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선계(No.557)—화두 불명 십선계 법회 |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 대승십선계 | 항상 화두를 들고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면 제절로 계(戒)가 지켜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상법(最上法).
*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나쁜 과보(果報)를 가져오는 열 가지 악(惡)한 행위.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십악업(十惡業) · 십불선업(十不善業) · 십악업도(十惡業道) · 십흑악(十黑惡) 등이라고도 한다.
몸[身]으로 짓는 세 가지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淫 삿된 음행. 邪行).
말[口]로 짓는 네 가지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생각[뜻, 意]으로 짓는 세 가지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또는 치암(癡暗 어리석음).
*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참고] 송담스님(No.340)—1987년 10월 첫째 일요법회.
계(戒)는 계기(戒器)라, 그릇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定)은 정수(定水), 물에다가 비유를 하고, 혜월(慧月), 혜(慧)는 달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계(戒)를 잘 가짐으로 해서 참선, 정(定)을 잘 장애 없이 닦을 수가 있고, 그래서 지혜(智慧)를 얻을 수가 있다.
계의 그릇이 온당(穩當)해야 선정(禪定)의 맑은 물을 그 그릇에 담을 수가 있고, 그 맑은 물이 그릇에 잘 담겨져 있어서 안정이 되어야 하늘에 있는 밝은 달이 그 그릇에 나타나는 거와 같이, 계(戒)를 지키지 않고서는 온당하게 참선(參禪)을 할 수가 없고, 온당하게 정진을 하지 않고서 지혜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참선을 하고자 하고 지혜의 눈을 뜨고자 할진댄, 모름지기 부처님의 계를 받아서 그것을 잘 가짐으로 해서 도(道)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14분31초~16분33초)
*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20분42초)
[법문] 송담스님(No.557)—1995년 10월 첫째일요법회(용557)(십선계)
오늘은 을해년(乙亥年) 10월 첫째 일요법회 날입니다.
오늘은 대승십선계첩(大乘十善戒牒)—십선계(十善戒)를 설(說)하고, 화두(話頭)를 설하고, 또 불명(佛名)을 수여하는 법요식(法要式)이 거행되겠습니다.
불도(佛道) 수행을 성취코자 하면 계(戒)와 정(定)과 혜(慧), 삼학(三學)을 겸해서 닦아야 하나니, 계(戒)의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의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智慧)의 달이 나타날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첫째, 불상생(不殺生)이니 '산목숨을 죽이지 말라'
둘째, 불투도(不偸盜)니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셋째, 불사음(不邪淫)이니 '사음을 하지 말라'
넷째, 불망어(不妄語)니 '거짓말을 하지 말라'
다섯째, 불기어(不綺語)니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지 말라'
여섯째, 불양설(不兩舌)이니 '이간하는 말을 하지 말라'
일곱째, 불악구(不惡口)니 '악한 말을 하지 말라'
여덟째, 불탐욕(不貪欲)이니 '탐욕심을 내지 말라'
아홉째, 불진애(不瞋恚)니 '진심을 내지 말라'
열째, 불사견(不邪見)이니 '어리석고 삿된 견해를 갖지 말라'
불살생(不殺生) · 불투도(不偸盜) · 불사음(不邪淫)은 몸으로 짓는 죄(罪)고, 망어(妄語)와 기어(綺語)와 양설(兩舌)과 악구(惡口)는 입으로 짓는 죄고, 탐욕(貪欲)과 진애(瞋恚)와 사견(邪見)은 마음으로 짓는 죄여.
"이상 설한 열 가지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는 불자(佛子)로서 마땅히 잘 지켜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네!"
"이상 설한 십선대계(十善大戒)는 불자로서 마땅히 잘 지키고 이것을 실천해서 스스로도 생사해탈(生死解脫)하고 일체 중생(衆生)을 제도하는 대원(大願)을 세우고, 구경(究竟)에 원을 이루어야 할 불자(佛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바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네!"
"이상 설한 십선대계(十善大戒)는 대승불자(大乘佛子)로서 능히 잘 지키고 실천해서 나도 해탈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해야 할 것이니 능히 잘 지키겠는가?"
"네!"
편안하게 앉으세요.
첫째, '살생(殺生)을 하지 말아라' 하는 것은, 우리 불법을 믿는 대승 불법을 믿는 불자는 자비심(慈悲心)으로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는 그러한 서원을 세웠거늘, 어찌 산목숨을 죽일 수가 있겠는가?
둘째,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하는 것은, 내 것을 널리 보시(布施)를 해서 일체 중생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소를 시키고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인데, 어찌 남의 물건을 훔칠 수가 있겠는가?
살생(殺生)을 하면 자비종자(慈悲種子)를 상(傷)하게 되고, 도둑질을 하면 복덕종자(福德種子)를 손상하게 되고, 사음(邪淫)을 하면은 청정종자(淸淨種子)를 잃게 된다 그 말이여.
'자비심'과 '복덕심'과 '청정한 마음'이 있어야 도(道)를 성취하고 나아가서는 일체 중생을 제도할 텐데, 어찌 사음(邪淫)을 할까 보냐?
넷째, '망어(妄語)를 하지 말라’ 하는 것은 망어를 하면, 거짓말을 하면 진실종자(眞實種子)를 잃게 되아. 진실한 마음 하나가 스스로도 도업(道業)을 이루고 일체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인데, 어찌 진실한 마음을 잃고서야 되겠는가. 그래서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다섯째, 불기어(不綺語)는,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하면은 공부하는 마음이 흔들리게 되고, 그러한 음탕하고 상스러운 말을 해서 스스로도 마음이 흔들리고 남의 마음도 흔들게 되면 그것도 또한 진실한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여. 그러니 기어(綺語)를 하지 말아라.
여섯째, 불양설(不兩舌)은, 두 가지 말로 서로 화합을 붙여서 서로 미워하고 싸우는 사이를 화합을 붙일지언정, 어찌 여기 가서 이 말, 저기 가서 저 말 해 가지고 이간(離間)질을 해 가지고 화합(和合)을 깨뜨릴 수가 있느냐?
