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자성중생서원도2020. 1. 26. 20:15

자성중생서원도 (No.389)—‘이뭣고?’할 때 마음속 진리의 등불을 켜는 것, 자성중생을 제도하는 것 | 가장 근원적이고 높고 거룩한 법문, 거룩한 관법은 활구참선법.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 ; '자성(마음속의) 중생을 맹세코 다 건지오리다'

불보살은 다만 우리 마음에서 끊임없이 퍼 일어나는 한량없는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는데,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생각의 본체가 공(空)이라고 하는 사실을 확실히 요달(了達)한 것이 그것이 바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것.

그래서 그 공적(空寂)의 이치를 이미 깨달라 버리면 실로 제도할 중생이 따로 없고, 그러므로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가 없다. 이것이 바로 불보살이 자성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이다.

 

*자성중생(自性衆生) ; '자성 속에 있는 중생' 불보살은 다만 우리 마음에서 끊임없이 퍼 일어나는 한량없는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는다. 무명 속에 갇혀 있는 생각,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탐진치 등의 번뇌망상이 자성 속의 중생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90. (가로판 p94~95)

菩薩이  度衆生入滅度나  又實無衆生이  得滅度니라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들게 했다 하더라도 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느니라.

    

(註解) 菩薩은  只以念念으로  爲衆生也니  了念體空者는  度衆生也요  念旣空寂者는  實無衆生得滅度也니라  此上은  論信解니라

보살은 다만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으니 생각의 본체가 빈 이치를 요달한 것이 곧 중생을 건지는 것이요, 생각이 이미 비고 고요하다면 사실 제도할 중생이 따로 없느니라。이 위는 믿음과 깨침을 말한 것이다.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참회품(懺悔品)’에서.

선지식이여, 이제 이미 참회하였으니 여러 선지식들과 더불어 사홍서원을 발하리라. 모름지기 각자 마음을 바르게 써서 들으라.(善知識 旣懺悔已 與善知識發四弘誓願 各須用心正聽)

 

자기 성품 속의 중생 가없지만 서원코 건지리이다.(自心衆生無邊誓願度)

자기 성품 속의 번뇌 가없지만 서원코 끊으리이다.(自心煩惱無邊誓願斷)

자기 성품 속의 법문 한량없지만 서원코 배우리이다.(自性法門無盡誓願學)

자기 성품 속의 불도 위없지만 서원코 이루리이다.(自性無上佛道誓願成)

 

선지식이여! 큰 가풍을 이으면서 어찌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이 가없지만 서원코 건지리이다)’라 이르지 아니할까마는 이와같이 말하는 것은 또 이 혜능(惠能)이 누구를 제도하겠다[度]는 뜻이 아니다.(善知識 大家豈不道衆生無邊誓願度 恁麽道 且不是惠能度)

 

선지식이여, 마음 가운데 중생이란 삿되고 어리석은 마음, 헛되이 속이는 마음, 선량하지 못한 마음, 질투하는 마음, 악독한 마음 등 이러한 마음이 모두 다 중생이니, 각기 반드시 자기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 이것을 참 제도[眞度]라 한다.(善知識 心中衆生 所謂邪迷心 誑妄心 不善心 嫉妬心 惡毒心 如是等心 盡是衆生 各須自性自度 是名眞度)

 

어찌하여 ‘자기 성품을 스스로 제도한다’고 부르는가? 곧 자기 마음 속 삿된 견해나 번뇌, 어리석음의 중생을 정견(正見)으로써 제도하는 것이다.(何名自性自度 卽自心中邪見煩惱愚癡衆生 將正見度)

 

이미 정견이 있으면 반야 지혜를 사용함으로써 우치(愚癡) 미망(迷妄) 같은 마음 속의 중생을 타파(打破)하여 각각 스스로 제도한다. 삿됨이 오면 정(正)으로 제도하고, 미혹함[迷]이 오면 깨달음으로 제도하며,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제도하고, 악(惡)이 오면 선(善)으로 제도함이니, 이와같이 제도하는 것을 진도(眞度), 참된 제도라 한다.(旣有正見 使般若智打破愚癡迷妄衆生 各各自度 邪來正度 迷來悟度 愚來智度 惡來善度 如是度者 名爲眞度)

