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법거량2022. 3. 9. 09:47

법거량(전강선사 No.012)—경허 큰스님 오도송(悟道頌)에 대한 탁마(琢磨) |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10분 17초)


[법문] 전강선사(No.012)—전강선사 일대기 제5호(경술1970년 12월 8일 새벽.음) (전012)

내가, 이것은 뒤에 또 나오는 법문이지마는 여다가 한마디 넣을 것은 글씨 또 내가 만공 큰스님, 용성 큰스님 그때에 그 인자 그 어른 제자라도 보월 스님, 돌아가신 고봉 스님, 금봉 스님 쏵 그 호서(湖西) 대중이 다 모인 그 대덕(大德) 가운데에서, 그 큰 용상(龍象) 큰스님네 밑에서—아, 또 보소! 또 내가. 경허(鏡虛) 큰스님 오도송이 있어! 오도송(悟道頌).

그런 경허 큰스님 같은 오도송이 아, 얼마나 참말로 거룩헌 큰스님의 오도송인디, 거다가 갬히 내가 또 쎗바닥을 대아? 허지마는 댈 건 대야제, 어쩔 것인가.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허고, 홀연히 소 콧구녁 없단 말을 듣고,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다. 몰록 삼천세계(三千世界)가 내 집인 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요렇게 해 놓으셨는디, 내가 거그다가 인자 오도송에다 갖다가 허물을 떡 끄집어낸다.

“소 콧구녁 없단 말씀을 듣고, 삼천세계가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이 무사태평가다. ‘콧구녁 없다’는 도리나,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다. 삼천세계가 내 집인 줄을 깨달랐다’는 각견(覺見)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라’ 그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응! 천하에 큰스님에 아무리 큰스님에 법문일지언정, 뭐 어디 큰스님 법문이라고 어떻게 때꼽재기를 파내고 씻거야지, 어찌 그대로 둘 수가 있겄습니까? 이것이 다 탁마(琢磨)인디.

“무비공(無鼻孔) 도리와 삼천세계가 내 집이다고 깨달은 각견과 유월연암산하로에 야인무사태평가, 도저히 될 수 없습니다” 아, 그러니까...
그것도 ‘그 천하에 경허 스님 송(頌), 오도송 잘 되았지’ 아, 이래 쌓어 내가 거다 입을 벌렸다 그 말이여.

“그러면 그 무비공 도리와 각견과 무사태평견을, 그놈을 자네는 여의고 한마디 어디 말해 보소. 어떻게 해야만 그놈을 여의고 말을 허겠는가?”

“예. 그러면 무비공 도리, 각견 도리, 거 다 큰스님 허신 대로 그대로 두고, ‘홀문인어무비공허고 돈각삼천시오가라.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만 그대로 그만 큰스님 법문 오도송대로 두고, 고 끝에 한 귀(句)만 제가 참으로 황송헙니다마는 한마디 일러보겠습니다”

“응, 일르게” 만공 스님이 “일르게”
그 선지식과 50명 학자가 꽉 찬 디서 내가 조실방 앞에서 헌 것입니다. 우리 보살님네도 잘 들으란 말이여. 이놈 잘 들어야 허는 것이여. 언하대오(言下大悟)지.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라. 유월 달에 그 연암산 밑에 모 심구는 그때여, 때가.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유월 연암산 밑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란 건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 한다'는 것은 모 심구는 모도 노래를 부르고 있는 거여. 그걸 보고 이르는 건디.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이, 우리 부처님의 법이라 하는 것이 어디 무슨 무사태평(無事太平)이니, 무슨 본래각(本來覺)이니, 무슨 뭐 소 콧구녁 없는 도리니, 그러헌 그 거가서는.... 말후(末後), 부처님의 그 우리 선법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 가지고 확철대오헌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지 않는 거여. 확철대오 지경에 가서 꺼꾸러지고 처백히면은 못쓴 것이여.

각(覺)이니, 무비공(無鼻孔)이니,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 인자 그 제삼구(第三句)로, 그 도인이 오도송에 그 쓸 수 있는 말이제. 쓰는 법이제, 안 쓰는 것 아니여.
‘허공(虛空)이다. 역무허공지량(亦無虛空之量)이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니, 역무일물지해(亦無一物之解)니라’ 이렇게 또 들어가야 되지, 그걸 안 허고는 안되는 법이여.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면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인데, 그것을 여의고 헐 수가 또 있나. 허지마는 티를 뜯고 학자가 한번 눈을 파는데는 헐 수 없어!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에 야인(野人)이 무사태평가(無事太平歌)니라’
내 거그 글 한 귀(句) 딱 떼고 해 놓은 송(頌)이 뭐냐 허면 이겁니다.

유월연암산하로에서 들사람이 모 심구는디, 모 심구는 내가 그 경계여.
'유월연암산하로에' 거까장 두고는, 거다가서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곡을 붙여서) 이놈을 내가 하나 불렀드라. 응, 유월연암산하로에 그 모 심구는 곡조다. 다른 게 아니여, 그게. 농군들 노래여!

이놈 하나 딱 부르니까 만공 스님이 척 계시다가 “그 여여로 상사뒤여 의지(意旨)가 여하(如何)오?”
내가 그때는 또 춤을 또 추었네 인자, 또 더군다나 “여여~ 여여로~ 상사뒤여~”

“적자(嫡子)가 농손(弄孫)이로구나! 적자가 손자를 희롱허는구나!” 그게 점검이여.
그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일지언정 어디어디 거가서 그대로 뭐 보이는 때꼽재끼를 놔두어?

그래 가지고 거그서 보월 스님도 그때에사 “경허 큰스님의 오도송이 삼구에서 허셨제. 제삼구(第三句)로 허셨제” 이랬고. 운문도 역시 부처님의 출세에 그렇게도 긱구자(喫狗子)를 썼다 그 말이여.

나 역시 아무리 두 어른네가 해 놓았기로이 보이는 것을 안 헐 수가 있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손만 내밀고, 할(喝)만 허고, 방(棒)만 허면 제일인가?
법문이라는 것은 항상 그 참, 단진범정(但盡凡情)이여. 범정(凡情)은 다 깨달라 다 없다마는 성해(聖解)에 가서, 성해에 가 주(住)허지 말아라. 성해에 떨어지면 또 되는 겐가?
그러니 그 각견(覺見) 같은 것을, 불견(佛見) 같은 것을, 법견(法見) 같은 것을 척척 잡아내서 이게 탁마여.