부처님 몸에 피를 내고,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죽이고 하는 오역죄(五逆罪)와 같은 죄가 바로 대중(大衆)의 화합을 깨트리는 것인데, 두 가지 말을 해 가지고 화합을 깨뜨리는 죄는 바로 오역죄에 해당이 되는 것이여. 그러니 불양설(不兩舌)이다.
(일곱째) 불자(佛子)는 항상 자비롭고 부드럽고 좋은 말로써 해야 할 텐데, 입에 못 담을 흉악한 말 함부로 내뱉으면 그것이 어찌 불자로서 해야 할 일이겠느냐? 악구(惡口), 욕질을 하지 말아라.
여덟째, 불탐욕(不貪欲)이니, 탐욕심(貪欲心)을 내지 말라. 무엇이든지 남의 것을 제 것을 맨들라 그러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탐욕심을 내면, 탐욕의 불로 인해서 스스로의 복덕(福德)을 잃게 되는 것이여. 끝없는 탐욕은 결국은 패가망신(敗家亡身)의 근원이 되는 것이고, 탐욕심을 내지 말아라.
아홉째, 불진애(不瞋恚)니, 무엇이든지 제 욕심대로 하고 제 욕심에 차지 아니하면은, 제 마음에 맞지 아니하면 진심(瞋心)을 내는 것이 일반 중생의 버릇인데, 진심을 내면은 그동안에 쌓은 모든 공덕(功德)을 찰나간에 잃게 되는 것이여. 그러니 진심을 내지 말라.
열째, 불사견(不邪見)이니, 어리석고 삿된 견해라 하는 것은 인과(因果)의 법칙을 믿지 않는 것이여. 인과의 법칙은 지극히 과학적인 사실인데, 그걸 믿지 아니하고 부정해 버리고, 인과를 부정하고 믿지 아니하면 못 할 짓이 없어.
모든 결과는 반드시 그럴만한 원인(原因)이 있어 가지고 그런 결과(結果)가 나타난 것인데, 그러한 인과의 법칙을 부정하고 마구잽이 행동을 하면은 그 사람은 정도(正道)에서 벗어나고 삼악도(三惡道)밖에는 갈 곳이 없어.
그러니 몸으로 짓는 3가지, 입으로 짓는 4가지, 마음으로 짓는 3가지 합해서 이 10가지 계를 잘 지키면 십선계(十善戒)를 지키는 것이고, 이 10가지 계를 지키지 아니하고 마구잽이 행동을 하면 이것은 십악(十惡)을 행(行)하게 되는 것이여.
십선(十善)을 지키면은 불자로서 도(道)에 나아가는 기초가 잘 이루어진 것이고, 십선을 지키지 아니하고 십악(十惡)을 행하면 그 사람은 도문(道門)에 들어가기가 어렵다 그 말이여.
연비(燃臂).
호궤합장(胡跪合掌).
지심참회(至心懺悔) 원멸(願滅) 사생육도법계(四生六途法界) 유정다겁생래(有情多劫生來) 법보재자(法寶齋者)
탐심중죄(貪心重罪) 금일참회(今日懺悔)
진심중죄(瞋心重罪) 금일참회(今日懺悔)
치심중죄(癡心重罪) 금일참회(今日懺悔)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癡)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참회진언(懺悔眞言)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연비 끝날 때까지)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견지금계불회범(堅持禁戒不毁犯)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아등여중생(我等與衆生)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대승십선계(大乘十善戒)를 받고 연비(燃臂)를 마쳤습니다.
연비(燃臂)하는 뜻은, 무량겁 이래(以來)로 알게 모르게 지은 모든 죄(罪)를 참회(懺悔)한 것입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참회하고 앞으로는 그러한 죄를, 그러한 악을 짓지 않겠다고 하는 맹서(盟誓)를 부처님께 한 것입니다. 계를 받고 연비를 한 이 공덕으로 우리가 과거에 지은 모든 죄는 깨끗이 씻어졌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다시는 그러한 악을 짓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런 10가지 악을 짓지 않을 수가 있을까? 10가지를 조목조목이 따로따로 지키려고 하면은 대단히 어려울 것입니다마는, 항상 언제 어데서나 자연스럽게 간단하게 잘 지키는 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까 전강 조실(祖室) 스님께서 녹음법문(錄音法門)으로 들려주신 내가 나를 찾는 공부, 참선법(參禪法), 최상승법(最上乘法)인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면, 제절로 살생(殺生)을 안 하게 되고, 도둑질도 안 하게 되고, 거짓말도 안 하게 되고, 입으로 짓는 4가지 죄도 안 짓게 되고, 마음으로 짓는 3가지 죄도 제절로 안 짓게 된다 그 말이여.
우리는 무량겁으로 내려오면서 익힌 바가 습기(習氣)로 남아 있어서 무심결에 그러한 악을 범하게 되는데, 그러한 생각이 일어날라가도 퍼뜩 '이 뭣고?' 화두를 들면 그 죄를 범하기 전에 막을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항상 화두(話頭)를 챙기고 화두를 들고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면 제절로 계(戒)가 지켜지는 거여. 참선하는 사람이 무슨 살생을 하며, 도둑질을 하며, 사음을 할 것인가.
화두 드는 공부에 대해서는 방금 조실 스님께서 녹음법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간곡히 설해 주셨다 그 말이여. '이 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닌 이놈이 무엇인가?'
속이 상할 때나, 기분이 나쁠 때나, 썽이 날 때나, 외롭고 슬플 때나, 원망스러울 때나, 무슨 마음이 일어나더라도 그 일어날라고 하자마자, 퍼뜩 숨을 깊이 들여마셨다가 내쉬면서 '이 뭣고?'
숨이 다 나가면 또 스르르르~ 들여마셔 가지고 내쉬면서 '이 뭣고?' 이렇게 하다 보면, 치밀어 올라오던 가슴이 스르르르르~ 가라앉으면서 제절로 계(戒)를 지키게 되고 참나를 찾는 공부로 나아가니 이것이 바로 최상법(最上法)이다 그 말이여.(2분40초~23분21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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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선계(十善戒) ;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10가지 죄—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욕(貪慾), 진에(瞋恚), 사견(邪見)를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십악(十惡) ; 나쁜 과보(果報)를 가져오는 열 가지 악(惡)한 행위. 몸[身]과 말[口]과 생각[뜻, 意]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십악업(十惡業) · 십불선업(十不善業) · 십악업도(十惡業道) · 십흑악(十黑惡) 등이라고도 한다.
