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19분 1초)

 

[법문]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용582)

 

일등능속백천등(一燈能續百千燈)이라  심인광통법령행(心印光通法令行)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연휘열염전분명(聯輝列焰轉分明)이라  천성부전취불멸(千聖不傳吹不滅)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일등능속백천등(一燈能續百千燈), 한 등(燈)에 불을 밝히면은 그 한 등의 심지로 인해서 백 등, 천 등, 만 등의 수없는 등에 그 등불을 붙여서, 수천만 등의 불을 붙여서 온 세상을 다 밝힐 수가 있을 것이다.

 

심인광통법령행(心印光通法令行)이여. 그 한 등(燈)이라 하는 것은 한 부처님의 깨달음의 등(燈)인데, 한 부처님이 깨달음으로 해서 많은 제자들, 많은 중생들에 그 깨달음에 이르는 법문(法門)을 설해 가지고 그 법문에 의해서 수행을 해 가지고 각자가 자기 마음속에 깨달음의 등불을 밝힌 것에다가 빗대서 읊은 게송인데.

 

그 마음에, 심인(心印)에 등불이 환히 한 사람 사람마다 다 밝혀서 온 세상에 밝혀진다면 불법(佛法)의 법령(法令)이 온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그말이여.

 

연휘열염전분명(聯輝列焰轉分明)이여. 그래 가지고 그 등불이 온 세상에, 등불에 또 등불에 의해서 다른 등불에 밝히고, 한 등불이 수천 수만 등에 밝히니 그 수천 수만 등이 다시 또 수천 수만 등에 밝혀 가지고 온 세계가, 삼계(三界)가 깨달음의 등불로 가득 차게 된다면,

천성부전취불멸(千聖不傳吹不滅)이다. 그 깨달은 진리는 아무리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그 깨달음을 어떤 등불에 등불을 붙이듯이 각자 이렇게 붙여 주기는 어려운 거고, 깨달음에 나아가도록 법을 설하셔.

 

진짜 깨닫기는 자기가 깨달아야 하는 것이여. 그래서 이 ‘참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전할 수가 없는 것이여. 천성(千聖)도 전할 수 없는 이 진리의 등불은 아무리 폭풍이 불어도 영원히 꺼지지 아니할 것이다.

 

‘이 깨달음의 진리를 전할 수가 없다’고, 전할 수 있고 말로 할 수 있다면은 ‘참 진리’가 아니고 ‘참 법’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과거의 모든 부처님은 팔만사천(八萬四千) 법문을 설하시고, 역대조사(歷代祖師)도 다 수없는 설법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가르켜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르켜 가지고 되는 것이라면 진즉 우리가 다 성불(成佛)했을 것이고,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마는, 가르킨다고 되는 것은 아니여.

가르킨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마는 부처님께서는 49년 동안을 인도 천지를 다니시면서 제자들과 같이 걸식(乞食)을 하시면서 그 많은 설법을 하셨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이 주안, 이 염전 갯벌 가에다가 용화선원을 창설을 해 가지고 77세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오늘 아침에 법문 가운데에도 뭘 공양을 잘 못 잡수셔서 새벽에 허기가 진 상태에서도 그런 사자후(獅子吼) 법문을 하셨습니다.

법문 가운데도 ‘먹은 것이 없어 기운이 없어서 말을 못하겠어 그만 마친다’는 이런 가슴 아픈 말씀이 나왔습니다마는.

 

말을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마는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하고 가르켜야 합니다.

배워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여!

 

강사는 강사대로 인연 있는 사람을 위해서 자기가 일생 동안 공부한 부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켜야 하고, 불교학자는 학자대로 일생 동안 공부한 것을 학생들에게 교리를 강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상 이 ‘내가 나를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가르킬 수도 없고 배워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부처님과 조사들께서 직접 깨달으시고 그 깨달으신 경험에 의해서 지도하시는 그 방법에 의지해서 우리도 열심히 해야만 되고,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여.

 

그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이요, 활구참선(活句參禪)인 것입니다.

 

무엇이 최상승법이냐?

