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정법(시대)2021. 1. 30. 10:13

정법((No.054))—정법(正法)과 사법(邪法) | 정법 만나기 어렵다 | 팔만사천 법문, 다 정법으로 들어가기 위한 좋은 방편. 방편이 아니면 정법, 실법(實法)에 들어가기 어렵다 | 선(善)방편과 악(惡)방편 | 정법을 실천 수행하여 영원한 행복을 누려야.

활구참선이 정법(正法), 사구참선은 사법(邪法). 사구참선은 깨달을 기약이 없다 | 착상구불(着相求佛), 무엇을 바라고 구하는 상(相)에 착(着)한 수행은 방편에 얽매인 것 | 無爲心內起悲心. 應無所住而生其心.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1) 19분 59초. (2) 17분 51초.

[법문] 송담스님(No.054)—1977년 9월 관음재일(77.09.24) (용054)


(1)------------------


오늘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은 정법(正法), 여러분들이 잘 들으신 바와 같이 어떠한 것이 정법이냐?

언필칭 말하기를 '부처님은 한 부처님이다. 어느 절에 간들 다 부처님을 모셨으니 부처님은 한 부처님인데' 이런 말씀들을 많이 듣게 됩니다.

부처님은 한 부처님이지마는, 그 부처님의 법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 따라서—한 부처님의 법이 어떻게 믿고, 어떻게 행하느냐에 따라서 한 법이 정법(正法)이 되기도 하고, 삿된 외도법(外道法)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은지 10년, 20년, 30년 내지 일생을 믿어도 스승을 잘 못 만나고, 믿기를 잘못 믿고, 행하기를 잘못 행하면 일생을 믿은 불법(佛法)이 정법을 믿지 못하고 사법(邪法)이 되고 마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정말 일생을 그렇게 돈독하게 불법을 믿고, 그렇게 간절히 불법을 믿었지마는 스승을 잘못 만나, 잘못 행하므로 해서 일생을 삿된 불법을 믿고 마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 불교를 믿고 불법에 의지해서 공부를 하는, 신앙을 하는 우리 불제자(佛弟子)들은 어떠한 것이 정법(正法)이고, 어떠한 것이 사법(邪法)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똑바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른다고 하면은 그 많은 시간을 그 많은 정성을 바쳐서 '부처님 신도다, 불교의 신도다' 하면서 일생을 헛되게 보내고. 삿된—'불법을 믿는다'고, 이름은 불법이지마는 실지 내용에 있어서는 삿된 외도법을 믿고 행하므로 해서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영혼이 과연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생각해 보면 한심스럽고 가련하기 이루 다 형언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금년 여름에 우리 절에 구십이 넘은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여름 한 철을 참선을 하셨습니다. 그 할머니는 수십 년 동안을 그 부처님을 믿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그 불교 신자 노릇을 했습니다.


허나 '참선(參禪)이 좋다, 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을 하면 그렇게 좋다' 이런 말씀을 어디서 듣고, 참선을 한 데를 한번 가서 같이 앉아서 참선을 해 보니까 아무 재미도 없고 졸음만 와 쌓어 그래서 '아! 이것 참선이라는 게 졸음이 와서 아무 맛이 없고, 그 할 것이 아니로구나. 참선이라는 게 천하 못쓸 것이로구나' 이리 생각하고서 다시는 참선을 할 생각을 아니하고, 그저 염불하고 경을 외우고, 천수경을 읽고, 절에 가서 부처님께 절을 많이 하고, 돈과 쌀을 가지고 가서 불공을 드리고 이렇게만 일생을 사시다가,

어떻게 해서 그 다시 '참선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이다. 참선을 잘 가르켜 주신 스님이 있다' 이러한 말씀을 듣고서 이 용화사에 와서 한 번 '구십이 넘었지마는 한 철을, 한 철만이라도 그 참선을 한번 해 보고 죽는 것이 한이 없겠다' 이렇게 해서 신청을 해 왔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의 그 처지와 그 말씀이 하도 참 고맙고, 기특하고 또 한편 우습고 그래서 "그 참 좋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구십 노인이 어떻게 이 대중선방(大衆禪房)에 와 가지고 석 달 동안을 새벽 세 시에서부터서 사분정진(四分精進)을 하실 수가 있겠는가? 그것이 염려가 됩니다마는 그 마음만큼은 참 그렇게 고맙고 기특할 수가 없습니다. 건강은 좋으시다니까 한 번 해 보십시오. 다른 할머니들도 모다 하시니까 한 번 해 보십시오" 그래서 방부(房付)를 받아 가지고 한 철을 나셨습니다.


