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ㅊ/참선(의 목적)'에 해당되는 글 20건

  1. 2019.08.02 참선의 목적 (No.086)—진리를 체달한 사람은 인류와 국가와 민족과 모든 것을 위해서 그 몸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2. 2019.05.11 참선(參禪) (전강선사 No.250)—(게송)活句參禪客~ | 활구참선법 이외에는 다 방편이고 환(幻) | 참선법은 도통(道通)하는 법, 『내가 나를 찾아』 | 참선이라는 것은 안 된 법이 없느니라.
  3. 2019.03.27 참선의 목적 (No.793)—(게송)堂堂大道赫分明~ |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생사해탈하는 것 | 자기가 자기를 찾는 인생으로써 최고의 삶 | 人身難得.
  4. 2019.03.16 참선(參禪) (No.287)—사진작가의 ‘참선’ 질문에 대한 ‘풍선’ 법문 |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고, 백정이 소를 잡는 바로 거기에도 참선이 있을 수가 있고 깨달음이 있을 수가 ..
  5. 2019.03.02 참선(參禪) (No.264)—‘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난 근본을 관조(觀照)하라’ 이것이 바로 참선이고 화두라 하는 것 | 이 몸과 목숨을 바쳐서 나의 마음자리를 깨달아야.
  6. 2018.10.09 참선(參禪) (No.246)—한 생각 돌이켜 견성성불할 수 있는 길이 우리 앞에 환하게 열려있다 | 본래 갖추어져 있는 나의 본래면목에서 나오는 그림자를 붙잡고 자기라고 착각을 하지 마라.
  7. 2018.04.14 참선(參禪) (No.258)—심왕을 다스려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 | 화두순숙 의단독로 화두타파 확철대오.
  8. 2016.10.28 참선(參禪) (No.630)—(게송)此珠非大亦非小~ | 참선은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묘한 길 | 할 것은 ‘이뭣고?’ 밖에 없습니다.
  9. 2016.05.17 참선법(參禪法) (No.666)—사람 몸 받아야 도 닦기에 가장 좋다 | 사바세계의 오욕(五欲)은 꿈 | 오직 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찾아서 스스로 깨달으라.
  10. 2016.03.06 참선(參禪) (No.577)—일 따로 있고 정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이 바로 정진이고 정진이 바로 일이다 그말이여. 일과 정진이 둘이 아니어.
ㅊ/참선(의 목적)2019. 8. 2. 07:34

참선의 목적 (No.086)—진리를 체달한 사람은 인류와 국가와 민족과 모든 것을 위해서 그 몸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〇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2분 40초)

 

[법문] 송담스님(No.086)—78년 7월 관음재일 법회(78.08.27)(용086)

 

이 공부는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해야만 할 그러한 길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집안을 위해서는 내 몸을 버려야 하고 내 몸을 잊어야 하고, 마을을 위해서는 집안을 잊어야 하고, 국가나 민족을 위해서는 마을을 잊어야 한다. 진리를 위해서, 도를 위해서는 몸과 집안과 마을과 나라까지도 버려야 하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참선(參禪)하는 사람은 집안이고 뭐 국가도 다 버려 버려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참선이 국가를 위해서는 아무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나라 삼천오백만 민족이 전부 참선을 하게 되면 나라는 누가 지킬 것이냐?’ 혹 이러한 생각을 하실 분이 계실런지 모릅니다마는.

 

‘이뭣고?’하는 동안에는 정말 나의 목숨까지도 바쳐야 하는 것이거늘 목숨 없는 곳에 나라 생각, 민족 생각이 거기에 떠오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말 모든 것을 다 바칠 때,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때에 도(道)의 문(門)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고.

 

그렇게 해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존재냐?

집안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을과 국가 민족은 말할 것도 없고, 온 인류는 말할 것도 없고, 우주법계에 가득찬 모든 중생을 위해서 그 사람의 모든 것은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위해서 몸과 마을과 국가와 민족을 잊어야 하고, 그렇게 잊음으로써 진리를 체달(體達)하게 되고, 진리를 체달한 사람은 인류와 국가와 민족과 모든 것을 위해서 그 몸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54분50초~57분30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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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체달(體達 몸 체/통달할 달) ; ①몸[體]으로 직접 통달(通達)함. 몸소 경험하여 막힘이 없이 트이다. ②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의 목적)2019. 5. 11. 06:42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7분 43초)

 

[법문] 전강선사(No.250) - 고담화상법어 2 (72.06.03.새벽)[몽산법어 부록 06](전250)

 

활구참선객(活句參禪客)이여  하인작득쌍(何人作得雙)고

나무~아미타불~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염왕자적항(閻王自寂降)이니라

나무~아미타불~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이여. 전 세계와 저 비비상천까지, 삼계(三界) 비비상천(非非想天)까지 없어, 참선활구법이.

똑 이 남섬부주(南瞻部洲)에 있는데, 남섬부주라도 인자 한국밖에 없다 그말이여. 기가 맥히지.

 

내가 조금도 헛소리 아니여. 만국 그때 뭐 지도자 대회에 어디 뭐 참선법이 있어? 한 나라도 없지.

그 불교 유명한 나라는 다 왔는데. 또 이 중간에 16개국이 또 모였었고.

 

없어. 그 공안법을 물어 보니 공안(公案) 뭐 알도 못햐.

불교는 각처에 다 있지마는 참선허는 법은, 참선법은 없다 그말이여.

 

나는 그래도 그렇게는 안 알았거든.

'그 참선법이 어디 들어간 데가 더러 있는가? 혹시 아는 데가 있는가?'했더니, 참 과연 없다 그말이여.

 

우리 꼭 활구(活句)를 고대로 공부허는, 공안 참선을 고대로 공부허는 학자는 우리나라밖에 없거든.

언제든지 이렇게 그저 야삼주삼(夜三晝三)에 안벽(眼壁)허고 관심(觀心)허고 앉어서 꼭 그 공안을 연구해 나가는 거, 화두 의심해 나가는 거.

 

'누가 행여나 행여나 그 해석해 줄까, 누가 행여나 그 모두 글 가르켜 주드끼, 글 가르쳐 알려 주드끼 고렇게 해 줄까' 오히려 무서워허고, 학자는.

 

우리 참다운 학자는 그렇지 않어? 그저 뭐 천하 없는 해석을 다 해 줄까 무서워서.

응, 어림도 없지. 참다운 우리 학자가.

 

이렇게 닦아 나가는 데는 없어. 그걸 정법(正法)이라 하는데. 꼭 그 정법이여, 다른 정법 아니여.

부처님 설산(雪山)에 들어가서 수도허셔서 견명성(見明星) 오도(悟道)허신 그 법이여. 그 정법이여.

 

고 정법 이외에는 다 사견(邪見)이여. 다 별별 것이 다 방편(方便)이고 환(幻)이여. 환이여. 방편이고.

'내가 방편으로 했다, 내가 모도 환으로 했다, 내가 사견으로 느그를 꼬였다' 부처님이 다 해 놓으신 말씀 아니신가.

 

똑! 정법, 정법 고대로 우리나라에 와서 머물렀네, 달마 선사의 법이.

한참 중국에 건너와서, 중국에 달마 스님이 첫 조사요. 달마 스님, 2조 혜가 스님, 3조 승찬 스님, 4조 도신 스님, 5조 홍인 스님, 6조 혜능 스님까지.

 

그 밑에 내려와서는 임제종, 위앙종, 조동종, 운문종, 법안종 5종이 벌어져서, 하 참! 거 대단했지. 그때 도인이 참 무수허게 나오고.

그래 가지고 우리나라로 딱 건너온 뒤에는 여기서 활구참선 딱 멈추어져 버리고는.

 

어디 일본 건너갔자 일본이 어디 무슨 뭐 일본이 어디 임제종이 건너갔다 가기는 하지만 임제종 역시 조동종 임제종 조동종이 선종(禪宗)이라고는 허지마는 임제종 조동종에 지금 그 모도 뭐 해 놓은 거, 『벽암록(碧巖錄)』 같은 거 뭐 해 놓은 거, 전부 해석 다 해 놓았지.

 

하나나 무슨 활구학자 한국마냥으로 한국 선객(禪客)마냥으로 안벽관심허고 어디 무슨 뭐 화두 해 나가는 거, 여기 있어?

'하나씩 깨닫는다'고. 하루 하나씩 깨달는다든가? 날마다 하나씩 깨닫는다든가? 그거 있다지? 그것 참!

 

활구참선객이 우리나라밖에는 없어.

 

하인(何人)이 작득쌍(作得雙)이냐. 어떠헌 사람이 참선객(參禪客)과 쌍(雙)을 허겄냐? 참선허는 사람하고 같은 쌍이 되겄나?

참선허는 사람 같을 사람이 누고? 천상천하에는 없어. 아무리 천상락(天上樂)이 그렇게 훌륭허고 허지마는 참선은 없어.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이 목숨, 참선허다가 이 목숨 내버릴 날에.

우리가 내버릴 날이 있지 않는가. 이 몸은 얻으면 내버리는 것밖에 없지. 이 몸 하나 어머니한테 받아 가지고, 가지고 있다가 내버릴 날이 오지.

 

그날이 안 와? 안 내버릴 사람이 누구여?

천하에 필생필멸(必生必滅)이지. 이 몸뚱이 받아 나면은 내버리기 마련이요, 죽기 마련이요.

어디 안 내버리고 안 죽을 수 있나? 그건 없어. 고금으로 통해 놓고 없어.

 

원효 국사가 안 돌아가셨다고?

안 돌아가시기는 왜 안 돌아가셔. 안 돌아가신 이 누구여, 글쎄. 부처님인들 안 돌아가셔?

 

그 같은 몸뚱이 그거 죽는 것이 거 죽는 것 아니여.

몸뚱이 그놈 내던져 버리고 죽지 않는 놈을 바로 봐 버려야사 그걸 도통(道通)이라고 햐. 도통을 참선이라고 하고.

 

참선이라 한께 못 알아듣거든. 아! 여기 지금 진여궁 보살님이 대단히 혜(慧)가 밝은 보살님인데, 참선법 인자 들어오니까 모르거든.

인자 들어와서 들으니 알 것이여? 참선법이 뭔지 모르지.

 

알게 좀 알아듣도록 말하자면은 참선법이라는 것은 도통허는 법입니다. 도통허는 법. 도를 통헌다 그말이여.

왜 '도통했다'고 안 합니까? 도통법(道通法)이여.

 

그 도통을 할 것 같으면은 그만 몸뚱이 가지고 있는, 이 몸뚱이 뒤집어쓰고 댕기는 내 마음, 내가 내 마음, 내 말허고 보고 듣고 아는 내 마음, 그놈을 알아 버린다 그 말입니다. 그놈을 통해 버린다 그말이여.

그렇게 들으면 거 쉽게 듣지 않겠소?

 

밥 먹는 놈, 옷 입는 놈, 가는 놈, 오는 놈이 몸뚱이 고것이 헙니까? 송장 몸뚱이 고것이 혀?

내 마음, 내 마음이 허지.

내가 내 마음, 그놈을 바로 통해 버려. 그러면 도통이여. 그걸 참선이라 햐.

 

보연천사일(報緣遷謝日)에, 이 몸뚱이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이 몸뚱이 내버릴 날이 닥쳐와.

 

염왕(閻王)이 자귀강(自歸降)이라.

염라대왕은 이 삼계 모도 화택(火宅) 중생, 우리 모도 인생들 선악을 관찰하고 앉었는데, 누구는 죄를 짓고, 누구는 선을 짓고, 그러헌 모도 그 선악 관찰을 딱 하고 있다가, 이 몸뚱이 내버리면은 혼을 잡아다가 그 다스리는데.

 

몸뚱이 그 같은 건 내던져 버렸으니 몸뚱이가 뭐 소용 있나? 몸뚱이 그놈이 뭐 죄 지었나?

마음 그놈이 모두 시켜서 죄는 지었지마는, 그 같은 거 주인이 마음인디 그거 소용 있나?

갖다 다루어서 죄를 모도 “너 이놈 세상에서 무슨 죄를 지었으니 무슨 지옥 가거라. 어떠헌 죄를 지었으니 어떠헌 지옥 가거라” 모도 이렇게 죄를 다 다슬러 그 염라대왕인디.

 

염라대왕이 참선허는 분께는 참선해서 도통헌 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이거 도통헌 이를 말하는 거 아니여. 바로 참선허는 학자한테는 스스로 항복하니라 그래 버렸어.

염라대왕이 무슨 선악 관찰할 것이 없어. 과거에 천만 겁 중에 전겁(前劫)에 아무리 죄업이 많이 있다 하드래도 숙업(宿業)도 거기 다시 문제가 없어.