〇몸[身]으로 짓는 세 가지 : ①살생(殺生 살아 있는 생명을 죽임). ②투도(偸盜 남의 재물을 훔침). ③사음(邪淫 삿된 음행. 邪行).
〇말[口]로 짓는 네 가지 : ④망어(妄語 거짓말이나 헛된 말). ⑤기어(綺語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민 말). ⑥양설(兩舌 이간질하는 말). ⑦악구(惡口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 욕).
〇생각[뜻, 意]으로 짓는 세 가지 : ⑧탐욕(貪欲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 ⑨진에(瞋恚 성냄). ⑩사견(邪見 그릇된 견해). 또는 치암(癡暗 어리석음).
*계(戒) ; 불교에 귀의한 자가 선(善)을 쌓기 위해 지켜야 할 규범.
[참고] 송담스님(No.340)—1987년 10월 첫째 일요법회.(2분3초)
계(戒)는 계기(戒器)라, 그릇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그리고 정(定)은 정수(定水), 물에다가 비유를 하고, 혜월(慧月), 혜(慧)는 달에다가 비유를 했습니다. 계(戒)를 잘 가짐으로 해서 참선, 정(定)을 잘 장애 없이 닦을 수가 있고, 그래서 지혜(智慧)를 얻을 수가 있다.
계의 그릇이 온당(穩當)해야 선정(禪定)의 맑은 물을 그 그릇에 담을 수가 있고, 그 맑은 물이 그릇에 잘 담겨져 있어서 안정이 되어야 하늘에 있는 밝은 달이 그 그릇에 나타나는 거와 같이, 계(戒)를 지키지 않고서는 온당하게 참선(參禪)을 할 수가 없고, 온당하게 정진을 하지 않고서 지혜를 얻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참선을 하고자 하고 지혜의 눈을 뜨고자 할진댄, 모름지기 부처님의 계를 받아서 그것을 잘 가짐으로 해서 도(道)를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14분31초~16분33초)
*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화두(話頭 말씀 화/어조사 두) ;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화두는 「말」이란 뜻인데, 두(頭)는 거저 들어가는 어조사다.
「곡식을 보고 땅을 알고, 말을 듣고 사람을 안다」는 옛말이 있다. 도(道)를 판단하고 이치를 가르치는 법말 · 참말을 화두라고 한다. 또는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관청의 공문서」란 뜻인데, 천하의 정사를 바르게 하려면, 반드시 법이 있어야 하고 법을 밝히려면 공문이 필요하다.
부처님이나 조사들의 기연(機緣), 다시 말하면 진리를 똑바로 가르친 말이나 몸짓이나 또는 어떠한 방법을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이치세계의 바른 법령(法令)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불명(佛名) ; 법명(法名). ①출가하여 절에서 행자(行者)로서 일정 기간 동안 수행한 뒤, 계(戒)를 받을 때 스승이 지어 주는 이름. ②스님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한 남녀신자에게 지어 주는 이름.
[참고] 송담스님(No.470)—1992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불법(佛法)에의 깊은 인연으로, 발심(發心)해서 진리를 향해서 살아가는 부처님의 아들딸로 새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의미로 불보살(佛菩薩)의 이름을 따서 불명으로 받는다. 더 철저히 말하면 그때마다 불명을 받을 수는 없지만,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하루하루 새로 태어나야 하고 시간마다 새로 태어나야 한다.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불도(佛道) ; ①불과(佛果).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 무상보리(無上菩提)를 말한다. ②불과(佛果)에 이르는 방법. 불과를 성취하여 성불하기 위한 인행(因行, 깨달음의 원인이 되는 행)을 말한다. ③부처님이 중생을 교화하는 가르침.
[참고] 『대지도론(大智度論)』 15권 '大智度論釋初品中毘梨耶波羅蜜義第二十六(초품 중 비리야[精進]바라밀을 풀이함)' (용수 지음 | 구마라집 한역 |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 동국역경원)
欲成佛道凡有二門 一者福德 二者智慧 行施戒忍是爲福德門 知一切諸法實相摩訶般若波羅蜜 是爲智慧門 菩薩入福德門 除一切罪所願皆得 若不得願者 以罪垢遮故 入智慧門則不厭生死 不樂涅槃 二事一故
불도(佛道)를 이루고자 하는 데 무릇 두 문이 있으니, 하나는 복덕(福德)이요 둘은 지혜(智慧)의 문이다. 보시(施)와 지계(戒)와 인욕(忍)을 행하는 것은 복덕의 문이요, 모든 법의 실상인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蜜)을 아는 것은 지혜의 문이다.
보살은 복덕문에 들어가서 일체의 죄업을 제거하고 원하는 바를 모두 얻는다.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죄업의 때[罪垢]에 차단 당했기 때문이다. 지혜의 문에 들어가더라도 생사를 싫어하지 않고 열반도 즐기지 않게 된다. 두 일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今欲出生摩訶般若波羅蜜 般若波羅蜜 要因禪定門 禪定門必須大精進力 何以故散亂心 不能得見諸法實相 譬如風中然燈不能照物 燈在密屋明必能照
이제 마하반야바라밀을 출생시키고자 하는데, 반야바라밀은 반드시 선정문(禪定門)을 인하며, 선정문은 반드시 대정진(大精進)의 힘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산란한 마음[散亂心]으로는 모든 법의 실상[諸法實相]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바람 속에서 등불을 켜면 물건을 비출 수 없지만 밀실(密室)에다 등을 켜면 밝게 타올라 반드시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다.
*삼학(三學) ;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이가 본성(本性)을 깨닫는데 반드시 닦아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세 가지 수행 부류, 계정혜(戒定慧), 계율(戒律) · 선정(禪定) · 지혜(智慧)를 말한다. 또 계학(戒學) · 정학(定學) · 혜학(慧學)이라고도 하고, '아주 뛰어나다'의 뜻으로 '증상(增上)-'으로 시작하여 증상계학(增上戒學, 增戒學) · 증상심학(增上心學, 增心學, 增上意學) · 증상혜학(增上慧學, 增慧學)이라고도 한다.