절에 다니셨다 해도 대처승 절에 그 불공이나 드리러 다니셨기 때문에 전연 선방에 규칙이나, 선방 생활에 대해서 전혀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신 할머니였습니다. 그러나 천성이 착하고, 어질고, 점잖하고 그리고서 너무나도 천진난만하신 할머니였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선방에 처음 나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무리가 없이 여러 수십 명 대중 보살님네들이 친어머니 받들듯이 그렇게 모다 친절한 마음으로 돌봐주시고 해서 한 철을 아무 무리가 없이 한 철을 지내시고서 참 기쁜 마음으로 환희심으로 해제(解制)를 마치시고 댁으로 돌아가셨는데, 그 할머니가 한 일주일 전에 이 세상을 뜨셨습니다.


아무 병환도 없이 앉아서 떠억 참선을 하시다가 고대로 허리를 구부린 채 임종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평생에 신심이 돈독하고, 마음씨가 착하고 그러셨기 때문에 이렇게 열반(涅槃)을, 정말 보통 말하기를, 병 없이 이렇게 앉아서 잠자듯이 그렇게 조용하게 임종을 하신 것을 '조사(祖師) 열반이다' 이렇게 말들을 합니다마는,

어찌 조사라고 해서 꼭 병환이 없이 돌아가시란 법도 없는 것이고, 또 조사가 아닌 일반 세속 사람도 돌아가실 때 참 병환 없이 아주 임종을 잘하신 분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어서 돌아가실 때 꼭 병환이 있고 없는 것 가지고, 그분이 도(道)가 있고 없는 것을 가름할 수는 없는 것이지마는, 그렇지마는 기왕이면은 임종할 때에 그렇게 무서운 견디기 어려운 병환을 겪지 아니하고 편안하게 숨을 거둔다고 하는 것은 인생 일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그 할머니께서 일생을 착하고 정직하고, 남 적악(積惡)한 일 없이 어떻게 믿었던지 간에 부처님을 돈독히 믿으셨고, 마지막 판에 가서 이 용화사 선방에 와 가지고 한 철을—화두를 새로 타고, 앉는 법을 새로 배우고, 발우(鉢盂) 펴는 법을 새로 배우고 이렇게 해서 한 철을 잘 지내신 그 공덕으로 해서 이 할머니는 결정코 내생에 다시 인도환생(人道還生)해 가지고 다시 정법문중(正法門中)에 귀의하셔서 대도(大道)를 성취하셔 가지고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그렇게 믿고 의심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과연 정법이라고 하는 것이 지극히 가까운 데 있으면서도 정법에 귀의(歸依)한다고 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구십 평생을 불법을 믿고 사셨지마는 일생 동안을 그 무당과 비슷한 대처승 절에 다니시면서 불공이나 드리고 복이나 빌고, 그렇게 일생을 지내시다가 구십 평생의 마지막 해에 가서 참선법을 믿고 몸소 선방에서 참선을 하시다가 끝을 마치신, 그렇게 정법 만나기는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정법(正法)을 만나기가 어려우냐?


정법은 너무나도 위대하고 너무나도 위대하기 때문에 지극히 평범한 탓으로 해서 일반 범부(凡夫) 중생에게는 그렇게 귀에 달게 받아들여지지 아니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중생, 범부 중생들은 우선 얻어지는 것이 있어야 하고,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 무엇인가 자기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만한 것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빌고 중생으로서에 오욕락(五欲樂)을 충족시킬 만한 그러한 것들이 성취가 되고, 눈으로 귀로 그리고 손을 통해서 무엇인가 얻어져야만 마음이 흡족하고 거기에 정신이 쏠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법문중에 귀의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다. 특별한 과거에 숙연(宿緣)이 있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여간해서 정법에 대한 법문을 들려주고 일러주어도 좀해 그것이 좋다고 하는 생각까지는 있으면서도 적극적으로 의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방편설(方便說) · 외도(外道) · 사법(邪法)에는 그 귀가 솔깃하고 그래 가지고 거기에는 물심양면으로 거기서 시키는 대로 아주 죽은 형용까지도 하면서 미쳐서 혹(惑)해 반해 가지고 어쩔 줄을 모르면서 정법문중에 들어와서는 한 번 두 번 들어보다가 별로 재미가 없으니까는 안 와 버리거나 그러한 사람들이 참 많은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 정법과 사법을 가릴 수가 있느냐?