 

'염왕(閻王)이 이렇게 귀강(歸降)하느니라' 이랬습니다. 이 참선법입니다.

 

 

참선법은 세상에 그렇게 쉬운 것이 없어.

 

'원 참선법, 참선을 해 되나?' '참선을 해서 견성(見性)을 혀? 아! 참선해서 견성헌 사람이 있나?' 아! 이러고 있다 그말이여.

 

세상에 참선같이 쉬운 것은—다른 것은, 저 돈 같은 것을 번다든지, 무슨 금 같은 것을 그놈을 금 같은 것을 어떻게 땅속에서 캔다든지, 여의주 보배 같은 것을 바다 속에서 구한다든지, 이런 것은 무척 어렵고 못혀.

 

땅속에 그놈 금이 꼭 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나?

어쩌다가 참, 땅을 파 가지고 금도 나와서 얻기도 허지마는, 거 어쩌다가 그거 원 참! 봉사 문고리 잡기라더니. 문고리같이 쉬운 것이 없지마는 봉사는 눈이 없으니까 문고리를 못 잡거든.

 

금이 땅속에 바로 모두 묻혔지마는, 알면 파면 거기 있지마는, 그거 누가 아나?

모르니까 금 있는 데는 파들 못하고, 없는 데만 파 제끼니 생전 파니 있나?

 

바다 속에 여의주가 있건만, 바다 속에 여의주가 그놈이 어디가 있는지를 알 수가 있어야 바다 속의 여의주를 캐지.

그것은 어쩌다가 바다 속의 여의주를 캘 수도 있고, 어쩌다가 땅속에 금을 팔 수도 있고, 어쩌다가 다행히 봉사가 문고리를 잡을 수도 있지마는, 참으로 얻기가 어렵다 그말이여. 영판 어려워. 전연 없던 않지마는 어려워.

 

허지마는 참선이라 하는 것은 『내가 나를 찾아』

내가 나를—보는 놈, 아는 놈, 밥 먹는 놈, 똥 싸는 놈, 가는 놈, 오는 놈, 그놈이 낸디, 그놈을 찾는 것이여. 그 찾는 놈을 찾아.

그놈은 분명히 있거든. 분명히 있는 놈을 찾는디.

 

어디가 뭐 바다 속에 여의주는 없나? 있지. 허지마는 어디가 있는지 아나?

허지마는, 아! 이 참선은 찾는 놈 고놈이여. 이것 보소. 말하는 놈 이놈이여.

 

세상에, 내가 '나'다.

어째서 내가 나를, 찾은 놈을 찾는데 못 찾아?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찾느니라' 내가 한 말이여, 이 말이? 부처님이 바로 허신 말씀이지.

'콩인지 팥인지만 아는 사람이면은 다 찾느니라' 하! 이렇게 말씀해 놓았다 그말이여.

 

그런데 참선허라고 허면, “아이고! 참선을 해서 견성을 혀? 하이고! 견성헌 사람이 있는가?” 이렇게 그만 이렇게 미(迷)해 버렸다 그말이여.

이 미(迷)해서, 하도 오래오래 미(迷)해서, 내가 나를 찾을 줄 믿지 않아서.

 

믿으면 그만이요. 믿으면 그만 그놈이 낸.. 응, 참선인데.

믿지 않고, 하지 않고, 겁약심만 낸다. “흐! 내가 어찌...” 이것 참.

 

참선이라는 것은 안 된 법이 없느니라.(처음~17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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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활구참선객~’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대사) (2권) '贈熙長老' 참고. ⋯降은 '항복할 항', '내릴 강'으로 발음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삼계(三界) ; 불교의 세계관으로 중생이 왕래하고 거주하는 세 가지 미혹한 세계. 중생이 태어나서 죽어 윤회하는 영역으로서의 세개의 세계. 중생의 마음과 생존 상태를 세 단계로 나눈 것. 욕계(欲界), 색계(色界), 무색계(無色界)를 이른다.

*남섬부주(南贍部洲) ; 수미산(須彌山 : 불교의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산)의 사방에 있다는 사주(四洲 : 네 대륙)의 하나. 섬부(贍部)는 산스크리트어 jambu의 음사(音寫)로 잠부(jambu) 나무가 많다고 하여 이와 같이 일컫는다.

수미산 남쪽에 있으며,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다.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고 한다. 염부제(閻浮提), 염부주(閻浮洲)와 같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주삼야삼(晝三夜三) ; 밤낮. 밤이나 낮이나.

*안벽관심(眼壁觀心) ; 눈은 벽을 보고, 마음은 화두를 관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설산(雪山) ; 인도 북부에 솟아 있는 히말라야 산맥을 가리키는 말. 눈[雪]을 품은 곳이란 뜻. 설령(雪嶺) · 동왕산(冬王山) · 대설산(大雪山) 등이라고도 한다. 부처님의 탄생지인 카필라바스투 역시 설산의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수도한 산.

*견명성(見明星) ; 부처님이 12월 8일 새벽별[明星]을 보시고 성도하였다는 고사.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철저히 깨닫는 것을 말한다.

*명성(明星) ;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금성(金星)’을 이르는 말. 새벽별, 샛별, 태백성(太白星), 계명성(啓明星), 장경성(長庚星) 등이라고도 한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석가모니(釋迦牟尼)께서 이 별이 돋을 때, 정각(正覺)을 이루었다고 한다.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환(幻) ; ①허깨비. 모든 사물은 여러 가지 인연(因緣)이 모여서 생긴 것으로 실체가 없는 것에 비유함. 환(幻)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중생의 미혹한 생각임. 환(幻)을 무(無)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승(二乘 - 聲聞,緣覺)의 공(空)에 얽매인 견해, 단공(但空 - 단지 空만을 집착하는 것)임.

환(幻)은 또 화(化)와 거의 같은 뜻이므로 환화(幻化), 꿈과 비슷하므로 환몽(幻夢)•몽환(夢幻)이라고도 한다.

②신기루, 아지랑이 같은 것.

*벽암록(碧巖錄) ; 선종의 대표적인 공안평창집(公案評唱集). 10권. 본이름은 『불과원오선사벽암록(佛果圜悟禪師碧巖錄)』. 또는 벽암집(碧巖集)이라고도 한다. 송나라 때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이 지음.

이 책은 원래 설두중현(雪竇重顯 980~1052)이 경덕전등록 · 조주록 · 운문록 등에서 백 개의 고칙(古則 ; 공안)을 선별하여 각각의 게송을 붙인 『설두송고백칙(雪竇頌古百則)』을 그 뒤 원오극근이 제자들의 청에 의해서 1102년 성도의 소각사, 협산의 영천원, 상서의 도림사등에 머물면서 『송고백칙(頌古百則)』을 강의했다.

 

이 『송고백칙(頌古百則)』의 각 칙에 대한 서론 형식의 '수시(垂示)'와 본칙과 송에 대한 해설·비판·선양의 '평창(評唱)' 그리고 본칙의 각 구절과 송의 각 구절을 평가하는 형식의 '착어(著語)' 등을 붙였는데, 제자들은 스승의 강의를 1105년경부터 모아 기록하기 시작하여 1125년에는 이미 『벽암록』 필사본이 나왔다고 한다. 『벽암록』의 간행은 1128년(남송 건염 2년) 원오극근의 제자 보조(普照)에 의해서였다.

 

그런데 원오극근의 제자인 대혜종고(大慧宗杲 1089~1163)가 당시의 학인들 중 이 책의 선화(禪話)를 익혀 알음알이를 늘리기만 하고 실제적인 수행을 게을리 하는 자가 많은 폐단을 보고, 근본 뜻을 다시 세우고자 벽암록 판각과 책들을 모두 한 데 모아 대중 앞에서 불태워버려(1156년 또는 1163년 무렵) 총림에서 사라졌었다.

그러다가 원나라 때인 대덕년간(1297~1307)에 장명원(張明遠)이 여러 절에 비장되어 있던 것을 모아서 중간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유통되었다.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말.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 「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숙업(宿業) ; 숙세(宿世), 즉 과거세(過去世), 전생(前生)에 지은 선악의 행업(行業 : 고락苦樂의 과보果報를 받을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 현세에 그 과보를 초래하는 업을 말하며, 숙작업(宿作業) · 선업(先業)이라고도 한다.*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의 목적)2019. 3. 27. 18:51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9분 15초)

 

[법문]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2018. 11.22)(용793)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당당대도혁분명(堂堂大道赫分明)하고  인인본구개원성(人人本具箇圓成)이다.

당당(堂堂)한 대도는 밝고 분명한데, 사람사람이 본래부터 원만히 성취됨을 갖추고 있구나.

 

지시연유일념차(只是緣由一念差)로, 다못 한 생각 어긋짐으로 말미암아서,

영겁현출만반형(永劫現出萬般形)이로다. 무량겁을 두고 만 가지 형태로 현출(現出), 나타나면서 윤회를 해 가지고 오늘날까지 왔구나.

 

과거에 모든 불보살(佛菩薩)과 선지식(善知識)들은 본래 당당하게 갖추고 있는 자기 자성 부처를 깨달아 가지고 대도를 성취해서 생사해탈을 하셨는데, 우리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 채 영겁을 두고 돌고 돌아서 오늘 이 자리에까지 왔구나.

 

 

평범하게 생각하면 부모로부터서 이 몸체를 받아나 가지고 한 살 두 살,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 마흔 살 이렇게 살다가 그 가운데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어. 사람 죽는 것도 보고, 나도 일념 일념, 일 초 일 초 숨을 쉬면서 죽음을 향해서 살고 있는데.

 

평범하게 생각하면 '뭐, 우주 법계도 이루어졌다가 차츰차츰 변해 가지고 결국은 무너져서 없어지는데 사람인들 어떻게 백 년 이백 년 삼백 년 안 죽고 살 수가 있겠는가' 아무렇지도 않고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우리는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수없이 많은 불보살과 선지식과 모든 분들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출현하셨다가 다 또 열반(涅槃)에 드셨고, 지금 우리 눈으로 그 과거의 모든 선지식들의 육체를 볼 수는 없지마는,

그 선지식과 도인들의 법문에 의지해서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도리가 있음을 우리는 믿고, 오늘 이 자리에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듣고, 자기 마음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가 있음을 깨닫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생사라 하는 것은 우주 법계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이 있고, 우리 몸에도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우리의 마음에도 생주이멸(生住異滅)이 있습니다.

 

생주이멸이라는 게 무슨 생각이 일어났다가 또 금방 변해 가지고 그 생각이 꺼지면 꺼지자마자 또 무슨 생각이 일어납니다.

눈으로 무엇을 볼 때 생각이 일어나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 생각이 일어나고, 일 초도 가만히 있지 않고 무슨 생각인가 일어났다가 또 이리저리 변해 가지고 없어지고 그러기를 과거에도 그렇게 해서 지내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구구히 설명한다고 될 것이 아니고,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경허 스님, 만공 스님, 전강 스님을 통해서 전수해 온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에 의지해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수행해 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간단한 법에 의해서 수행을 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은 눈을 통해서 무엇을 보고, 귀를 통해서 무엇을 듣고, 코를 통해서 냄새도 맡고 호흡도 하고, 입을 통해서 밥도 먹고 말도 하고, 육체를 통해서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좋은 일을 보면 기뻐하고 언짢은 일을 보면 속이 상하기도 하면서 이렇게 살아가는데.

그렇게 배고프면 밥 먹고 피곤하면 잠자고 그렇게 살아가면 뭐 살아지는 것이나, 그렇게 산다면 그것이 축생이 사는 것과 인간이 사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축생도 밥도 먹고 똥도 누고, 축생도 그렇게 살아가는 거고. 사람도 축생처럼 살면 뭐 살아지는 것이지만.

 

우리가 사람이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하고, 특히 우리 불법을 믿는 사람은 이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그 육체를 통해서 살아가면서 축생처럼 살라면은 얼마든지 살 수 있으나, 우리가 축생처럼 살다가 말아서는 너무나 허무하고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고서 '빨갛다, 노랗다, 파랗다' 이렇게 보기만 지나가면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나, 불법을 믿고 이 최상승법인 참선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축생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삶을 하지 않고,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내가 참나를 찾는 참선을 하는 것」이 우리가 모든 축생과 다른 점이고 일반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슬플 때 슬픈 데에 빠져서 슬퍼만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슬플 때 ‘이뭣고? 대관절 무엇이 내 몸에 있길래 이렇게 슬퍼할 줄 아는가?’

기쁠 때도 기뻐하고만 말 것이 아니라, 기쁠 때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 기뻐하는, 그 기뻐할 줄 아는 대관절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그러는데.