계율(戒律)에 의해 악업(惡業), 나쁜 짓을 방지하고, 선정(禪定)에 의해 산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하고, 지혜(智慧)에 의해 번뇌를 끊고 본성을 깨닫는다.
불도(佛道) 수행(修行)을 성취코자 하면 계(戒)와 정(定)과 혜(慧), 삼학(三學)을 겸해서 닦아야 하나니, 계(戒)의 그릇이 온당해야 선정(禪定)의 물이 담기고, 선정의 물이 맑고 고요해야 지혜(智慧)의 달이 나타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92~95. (가로판 p96~100)
帶婬修禪은 如蒸沙作飯이요 帶殺修禪은 如塞耳叫聲이요 帶偸修禪은 如漏巵求滿이요 帶妄修禪은 如刻糞爲香이니 縱有多智라도 皆成魔道니라
음란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모래를 쪄서 밥을 지으려는 것 같고, 살생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제 귀를 막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으며, 도둑질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새는 그릇에 가득차기를 바라는 것 같고, 거짓말하면서 참선하는 것은 똥으로 향을 만들려는 것과 같으니, 비록 많은 지혜가 있더라도 다 마(魔)의 길을 이루리라.
주해(註解) 此는 明修行軌則이니 三無漏學也라 小乘은 禀法爲戒하야 粗治其末이요 大乘은 攝心爲戒하야 細絶其本이니 然則法戒는 無身犯이요 心戒는 無思犯也라
이것은 수행하는 법칙으로 세 가지 무루학(無漏學)을 밝힌 것이다. 소승은 법(法)을 받아 지키는 것으로 계율을 삼기 때문에 대략 그 끝[末]을 다스리게 되고, 대승은 마음[心]을 거두는 것으로 계율을 삼기 때문에 자세히 그 뿌리[本]를 끊는 것이니 그러므로 법(法)을 지키는 계율은 몸으로 범하는 일이 없을 것이고, 마음으로 지키는 계율은 생각으로 범하는 일까지 없는 것이다.
婬者는 斷淸淨하고 殺者는 斷慈悲하며 盜者는 斷福德하고 妄者는 斷眞實也라 能成智慧하야 縱得六神通이라도 如不斷殺盜婬妄則必落魔道하야 永失菩提正路矣리라 此四戒는 百戒之根故로 別明之하야 使無思犯也라
음란한 것은 깨끗한 성품을 끊고, 살생하는 것은 자비스런 마음을 끊으며, 도둑질하는 것은 복과 덕을 끊고, 거짓말하는 것은 진실한 것을 끊는다. 비록 지혜를 이루어 여섯 가지 신통[六神通]을 얻었다 하더라도, 만약 살생과 도둑질과 음행과 거짓말하는 일을 끊지 않는다면, 반드시 마(魔)의 길에 떨어져 영영 보리(菩提)의 바른 길을 잃을 것이다. 이 네 가지 계율은 백 가지 계율의 근본이므로, 따로 밝혀서 생각으로도 범함이 없도록 한 것이다.
無憶曰戒요 無念曰定이요 莫妄曰慧라 又戒爲捉賊이요 定爲縛賊이요 慧爲殺賊이라 又戒器完固하야사 定水澄淸하야 慧月方現이니 此三學者는 實爲萬法之源故로 特明之하야 使無諸漏也니라
靈山會上에 豈有無行佛이며 少林門下에 豈有妄語祖리요
기억하지 않는 것[無憶]을 계율이라 하고, 생각이 없는 것[無念]을 선정이라 하며, 망녕되지 아니함[莫妄]을 지혜라 한다. 다시 말하면, 계율은 도둑[賊]을 잡는 것이요, 선정은 도둑을 묶어 놓는 것이며, 지혜는 도둑을 죽여 버리는 것이다. 또한 계의 그릇이 온전하고 견고해야 선정의 물이 맑게 고이고, 따라서 지혜의 달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 삼학은 참으로 만법의 근원이 되는 것이므로, 특별히 밝혀서 모두 새어 빠뜨리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다.
영산회상에 어찌 함부로 지내는 부처가 있었으며, 소림문하에 어찌 거짓말하는 조사가 있으랴.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계(戒)로써 스승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
[참고] 『대반열반경후분(大般涅槃經後分)』 상권. 대당(大唐) 남해파릉국(南海波淩國) 야나발타라(若那跋陀羅) 한역(漢譯). 심삼진 번역.(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阿難 如汝所問 佛去世後 以何爲師者 阿難 尸波羅蜜戒是汝大師 依之修行 能得出世甚深定慧
아난아, 네가 물은 것과 같이 ‘부처님이 세상을 떠난 후에 무엇으로써 스승을 삼을까?’ 한 것은 이러하다. 아난아, 시바라밀(尸波羅蜜)인 계율이 너의 큰 스승이니 이것을 의지해 닦고 행하면, 세상을 벗어나서 매우 깊은 선정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시바라밀(尸波羅蜜) ; (산스크리트어) śīla-pāramitā. 육바라밀 또는 십바라밀 중 하나. 계(戒)의 완성이라는 뜻. 시는 시라(尸羅 산스크리트어 śīla)의 줄임말이다.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 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등이라고도 한다.
계율을 잘 지켜 악업(惡業)을 대치(對治)하고, 심신을 청정하고 산뜻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시라(尸羅) ; (산스크리트어) śīla의 음사어(音寫語). 계(戒). 계행(戒行). 삼학(三學) 또는 육바라밀(六波羅蜜) 중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의 불도(佛道) 수행(修行)을 성취코자 악행을 방지하기 위해서 수지하도록 제정하신 법규를 말한다.
[참고 ❶] 『대지도론(大智度論)』 (13권) 21. 초품 중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의 뜻을 풀이함(釋初品中尸羅波羅蜜義). (용수 지음. 구마라집 한역. 김성구 번역, 김형준 개역)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經】 罪, 不罪不可得故 應具足尸羅波羅蜜
죄와 죄 아님을 찾을 수 없는 까닭에 시라바라밀을 구족한다.
