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불자2023. 12. 26. 08:51

불자(No.308)—자기 분상에 맞추어 최선을 다하라 | 민족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 | 부처님의 조국인 가비라왕국과 사위국 유리왕과의 악연. 석가족의 멸망 인과. 가비라왕국과 사위국의 멸망.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제26권, 34.등견품(等見品) [2] |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천상에 사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수준이 높다 | 최상승법은 세계에다 자랑할 만한 것 | (게송)화소계전우~.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佛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佛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우리 불자들은,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불자(佛子)는 서양 사람들이 선진 문화민족이니 일등국민이니 하지만 그건 물질적으로 본 것이고, 정말 정신적으로 볼 때에는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천상에 사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세계뿐만이 아니라 무한대의 우주 세계에 있어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만큼 고도의 수준을 가진 백성은 없는 것입니다.

(17분 1초)



[법문] 송담스님(No.308)—1986년 칠석법회(86.08.12) (용308)

꽃은 꽃대로 붉게 피어서 아름답고, 풀은 풀대로 파랗게 너울거리고, 김 서방, 이 서방은 각각 아들딸 낳고 장사하고, 농사짓고 그렇게 사는 것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대로, 관공리는 관공리대로, 농부는 농부대로, 승려는 승려대로, 신도는 신도대로, 각각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의 분상(分上)에 맞추어서 최선을 다하고 자기의 책무를 완수할 때에 전부가 다 한마음이 되고, 한 불사(佛事)를 이룩하고, 한 불국토(佛國土)를 건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춧돌과 기둥과 서까래와 대들보, 흙과 종이와 철근과 기왓장, 그런 것들이 모두 다 여러 가지 재료가 합해져서 하나의 훌륭한 집을 짓듯이, 우리 김가, 이가, 박가, 고가, 성(姓)도 다르고, 피도 다르고, 모양도 다 다르지만 각각 다른대로 저 나름대로의 생애가 있고, 저 나름대로 취미가 있고, 저 나름대로의 희망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마는,
바른 불법, 정법(正法)을 믿고 ‘참나’를 찾는다고 하는 점에서 올바르게 듣고, 올바르게 닦는 것을 우리 모두의 본업(本業)으로 해서 각자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할 때, 절에 오면은 훌륭한 신도요 법보제자요, 가정에 돌아가면 훌륭한 아내요, 어머니요, 아들이요, 딸이요, 아버지요, 형이요, 동생이요, 자식이 될 것입니다.(33분30초)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원수가 되고, 한 생각을 바로 먹으면 우리 모두가 형제간이요, 한 살붙이가 되고, 한 핏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이렇게 동서남북이 많은 나라들이 있고 인종도 다르고 하지만, 생각을 잘못 먹고 원수가 되어서 싸우기로 하면 이 세계는 정말 불구덩이가 되고,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그런 지옥세계와 같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마음으로 돌아가서 자기의 근본이 모든 사람의 근본과 둘이 아닌 도리를 깨닫게 되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싸울 것이 있겠습니까? 먼 다른 나라하고도 싸울 것이 없거늘, 어찌 한 피에 한 민족끼리 싸울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형제간이 아무리 성격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서 싸우다가도 자기 동생이나 자기 형이 다른 사람하고 싸우게 되면 자기 동생 편을 들고, 자기 형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동생이 누구한테 얻어맞으면 그렇게 미워했던 형이지만 동생을 갖다가 편을 들어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남북이 갈라진지 사십 년이 되는데 우리가 통일을 못하고, 언제 큰 싸움이 벌어질런지, 언제 이북에서 밀고 내려올는지 모르는 이러한 상황 속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대단히 중대하고도 어려운 고비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佛子)들은 이 나라에 태어난 이 민족의 백성들인 것입니다. 어쨌든지 민족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항상 명심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삼계(三界)의 대도사(大導師)요 사생(四生)의 자부(慈父)이신 석가세존(釋迦世尊)께서, 세존의 조국이 이웃나라에 의해서 침범을 받게 되었을 때에 부처님께서는 그 국경에 가서 떠억 좌선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나라에서 임금이 많은 군대를 통솔해 가지고 부처님 나라를 쳐들어오다가 부처님이 떠억 국경선(國境線)에 죽은 고목나무 밑에 앉아서 참선을 하고 계시니까 가서,
“세존께서는 어찌 하필 이 죽은 나무 밑에 와서 이렇게 계십니까?”
“내가 여기 와서 있는 것은 내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고 군대를 회군(回軍)을 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두 번째 또 얼마 안 있다가 또 부처님의 나라를 침범하기 위해서 들어왔습니다.
부처님이 또 국경선에 가서 좌선을 하셨습니다. 그때 또 왕이 그걸 보고 되돌아갔습니다.

또 얼마 있다가 ‘도저히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 해 가지고, 세 번째는 '부처님이 아무리 거기 와서 막고 계신다 하더라도 그걸 무시해 버리고 이번에는 아주 그 나라를 침범해 가지고 뺏어버리리라' 이렇게 마음을 먹고 다시 출군(出軍)을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세 번째는 이미 그 왕이 그러한 독한 결심을 한 것을 아시고서 세 번째는 국경선에 나아가지를 않았다고 하는 말씀이 경전에 전해 오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입장에서 보면 당신이 태어나고 당신의 조국이나 또는 다른 외국이나 일체 이 법계(法界)에 있는 모든 나라나 중생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그래도 당신이 태어나신 그 조국을 위해서 외국의 침범을 두 번이나 몸소 나가셔서 막아 주신 그 마음을 생각한다면,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서산대사나 사명대사, 뇌묵대사와 같은 그러한 큰스님네들이 수도하시는 여러 승군(僧軍)들을 거느리고 왜적을 갖다가 물리치고 하신, 그 나라와 민족을 지키려는 그 성스러운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거 같습니다.