눈으로 볼 때 ‘이뭣고?’ 귀로 무엇을 들을 때 ‘이뭣고?’ 코로 냄새 맡을 때 ‘이뭣고?’ 혀로 음식을 먹을 때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서서도 ‘이뭣고?’

일체처 일체시가 내가 나를 찾는, 나의 참나를 찾는 수행 도량(道場)으로 살아가야 불법을 옳게 믿는 사람이고, 인간이 인간다웁게 사는 값있는 삶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하는 사람은 눈도 있고 귀도 있고 코도 있고 입도 있고 이 육체가 있어서 일반 사람과 다를 것이 없으나, 이렇게 일반 사람과 우리가 무엇이 다르냐 하면은—우리는 평범한 중생으로서 인생을 마쳐 가지고 업(業)에 따라서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만 만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이렇게 참나를 찾는 이 수행을 하는 사람은 이 무상한 속에서 살면서 영원을 사는 길이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이 별로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식이 있거나 지식이 없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자기가 자기를 찾는 인생으로써 최고의 삶을 살아가는 길이 있어도 믿지 않고 실천을 안 하면 우리도 무엇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이 사람의 몸으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것이 평범하게 생각하면 뭐, 으레히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람 몸으로 태어난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까딱 잘못하면 개가 되기도 하고, 소가 되기도 하고 업을 지어 가지고 지옥에도 가고, 육도윤회를 무량겁을 그렇게 지내왔습니다.

 

다행히 금생에 우리는 사람 몸으로 태어났고, 불법을 믿고 이렇게 생사 속에서 살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참선을 얘기하고 참선에 대한 말씀을 여러분은 듣고 계십니다. 이것이 바로 무상한 생사 속에 살면서 생사를 해탈하는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 생각을 잘못 먹어 가지고 육도윤회를 할 수도 있고, 한 생각을 잘 돌이켜서 참나를 찾는 ‘이뭣고?’를 하면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가 거기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처음~20분5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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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당당대도혁분명~’ ;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야부도천 게송 참고.

*당당하다(堂堂-- 집·당당할 당) ; ①(모습이나 태도가)남 앞에서 내세울 만큼 떳떳하다. ②(형세가) 위엄 있고 훌륭하다.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육도윤회(六途輪廻).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https://emokko.tistory.com/231)' 참고.

*영장(靈長) ; 영묘(靈妙)한 능력을 가진 우두머리[長]. 인간을 다른 생물과 대비하여 이른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四) 원소(大)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체달(體達) ; 사물의 이치를 통달하여 깨달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곳, 곧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를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곳. ③사찰. -‘도장’으로 읽지 않고 습관상 ‘도량’으로 발음한다.

[참고]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身]으로나 말[口]로나 뜻[意]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이 사람의 몸으로 이 사바세계에 태어난 것이 평범하게 생각하면 뭐, 으레히 그러려니 하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사람 몸으로 태어난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것입니다' ; 인신난득(人身難得). 사람의 몸[人身] 얻기[得] 어렵다[難]’ ‘사람으로 태어나기 힘들다’ 난득(難得)은 성취하여 얻기가 매우 어려움을 나타내는 말.

부처님께서는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과 조갑상토(爪甲上土)의 비유를 들어서 인신난득(人身難得)하니 방일하지 말고 수행 정진하여 구경의 목적을 성취할 것을 가르치신다.

 

맹귀우목(盲龜遇木, 맹귀부목盲龜浮木)은 눈먼 거북이가 바다 속에 있다가 숨을 쉬기 위해 일백 년에 한 번씩 바다 밖으로 머리를 내밀 때, 파도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구멍이 한 개 뚫린 나무 조각의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는 것.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좋은 일을 비유한 것이다.

눈먼 거북이는 지혜를 얻지 못한 중생, 바다는 유전생사하는 세계, 바다 속은 깊은 미혹, 구멍난 나무 조각은 안식처, 곧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을 만나는 것 등을 비유한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등이 맹귀우목과 같으니, 지금 천만다행으로 이런 조건을 갖춘 기회를 만났을 때, 부지런히 수행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신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06.』 (제15권) ‘맹구경(盲龜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獼猴池側重閣講堂 爾時世尊告諸比丘 譬如大地悉成大海 有一盲龜 壽無量劫 百年一出其頭 海中有浮木 止有一孔 漂流海浪 隨風東西 盲龜百年 一出其頭 當得遇此孔不 阿難白佛 不能世尊 所以者何 此盲龜 若至海東 浮木隨風 或至海西 南北四維圍遶亦爾 不必相得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미후(獼猴)못 가에 있는 2충 강당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이 큰 대지가 모두 큰 바다로 변할 때, 한량없는 겁을 살아온 어떤 눈먼 거북이 있는데, 그 거북이는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바닷물 밖으로 내민다. 그런데 바다 가운데에 구멍이 하나뿐인 나무가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파도에 밀려 표류하고 바람을 따라 동서로 오락가락한다고 할 때 저 눈먼 거북이 백년에 한번씩 머리를 내밀면 그 구멍을 만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불가능합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눈먼 거북이 혹 바다 동쪽으로 가면 뜬 나무[浮木]는 바람을 따라 바다 서쪽에 가 있을 것이고, 혹은 남쪽이나 북쪽, 사유(四維)를 두루 떠도는 것도 또한 그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서로 만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佛告阿難 盲龜浮木 雖復差違 或復相得 愚癡凡夫 漂流五趣 暫復人身 甚難於彼 所以者何 彼諸衆生 不行其義 不行法 不行善 不行眞實 展轉殺害 強者陵弱 造無量惡故 是故比丘 於四聖諦 當未無間等者 當勤方便起增上欲 學無間等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눈먼 거북[盲龜]과 뜬 나무[浮木]는 비록 서로 어긋나다가도 혹 서로 만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고 미련한 범부가 오취(五趣 지옥·아귀·축생·인·천)에 표류하다가 잠깐이나마 사람의 몸을 받는 것은 그것보다 더 어려우니라.

왜냐하면 저 모든 중생들은 그 이치를 행하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선(善)을 행하지 않고 진실을 행하지 않으며, 서로서로 죽이고 해치며,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업신여기며 한량없는 악(惡)을 짓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쓰고 왕성한 의욕을 일으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참고] 『잡아함경(雜阿含經) 442.』 (제16권) ‘조갑경(爪甲經)‘ (동국역경원)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以爪甲擎土已 告諸比丘 於意云何 我爪甲上土爲多 此大地土多 諸比丘白佛言 世尊甲上土甚少少耳 此大地土甚多無量 乃至算數譬類不可爲比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손톱으로 흙을 찍어 들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 손톱 위의 흙이 더 많으냐, 저 대지의 흙이 많으냐?”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 손톱 위의 흙이 훨씬 적습니다. 이 대지의 흙과 돌은 너무도 많아 한량이 없고 나아가 어떤 숫자의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佛告比丘 如甲上土者 若諸衆生 形可見者 亦復如是 其形微細 不可見者 如大地土 是故比丘 於四聖諦未無間等者 當勤方便 學無間等 佛說是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손톱 위의 흙처럼, 모든 중생들 중에 형상을 볼 수 있는 중생은 역시 그와 같은 정도이고, 그 형상이 미세하여 볼 수 없는 중생은 저 대지의 흙과 같이 많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아직 빈틈없고 한결같지 못하다면 마땅히 힘써 방편을 써서 빈틈없는 한결같음을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如陸地 如是水性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 人道者 亦復如是 如大地土 如是非人亦爾 ......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人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如是衆生從地獄命終還生地獄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육지처럼 물의 성질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이렇게 사람 세계[人道]의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그렇게 사람이 아닌[非人] 중생도 또한 그러하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인간으로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을 설명한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지옥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如甲上土 如是衆生人道中沒還生人道中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從人道中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如是畜生 餓鬼亦爾

如甲上土 其諸衆生從天命終還生天上者亦如是 如大地土 其諸衆生天上沒生地獄中者亦如是 如地獄 畜生 餓鬼亦如是

 

손톱 위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인간 세계에 태어나는 중생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며, 대지의 흙처럼 인간 세계에서 목숨을 마치고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손톱 위의 흙처럼 천상에서 목숨을 마치고 도로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은 다해야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고, 대지의 흙처럼 천상에서 죽어 지옥에 태어나는 그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은 정도이니라. 지옥과 마찬가지로 축생 아귀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으레히 ; 으레(①거의 틀림없이 언제나 ②두말할 것 없이 마땅히)의 사투리.

 

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의 목적)2019. 3. 16. 10:16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8분 15초)

 

[법문] 송담스님(No.287)—1986년 2월 첫째일요법회(86.02.02)(용287)

 

작년에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그분은 우리나라 6.25동란 때 전쟁고아로서 미국에 양자를 가 가지고 그래 가지고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해 가지고 그 사진을 연구를 해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는데, 그이가 한번 어느 분의 소개로 찾아왔습니다.

 

이 참선에 대해서 항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참선이란 게 대관절 어떠한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며, 참선을 해 가지고 구경(究竟)으로 도달하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 이러한 질문을 해 왔습니다.

 

그 사람은 한국 사람이면서 한국말을 전혀 하지를 못하고 겨우 자기 이름만을 한글로 서투르게 쓸 정도였습니다. 너무 어려서 갔기 때문에 그런 거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말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 통역을 통해서 짧은 시간에 참선에 대한 설명을 해 주기도 어렵고 그래서 풍선을 하나의 예로써 얘기를 했던 것입니다.

 

이 참선,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꼭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심호흡을 하면서 화두(話頭)를 들고 이것이 현재 한국에서 지도하고 있는 하나의 그 체계적인 양식이기는 하지만. 이 깨달음이라 하는 것은 그러한 반드시 일정한 양식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진리는 일체처 일체시에 충만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역대조사(歷代祖師)와 선지식(善知識)의 수단과 능력에 따라서 어떠한 방법으로 지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세계적인 사진작가지마는 그 사진을 찍고, 또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사람은 글씨를 쓰고, 또 쇠를 만드는 그러한 그 제철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그 쇠를 녹여서 좋은 쇠를 만드는 그 가운데, 또 백정이 소를 잡는 데에는 소를 잡는 바로 거기에도 참선이 있을 수가 있고 깨달음이 있을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을 얘기를 하고.

 

그래서 사람마다 각기 자기 나름대로 하나의 풍선을 불고 있다.

 

누가 가장 큰 풍선을 불며, 금방 그 풍선을 잘못 불면 처음에 조금 훅 불다가 어문 가운데에서 툭 터져 가지고 실패해 버린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상당히 클 때까지 분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러나 개중에는 이 우주의 법계에 가득찰 만큼 그러한 큰 풍선을 불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커 가지고 터트릴 수 있는, 그렇게 풍선을 불 수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이 우주, 동서고금에 가장 크고도 좋은 풍선을 분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래서 지금 우리는 승려로서 우리 나름대로에 가장 좋은 풍선을 불려고 목숨을 바쳐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당신은 사진작가로서 당신의 풍선을 잘 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얘기를 했더니 그 사람이, 예술가도 상당한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런 도(道)나 법(法)에 관해서 얘기를 하면은 서양 사람이나 동양 사람이나 이해를 잘 하는 것을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몇달 후에 그이가 인편에 쪽지를 써서 보냈는데, 지금도 풍선을 열심히 불고 있다고 하는 그러한 그 전단을 보내왔었습니다.

 

'참선을 꼭 가부좌를 하고 단전호흡을 하고 화두를 타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 고정된, 참선에 관한 고정된 관념을 가져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그런 고정된 생각을 가지면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지루한 것이다. 장소가 없으면 못하고 시간이 없으면 못하고 어떠한 특별히 혜택 받은 사람이 아니면 참선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참선 자체를 경원시(敬遠視)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할려고 하니까 지루하고, 발이 다리가 저리고 허리가 아프고 나중에는 졸음이 오고 아무리 해도 재미가 없으니까, ‘하! 이거 화두가 나한테 맞지 않는 것이냐?’ 또는 '내가 공부를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심지어는 '나는 이 참선하고는 인연이 없는 것이 아니냐? 내 근기가 참선을 할 만큼 미치지 못한 것이 아니냐? 차라리 이렇게 아무리 해 봤자 재미도 없고 별 성과도 없는 참선을 이렇게 한다고 해 봤자 허송세월만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경을 읽어 볼까? 염불을 할까? 주력을 할까?

그래 가지고 경을 읽다가 염불을 하다, 주력을 하다, 그러다가 보면 또 다시 참선을 하고 싶어서 또 참선을 하다가 말다가, 참 이러한 분을 상당히 많이 겪어 봤습니다.