 

또 ‘번뇌무변서원단(煩惱無邊誓願斷 번뇌가 가없지만 서원코 끊으리이다)’이라 하는 것은 자기 성품의 반야 지혜로 허망한 생각 따위들의 마음을 제거시키는 것이다.(又煩惱無邊誓願斷 將自性般若智 除却虛妄思想心是也)

 

또 ‘법문무진서원학(法門無盡誓願學 법문이 한량없지만 서원코 배우리이다)’이라 하는 것은 모름지기 스스로의 참성품을 보아 항상 정법(正法)을 행하는 것이니 그것을 참다운 배움[眞學]이라 부른다.(又法門無盡誓願學 須自見性 常行正法 是名眞學)

 

또 ‘무상불도서원성(無上佛道誓願成)’이라 하는 것은 이미 늘 하심(下心)하여 참으로 올바르게 행하므로 미혹함도 여의고 깨달음도 여의어서, 늘 반야를 내며 진(眞)도 끊고 망(妄)도 끊어버리면 곧 부처의 성품을 보리니, 언하(言下)에 불도를 곧 이루리라. 항상 이와같이 수행을 생각함이 이것이 원력법(願力法)이다.(又無上佛道誓願成 旣常能下心 行於眞正 離迷離覺 常生般若 除眞除妄 卽見佛性 卽言下佛道成 常念修行是願力法)

 

(5분 20초)

 

[법문]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

 

우리는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해서 등(燈) 하나를 켭니다마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등 하나지만 그 속에는 우리의 정성이 담겨있습니다.

왜 등을 켜는 그러한 준례가 생겨났을까요? 우리의 마음속에 ‘부처님의 진리의 등’을 켜도록 하기 위해서 등불을 켜는 것입니다. 이 등불을 켜면 어두운 밤이 밝아지듯이 ‘마음속의 등을 켜라.’

 

‘마음속의 등(燈)을 무엇으로 켜?’ ‘이뭣고?’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오욕(五欲) 경계를 물리치는 등불을 켜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언필칭(言必稱)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탄생하신 것은 한량없는 중생(衆生)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부처님이 나오셨다’ 다 그렇게 말합니다.

중생 제도를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물에 빠져 있는 사람 건져내듯이 중생을 그렇게 건질 수가 있을까요?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시되, 실지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사람이 없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불보살은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끊임없이 온갖 생각이 퍼 일어나는데 그 한량없는 생각을 바로 중생을 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그 체(體)가 공(空)한 거여.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생각의 본체는 무엇이냐?’하면은 공(空)이거든. 확실히 그 생각의 본체가 진공(眞空)이라고 하는 사실을 요달(了達)한 것이 그것이 바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공적(空寂)의 이치를 이미 깨달라 버리면 실로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가 없다. 이것이 바로 불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성중생(自性衆生)이거든.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여. 우리는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불제자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자성중생을 제도하는 도리를 터득을 해야 하는 것이여.

 

불법(佛法)의 근본 뿌리는 중생심으로부터 나온 것이여. 그래서 중생심, 거기서 무량 부처님도 출세(出世)하셨고, 팔만사천 보살도 거기서 출세하셨어.

 

‘우리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그 일념(一念), 그 ‘한 생각’은 진여불성으로부터 일어나는 하나의 버큼이요 하나의 물결인데,

그 일어나는 최초의 그 ‘한 생각’을 딱! 돌이켜서 ‘이뭣고?’할 때에 팔만사천의 묘행(妙行)이 그 속에 다 갖추어져 있는 거여. 팔만사천 경(經)에 쓰여 있는 법문의 뜻도 그 속에 들어있는 거여.

그래서 이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최상승법(最上乘法)이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관법(觀法)이 있고, 많은 부처님의 법문(法門)이 있지만 가장 근원적이고 가장 최고의 높고 거룩한 법문이요 거룩한 관법은 이 활구참선법이라.(29분14초~34분3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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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오욕(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언필칭(言必稱) ; 말을 할 때면 항상 일컫기를.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시되, 실지 한 중생도 제도를 받은 사람이 없다』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 그래서 그 공적(空寂)의 이치를 이미 깨달라 버리면 실로 한 중생도 제도받은 자가 없다. 이것이 바로 불보살이 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인 것입니다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90. (가로판 p94~95)

菩薩이  度衆生入滅度나  又實無衆生이  得滅度니라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들게 했다 하더라도 실은 열반을 얻은 중생이 없느니라.