정법은 본(本), 근본적인 본원적인 것입니다. 사법은 저 끝, 가지와 같은 것이여. 나무에다 비교하면은 나무의 뿌럭지와 같은 것이고 사법은 저 가지 끄터리, 조그만한 가는 가지 끄터리 이파리 그런 것에다 비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뭇가지에 핀 이파리는 변화가 눈에 보여서 가지에 잎이 피고, 잎이 피고 난 다음에는 꽃이 피어서 사람의 눈에 띄기가 좋고, 정법은 저 뿌리와 같은 것이어서 땅속에 묻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사람의 눈에 띄질 않습니다.


사람은 나무를 볼 때에 파랗게 잎이 피고, 빨갛고 누렇게 꽃이 핀 그리에만 눈을 주기가 쉽고, 땅속에 묻혀 있는 나무에 뿌리에 대해서는 전연 관심을 갖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 몸뚱이나, 가지나, 잎이나, 꽃이나, 열매가 전부 그 뿌리로부터 나왔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뿌리가 없는 데에는 도저히 가지가 뻗을 수가 없고, 잎도 필 수가 없고, 꽃도, 열매도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정법(正法)이라고 하는 것은 실(實)다운 것입니다. 실다운 것이어서 믿고, 믿어 들어갈수록에 점점 평범하고 위대해서 일생을 믿고 세세생생(世世生生)에 의지한다 하더라도 거기에서는 실망을 하거나 허망한 데에 빠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법(邪法)은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무엇인가 얻어지는 것이 있고, 솔깃하고 재미가 있지마는 1년 이태 3년 10년 믿어감에 따라서 점점 거기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허망한 함정이 나를 기달코 있는 것입니다.

사법에 의지한 사람은 처음에는 무엇인가 얻어진 것 같고, 재미가 있고 곧 크게 소원을 성취할 것 같지마는 해가 감에 따라서 그 사람은 허망한 삿된 그러한 구렁텅이에 빠져 가지고 그때 가서 후회해 봤자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사법에 빠진 사람은 곧, 당장 무슨 큰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자기도 혹해서 빠져 가지고 어쩔 줄을 모르고, 거기에서 그친 게 아니라 이웃 · 친구 · 일가친척을 전부 끌어들여 가지고, 거기 장에 사람이 모이듯 사람을 끌고 들어가서 미쳐서 어쩔 줄 모르지마는 머지아니해서 거기에는 실망과 낙망과 후회의 눈물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정법문중, 불법문중에 있어서 선방편(善方便)과 그러한 외도에 사법(邪法)과를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비슷한 점을 우리는 발견합니다.


불교 안에는 팔만사천 가지 법문(法門)이 있어서 그 팔만사천 가지의 법문이 모두가 다 이 정법으로 들어가게 하기 위한 좋은 방편들인 것입니다. 그러한 방편이 아니면은 도저히 정법, 실법(實法)에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처음부터서 전연 방편을 가자(假藉)하지 아니하고 대뜸 첫걸음부터서 정법문중에 귀의한 사람도 가끔 있기는 하지마는, 그러한 사람은 극소수, 만 명 가운데에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있을 정도고, 대부분은 방편문에 의지해서 걸려들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 1년 이태 3년 4년 절에 다니고 법문을 듣고 하다가 차츰차츰 어떠한 인연에 의해서 정법을 믿고 정법에 들어오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방편이라고 해서 덮어놓고 다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방편에 의지해서 일단 불법문중에 들어왔다가 그래 가지고 차츰 좋은 도반(道伴), 좋은 스승을 의지해서 정법으로까지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처음부터서 49년 동안을 꼭! 이 정법만을 설하신 것이 아니라, 많은 법문이 방편설이 참 많은 것입니다. 방편이 아니면은 중생을 거둬들이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전부가 방편에 의해서 전부 불법에 귀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방편 가운데에도 악방편(惡方便)과 선방편(善方便)이 있습니다.

선방편(善方便)은 일시적으로 의지했다가 바로 그 방편을 발판으로 해서 정법에까지 들어오게 하는 방편은 이것은 선방편이 되는 것이고.

사람을 방편으로 들어오게 해 가지고, 방편으로 긁어 들여 가지고 영원히 그 방편을 벗어나게 하지를 못하고 방편에 딱! 걸려 가지고 오금을 피지 못하고, 그 방편을 발판으로 해서 정법에까지 뛰지를 못하고서 그 방편에 딱! 얽매여 가지고 일생 동안을 그 방편에 걸려서 벗어나지 못하는 그러한 방편은 그것은 악방편(惡方便)이 되는 것입니다.(49초~20분46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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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편 자체가 악(惡)하고 선(善)하다고 하기보다는 그 방편을 쓰는 법사, 스승, 선배에 첫째 문제가 있고, 둘째에 가서는 그 방편에 걸려든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천성이 삿되고 바르지를 못해 가지고 그러한 악방편만 솔깃하게 생겨 가지고 혹해서 미쳐서 빠져 가지고 어쩔 줄을 모르는 그러한 천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