내가 나를 찾는 공부여.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 원각경 그런 많은 대승 경전이 있고, 소승 경전이 있습니다마는 학자들이 ‘이것은 대승(大乘) 불교다, 이것은 소승(小乘) 불교다’ 학자들이 연구상 편의상 그렇게 갈라놓은 것이지 부처님의 설법에 어찌 분명하게 콩과 팥을 가르듯이 소승, 대승이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학자들이 말하는 소승법을 설한다 해도 소승 속에 바로 최상승법이 들어 있는 거고, 대승을 설하시되 대승 경전 속에서도 얼마든지 소승 불교 교리가 다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에 집착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마는.

 

이 최상승법이라 하는 것은 언어 · 문자로 연구해서 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불립문자(不立文字) 견성성불(見性成佛)이여.

학술적으로 이론적으로 연구하고 따져서 들어가는 공부가 아니여. 그래서 이것을 불립문자라 그러는데, 내가 나를 찾는 것이여.

 

‘내’라는 게 무엇이냐?

 

사람들은 ‘내’라, ‘나’다 하면은 이 사지백체(四肢百體), 안이비설신의 이목구비(耳目口鼻)를 갖춘 이 육체를 기준으로 해서 ‘나’다 그러고.

호적도 역시 아무 날 아무 시에 아무 아버지와 아무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 그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거기다가 이름과 생년월일을 해서 호적에 올리고, '그 사람' 하면 바로 그 육체를 기준으로 해서 말하는 것이나, 어찌 그것이 ‘나’일 수가 있겠습니까.

 

나라고 하는 것은 육체, 그 육체 속에 들어 있는 나의 주인공이 있어. 이런 말도 분명히 말하면 어폐(語弊)가 있는 말이지만, 우리는 부득이해서 이러한 방편으로 말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이 육체는 이 주인공(主人公)이 입고 있는 한 벌의 옷에 지내지 못한 것입니다. 주인공이 이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주인공이 입고 있는 옷이 바로 이 육체다. 우리는 그 육체 위에 다시 또 여러 가지 옷을 입고 살고 있습니다마는.

우리의 참나, 우리의 주인공이 이 몸뚱이 속에 들어 있어. 이 옷을 벗으면 우리 육체가 있듯이 육체 속에는 우리의 주인공이 들어 있는데 해부를 해 봤자 오장육부를 샅샅이 뒤져도 그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나오지는 않으지만 분명히 이 주인공이 들어 있기 때문에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알고, 배고프면 밥 먹을 줄도 알고, 가만히 앉어서도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왔다갔다해.

10년 전,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어릴 적 일도 생각하면 환하거든. 몸은 여기 있으면서도 '서울역' 하면 서울역이 환하고, 여러분의 집안을 생각하면 집에도 왔다갔다할 수가 있다 그말이여. 천만리 멀고 가까운 곳이 상관이 없고, 시간적으로도 과거 미래 맘대로 왔다갔다해.

 

그러한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이, 우리 모두 낱낱이 다 주인공이 있다 그말이여.

 

그걸 마음이라 하기도 하고, 성품이라 하기도 하고, 진여라 하기도 하고, 불성이라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경전마다 법계니 진여니 불성이니 여여니, 여러 가지 경전에도 경전마다 이름이 다 다르고 세계 각국에 다 나라마다 말이 다 다르지만, 이름이야 일법천명(一法千名)이여, 한 법에 천 가지 이름이 있어서 그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볼래야 볼 수도 없고,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지마는 분명히 이 소소영령한 놈이 있다 그말이여. 이 육안(肉眼)으로 볼 수는 없어.

 

그것을 방법에 의해서 활구참선법에 의해서 그것을 찾는 것이다. 어떻게 찾느냐?

 

종파(宗派)에 따라서 찾는 방법이 그 조사들의 방편에 따라서 여러 가지 법이 있지만, 그 법 가운데에 우리 한국에서는 한국의 선지식(善知識)들은 임제종(臨濟宗)의 간화선(看話禪)이라고 하는 방법, 화두(話頭)를 참구(參究)함으로써 화두를 타파(打破)해 가지고 자기의 ‘참나’를,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닫도록 하셨다 그말이여.