 

이 참선은, 초학자를 위해서 물론 책에 있는 그런 그 자세와 호흡하는 법과 화두를 참구하는 그러한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서 잘 지도를 받아서 하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워낙 범위가 넓고 자유스러운 것이어서, ‘그렇게 해야만 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망상(妄想)이 일어나서 못한다'고 하는데, 망상이 일어나고 안 일어나고 한 것이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고, 또 망상이 일어남으로써 오히려 참선을 잘할 수도 있는 그러한 면도 있는 것입니다.(12분3초~20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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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究竟 궁구할 구/마칠·다할 경)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그 위에 더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어문 ; '딴', '다른', '엉뚱한'의 사투리.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경원시하다(敬遠視--) ;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하다.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의 목적)2019. 3. 2. 16:50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16분 51초)

 

[법문] 송담스님(No.264)—1985년 4월 첫째 일요법회(용264)

 

오늘은 을축년 4월 7일 첫째 일요법회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추웠던 삼동이 지나고 어느덧 4월을 맞이했습니다.

세월은 이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이렇게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이 사시절(四時節)이 이렇게 돌아가는 것은 하나도 특별할 것도 없고 이상할 것도 없고, 깨달은 경계에서 본다면 이것이 모두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세(出世)하시고 미륵불(彌勒佛)이 또 출세하신 모습이며, 삼세제불(三世諸佛)이 쉴 사이 없이 상주설법(常住說法)을 하신 모습이지마는,

나를 깨닫지 못한 중생(衆生)의 경지에서는 이 1초 1초와 이 세월의 춘하추동 돌아가는 것 모든 것이 다 우리의 죽음을 재촉하는 그러한 상황에 지내지 않는 것입니다.

 

어째서 깨달은 분상(分上)에는 이것이 모다 설법이요, 부처님이요, 바로 이것이 극락세계요, 적광토(寂光土)인데,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하루가 지나가면 죽을 날짜가 하루 다가와지고, 해가 한번 떴다가 지면 사형 언도를 집행하는 날이 하루 다가서고, 죽을 날이 가까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깨달은 부처님이나 깨닫지 못한 우리 중생이나 똑같이 다 깨달을 수 있는 그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으면서, 깨달은 분은 하루하루 사는 것이 진리의 세계에서 극락세계(極樂世界)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하루를 갖다가 그렇게 유유자적(悠悠自適)하게 지내는데,

우리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루하루 지내는 것을 마치 사형 언도 집행날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그러한 마음으로 하루를 지내게 되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더군다나 오탁악세(五濁惡世) 이 말세(末世)에 태어나서 불법(佛法)을 만나지 못했다면 정말 우리의 앞길은 암담하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아주 진절머리가 나고 아무 희망도 없고 그럴 텐데,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만나고 정법을 만났기에 말세에 태어났으면서 이 오탁악세에 태어났으면서, 온통 온 세계가 도처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일어나고 사람이 하루에면 몇십 명씩 몇백 명씩 죽어가기를 파리 목숨보다도 더 참 허망하게 이렇게 죽어가고 있는 이러한 때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 이 허망한 몸뚱이를 이 세상에 이 시기에 받어 난 것을 너무 다행하고 경행하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바로 이 생사(生死)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道理)와 하나가 되는 것이여.

생사를 버리고 영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달아서 실천을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불법인 것입니다.

 

산에 봄이 오면 붉고 누런 꽃이 피고 파란 잎이 피고 한 것이 하나도 특이할 것이 없고 해마다 돌아오는 봄이면은 그러한 꽃이 피고 잎이 피는 것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에 출현하신 모습이요, 흐르는 물, 노래하는 새소리가 그냥 고대로 화엄경이요, 법화경이요, 금강경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불법을 만난 김에 기어코 깨달라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몸과 목숨을 바쳐서 나의 모든 것을 이 한 길에다 바쳐서 깨달음을 얻도록 노력을 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들에게 자기 자신, 자기의 마음자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삼세제불과 역대조사(歷代祖師)가 번갈아 가면서 출세를 하신 것입니다.

 

‘중생을 제도(濟度)하기 위해서 출현을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말을 하고 그렇게 믿고 있지만, 제도(濟度)가 무슨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듯이 그렇게 건져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중생으로 하여금 우리 중생들이 낱낱이 자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 자기의 마음자리 그것을 스스로 계발(啓發)을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가 자기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자기의 주인공, 자기의 마음자리를 확인시켜서 그것을 잘 갈고 닦도록 하면 그것이 바로 중생을 제도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어진 의원과 같고 또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와 같아서, 약을 일러주면 환자 자신이 그 약을 잘 먹으면 병을 낫을 것이요. 길을 일러주면 그 일러주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 거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어진 의원이라 하더라도 환자 대신해서 그 약을 먹어줄 수도 없는 것이며, 아무리 안내를 잘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걸어가야지, 본인이 걸어가지 아니하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 주안 용화사 이 자리에 오셔서, 이십 성상(星霜)을 한결같이 대자비(大慈悲)의 문을 열어서 정법(正法)을 선양(宣揚)을 하시고 또 조실 스님께서 열반(涅槃)하신 뒤에 10년을 걸쳐서 이 송담이 여기서 법회를 가져오고 있습니다마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말을 했지만 언제나 그 핵심은 하나이고 그 돌아갈 곳은 한 가지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할 때에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고 말을 듣고 계십니다마는, 그 듣고 있는 바로 그놈을 스스로 돌이켜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총력(聰力)이 좋고 머리가 좋아서 화엄경을 육두로 다 외우고, 법화경을 다 외우고, 금강경을 다 외운다 하더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외우는 데만 그쳐 가지고서는 그것은 불법을 옳게 믿는 사람이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화엄경과 법화경, 금강경과 같은 그러한 좋은 경을 읽고 해석하고 이해를 해서, 참으로 옳게 이해를 한다면, 거기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참선법은 경을 가르키지 아니하고, 경을 외우게 하지 아니하고, 경을 해설을 해 드리지 아니하면서 언제나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이 눈을 통해서 볼 줄 알고, 귀를 통해서 들을 줄 알고, 입을 통해서 말할 줄 알고, 생각으로 희로애락을 느끼고 생각하는 바로 그놈을 돌이켜 찾으라 이것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생각을 돌이켜서 그 생각 일어난 근본을 관조(觀照)하라’ 이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선(參禪)이고 화두(話頭)라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뭣고? 한마디는 삼천 겁을 계율을 지키고 팔만 세 동안을 경을 외우는 공덕(功德)보다도 더 수승하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계율을 삼천 겁을 지키고 팔만 세 동안을 경을 외운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을 돌이켜 찾지 아니하면, 그 계율을 지키고 경을 외우는 그 자체는 목적이 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계율을 잘 지키고 경을 외우되 바로 참나를 깨닫기 위해서 경을 읽고 계율을 지키는 것이지, 계율을 지키는데 목적이 있고 경을 외우는데 목적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경을 잘못 외우는 것이고 계율을 잘못 지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계율이라든지 경은 온전히 자기 자성(自性)을 깨닫게 하기 위한 좋은 방편(方便)이요, 길이 될지언정 그 자체가 불법의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뭣고?’는 너무 맛이 없는 소리고, 하루 이틀 내지 한 달 두 달 해 봐도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안 되는 것 같지도 않고 맨날 해 봤자 죽 떠먹은 자리와 같아서, 무엇이 효과가 좀 나타났으면 좋겠는데 이렇다 할 효과도 나타나지 아니하고,

누구에게 ‘나는 이 참선을 해서 이만큼 무엇이 얻어졌다’하고 내보일 것이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1년, 이태, 3년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한다고 해 봤지만 사실은 뭐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학원에 다니면서 글씨를 배운다든지 또는 사군자를 배운다든지 무슨 음악을 배운다든지 하면, 한 달만 배워도 제법 내놓을 것이 있고, 두 달만 배워도 ‘이만한 것을 나는 하게 되었다’하고 긍지를 가질 수가 있는데,

이 참선은 정말 3년, 10년을 했어도 ‘이러한 것을 나는 얻었다’ 이렇게 내놓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 내놓을 만한 없는 것이 사실은 공부를 옳게 해 간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마는.

 

이 참선을 해 가지고 밤에는 환히 불이 켜지고 또 가만히 눈감고 있으면 ‘내일은 누가 나를 찾아오겠다’ 이걸 알고, ‘이 다음에 손자를 낳겠다’ 또는 ‘딸을 낳겠다’ 뭐 그런 것이 알아지고, 이렇게 된다면 그 사람은 참선을 잘못한 것입니다.

정말 올바르게 참선을 하면 무엇이 보이는 것이 있을 수도 없고, 알아지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다가 그러한 알아지고 보이고 신기한 것이 나타났다 하면 그것은 하나의 마경(魔境)이 잠시 스쳐 가는 것이어서 그것은 신경을 쓰지 아니해야 하는 것입니다마는.

 

그러면 1년, 이태, 3년을 해도 아무것도 얻어진 것도 없고, 보이는 것도 없고, 나타난 것도 없고 그러면 그걸 무슨 재미로 그것을 하며,

그렇게 하다가 부처님처럼 다행히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한다면 좋지만, 만날 해도 별로 얻어진 것도 없고 꾸벅꾸벅 졸음만 오고 그러다가 죽어버린다면은 그거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그러한 막연한 공부를 갖다가 사람들에게 권고를 하고, 자꾸 ‘이뭣고?를 하면 좋다’ 그렇게 할 수가 있느냐?

 

이렇게 생각을 하실 분이 혹 계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사실은 이 참선은 근본 목적은 ‘내가 나를 깨달아서 이 생사(生死)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自由自在)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이 참선의 목적입니다.(5분54초~22분4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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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상주설법(常住說法) ; 우주 대자연의 운행 그대로가 설법이라는 말.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돌아가는 것 모두 그대로가 부처님이 출세하신 모습이요, 쉴 사이 없이 하는 설법이다.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적광토(寂光土) ; 상적광토(常寂光土). 항상[常] 변하지 않는[寂] 광명[光]의 세계[土]. 부처님의 거처나 빛나는 마음의 세계를 이르는 말이다.

*불성(佛性) ; ①모든 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부처가 될 수 있는 소질·가능성. ②부처 그 자체. 깨달음 그 자체.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極] 안락[樂]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함.

*유유자적(悠悠自適 멀·한가로이 유/스스로 자/가다·즐기다·專一하다 적) ; 속세를 떠나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고 한가로이[悠悠] 자유로우며 편안하게 삶[自適].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총력(聰力) ; 보거나 들은 것을 오래 기억하는 힘.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계율(戒律)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말미암은 모든 악(惡)을 방지하기 위하여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지켜야 할 행위규범.

계는 좋은 습관이나 도덕적 행위의 뜻으로 모든 불자가 지켜야 할 불교도덕이며, 율은 모든 그릇됨을 여의고 깨달음의 세계로 선도해야 할 출가 교단의 통제 규범.

*공덕(功德) ; ①복, 복덕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마경(魔境) ; 마(魔)의 경계(境界).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번뇌를 말한다. 마(魔)가 본래 씨가 없지만,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자유자재(自由自在 스스로·저절로 자/말미암을 유/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아무 거리낌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인 것.

*자재(自在 스스로 자/있을·제멋대로 하다 재) ; ①자기가 원하는 대로인 것. 생각한 대로. 마음대로인 것. 자유자재로 어떠한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것. 원하는 대로의 경지. ②그 자신에 의해 존재하는 것. ③자유롭다. 자신에게 의존하다. ④독립. ⑤느긋한 심신의 작용. 잡혀지지 않는 것. ⑥불보살에 갖추어진 힘을 말함. 부처님을 자재인(自在人)이라고도 함.

 

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의 목적)2018. 10. 9. 10:19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12분 37초)

 

[법문] 송담스님(No.246)—84년(갑자년) 추계산철결제 법문(84.08.27)(용246)

 

방금 전강 조실 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통해서 이 결제 법어를 다 들어 마쳤습니다. 더이상 할 말씀이 없지만, 이 자리에는 처음으로 참선(參禪)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용화사를 찾아온 청신녀(淸信女)도 계시고,

또 강원에 다니다가 강원을 졸업하고 또 이제부터 참선을 하고자 하는 그러한 수좌(首座)도 있고, 처음으로 선방(禪房)에 나와서 아직은 참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아지 못해서 안타까와하는 그러한 스님도 있고 해서, 오늘은 이 참선을 해 나가는 아주 요긴한 요점을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사람 사람이 본래 갖추어져 있는, 낱낱이 원만히 이루어져 있는, 조금도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에 손색이 없이 완전무결하게 갖추어져 있는 그 도리(道理).

 

그것이 마치 무엇과 같으냐 하면, 손을 가지고 오그리면 주먹이 되고 펴면 손바닥이 되는 거와 같애. 쥐고 싶으면 쥐고, 손을 펴고 싶으며 펴고, 누가 그것이 어려웁다고 할 것이냐 그말이여. 조금도 힘들일 것이 없어.