또 방편을 쓰는 편에서 그 법사나, 승려나, 선배가 일시적으로 그러한 방편을 사용하되, 적당한 기회에 그 방편으로부터서 정법으로 올라가도록 밀어주고 이끌어주지를 못하고, 계속 어떠한 이권에 욕심을 가지고 그 방편을 계속 사용해 가지고 신도를 꼼짝 못하게 방편으로 얽어매 두는 그러한 스승을 만나 가지고 일생을 정법을 만나지 못한 채 그런 방편법, 악방편에 얽매여 가지고 불교 신도 노릇을 하다가 마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그동안에 어떻게 불법을 믿었던지 간에 또는 과거에 어떠한 숙연이 있던지 간에 오늘날 우리는 이 법보선원에서 전강 조실 스님의 정법에 관한 법문을 설하신 것을 녹음을 통해서 듣고, 그 설법에 의지해서 참선 수행을 할 수 있게 된 우리의 그 인연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다행할 길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법문을 듣고서 그리고서 실천에 옮기지 아니한다고 하면은 좋은, 아주 좋은 약을 만병통치(萬病通治)할 수 있을 만큼 그러한 좋은 약을 만나 가지고서도 그 약을 먹지 아니하고 팽가친 채 병고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정법을 들었을진대는 반드시 그것을 실천에 옮겨서 열심히 시간을 아끼고 무상(無常)을 철저히 느껴서 당장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서 일초일초, 일분일분을 철저히 실천 수행하므로 해서 우리의 무량겁으로부터서 걸려 가지고 신음해 오던 그 중생의 고질병을 금생에 뿌럭지를 뽑아서 근치(根治)를 해 가지고 영원한 행복을 누려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선이라고 해서 다 정법이 아닙니다. 일체의 방편, 부처님의 설법 가운데 참선법이 제일이지마는 그 참선도 정법과 사법이 있습니다. 정법은 활구참선(活句參禪)이 이것이 정법(正法)이고, 사구참선(死句參禪)은 이것은 사법(邪法)인 것입니다.


어떠한 것이 활구(活句)며, 어떠한 것이 사구(死句)냐?


'살 활(活)' 자, 활구참선. '죽을 사(死)' 자, 죽은 사구참선, 활구참선은—이론과 어떠한 이로(理路), 어로(語路), 이론적으로 교리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이리저리 따져 보고 비교해 보고 그러한 참선은 이것은 아무리 밤잠을 안 자고 한다 해도 그러한 참선은 활구참선이 아니고 사구참선입니다.

사구참선은 죽을 때까지 무량겁을 해도, 56억 7천만 년 뒤에 미륵불이 출세하실 때까지 앉아서 용맹정진을 한다 해도 그것은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입니다. 단 일 분을 하고, 단 한 시간을 하더라도 참선을 할 바에는 활구참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따지지 말고, 자기가 아무리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 『능엄경』 모든 경전을 종횡으로 육두 백판으로 외우고 교리적으로 환히 안다 해도 이 참선하는 데 있어서 그 알고 있는 교리적인 지식, 상식 그러한 것을 이 참선에다가 끌어들여 가지고 이용을 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러한 것을 동원해 가지고 이 화두를 이리저리 분석해 보고 따져 보고, 비교해 보고, 그래가지고 '아하! 그렇구나. 바로 이러한 뜻이로구나!' 이렇게 알아 들어가는 참선이 아니라, 그러한 교리 이론 따지는 그것을 놔 버리고 다못 알 수 없는 생각, 꽉 맥힌 생각으로 선지식(善知識)으로부터 지정 받은 화두 '이뭣고?'

'이뭣고?'면 '이뭣고?' 또는 '무자(無字)' 화두를 하는 분은 '무자' 화두, 또는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을 화두로 타신 분은 그 화두, '판치생모(板齒生毛)'를 하신 분은 '판치생모' 무슨 화두가 되었건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 가운데에 한 가지를 선지식으로부터 받아 가지고 그 화두 하나만을 다못 알 수 없는 생각으로 '이뭣고?'


비단 앉었을 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서 걸어 다닐 때, 밥 먹을 때, 똥 눌 때, 소지할 때, 빨래할 때, 또는 차를 탈 때, 어데서 언제 무엇을 하고 있건 간에 일어나는 어떠한 생각, 어떠한 생각이 일어나건—슬픈 생각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기쁜 생각이 일어날 때도 '이뭣고?' 불같은 울화가 치밀어 올라 올 때도 퍼뜩 돌이켜서 '이뭣고?'