여그서 그놈 척! 허고서는 내가 그다음에 가서 또 인자, 또 그건 아침에 날이 치워서(추워서) 거까장 맺어줄 수가 없어.
요것은 뭐냐하면 늘 듣는 법문이고 요새 헌 법문이지마는, 그 꿀 딱! 먹을 때, 꿀 딱 받아먹을 때, 어저께도 그 안 일렀나. ‘어떻게 했으면 살아가겄느냐?’ 고거 있지. 요놈이 있지마는 전편이 좀 해야, 소소허게 전편을 다시 해 가지고 내가 일러야겄어.

고놈을 한마디 일러놓고 내가 전국 육대선지식(六大善知識)한테 한목 인가(印可) 받은 것이여. 한목.
하나도, 그런 놈이 나와야 되제. 배 벌로 ‘내가 인가 받았다. 내가 견성했다’ 그러고 나와. 그거 안되는 말이여. 딱딱 그 증거가 나와야 하제.

오늘 아침에 치워(추워) 여까장 허고 내려가겄어. 오늘은 12시에 법문이 있겄오.(22분48초~33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호서(湖西) ; ‘호수의 서쪽’으로 오늘의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대덕(大德) ; 덕이 있는 사람. 덕행이 있는 자의 의미. ①장로, 부처님, 보살, 고승 등에 대한 경칭. ②수행자에 대한 호칭. ③스님에 대한 경칭.
*용상(龍象) ; 용과 코끼리. 또는 용이나 코끼리 하나를 가리키는 말.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세상에서 가장 탁월한 인물인 부처님만 가리키거나 보살의 용맹한 능력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확장하여 걸출한 인물이나 뛰어난 수행자를 가리킨다.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년(신미년) 3월 7일 출생하였다. 1884년(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로,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로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그 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을 하면서 공부하기란 퍽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로 가서 노전(爐殿)을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년(을미년) 7월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중 홀연히 벽이 공(空)하고 일원상(一圓相)이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을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요  공산의 이기(理氣)는 고금 밖이요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라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고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그 후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세 때, 1896년(병신년) 7월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온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등(藤)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라 하니 이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를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의 화두는 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를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을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을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그 후 정진하던 중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년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로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한 후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가 되었다.
31세 때(1901년)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세 때(1904년 7월 15일)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를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구름달 시냇물 산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수산선자(叟山禪子)의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은근히 무문인(無文印)을 분부하노니,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에 살았구나.

1905년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라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그 뒤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을 중창하고 선풍(禪風)을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에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을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년(병술년) 10월 20일에 목욕 단좌(端坐)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경허선사(鏡虛禪師) ; (1849-1912) 성(姓)은 송(宋)씨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이름은 동욱(東旭)이요 호(號)는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헌종 15년 기유(己酉)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요 어머니는 밀양(密陽) 박(朴)씨였다. 태어난 뒤 사흘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아기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가서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컸으며 비록 고달픈 환경이라도 피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긷고 밥을 지으며 은사스님을 모셨다.

14세가 되도록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때에 그 선비가 소일꺼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통사(通史)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눈에 스치면 배우고 듣는대로 외우고 문리를 해석할만큼 크게 진보가 있으니 선비가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되지 않아서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還俗)을 하며 스님의 공부를 크게 성취시키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추천하였다. 화상은 그 당대에 큰 강사였다.

만화강백(萬化講伯) 처소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게 해도 남보다 열배 백배 앞섰으며 영호(嶺湖)의 강원에 두루 참석하여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널리 내외전(內外典)을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름이 팔도에 떨치었다.
23세 때에 대중들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교의(敎意)를 논(論)하매 큰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사방에서 학인들이 몰려왔다.

31세 때 하루는 전날 은사 계허스님이 보살펴 아껴주던 정이 생각나서 한번 찾아뵙고자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집집마다 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지금 이곳에는 전염병(콜레라)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에 들어왔는가!”하였다.
스님이 그 말을 듣자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고 마음이 떨리며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것 같으며,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 밖의 청산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文字)에 구속되지 않고 조사(祖師)의 가르침을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바 공안(公案)을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의심으로 참구(參究)할 분(分)이 없으나,
오직 영운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라는 화두(話頭)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였다.

산에 돌아온 뒤에 대중들을 흩어 보내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따라 잘들 가게나. 내가 뜻을 두어 원하는 것은 이에 있지 않다네”하고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參究)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같이 3개월을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다.

한 사미(沙彌)스님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속성(俗姓)은 이(李)씨라, 그의 아버지가 좌선을 여러 해 동안 하여 스스로 깨달은 곳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 이처사(李處士)라고 부르는데, 사미의 스승이 마침 그 집에 가서 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처사가 말하기를 “중이 필경에는 소가 된다”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된다”고 했다.

처사가 꾸짖어 이르기를 “소위 사문(沙門, 스님)의 대답이 이렇게 도리에 맞지 않습니까”하니까,
그 스님이 이르기를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하니 처사가 이르기를 “어찌 소가 되기는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는고?”

그 스님이 묵묵히 돌아가서 사미에게 이르기를 “너의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하니,
사미가 말하길 “지금 주실(籌室) 화상이 참선(參禪)을 매우 간절히 하여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을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 이치를 알 것이니 사부(師傅)께서는 가서 물으소서”

그 스님이 흔연(欣然)히 가서 절하고 앉아서 이처사(李處士)의 말을 전하는데 ‘소가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는 말에 이르러 화상의 안목(眼目)이 정(定)히 움직여 ‘옛부처 나기전 소식(古佛未生前消息)’이 활연히 앞에 나타나고, 대지가 꺼지고 물질과 나를 함께 잊으니 곧 고인(古人)의 ‘크게 쉬고 쉬는 경지(大休歇之地)’에 도달한지라, 백천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 하니, 때는 고종 16년 기묘(己卯 1879)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날 이후 스님은 방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았다. 만화강사가 들어와서 보아도 또한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강사가 이르기를 “무엇때문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고?”하니, “일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無事之人 本來如是)”고 하였다.
스님은 그 이듬해인 경진년 봄에 어머니와 형 태허스님이 계신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오후보림(悟後保任)하였다.

게송으로 그 깨달아 증득한 곳을 이르기를,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콧구멍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 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에 머물면서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傳燈)의 연원(淵源)을 밝히는데 스님의 법은 용암화상(龍巖和尙)에게 이었으니 청허(淸虛)의 12세손이 되며 환성(喚惺)의 7세손이 된다 하였다.
그 뒤로 호서(湖西)에 20여 년 간 오래 주석하니 천장암과 서산의 개심사와 부석사, 마곡사·칠갑산 장곡사·아산 봉곡사·금산 태고사·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속리산 법주사 등지로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묵상하며 때로는 사람을 위하여 설교하면서 호서에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었다.