    

(註解) 菩薩은  只以念念으로  爲衆生也니  了念體空者는  度衆生也요  念旣空寂者는  實無衆生得滅度也니라  此上은  論信解니라

 

보살은 다만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으니 생각의 본체가 빈 이치를 요달한 것이 곧 중생을 건지는 것이요, 생각이 이미 비고 고요하다면 사실 제도할 중생이 따로 없느니라。이 위는 믿음과 깨침을 말한 것이다.

*공(空) ; ①모든 존재는 여러 인연으로 생겨남으로 항상 독자적으로 불변하는 실체가 없음. 자성이 없음(無自性). 아무 것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일반적인 의미가 불교에서는 존재의 본질을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된다.

공은 전혀 없다는 무(無)나, 결국 사라져 덧없다는 허무(虛無)가 아니다. 또 공(空)은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는 명제를 바탕으로 모든 것의 배후에 있는 불변의 실체 · 본질이 아니라, 존재의 무실체성 · 무자성 등을 자각함으로써 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표이다.

공을 허무나 실체로 보는 것은 공에 대한 집착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참된 공[眞空]이 아니라 무기공(無記空) · 편공(偏空) · 악취공(惡取空) 등이라고 한다. 이러한 공의 병[空病]에 대한 약으로 '공도 공'이라고 하는 것이다.

②차별과 분별로써 인식된 대상은 관념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는 뜻. 가치나 감정이 부여된 인식 대상은 인식 주관이 조작한 허구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분별에 의해 인식 주관에 드러난 대상은 허구라는 뜻.

③잇달아 일어나는 분별과 망상이 끊어진 상태. 번뇌와 분별이 소멸된 상태. 분별과 차별을 일으키는 마음 작용이 소멸된 상태.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자성중생(自性衆生) ; '자성 속에 있는 중생' 불보살은 다만 우리 마음에서 끊임없이 퍼 일어나는 한량없는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는다. 무명 속에 갇혀 있는 생각,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탐진치 등의 번뇌망상이 자성 속의 중생이다.

*자성중생서원도(自性衆生誓願度) ; '자성(마음속의) 중생을 맹세코 다 건지오리다'

불보살은 다만 우리 마음에서 끊임없이 퍼 일어나는 한량없는 생각 생각으로써 중생을 삼는데, 끊임없이 일어나는 그 생각의 본체가 공(空)이라고 하는 사실을 확실히 요달(了達)한 것이 그것이 바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한 것.

그래서 그 공적(空寂)의 이치를 이미 깨달라 버리면 실로 제도할 중생이 따로 없고, 그러므로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가 없다. 이것이 바로 불보살이 자성중생을 제도하는 도리이다.

[참고] 『육조단경(六祖壇經)』 ‘참회품(懺悔品)’에서.

선지식이여, 이제 이미 참회하였으니 여러 선지식들과 더불어 사홍서원을 발하리라. 모름지기 각자 마음을 바르게 써서 들으라.(善知識 旣懺悔已 與善知識發四弘誓願 各須用心正聽)

자기 성품 속의 중생 가없지만 서원코 건지리이다.(自心衆生無邊誓願度)

자기 성품 속의 번뇌 가없지만 서원코 끊으리이다.(自心煩惱無邊誓願斷)

자기 성품 속의 법문 한량없지만 서원코 배우리이다.(自性法門無盡誓願學)

자기 성품 속의 불도 위없지만 서원코 이루리이다.(自性無上佛道誓願成)

 

선지식이여! 큰 가풍을 이으면서 어찌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이 가없지만 서원코 건지리이다)’라 이르지 아니할까마는 이와같이 말하는 것은 또 이 혜능(惠能)이 누구를 제도하겠다[度]는 뜻이 아니다.(善知識 大家豈不道衆生無邊誓願度 恁麽道 且不是惠能度)