눈으로 어떤 꽃을 보거나, 나무를 보거나 또는 사람이 지나간 것을 보거나, 산을 보거나, 구름을 보거나,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보거나 또는 귀를 통해서 새가 우는 소리를 듣거나, 차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거나, 어린아이가 고함을 지르고 우는 소리를 듣거나, 어떠한 것을 보건 듣던 간에 그때 그때마다 퍼뜩 생각을 돌이켜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공부를 하지 아니한 사람은, 이 참선 수행을 하지 아니한 사람은 눈으로 무엇을 보면은 당장 그 보는 데에 따라갑니다. 그래가지고 공연히 이 생각, 저 생각. 귀로 뭣을 들으면은 그 듣는 일로 해서 바로 나는 '이뭣고?'로 돌아와야 할 텐데 그러지를 못하고, 듣는 그 건으로 해서 이 생각, 저 생각, 10년 전으로 올라갔다가, 5년 전으로 내려왔다가 그러다가 공연히 속이 활딱 뒤집어졌다가, 혼자 웃었다가, 썽났다가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그러한 식으로 망상(妄想) 위에다가 또 망상의 가지를 피우고 그 망상 위에 또 망상의 꽃을 피우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그 이 생각 저 생각하고, 그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골냈다가 웃었다가 그러다가 그 지나간 일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한 생각 한 생각했던 그것이 하나도 딴 데로 없어지지 아니하고 고대로 차곡차곡 우리의 마음자리, 제팔식(第八識) 속에 고대로 녹음(錄音)이 되는 것입니다.


녹음이 되고, 그 저장이 되어가지고 그것이 종자(種子)가 되고 원인(原因)이 되어서 앞으로 무량겁 윤회가 그 종자로부터서 그 원인으로부터서 윤회(輪廻)가 계속이 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한 행동으로 표현이 되고, 한 행동으로 해서 다시 또 생각이 거기에 이어지고, 생각과 행동이 서로—새끼가 왼손에 쥐었던 짚이 오른손으로 건너가고, 오른손에 잡았던 짚이 왼손으로 건너가고 그래서 이렇게 그 손이 움직여짐에 따라서 새끼가 꽈지듯이,

한 생각이 행동으로, 행동에서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나고 그렇게 해서 무량겁 윤회의 원인이 되는 업(業)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부를 하지 아니한, 참선을 하지 아니한 범부 중생의 생활이 되는 것입니다.


정법에 의지해서 참선을 하는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눈을 통해서 무엇인가 봐야 하고, 귀를 통해서 무엇인가 듣기 마련이고, 보고 들음으로 해서 무엇인가 느낄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참선하는 사람은 그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찰나에 보고, 듣고, 느끼는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수행한 사람과 아니한 사람의 차이인 것입니다.


무엇인가 보던지, 무엇을 듣던지, 무엇을 생각하던지 간에 바로 둘째 생각, 셋째 생각으로 생각이 번져 나기 이전에 한 생각 일어나자마자 그것을 발판으로 해서 '이뭣고?' 이렇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로, 자아로 돌아오는, 나의 근본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이요,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이요, 부처님 나라로 돌아오는 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하루하루를 이렇게 살아가고 한 달, 한 달을 이렇게 살아가고 일 년, 일 년을 이렇게 단속해 나가면서 살아갈 때에 나에 몸안에 있는 자성불(自性佛)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불법이요, 정법인 것입니다.


이 법을 충실히 이 법을 본업(本業)으로 해서 열심히 살아간 사람에게는 계율을 지키는 일, 또는 염불을 하는 일 또는 주문(呪文)을 외우든, 또는 기도를 하건, 어떤 경전을 반야심경을 외우건 또는 천수를 하건, 그 밖에 부처님께 예경을 올리건, 또는 오후불식이나 일종을 하건, 또는 방생을 하건, 또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보시 공덕을 하건, 또는 노인이나 또는 일선 장병에 위문을 가건, 그 모든 것들이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좋은 조도(助道)가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 닦는 참선을 하지 아니하고 정법을 닦지 아니하고 계행(戒行)만을 위주해서 닦음으로써 일생 수행을 삼는다던지, 염불을 해 가지고 극락 가기만을 바래 가지고 일생을 염불만을 한다던지, 또는 어떤 주문을 외워 가지고 어떠한 목적을 달성을 하기 위해서, 주문에 의지해 가지고 날이면 날마다 전전긍긍을 한다던지, 기도를 해 가지고 아들딸 잘되고, 사업이 잘되고,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래고 그러한 물질적인 것, 모냥이 있는 것에 얽매어 가지고 계속 기도에 미쳐 가지고 돌아댕기는 그런 분.