우리 법보제자 사부대중들도 부처님과 서산 · 사명 · 뇌묵대사와 같은 그런 큰스님네의 뜻을 잘 마음에 새겨서 ‘우리가 지금 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참선하시는 도 닦는 스님네들은 어쨌든지 이런 국가의 위기 또 민족의 위기 또 세계 인류의 위기를 당해서 어쨌든지 몸과 목숨을 바쳐서 철저하게 수행을 하셔야 할 것이고, 신남신녀 여러분도 역시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하시면서 ‘이뭣고?’ 참선을 열심히 하실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사소한 일 같지만 생활해 나가는 데 있어서 사치풍조에 빠지시지 말고 어쨌든지 국산품을 애용을 해서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이바지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내 한 사람이 이런 외제 물건을 사 쓴들 무슨 상관이 있느냐?
'국산 사 써봤자 얼마 안 가서 망가지니 좀 비싸게 주더라도 일제를 사서 쓰면 내가 더 이익인데' 이런 마음을 가지고 너도나도 일제 물품을 쓰게 되면 결국은 온 여성들이 다 그렇게 되면 결국은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제 수지의 적자(赤字)는 더욱 늘어나고, 우리나라 경제는 점점 나빠지게 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일본은 '외제 물건을 좀 사라'고 나까소네 수상이 백성들에게 모다 연설을 한 기사를 봤습니다마는, ‘외제 물건 쓰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외제 물건을 쓰라’고 할 정도로 되었다면 얼마나 일본 사람들이 외제 물건을 쓰지 아니하고, 순 자기나라 국산품을 철저하게 애용을 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을유년(乙酉年) 해방 이후로 벌써 42년이나 되었습니다. 정신차릴 때가 충분히 되었습니다.

그동안에 ‘무엇이 품귀(品貴)하다’ 하면은 너도나도 살려고 해 가지고 점점 값을 올리고, 점점 품귀 현상을 빚었던 일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무엇이 품귀하다’ 하면, 예를 들어서 ‘소고기가 귀하다’ 하면 너도나도 살려고 하면 더욱 귀해지고 더욱 비싸지는 거고, 귀하다고 하면 안 사버리면 그냥 살 사람은 적어지고 물건은 남아돌기 때문에 저절로 물가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양 사람들은 ‘무엇이 품귀하다’ 하면 너도나도 안 사. 안 사고 다른 걸로 대용을 하기 때문에 일반 수요자들이 물가 올라가는 것을 막는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귀하다’ 하면은 너도나도 살라고 그러고, 미리부터 나중에 쓸 것까지 사 모이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물가가 올라가고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그 민도(民度) 수준이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것을 생각할 때 이건 참 부끄러운 일이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는 불자(佛子)는 서양 사람들이 선진 문화민족이니 일등국민이니 하지만 그건 물질적으로 본 것이고, 정말 정신적으로 볼 때에는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천상에 사는 사람보다도 훨씬 더 수준이 높은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세계뿐만이 아니라 무한대의 우주 세계에 있어서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만큼 고도의 수준을 가진 백성은 없는 것입니다.
그만한 긍지를 갖는다면 그까짓 외제 물건 좀 사서 쓰고, 몸에 걸친다고 해서 무엇이 그렇게 자랑스럽고 뽐낼만한 일이 되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물건, 우리나라 사람이 사랑하고 아끼고 소중하게 여길 때에, 외국 사람들도 우리나라 물건을 서로서로 살라고 할 것이고, 우리나라 국산품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써 줌으로 해서 좋은 품질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경제 계통에 문외한이 되어서 여러 가지 말을 무식한 소리같이 하고 있습니다마는 제 말하는 뜻을 여러분은 충분히 이해를 하시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당장 오늘부터 쓰고 있는 외제 물건을 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는 없고, 이미 사신 것은 소중히 잘 쓰시되 앞으로 사시려고 할 때는 어쨌든지 국산품 중에서 좋은 것을 골라서 쓰시도록 그렇게 하신다면 그것이 불자로서 참 긍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최상승법(最上乘法), 또 우리나라 고유의 국악,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 예술, 다 세계적인 것입니다. 세계에다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조금도 서구에 손색이 없는 것이고, 대단히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긍지를 가지고 사소한 생활에서부터서 최상승을 믿는 법보재자(法寶弟子)답게 늠름하게, 여유 있게 그리고 밝게, 그렇게 우리 모두 살아갈 것을 기약을 합시다.(30분45초~47분45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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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상(分上 분수 분/윗 상) ;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입장.
[참고] 분(分) : 분수(分數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상(上) : ①‘그것과 관계된 입장’ 또는 ‘그것에 따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②‘추상적인 공간에서의 한 위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예) 정진하는 분상에는 ---> 정진하는 수행자에 알맞은 입장에 따르자면.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 · 탱화 · 불구(佛具) · 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아수라장(阿修羅場) ; 수라장(修羅場). ①아수라왕(阿修羅王)이 제석천(帝釋天)과 싸운 마당. ②싸움이나 기타의 이유로 혼란에 빠져 모든 것이 뒤범벅이 된 곳. 또는 그러한 상태.
*이북(以北) ; ①어떤 기준이 되는 지점으로부터 그 북쪽. ②1945년 남북으로 분단(分斷) 이후 한반도의 북위(北緯) 38도선 북쪽을 이르는 말. 또는 한국 전쟁 이후 휴전선 북쪽을 이르는 말. 즉 북한(北韓)을 가리킨다.
*38선(三八線) ;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년 8월15일 맥아더가 발표한 ‘일반명령 제1호’에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以北)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以南)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미·소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년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부처님의 조국인 가비라왕국과 사위국 유리왕과의 악연. 석가족의 멸망 인과. 가비라왕국과 사위국의 멸망.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제26권, 34.등견품(等見品) [2].
*삼계도사(三界導師) : 삼계(三界)의 중생을 열반(涅槃)로 인도(引導)하는 위대한 사람. 부처님을 말함.
*삼계(三界) : [범] trayo-dhā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āma-dhā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ūpa-dhā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ārūpya-dhā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이것을 흔히 땅으로부터 하늘까지 올라가면서 유형(有形)한 계층으로만 말하지마는, 실상은 입체적 공간이 아니라, 정신적인 세계의 구분(區分)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地上) 세계의 어떤 곳에도 탐(貪) • 진(瞋) • 치(痴) 등 삼독심(三毒心)의 경중(輕重)에 따라 삼계가 벌어져 있는 것이다.
*사생자부(四生慈父) ; 육도윤회(六途輪廻)하는 세계에서 4가지 방식(四生)으로—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태어나는 모든 중생을 열반으로 이끄는 대자비(大慈悲)의 아버지. 부처님을 말함.
*석가세존(釋迦世尊) ; 석가족 출신의 세존. 석가(釋迦)란 출신 종족을 나타내는 말인 샤키야(Śākya)의 음사어(音寫語)이고, 세존(世尊)이란 '온갖 덕을 갖추어서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분'이라는 뜻을 지닌 범어 바가바트(bhagavat)의 한역어(漢譯語)이다.
*세존(世尊) : [범] Bhagavat ; Lokanatha ; Lokajyestha의 음역(音譯)으로 바가범(婆伽梵) 로가나타(路迦那他) 로가야슬타(路伽惹瑟吒)라 하며 부처님 십호(十號)의 하나, 부처님은 원만한 공덕을 갖추어 세상에서 가장 높으시므로, 이렇게 부르며 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서산대사 약력」 p229~241 (가로판 p237~245)
대사(大師)의 법명(法名)은 휴정(休靜)이요, 자(字)는 현응(玄應)이며, 호(號)는 청허(淸虛)라 한다. 서쪽 묘향산(妙香山)에 오래 계셨으므로 서산(西山)이라고도 한다. 또 금강산 백화암(白華庵)에도 오랫동안 주석(住錫)하여 백화도인(白華道人)이라 자호(自號)하였으며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의 자리를 사임한 후에는 퇴은(退隱)이라 하였다.