【論】 尸羅<秦言性善> 好行善道 不自放逸 是名尸羅 或受戒行善 或不受戒行善 皆名尸羅
시라(尸羅)<진나라 말로는 성선(性善)이라고 한다>라 함은 즐겨 선도(善道)를 행하며 스스로 방일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시라라고 한다. 혹 계를 받고 선(善)을 행하거나 혹은 계를 받지 않고 선을 행하는 것을 모두 시라라고 한다.
尸羅者 略說身口律儀 有八種 不惱害 不劫盜 不邪婬 不妄語 不兩舌 不惡口 不綺語 不飲酒 及淨命 是名戒相
시라란 간략하게 말하면 몸[身]과 입[口]의 율의(律儀)인데 여기에는 여덟 가지가 있다. 즉 괴롭히고 해치지 않고[不惱害], 협박하여 빼앗지 않으며[不劫盜], 삿된 음행을 하지 않고[不邪婬], 거짓말하지 않고[不妄語], 이간질하지 않으며[不兩舌], 욕설하지 않고[不惡口], 진실이 없는 교묘하게 꾸미는 말을 하지 않으며[不綺語], 술 마시지 않으며, 청정하게 생활하는 것[淨命] 등이니 이것을 계상(戒相)이라고 한다.
若不護 放捨 是名破戒 破此戒者 墮三惡道中 若下持戒 生人中 中持戒 生六欲天中 上持戒 又行四禪 四空定 生色無色界淸淨天中
잘 지키지 못하고 놓아버리면 이를 파계(破戒)라고 하는데, 파계한 이는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진다. 하품으로 계를 지니면 인간에 태어나고, 중품으로 계를 지니면 육욕천(六欲天)에 태어나며, 상품으로 계를 지니며 사선(四禪)과 사공정(四空定)을 닦으면 색계 · 무색계 등 청정한 하늘에 태어난다.
上持戒 有三種 下淸淨持戒 得阿羅漢 中淸淨持戒 得辟支佛 上淸淨持戒 得佛道 不著 不猗 不破 不缺 聖所讚愛 如是名爲上淸淨持戒
상품으로 계를 지니는 것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하등의 청정으로 계를 지니면 아라한이 되고, 중등의 청정으로 계를 지니면 벽지불이 되고, 상등의 청정으로 계를 지니면 불도(佛道)를 증득한다. 집착하거나 기대거나 깨뜨리거나 이지러지지 않음은 성인께서 칭찬하시는 바이다. 이와 같은 것들을 일컬어 상등의 청정으로 계를 지닌다 한다.
若慈愍衆生故 爲度衆生故 亦知戒實相故 心不猗著 如此持戒 將來令人至佛道 如是名爲得無上佛道戒
만일 중생을 가엾이 여기기 때문이거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나 계율의 참뜻[實相]을 아는 까닭에 마음으로 기대거나 집착하지 않으면서 이처럼 계를 지닌다면 장차 사람들을 불도(佛道)에 이르게 한다. 이와 같은 것을 일컬어 위없는 불도의 계를 얻는다고 한다.
[참고 ❷] 『아비달마대비바사론(阿毘達磨大毘婆沙論)』 제44권. (1. 雜蘊 < 8. 思納息의 3) (오백 아라한 지음. 현장 한역. 송성수 번역. 김석군 개역)(불교문화유산 아카이브)
契經說戒 或名尸羅 或名爲行 或名爲足 或名爲篋 言尸羅者 是淸涼義 謂惡能令身心熱惱 戒能安適 故曰淸涼 又惡能招惡趣熱惱 戒招善趣 故曰淸涼
계경(契經)에서는 계(戒)를 혹은 시라(尸羅)라 하기도 하고, 혹은 행(行)이라 하기도 하며, 혹은 발[足]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상자[篋]라 하기도 한다.
시라라는 말은 ‘맑고 시원하다[淸凉]’는 뜻이니 악(惡)은 몸과 마음을 뜨겁고 괴롭게 하지만 계는 편안하게 쾌적하게 하기 때문에 맑고 시원하다고 한다. 또 악은 악취의 뜨거운 고뇌를 불러오지만 계는 선취(善趣)를 불러오기 때문에 맑고 시원하다고 한다.
又尸羅者 是安眠義 謂持戒者 得安隱眠 常得善夢 故曰尸羅 又尸羅者 是數習義 常習善法 故曰尸羅 又尸羅者 是得定義 謂持戒者 心易得定 故曰尸羅
또 시라(尸羅)란 ‘편안히 잠잔다[安眠]’는 뜻이니 계율을 수지하는 이는 안온한 잠을 자면서 언제나 좋은 꿈을 꾸기 때문에 시라라고 한다. 또 시라란 ‘자주자주 익힌다[數習]’는 뜻이니 언제나 선한 법(善法)을 익히기 때문에 시라라고 한다. 또 시라란 ‘선정을 얻는다[得定]’는 뜻이니 계율을 수지하는 이는 마음으로 쉽게 선정을 얻기 때문에 시라라고 한다.
---(중략)-----
契經說 戒名爲行者 以諸世間說戒名行故 諸世間見持戒者 言彼有行 見破戒者 言彼無行 又淨持戒是衆行本 能至涅槃故 名爲行
계경에서 “계(戒)를 행(行)이라 한다”고 한 것은 모든 세간에서 계를 행이라 하기 때문이니 모든 세간에서는 계를 지닌 이[持戒者]를 보면 “그는 행이 있다”고 말하고, 파계(破戒)한 이를 보면 “그는 행이 없다”고 말한다. 또 청정한 계를 지니는 것은 뭇 행[衆行]의 근본이어서 열반에 이르게 되기 때문에 행이라 한다.
契經說 戒名爲足者 能往善趣 至涅槃故 如有足者能避險惡 至安隱處 有淨戒者能越惡趣 生天 人中 或超生死 到涅槃岸故名爲足
계경에서 “계를 발[足]이라 한다”고 한 것은 선취(善趣)에 나아가고 열반에 이르기 때문이다. 마치 발이 있는 이는 험악한 데를 피하면서 안온한 데에 이르는 것처럼 청정한 계를 소유한 이는 악취를 초월하고 천상이나 인간에 나기도 하며 혹은 생사를 초월하여 열반의 언덕에 이르기 때문에 발[足]이라 한다.