절을 많이 하면은 업장이 소멸하고, 소원이 성취된다 해 가지고 삼천배, 사천배 절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삼는다던지, 하루에 오후불식(午後不食)을 하면은 세세생생에 부자로 살고, 업장이 소멸하고, 죽어서 극락에 간다니까 평생에 오후불식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삼는다던지, 일종(一種)을 하면 좋다니까 일종을 하는 것으로써 불법을 삼는다던지, 이렇게 해서 그러한 모냥이 있는 착상구불(着相求佛), 착상 수행, 상(相)에 착(着)해 가지고, 모냥에 착해 가지고 무엇을 바래고 구하는 그러한 불법을 믿는 사람, 이것은 모두가 다 방편에 얽매어 가지고 방편의 올개미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러한 불법인 것입니다.


그러한 방편에 얽매어 가지고 벗어나지 못한 불법(佛法)은 설사 그 사람이 삿된 고약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해도, 그것이 정법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사법(邪法)이 되는 것입니다. 방편에 얽매어 가지고 일생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아무리 그 사람이 마음이 선량하고, 정직하고, 점잖하고, 그 말할 수 없이 착하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사람은 사도(邪道)의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정법(正法)에 의지한 사람은 상(相)이 없는 가운데에 일체 선법(善法)을 닦을 수가 있는 것이고, 모든 선법이 그 사람에게는 다 선방편(善方便)이요, 정법의 조도(助道)가 되는 것입니다. 보조 수단이 되는 것이여.

그래서 똑같이 계율을 지키고, 똑같이 염불을 하고, 똑같이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보시 공덕을 쌓고 방생을 한다 하더라도 정법에 의지한 사람이 하는 것과 사법에 의지한 사람이 하는 것과는 결과적으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염불을 하지 말아라. 천수를 외우지 말아라. 『반야심경』을 외우지 말아라. 『금강경』을 독송하지 말아라. 방생을 하지 말아라. 또는 일선 장병에 위문을 하지 말아라. 또는 노인에 보시 공덕 하지 말아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일들을 형편 닿는 한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서 하시라는 겁니다.

하되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하면서 하는 그 마음으로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 함이 없는 마음 가운데에 자비심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고,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뻑뻑이 머무른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 이것이 바로 참선하는 마음으로 일체 보시, 선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하는 그 자체는 남이 보기에는 똑같이 보이지마는, 그렇게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다 같이 명심을 하셔야 합니다.(20분47초~38분3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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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ㅈ/정법(시대)2019. 7. 9. 22:33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5분)

 

[법문] 전강선사(No.249) - 고담화상법어 1 (72.06.02.새벽)[몽산법어 부록 05](전249)

 

고담화상(高潭和尙) 법어(法語)다. 고담선사(高潭禪師)라고 참 유명한 도사인데. 선사의 법어라.

 

약욕참선(若欲參禪)인댄, 참선을 허고저 헐진댄,

참선 밖에 없는디 허고저 혀? 참선 해야지! 꼭 해야지! 안 혀?

참선 안 할 바에는 무슨 중노릇해서 뭣 혀? 중노릇해야 그 뭣 할 거여?

 

이번에 미국 중도 왔다 갔지마는 그 미국.. 영국 중인가? 영국 사람인가? 영국 중이란가? 미국 중이란가? 그런 중이지마는 태국에 와서 중이 되었어.

 

중이 되어 가지고는 오후불식(午後不食) 허는 거, 그것 딱! 그놈 죽어도 오후불식 밖에 몰라. 때만 지나가면 안 먹어. 열두 시만 치면 안 먹어.

그러고는 계행(戒行) 지키는 거, 그저 살생 않고, 도둑질 않고, 모도 사음질 같은 거 않고, 딱! 독신으로.

 

그러지마는 고기는 또 먹는다 하든구만.

한국에 와서는 안 먹는대. 한국에는 고기를 안 먹으니까 또 한국에 와서는 안 먹는다 하드구만. 즈그 나라에 가면 먹는데. 산 놈을 잡아서 먹든 않지마는 죽여서 모도 이리저리 매육(賣肉)은 먹는 모냥이지?

 

그것이 불법(佛法)이라고. 그 그런 계행 지키고, 오후불식 허는 거, 그 이외에는 몰라. 나를 찾는 법, 생사해탈(生死解脫) 하는 법은 몰라.

거,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이 생사해탈법이건만, 어찌 똑 동토(東土)로만 건너오고는 그런 나라에는 그렇게도 안 갔는고. 그저 무슨 주문 외우는 것뿐이고. 그것 참.

