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불사2022. 3. 28. 08:05

불사(No.463)—(게송)法界盡是毘盧歸~ | 우주법계가 모두가 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계시는 곳이다. 비로자나불 법신이다 | 부처님 아닌 사람이 없어 | 지혜와 자비로써 행하는 일은 모두가 다 거룩한 불사.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 · 탱화 · 불구(佛具) · 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5분 43초)


[법문] 송담스님(No.463)—이재원영가 49재 천도 법어(92.02.02) (용463)

법계진시비로귀(法界盡是毘盧歸)인데  수도현우귀여천(誰道賢愚貴與賤)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애경노유개여불(愛敬老幼皆如佛)하면  상상엄식적광전(常常嚴飾寂光殿)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법계진시비로귀(法界盡是毘盧歸)요. 법계, 우주법계—동서사방 시방세계 끝없이 넓고 넓은 이 우주법계가 모두가 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계시는 곳이다 그 말이여. 비로자나불 법신(法身)이다 그 말이여.
수도현우귀여천(誰道賢愚貴與賤)이리요. 누가 ‘누구는 어질고, 누구는 어리석고, 누구는 귀하고, 누구는 천하다’고 할 것이냐 그 말이여.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심지어 저 축생과 산천초목과 일월성진, 길바닥에 구르고 있는 조그마한 조약돌과 해변에 수많은 모래알까지라도 전부가 다 한결같은 비로자나 법신체더라.

그러니 오늘 영가(靈駕)의 유족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돌아가신 어른을, 참으로 돌아가신 어른의 죽음을 슬퍼하고 돌아가신 어른의 왕생(往生)을 명복(冥福)을 빈다면, 비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살아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계신 부모님, 살아계신 모든 늙으신 어른들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고.
나이 많은 어른뿐만이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다 부처님이여. 그 어린아이의 몸뚱이 속에도 부처님이 들어 있기 때문에 다 고대로 부처님이고. 나보다 무식한 사람이나, 나보다 가난한 사람이나, 나보다 천한 보잘것없는 불쌍한 그런 사람들도 다 부처님 아닌 사람이 없어.

그래서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부처님처럼 존중히 여기고, 돌보아 주고 아껴주고 사랑으로써 거둔다면,(愛敬老幼皆如佛)
그것이 바로 항상 상상엄식적광전(常常嚴飾寂光殿)이여.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계신 법당을 잘 건설한 것이요, 건설한 법당에 단청(丹靑)하는 것이요, 또 그 법당 안에 계신 부처님을 새로 모시는 것이요, 그 부처님께 개금(改金)을 해 드리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이러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법당 짓고 부처님 모신 것만이 불사(佛事)인 줄 알지마는, 참으로 이러한 불법의 진리를 알고 보면 옳은 일, 지혜와 자비로써 행하는 일은 모두가 다 거룩한 불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영가를 위한, 영가의 명복을 비는 천도재(薦度齋)요, 영가의 명복을 비는 불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불사를 평생 동안 행한다면 우리는 그 공덕(功德)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악도(三惡途)를 면할 것이요, 세세생생에 부처님 나라에 태어날 것이요, 세세생생에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일체중생을 제도(濟度)하는 불사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11분39초~17분2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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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법계진시비로귀~’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에서 ‘하심(下心)’ 게송 참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 모든 곳에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 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명복(冥福 저승 명/복 복) ; ①죽은 뒤 저승에서 받는 복. ②(불교)죽은 뒤에 받는 복덕.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보잘것없다 ; ①가치가 없고 하찮다(그다지 훌륭하지 않다. 대수롭지 않다). ②볼품이 없다.
*단청(丹靑) ; 다섯 가지 색(청, 적, 황, 백, 흑색)을 기본으로 사용하여 건축물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놓는 것을 말한다. 절에서 단청을 하는 이유는 불전(佛殿)을 아름답고 장엄하게 조성하고, 또한 목조 건물에는 보존을 위한 뜻이 있다.
*개금(改金) ; 불상(佛像)에 새로 금칠을 하는 것.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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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ㅅ/생사는 본래없다2022. 3. 28. 07:45

생사는 본래 없다(No.463)—(게송)人生百年情何許~ |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생사가 본래 있는 것이고 보면, 어떻게 해서 그 생사해탈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 공화(空花) | 생사(生死)는 마치 헌옷을 벗으므로 해서 다시 또 좋은 새 옷을 갈아입게 되는 것.