51세 때 기해년(1899) 가을에 합천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가니 때마침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출하는 불사와 수선사(修禪社)를 설치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영축산 통도사·표충사·대승사·동화사·파계사와 금정산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실상사·쌍계사·송광사·태안사는 모두 화상께서 유력(遊歷)하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禪院)을 다투어 차리고 발심한 납자 또한 구름 일 듯하니, 이 기간처럼 부처님 광명이 다시 빛나 사람의 안목을 열게 함이 이와같이 성(盛)함이 없었다.

임인년(1902)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편찬 불사. 가을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 나한 개분불사(改粉佛事) 때 증명법사를 하였다.
56세 때 갑진년(1904) 2월 11일에 천장암에서 만공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내리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부촉하였다. 봄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선비 박난주(朴蘭洲), 또는 유발거사(有髮居士) 박진사(朴進士)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 갑산·강계 등지로 내왕하며 시골 서당에서 훈장도 하며 만행두타(萬行頭陀)로써 진흙에도 들고 물에도 들어가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세 때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甲山) 웅이방(態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入寂)하니 법랍 56세였다. 입적 소식을 듣고 만공(滿空)·혜월(慧月)선사가 곧 그곳에 가서 난덕산(難德山)으로 운구하여 다비(茶毘)를 하고 임종게(臨終偈)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게 빛나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만공선사 주재, 한용운 스님의 편찬으로 스님의 법어를 모은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석명정 역 | 극락선원), 『경허법어(鏡虛法語)』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편 | 김진성 역 | 인물연구소)

*경허 스님 오도송 ;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岩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소 콧구녁 없단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三千世界)가 내 집인 줄 깨달랐다.
유월의 연암산 아랫길에 들사람이 일없이 태평가를 부르는구나.
*오도송(悟道頌) ; 불도(佛道)의 진리를 깨닫고 그 경지 또는 그 기쁨을 나타낸 게송.
*쎗바닥 ; ‘혓바닥(①혀의 윗면. ②‘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삼천세계(三千世界) ;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온갖 세계. 수없이 많은 세계. 하나의 우주 전체. 다할 수 없이 넓은 우주. 하나의 삼천세계(三千世界)가 하나의 부처님이 교화하는 범위라 한다.
*때꼽재기 ; 때가 여러 겹으로 엉겨붙은 조각이나 부스러기.
*탁마(琢磨 쫄 탁/갈 마)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옥이나 돌 따위를 쪼고 갊.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것.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것.
*심구다 ; ‘심다’의 사투리.
*말후(末後) ; ①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 궁극(窮極), 최후의 뜻. ②생명이 끝날 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삼구(三句) ;
[참고] [三句] 삼구.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207 참고.
第一句는  喪身失命이요  第二句는  未開口錯이요  第三句는  糞箕掃箒라.


삼구 : 첫째 구는 몸 죽고 목숨 잃는 것이요, 둘째 구는 입을 열기 전에 그르쳤고, 세째 구는 똥삼태기와 비이니라.


[참고] [임제록(臨濟錄)]
山僧今日見處  與祖佛不別  若第一句中得 與祖佛爲師  若第二句中得 與人天爲師  若第三句中得 自救不了.


산승의 견처(見處)는 불조(佛祖)와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問如何是眞佛眞法眞道。乞垂開示。師云。佛者心淸淨是。法者心光明是。道者處處無碍淨光是。三卽一皆是空名。而無實有。如眞正學道人。念念心不間斷。自達磨大師從西土來。祇是覓箇不受人惑底人。後遇二祖。一言便了。如知從前虛用功夫。山僧今日見處與祖佛不別。若第一句中得。與祖佛爲師。若第二句中得。與人天爲師。若第三句中得。自救不了。

문(問), “어떤 것이 진불(眞佛)이며, 진법(眞法)이며, 진도(眞道)인지 스님의 가르침을 내려주소서”
임제 스님이 말했다. “부처[佛]는 마음이 청정한 것[心淸淨]이 그것이고, 법(法)은 마음이 밝게 빛남[心光明]이 그것이고, 도(道)란 곳곳에 걸림없이 청정하게 빛남[處處無碍淨光]이 그것이다.
그런데 셋이 곧 하나이니 이것도 모두 빈 이름 뿐이고, 실(實)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학도인은 잠간도 마음이 간단(間斷)하지 않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오신 이후 오직 남의 유혹을 받지 않을 사람을 찾았다. 뒤에 이조(二祖)를 만났는데, 한마디에 깨닫고 이전에 하던 공부가 쓸데없는 것이었음을 알았다. 오늘 산승의 견처(見處)도 불조(佛祖)와 더불어 다르지 않다. 제1구에 깨달으면 불조(佛祖)의 스승이 되고, 제2구에 깨달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고, 제3구에 깨달으면은 제 몸도 구제하지를 못한다.
*불행방초로(不行芳草路) 난지낙화촌(難至落花村) ; ‘우거진 풀밭길 걷지 않으면 꽃이 지는 마을에 가긴 어려워.’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66 참고.
*농군(農軍 농사 농/군사 군) ; ①농민(農民). 농사짓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②농민으로 조직된 군대.
*적자(嫡子 정실·맏아들·대를 이을 사람 적/아들·자식·남자·사람 자) : ①정실(正室, 본처本妻)이 낳은 아들. ②스승의 법을 바르게 이어받은 제자. 정통제자. 사법(嗣法)제자.
*'운문도 역시 부처님의 출세에 그렇게도 긱구자(喫狗子)를 썼다'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 『선문염송(禪門拈頌)』 제2칙 '주행(周行)‘ 참고.
[참고]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大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 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단진범정(但盡凡情) 별무성해(別無聖解) ;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83.
修行之要는  但盡凡情이언정  別無聖解니라
수행의 요결은 다만 범부의 생각이 다할지언정, 따로 성인의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니라.