 

그것이, 그 오후불식도 허며, 계행도 가지니 얼마나 일등인인가? 참, 사람으로써 훌륭한 사람이지마는.

그것만 가지고 아무리 닦아 봤던들 복진타락(福盡墮落), 그놈 그렇게 닦아서 그 복 받고 나서 마지막에는 타락(墮落)을 허니, 타락할 때 생각해 보면, 뭐 본래 안 닦고 안 받은 때나, 타락할 때 그때 다 받고 타락할 때나, 다를 게 뭐가 있나.

 

그러니 그 윤회를 면치 못허니, 닦아 가지고 받아 가지고는 나중에 타락하면은 도로 그만 지옥에서—와서 잘 닦아 가지고 낙(樂) 받다가 도로 또 복 다 받고 나면, 도로 지옥으로 풍 빠져 버리니 그거 뭐 마찬가지지. 뭐 좀 어느 때 좀 혹고혹영(或苦或榮)이지.

혹 영화스러울 때가 있다고 하지마는 그 고(苦)가 닥쳐오면은 마찬가지 아닌가. 윤회고(輪廻苦)라는 것이 그렇다 그말이여.

 

그러니 윤회를 면치 못허는 그것이 어디 참말로 우리 부처님의 정법(正法)인가?

꼭 윤회를 면하는 법이래야, 이 도는 물레바퀴처럼 돌아가는 그 윤회를 면하는 법이래야 참으로 법 아닌가.

척 한번 응, 참선을 해서 자아를 발견허는 것이 그것이 참 법(法)이고 도(道)지.(5분45초~10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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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낮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것.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복진타락(福盡墮落 복 복/다할 진/떨어질 타/떨어질 락) ; 지은 복[福]만큼 받아 써 다하면[盡] 다시 또 업에 따라서 떨어지게 된다[墮落].

중생은 착한 일 또는 죄짓는 일, 그 자기 업(業)에 따라서 천상에 가서 태어나기도 하고, 지옥에 가기도 하는데, 설사 착한 일을 해서 여러 천상 세계에 나가서 복을 받는다고 해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 버리면 다시 또 업에 따라서 다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을 향해서 힘이 센 사람이 활을 쏴봤자 한없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갈 만큼 올라갔다 기운이 떨어지면 다시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하는, 생사해탈 하는 참선법이 정법입니다.

*윤회고(輪廻苦)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받는 고통.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Posted by 닥공닥정
ㅈ/정법(시대)2018. 9. 2. 07:18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법(敎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말법시대는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다 반드시 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10분 44초)

 

[법문] 송담스님(No.792) - 2018년 하안거 해제.(용792)

 

인생여환우여몽(人生如幻又如夢)이요  낙일종시고일장(樂日終時苦日長)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약야심두무정혜(若也心頭無正慧)하면  사장하물답명왕(死將何物答冥王)고

나무~아미타불~

 

인생여환우여몽(人生如幻又如夢)이요  낙일종시고일장(樂日終時苦日長)이다.

인생은 환상과 같고 또 꿈과 같은 것이며, 즐거운 날이 끝나면 괴로운 날이 길도다.

 

만약 마음에 바른 지혜가 없으면,(若也心頭無正慧)

죽어서 무슨 물건으로 염라대왕 앞에 대답을 할 것인가.(死將何物答冥王)

 

이 게송은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읊으신 게송(偈頌)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빈부귀천과 생로병사 속에서 일생을 살다가 가는데, 냉정히 살펴보면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못하고 꿈과 같은 것이다 그말이지. 부자로 살거나 높은 벼슬을 하거나 권리를 행하거나 다 환상이요 꿈이다 그거거든.

즐거운 날이 있으면 잠시간이요, 금방 즐거움이 끝나면은 고통 오는 날이 돌아온다 그말이지.

 

만약에 마음에 바른 지혜가 없다면, 참선(參禪)을 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사장하물(死將何物)로 답명왕(答冥王)고, 죽어서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끌려가면 무엇을 가지고 대답을 할 것이냐.

 

이 게송은 정말 우리 말세(末世)에 태어났으나 다행히 불법을 믿고, 이 자리에 모이신 비구・비구니・청신사・청신녀 여러분은 이 법당에서 서산대사의 진리가 담긴 이 게송을 우리가 같이 듣게 됩니다.

 

세상은 비록 말세가 되어서 세계가 여기저기서 전쟁을 하고 조용할 날이 없지마는 우리는 다행히 불법을 믿고, 또 이 자리에 모여서 전강 조실 스님의 최상승 법문(法門)을 다 같이 듣고 또 산승(山僧)의 간절한 말씀을 여러분에게 하고, 여러분이 듣게 된 인연을 생각하면 말세라고 한탄할 것도 없고.