*생사는 본래 없다 ;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11분 15초)


[법문] 송담스님(No.463)—이재원영가 49재 천도 법어(92.02.02) (용463)

인생백년정하허(人生百年情何許)오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하니  원산점점천창창(遠山點點天蒼蒼)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생 백년이 그 정(情)이 얼마만큼인가?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다. 한번 눈을 감고 영원히 이별하고 보니, 다맛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없는 영가(靈駕)와 살아 있는 사람과의 말없이 서로 마주 대할 뿐이로구나.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하니, 저 멀리 흰구름 밖에 돌아갈 길을 바라보니,
원산점점천창창(遠山點點天蒼蒼)이다. 먼산은 아득하고 하늘은 푸르고 푸를 뿐이로구나.

오늘 〇〇〇 영가의 49재 천도(薦度) 법요식(法要式)을 맞이해서, 그리고 여러 영가들, 오늘 같이 이 천도 법요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단(靈壇)에 모셔진 영가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무량겁으로부터 내려오는 한량없는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영가와 법계(法界)에 모든 유주무주(有主無主)의 고혼(孤魂)까지도 이 법요식에 법(法)으로 초혼(招魂)이 되었습니다.

그 영가들은 전강 조실 스님의 최상승 법어을 듣고 일시에 ‘생사(生死) 없는 진리’를 깨달아서 영원히 고통 없는 세계에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왜 조실 스님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듣고 그 영가들이 생사해탈(生死解脫)하게 되느냐? 반드시 그 까닭이 있습니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사가 본래 있는 것이고 보면, 어떻게 해서 그 생사해탈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생사는 본래 없는데 중생의 어리석은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있는 것처럼 착각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강 조실 스님의 그 생사 없는 진리의 법어를 통해서 잠깐 미(迷)했던, 눈을 가리었던 그것만 딱 벗겨져 버리면은 생사 없는 진리와 하나가 되기 때문인 그런 것입니다.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안질(眼疾)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공중에 무슨 꽃이 피어서 이리저리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 허공에 꼭 꽃이 피어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안 보이게 된다 그 말이여.
그러면 눈병이 생겼을 때나, 눈병이 나은 뒤에나 허공에는 본래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니었어. 다만 눈병 때문에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가 눈병 낫고 보니 허공에 꽃이 어디에 보일 까닭이 있느냐.

그와 같이 생사(生死)도 본래 없는 것이여.
다맛 인연 따라서 이 몸을 받아 났을 뿐이지, 몸뚱이를 새로 받아 났다고 해서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마음자리가 새로 생겨난 것도 아니고, 인연 따라서 이 몸뚱이를 버렸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자리가 그때 죽은 것도 아니다 그 말이여.
생사(生死)는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옷 한 벌, 새로 부모로부터 옷 한 벌 받아서 입었다가 그 옷이 낡아지면 그 옷 벗어 버리는 것뿐이다 그 말이여. 그 옷 벗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고, 헌옷을 벗으므로 해서 다시 또 좋은 새 옷을 갈아입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오늘 〇〇〇 영가는 금생에 태어나서 54년간을 이 사바세계에 머물렀습니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리고 사업을 크게 하다가, 사업을 하는 가운데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많은 사람에게 해택을 주고 마음씨가 어질고 착해서, 아무리 마음씨가 어질고 착하고 좋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금생에 인연이 다하면 또 가는 것이여.
동서고금에 모든 성현들도, 모든 위인들도, 모든 영웅달사들도 이승에 왔다가 자기의 할 일을 하고 그리고 또 인연이 다하면 또 다시 몸을 바꾸는 것이여. 인연 따라서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다시 인간에 태어나기도 하고,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도 하고, 인연 따라서 왔다갔다하는 것이여.
계절 따라서 꽃이 피었다가 열매를 맺고 다시 낙엽이 지고, 그다음 새봄이 돌아오면 또 다시 잎이 피고 꽃이 피는 거와 같은 것이여.

