사에게 팔도 십육종 도총섭(八道十六宗都總攝, 선교양종禪敎兩宗이므로 팔도 십육종이 됨)을 명하니 그 즉시로 행동에 옮겨 전국에 의승병을 불러일으켰다.
그 제자 송운 사명대사는 관동에서 칠백여 명을, 뇌묵 처영대사(雷默處英大師)는 호남에서 천여 명을, 그밖에 기허 영규대사(騎虛靈圭大師)는 공주에서, 중관 해안대사(中觀海眼大師)는 진주에서 일어나는 한편 휴정대사 자신은 문도들과 지원병 천오백여 명을 이끌고 모두 오천여 명이 평안 순안 법흥사(順安法興寺)에 모여 일대 승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여러 장수들에게 호응하고 혹은 명나라 군인들을 지원하면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서울을 수복한 뒤에 대사는 용사 백여 명을 이끌고 환도하는 선조대왕을 중로에서 영접하였다. 그리하여 임진난 7년 전쟁이 끝났을 때에는 대사의 나이 79세였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은 대사의 그 큰 공을 찬탄하고 한시(漢詩) 일수(一首)를 지어 바쳤다. 즉
무의도공리(無意圖功利) 전심학도선(專心學道禪) 금문왕사급(今聞王事急) 총섭하산령(總攝下山嶺)
공명에 뜻이 없어 오로지 도를 익히더니 이제 왕사(王事)가 급함을 듣고 총섭이 산에서 내려오셨네.
대사는 임난이 끝난 뒤에 다시 귀산(歸山)할 것을 왕에게 허락을 받아 모든 일은 제자인 사명당 유정(四溟堂惟政)과 뇌묵당 처영(雷默堂處英)에게 위임하고 묘향산으로 돌아가니 나라에서는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總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의 호를 내렸다.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였는데 항상 따르는 제자가 천여 명이나 되었고, 그의 법을 이어 출세한 제자가 칠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 중에서도 고명한 제자를 든다면 사명당 송운, 기허당 영규, 뇌묵당 처영, 중관당 해안, 자운당 선의(慈雲堂 宣義), 그 밖에 덕수(德守), 수인(守仁), 혜조(慧照), 신열(信悅), 의엄(義嚴) 등이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선조 37년(서기 1604년) 갑진(甲辰)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부좌(趺坐)하여 열반에 드시니 세수(世壽)는 85세요, 선납(禪臘)은 예순 다섯이었다.
그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년전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후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
천계만사량(千計萬思量)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 니우수상행(泥牛水上行) 대지허공렬(大地虛空裂)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그날에 이향(異香)이 방에 차 삼칠일(三七日) 후에야 그치었다 하며, 화장하는 날에는 제자 원준(圓峻), 인영(印英) 등이 영골 일편(靈骨一片)과 사리 삼과(舍利三顆)를 얻어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에 또한 유정, 자휴(自休) 등이 정골 일편(頂骨一片)과 신주 수매(神珠數枚)를 얻어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북쪽 언덕에 봉안하고, 그의 유물(遺物)은 대개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海南 大興寺)에 모셨다.
대사가 남긴 저서는 『청허집(淸虛集)』 상하 두 책(上下二冊)과 『선가귀감(禪家龜鑑)』, 『삼가귀감(三家龜鑑)』, 『선교석(禪敎釋)』, 『운수단(雲水壇)』 각 한 권이 있다.
*법공양(法供養)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중생들에게 베풂. ②불서(佛書)를 사람들에게 베풂. ③부처님의 가르침을 공경하고 찬탄함. 경전에 꽃·향 등을 바침.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원래 생(生)과 사(死)가 없는 것이고’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산스크리트어]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부처님[佛] ; 불(佛)은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Buddha의 음사(音寫)인 「불타(佛陀)」의 준말. 각자(覺者 깨달은 분) · 각(覺 깨달음)이라 번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주요한 네 가지 현상. 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생(生), 노쇠하는 현상을 노(老), 병든 현상을 병(病),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사(死)라 한다. 생사를 반복하는 윤회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사상(四相)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사고(四苦)라고도 한다. 생로병사가 사라진 경계가 무위법(無爲法)인 열반(涅槃)이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4~135. (가로판 p139~141)
佛云, 無常之火가 燒諸世間이라 하시고 又云, 衆生苦火가 四面俱焚이라 하시며 又云, 諸煩惱賊이 常伺殺人이라 하시니 道人은 宜自警悟하야 如救頭燃이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살라 버린다」하시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하시며, 또 「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하시니,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할지어다.
註解(주해) 身有生老病死하고 界有成住壞空하고 心有生住異滅하니 此無常苦火가 四面俱焚者也라
【謹白參玄人하노니 光陰을 莫虛度하라
몸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에는 이루어지고[成] 지속되고[住] 파괴되고[壞] 없어져[空] 버리는 것이 있으며, 마음에는 일어나고[生] 머물고[住] 변해 가고[異] 사라져[滅] 버리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덧없는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치를 참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부디 광음을 아껴 헛되이 보내지 말라.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成],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住], 쇠퇴하여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壞], 모든 것이 괴멸되어 허공만 있는 과정(상태)[空]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선신(善神) ; 불법(佛法)과 그것을 믿는 이들을 보호하는 신.