속성(俗姓)은 완산 최씨(完山 崔氏)요, 속명(俗名)은 여신(汝信)이라 하였다. 또 아명(兒名)은 운학(雲鶴)이라 하였으니, 이는 대사의 세 살 때 사월 초파일 낮에 사(師)의 부친인 세창(世昌)이 누중(樓中)에서 잠들어 있노라니 몽중(夢中)에 한 노인이 와서 “소사문(小沙門)을 위탁하노라” 하며 사(師)를 품에 안고 몇 마디 진언을 마친 뒤에 사(師)의 이마를 만지며 “마땅히 ‘운학’이라 이름할진저!” 하고 갔다고 하여 소사문 또는 운학이라고 불렀다 한다.

조선 제11대 중종대왕(中宗大王) 15년(서기 1520) 경진(庚辰) 3월 26일에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났다. 부(父)는 기성(箕城) 영전관(影殿官)을 지낸 세창이요, 그 모(母)는 한남 김씨(漢南 金氏)인데 그 부모님네는 동갑으로 나이 오십에 가까워서 대사를 낳았다.
대사는 어려서부터 착한 성품에 영오한 재질을 지녔건마는 불행하게도 9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10세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 백 년 생계가 하루아침에 깨어지니 어린 대사는 의지할 데가 없었다.

사(師)는 총명이 뛰어나고 글 재주가 있으므로 그해 겨울 그 고을 사또 이사증(李恩曾)이 대사를 불러 앞에 앉히고, 먼 산의 송설(松雪)을 가리키면서 「사(斜)」로 운자(韻字)를 부르니 대사는 곧 「향응고각일초사(香凝高閣日初斜 향기는 고각에 엉기고 해는 바야흐로 기울다)」라고 하였다. 또 「화(花)」 자를 부르자 「천리강산설약화(千里江山雪若花 천리강산에 눈은 꽃과 같다)」라고 응구첩대(應口輒對)하니 사또는 운학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우리 아해(兒孩)야!” 하면서 기뻐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었던지 사또가 전직(轉職)되어 가는 길에 대사를 서울로 데리고 가 성균관에 넣어 주었다. 이 때의 나이는 12세.

어떤 노학사(老學士)의 주선으로 유교의 경전을 대부분 독파(讀破)하고 1차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였다. 비로소 그 내막에 부정이 있음을 알고 과거를 단념하였다.
그 후 15세에 동배(同輩) 수인(數人)과 함께 지리산을 유람하며 화엄동(華嚴洞), 칠불동(七佛洞), 청학동(靑鶴洞) 등 대소사찰을 순방하면서 반 년을 지냈다.

어느 날 우연히 쌍계사에서 숭인장노(崇仁長老)의 설법을 듣고 다른 여러 벗들은 서울로 돌아가는데 그는 거기에 남아 전등(傳燈), 염송(拈頌), 화엄(華嚴), 원각(圓覺), 능엄(楞嚴), 법화(法華), 유마(維摩), 반야(般若) 등 수십 본의 경전을 얻어 정독한 후에 다시 영관대사(靈觀大師)에게서 3년간 지도를 받았다. 그때 그의 나이 18살이었다.

그 뒤 3년 만에 어느 날 밤 홀연히 깨친 바 있어 읊기를 「홀문두우제창외(忽聞杜宇啼窓外) 만안춘산시고향(滿眼春山是故鄕), 소쩍새 소리 듣고 창 밖을 내다보니, 봄빛 가득한 저 동산 내 고향 이 아닌가」라 하였고.
또 어느 날에는 「급수귀래홀회수(汲水歸來忽回首) 청산무수백운중(靑山無數白雲中), 물을 길어 돌아오다 고개 문득 돌이키니, 무수한 청산이 흰구름 속에 솟아 있네」라고 읊은 다음에 손에 은도(銀刀)를 쥐고 머리를 스스로 자른 후 다시 일구(一句)하되 「영작평생치애한(寧作平生痴獃漢) 불욕작연참아사(不欲作鉛槧阿師), 차라리 한 평생을 천치가 될지언정 속빈 문자승은 되고자 안하노라」라 하고,
드디어 일선대사(一禪大師)를 수계사(授戒師)로, 석희법사(釋𤋮法師) · 육공장노(六空長老) · 각원상좌(覺圓上座)를 증계사(證戒師)로, 영관대사를 전법사(傳法師)로, 숭인장노를 양육사(養育師)로 삼으니 그때(1540년)의 나이는 21세였다.

그 후 명산 제찰(名山 諸剎)을 찾아다니면서 수도하여 도솔산(兜率山) 학묵대사(學嘿大師)에게서 인가를 받았다. 어느 날 벗을 찾아 봉성(鳳城=南原)을 지나가다 우연히 낮닭 우는 소리를 듣고 크게 깨쳐 다음과 같이 게송을 지었다.