 

여러 종파가 자기 종파의 방법이 좋다고 다른 종파의 방법을 서로 비난하고 헐뜯고 과거의 역사에도 그런 것이 있습니다마는, 우리는 그런 것에 관여할 필요가 없고.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자기가 믿는 선지식으로부터 지정을 받아 가지고—화두가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화두(千七百話頭)가 있고, 문헌상에 오르지 아니한 화두는 이 우주법계에 가득찬 것이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화두 아닌 것이 없고 공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멋대로 아무거나 하나 선택해 가지고 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래서는 안 될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멋대로 화두를 선택하면 하다가 좀 잘 안되면 언제라도 자기 멋대로 버리게 되고 또 다른 화두를 가지고 하고. 이러한 폐단이 있습니다.

 

우물을 팔 때 조금 파봐서 안 나온다고 또 장소를 옮겨서 또 파고 또 파고. 몇십 군데를 파봤자 금방 나서 나온 물은 그건 건수(乾水)지 참으로 좋은 물이 아닙니다. 장마 때는 꿀꿀 나오다가 가물 때는 끊어져 버리는 그러한 물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열 길, 스무 길, 서른 길, 백 미터, 이백 미터를 파고 들어가서 암반이 나오면 그 암반을 뚫고 그 암반 밑에서 나온 물이라야 사시절 가뭄과 장마에 상관없이 변함없이 좋은 물이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뜨신 물이 꿀꿀 솟아나올 것입니다.

 

화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믿는 선지식한테 화두를 타야 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 멋대로 자꾸 화두를 바꿔 싸면 그 사람은 정말 큰 깨달음을 얻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화두를 하나 가장, 그 선지식이 보아 가지고 이 사람에게는 이런 화두가 적당하겠다. 그 화두를 딱 지정을 해 주면 잘되거나 안 되거나 정말 이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몸과 목숨을 바칠 생각을 해 가지고,

잘된다고 해서 잘된 데에 빠지지도 말고, 잘 안된다고 해서 번민하고 ‘이 화두가 안 좋아서 그러나? 화두가 나한테 안 맞아서 그러나?’해 가지고 화두를 제멋대로 바꿔 가지고 이 화두로 좀 껄적껄적 해 보다 안 되면 저 화두를 해 보고, 평생을 해 봤자 진정 참 깨달음에는 이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누구고 화두를 타 가지고 정진하는데 처음부터서 잘 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숙세에 선근(善根)이 있어서 일언지하(一言之下)에 툭 터지는 그런 사람일 경우는 몰라도 대부분이 우리가 다 중근기 · 하근기인데,

처음에는 다 어렵지마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참선법(參禪法)을 믿기 때문에, 최상승법을 믿기 때문에, 이 정법을 믿기 때문에, 그 선지식을 믿기 때문에 한 화두를 가지고 주삼야삼(晝三夜三)에 이 한 화두를 가지고 목숨을 거기다가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22분23초~41분2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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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일등능속백천등~’ ; 『금강경오가해』 무단무멸분(無斷無滅分) 종경스님 게송 참고.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심인(心印) ; 선종에서 언어나 문자로 나타낼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진 깨달음. 심지(心地) · 불심인(佛心印)이라고도 한다. 심(心)은 불심(佛心)을 뜻하고 인(印)은 인가(印可) · 인증(印證)을 말한다.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팔만사천(八萬四千) : 중생의 망상이 벌어져 나가는 것을 자세히 분석하면 팔만 사천 갈래가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망상을 따라 일어나는 악마의 수효도 팔만 사천이요, 망상을 다스리는 법문도 팔만 사천이다.

인도에서는 많은 수효를 말할 때에는 이 말을 쓰는 수가 가끔 있다. 줄여서 팔만이라고만 하기도 한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걸식(乞食 빌·구할·청할 걸/밥·음식 식) ; ①빌어서 얻어먹음. ②수행자가 수행을 위해 육신을 지탱하고자 일정한 법도에 따라 남에게 음식을 받는 것.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불립문자(不立文字) ; 진리는 문자로 표현 할 수 없는, 개념으로 규정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것. 선종에서 법(法)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것이므로, 따로 언어•문자를 세워 말하지 않는데 참 뜻이 있다고 하는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어폐(語弊 말씀 어/해어질·쓰러질 폐) ; ①적절하지 아니하게 사용하여 생기는 말의 폐단이나 결점. ②남에게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말.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 · 마조(馬祖) · 백장(百丈) · 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건수(乾水 마를 건/물 수) ; 평상시에는 물이 고여 있지 않다가, 장마 때 땅속으로 스몄던 빗물이 잠시 솟아나서 괴는 샘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