(註解) 病盡藥除하면  還是本人이니라
병이 없어지고 약까지 쓰지 않는다면, 앓기 전 그 사람이니라.
*범정(凡情 무릇·보통 범/뜻 정) ; 범부(凡夫 번뇌에 얽매여 생사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의 생각. 또는 범부의 망상분별을 말한다. 깨닫지 못한 이들이 근거 없이 범상한 알음알이로 헤아리는 것. 범심(凡心)과 같은 말.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곧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과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는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 ; ’아주, 매우’의 옛말.
*벌로 ; ‘건성으로. 함부로. 멋대로’의 사투리.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법거량2022. 3. 9. 09:19

법거량(전강선사 No.012)—용성 스님이 만공 스님께 묻기를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 전강 스님의 반문(反問)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입니까?” | ‘찾다가 죽는다’


*법거량(法擧揚 법 법/들 거/나타낼•밝힐 량) ;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禪) 수행자들 사이에 주고받는 선(禪)에 대한 문답.

 

(14분 28초)


[법문] 전강선사(No.012)—전강선사 일대기 제5호(경술1970년 12월 8일 새벽.음) (전012)

오늘은 납월팔일(臘月八日), 우리 부처님이 도(道) 깨달은 납월팔일인디, 납월팔일 아침에 우리 부처님 도 깨달은 역사를 말씀을 해야 옳을턴디.
오늘은 납월팔일이기 따문에 참, 성도재(成道齋)여. 성도재인디, 오늘 오후 오늘 아마도 12시에 시작하면 한 2시경까지 또 법문이 있겠으니 그때에 성도 법문은 헐 요량하고.

저번에 뭐 일대기에 가서, 저 용성 스님 회상(會上)에 가서 용성 스님께 제일귀(第一句) 문답해서 제일귀 문답 마치고, 그다음에 말후구(末後句) 문답 마치고. 거기에 또 문답이 있거든.
저번에 그걸 내가 안 했구만. ‘한암 스님한테 간다’는 이렇게까장만 하고는 그 용성 스님께 마지막 문답(問答) 안 했어.

고 문답을 마자 해야지. 그 내 기이(旣已) 과거에 공부헌 역사기 따문에 조꼬만헌 것이라도 빼놓을 수가 없고. 쪼옥 역사라 하는 것이 꼭 그것은 그대로 똑 해놓아야 허는 게 역사니까.
조끔이라도 거기에 위조가 있다면은 그 미래 학자한테 거짓말로 속여 놓은 거 아닌가? 그 죄를 어떻게 헐 텐가. 죄보담도 정법문중에서 어찌 그렇게 꾸며대는 말이 어디 있을 건가?


내가 거기에는, 인자 용성 큰스님께 묻는 말이여. 내가 들은 법문이거든! 과거에.
용성 큰스님께서—만공 스님이 서울을 올라오셨는디. 서울 선학원(禪學院)에 오셔서 계시는데, 용성 스님이 만공 스님께 묻기를 “어묵동정(語默動靜)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그랬거든. ‘어묵동정을 여의고 이르십시오.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 것입니까’

어묵동정(語默動靜), '말씀 어(語)' 자, 어묵 묵(默)이라는 건 말 없는 경계를 묵(默)이라 하지 않소.
“어(語)와 묵(默)과 동(動)허고 정(靜)허는 거 여의고 한마디 일러주십시오” 그러니 어묵동정을 여의고 그 이르라고 했네.
그러니깐 만공 큰스님께서 아무 말이 없어. 그 말 없는 경계를 양구(良久)락 햐. 가만히 있었다 그 말씀이여. 일체 말도 않고, 동도 않고, 정도 않고, 가만히 말만 없이 계셨다.

용성 큰스님께서 “양구(良久)시오?” 그랬다. “양구십니까?”
아무 말이 없는 도리가 양구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한마디 일러달락 하니까 아무 말씀이 없이 계시니 “그 양구십니까?” 이렇게 또 물었다.
만공 스님, 또 아무 말이 없다. 아무 말이 없으셨어. 아, 그러고 말았네.


내가 그때에—그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그걸 내가 전신구(轉身句) 답헌 뒤에 그걸 물었어.

용성 큰스님이 만공 큰스님께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아무 말씀이 없으니까 “양구십니까?”—오! 또 아무 말 없는 게 아니라, 또 “양구십니까?” 그러니께,
“아니요” 이랬다. 고렇게 했어, 인자 끝에. 그러고 말았어.

“세상에 용상대덕(龍象大德)이 두 분이, 두 어른네가 법문을 해 놓으신 이 법이, ‘어묵동정 여의고 이르십시오’ 아무 말이 없으니까, ‘양구요?’
‘아니요!’ 이래 놓았으니, 학자의 눈을 멀려 놓고 만 짓이제, 이렇게까장 허실 수가 있겠습니까? 두 어른네가 멱사리을 잡고 같이 진흙 구덩이에 빠져버리고 말았지, 거 학자 죽인 도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내가 이랬다. 이 조잔헌 것이. 허, 이거 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 이랬다 그 말이여.

황송허기야 짝이 없고, 감히 어디가서 그런 큰스님네 앞에 그렇게 법을...
'두 큰스님네가 멱사리을 붙잡고 한 흙탕 속에 빠지고 말았지, 어디 학자의 눈을 띄울 수가 있습니까? 타니대수(拖泥帶水)입니다. 진흙을 뿌리고 물에 들어갔습니다' 물속으로 빠진 거여.

허지마는 내가 아무리 조잔하고 내가 아무리 학자지마는 학자가 어른 앞에 어디 감히 그렇게 함부로 입을 열어서 경망헌 행동을 허리요마는, 법체(法體)에 들어가서는 헐 수 없어. 시비헐 건 시비해야 하는 것이지, 안 헐 수가 있어?

아, 비단 그뿐 아니라 어떻게 아구지가 세고 쬐끄만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막 들어서제. 막 덤벼. 아, 이런 꼴이 있는가?
나도 그런 줄 알지마는 별 도리 없어! 이 참선 도리야 어쩔 수가 있는가?

천상천하(天上天下)에 역사에 없는 우리 부처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신데, 갬히 그 앞에 몇백 년 뒤일지언정 손자 중, 손자도 아니고 아무 저 밑에 천삼백 년 후에 나온 운문승(雲門僧)이 우리 부처님한테 그만 그 법문 좀 봐.
“아유당시(我有當時)면, 내가 만약에 그때 당시에 있었으면, 일방타살(一棒打殺)하야 여구자긱(與狗子喫)이다. 한 방맹이로 타살(打殺)해 죽여서 개를 준다”

어찌 그 말을 헐 것이냐!
이건 헐 수가 없어. 요런 도리를 썼다.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요렇게 썼닥 해서 아무라도 그렇게 써? 그 운문 눈이래야 바로 보고 쓰지!
운문선사는 그대로 써 놓은 말인디, 그건 부처님의 그 무슨 체면과 무슨 우리 부처님의 무슨 천상천하에 거룩헌 명예에 무슨 떨어져서, 그것 소용 없어. 그건 막 보고 쓴 법문인데.