 

이와 같애서 참선도 원래 내게 갖추어져 있는 것이어서 새로 찾을 것도 없고 닦을 것도 없고 깨달을 것도 없는 것이지만, 무량겁래(無量劫來)로 '한 생각' 미(迷)한 탓으로 해서 심(心) · 의(意) · 식(識), 마음과 뜻과 식이 제멋대로 놀아나 가지고 그 심의식의 제멋대로 놀아난 그놈의 장난으로 해서 나의 본분(本分)을 망각(忘却)해 버렸다 그말이여.

 

부처님과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그러한 도리를 갖추어져 있으면서도 그것을 망각해 버렸기 때문에, 그 망각한 그 탓으로 해서 육도(六道)를 본의 아니게 돌고 돌면서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악업(惡業)을 짓고, 악업을 지음으로 해서 더욱 치성하게 고초를 받게 되고, 이렇게 하기를 무량겁 동안을 지내오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숙세(宿世)에 인연이 있어서 사람 몸으로 태어나고 또 이렇게 불법(佛法)을 만나고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만나서, 한 생각 돌이켜서 본래 갖추어져 있는 도리를 깨달아서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는 길이 우리 앞에는 환하게 열려 있는 것입니다.

 

내게 갖추어져 있는 것을 내가 찾는 것이라 하나도 힘들 것이 없지마는, 무량겁으로 윤회를 하면서 지은 악업이 솜털 얽히듯이 얽혀 가지고 내가 내 마음이면서 내 마음대로 못하고, 내가 내 뜻을 내 마음대로 못하고, 내가 내 알음알이를 내 마음대로 못합니다.

겨울에 얼음에다 물을 찌트르면 찌클수록 그 얼음 덩어리가 불어나듯이, 우리의 심(心) · 의(意) · 식(識)은 무량겁 우리의 지은 업에 의해서 얽힌 데 또 얽히고, 얽힌 데 또 얽히고 해 가지고, 헤치고 들어갈수록 점점 더 복잡하고 어찌 해 볼 수 없도록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할라면 정말 쇠로 지어 붓은 쇠뭉텡이와 같이 이를 악물고 죽기로 각오를 하고 대들지 아니하면 이 일대사(一大事) 문제는 해결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내가 근기(根機)가 약하니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

‘내가 말세(末世)에 태어난 업보(業報) 중생으로서 감히 그런 참선을 해서 될 것인가?’

‘여자로 태어나 가지고 어떻게 그러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견성성불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건강이 좋지 못하니 어떻게 가행정진(加行精進) ·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깨달을 수가 있을 것인가?’

‘나이가 이렇게 늙었으니 어떻게 내가 공부를 한다고 해봤자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

‘내가 경(經)도 보지 못하고 무식한 사람이 어떻게 확철대오를 해서 무량 중생(無量衆生)을 제도(濟度)할 것인가?’

 

이러한 등으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자포자기하는 그러한 자신 없는 마음으로 대들어 봤자, 물어볼 것도 없이 조금 해 보다가 무엇이 잘 안되면 스스로 물러서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 공부는 되고 안되고 한 것을 전혀 따질 것이 없습니다.

 

‘내가 본래 부처다’, ‘내가 본래 부처님과 똑같은 부처다’고 하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고, ‘본래 내가 부처인데 그것 찾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려울 것인가?’

‘과거에 모든 부처와 조사도 깨닫기 전에는 우리와 똑같은 범부(凡夫)였었다. 똑같은 범부였었지만, 한 생각 돌이킴으로써 견성성불을 했다’

표현이 ‘성품을 보았다’ 또는 ‘부처를 이루었다’ 하지만, 본래 내가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확인한 것뿐인 것입니다.

 

'견성(見性) 했다'고 하니까, 미간(眉間) 백호(白毫)가 튀겨져 나오고, 몸에서는 방광(放光)을 하고, 육신통(六神通)을 자유자재로 행사하고 이렇게 굉장히 불가사의하고 신비한 존재로 생각하기가 쉽지마는,

말할 줄 아는 놈, 들을 줄 아는 놈, 성낼 줄 아는 놈,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천리만리도 왔다갔다하고, 천 년 이천 년 과거로도 갈 수도 있고, 미래로도 갔다왔다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에 걸림이 없이 자유자재한 놈,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래 갖추어져 있는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 것입니다.

 

그런데 착각해서는 아니될 것은 본래 갖추어져 있는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그 본래면목에서 나오는 그림자를 붙잡고 자기라고 착각을 하는 수가 있습니다.

 

성내고 욕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하는 것은 그 나의 본래 갖추어져 있는 ‘한 물건’의 한 작용이 될지언정, 그놈을 바로 나의 본래면목이라고 우리의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인식을 하는 것은 ‘도적을 나의 자식으로 착각을 하고, 고기 눈깔을 가지고 야광주(夜光珠)로 착각하는 거와 같다’ 이렇게 고인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번뇌 망상(煩惱妄想), 눈을 통해서 보고, 귀를 통해서 듣고, 혀를 통해서 맛보는 놈. 그놈을 여의고 찾는 것은 아니지만, 자칫 잘못 알면 ‘아! 바로 이놈이 이놈이로구나. 이놈이 그놈인데, 찾을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속단(速斷)을 하게 되면, 이것은 이 최상승법을 잘못 인식을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고인(古人)은 이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한 공안(公案)을—공안(公案)이라고도 하고 화두(話頭)라고도 합니다마는,

이 공안 하나를 가지고 거기에다가 일심 정력을 쏟아서 밤낮도 가리지 아니하고, 행주좌와(行住坐臥)도 가리지 아니하고 어묵동정(語默動靜)도 가리지 아니하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언제 어데서 무엇을 하건 간에 이 한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을 참구(參究)했습니다.(10분28초~23분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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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청신녀(清信女) ; 출가하지 않고 재가(在家)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여자 신도, 곧 우바이(優婆夷).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큰방. 선실(禪室). ②선원(禪院).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심의식(心意識) ; 심(心 citta) · 의(意 manas) · 식(識 vijñāna)의 세 낱말을 합친 복합어.

①초기 불교에서는심(心)과 의(意)와 식(識)은 동의어로서 인식 주관 또는 인식 작용을 뜻함.

②유식설에서는 심(心)은 아뢰야식(阿賴耶識), 의(意)는 말나식(末那識), 식(識)은 육식(六識)을 뜻함.

*본분(本分 근원·마음·본성 본/신분·뜻 분) ; 자신이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라 중생이라 하는 것은 꿈 속에서 하는 말이다. 본래 어둡고 밝고 알고 모를 것이 없으며, 온갖 속박과 고통을 새로 끊을 것이 없고, 대자유(大自由)• 대해탈(大解脫)을 비로소 얻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본래부터 그대로 부처인 것이다. 그러므로 ‘근본 깨달음(本覺)’이라기도 하는데, 『선가귀감』 첫구절에서 말한 ‘ 〇  일원상(一圓相)’은 이것을 나타냄이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의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가 있다.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의 나쁜 행위.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알음알이 ; ①어떤 인식대상에 대해 마음 또는 마음작용이 가지는, 그 인식대상에 대한 형상 즉 이미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②마음이 번뇌에 덮여있는 상태, 말하자면 거울에 때가 낀 상태에서 가지는 이러한 앎을 깨달음[무루혜 無漏慧 - 모든 번뇌를 해탈(解脫)한 성자(聖者)의 지혜]과 구분하여 알음알이라 한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업보(業報) ; 자신이 행한 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과보(果報).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범부(凡夫 무릇·보통 범/남편·사내 부) ; 번뇌(煩惱)에 얽매여 생사(生死)를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이생(異生) 또는 이생범부(異生凡夫)라고도 한다.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 자기의 심성(心性)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實相)인 당체(當體, 본체本體)와 일치하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 한다.

*백호상(白毫相) ; 부처님의 32상(相) 중 하나. 부처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부드러운 털. 오른쪽으로 말려 있고 여기에서 광명을 발한다고 한다. 미간백호상(眉間白毫相)·

*육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6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②천안통(天眼通) ③천이통(天耳通) ④타심통(他心通) ⑤숙명통(宿命通) ⑥누진통(漏盡通).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고향(本地故鄉), 본분전지(本分田地), 고가전지(故家田地), 천진면목(天眞面目), 법성(法性), 실상(實相), 보리(菩提), 부모에게서 낳기 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 부모에게서 낳기 전 소식(父母未生前消息) 등이 모두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말이다.

*한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한 물건’ ‘한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의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 11~13.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한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〇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 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한 물건이란 무엇인가?  〇 옛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한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한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라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자(字)도 없다。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곧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된 까닭이다.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什麼物이  伊麼來오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説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팔 년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된 소이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야광주(夜光珠) ; 어두운 데서 빛을 내는 구슬.

*속단(速斷) ; 신중히 생각하지 않고 서둘러 판단을 내림.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할 것.

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천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꽃, 푸른 대,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등 —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와 참의(叅意)가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그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의 목적)2018. 4. 14. 23:46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15분 17초)

 

[법문]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용258)

 

마음 자체는 형상이 없기 때문에 눈으로도 출입을 하고, 귀로도 출입을 하고, 코로도 출입을 하고, 입으로도 출입을 하고, 몸뚱이 사지백체(四肢百體)와 팔만사천 모공(毛孔)으로도 출입을 합니다.

형상이 없기 때문에 문 없이도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뜻을 통해서, 의식을 통해서 출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놈 단속하기가 심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놈 하나를 지혜롭게 잘 단속을 한다면 삼재(三災)는 영원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버리면 일체 삼재는 나를 옹호하고 받드는 보호 신장(神將)이 되어 줄 것입니다. 바로 나의 권속(眷屬)이 되고, 나의 제자가 되고, 나의 수호신이 되어 줄 것입니다.

 

모든 팔만사천의 도적을 나의 명령 하에 움직이는 나의 충직한 군사가 될 것이며, 나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의 권속이 되어 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심왕(心王)을 잘 다스리는 데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심왕을 다스리는 법이 바로 이 참선법(參禪法)이여.

 

참선은 일어나는 생각—눈으로 무엇을 보면은 희다, 검다, 누르다, 붉다, 크다, 작다, 저것은 사람이다, 짐승이다, 자동차다, 비행기다, 눈을 통해서 어떤 영상이 비치자마자 그러한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

그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 눈에 어떤 형상이 딱! 비치자마자 거의 동시라고 할 만큼 그 알음알이가 일어납니다마는, 그 알음알이가 일어나기 전에 ‘이뭣고?’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귀로 무슨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귀는 항시 열려져 있기 때문에 언제나 크고 작은 소리, 멀고 가까운 소리가 우리 귀에는 들려올 수가 있습니다.

들려오면 무심코 스쳐가 버리기도 하지만, 그 한 소리를 듣고서 어떠한 알음알이가 발생을 하게 됩니다. 발생을 하면 잠깐 발생하고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으로 가지가 자꾸 벌어져 나갑니다.

 

가령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하면, ‘비행기 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아! 저 비행기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인가 보다’ 그리 생각하고,

‘비행기’했다 하면은 ‘아! 언젠가 우리 아저씨가 그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갔다’ 그리 생각하고, ‘미국에 가서 사업이 잘되는가?’ 이렇게 생각하고.

 

거기서 또 비약을 해 가지고, 또 소련에 의해서 추락한 비행기를 생각하고 또 그 추락 비행기가 폭파할 때에 애석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이리 해서 끊임없이 가지에 가지가 뻗고 또 그 가지에 또 가지가 뻗어 가지고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슬퍼지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하고, 괴롭기도 하고, 이것이 이러한 식으로 한 소리 들었을 때에 그럴 뿐만이 아니라, 눈으로 볼 때 그렇고, 코로 냄새를 맡을 때 그렇고, 몸에 춥고 더운 것을 느낄 때 별별 생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를 평생 동안을 그렇게 하고 세세생생(世世生生)을 그렇게 해서,

선(善) · 악(惡) · 무기(無記)로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거기서 이리저리 솜 얽히고 머리카락 얽히듯이 얽히고설켜 가지고 그것이 또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렇게 해서 새로운 더 무서운 업(業)을 적극적으로 형성해 나가면서 또 그 과보를 받으면서, 받으면서 짓고 지으면서 또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량겁(無量劫)을 오늘날까지 살아오고, 앞으로도 무량겁을 두고 그렇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 무량겁의 생사윤회(生死輪廻)를 근본적으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아니된 것입니다.