契經說 戒名爲篋者 任持一切功德法故 謂持戒者任持功德 不令退散 如篋持寶
계경에서 “계를 상자[篋]라 한다”고 한 것은 온갖 공덕의 법을 맡아 지니기 때문이다. 계를 지닌 이는 공덕을 맡아 지니어 물러나거나 흩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마치 상자가 보물을 지니는 것과 같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❶] 송담스님(No.389)—1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참고 ❷]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상권. 동진(東晉) 평양(平陽) 사문(沙門) 석법현(釋法顯) 한역(漢譯). (동국역경원 | 최민자 번역)
爾時 世尊卽說偈言 我欲棄捐此 朽故之老身 今已捨於壽 住命留三月 所應化度者 皆悉已畢竟 是故我不久 當入般涅槃 我所說諸法 則是汝等師 頂戴加守護 修習勿廢忘 汝等勤精進 如我在無異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나는 쇠약하고 늙은 이 몸을 이제 버리려 하네. 지금 이미 목숨을 버렸어야 함에도 수명을 늘려 석 달을 머물려 하네. 교화(敎化)하고 제도해야 할 일을 모두 다 이미 마쳤네. 그러므로 나는 머지않아 반열반에 들 것이네.
내가 말한 모든 법이 곧 그대들의 스승이니 공경하여 받들고[頂戴] 더욱 지키고 보호하여 닦아 익혀 잊지 말고, 그대들은 부지런히 정진(精進)하여 내가 있을 때와 다름이 없어야 하네.
生死甚危脆 身命悉無常 常求於解脫 勿造放逸行 正念淸淨觀 善護持禁戒 定意端思惟 攝情於外境 若能如此者 是則護正法 自到解脫處 利益諸天人
나고 죽음은 매우 위태롭고 몸과 목숨은 모두 무상하니 항상 해탈을 구하여 방일(放逸)한 행동하지 말아야 하네. 바르게 생각하고 청정하게 관하며 금계(禁戒)를 잘 보호하고 지키며, 산란하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定意]으로 바르게 사유하여 바깥 경계로 치달리는 감정을 거두어야 하네.
만약 이와 같이 하면 이것이 곧 정법(正法)을 보호하는 것이니 스스로 해탈처에 이르러 모든 천상 세계와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리라.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sa [팔리어]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 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 ; 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자비(慈悲) : [산스크리트어]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 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보시(布施) : [산스크리트어] dāna 음을 따라 단나(檀那) · 다나(柁那) · 단(檀) 등으로 음사(音寫)한다. 물질 또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05~106. (가로판 p110)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 한 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참고 ❷] 『백유경(百喩經)』 제1권. (존자尊者 승가사나僧伽斯那 찬집撰集 | 소제蕭齊 천축삼장天竺三藏 구나비지求那毘地 한역漢譯 |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2. 어리석은 사람이 소젖을 모은 비유(愚人集牛乳喩)」
昔有愚人將會賓客 欲集牛乳以擬供設 而作是念 我今若豫於日日中犛取牛乳 牛乳漸多卒無安處 或復酢敗 不如卽就牛腹盛之 待臨會時當頓犛取 作是念已 便捉牸牛母子 各繫異處
옛날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장차 손님을 청하여 소의 젖을 모아 대접하려고 자리를 마련하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만약 날마다 미리 소젖을 짜두면 소젖은 점점 많아져 마침내 둘 곳이 없게 될 것이며, 또한 맛도 변해 못쓰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하기보다는 소젖을 소 뱃속에 모아두었다가 모임이 있을 때쯤에 한꺼번에 짜내는 것이 낫겠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어미소와 새끼를 따로 매어 두었다.
却後一月 爾乃設會迎置賓客 方牽牛來欲犛取乳 而此牛乳卽乾無有 時爲衆賓或瞋或笑
한 달이 지난 후 잔치를 마련하고 손님을 맞이하였다. 소를 끌고 와서 젖을 짜려 하였으나 그 소의 젖은 말라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거기 모인 손님들은 성을 내거나 혹은 비웃었다.
愚人亦爾 欲修布施 方言待我大有之時 然後頓施 未及聚頃 或爲縣官水火盜賊之所侵奪 或卒命終不及時施 彼亦如是
어리석은 사람도 이와 같아서 보시(布施)를 하려다가 ‘내게 재물이 많이 쌓이기를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보시하리라’고 생각하지만, 모으기도 전에 관청이나 수재(水災)나 화재(火災)나 혹은 도적에게 빼앗기거나 또는 갑자기 목숨을 마치기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보시할 수 없게 된다. 저들 또한 이와 같다.
*종자(種子) ; ①씨앗. ②무엇인가를 낳을 가능성. ③아뢰야식에 저장되어 있으면서 인식 작용을 일으키는 원동력. 습기(習氣)와 같음. ④밀교에서, 상징적 의미를 가지는 하나하나의 범자(梵字).
*복덕(福德) ; ①착하고 어진 행실에 대한 보답으로 받는 행복과 이익. ②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일.
*청정(淸淨 맑을 청/깨끗할 정) ; 허물이나 번뇌가 없이 깨끗함.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오역죄(五逆罪) ; 다섯 가지 지극히 무거운 죄.
다섯 가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음.
①아버지를 죽임. ②어머니를 죽임. ③아라한을 죽임. ④승가의 화합을 깨뜨림. ⑤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함. 이 다섯 가지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지극히 악한 행위이므로 오무간업(五無間業)이라고도 함.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❶] 『대승의장(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참고 ❷] 『육조단경(六祖壇經)』 (덕이본德異本) 「2. 공덕과 정토를 밝히다[釋功德淨土]」에서.