사자굴중(獅子窟中)에 무이수(無異獸)요. 사자굴 가운데에는 다른 짐승이 범틀 못헌 법이고. 불입호혈(不入虎穴)이면 쟁득호자(爭得虎子)제. 호랭이 구럭에 들지 아니허면 호랭이 새끼를 어떻게 얻을 것이냐? 선(禪)의 도리라는 것은 헐 수가 없드라 그 말이여.

그런 바른 눈이 있을 것 같으면 큰스님 앞에 별 도리라도 쓸 수 있어! 허지마는 눈도 없는 것이 그따구 짓 했다가는 어째? 참말로 못된 것이고, 참말로 건방진 것이고, 참말로 무간지옥(無間地獄)에 활살같이 떨어지는 법이여. 못 허고, 또 허들 못 혀!

뭔, 내가 그러면은 ‘나는 그런 눈이 있어서 그랬다’ 그 말 같지마는, 눈이 있으면은 그 말 같다고 해서, 내가 거기에 무슨 뭐 뭣을 내가 두고 머물거릴 것이여?
뭐 거그서는 한번 아주 건방질 수도 있는 것이고, 막 들어서는 자리다 그 말이여. 안 헐 수 있어? 아무리 큰스님네지마는, 흙탕 속에 바로 떨어진 것 아닌가 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입니까?”

“그러면 영신이는 어떻게 이를 테냐? 우리 둘이는 만공 큰스님과 용성 스님은 한 흙탕 속에 그대로 빠졌다면, 자네가 하나 일르소. 자네는 어묵동정을 여의고 어떻게 이를 테냐?”

나는 거그서 반문(反問)을 했어. 반문.
좀 여러 여그 모이신 우리 대중이 자서히 들어보라 그 말이여! 벌로 듣지를 말고.
건방진가 안 건방진가 좀 봐. 참인가 아닌가도 좀 보고! 간택을 허라 그 말이여! 거그서.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이렇게 물었어.
양구(良久), 그 말 묻는데 내가 떨어지지 않고 어(語)니, 묵(默)이니, 동(動)이니, 정(靜)이니, 그러헌 데다 떨어지지 않고,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입니까?”
그 문(問)이, 한번 묻는 것이 그 무슨 문(問)이여? 응, 그 무슨 문이냔 말이여?

아무리 금소(설)가 수귀(金屑雖貴)다마는, 금가루가 그렇게 좋다마는 낙안성예(落眼成翳)니라. 눈에 떨어지면은 가리가 되는 법이다.
거그서 제일구(第一句)를 일러? 거그서 불불불상견(佛佛不相見)을 일러? 거그서 본분(本分)을 추켜 들어 일러? 비심비불(非心非佛)이요, 도역가명처(道亦假名處)를 일러? 천하 없는 것을 이를라고 이치를 잡아 찾으면은 저 죽는 것이다 그 말이여.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이냐. 한번 보라 그말이여!
‘찾다가 죽는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말이여.

“자네는 어떻게 이를텐가?”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란 말씀입니까?” 공경히 허니 어쩔 것이냐 그 말이여, 거그서.

다시 그대로, 그대로 거그서, 뭐 그대로 그만 말 없는 곳에서 그대로 인가여! 뭐, 두말헐 것 없어. 그 전국에 다, 내 그 다 해 놓은 거 전국에 다 있는 것이여. 고놈 마쳤다 그 말이여. 건방지게 어디 했지.
건방진 걸 봐, 거그서? 참말로 내가 못된 것인가? 여지없지.

거그서 문답 한번 해봐. 답 한번 해봐! “어묵동정을 여의고 무엇을 이르라는 말씀입니까?”

‘어묵동정을 여의고 일러라’ 한 그곳에 나아가서, 얼마나 큰스님이 그 무거운 방맹이를 짊어졌는지 거두(擧頭) 못 혀. 바로 거그서 바로 살피지 못허면은, 바로 거그서 그 활살 피허지 못허면은 안 되아.

내가 모도 그 다 법문허는디 다 설해 놨지마는 이 법문을 잘 들어두라 그 말이여. 녹음 잘될 것이고 뭐 기위(旣爲) 이 내의 무슨 그 역사를 말해 달락하니 요 법문헌 것이여.(8분20초~22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성도재(成道齋) ; 매년 12월 8일(납월 팔일 臘月八日),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날에 행하는 법회.
*성도(成道) ; 깨달음. 진리를 깨달아 부처가 됨.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제일구(第一句) ; ①‘처음 한마디 말’이니 불교의 핵심도리를 드러내는 첫번째 말. ②말로써 표현할 수 없고 생각으로 개념 지을 수 없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以心傳心) 진리를 가리키는 말.


[참고] *용성 스님과 제일구(第一句) 법문답(法問答) ; 『언하대오(言下大悟)—전강대종사 법어』 (용화선원刊) p19~20 참고.
같은 해에 대각사에 계신 용성 스님을 배방하였다.
용성 스님이 나에게 묻기를, “어떤 것이 제일구냐? (如何是第一句)” 나는 높은 음성으로 “예?” 하니 용성 스님께서 또 묻기를, “여하시 제일구여?” 나는 박장대소 하였더니 용성 스님께서 “아니다.” 라고 하셨다.

내가 여쭙기를 “그러면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하였더니 용성 스님이 부르시기를 “영신아!”  “예.” 하고 내가 대답하였더니 용성 스님은 즉시 “제일구니라.” 하셨다.  나는 또 박장대소 하였다.
용성 스님께서 “자네가 전신(轉身)을 못했네.” 하시기에, 나는 “그러면 전신구를 물어주십시오.” 했더니 “어떤 것이 전신구인가?” 내가 답하되, “저녁놀은 따오기와 더불어 날으고 가을물은 하늘과 함께 일색입니다.(落霞與孤鶩齊飛 秋水共長天一色)” 하고 물러 나왔다.