따라서 오늘 천도를 맞이한 모든 영가들도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철저히 믿고, 가시는 길에 모든 금생에 못다 푼 한(恨)을 다 풀어버리고 좋은 곳에 태어나시게 될 것입니다.

내생에 다시 사람 몸을 받더라도 그때는 건강한 몸으로 좋은 조건하에 태어나서 금생에 못다 한 일을 다시 또 잘 하신다면 그것도 좋고,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셔서 아미타불을 위시(爲始)한 여러 불보살과 더불어 극락세계에서 영원히 진리와 더불어 사시는 것도 또한 좋을 것입니다.
도솔천 내원궁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모시고 같이 법문을 듣고 정진을 하다가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게 되어도 그것도 또한 좋을 것입니다.

생사는 본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부처님의 진리에 입각해서 도를 닦아서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된다면 천 번, 만 번을 몸을 받아서 태어난들 무슨 슬픔이 있고, 무슨 고통이 거기에 있겠습니까.
우주법계에 한 중생도 고통을 받는 중생이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모든 불보살과 더불어 중생교화에 힘을 쓴다면 그것도 또한 얼마나 멋이 있고 보람 있는 일이겠습니까.(처음~11분3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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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인생백년정하허~’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81 ‘贈別圓上人—원상인(圓上人)을 이별하며 드림’ 게송 참고.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천도 법요식(薦度 法要式) ; 천도재(薦度齋).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 ; 문상(問喪)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넋.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초혼(招魂) ; 죽은 사람의 혼을 부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생사는 본래 없다.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안질(眼疾 눈 안/병 질) ; 눈병(눈病). 눈에 생긴 병.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안질(眼疾)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공중에 무슨 꽃이 피어서 이리저리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 허공에 꼭 꽃이 피어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안 보이게 된다 그 말이여.
그러면 눈병이 생겼을 때나, 눈병이 나은 뒤에나 허공에는 본래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니었어. 다만 눈병 때문에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가 눈병 낫고 보니 허공에 꽃이 어디에 보일 까닭이 있느냐. 그와 같이 생사(生死)도 본래 없는 것이여' ; 공화(空花, 空華)—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8~89. (가로판 p92~94)
衆生이  於無生中에  妄見生死涅槃이  如見空花起滅이니라.

중생이 나는 것 없는[無生] 가운데서 망령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 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註解) 性本無生故로  無生涅也요  空本無花故로  無起滅也라  見生死者는  如見空花起也요  見涅槃者는  如見空花滅也니라  然이나  起本無起요 滅本無滅이라  於此二見에  不用窮詰이니  是故로  *思益經云, 諸佛出世가  非爲度衆生이요  只爲度生死涅槃二見耳라 하시니라.