선지식이여, 마음 가운데 중생이란 삿되고 어리석은 마음, 헛되이 속이는 마음, 선량하지 못한 마음, 질투하는 마음, 악독한 마음 등 이러한 마음이 모두 다 중생이니, 각기 반드시 자기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 이것을 참 제도[眞度]라 한다.(善知識 心中衆生 所謂邪迷心 誑妄心 不善心 嫉妬心 惡毒心 如是等心 盡是衆生 各須自性自度 是名眞度)

 

어찌하여 ‘자기 성품을 스스로 제도한다’고 부르는가? 곧 자기 마음 속 삿된 견해나 번뇌, 어리석음의 중생을 정견(正見)으로써 제도하는 것이다.(何名自性自度 卽自心中邪見煩惱愚癡衆生 將正見度)

이미 정견이 있으면 반야 지혜를 사용함으로써 우치(愚癡) 미망(迷妄) 같은 마음 속의 중생을 타파(打破)하여 각각 스스로 제도한다. 삿됨이 오면 정(正)으로 제도하고, 미혹함[迷]이 오면 깨달음으로 제도하며,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제도하고, 악(惡)이 오면 선(善)으로 제도함이니, 이와같이 제도하는 것을 진도(眞度), 참된 제도라 한다.(旣有正見 使般若智打破愚癡迷妄衆生 各各自度 邪來正度 迷來悟度 愚來智度 惡來善度 如是度者 名爲眞度)

 

또 ‘번뇌무변서원단(煩惱無邊誓願斷 번뇌가 가없지만 서원코 끊으리이다)’이라 하는 것은 자기 성품의 반야 지혜로 허망한 생각 따위들의 마음을 제거시키는 것이다.(又煩惱無邊誓願斷 將自性般若智 除却虛妄思想心是也)

또 ‘법문무진서원학(法門無盡誓願學 법문이 한량없지만 서원코 배우리이다)’이라 하는 것은 모름지기 스스로의 참성품을 보아 항상 정법(正法)을 행하는 것이니 그것을 참다운 배움[眞學]이라 부른다.(又法門無盡誓願學 須自見性 常行正法 是名眞學)

 

또 ‘무상불도서원성(無上佛道誓願成)’이라 하는 것은 이미 늘 하심(下心)하여 참으로 올바르게 행하므로 미혹함도 여의고 깨달음도 여의어서, 늘 반야를 내며 진(眞)도 끊고 망(妄)도 끊어버리면 곧 부처의 성품을 보리니, 언하(言下)에 불도를 곧 이루리라. 항상 이와같이 수행을 생각함이 이것이 원력법(願力法)이다.(又無上佛道誓願成 旣常能下心 行於眞正 離迷離覺 常生般若 除眞除妄 卽見佛性 卽言下佛道成 常念修行是願力法)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진여불성(眞如佛性) ; 진여(眞如)인 불성(佛性).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버큼 ; '거품'의 사투리.

*묘행(妙行 말할 수 없이 빼어나고 훌륭하다 묘/행하다 행) ; ①신(身) · 구(口) · 의(意)에 있어 청정한 행위. 또는 선한 행위. 사람으로서의 바른 행동. ②지혜로운 분[智者]이 칭찬하는 행위.

*묘(妙) ; (산스크리트어) sat, su, mañju. 차례대로, 살(薩) · 소(蘇) · 만유(曼乳) 등으로 음사하고, 불가사의한 것, 절대적인 것, 비교할 수 없는 것 등의 뜻이 있다.

뛰어난 경전을 묘전(妙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법을 묘법(妙法), 불가사의한 도리를 묘리(妙理), 불가사의한 경계를 묘경(妙境), 묘인(妙因)과 묘행(妙行)에 의하여 증득한 과(果)를 묘과(妙果)라고 한다. '묘(妙)'라는 말은 불가사의하고 뛰어난 모든 것을 형용하기 위해 사용된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관법(觀法) ;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두고, 분별적인 사유에 휩싸이지 않고, 대상[諸法]의 인상이나 겉모습에 떠돌지 않고, 대상을 꿰뚫어서 대상[諸法]의 진실한 모습을 통찰하는 수행. 이로써 고통과 근심을 소멸하고 올바른 길에 들어서게 하고 열반(涅槃-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을 깨닫게 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