수일 후에 용성 스님께서 대중에게 공포하시기를, “허!  내가 영신이에게 속았구나!” 하셨다.
이 말을 전하여 들은 만공 스님은 “속은 줄을 아니 과연 용성 스님일세.” 라고 하셨다.
*말후구(末後句) ; ①말후(末後)는 구경(究竟), 필경(畢竟), 구극(究極), 지극(至極)의 뜻. 구(句)는 언구(言句), 어구(語句), 문구(文句)란 뜻. 크게 깨달아 구경에 이르러서 하는 말. 지극한 글귀. 말후일구(末後一句). ②문장의 맨 끝의 말. ③임종의 말.
*마자 ; ‘마저(남김없이 죄다. 또는 마지막까지 다)’의 사투리.
*기이(旣已) ; 기위(旣爲 : 이미. 벌써).
*선학원(禪學院) ;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있는 절. 1921년 남전(南泉)·도봉(道峰)·석두(石頭) 등 3인을 중심으로 지었다.
선학원은 당시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병합하고 사찰령(寺刹令)을 반포하여 한국 불교를 일본 총독부의 관할 아래에 다루게 되었을적에, 일본 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 가는 것을 개탄, 불조(佛祖)의 정맥을 굳게 계승하기 위하여 창설된 선종의 중앙기관이다. 사찰령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하여 절(寺, 庵)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선학원이라 하였다.
그 후부터 한국 불교 선종의 책원지(策源地)로서 은연한 가운데 선객들을 통솔하였으며, 1934년 12월 5일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선리참구원(朝鮮佛敎中央禪理參究院)으로 발족하여 초대 이사로 만공·한암·적음·남전·성월 스님이 선임되었다. 해방된 뒤에는 재단법인 선학원으로 정관을 고쳤다.
*어묵동정(語默動靜) ; 말하고[語] 침묵하고[默] 움직이고[動] 쉬는[靜] 등 일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언행(言行)을 총괄한다. 행주좌와(行住坐臥)와 하나의 짝으로 쓰이기도 한다.
*양구(良久) : 한참 말이 없이 침묵하고 있는 것인데, 그 첫 기록으로는 어떤 외도(外道)가 부처님께 묻기를 『말씀하지도 말고 말씀 안 하지도 말고 진리를 가르쳐 주소서』하는데, 부처님은 양구하였다。그러자 그 외도는 깨치고 나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또 유마경에 둘 아닌 법(不二法)에 대하여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말하는데, 유마힐은 양구하여 여럿의 칭찬을 받았다。그 뒤로 종문(宗門)에서 법담(法談)하는데 이 특별한 수단을 많이 쓴다.


[참고]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권. (혜심,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4 참고.
제 16칙. 「양구(良久)」
世尊因有外道問 不問有言 不問無言 世尊良久 外道讚歎云 世尊 大慈大悲 開我迷雲 令我得入 外道去後 阿難問佛云 外道有何所證 而言得入 佛言如世良馬 見鞭影而行

세존께 어떤 외도가 물었다. “말 있음으로도 묻지 않고 말 없음으로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존께서 양구(良久)하셨다. 그러자 외도가 찬탄하여 말하였다. “세존께서 대자대비하시어 저의 미혹의 구름을 걷어 주셔서 저로 하여금 깨달아 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물러갔다.

외도가 떠난 뒤에 아난이 부처님께 물었다. “외도가 무엇을 증득했기에 ‘깨달아 들었다’ 하였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세간의 좋은 말[馬]은 채찍의 그림자만 보고도 달리는 것과 같으니라”
*전신(轉身) ; ①심성(心性, 여래장如來藏)의 완전한 현시(顯示, 드러내 보임). 더러워져 감추어져 있던 심성이, 더러움을 씻어 버리고 약여(躍如 생기 있게 뛰어노는 모양. 눈앞에 생생하게 나타나는 모양)로서 현현(顯現 뚜렷이 나타남)하는 상태를 이른다. 전의(轉依). ②선문(禪門)의 말. 미혹함의 경지에서 깨달음의 경지로 전입하여 안주하는 것.
*용상대덕(龍象大德) ; 용[龍]은 물에서, 코끼리[象]는 지상에서 가장 힘이 세기에 이를 비유하여 ‘덕행을 구족한 걸출한 수행자’를 가리킨다.
*멱사리 ; ‘멱살(사람의 멱 부분의 살. 또는 그 부분. 사람의 멱이 닿는 부분의 옷깃)’의 사투리. *멱 : 목의 앞쪽.
*조잔하다 ; ‘사람의 마음 쓰는 폭이 좁다(속이 좁다)’라는 뜻의 사투리.
*타니대수(拖泥帶水 끌·끌어당길 타/진흙 니/띠·꾸미다·두르다 대/물 수) ; ①진흙을 묻히고 물에 젖는다. 흙탕물을 뒤집어 쓴다. 입니입수(入泥入水), 화니화수(和泥和水), 화니합수(和泥合水), 타니섭수(拖泥涉水)라고도 한다. ②상대의 눈높이에 맞게 가르치다. 선가(禪家)에서 가르침을 펼 때. 방편으로 언어를 사용하여 가리켜 주는 경우를 말한다. ③선문(禪門)에서 구두선(口頭禪 : 말이나 글로 해석하고 설명하는 선)을 경시하여 가리키는 말.
*법체(法體) ; ①법의 본체. 법 그 자체. 법의 본질. 유위와 무위의 모든 법의 체성(體性). ②일체 만유의 본체. 실체 ③사물. 존재. ④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명호나 염불을 말한다.
*아구지가 세다 ; 하는 말이 세다(강하다). *아구지 ; ‘아가리(‘입’을 속되게 이르는 말)’의 사투리.
*천상천하(天上天下) ; 하늘 위와 하늘 아래라는 뜻으로, 온 세상을 이르는 말.
*석가모니(釋迦牟尼) :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운문(雲門) : ( ? – 949 ) 법명은 문언(文偃), 속성은 장(張)씨。절강성(浙江省) 가흥(嘉興)에서 났다。어려서 출가하여 처음에는 율종(律宗)을 숭상하였다。목주(睦州)에 갔더니, 진 존숙(陳尊宿)이 그의 멱살을 잡고 『말해라 !  말해라!』하는데 대답하지 못하므로 문 밖으로 밀쳐서 내쫓고 문을 닫을 때, 그의 발이 문틈에 끼어서 발가락이 끊어졌다。그 바람에 깨쳤다.
그 뒤에 설봉 의존(雪峰義存) 화상에게 가서 더욱 크게 깨쳐 그의 법을 이었다。운문산 광태선원(光泰禪院)에서 오래 교화하니, 입실(入室)한 제자가 88인이나 있었다.