 

정월에 일주일 동안 신수기도 함으로써 우리의 업장(業障)을 소멸하고 그리고 모든 소원을 성취하기를 바란다고 하는 것은 우리 중생의 너무나 사려(思慮)가 깊지 못한 바람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아니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칠일 기도를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하면서 거기에 그치지 아니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우리의 업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참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원히 이 삼재(三災)라고 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서 생사(生死)를 해탈(解脫)하는 길이 있다고 하는 것을 저는 재삼(再三) 강조를 하는 것입니다.

 

생각 일어날 때에 바로 ‘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해서 탁! 귀에 거슬리는 바로 그 찰나에 다음 생각으로 옮겨가기 전에 ‘이뭣고?’

몸이 아파도 ‘이뭣고?’ 속이 상해도 ‘이뭣고?’ 배가 고파도 ‘이뭣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던지 항상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지금 ‘이뭣고?’하고 있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이뭣고?’할 때 맨 처음에 ‘이-’ 소리부터 하는데 『‘이-’ 하는 바로 이놈이 무엇인가?』 그러한 뜻으로 『‘이’뭣고?』

 

이렇게 찰나 찰나를 이렇게 야무지게 알뜰하게 단속을 해 나간다면, 그 한 생각 한 생각의 단속이 쌓이고 쌓이면 그래서 일구월심(日久月深)하면 그것은 철위산(鐵圍山)도 무너뜨릴 수 있는 그러한 무서운 위력을 우리는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석가모니 부처님도 바로 이 문제를 이렇게 해결을 해서 그런 대성현이 되신 것입니다. 역대조사(歷代祖師)도 또한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근본을 해결하지 않고서 지엽적으로 일을 해결할려고 하면 복잡하고, 이놈을 막아 놓으면 저기가 터지고, 저놈을 막으면 여기가 터지고, 이놈을 일으켜 놓으면 저놈이 자빠지고, 저놈을 일으켜 놓으면 이놈이 자빠지고, 도대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그 근원에서 딱 해결하면 지엽적인 문제는 제절로 정돈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에도 역시 마찬가지고, 어떠한 사업을 하거나 어떠한 사물을 다룰 때에도 항상 그 근본(根本)을 찾아서 근본 문제를 해결을 할려고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려면은 지혜(智慧)가 있어야 해. 자기가 지혜가 없으면 지혜 있는 사람의 지도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숙세에 선근(善根)이 있어서 이 최상승법을 듣고 실천할 수 있는 그러한 길을 금생에 만났습니다. 우리에게는 철저하게 믿고 최선을 다해서 실천을 해 가는 일만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서 잘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 공부는 지극히 방법은 간단하지만 너무 맛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옳게 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도 확실히 알 수가 없고, 할려고만 하면 무조건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머리가 아프고, 조금 잘못하면 소화가 잘 안되고, 영 이리저리 해서 여간해서 처음에 정 붙이기가 어렵습니다마는,

 

법문(法門)을 자주 듣고, 좋은 도반들과 같이 애를 쓰고 열심히 해 나가다 보면 차츰차츰 그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차츰차츰 이 공부해 나가는 길을 잡게 됩니다. 그러면은 그렇게 이것이 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게 일양(一樣)으로 맛이 없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차츰차츰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들어진 때가 많고—처음에는 아무리 들려고 해도 금방 딴 생각이 들어오고, 겉으로는 들되 속으로는 의심이 간절(懇切)하지 못하고 딴 생각[別念]이 노상 침노(侵擄)를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망상(妄想)이 일어나거나 말거나 그냥 그건 고대로 두고 ‘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잠간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면서—내쉴 때는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차츰 이렇게 홀쪽하게 하면서 그때 ‘이뭣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 그렇게 해 나가면,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화두가 떠억 들려지게 된 때가 오는 것입니다. 망상을 끊을려고 안 해도 제절로 망상이 없어지고, 마음을 고요히 할려고 안 해도 제절로 마음이 고요해져.

물론 간간이 생각이 안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어나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고 나는 화두만 들면 바람이 귓전에 스쳐가듯이 어떠한 생각도 스쳐서 지내가는 것이지, 나에게 아무 별다른 해를 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가 비교적 순일(純一)하게 되어 가면 마음이 조용하고 편안하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사한 생각 또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기쁜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한 생각에 떨어지지 말고, 더 지혜롭게 더 알뜰하게 화두를 잘 참구해 나가고 잡드리 해 나가면, 오매(寤寐)가 일여(一如)하게, 행주좌와 간에 일여하게 화두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순일무잡한 경계가 일주일 이상 이렇게 나가면 반드시 화두를 타파해서 자기의 면목(面目)을 요달(了達)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 삼재(三災)를 소멸하는 신수기도 입재를 맞이해서 이미 있는 삼재는 소멸을 하고, 앞으로 돌아오지 아니한 삼재는 미리 예방을 할 수 있는 근본적인 묘한 방법을 말씀해 드렸습니다.

그러한 근본을 명심을 하시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알뜰하게 기도를 하셔서 여러분의 크고 작은 소원을 성취하시기를 간곡히 빕니다.(41분55초~57분1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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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백체(四肢百體) ; 몸의 전체.

*삼재(三災 석 삼/재앙 재) ; 사람의 태어난 해(十二支)에 따라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나쁜 운수를 의미한다.

①대삼재(大三災)라 하여 물(水災), 불(火災), 바람(風災)에 의한 재난을 의미하기도 하고,

②도병(刀兵 : 서로 흉기를 갖고 살해함), 기근(饑饉 : 기근이 일어남), 질역(疾疫 : 큰병이 유행함)을 뜻하기도 하며,

③자연 현상으로 입은 세 가지 재해(災害) 즉 곡식이 익지 않는 기(飢), 채소가 익지 않는 근(饉), 과일이 익지 않는 황(荒)을 가리키기도 한다.

④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인한 육도윤회(六途輪廻)의 재난.

 

삼재의 첫해를 입삼재(入三災, 들삼재)라고 하며 두 번째 해는 침삼재(枕三災, 눌삼재·앉은삼재), 마지막 해를 출삼재(出三災, 날삼재)라고 한다. 고려시대 이전부터 삼재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에는 삼재라는 개념이 널리 확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송담스님(No.258)—1985년(을축년) 신수기도입재(1985.02.22) 법문에서.

삼재가 들으신 분뿐만이 아니라, 삼재가 안 들으신 모든 사부대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재앙(災殃)은 언제나 우리에게 닥아 올 수가 있고 우리에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삼재는 바로 우리의 마음에서 그 근본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삼재가 붙을 수가 없고 일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으로 부터 끊임없는 파도가 파도치고 있기 때문에 삼재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는 것입니다.

 

대관절 이 삼재라고 하는 것이 왜 그것이 어떠한 이유로 해서 있는 것이냐?

태어난 해에 따라 차례차례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삼재가 오느냐 하는 것은, 이것은 음양오행의 술가들이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하여간 옛날부터서 우리의 생활 경험을 통해서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 삼재가 든 사람은 항시 불보살과 성현께 기도를 하고, 또 항시 3년 동안 근신을 하고, 말과 행동과 마음가짐을 각별히 조심을 해서, 대인 관계에 있어서나 모든 면에 있어서 근신하고, 지혜롭고, 참을성 있게 그렇게 조심을 해 나가야만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생활은 여전히 해 가되 ‘어떻게 근신을 하고 어떻게 조심을 하느냐’하는 것은 다른 게 아니라, 불법을 믿고 항시 염불을 하는 이는 염불을 열심히 하고, 경을 독송하는 이는 경을 열심히 독송하고, 또 참선법을 믿고 실천하는 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심(一心)으로 화두를 들며 참구를 한다면 어느 틈에 있어서 삼재가 엿볼 수가 있겠습니까.

 

삼재가 아무리 무섭다 해도 우리의 마음의 틈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이지, 마음에 틈이 없다면 들어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삼재가 우리의 마음의 틈을 타서 들어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인식을 하고 삼재에 걸린 분. 또 앞으로 삼재를 맞이할 분들은 각별히 마음의 문—마음의 문은 눈이 바로 마음의 문이요. 귀가 마음의 문이요. 코와 입이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몸뚱이가 마음의 문이요. 우리의 생각이 마음의 문인 것입니다. 이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육근(六根), 육문(六門)이 바로 삼재가 들어오는 문이 것입니다.

 

그 문단속을 잘 하는 것으로 모든 도적을 막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삼재를 막아내는, 비단 삼재라고 했습니다마는 더 널리 말을 한다면 육적(六賊)이 될 것이고, 더 방대하게 말한다면 팔만사천 마군(八萬四千魔軍)이 될 것입니다.

 

그 팔만사천 마군이를 ‘한 생각’에 막을 수도 있고, 도적을 불러 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 비끗 잘못하면 바로 삼재와 육적과 팔만사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고 있는 것도 역시 그 ‘한 생각’ 때문에 육도윤회를 해서 끊임없이 생사를 받고 있습니다마는, 그 ‘한 생각’만 잘 단속해 나간다면 신수기도는 정말 옳게 봉행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참고] 송담스님(No.336)—87년 8월 첫째일요법회(87.08.02)에서. (6분7초)

그러나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또 바람이 불고 한 그러한 재난은 사실은 큰 재난이라고 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수재(水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화재(火災)와,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팔풍(八風)의 그 풍재(風災), 이러한 재난은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수재가 일어나서 육백 명이라고 하는 인명(人命)을 앗아가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훨씬 참혹하고 무서운 재난은 우리 낱낱이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재난, 이것이야말로 우리를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몰아넣는 그러한 무서운 재난인 것입니다.

 

비가 폭우가 쏟아지고 태풍이 불어서 얻은 재난은 재산을 앗아갑니다. 재산은 또 부지런히 벌면 보충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설사 그러한 수재로 인해서 생명을 잃었다 하드라도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지옥에 가란 법은 없습니다.

몸을 바꿔서 좋은 데에 태어날 수도 있고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을 할 수도 있지마는,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화재로 일어난 그 재난은 영락없이 우리를 축생(畜生)이나 또는 아귀(餓鬼)나 지옥(地獄)으로 우리를 밀어붙이고 마는 것입니다.

 

무량겁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없는 마음속에 그 수재와 화재로 인해서 많은 피해를 입어 왔습니다. 그 탐진치 삼독, 오욕락(五欲樂), 팔풍경계에 우리는 잠시도 편할 날이 없습니다.

 

지금 이 폭풍이나 태풍 이런 것은 여름 한때 장마철에 지나가 버리고 며칠간 그러다가 그치면 또 조용합니다. 또 내년에 이맘때 되면은 또 그러한 것이 오겠습니다마는, 그래도 1년에 한 번 정도 오는 거야 우리가 미리미리 취약지구에 대한 대처를 해 나가고 모다 댐이라든지 그런 것을 장기적인 안목으로 잘 해나간다면 언젠가는 큰 피해를 막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 그건 온 나라의 여러 국민들이 모다 합심을 해서 모다 의연금품을 내고 나라에서도 모다 구제를 하고 그러면 어느 정도 또 상처를 또 아물게 할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우리의 자신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 태풍과 폭풍, 폭우 모다 그런 것은 아무도 우리 자신을 대신해서 그것을 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나라에서도 어찌해 볼 수가 없고, 부모형제라 하더라도 어찌 해볼 수가 없고, 오직 나 자신의 마음의 수재와 화재와 풍재는 나 자신의 수행을 통해서만이, 활구참선을 통해서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입니다.

 

대단히 이 마음속에 일어나는 풍재와 화재 또는 수재 이런 것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번에 지나간 그러한 폭풍이 유(類)가 아닌 것입니다. 폭우가 비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고대로 놔둔 채,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자신을 갖다가 지옥구덩이에 갖다가 처박기도 하고, 축생의 뱃속에—이 사람 껍데기를 뒤집어쓴 채 독사가 되기도 하고,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또 아귀와 그런 악마가 되게 하는 그러한 무서운 것입니다.

 

순전히 ‘한 생각’으로 인해서, 그 한 생각을 자기가 다스리지 못해 가지고 그러한 육도(六途)를 찰나간(刹那間)에 윤회(輪廻)를 하면서 백 년의 꿈을 꾸어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신장(神將) ; 《화엄경》을 보호하는 신장. 곧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장을 이른다.

*팔만사천의 도적 ; 팔만사천의 번뇌.

*심왕(心王) : 의식 작용의 본체。객관(客觀) 대상에 대하여 그 일반상(一般相)을 인식하는 정신 작용。여기에 육식(六識), 팔식(八識), 구식(九識)의 구별이 있다.

*알음알이(知解)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삼성(三性) ; 모든 현상의 성질을 윤리적 측면에서 선(善), 악(惡), 무기(無記)로 나눈 것.

선(善) ; 산스크리트어 kuśala 올바르고 청정하여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이익이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름.