(주해) 성품에는 본래 남이 없으므로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없고 허공에도 본래 꽃이 없으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생사가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고, 열반이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나타나도 나타남이 없고, 사라져도 사라짐이 없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 견해에 대하여서는 더 따질 것이 없다。그러므로 『사익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견해를 건지기 위해서다」라고 하시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 (No.521)  (No.636) 에서.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No.366)—88년(무진년) 칠석차례 법문에서.(3분 44초)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한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그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그렇게 딱!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왜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
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이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병이 든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이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저 더운 날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그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그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안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없다’고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못 믿을 것도 없다 그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그 자성이 없다’고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고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고 하시고,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고 하면 그 말을 안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분명히 이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그 성현의 말씀을 안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 ‘그냥 없다’고 딱! 믿어버려.
믿어 버리면 참 그게 그렇게, 당장 그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을 얻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위시하다(爲始--) ; (주로 ‘위시하여’, ‘위시한’의 꼴로 쓰여)여럿 중에서 어떤 대상을 첫자리 또는 대표적인 존재로 삼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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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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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천도재 법문(No.463)—(게송)人生百年情何許~ |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 공화(空花) | (게송)法界盡是毘盧歸~ | 우주법계가 모두가 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계시는 곳이다. 비로자나불 법신이다 | 부처님 아닌 사람이 없어 | 지혜와 자비로써 행하는 일은 모두가 다 거룩한 불사.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 · 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재(齋 재계할 재) ; ‘재(齋)’란 본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신·구·의 3업(身口意 三業)을 깨끗하게 하여 - 악업(惡業)을 짓지 않아 - 심신을 청정하게 하는 수행방식을 의미하였다가, 점차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며 그 공덕을 함께하기를 기원하는 불교의식을 일컫는 말로 정착되었다. 또한 법회 때 스님이나 속인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근래에는 특히 돌아가신 영가를 위한 천도재(薦度齋)가 널리 행해짐에 따라 보통 ‘재=천도재’로 여긴다.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17분 9초)

 


[법문] 송담스님(No.463)—이재원영가 49재 천도 법어(92.02.02) (용463)

인생백년정하허(人生百年情何許)오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하니  원산점점천창창(遠山點點天蒼蒼)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인생 백년이 그 정(情)이 얼마만큼인가?
영별유유갱대상(永別悠悠更對床)이다. 한번 눈을 감고 영원히 이별하고 보니, 다맛 이렇게 눈으로 볼 수 없는 영가(靈駕)와 살아 있는 사람과의 말없이 서로 마주 대할 뿐이로구나.

요지백운귀거로(遙指白雲歸去路)하니, 저 멀리 흰구름 밖에 돌아갈 길을 바라보니,
원산점점천창창(遠山點點天蒼蒼)이다. 먼산은 아득하고 하늘은 푸르고 푸를 뿐이로구나.

오늘 〇〇〇 영가의 49재 천도(薦度) 법요식(法要式)을 맞이해서, 그리고 여러 영가들, 오늘 같이 이 천도 법요식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단(靈壇)에 모셔진 영가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무량겁으로부터 내려오는 한량없는 선망부모(先亡父母)의 영가와 법계(法界)에 모든 유주무주(有主無主)의 고혼(孤魂)까지도 이 법요식에 법(法)으로 초혼(招魂)이 되었습니다.

그 영가들은 전강 조실 스님의 최상승 법어을 듣고 일시에 ‘생사(生死) 없는 진리’를 깨달아서 영원히 고통 없는 세계에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왜 조실 스님의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듣고 그 영가들이 생사해탈(生死解脫)하게 되느냐? 반드시 그 까닭이 있습니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사가 본래 있는 것이고 보면, 어떻게 해서 그 생사해탈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생사는 본래 없는데 중생의 어리석은 무명(無明)으로 인해서 있는 것처럼 착각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강 조실 스님의 그 생사 없는 진리의 법어를 통해서 잠깐 미(迷)했던, 눈을 가리었던 그것만 딱 벗겨져 버리면은 생사 없는 진리와 하나가 되기 때문인 그런 것입니다.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안질(眼疾)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공중에 무슨 꽃이 피어서 이리저리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 허공에 꼭 꽃이 피어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안 보이게 된다 그 말이여.
그러면 눈병이 생겼을 때나, 눈병이 나은 뒤에나 허공에는 본래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니었어. 다만 눈병 때문에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가 눈병 낫고 보니 허공에 꽃이 어디에 보일 까닭이 있느냐.