公曰 弟子聞達磨初化梁武帝 帝問云 朕一生造寺供僧 布施設齋 有何功德 達磨言 實無功德 弟子未達此理 願和尙爲說
師曰 實無功德 勿疑先聖之言 武帝心邪 不知正法 造寺供養 布施設齋 名爲求福 不可將福便爲功德 功德在法身中 不在修福
자사(刺史) 위공(韋公)이 말했다. ‘제자가 듣기에 달마대사께서 처음 양무제를 교화할 때 황제가 「짐은 평생 절을 짓고 스님을 공양하며 보시를 하고 재를 베풀었는데 어떠한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달마대사께서 「실로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제자는 이 이치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화상께서 말씀해주십시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실로 공덕이 없습니다. 옛 성인의 말씀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무제는 마음이 치우쳐 정법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절을 짓고 공양을 올리고 보시를 하며 재를 베풀어 행한 것은 복(福)을 구했다고 하는 것이니 복이 공덕(功德)이 될 수는 없습니다. 공덕은 법신(法身)에 있지 복을 닦는 데 있지 않습니다.
師又曰 見性是功 平等是德 念念無滯 常見本性眞實妙用 名爲功德 內心謙下是功 外行於禮是德 自性建立萬法是功 心體離念是德 不離自性是功 應用無染是德 若覓功德法身 但依此作 是眞功德
若修功德之人 心卽不輕 常行普敬 心常輕人 吾我不斷 卽自無功 自性虛妄不實 卽自無德 爲吾我自大 常輕一切故
대사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견성(見性)이 공(功)이요 평등(平等)이 덕(德)이니, 생각 생각에 막힘이 없이 항상 본성품의 진실하고 묘한 작용[眞實妙用] 보는 것을 공덕이라 합니다. 안으로 마음이 겸양하여 낮추면 이것이 공이요 밖으로 예(禮)를 행하면 이것이 덕이며, 자신의 참성품[自性]이 만법을 건립하는 것이 공이요 마음의 본바탕[心體]이 생각을 여읜 것[離念]이 바로 덕이며, 자성(自性)을 여의지 않음이 공이요 사물에 응해 쓰되 물들지 않음이 덕입니다. 만약 공덕의 법신을 찾으려면 다맛 이에 의하여 공덕을 지어야 참된 공덕입니다.
공덕을 닦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이 가볍지 않아 항상 널리 공경을 행합니다. 마음이 항상 남을 가벼이 여기고 나를 내세우는 생각을 끊지 않으면 스스로 공이 없는 것이고, 자심이 허망하여 진실하지 못하면 스스로 덕이 없는 것이니, 이는 나를 내세우는 생각이 스스로 커져서 항상 일체를 가벼이 여기기 때문입니다.
善知識 念念無間是功 心行平直是德 自修性是功 自修身是德 善知識 功德須自性內見 不是布施供養之所求也 是以福德與功德別 武帝不識眞理 非我祖師有過
선지식이여, 생각 생각 끊임이 없는 것이 공이요, 마음을 평등하고 곧게 쓰는 것이 덕이며, 스스로 성품을 닦는 것이 공이요,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덕입니다.
선지식이여, 공덕은 모름지기 자성(自性) 안에서 보는 것이요, 보시나 공양만으로 구하는 바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복덕(福德)과 공덕(功德)은 다른 것이니, 무제가 진리를 알지 못하였을 뿐 우리 조사에게 허물이 있지 않습니다.
*인과(因果) :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 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연비(燃臂 불이 타다·불사르다·불을 붙이다 연/팔·팔뚝 비) ; ①불교에서 수행자가 계(戒)를 받을 때,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그 자국. ②팔[臂]을 태우는[燃] 고행. 고행의 한 방법으로 팔뚝을 향불로 지지는 일.
연비(然臂 · 煉臂)로도 쓴다. 발원(發願) · 입서(入誓) · 고행(苦行) · 희사(喜捨)의 등의 뜻으로 행한다.
[참고 ❶] 『박산참선경어(博山參禪警語)』 卷下 ‘시의정발불기경어(示疑情發不起警語)’에서.
做工夫 疑情發不起 便欲做有爲功行 或做解脫 或行苦行 冬不爐 夏不扇 人來乞衣 便全身脫去 甘心凍死 謂之解脫 人來乞食 便自己不食 甘心餓死 謂之解脫 更有種種 不可具說 總而論之 皆是勝心所使 誑惑無知 彼無知者 謂是活佛 謂是菩薩 盡其形命 承事供養 殊不知佛戒中謂之惡律儀業 雖是持戒 步步結罪
참선하는데 의정은 일으키지 못하고서 유위(有爲)공덕을 지어 해탈하고자 하거나 혹은 고행을 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겨울에 불도 피우지 않고 여름에 부채질도 하지 않으며, 누가 옷을 구걸하면 몽땅 다 벗어주고 자기는 얼어 죽어도 달갑게 여기는 일을 해탈이라 생각한다. 또는 누가 밥을 구걸하면 자기는 먹지 않고 굶어죽어도 달갑게 여기는 것을 해탈이라 생각한다. 이런 여러 가지를 다 말할 수는 없으나 총괄해 보면 이것이 다 뛰어나려는 마음에서 나온 번뇌이니, 무지한 이들을 속이는 짓이다.
저 무지한 사람들이 그를 생불이니 보살이니 하면서 신명을 다해 공양 올리고 받들어 섬기나, 본인은 부처님 계율 중에 이런 것을 악율의(惡律儀 청정한 계율을 더럽히는 악행)라고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런 사람들은 비록 계율을 지키고 있다 하더라도 걸음마다 죄를 짓는 것이다.
又有一等 燒身燃臂 禮佛求懺 謂之功課 於世法中亦是好事 參究分中當得甚麼事 古德云 切莫向他機境上求 謂禮佛是機境 求懺是機境 佛法中一切好事悉機境也 不是敎你不行此一切善事 但用心一處 此一切善事悉能助發 滋培善根 他日道眼忽開 燒香掃地皆佛事耳
또 어떤 무리들은 몸을 불사르거나 팔을 태우며 예불하고 참회를 구하면서 그것을 공부하는 일로 여긴다. 세속의 법도 안에서는 참으로 훌륭한 일이지만 참구하는 본분에서는 무슨 결과를 얻을 수 있겠는가! 고덕(古德)은 “결코 그 어떤 기틀[機]과 경계[境]에서도 구하지 마라!”고 하셨는데, 예불도 기틀과 경계이고 참회를 구하는 것도 기틀과 경계이니, 불법의 관점에서는 어떠한 훌륭한 일이 되었건 기틀과 경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그대들에게 이런 좋은 일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한 곳에 마음을 쓰다 보면 이러한 모든 좋은 일이 의정(疑情)을 발(發)하도록 돕고 선근(善根)을 늘리다가 뒷날 도안(道眼)이 홀연히 열리면 향 사르고 청소하는 일까지 다 불사(佛事)가 될 것이다.