악(惡) ; 산스크리트어 pāpa 올바르지도 청정하지도 않아 현재와 미래에 걸쳐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됨. 궁극적인 진리에 따르지 않음.

무기(無記) ; 산스크리트어 avyākṛta 선도 악도 아닌 것. 또는 그러한 마음 상태.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업(業) : [범] karma [파]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作)’의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을 업이라 한다.

개인은 이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의 윤회(輪廻)를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을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다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다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신수(身數)기도 ; 지난 1년 동안의 죄업을 참회하고, 새해를 맞아 정초에 1년 동안의 안녕과 소원을 기원하는 기도.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재삼(再三) ; 두세 번. 또는 몇 번씩. ‘거듭’, ‘여러 번’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일구월심(日久月深) ;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 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바라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짐을 이르는 말.

*철위산(鐵圍山) ; 철륜위산(鐵輪圍山)이라고도 함. 불교의 세계설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네 대륙과 9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산 사이에 8개의 바다가 있는데, 그 아홉 번째 가장 바깥쪽의 철(鐵)로 된 산을 말한다.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의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뜻.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의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년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지 7일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세(혹 19세)에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을 만나 6년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가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년 간 갠지스 강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五四四년 2월 15일. 입적 후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선근(善根) ; 좋은 과보를 받을 만한 착한 인(因)·행위. 온갖 선(善)을 낳는 근본. 청정한 행위를 할 근성.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법/문 문)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일양(一樣) ; ①한결같은 모양. 또는 같은 모양. ②한결같이 그대로. 또는 꼭 그대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간절(懇切 간절할•정성스런 간/정성스런•절박할 절) ; ①지성(至誠)스럽고 절실(切實)함 ②정성이나 마음 씀씀이가 더없이 정성스럽고 지극함 ③마음속에서 우러나와 바라는 정도가 매우 절실함.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침노(侵擄) ; 성가시게 달라붙어 손해를 끼치거나 해침.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오매(寤寐 잠이 깰 오/잠잘 매) ; 자나깨나 언제나.

*일여(一如) ; 완전히 하나가 되어 나눌 수 없음.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면목(面目 낯 면/눈 목) :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의 목적)2016. 10. 28. 14:51

참선(參禪) (No.630)—(게송)此珠非大亦非小~ | 참선은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묘한 길 | 할 것은 ‘이뭣고?’ 밖에 없습니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8분 42초)

 

[법문] 송담스님(No.630)—99 10 첫째일요법회(99.10.03)(용630)

 

차주비대역비소(此珠非大亦非小)하고  주야광명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로구나

나무~아미타불~

멱시무물우무종(覓是無物又無)하되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니라

나무~아미타불~

 

 구슬이 크지도 않고 또한 작지도 않다. 나의 본성(本性) 자성(自性)자리, 나의 주인공을 구슬에다가 비유해서 읊은 고인(古人)의 시(詩)입니다.

 구슬은 크지도 않고 또한 작지도 않다.  때에는 우주 법계를  싸고도 남을 만큼 크고, 작기로 말하면은 인허(隣虛) 보다도 더 작다. 겨자씨 보다도 더 작다.

 

그런데 주야광명개실조(晝夜光明皆悉照)다. 낮이나 밤이나 항상  구슬에서는 광명이 나와서  우주 법계를 환히 비추고 있다 이거거든.

 

멱시무물우무종(覓是無物又無蹤)이요, 그런데 그런  구슬 찾아보면  수도 없고,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어. 자취가 없다 그말이여. 찾아보면 자취가 없어,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여.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항상 따라댕겨. 그림자 따르듯이 항상 따라다니는데 항상 요요명명(了了明明)하다 그말이여. 대관절 이것이 무엇이냐?

 

참선(參禪)은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기 위해서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하기 위해서 한다니까 어서 빨리 내가 견성을 해야 것다  참선을 바로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빨리 깨달으려고 조급한 마음  것이 아니라,   없는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이뭣고?’를  사람은 이뭣고?’  ‘판치생모(板齒生毛)’를  사람은 판치생모’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무자(無字)’ 화두를 하신 분은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없는 의단(疑團)만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 해야지, 빨리 깨달으려고 생각한다던지 내가 이래 갖고  되겠다. 언제 죽을는지 모르니까 이를 악물고 내가  한바탕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야겠다 그래가지고 이를 악물고 용을 쓰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것은.

 

단정히 앉되 어깨나 목이나 힘을  빼고, 호흡은 단전호흡(丹田呼吸)단전호흡이라 하니까 어거지로 무리하게  가지고는 가슴이 답답하고 그런  아닙니다.

지금 시간이 없어서 단전호흡하는 법을 자세하게 말씀을  드립니다마는 무리가 없이 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보통 호흡하듯이 하되, 들어마실 때는 하복부가 약간 볼록함을 느끼면서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조용하니 내쉬되 볼록해졌던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쭉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호흡을  것뿐이지 배가 터지도록 잔뜩 하는  아니에요.

 

무리하게 오래 시간을 걸려서 한번 쉬는데 1분씩을 내가 참아야겠다 그런  아닙니다. 자세한 것은 참선법(參禪法)’이라고 하는  (법문)테이프를 자꾸 들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없는 의단만 독로하도록 잡드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눈팅이를 찡그리면서 용을 쓰면서 하는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하되, 눈은 평상으로 뜨고   없는 의심만 독로하도록 잡드리하라.

이뭣고?’ ‘~하는 이놈이 뭣고?’ 가끔 이렇게도  다잽이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기좌상수상요요(起坐相隨常了了). 일어났다 앉았다 행주좌와 간에 항상 요요명명(了了明明)하도록, 의단이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도록, 성성적적(惺惺寂寂)하도록 의단만 잡드리해 나가면 지가 언제 터지던지 터지지,  터지는 법이 없습니다.

빨리 터지기를 기다릴수록에 무장  터지는 거고, 빨리 깨닫기를 바랄수록에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래서 닦음이 없이 닦아야 하고, 행함이 없이 행해야만 한다’ ‘호리지차(毫釐之差)에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다 부처님도 이런 말씀하시고, 조사 스님네도 말씀하셨는데, 화두를 들되 용을 쓰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흐리터분하니 앉아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해야 하고,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잡드리해 나가는데, 그래서 이것은 전강 조실 스님 법문을 항상 가정에서 틀어 놓고 공부를 하시면 공부해 나가는  묘한 관(觀)을 스스로 터득을 하게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간단하고 지극히 쉬운 것이고, 올바르게만  나가면  참선이라 하는 것은 안락지묘문(安樂之妙門)이라고 해서 가장 편안하고 즐거운 묘한 길이다’ 이것입니다.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인생으로 태어나서  많이 벌어나 봤자 자식들 재판하고 서로 차지할라고...  못쓰는 것입니다.  많이 벌려고, 자식들한테 많이 물려주려고 하실 것이 없습니다. 부귀영화 그게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만큼 살면 되는 것이고,  것은 이뭣고?’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한다면 무엇이 부러울 것이 있고,  세상에 원수도  없어지는 거고, 밉고 고운 사람도 없고, 모든 사람이  고마운 존재고 감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고마운 마음으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거고.

재산에 조금 여유가 있으면 나만 못한 사람한테 보시도 하면서 그렇게 복과 지혜를 항상 겸해서 닦아 나간다면 우리는   요대로 바로 도인(道人)이고 바로 부처님이 되는 것입니다.(5635~65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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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차주비대역비소~’ ; [전등록(傳燈錄)] (제30권) 단하화상(丹霞和尙)의 ‘완주음(翫珠吟)’ 참고.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자성(自性) ; ①사물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고인(古人) ; 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인허(隣虛) ; 인허진(隣虛塵). 허공(虛空)에 가깝다[隣]는 뜻. 신역(新譯)으로는 극미(極微). 색법(色法 : 물질적 존재)의 가장 작은 물질. 허공에 이웃한 색법의 근본.

*요요(了了 마칠·깨달을·분명할 ) ; 뚜렷하고 분명한 모양. 명확한 모양. 슬기로운 모양. 현명한 모양.

*명명(明明) ; 환히 드러난 모양. 분명한 모양.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견성(見性) : 성품(性品)을 본다[見]는 말인데 진리를 깨친다’는 뜻이다。자기의 심성을 사무쳐 알고, 모든 법의 실상인 당체(當體) 일치하는 정각(正覺) 이루어 부처가 되는 것을 견성 성불이라 한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 분류 화두(공안)’ 참고.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3,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3, 내쉬는 시간은 4~5,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을 하지 말고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지고 거기서 !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 생각하지 말고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다잽이 ; 다잡이.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무장 ; ‘더욱, 한사코 사투리.

*닦음이 없이 닦아야 하고, 행함이 없이 행해야만 한다’ ;

[참고]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제18장(第十八章)

佛言  吾法  念無念念  行無行行  言無言言  修無修修  會者近爾  迷者遠乎  言語道斷  非物所拘  差之毫釐  失之須臾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은 생각하되 생각함이 없이 생각하고, 행하되 행함이 없이 행하며, 말하되 말함이 없이 말하고, 닦되 닦음이 없이 닦나니, 이 이치를 아는 사람은 진리와 가깝지만 모르는 사람은 더욱 멀어지리라.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며 물질에 매이지 아니하니 털끝 만큼이라도 어긋나면 잠깐 사이에 잃어버리리라.

*호리지차(毫釐之差)에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다 ;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의 차이로 벌어진다

[참고] [신심명(信心銘)] - 삼조(三祖) 승찬대사(僧璨大師)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毫釐有差  天地懸隔  欲得現前  莫存順逆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네. 오직 간택함을 혐의(嫌疑)하니.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없으면 툭 트이어 명백하리라.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의 차이로 벌어지니 () 현전하기를 바라거든 따름[] 거슬림[] 두지 말라.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빽빽하게  잇따라 있는.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700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있습니다.

*묘한 () ; 묘관(妙觀). () 의심(疑心)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 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 따라 수행하는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의 목적)2016. 5. 17. 09:47

참선법(參禪法) (No.666)—사람 몸 받아야 도 닦기에 가장 좋다 | 사바세계의 오욕(五欲)은 꿈 | 오직 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찾아서 스스로 깨달으라.

 

*참선법(參禪法)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법.

 

(11분 17초)

 

[법문] 송담스님(No.666)—02(임오년) 부처님오신날 법어 (용666)

 

오늘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이렇게 도량 법당 안과 법당 밖에 수만 개의 등불을 찬란하게 켜서 부처님의 탄신을 이렇게 축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당 안과 밖에 많은 사부대중(四部大衆) 운집(雲集) 해서 법요식을 갖고 있습니다.

 

마땅히 그래야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부처님의 탄생을 찬양을 하고 그래야 하겠는데,

우리는 오늘을 기해서 정말 특별한 마음을 내서 과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자기를 반성하고 참회하고 그리고 정말 신심(信心) 돈독히 하고 분심(憤心) 내서 불법(佛法) 닦아가는데, 팔만대장경에 있는 수행하는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갖은 방법으로 설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산승은 용화사의 전강 조실 스님의 법을 믿고 닦아가는 사람으로서 가장 조실 스님께서 팔십 평생을 한결같이 설하시고 찬양하신 (), 그리고 산승도 역시 법을 믿기 때문에 간략히 말씀하겠습니다

 

약국에 수백 가지, 수천 가지 약들이 있지만 자기에게 맞는 그리고 가장 자기의 병을 낫을 있는 약은 많은 약을 먹음으로써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자기 체질에 맞고 자기가 믿어지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서 병에 맞춰서 약을 먹어야 효과를 보는 것처럼,

산승이 믿는 조실 스님께서 평생에 선양하신 법을 오늘 말씀을 드리는데, 여러분들은 이미 법에 의해서 열심히 공부하신 분도 있고, 수행을 가지고 상당한 지경에까지 이르신 그런 구참(久參) 수행자도 있을 것입니다마는 부처님과 같이 그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기 전에는 득소위족(得少爲足) 해서는 아니 것입니다.

자기 나름대로 어떤 지경에 이르렀다 해도 그것이 구경(究竟) 깨달음이 아니면 우리는 그것에, 자기의 이르른 경지에 만족을 해서 아니 되는 것입니다. 득소위족을 하면은 공부는 이상 나아갈 수가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참나 찾는 , ‘참나라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이냐?