그와 같이 생사(生死)도 본래 없는 것이여.
다맛 인연 따라서 이 몸을 받아 났을 뿐이지, 몸뚱이를 새로 받아 났다고 해서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마음자리가 새로 생겨난 것도 아니고, 인연 따라서 이 몸뚱이를 버렸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자리가 그때 죽은 것도 아니다 그 말이여.
생사(生死)는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옷 한 벌, 새로 부모로부터 옷 한 벌 받아서 입었다가 그 옷이 낡아지면 그 옷 벗어 버리는 것뿐이다 그 말이여. 그 옷 벗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고, 헌옷을 벗으므로 해서 다시 또 좋은 새 옷을 갈아입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오늘 〇〇〇 영가는 금생에 태어나서 54년간을 이 사바세계에 머물렀습니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리고 사업을 크게 하다가, 사업을 하는 가운데 좋은 일도 많이 하고 많은 사람에게 해택을 주고 마음씨가 어질고 착해서, 아무리 마음씨가 어질고 착하고 좋은 일을 했다 하더라도 금생에 인연이 다하면 또 가는 것이여.
동서고금에 모든 성현들도, 모든 위인들도, 모든 영웅달사들도 이승에 왔다가 자기의 할 일을 하고 그리고 또 인연이 다하면 또 다시 몸을 바꾸는 것이여. 인연 따라서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다시 인간에 태어나기도 하고,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도 하고, 인연 따라서 왔다갔다하는 것이여.
계절 따라서 꽃이 피었다가 열매를 맺고 다시 낙엽이 지고, 그다음 새봄이 돌아오면 또 다시 잎이 피고 꽃이 피는 거와 같은 것이여.

따라서 오늘 천도를 맞이한 모든 영가들도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하는 부처님의 말씀을 철저히 믿고, 가시는 길에 모든 금생에 못다 푼 한(恨)을 다 풀어버리고 좋은 곳에 태어나시게 될 것입니다.

내생에 다시 사람 몸을 받더라도 그때는 건강한 몸으로 좋은 조건하에 태어나서 금생에 못다 한 일을 다시 또 잘 하신다면 그것도 좋고, 극락세계(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셔서 아미타불을 위시(爲始)한 여러 불보살과 더불어 극락세계에서 영원히 진리와 더불어 사시는 것도 또한 좋을 것입니다.
도솔천 내원궁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모시고 같이 법문을 듣고 정진을 하다가 확철대오(廓徹大悟)해서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나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게 되어도 그것도 또한 좋을 것입니다.

생사는 본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부처님의 진리에 입각해서 도를 닦아서 진리와 내가 하나가 된다면 천 번, 만 번을 몸을 받아서 태어난들 무슨 슬픔이 있고, 무슨 고통이 거기에 있겠습니까.
우주법계에 한 중생도 고통을 받는 중생이 없어질 때까지 영원히 모든 불보살과 더불어 중생교화에 힘을 쓴다면 그것도 또한 얼마나 멋이 있고 보람 있는 일이겠습니까.


법계진시비로귀(法界盡是毘盧歸)인데  수도현우귀여천(誰道賢愚貴與賤)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애경노유개여불(愛敬老幼皆如佛)하면  상상엄식적광전(常常嚴飾寂光殿)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법계진시비로귀(法界盡是毘盧歸)요. 법계, 우주법계—동서사방 시방세계 끝없이 넓고 넓은 이 우주법계가 모두가 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계시는 곳이다 그 말이여. 비로자나불 법신(法身)이다 그 말이여.
수도현우귀여천(誰道賢愚貴與賤)이리요. 누가 ‘누구는 어질고, 누구는 어리석고, 누구는 귀하고, 누구는 천하다’고 할 것이냐 그 말이여.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심지어 저 축생과 산천초목과 일월성진, 길바닥에 구르고 있는 조그마한 조약돌과 해변에 수많은 모래알까지라도 전부가 다 한결같은 비로자나 법신체더라.