발백심비백(髮白心非白)  고인증누설(古人曾漏洩)  금문일계성(今聞一鷄聲)  장부능사필(丈夫能事畢)

머리 세어도 마음 안 센다고 옛 사람 일찌기 일렀더구나. 닭울음 한 소리 이제 듣고 나니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쳤도다.

홀득자가저(勿得自家底)  두두지차이(頭頭只此爾)  천만금보장(千萬金寶藏)  원시일공지(元是一空紙)

문득 자가 것을 깨닫고 나니 온갖 것이 다만 이뿐이로세. 팔만대장경도 본시는 한 장 빈 종이로세.

그 뒤로 관동(關東)의 명산을 두루 편답하니 그때 나이가 삼십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32세 때에는 봉은사(奉恩寺)에서 승과(僧科)에 응시하여 중선(中選)에 오르고, 대선(大選)으로부터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에까지 올라 불가(佛家)에서는 그 명예가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그의 본의도 아니므로 얼마 후에 이 직책을 사임하고 주장자에 몸을 맡겨 북으로 묘향산(妙香山) 남으로 두류산(頭流山), 기타 제산을 편류하다가 금강산으로 들어가 그때 저 유명한 삼몽시(三夢詩)와 향로봉시(香爐峰詩)를 지었다.

삼몽시(三夢詩)
주인몽설객(主人夢說客)  객몽설주인(客夢說主人)  금설이몽객(今說二夢客)  역시몽중인(亦是夢中人)

주인(主人)의 꿈을 객(客)에게 말하고 객(客)의 꿈을 주인(主人)에게 말하니, 이제 두 꿈을 말하는 저 나그네, 어즈버 그도 또한 꿈 속의 사람이로다.

라 하였고 또 향로봉시(香爐峰詩)에

만국도성여의질(萬國都城如蟻垤)  천가호걸약혜계(千家豪傑若醯雞)  일창명월청허침(一窓明月淸虛枕)  무한송풍운부제(無限松風韻不齊)

만국의 서울은 개미집이요 천고의 호걸은 하루살이라. 밝은 달을 베개하고 고요히 누웠으니 끝없이 부는 솔바람 갖은 곡조 아뢰네.

라 하였다. 그 후 선조(宣祖) 22년(서기 1589년) 기축 10월에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요승 무업(無業)이 이 글로써 대사(그때의 나이 칠십)를 무고하였다. 즉 향로봉시는 임금을 모독한 글이요 또한 역적인 정여립과 음모가 있다하여 그것 때문에 어전(御前)에까지 잡혀갔었다.
그러나 말이 너무도 분명하고 그의 인격과 성품이 도리어 임금을 감동케 하여 선조는 묵죽(墨竹) 한 폭을 하사(下賜)하고 부시(賦詩)를 명하므로 대사는 곧 다음과 같이 일절(一絕)을 지어 올렸다.

소상일지죽(瀟湘一枝竹)  성주필단생(聖主筆端生)  산승향설처(山僧香爇處)  엽엽대추성(葉葉帶秋聲)

소상강의 이름난 대 한 가지, 우리님 붓 끝에 났구나. 산승이 향을 피우는 그곳에 잎사귀마다 가을 소리가 들리듯 하여라.

고 하였다. 선조께서도 이 시(詩)를 보고 친히 화답(和答)을 하였다.

엽자호단출(葉自毫端出)  근비지면생(根非地面生)  월래무견영(月來無見影)  풍동불문성(風動不聞聲)

잎은 붓 끝에서 나온 것, 뿌리도 땅에서 나온 것 아니다. 달이 와도 그림자를 볼 수 없으니 바람 분들 소리가 들릴 건가.

라 하였다. 그래서 대사와 선조대왕과는 시(詩)로써 깊이 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 뒤 선조 25년(서기 1592년) 4월에 임진난이 일어나니 대사의 나이 73세였다. 국가는 도탄에 빠지고 임금께서는 의주(義州)로 파천(播遷)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 대사는 묘향산(妙香山)으로부터 칼을 짚고 의주 행재소(行在所)에 이르러 임금 앞에서 “전국의 승려들 가운데 늙고 병들어 나서지 못할 자는 각각 그들이 있는 곳에서 분향하고 불공을 올려 신불(神佛)의 도움을 받게 하고 그 나머지는 신(臣)이 통솔하고 전진 속에 뛰어들어 충성을 다하겠읍니다” 했다.
그래서 선조는 대사에게 팔도 십육종 도총섭(八道十六宗都總攝, 선교양종禪敎兩宗이므로 팔도 십육종이 됨)을 명하니 그 즉시로 행동에 옮겨 전국에 의승병을 불러일으켰다.

그 제자 송운 사명대사는 관동에서 칠백여 명을, 뇌묵 처영대사(雷默處英大師)는 호남에서 천여 명을, 그밖에 기허 영규대사(騎虛靈圭大師)는 공주에서, 중관 해안대사(中觀海眼大師)는 진주에서 일어나는 한편 휴정대사 자신은 문도들과 지원병 천오백여 명을 이끌고 모두 오천여 명이 평안 순안 법흥사(順安法興寺)에 모여 일대 승단을 조직하여 국내의 여러 장수들에게 호응하고 혹은 명나라 군인들을 지원하면서 여러 곳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서울을 수복한 뒤에 대사는 용사 백여 명을 이끌고 환도하는 선조대왕을 중로에서 영접하였다. 그리하여 임진난 7년 전쟁이 끝났을 때에는 대사의 나이 79세였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은 대사의 그 큰 공을 찬탄하고 한시(漢詩) 일수(一首)를 지어 바쳤다. 즉

무의도공리(無意圖功利)  전심학도선(專心學道禪)  금문왕사급(今聞王事急)  총섭하산령(總攝下山嶺)

공명에 뜻이 없어 오로지 도를 익히더니  이제 왕사(王事)가 급함을 듣고 총섭이 산에서 내려오셨네.

대사는 임난이 끝난 뒤에 다시 귀산(歸山)할 것을 왕에게 허락을 받아 모든 일은 제자인 사명당 유정(四溟堂惟政)과 뇌묵당 처영(雷默堂處英)에게 위임하고 묘향산으로 돌아가니 나라에서는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등계존자(國一都大禪師禪敎都總攝扶宗樹敎普濟登階尊者)」의 호를 내렸다.