비록 말세라 하더라도 우리가 정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면 바로 말세가 바로 정법시대(正法時代)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7월 15일(음력), 하안거 해제날이고 백종날입니다.

온 세계가 서로 전쟁을 하고 헐고 뜯고 조용한 날이 없지마는 우리가 정법을 믿고 열심히 ‘이뭣고?’를 하면 말세라고 조끔도 한탄할 것도 없고, 온 세계가 전쟁을 하고 모다 그런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데에 관여할 것도 없고, 말세일수록 더욱 무상(無常)을 깨닫고 열심히 정법을 믿고 ‘이뭣고?’를 한다면 오히려 이 말세에 태어난 것이 대단히 다행하고 다행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천년 전에 태어났거나 삼천년 전에 부처님 때에 태어났거나 불법을 믿고 참나를 찾는 공부를 하면 삼천년 전이나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차등이 없을 것입니다.

어피차 인생이라 하는 것은 한번 태어나면 늙어서 병들어서 죽기 마련인데, 그 생로병사 속에 살면서 영원을 사는 길이 바로 나의 불성(佛性)을 찾는 ‘이뭣고?’인 것입니다.

 

‘이뭣고?’를 열심히 하면, 슬플 때도 ‘이뭣고?’ 기쁠 때도 ‘이뭣고?’ 뭔 일이 마음대로 되어도 ‘이뭣고?’ 마음대로 안 되어도 ‘이뭣고?’를 찾아서 나의 몸속에 있는 나의 부처님을 찾는 참선을 한다면 말세라고 해서 조금도 한탄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다 흥망성쇠의 이야기고 생로병사의 사건들이지마는 그럴수록에 항상 나의 자성불(自性佛)을 찾는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오히려 온 세상이 무상하고 흥망성쇠가 있을수록에 우리는 무상을 깨닫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말세라고 해서 무엇이 부족할 것이 있겠습니까?

 

삼천년 전에 부처님 계실 때 태어났어도 불법을 믿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고, 비록 말세에 태어났어도 정법을 믿고 ‘이뭣고?’를 열심히 한다면 말세가 한탄할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듣고 하는 것이 모두가 흥망성쇠의 사건들이지마는 그 흥망성쇠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이 나의 자성(自性)의 부처님을 찾는 길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자성 부처님을 찾는 것이, 이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길이요, 말세를 정법시대로 만드는 오직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처음~11분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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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인생여환우여몽(人生如幻又如夢)~' ; 『청허당집(淸虛堂集)』 (서산 휴정) '계쌍인소사(誡雙印小師, 쌍인소사에게 훈계함)'

*서산대사(西山大師) ; (1520~1604) 조선의 스님. 평남 안주 출신. 법명은 휴정(休靜). 호는 청허(淸虛).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머물러 서산(西山)이라고도 함.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안주 군수를 따라 한양에 가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함. 15세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고 동배(同輩) 여러 명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지내다 숭인(崇仁)의 설법을 듣고 남아 여러 경전을 정독하고 다시 부용 영관(芙蓉靈觀, 1485-1571)에게 3년 동안 지도를 받았다. 그 때 그의 나이 18세. 그 3년뒤 21세에 계(戒)를 받음.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다가,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 때 나이가 30이었다.

1552년(명종 7)에 새로 부활된 승과(僧科)에 합격하여 대선(大選)이 되고, 3년 후에는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지리산·묘향산에서 수행함.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휴정을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에 임명하니, 그는 묘향산에서 나와 전국 승려들에게 총궐기하는 격문을 방방곡곡에 보내 승군(僧軍)을 평남 순안 법흥사(法興寺)에 집결시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움.

임진왜란 7년 전쟁이 끝난 후 79세의 휴정은 그의 제자 유정(惟政)과 처영(處英)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감.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며 많은 제자를 이끌었다.

1604년(선조 37)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입적함. 세수 85세, 선납(禪臘) 65.

 

그 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 년 전 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후 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써 ( 千計萬思量  紅爐一點雪  泥牛水上行  大地虛空裂 )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저서 : 삼가귀감(三家龜鑑)·선가귀감(禪家龜鑑)·선교석(禪敎釋)·청허집(淸虛集)·운수단(雲水壇).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염라대왕(閻羅大王) : 염마왕(閻魔王). 염라왕(閻羅王). 명후(冥侯). 사후세계의 지배자로, 망자(亡者 죽은 사람)를 재판하는 자.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자성(自性) ; ①사물 그 자체의 본성. 본성 ②본래부터 저절로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