그러니 오늘 영가의 유족들,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돌아가신 어른을, 참으로 돌아가신 어른의 죽음을 슬퍼하고 돌아가신 어른의 왕생을 명복(冥福)을 빈다면, 비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살아계신 할머니 할아버지, 살아계신 부모님, 살아계신 모든 늙으신 어른들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하고.
나이 많은 어른뿐만이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다 부처님이여. 그 어린아이의 몸뚱이 속에도 부처님이 들어 있기 때문에 다 고대로 부처님이고. 나보다 무식한 사람이나, 나보다 가난한 사람이나, 나보다 천한 보잘것없는 불쌍한 그런 사람들도 다 부처님 아닌 사람이 없어.

그래서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부처님처럼 존중히 여기고, 돌보아 주고 아껴주고 사랑으로써 거둔다면,(愛敬老幼皆如佛)
그것이 바로 항상 상상엄식적광전(常常嚴飾寂光殿)이여.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계신 법당을 잘 건설한 것이요, 건설한 법당에 단청(丹靑)하는 것이요, 또 그 법당 안에 계신 부처님을 새로 모시는 것이요, 그 부처님께 개금(改金)을 해 드리는 것이다 그 말이여.

이러한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법당 짓고 부처님 모신 것만이 불사(佛事)인 줄 알지마는, 참으로 이러한 불법의 진리를 알고 보면 옳은 일, 지혜와 자비로써 행하는 일은 모두가 다 거룩한 불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그것이 바로 영가를 위한, 영가의 명복을 비는 천도재(薦度齋)요, 영가의 명복을 비는 불사가 될 것입니다.

그러한 불사를 평생 동안 행한다면 우리는 그 공덕(功德)으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삼악도(三惡途)를 면할 것이요, 세세생생에 부처님 나라에 태어날 것이요, 세세생생에 견성성불(見性成佛)해서 일체중생을 제도(濟度)하는 불사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처음~17분29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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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인생백년정하허~’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휴정 著, 朴敬勛 역, 동국대학교 역경원) p181 ‘贈別圓上人—원상인(圓上人)을 이별하며 드림’ 게송 참고.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천도 법요식(薦度 法要式) ; 천도재(薦度齋).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영단(靈壇) ; 영가의 위패를 두는 단(壇).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No.243) 송담 스님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고혼(孤魂) ; 문상(問喪)할 사람이 없는 외로운 넋.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초혼(招魂) ; 죽은 사람의 혼을 부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벗어나 해탈하였다는 말.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
*해탈(解脫) : [범] Vimoksa  [팔] Vimutti  음을 따라 비목차(毘木叉) • 비목저(毘木底) • 목저(木底)라고 한다。모든 번뇌의 속박을 끊어 버리고 온갖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뜻이므로, 도탈(度脫) 혹은 자유자재(自由自在)라고도 한다. 열반은 불교 구경(究竟)의 이상으로써 여러가지 속박에서 벗어난 상태이므로 곧 해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생사는 본래 없다. 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무명(無明) : [범] avidya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을 이름.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는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 법계(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근본무명(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한 온갖 망녕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지말무명(枝末無明)이라 하였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안질(眼疾)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공중에 무슨 꽃이 피어서 이리저리 움직인 것처럼 보인다 그 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 허공에 꼭 꽃이 피어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 안 보이게 된다 그 말이여.
그러면 눈병이 생겼을 때나, 눈병이 나은 뒤에나 허공에는 본래 꽃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니었어. 다만 눈병 때문에 있는 것처럼 보여졌다가 눈병 낫고 보니 허공에 꽃이 어디에 보일 까닭이 있느냐. 그와 같이 생사(生死)도 본래 없는 것이여' ; 공화(空花, 空華)—환(幻). 공안화(空眼花). 공중(空中)의 꽃. 눈의 장애로 말미암아 생기는 허공의 꽃.
실재하지 않는 것을 있는 것으로, 관념을 실재하는 객관 대상으로, 고유한 실체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 보는, 번뇌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망상(착각·환상·편견 등)을 말한다.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88~89. (가로판 p92~94)
衆生이  於無生中에  妄見生死涅槃이  如見空花起滅이니라.