그 뒤로도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등지를 왕래하였는데 항상 따르는 제자가 천여 명이나 되었고, 그의 법을 이어 출세한 제자가 칠십여 명이나 되었다. 그 중에서도 고명한 제자를 든다면 사명당 송운, 기허당 영규, 뇌묵당 처영, 중관당 해안, 자운당 선의(慈雲堂 宣義), 그 밖에 덕수(德守), 수인(守仁), 혜조(慧照), 신열(信悅), 의엄(義嚴) 등이 세상에 이름을 떨쳤다.

선조 37년(서기 1604년) 갑진(甲辰) 정월 23일에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부좌(趺坐)하여 열반에 드시니 세수(世壽)는 85세요, 선납(禪臘)은 예순 다섯이었다.
그날 아침 대사는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눈이 쌓인 길을 헤치고 남여(籃輿 : 주로 산길에 쓰이는 뚜껑이 없고 의자같이 된 가마)를 타고 여러 암자를 마지막으로 돌아보신 후 원적암으로 돌아와 손을 씻고 위의를 갖추고 불전에 분향한 다음 스스로 붓을 들고 조실에 들어가서 그의 자화상에 이렇게 적었다. 즉

팔십년전거시아(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후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내러니, 팔십 년 뒤 오늘은 내가 너로다.

하고, 다시 임종게(臨終偈)로

천계만사량(千計萬思量)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  니우수상행(泥牛水上行)  대지허공렬(大地虛空裂)

억천만 가지 온갖 생각들, 불에 떨어진 흰눈 한 조각, 진흙 황소가 물 위로 가고 땅과 허공이 꺼져 버렸네.

이렇게 써놓고 고요히 앉아서 입적하였다.

그날에 이향(異香)이 방에 차 삼칠일(三七日) 후에야 그치었다 하며, 화장하는 날에는 제자 원준(圓峻), 인영(印英) 등이 영골 일편(靈骨一片)과 사리 삼과(舍利三顆)를 얻어 묘향산 안심사(安心寺)에 또한 유정, 자휴(自休) 등이 정골 일편(頂骨一片)과 신주 수매(神珠數枚)를 얻어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북쪽 언덕에 봉안하고, 그의 유물(遺物)은 대개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海南 大興寺)에 모셨다.

대사가 남긴 저서는 『청허집(淸虛集)』 상하 두 책(上下二冊)과 『선가귀감(禪家龜鑑)』, 『삼가귀감(三家龜鑑)』, 『선교석(禪敎釋)』, 『운수단(雲水壇)』 각 한 권이 있다.

*사명대사(四溟大師 1544~1610) ;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사명대사 약력」 
대사의 법명은 유정(惟政), 자는 이환(離幻), 법호는 사명(四溟) 또는 종봉(鐘峰) 혹은 송운(松雲)이라고도 하는데, 1544년(중종 39) 10월 13일에 경상도 밀양(密陽)에서 났다. 아버지는 임 수성(任守成)이고, 어머니는 달성 서(徐)씨였다.
그는 어려서 늘 돌이나 흙을 쌓아 부처님이나 탑을 만들고, 꽃이나 모래밥으로써 불공하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큰 자라를 잡아 가는 것을 보고, 산밤(山栗)을 주어다 주고 바꾸어서 물에 넣어 준 일이 있었다.

13살에 『맹자(孟子)』를 읽다가 책을 던지고, 그길로 출가하여 김천(金泉) 황악산(黃岳山) 직지사(直指寺)에 입산하여 신묵(信默)화상에게서 득도(得度)하였다. 『전등록(傳燈錄)』을 보다가 깨친 바가 있었고, 18살에 선과(禪科)에 급제하였으며, 33살에 선종 판사로 추대하는 중망을 물리치고, 묘향산에 들어가 청허스님을 모시고 더욱 크게 깨쳐 그의 법을 받았다.
36살부터 49까지 사이에 금강산 • 팔공산(八公山) • 태백산 • 오대산 같은 곳에서 지내다가 다시 금강산 유점사 명적암(明寂庵)에서 지내는데, 때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나 강원도는 삼길성(森吉成)의 군사가 덮이게 되었다. 대중은 모두 달아나고 오직 그가 홀로 절을 지키고 있다가, 보배를 내어 놓으라고 호통하는 왜장의 앞에 나아가 “우리 절에는 다른 보배가 없고 오직 왜장의 머리가 보배다”라고 대답하여, 그들로 하여금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그리하여 적군들은 그를 「설보 화상(說寶和尙) 또는 보두화상(寶頭和尙)」이라고 일컫게 되었다

그는 다시 고성(高城)에 나가서도 왜장들을 설유한 결과 영동 구읍(嶺東九邑)이 병화를 면하게 된 것이다. 그길로 승병 수백 명을 거느리고, 평안도 순안(順安)에 가서 서산스님의 휘하에서 부총섭(副總攝)으로 활약하여 평양 싸움에 크게 전공을 세우고, 다시 영남에까지 추격하여 의령(宜寧) 싸움에 또한 큰 공을 세웠다.
선조께서 불러 올려, 당상(堂上)을 맡기고 환속(還俗)하기를 권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고, 명나라 장병들과 우리 정부의 간청으로 강화(講和) 문제를 위하여 1594년부터 1598년까지 여러 차례 왜군의 진영에 왕래하였는데, 복잡한 국제정세로 말미암아 큰 효과는 없었으나, 그 비범한 수완을 삼국의 군민이 크게 칭송하였다.

한편으로 영남의 군사를 지휘하여 유격전을 하게 하면서, 팔공(八公) • 금오(金鰲) • 용기(龍起)의 각처와 마지막으로 부산에까지 성을 쌓았을 뿐 아니라, 명나라 군사와 우리 군사를 위하여 준비한 것이 군량이 사천여 석이고, 무기와 군복도 만여 벌이 되었다. 이런 일들이 끝난 뒤에 직인(職印)과 전마(戰馬)를 나라에 바치므로, 임금은 그에게 「가선동지중추부사(嘉善同知中樞府事)」의 관품을 내
1604년 (선조 37) 1월 서산대사의 부고를 받고 향산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국명(國命)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니 그때의 직함이 「정헌 자헌대부 수병조판서 겸지팔도 승의병도총섭 행강화접반사(正憲資憲大夫 守兵曹判書 兼知八道 僧義兵都總攝 行講和接伴使)」였다.

