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송(尋牛頌) (No.401)

 

*심우송(尋牛頌) ; 십우송(十牛頌). 우리의 마음자리를 ''에다가 비유해서, 소를 찾아서 길들이는 과정을, 수행자가 보리심(菩提心)을 ()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보림(保任)  완성을  다음에 중생을 교화하러 나가는 데까지 10단계로 구분하여 게송으로 읊은 것.  그림으로 그린 것을 심우도(尋牛圖)  · 십우도(十牛圖) · 목우도(牧牛圖)라 한다.

 

(13분 39초)

 

[법문] 송담스님(No.401)-1989 11 첫째일요법회.(용401)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십우송(十牛頌)—10가지의 소를 찾는 게송에 대한  심우송(尋牛頌) 대한 법문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자리를 에다가 비유해 가지고 고인(古人)들이 게송(偈頌) 읊은 것입니다.

그런데  보리심(菩提心) 발해 가지고, 발심(發心)  가지고 견성(見性)해서 중생 교화하는 데까지 10단계로 노나서 게송으로읊은 것인데  게송에 따라서 고인들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이 많이 여러 가지 종류의 게송도 나오고, 여러 가지 종류의 그것에 의한 그림도 나오고, 요새는 달력 캘린더에도 그런 그림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있습니다마는,

 

첫째, 제일의 심우(尋牛)—'찾을 ()', ' ()'—‘소를 찾는다. 심우(尋牛)’  단계는 보리심을 발하는 위치여.

우리는 언제 생겨날 때가 없는, ‘언제  마음자리가 생겨났다하고 헤아려   없을 만큼 우주세계가 생겨나기 이전에부터서 있었던  '마음 '인데,

 '마음 ' 부처님도 가지고 계시고, 모든 삼세제불과 역대조사도  '마음 '  가지고 계시고, 우리의 중생도 가지고 있고, 심지어 ··돼지·미물에 짐승·벌레까지라도  자리를  가지고 있다 그말이야.

 

근데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잊어 버렸어. 가지고 있으면서도 까마득해 모르고 살고 있다 그말이여. 그러니 부처님의 , 조사의 법문에 의지해서 잃어버렸던  마음 소를 찾는다 그말이여.

 마음, 진여불성 자리를 찾는 것을  소를 찾는다 해서 심우(尋牛) 그러는데, 보리심을 ()해야 그때부터서 '마음 ' 찾기 시작한 거다 그말이여.

 

그래 아까 조실 스님께서  번째 읊으신 게송이 바로  '마음 ' 찾는 데에다가 두고 읊으신 게송인데,  게송이 중국의  곽암(廓庵) 선사라고 하는 도인이 읊으신 게송입니다.

 

 다음에 가서 견적(見跡)이거든. 자취를 . 소를 찾아서 인자 집을 떠나 가지고  소를 찾으러 그 산이 험하고 물이 넓고 하는 것을 꺼리지 아니하고  소를 찾으러 방방곡곡이 다니는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이 막심을 하다 그말이여.

근데 그렇게 찾아다니다 보니 발자취를 발견을 했어. 발자취를 발견한 것을  번째 견적이라 그러는데,

 

그리고  번째가 견우(見牛)소를 보고,  소를  다음에는 득우(得牛)—소를 붙잡는 거여.

그리고 다섯 번째 가서 목우(牧牛). 소를 먹이는 거여. 길들여서 먹여.

 

그러니 처음에 소를 찾을랴고 하는  보리심을 발한 것도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세계 50 인구가 있다 하지마는 정말 '마음 ' 찾으려는 마음을  사람이 과연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다행히 우리는 천육백  전에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가지고 고구려·백제·신라를 거쳐서  고려, 해서 오늘날까지 이렇게 천육백 년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태어난 사람은  불교에 인연이 있어서 우리는 이렇게 여기에까지 왔으나 그러한 국가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런 불교와 인연이 없는 나라 사람들은 꿈에도 생각지도 못할 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소를 열심히 찾다 보면은  자취를 발견하게 되고  자취를 따라서 나아가다 보면은 결국은 소가 거기에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소를  다음에는 그놈을 붙잡을라고 하면 도망치거든.

그놈을  어떻게 해서 지혜와 인내와 방편으로써, 그놈을 잘해서 접근을  가지고 그놈을 재치있게 붙들어야지, 소를   밑으로  봤다고 해서  지혜없이 쫓아가서 어거지로 잡을라고 하면  소가 도망가 버리고  것이다 그말이여.

 

참선도 역시  바른 선각자의 바른 지도하에 여법하게 정진을 해야 되지, 자기 멋대로 아무렇게나 우격다짐으로  몰아붙인다고 해서 이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를  다음에는 그것을  붙들고, 붙든 다음에도 그놈을  지혜롭게 요령있게 소를  먹여야지, 붙들어만 놨다고 해서 그걸 아무렇게나 놔두면 다시  도망쳐 버릴 것이고.