중생이 나는 것 없는[無生] 가운데서 망령되게 생사와 열반을 보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 꽃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註解) 性本無生故로  無生涅也요  空本無花故로  無起滅也라  見生死者는  如見空花起也요  見涅槃者는  如見空花滅也니라  然이나  起本無起요 滅本無滅이라  於此二見에  不用窮詰이니  是故로  *思益經云, 諸佛出世가  非爲度衆生이요  只爲度生死涅槃二見耳라 하시니라.

(주해) 성품에는 본래 남이 없으므로 생사(生死)와 열반(涅槃)이 없고 허공에도 본래 꽃이 없으므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생사가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나타나는 것을 보는 것과 같고, 열반이 있는 줄로 아는 것은 허공에 꽃이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나타나도 나타남이 없고, 사라져도 사라짐이 없는 것이므로 이 두 가지 견해에 대하여서는 더 따질 것이 없다。그러므로 『사익경』에 이르기를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신 것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생사와 열반의 두 가지 견해를 건지기 위해서다」라고 하시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 법문 (No.521)  (No.636) 에서.
눈이 멀쩡한 사람은 허공 속에 아무것도 없이 깨끗한데, 눈병이 난 사람은 허공에 이상한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보이고 그러는데, 눈병만 고치면은 허공에 피어있던 꽃이 안 보인다.
그래서 눈병이 났던 사람은 ‘허공에 있던 꽃이 있다가 없어졌다’고 하지마는, 허공의 꽃은 있다가 없어진 게 아니라 원래 없던 것이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을 통해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육경(六境)을 만나면 육식(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이 생기는데, 그 육식(六識)에 포착되는 모든 것들을 이름과 모양—명상(名相)이라 하는데, 명상이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림자요, 메아리, 환(幻)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명상(名相) 그것을 ‘있는 것’으로 집착을 함으로 해서,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일어나 생사윤회의 업을 짓는데, 마음 하나만 공(空)해 버리면 일체 명상(名相)은 동시에 다 공(空)해 버리는 것이다.

원래는 이 세상에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生死)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生死)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이다 이거거든.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참고 ❸] 송담스님(No.366)—88년(무진년) 칠석차례 법문에서.(3분 44초)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번뇌 망상은 본래 없는 것이다’
‘본래 번뇌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생사는 본래 생사의 자성이 없는 것이다. 한 생각 일어나되 일어나는 한 생각 일어남이 없는 것이다. 그 자체가 본래 없는 것이다’하고 그렇게 딱! 믿어 버리는 것이여.
있는 것으로 인증을 하고 그놈을 끊을라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없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버리는 거여.

왜 있는데 없다고 믿을 수가 있느냐?
분명히 번뇌가 일어나고 망상이 일어나고 이렇게 몸뚱이를 받아 나면은 아프고 늙어서 병들어 죽고, 아무리 이 몸뚱이 없다고 하지만 꼬집어보면 아픈데 어떻게 하느냐? 도저히 믿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눈병이 든 사람은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눈에 병이 없는 사람은 이 맑은 허공을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은 이상하니 무슨 꽃이 이글이글이글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저 더운 날 강변에 가면 모래사장에 아지랑이가 이글이글이글 타오르듯이, 그 허공에 아무것도 없는데 분명히 허공에 꽃이 피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면 아무리 그 허공에 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해도 눈병이 없는 사람은 안 보이는데, 눈병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보인다 그말이여.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허공에 무슨 꽃이 피어있겠느냐 그말이여. 눈병만 고쳐 버리면은 허공의 꽃은 없어져 버리는 거여.

그러면 눈병이 있는 사람에게 보인다고 해서 실지로 허공에 꽃이 있느냐 하면은 없는 것이거든.
그래서 눈병이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면, ‘없다’고 믿으면 되는 거여. 실지로 자기 눈에 보인다 하더라도 보이는 것은 눈병으로 인해서 헛것이 보이는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면 못 믿을 것도 없다 그말이여.