왜경(倭京)에 다달으자 그때 장군 덕천가강(德川家康)이 신심으로 귀의하여 부처님같이 모셨다고 한다. 그는 일본의 여러 지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그들 조야(朝野)의 명사와 고승(高僧)들을 설유하여 크게 참회하게 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맹세하게 할 뿐 아니라, 그들이 훔쳐 간 우리 보배들과 붙잡아 간 우리 백성 남녀 기술자 삼천 오백여 명이 있는 곳을 자세히 조사하고, 더구나 우리 본국에서 공장(工匠)이라 하여 천대만 받다가, 그들에게서 특별한 대우를 받고 돌아올 생각이 없어 하는 이들을 위하여, 조국 생각을 일으키는 노래를 지어 퍼뜨리기도 하였다.
영구한 국교가 성립되는 동시에, 보배와 사람을 모조리 찾아 가지고 그 이듬해(1605년) 봄에 돌아왔다. 이에 나라에서는 그에게 「가의대부 행용양위 대호군(嘉義大夫 行龍驤衛 大護軍)」을 봉하고 그 조상 삼세를 추증(追贈)하였다.

1610년(광해군 2) 8월 26일 가야산(伽倻山) 해인사(海印寺)에서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한 뒤에 가부좌로 앉아서 입적하였다. 그때 나이 67.
그 영골을 모신 부도가 해인사에 있고, 그의 저술이 퍽 많았으나 병화로 대개 없어지고, 남은 것은 『분충서난록(奮忠紓難錄)』 『사명집(四溟集)』 등 7권밖에 전하지 못한다. 시호를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라 하였다.

*법보제자(法寶弟子) ; [참고] 1989년 설날차례(89.02.06) 법요식에서.
여기 (용화선원 대웅전 법보단)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대웅전 법보단, 舊 법보전)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
*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을유년(乙酉年) ; 1945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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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불자2021. 5. 14. 14:57

불자((No.233))—(게송)山徑無人鳥不回~ |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고 어려울수록에 우리는 참나 찾는 공부를 더욱 노력을 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불자(佛子)가 하는 길.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을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이어가고, 법(法)의 집과 법(法)의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다 불자(佛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이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佛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태(胎)가 되고 ④자비심(慈悲心)은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11분 1초)

 


[법문] 송담스님(No.233)—1984년 3월 첫째일요법회 (용233)

산경무인조불회(山徑無人鳥不回)헌디  고촌암담냉운퇴(孤村暗淡冷雲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원승답파유리계(院僧踏破琉璃界)하고  강상고빙급수래(江上敲氷汲水來)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산경무인조불회(山徑無人鳥不回)헌디, 산길에 사람이 없는데 새는 돌아오지를 안 해.
온 산중에 눈이 적설(積雪)이 와 가지고 허옇게 눈이 내렸는데, 그러니 산에 아무도 오고가는 사람이 없어. 그러고 새도 눈이 워낙 많이 쌓여 놓으니까 어디에 가부렀는지 돌아오지를 않는다 그 말이여.

고촌암담냉운퇴(孤村暗淡冷雲堆)로구나. 외로운 마을에 눈이 내리니까 껌껌하고 암담한데 차운 구름만 쌓여. 앞으로 얼마나 더 눈이 쏟아질런지 하늘과 땅이 온통 껌껌해 가지고 차운 구름만 쌓인다 그 말이여.
이 세계가 새해를 맞이했건마는, 평화(平和)가 돌아올 조짐은 보이지를 않고, 날이 갈수록 점점 무서운 싸움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러한 경계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원승답파유리계(院僧踏破琉璃界)헌디, 그 산중에 눈이 내려 가지고 사람 왕래도 없고 새도 돌아오지도 않고, 온 골짜기 골짜구니마다 눈이 쌓이고 찬 구름이 쌓이는데, 그 절간에 스님이, 참선(參禪)하는 스님은 그 허연 눈 덮인 산길을, 유리세계(琉璃世界)와 같은 그런 허연 세계를 터벅 터벅 터벅 걸어가지고,
강상고빙급수래(江上敲氷汲水來)로구나. 저 강(江) 위로 가 가지고 그 강에 얼음을 구녁을 뚫어 가지고, 얼음을 쳐서 구녁을 뚫어 가지고 거기서 물을 길러 오더라 그 말이여.

깊은 산중에 계곡으로 흘러가는 물을 홈대를 놔 가지고 연결을 해서 물을 받아서 그렇게 먹고 살다가, 엄동설한(嚴冬雪寒)이 되니까 골짜구니에 물이 다 얼어 버리고 홈대마저도 다 얼음으로 가뜩차서 물을 먹을 수가 없어. 계곡에서는 물을 먹을 수가 없으니까 저 넓은 강 있는 데로 가면, 가서 그 얼음을 깨 가지고 구녕을 뚫어서 물을 길러 온다 그 말이여.

온 세계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자기가 잘살기 위해서, 자기 나라가 잘살기 위해서 서로 나라와 나라끼리 싸우고, 무서운 무기를 발명을 해서 무력으로써 싸움을 해 가지고 자기 나라에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 이래 하는데 결국은—물론 우리나라도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軍隊)도 양성(養成)해야 하고, 무기도 많이 맨들어야 하고, 비행기나 군함도 많이 있어서 그걸 잘해야만 외적(外敵)이 침범(侵犯)해 들어오지를 못하니까 부득이해서 이것을 하기는 해야 합니다. 절대로 등한(等閑)히 할 수는 없고 잘해야 하는데, 참 성현(聖賢)의 눈으로 본다면 이 중생세계(衆生世界)가 이래 가지고는 안 될 일이거든.