어떤 날 설법하기를 『빛을 꿰뚫지 못하는 데 두 가지 병이 있다。온갖 곳에 밝지 못하고 눈앞에 무엇이 있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가령 온갖 법이 빈 이치를 뚫어 알았더라도 어렴풋이 무엇이 있는 듯한 것은 또한 완전히 뚫은 것이 못된다.
법신을 뚫는데도 또한 두 가지 병이 있는데, 법신 경계에까지 갔더라도 법에 대한 국집(法執)을 잊어버리지 못하고, 「나」의 소견이 아직도 가시어지지 못하여 법신 갓에 머물러 서게 되는 것이 한 가지 병이고, 설사 법신을 꿰뚫어 나갔다 하더라도 자세히 검찰하여 본다면, 어떤 숨 기운(氣息)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그것이 또한 병이니라』하였다.
*운문 선사의 방(棒) : 운문긱구자(雲門喫狗子).
석가여래께서 출생하면서 바로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오직 내가 가장 높다(天上天下唯我獨尊)」하신 말씀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여러 조사 스님들이 해석도 하고 칭송도 한 바가 많지마는, 운문 문언선사는 말하기를 『내가 그 당시에 있었더라면, 한 몽둥이로 때려 잡아서 주린 개나 주어 씹혔으면 세상을 태평케 하였겠다! (我當時若見․ 一棒打殺․ 與狗子喫却․ 媿圖天下泰平)』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여러 선지식들은 『아! 운문이야말로 참으로 「유아독존」의 뜻을 잘 설명하였다。부처님의 제자답다』하고 모두 칭찬하였다.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고통이 끊임없으므로 무간(無間)이라 함.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부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낙안성예(落眼成翳 떨어질 낙/눈 안/이룰 성/가릴·흐릴·눈이 흐림 예) ; ‘눈에 떨어지면 병[가리움]이 된다’
[참고] 『임제록(臨濟錄)』 ‘감변(勘辨)’
金屑雖貴 落眼成翳 금가루가 비록 귀하지만 눈에 떨어지면 눈을 흐리는 병이 된다.
*가리 ; ‘가루[분(粉), 분말(粉末)]’의 사투리.
*거두(擧頭 들 거/머리 두) ; ①머리를 듦. ②머리를 숙이는 일 없이 떳떳하게 남을 대함. ③중한 병이 조금 차도가 있어 머리를 들 정도가 됨.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꿈2022. 3. 9. 08:49

꿈(전강선사 No.012)—(게송)一枕客殘夢 空中飛過鳥 落花僧禪靜 文字是糟粕 | 내 본고향에 한번 가 봤어? | 정법을 바로 믿어라.


*꿈[夢] ; ①잠자는 동안 일어나는 심리적 현상의 연속. ②실현시키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理想). ③실현될 가능성이 아주 적거나 전혀 없는 허무한 기대나 생각. ④현실을 떠난 듯한 즐거운 상태나 분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⑤덧없음의 비유. 허깨비[幻]와 비슷하므로 환몽(幻夢) · 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불교] 잠을 자면서 꿈꾸면 좋은 꿈을 꾸었거나 나쁜 꿈을 꾸었거나, 꿈속에서는 무엇이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처럼 보이나 꿈 한번 꾸고 깨어나면 실지로 그것이 있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몸뚱이, 이 세계, 해나 달이나 별이나 지구나 산천초목(山川草木)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반드시 어떠한 원인이 있어서 생겨났다가 그 조건이 흩어지면 그것이 또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생겨났다 없어지고 하는 그것이 모두가 다 '유위법(有爲法)', 함[爲]이 있는[有] 법(法)이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이 세상에 모든[一切] 유위법(有爲法)이라 하는 것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다. 꿈[夢]과 같은 것이며, 꼭두각시 환상(幻像)과 같은 것이며, 물거품[泡] 같은 것이며, 그림자[影]와 같은 것이다.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다. 풀끝에 이슬[露]과 같고 또 번쩍하는 번갯불[電]과 같은 것이다. 응당 이와 같이 관(觀)을 지을지니다[應作如是觀]. 이와 같이 달관(達觀)을 할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그 무상한 속에서 영원을 찾는 길, 참선(參禪)을 만났습니다.

 

(8분 7초)


[법문] 전강선사(No.012)—전강선사 일대기 제5호(경술1970년 12월 8일 새벽.음) (전012)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다  공중비과조(空中飛過鳥)니라
나무~아미타불~
낙화승선정(落花僧禪靜)이다  문자시조박(文字是糟粕)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중이 되아 가지고 경(經)을 한 40년 동안 읽었다. 그 경, 부처님 그 49년 설법해 논 그 경을 한 40년 동안을 참 쉴 새 없이, 눈코 한번 뜰 새 없이 경만 읽었다.
읽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아, 글만 밤낮 읽고 보니 경서(經書)만 읽고 보니, 내가 해야 헐 것인디—도(道) 닦으란 말이고, 저 깨달으란 말인디, 어찌 저는 깨달지 못허고 도는 깨달지 못허고 그 부처님 일생에 그 도 닦는 문서만 가지고 밤낮 읽고 있으니, 거 참 어리석다’

여간 그 어리석은 일이 아니거든. 어찌 40년 동안을 글만 읽고 있단 말이냐. 경만 읽고 있단 말인가.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로구나. 한 베개를 베고 그 잠 곤(困)허게 올 때에 객몽(客夢)이여.
객(客)으로 돌아댕기다가 어디 베개 베고 잘 때가 있나. 다행히 그 객이 어디 잠자리 하나 좋은 자리 얻어 만나서 그 곤헌 객몽을 꾸는디, 그 객이라는 것이 그 인자 일침객잔몽(一枕客殘夢)이라는 것은 한 베개[一枕] 객(客)의 잔몽(殘夢)이다.

객의 쇠잔(衰殘)헌 꿈이라는 것은 우리가 시방 다 일침객잔몽이여. 한 베개 베고, 객의 잔몽을 꾸고 있어.
우리가 객 아닌가. 어디가, 우리가 우리 고향을 가 봤는가? 우리가 본고향(本故鄕) 한번 가 봤어?

고향은 아득허니 미(迷)해 버리고 지금 이렇게 삼악도(三惡途)에 도니, 삼악도에 돌고 있다가 지금 남섬부주(南贍部洲)에 와서, 요까짓 놈의 사대(四大) 색상(色相) 몸뚱이 하나 얻어 가지고는 이것이 내 보배라고.
요게 내 보배고, 요게 참말로 내 몸뚱이여? 내 본래 몸뚱이여?