[참고 ❷] 송담스님(세등선원No.26)—기미년 동안거 해제 법어(80.01.17)에서.(3분37초)
한철 동안을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한 대중 여러분! 그리고 제방(諸方)에서 해제를 마치고 여기에 참례(參禮)하신 수좌(首座) 여러분! 신심있는 단월(檀越)들이 바친 곡석과 의복, 자기의 공부도 뒤로 미루고 우리를 외호해 주신 이 본방...(녹음 끊김)...용맹정진을 했다 하더라도, 신라 때 욱면만큼의 고생에는 미치지 못했지 않은가 싶습니다.
우리의 신심, 우리의 용맹정진은 한량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들에게 (신라 때 욱면 낭자처럼) 전부 다 손바닥에다 구녁을 뚫으라는 말씀도 아니고, (혜가대사처럼) 모두 다 칼로써 왼팔을 끊으라고 권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그분들이 한 그 목숨을 바칠만한 그 신심! 그것을 우리는 배워야 하고, 법을 위해서,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그 무서운 정진, 그 굳은 9년 동안을 하루같이 한 그 철썩 같은 뜻! 그것을 우리는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경전에 ‘소신연비(燒身燃臂)를 하지 아니하면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치기 어렵다’고 하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당장 손가락에다 불을 지르고, 몸을 갖다가 장작을 쌓아 놓고 몸을 태우고, 이렇게 경전의 말씀을 받아들여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 뜨거운 것을 참고 이길만한 그 참을성 있는—난행(難行)을 능행(能行)하는 그런 굳은 뜻을 우리는 배워야 하고, 몸을 갖다가 태울만한, 몸을 헌신짝같이 버릴만한 위법망구적인 그러한 정성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형식적인 것을 배워 가지고 손가락을 태우고, 형식적인 것을 배워 가지고 장작을 쌓아 놓고 불을 태우고, 도끼를 가지고 손가락을 짜르고, 이러한 어리석은—물론 그 신심은 물론 찬양할만 하지만.
그 신심이 어떻게 신심을 내느냐? 지혜로운 신심, 껍데기가 아니라 그 속 알맹이 신심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45분12초~48분48초)
*호궤합장(互跪合掌) ; 두 무릎을 꿇고 앉되, 무릎 위 허벅지와 상체가 수직이 되게 곧게 일으켜 세우고, 발가락은 세운 채 손은 합장을 취한 자세.
*참회게(懺悔偈)
아석소조제악업(我昔所造諸惡業) 이제까지 제가 지어온 모든 악업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痴) 모두가 비롯됨 없는 탐·진·치로 말미암았네
종신구의지소생(從身口意之所生) 몸과 입과 생각으로 지었으니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제가 지금 그 모든 것을 참회합니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라는 것은 본래 실체가 없는데[無自性] 마음으로 좇아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마음이 소멸되면 죄 또한 없어진다.
죄멸심망양구공(罪滅心亡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爲眞懺悔)
마음도 없어지고 죄도 없어져서 그 두가지가 함께 공(空)해져서 없어져버릴 때,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이다.
*자종금신지불신(自從今身至佛身) 제가 지금 이 몸으로부터 부처의 몸에 이를 때까지
견지금계불훼범(堅持禁戒不毁犯) 금하는 계율 굳게 지켜 훼범하지 않으리니
유원제불작증명(唯願諸佛作證明) 바라옵건데 모든 부처님께서 증명해 주소서
영사신명종불퇴(寧捨身命終不退) 목숨은 차라리 버릴지라도 마침내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원이차공덕(願以此功德) 원컨대 이 공덕으로써
보급어일체(普及於一切) 일체 중생에게 널리 미쳐서
동견무량수(同見無量壽) 다 함께 아미타부처님을 뵈옵고
개공성불도(皆共成佛道) 모두 함께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맹서(盟誓 맹세 맹/맹세할 서) ; '맹세(盟誓 임무나 약속을 꼭 실행하거나 목표를 꼭 이루겠다고 굳게 다짐함. 또는 그 다짐)'의 원래 말.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 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칠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032-872-6061~4)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〇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구(死句) ; 분별과 생각으로 공안(화두)을 따지고 이리저리 분석하여, 마음 길이 끊어지기 커녕은 점점 분별심(分別心)이 치성(熾盛)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사구(死句)라 한다. 죽은 참선[死句參禪].
*활구(活句) ; 깨달음은 중생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사량분별이 끊어짐으로 해서 깨달음에 나아갈 길이 열리는 것이어서, 일체처 일체시에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화두를 거각하면 일부러 사량분별을 끊을려고 할 것도 없이 끊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활구(活句)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49~52. (가로판 p50~53)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活句)를 참구할지언정,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活句)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死句)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이 아래는 특히 활구(活句)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參句)는 경절문 활구(徑截門活句)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參意)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圓頓門死句)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 지름길문. 교문(敎門)의 55위(位)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원돈문(圓頓門) : 원교(圓敎)와 돈교(頓敎)가 교문(敎門)에 있어서는 가장 높고 깊은 이치를 가르친 바이지만, 말 자취가 남아 있고 뜻 길이 분명히 있어서 참으로 걸림 없는 이치를 완전히 가르친 것이 못된다. 오직 조사선이 있을 뿐이다.
*습기(習氣 익히다·익숙하다·습관 습/기운·기세·힘 기) ; ①과거의 온갖 업(業)—생각, 행위, 경험, 학습 따위로 말미암아 아뢰야식(阿賴耶識)에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와 같음. ②번뇌로 인해 남아 있는 습관적인 기운. 습(習), 번뇌습(煩惱習), 여습(餘習), 잔기(殘氣)라고도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〇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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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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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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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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