*순수무잡(純粹無雜 순수할 순/순수할 수/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수(純粹)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청정무구(淸淨無垢 맑을 청/깨끗할 정/없을 무/때·티끌 구) ; 맑고 깨끗하여 때가 없음. 맑고 깨끗하여 더럽거나 속된 데가 없음.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도인(道人)의 81행(行) ;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런 81행 가운데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인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여등암화상(與藤菴和尙 등암화상에게 주다)'에서.
〇達磨大師入唐土 敷演最上乘法 不論誦經念佛持呪禮拜 不論長坐不臥一食卯齋 不論禪定解脫 不論持戒破戒僧俗男女 見性卽成佛 若以誦經等餘外法 妄爲佛法 殺却無罪過
달마대사가 당나라에 들어와 최상승법을 폈는데, 경을 읽고 염불하고 주문을 외고 예배하는 것을 논하지 않았으며, 장좌불와 일종식도 논하지 않았으며, 선정과 해탈도 논하지 않았으며, 계(戒)를 지키고 파하는 것이나 승속 남녀도 논하지 않았으며, 자기 성품을 보면 곧 성불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경을 읽는 등이나 그밖의 법을 망령되이 불법이라 한다면 그런 사람은 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又云 栴多羅見性成佛 不論作殺生業 縱作業 不同他人 業拘不能 白衣見性成佛 不論淫欲 縱有餘習 亦不相妨 洪州云 善亦是心 不可將心還修於心 惡亦是心 不可將心還斷於心 牛頭禪師云 心無異心 不斷貪淫
또 "전다라가 견성성불함에 살생업을 지은 것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업을 짓더라도 다른 사람과 달라서 업에 구애되지 않으며, 속인이 견성성불함에 음욕을 논하지 않으니, 비록 남은 습기가 있더라도 또한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홍주(마조도일) 스님은 "선(善)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닦을 수 없고, 악도 또한 이 마음이니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마음을 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며, 우두 선사는 "마음에 다른 마음이 없으니 탐심과 음욕을 끊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故善知識牧牛 有八十一行 自佛行梵行 乃至有殺盜淫酒等行 而道眼明白 亦無所碍 故潙山禪師云 只貴正眼 不貴行李處 故此法門逈出三乘 汎學者 實不可思議 古有習小乘戒律者 皆誹謗禪師 而如蟷螂捍轍 斥鷃笑鵬 置之莫論
그러므로 선지식의 목우행(牧牛行)에 81가지가 있으니,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 이르기까지 도안(道眼)이 명백하면 아무 구애될 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위산선사는 "다만 안목이 바름만 귀하게 여기고 행리(行履)는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법문은 삼승을 멀리 벗어났으니, 범범하게 배우는 사람은 실로 생각으로 헤아려 알 수 없습니다. 옛날에 소승의 계율을 익힌 이들은 모두 선사를 비방했으나 이는 버마재비(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고 뱁새가 대붕(大鵬)를 비웃는 격이니, 제쳐두고 논하지 않겠습니다.
*53선지식(五十三善知識) ;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선재 동자(善財童子)가 복성의 동쪽 장엄당사라림에서, 최초로 문수 보살의 법문을 듣고 남방으로 향하여 차례차례 찾아가서 법문을 들은 53위의 선지식(스승).
*장자(長者) ; ①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 세상일에 익숙한 어른. ②큰 부자를 점잖게 이르는 말.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해탈도(解脫道) ; ①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이나 수행.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난 경지. ②사도(四道)의 하나.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하는 단계.
*영아행(嬰兒行 어린아이·갓난아이 영/아이·아기·젖먹이·나이가 어린 사람 아/행하다·행위 행) ; 체모(體貌)도 없고, 옳고 그른 것도 없고, 좋고 나쁜 것도 없고, 아무 철이 들지 아니한 젖을 먹을 나이의 어린아이의 행동. 도인(道人)의 81행(行)이 있는데, 81행 가운데 영아행(嬰兒行)을 최고로 친다.
도인의 여러 가지 행에 있어서 81행이 있는데, 「도인의 81행」이라 함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좋고 궂은 모든 행위가 다 포함될 수가 있다.
불행(佛行) · 범행(梵行)으로부터 광행(狂行) · 영아행(嬰兒行)도 있고, 승행(僧行) · 속행(俗行) · 남자행 · 여자행, 그리고 심지어 살생 · 도둑질 · 음행 · 음주 등의 행(行)에까지 이르나 도안(道眼, 道의 眼目)이 명백하면 아무 걸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
*체모(體貌 몸 체/얼굴 모) ; 체면(體面). 남을 대하기에 번듯하고 떳떳한 입장이나 면모.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무심(無心) ;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번뇌와 망상이 소멸된 상태.
*경계(境界) ; 산스크리트어 viṣaya ①대상, 인식 대상, 여러 감각기관에 의한 지각의 대상. 인식이 미치는 범위. ②경지(境地). ③상태. ④범위, 영역.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계악도(三界惡途, 三界惡道) ; 삼계의 악도(惡途)를 일컫는 말. 삼계는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를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 세 범주로 분류한 것으로, 보다 구체화하면 욕계에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 인간 · 하늘 중의 일부가 포함되고, 색계와 무색계에 나머지 하늘이 포함된다. 이 중 욕계의 지옥 · 아귀 · 축생 등의 세 가지는 악업(惡業)의 과보로 태어나는 곳으로 고통이 가장 심한 세계이기 때문에 묶어서 삼악도(三惡途)라 부른다. 여기에 아수라를 더하여 사악도(四惡途)라고 하기도 한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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