어림도 없다. 내 본집에, 내 본고향에, 내 본래 몸뚱이라는 건 꿈에도 아니다. 속지 말어라!
요까짓 놈의 이 더러운 사대추신(四大醜身)을 가지고 내 몸이라고 허느냐? 객잔몽이다. 객의 잔몽(殘夢) 꾸고 있는 것이다.

공중비과조(空中飛過鳥)니라. 공중에 한번 날라간 새와 같으느니라. 우리가 지금 날라간 새여. 비조(飛鳥)여. 어디 쉬도 못헌 새여.

다행히도 화락승선정(花落僧禪靜)이로구나. 어찌 다행히도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척 만났다. 정법 만난 것이 천하에 다행허다! 만고(萬古)에 경행(慶幸)허니라.

어디가 정법이 있느냐? 참 정법 만나기 어렵다. 까딱허면 사견(邪見)에 꺼꾸러져서, 내가 사견종자(邪見種子)가 되아 가지고는 사견종자를 안 심어 줄 수가 없는 것이다.

한번 사견에 꺼꾸러지고 사도(邪道)에 엎어질 것 같으면은 나만 엎어지고 나만 꺼꾸러지는 것이 아니다. 일체 사람을 다 끌고 들어감서 누겁(累劫)을 그놈의 인연을 지어 주는 것이니, 왜 그러한 허망헌 농사를 지어 주며, 왜 그런 헛된 사도를 이루어 줄 것이냐. 그 삿된 도를 자꾸 전통해 줄 것이냐.
우리 중생을 점점 점점 더 악몽을 꾸게 맨들고, 악견(惡見)으로 들어가게 맨들고, 삼악도로 집어넣는 것이 아니냐!

어쨌든지 그 정법을 바로 믿고 바로 찾고. 그와 같은 그 정법으로 사종(邪宗)을 버려 버리고 내 믿었던 그 과거 잘못 찾았던 사종을 턱 버려 버리고 귀정(歸正)허는 것, 정법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것이 천하에 제일이니라.
우리 정법문중(正法門中)에서 무여시사(無如是事)다. 이와 같은 사종에 엎어지지 말고, 사종에 꺼꾸러지지 말고, 사종에 인연 맺어 두지 말아라!

만약 거다가 인연을 두고 그 사종(邪宗) 인연을 떼지 못헐 때, 이 미래제(未來際)가 다허도록 내가 똑 그리 돌아오고, 그 사연(邪緣)이 자꾸 끌고 돌아오는 법이니, 정법이 있는 다음에는 꼭 사법(邪法)이 있어 가지고는 정법을 사법이 자꾸 치는 법이다. 고것이 마장(魔障)이다. 정법을 때려 치는 마업(魔業)이니라.

학자(學者)는 불가불신(不可不愼)이냐. 학자는 어찌 가히 삼가치 않을까보냐.
여까지 올라온 송구(頌句), 오늘 아침에 밝히고.(처음~8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게송) ‘일침객잔몽~’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 박경훈 역 | 동국대학교 역경원) ‘송암도인(松巖道人)‘ p83 참고.
*곤하다(困-- 곤하다·가난하다·기운이 빠지다 곤) ; ①기운이 없어 나른하다. ②(사람이) 잠든 상태가 매우 깊고 편안하다.
*객몽(客夢 손·손님·나그네·여행·객지 객/꿈 몽) ; 나그네가 객지(客地)에서 꾸는 꿈.
*잔몽(殘夢 남을 잔/꿈 몽) ; ①잠이 깰 무렵에 꾸는 꿈. ②잠이 깬 후에도 마음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꿈.
*쇠잔하다(衰殘-- 쇠하다·약하다 쇠/남을 잔) ; (힘이나 세력이) 차차 줄어서 매우 약해지다.
*본고향(本古鄕) ; 본향(本鄕). 고향. 태어나고 자란 본래의 고향. 이 뜻에 기초하여 사람이 본래 갖추고 있는 심성[本性], 부처의 성품 또는 청정한 불국토라는 뜻으로 쓰인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삼악도(三惡途) : 삼악취(三惡趣)라고도 하며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한다。죄악을 범한 결과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는 곳으로 즉 지옥의 고통과, 아귀의 굶주림과, 축생의 우치에서 방황하게 된다는 것이다.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색상(色相) ; 육안(肉眼)으로 볼 수 있는 모든 물질의 형상.
*사대추신(四大醜身) ; ‘네 가지 요소[四大]로 구성된 더러운[醜] 몸[身]’ 사대색신(四大色身)과 같은 말.
*사대색신(四大色身) ; 지 · 수 · 화 · 풍(地水火風) 사대로 이루어진 몸.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한 일.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 수가 없는 것.
*사도(邪道) ; 올바르지 않은 삿된 길.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길.
*누겁(累劫 묶을·포갤·쌓을 누/겁·오랜 세월 겁) ; 여러 겁이 쌓여서 이루어진 기간. 곧 한없이 길고 오랜 시간.
*겁(劫) ; (산)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불법(佛法)에 위배되는 견해. 선견(善見 : 있는 그대로, 진실 그대로 보는 것. 정견正見)에 장애가 되는 견해.
*사종(邪宗) ; 외도(外道). 외도가 주장하는 삿된 종지(宗旨).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미래제(未來際 아닐·미래 미/올·미래 래/끝 제) ; 미래의 변제(邊際 : 시간이나 공간, 정도程度 따위에서, 그 이상 더는 없는 한계限界). 미래는 끝이 없으므로 미래제라는 말은 다시 말해 영원한 미래, 영원과도 같은 오랜 시간을 뜻한다.
*사연(邪緣) ; 삿된 인연. 올바르지 않고 좋지 않은 조건을 뜻하는 말로서 정연(正緣)의 대칭어이다.
*사법(邪法) ; 삿된 법. 이치에 맞지 않고 잘못된 길로 이끄는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마장(魔障 마귀 마/장애 장) ; 어떤 일에 장애가 생기는 것.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에 장애가 생기는 것.
*마업(魔業 마구니 마/업·일·선악의 소행所行 업) ; 마구니[魔]의 행위[業]. 마구니의 직접적인 행위 뿐만 아니라, 번뇌, 게으름, 미혹 등을 포함해 불도(佛道) 및 선법(善法)의 수행을 장애하는 모든 것을 통틀어서 마업이라고 한다.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