어떻게든지 온 세계 사람들이, 온 나라가 이 성현의 뜻을 깨달라 가지고 싸움으로써 자기의 나라를 지키려고 하지 말고 서로 돕는 자비(慈悲)로써 나아간다면, 무기를 맨드는 대신 서로 인류복지(人類福祉)를 위해서 그걸 쓰게 된다면 세계에 굶어 죽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요, 병들어 죽은 사람도 다 구제할 수가 있을 것이요, 이웃지간에 서로 싸울 것이 아니라 도우면서 살 수 있는 이러한 평화(平和)를 가져오도록 해야 하는데, 온 산천(山川)이 꽁꽁 얼어서 사람 길이 다 끊어졌다 말이여.

그런데 그 수행하는, 그 산중(山中)에 그 절에서 수행하는 그 수좌(首座)가 눈길을 밟아서 저 강에 얼음을 구녁을 뚫고 거기서 물을 길어온 것은, 온 세계가 이렇게 싸움을 하고 있는 이 속에서도 우리 정법(正法)을 믿는 불자(佛子)들은 자성(自性)을 깨닫고, 나아가서는 온 중생(衆生)을 깨닫게 하고, 나아가서 이 세계(世界)가 진리를 깨달은 사람으로 가득차게 하려는 그러한 자리이타(自利利他)에 신심(信心)을 가지고 이렇게 모여서 공부를 하려고 한 이것이 바로 거기에다가 비유를 해서 게송(偈頌)을 읊어 봤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악하고 어려울수록에 우리는 참나 찾는 공부를 더욱 노력을 하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불자(佛子)가 하는 길인 것입니다. 앞으로 이 다음 법회가 열릴 때까지 정말 착실히 정진을 하시기를 부탁을 합니다.


나가실 때 이 법당 앞의 층계(層階)에서 『관음예문』 그 책을 노나 드릴 테니까, 충분히 많이 준비가 되었으니까 한 분도 빠지시지 말고. 서서히 내려가십시오. 일시에 와- 몰리게 되면은 모다 다치게도 되고 그러니까, 조끔 기다리셨다가 저 앞에서부터 차츰차츰차츰 조용하게 질서 있게 나가시면서 책을 받아 가시도록 부탁을 드립니다.

이 도(道)를 닦고 정법(正法)을 믿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첫째, 스스로 조용할 줄을 알고 기다릴 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차를 탈 때나 어디를 가던지 한 생각 딱! 단속(團束)하면 어디를 가나 자중(自重)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선할 때 다르고, 금방 또 법당(法堂) 밖에 나가면 또 다르고, 또 저 후원(後院)에 가서 공양(供養)을 할 때 다르고 하면은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양을 하실 때나, 또 이 법당 안에 계실 때나, 또 법당 밖에 나가서 책을 받으실 때나, 또 정거장에 가서 전철이나 버스를 탈 때나, 또 가정에 돌아가셔서 모다 가족 모다 생활을 하실 때나, 어디를 가나 한 생각을 탁! 단속(團束)을 하신다면 참 그 마음가짐이나 또 말씨나 그 행동에 있어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청정해지는 청정한 사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보나, 위에서 보나, 밑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앞에서 보나, 언제나 훌륭하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1시간12분55초~1시간24분1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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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ㅂ/불자2017. 12. 20. 19:21
*불자(佛子) : 부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불법(佛法) 믿는 이면 모두 불자가 된다. 그것은 부처님 법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혜명(慧命) 이어가고, () 집과 () 재산을 상속받게 되는 까닭이다.
또한 모든 중생을  불자라고 하는데, 그것은 어떤 중생이나 모두 부처의 성품(佛性) 있어서, 그것이 부처의 씨가 되고, 지혜는 어머니가 되며 부처님은 아버지가 되어, 필경에는 반드시 성불(成佛)하게 된다.
 
섭대승론석(攝大乘論釋)』에는 불자에 다섯 가지 뜻이 있다고 하였다. ①믿음이 종자가 되고 ②지혜는 어머니가 되고 ③선정은 () 되고 ④자비심(慈悲心) 유모가 되고 ⑤부처님은 아버지가 된다.
 

(5분 34초)

 

[법문]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용715)
 
부처님 말씀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소떼가 가는데  소가 무엇인 아느냐? 왕년에 중들이 저렇게 소가 되었느니라 이런 말씀이 경전에 있습니다.  소가 되냐 하면은 소가 되어야  은혜를 빨리 갚을 수가 있기 때문에 그럽니다.
 
소가 되어야 몸이 성할 때는 일을 해가지고 갚고, 살아서 똥을 누면은  똥을 비료로 갚고, 죽게 되면은 가죽은 벗겨서 옷이나 신발이나 그런 것을 만들고, 고기는 오장육부를 다 해서 사람들에게 먹여서 갚고.
그러기 때문에 출가한 스님네가 도를 철저히  닦고 도업을 이루지 못하면 소가 되어서,  생(生)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    빚을  갚을때까지 수십 생, 수백 생을 소가 되어서 갚어.
 
그래서 중은 시주것을 독약보다도  무섭게 생각하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리에 모이신 분은 절대로 소가  그런 분은  분도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만에 하나라도 시주것을 참으로 무서운  안다면  먹거나  먹거나 먹는 것에 대해서 너무 그렇게 신경쓰지 말고.
무엇이, 보리밥이 들어오거나 찰밥이 들어오거나 국수가 들어오거나 들어온 대로 감사한 마음으로 화두를 놓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면서 그것을 맛있게 공양하고,  공양을  때에는 그것을 시주한 신도님들에 대한 간단한 축원(祝願)을 하면서 공양을 드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공양을 드시면 소화도 잘될 것이고 음식에 대한 불평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지나 원주(院主) 도감(都監) ・ 별좌(別座) ・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 그런 소임을 맡으신 스님네들은 수행하는 도반(道伴)들을 위해서 정성을 다해서  마련을 해야  것입니다.
 
 그러냐 하면은 지금 그런 소임을 맡고 있어도 자기도 참선을 하는 분이고  다음 철이나 그다음에는 자기도  선방(禪房)에 들어가서 수행을  것이고, 금생에 안 하더라도 내생에  출가해서  참선하게  것이니.
우리는 서로서로 혼자만 밤낮 하기가 어려우니까 금생에는 내가 공양주  다음 생에는 지금 수행을 하시는 분이 내생에  원주도 살고, 주지도 살고 서로 교대해 가면서 하게 됩니다.
 