'무엇을 먹는가? 어떻게  소를  다스려 나가는가?' 그것을  정성을 다해서 소를 잘 먹이고 거두어 나가야  소가 토실토실 살이찌고 번질번질하니 기름져서,  소가 농사도 짓고 병도  나고  소를 인자 맘대로   길러 가지고,

 

여섯 번째 가서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외양간에다  묶어 놓고  먹이는데, 얼마동안  먹이다보면,

 

일곱 번째 가서 망우존인(忘牛存人)이거든. 소를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어. 인자  먹여서 외양간에다  놓으니까 소가 길이 들어서 도망가질 않으니까, 소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주인만 있는 거지.

'소에 대한 생각' - 인자 아주 길이  들여있고, 편안하게 외양간에 길들여져서 있으니까.

이것도  공부해 나가는 절차를 거기에다 그렇게 비교를 하는 것입니다.

 

쉬웁게 말하자면은  길을 들이는 과정에서는, 화두를 열심히 열심히 애를 써서 열심히 들다 보면은 화두를 들지  해도 제대로 의단(疑團)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리는 과정, 그놈을 거쳐서 나중에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확철대오를 하거든.

확철대오를 하면은 일체처 일체시에서 깨달음의 경지가, 원각대지(圓覺大智) 낭연독존(朗然獨存) 경지에 이르르거든. 무수이수(無修而修)거든. 닦음이 없이 닦는 거거든. 

 

그리고 여덟 번째 가서는 인우구망(人牛俱忘)이거든. 사람과 소를 완전히  잊어버리거든.

그래서 '집에 돌아와 가지고 소는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忘牛存人]' 잊어버리고  다음에 사람과 소를   잊어버린 것은 보리(菩提) 이룬 위치다.

 

 '소를 잊어버리고 사람만 있는 [忘牛存人]' 소승(小乘)에서는 아공(我空) 경계를 그렇게 표현을 했다 그러고,  다음에 인우구망(人牛俱忘) 자리는 대승의 경지에서 말하는 보리를 이룬 경지에다가 비유해서 그렇게 했다고 고인은 그렇게 해설을 합니다.

 

그리고 아홉 번째 와서  반본환원(返本還源) '이것은 열반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이것은 대승이나 소승이  같이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가서 수수입전(垂手入廛) 손을 드리고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중생계로 나아가는 것인데.

 

이런 10가지 단계로 보리심을 () 가지고 도업(道業) 성취해서 보림(保任)  완성을  다음에 중생을 교화하러 나가는 그러한 단계를 10가지로 이렇게 구분한 것인데.

 

대단히  '마음 ' 찾는 경계를  '' 찾는 경계에다가 비유해서 이렇게 게송을 읊고  그림을 이렇게 그려서 많은 사람들에게도를 닦아가는 데에  이해하기 쉽고 재미스럽게 표현했다고  수가 있습니다.

 

방금 조실 스님께서는  번째 제일 심우(尋牛) 단계와  번째 자취를 보는 견적(見跡) 단계만을 게송으로 읊으시고 그것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그러한 심우송(尋牛頌) 자세히 따져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단계는 어디까지나  '마음 ' 찾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주삼야삼(晝三夜三) 앞과 뒷이 ! 맥힌 상태에서의단으로 공안을 참구(參究) 나가는  단계, 그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인 것입니다.(943~232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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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게송(偈頌) ; (), () ()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

*발심(發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깨달음.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자체. 깨달음  자체.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원각대지(圓覺大智) 낭연독존(朗然獨存) ; 원각(圓覺) 대지(大智) 밝게 홀로 드러나다. 원각(圓覺)—석가여래의 원만(圓滿)깨달음. 진여(眞如) 체득. 부처님의 지혜.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若微細流注永斷 圓覺大智 朗然獨存 卽現千百億化身 於十方國中 赴感應機 似月現九 影分萬水 應用無窮 度有緣衆生 快樂無憂 名之爲大覺世尊

 

만약 미세한 번뇌의 흐름도 영원히 끊어져서 원만히 깨달은  지혜가 홀로 밝게 드러나면,  천백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세계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감응하게 되니, 그것은 마치 하늘에 높이  달이 모든 물에 두루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응용이 무궁하고 인연있는 중생을 제도하여, 쾌락하고 근심이 없으니 크게 깨친 세존(大覺世尊)’이라 한다.

---『마음 닦는 (수심결 강의) (지눌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14.  『땅에서 넘어진 ,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87, 102 참고.

*보리(菩提) : [] bodhi  () • () • ()이라 번역。불교 최고의 이상인 부처님이 깨달은 지혜。곧 불과(佛果) 말하며, 또는 불타(佛陀) 정각(正覺)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범어의 음대로 쓰면 보디라고 하겠지만, 우리 말의 관습상( —> ) 보리 읽는다。따라서 보제 보데로는 읽지 않아야  것이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불도의 수행. 진리의 실천.

*보림(保任 보임) ;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더욱 갈고 닦는 수행. 흔히 보림이라 읽는다. '보임' 보호임지(保護任持)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보호하여 지킨다 뜻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 궁구할 ) ; ①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 ②참선하여 화두(공안) 꿰뚫어 밝히기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