번뇌와 망상이 그 자성이 없다’고 하면 실지로 자기에게는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부처님이 ‘없다’고 하시고, 성현들이 ‘없다’고 하시고, 선지식(善知識)이 ‘없다’고 하면 그 말을 안 믿고 무엇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분명히 이 몸뚱이를 타고난 이상 늙어서 병들어 죽는 고통이 있지만 부처님과 모든 성현이 『생사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그 성현의 말씀을 안 믿고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이냐 그말이여.

성현의 말을 고냥 고대로, 액면 그대로 ‘그냥 없다’고 딱! 믿어버려.
믿어 버리면 참 그게 그렇게, 당장 그 자리에서 대안락(大安樂)을 얻을 수가 있다 그말이여.
*안질(眼疾 눈 안/병 질) ; 눈병(눈病). 눈에 생긴 병.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왕생(往生) ; 죽어서 다른 세계에 가서 태어남. 이 세상에서 쌓은 공덕으로 죽어서 정토에 태어남. 염불한 공덕으로 죽어서 극락에 태어남.
*아미타불(阿彌陀佛) ; 대승불교에서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에 머물면서 법(法)을 설하는 부처님.
<정토 3부경>에 있는 이 부처님의 역사는, 오랜 옛적 과거세에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 Lokesvararaja-Buddha)의 감화를 받은 법장비구(法藏比丘 Dharmakara)가 2백 10억의 많은 국토에서 훌륭한 나라를 택하여 이상국을 건설하기로 기원하였다.
또 48원(願)을 세워 자기와 남들이 함께 성불하기를 소원하면서 오랜 겁을 수행한 결과 지금부터 10겁 이전에 그 원행(願行)이 성취되어 아미타불이 되었다. 줄여서 미타(彌陀).
의역하면 무량광불(無量光佛 Amitabha Buddha-무한한 공간에 꽉 차 있어서 안팎과 갓이 없는 빛의 부처님), 무량수불(無量壽佛 Amitayus Buddha-무한한 시간에 뻗치어서 끝없는 생명의 부처님).
*위시하다(爲始--) ; (주로 ‘위시하여’, ‘위시한’의 꼴로 쓰여)여럿 중에서 어떤 대상을 첫자리 또는 대표적인 존재로 삼다.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 ; 욕계 육천(欲界六天)의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그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이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에)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을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의 뜻은 지족(知足).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게송) ‘법계진시비로귀~’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하심(下心)’ 게송 참고.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 모든 곳에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 遍一切處, 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명복(冥福 저승 명/복 복) ; ①죽은 뒤 저승에서 받는 복. ②(불교)죽은 뒤에 받는 복덕.
*보잘것없다 ; ①가치가 없고 하찮다(그다지 훌륭하지 않다. 대수롭지 않다). ②볼품이 없다.
*단청(丹靑) ; 다섯 가지 색(청, 적, 황, 백, 흑색)을 기본으로 사용하여 건축물에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놓는 것을 말한다. 절에서 단청을 하는 이유는 불전(佛殿)을 아름답고 장엄하게 조성하고, 또한 목조 건물에는 보존을 위한 뜻이 있다.
*개금(改金) ; 불상(佛像)에 새로 금칠을 하는 것.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천도재(薦度齋) ;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생전에 지은 업(業)에 따라 다음 생을 받게 되는데, 유족들이 불보살(佛菩薩)을 모신 법당(法堂)에서 돌아가신 영가를 청해 모시고, 지극한 마음으로 불보살의 가피를 기원하고 또한 영가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門)’을 들려줌으로써,
영가가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지혜의 눈을 밝혀 삶의 무상을 깨달아 이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더 나아가 육도윤회를 벗어나 극락왕생·해탈의 바른 길로—잘 건너가도록 하는 불교의식.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