그러니 금생에  나만 이렇게 어렵게 공양주를 살고, 어떤 사람은 큰방에 가만히 앉아서 잘만 먹고 편안히 한가?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스님이  분이나 머리는  깎았어도 신도로 있는 있는 분이나 수백 생을 하면서 우리가 서로서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몸을 바꿔  때에는 신도가 스님이  수도 있고, 스님이  신도가  수가 있으니, 우리는  같은 불자(佛子)요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뼈빠지게  돈을 갖다가 수행하는 스님에게 공양도 올리게 되는 거고, 우리는   공양을 받아서 수행을 하면서 항상 신도들을 축원을 해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고,  형제간입니다.
 
그래서 나는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이라고 하는 말을  쓰기를 좋아하는데, 머리를 깎은 스님네도 전부 선배나 후배나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고, 머리는  깎고 청신사 청신녀 신도 여러분도 비록 멀리 가까이 살고 있어도   뱃속에서 나온 형제간이요, 자매간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결제날을 기해서 법당 안이나 법당 밖에 많은 형제자매 여러분들이 모이셨습니다.(31분43초~37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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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주것(施主것) ; 절이나 스님에게 조건없이 베푼 물건.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42~145. p147. 참고.
於戱라  *佛子여  一衣一食이  莫非農夫之血이요  織女之苦어늘 道眼이  未明하면  如何消得이리요.
 ! 불자여。그대의   옷과  그릇 밥이 농부와 직녀의 피와  아닌 것이 없거늘, 도의 눈이 밝지 못하다면 어떻게 소화하리요 !
 
(註解) 傳燈에  一道人이  道眼이  未明故로  身爲木菌하야  以還信施하니라.
전등록에 '옛날 어떤  닦는 사람이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나무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 하니라.
 
故로   要識披毛戴角底  卽今에  虛受信施者是어늘  有人은  未飢而食하며 未寒而衣하니  是誠何心哉아  都不思目前之樂이  便是身後之苦也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말씀하시되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느냐? 그것은 지금 신도들이 베푸는 것을 헛되이 받은 자가 이것이어늘, 어떤 사람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먹고, 춥지 않아도 입으니  진실로 무슨 마음일까? 눈앞의 쾌락이 바로 후생의 괴로움인 줄을 도무지 생각지 않는구나!" 하시니라.
 
(註解) 智論에  一道人이  五粒粟으로  受牛身하야  生償筋骨하고  死還皮肉하니 虛受信施가  報應如響이니라.
<지도론> 이르기를 ' 수도인이 다섯  좁쌀 때문에  몸을 받아, 살아서는 뼈가 휘도록 일해 주고, 죽어서는 가죽과 살로써 빚을 갚았다'하시니 헛되이 시주  받은 응보가 메아리와 같으니라.
 
故로   道人은  進食을  如進毒하고  受施를  如受箭이니 幣厚言甘은  道人所畏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이르시되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는 것같이 하고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할지니, 두터운 대접과 달콤한 말은 도를 닦는 사람의 두려워할 바라" 하시니라.
    
(註解) 進食을  如進毒者는  畏喪其道眼也요  受施를  如受箭者는  畏失其道果也니라.
음식 먹기를 독약을 먹듯 하라는 말은 도의 눈을 잃을까 두려워해서이고시주 받기를 화살을 받듯 하라는 말은 도의 열매를 잃을까 두려워함이니라.
 
 
[참고 ②] (1)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권상(卷上) 백운화상초록(白雲和尙抄錄 | 원조각성 번역·해설 | 현음사) p111~112. (2) 『전등록(傳燈錄) 1』 ‘제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110 참고.
 
迦那提波尊者得法  後至毗羅國  彼有長者  名梵摩淨德  一日園中  樹生大耳如菌  味甚美  唯長者與第二子羅睺羅多  取而食之  取已隨長  盡而復生  自餘他人  皆不能見  時尊者知其宿因  遂至其家  長者問其故  尊者曰  汝家昔曾供養一比丘  然其比丘道眼未明  虛沾信施故  報爲木菌  唯汝與子精誠供養  得以享之  餘卽否矣  又問  長者年多少  答曰七十有九  乃說偈曰  入道不通理  復身還信施  汝年八十一  其樹不生耳
 
가나제바 존자께서 용수 대사에게 법을 얻으시고 그 뒤에 비라국에 가시었다. 그곳에 장자가 있으니 이름은 범마정덕이었다.
어느 날 정원 가운데 나무에 큰 귀가 생기되 버섯과 같고 맛은 매우 좋았다. 오직 장자와 그의 두 번째 아들 라후라다가 따다 먹었는데 따고 나면 다시 자라고, 없어진 다음에도 다시 또 생겼다. 그 밖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보지 못했다.
 
이 때 가나제바 존자께서 그 전생의 인연을 아시고 드디어 그 집에 가셨다. 장자가 그 까닭을 물으니 가나제바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은 전생에 한 비구를 공양했다. 그러나 그 비구는 도안(道眼)이 밝지를 못해서 헛되이 신심으로 시주한 것을 받았기 때문에 그 과보로 나무의 버섯이 되었다. 오직 너와 너의 둘째 아들만이 정성껏 그 비구에게 공양을 올렸기 때문에 누릴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러하지 못한 것이다” 또 물으시되 “장자의 나이가 얼마냐?” 장자가 답하기를 “79세입니다” 가나제바께서 이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도에 들어가 진리를 통달하지 못하면 몸을 바꾸어 시주의 것을 갚아주나니, 너의 나이가 81세가 되면 그 나무에서 버섯이 나지 않으리라’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주지(住持) ; 절이 잘 유지(維持)되도록 모든 일을 총괄적으로 책임지고 관리하는 소임.
*원주(院主) ; 후원(後院, 절에서 부엌을 일컫는 ) 책임지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감(都監) ; 사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감독하는 소임.
*별좌(別座) ; 절에서 식사·의복·방석·이부자리 등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일을 맡은 스님.
*공양주(供養主) ; 절에서 밥을 짓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채공(菜供) ; 절에서 반찬을 마련하는 소임, 또는  일을 맡은 스님.
*도반(道伴) ; 함께 불도(佛道) 수행하는 . 불법(佛法) 닦으면서 사귄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자리에 모여 참선 수행하는 방() '큰방'이라 한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