우리가하면은 자기의 성명(姓名) 것입니다. 성명은 임시로 붙여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고 이름은 몇십 가지를 가질 수도 있고 몇천 개의 이름도 가질 수가 있을 것입니다마는 이름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 주인공눈으로 볼래야 없고, 손으로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우리의 생각으로 아무리 알려고 해도 수가 없는 그러한 주인공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고 있습니다.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져서 시절인연(時節因緣) 돌아오면 몸을 버리고 다른 몸을 받게 것입니다. 그러나 몸이사람의 몸을 받아야 도를 닦기에 가장 좋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당이 좋아도 한량없는 고통을 받지 않고 즐거운 () 받는다고 해도 그것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아니고, 받을 만큼 복이 다하면 다시 떨어져서 인간 세계에 떨어지거나, 축생·아귀·지옥에 떨어지는 것이어서 천당에 가는 것도 우리의 구경의 목적지가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비록 살아가는데 생로병사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 세상에 태어나야 고통도 있고 낙도 있고 해서 거기서 무상(無常) 깨닫고 도를 이룰 수가 있기 때문에 과거에 모든 성현들이 인간 세상에 태어나서 생사해탈을 하고 나아가서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젊은 사람도 있고 나이가 많은 분도 있습니다마는 크고 작고 간에 병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고 결국은 설사 건강하다 하더라도 그래서 오래 산다 하더라도 백년을 넘기가 어렵습니다.

부자 빈부귀천, 재색식명수(財色食名睡) 오욕(五欲) 마음껏 누리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잠시 꿈에 봉황새를 타고 옥황상제가 있는 천국에 올라간 거와 같아서 깨고 나면은 아주 평범한 다시 본래 자기 살던 곳으로 눈을 떠보면 자리에 있게 것입니다.

 

그래서 꿈에 천상에 가면 무엇 하며, 꿈에 금은보화를 산더미처럼 소유하면 그것이 어디에다 것입니까?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많은 재산, 많은 명예와 권리와 지위 부귀를 누린다 하더라도 꿈에 부귀를 얻은 것이나 조금도 차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 그것은 믿을 것이 못되고 언젠가는 자기 몸으로부터서 재산도 떠나고 명예와 권리도 떠나게 되고, 자기 생전에 그런 것이 망하고 결국은 감옥에도 가고 사형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그것이 바로 사바세계의 오욕(五欲)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출가하셔서 그래서 도를 닦아서 성불(成佛) 하시게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실은 진묵겁(塵墨劫) 전에 성불을 마치신 그러한 성현이지마는 우리 중생들에게 인생이 무상하다고 것을 몸소 보여주시고 도를 닦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위해서 사바세계에 오신 그러한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정말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서 경전을 통해서 알고 철저하게 무상을 깨닫고서 우리는 생각 생각, 걸음 걸음,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통해서 선지식(善知識) 지시에 따라서 역대조사(歷代祖師) 법문에 의해서 이만큼 건강할 철저히 정진을 해서 목숨이 다하기 전에 생사해탈의 단계에 이르러야 것입니다.

 

()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어서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거나, 머리를 깎지 아니하고 세속에서 살거나, 배고프면 먹을 알고, 몸이 아프면 끙끙 앓을 알고, 부르면 대답할 알고, 발로 걸어 다니고 앉었다 섰다 있을 만큼 이만큼 건강하면,

바로이뭣고?’ 통해서 항상 자기를 찾고 바른 방법으로 열심히만 찾으면 누구라도 깨달음을 얻을 있다고 부처님을 비롯한 역대 선지식들이 설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빈부귀천을 따질 것도 없고, 머리가 좋고 나쁜 것도 따지지 말고 항상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가?’

 

팔만대장경에 화엄경을 비롯해서 많은 경전이 있지만 경전의 뜻을 정말 옳게 이해하고 보면자기의 마음을 자기가 찾아서 스스로 깨달으라 밖에는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모두가 근기가 약한 사람을 위해서 방편(方便)으로 설하셨지만 그런 법문도 옳게 알고 보면 결국은 자기를 깨달으란 말로 귀결(歸結) 되는 것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을 기해서 언제나 법상에 올라올 때마다 한결같이 그런 말씀을 여러분께 드렸습니다마는 오늘도 말로써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1651~289)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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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대중(四部大衆) ; 불문(佛門) 있는 가지 제자. 비구(比丘), 비구니(比丘尼),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참고] 우바새—upasa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남자.(같은 =靑信士,靑信男,信男,信士,居士,近事男,近善男,善宿男) 원래의 말뜻은 모시는 사람. 받들어 모시는 사람. 출가수행자를 모시고, 신세를 지므로 이렇게 말한다. 우바이—upasika 음역. 속세에 있으면서 불교를 믿는 여자. (같은 =靑信女,近事女,近善女,近宿女)

*운집(雲集 구름 /모일 ) ; 구름()처럼 모인다() 뜻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듦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구참(久參) ; 오랫동안 참선한 수행승.

*득소위족(得少爲足) ;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을 삼는다.

*구경(究竟 궁구할 /마칠·다할 ) ; 어떤 과정의 마지막이나 막다른 고비. 위에 없음. 최고의 경지. 궁극에 도달함.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 영령(靈靈) 함께 밝은 .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 의미하는 .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 없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모두 사바세계이다.

*성불(成佛 이룰 /부처 )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 얻음.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

*진묵겁(塵墨劫) ; 티끌[] 쌓여 [] 만큼의 오랜 시간[].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 받아 계승해 대대의 조사(祖師).

*이뭣고(是甚 시심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왔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편할 ) ; ①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상황에 따른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②교묘한 수단과 방법.

*귀결(歸結) ; 의논이나 행동 따위가 어떤 결론이나 결과에 도달함. 또는 도달한 결론이나 결과.

 

Posted by 닥공닥정
ㅊ/참선(의 목적)2016. 3. 6. 21:40

참선(參禪) (No.577)—일 따로 있고 정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이 바로 정진이고 정진이 바로 일이다 그말이여. 일과 정진이 둘이 아니어.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7분 50초)

 

[법문] 송담스님(No.577)—96 11 첫째일요법회(96.11.03)(용577)

 

어떤 스님이 중국을 갔는데, 항구에 내리니까 연세가 많은 스님이 항구에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다닌다 그말이여. 처음으로 중국을 갔으니까 스님을 만났으니 반가웠겄다.

어느 절에서 오셨습니까?”

아무데 , 아무데서 왔다

참선을 하시고 이리 항구에 가지고 이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습니까?”

 

이분이 참선(參禪) 대해서 아직 무엇인지를 모르시는구나

나는 선방에 들어와서 정진한지가 벌써 수십 년인데 지금 전좌(典座)” 전좌라고 하면 별좌(別座) 채공(菜供), 그러한 소임이 바로 전좌라고 하는 소임에 해당 되는데, 그러한 별좌나 원주(院主), “그러한 소임을 맡았기 때문에 항구에 오면 대중공양(大衆供養) 만한 것이 있을까, 그래서 그것을 구하러 왔다

 

그런데 말을 들어보니까, 스님은 그러한 전좌라고 하는 소임을 맡아 가지고 대중을 외호(外護) 하고, 외호하면서 참선하는 것이 아니라, 외호하면서 속에 바로 그것이 정진이다 그거거든.

따로 있고 정진 따로 있는 아니라, 일이 바로 정진이고 정진이 바로 일이다 그말이여. 일과 정진이 둘이 아니어. 속에서 바로 일도 열심히 하면서 자체가 정진이다 그말이여.

 

벌써 입승(立繩), 선덕(禪德) 지내 가지고 조실(祖室) 추대를 받을만한 그러한 법랍(法臘) 경륜을 가진 스님이 그런 전좌의 소임을 자원해서 맡아 가지고 그렇게 정진을 한다 그말이여.

그래서 스님은 전좌 스님 안내로 절을 가지고 3년간을 여법히 정진을 가지고, 확철대오를 가지고 인가(印可) 받아 가지고 왔다. 스님이 누구냐 하면은 일본의 조동종 개산조(開山祖) 도원 선사(道元禪師)라고 하는 선사인데, 그래서 일본에 조동종 초조(初祖) 되어서 오늘날 일본에 조동종이 굉장히 번창을 그러한 종파를 개산을 했다 그말이여.

 

우리나라에도 도원 선사 못지않을 만큼 훌륭한 선사들이 많이 계시지만,

참선이라 하는 것은 선방에 앉아서 시간 맞춰서 죽비() 치고물론 선방에 방부를 들이고, 결제 중에는 시간을 맞추고 여법하게 지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나 입선·방선, 입선(入禪) 중에는 여법하게 하고, 방선(放禪)하면 그냥 화두도 버리고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고 그렇게 지내서는 아니 되는 것이고.

 

결제(結制) 중에는 여법하게 지내다가 해제(解制) 되면 팔도강산 경치 좋고 좋은 데를 다니면서 구경이나 하고 그럭저럭 지내고, 이렇게 가지고서는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오십육억 칠천만 뒤에 미륵불(彌勒佛) 염부제(閻浮提) 하생(下生) 때까지 참선해도 깨달을 기약은 없다고 고인(古人)네들은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참선(參禪) 대한 개념이물론 아까 조실 스님의 법문 가운데에도앉아서 하는 것이 힘을 얻기가 쉽다 하는 구절에 대해서도 말씀이 있었지마는,

당연히 참선은 좌선(坐禪)만이 참선은 아니나, 가급적이면 단정히 앉아서 가부좌(跏趺坐) 반가부좌(半跏趺坐) 하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그래가지고 단전호흡을 하면서이뭣고?’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면서이뭣고?’ 초보자는 마땅히 그렇게 길을 들여가야 하는 것은 사실이나, 어찌 좌선만이 참선이겠느냐 이거거든.

 

먹을 , 입을 , 변소에 , 세수하고 양치질 , 목욕할 , 일체처 일체시 항상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 거각(擧却) 해서, 면면밀밀(綿綿密密), 밀밀면면(密密綿綿), 간단(間斷)없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잡드리를 해가야 것이다.

 

그래서 고인은 그럭저럭 지내지 말고, 몸과 목숨을 바쳐서 오직 한길로 전일(專一)하게 나아가도록 그렇게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너나 없이 잘해 봤자, ()하니 점수를 매겨 봤자 중근기(中根機), 짜게 매기면 전부가 하근기(下根機) 것입니다.

하근기이기 때문에 특별한 장소가 필요하고, 특별한 시간을 짜야 하고, 특별한 규칙을 세워서 범위 내에서 오직 전일하게 가지만 밀고 나가자 이거거든.(2836~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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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선덕(禪德) ; 참선한 기간이 길고, 지혜와 덕을 갖춘 훌륭한 선승(禪僧) 대한 존칭.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법랍(法臘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스님의 나이·승납 ) ; 법세(法歲), 계랍(戒臘), 하랍(夏臘)이라고도 한다.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 받아 비구, 비구니가 되고 부터의 햇수를 말한다.

*인가(印可 도장 ,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개산조(開山祖) ; 절이나 종파를 처음으로 개산(開山) 시조(始祖).

*개산(開山) ; ①사원을 세우는 . 산속에 세웠기 때문에 이렇게 쓴다. ②일사(一寺) 스님. 사원의 초대 주지(住持). ③일종(一宗) 고승.

*초조(初祖) ; () 처음 세운 스님.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해제(解制 /만들법도 ) ; (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미륵불(彌勒佛) : []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呾麗耶), 매달례야(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불의 5().

*염부제(閻浮提) ; 염부(閻浮). 남염부제(南閻浮提). 섬부주(贍部洲). 남섬부주(南贍部洲).

산스크리트어 jambu-dvīpa 음사. 염부(閻浮), 섬부(贍部) jambu 음역어이며, () () dvipa 각각 음역어 의역어이다. jambu 나무 이름.

불교의 우주관에 의하면 세계의 중심에 높이 솟은 거대한 수미산(須彌山) 사방에 대륙(四洲) 있는데, 염부라는 이름은 여기에 자란다는 점부(jambu) 유래하며, 남방에 있기 때문에 남섬부주(南贍部洲)라고 한다.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하며, 여러 부처님이 나타나는 곳은 사주(四洲) 가운데 이곳뿐이라 . 불전에서는 인간세계의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사용되고 있다.

*고인(古人) ; 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이구동성(異口同聲 다를 / /같을 /소리 ) ; ‘입은 다르나 목소리는 같다 뜻으로, 여러 사람의 하는 말이 한결같고 일치함을 이르는 .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이뭣고(是甚) ; 「이뭣고」 화두는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면면밀밀(綿綿密密) ; 면면(綿綿)하고 밀밀(密密)하게. 끊어지지 않고 아주 빽빽하게 잇따라 있는. 밀밀면면(密密綿綿).

*간단(間斷 ·사이 /끊을 ) ; 계속되던 것이 잠시 그치거나 끊어짐.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후하다(--) ; (마음이나 태도가)인색하지 않고 넉넉하다.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전일(專一 오로지 / ) ; ①마음과 힘을 모아 오직 곳에만 쓰다. (사람이나 사물이)한결같고 변화가 없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