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세등37)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念起念滅(염기염멸)을 謂之生死(위지생사)니 當生死之際(당생사지제)하야 須盡力提起話頭(수진력제기화두)호리니 話頭(화두)가 純一(순일)하면 起滅(기멸)이 卽盡(즉진)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生死)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話頭)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起滅卽盡處(기멸즉진처)를 謂之寂(위지적)이라하니 寂中(적중)에 無話頭(무화두)하면 謂之無記(위지무기)요 寂中(적중)에 不昧話頭(불매화두)하면 謂之靈(위지령)이라하나니 卽此空寂(즉차공적)과 靈知(영지)가 無壞無雜(무괴무잡)하야 如是用功(여시용공)하면 不日成之(불일성지)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103-104. (가로판 p101~103)

 

(9분 1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37)—1981년(신유년) 동안거 반살림 법문(81.11.22)(세등37)

 

어떻게 공부를 지어가는 것이 여법(如法)하게 공부를 하는 것이냐?

 

생각이 일어나는 거, 그 생각이 다시 없어지고—생각이 일어났다 꺼지고 또 다른 생각이 일어났다가 또 꺼지고, 그 생각이 꺼지자마자 다시 또 생각이 일어나고.
이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것을 이것을 생사(生死)라 하는 것이여. 이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한 그것이 바로 생사(生死)여.

 

그래서 '일념지간(一念之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다' 하셨어. 한 생각 속에 9백(九百)의 생멸심(生滅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진짜 생사(生死)여.

 


보통 생사(生死)라 하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것을 생(生)이라 하고, 이 몸뚱이가 숨이 끊어진 것을 갖다가 '죽음[死]'이라 그러는데, 그것은 육체(肉體)를 기준으로 두고 한 말이고,

진짜 생사(生死)는 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그것이 바로 생사요, 그 한 생각 속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9백 번이나 미세(微細)한 생사(生死)가 있는 것인데, 그 미세한 생사까지라도 끊어져야 생사 없는 데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 일념지간(一念之間)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있는 그 생사(生死) 속에서 힘을 다해서 화두(話頭)를 거각(擧却)을 해야 하는 것이여.

 

생사가, 그 번뇌망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번뇌망상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공부를 바로 하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여.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한 바로 그곳을 여의지 아니하고, 그곳을 향해서 화두를 거각을 해라.

그 생각이 좋은 생각이건 좋지 못한 생각이건, 과거의 생각이건 또는 미래의 생각이건, 또는 주책없는 당치않는 쓸데없는 생각이건 또는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에 있는 말씀이건, 여하약하(如何若何)를 막론(莫論)하고 무슨 생각이 일어났건 바로 그 생각을 버릴려고 하지 말고,

 

'일어나는 그 생각에서',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 '어째서 판치생모(版齒生毛)라 했는고?'

 

다못 이렇게 공부를 지어갈 것이다.

 

그렇게 화두를 거각하고, 거각하다보면 또 딴생각[別念]이 일어나면 또 다시 화두를 거각하고 화두를 거각하고 하면, 화두가 차츰차츰 들려고 안 해도 들어지고, 화두가 순일(純一)해진다 그말이여.
화두가 순일해지면 자연히 그렇게 퍼일어났던 망상(妄想)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말이여. 그 번뇌와 망상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게 되아.

 

그것을 갖다가 공적(空寂)이라 그러는데.

공적(空寂). '빌 공(空)'자, '적적할 적(寂)'자, 공적(空寂)이라 그러는데.

 


그 공적(空寂)한 경지(境地)에서 까딱하면 화두(話頭)를 놓쳐버려.


너무 고요하고, 너무 편안하고, 너무 깨끗해서, 그 고요하고 편안하고 깨끗한 데에 취해가지고 화두를 놓쳐버리게 되는 수가 있는데, 그것을 갖다가 '무기(無記)'라 그러는 것이여.

 

무기(無記)에 빠지면 깨달을 분(分)이 없어.

아무리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하다 할지라도 화두를 놓쳐버리면 그게 무기에 빠진 것인데, 무기에 빠졌다 하면은 깨닫지는 못하는 거여.

 

무량겁(無量劫)을 그 무기(無記)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지끔 이 몸뚱이가 있는 것까지도 망각(忘却)해버리고, 지금 이 세등선원에 와서 지금 방에서 참선(參禪)을 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까지도 까마득하게 망각해. 한 시간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내간 것 조차도 모르는 거야. 하루 이틀이 지내가도 전혀 모르고. 그 무기공(無記空)에 빠져있는 거야. 이건 공부를 잘못 지어가고 있는 것이다.

 


스승 없이 혼자 토굴 같은 데에 들어가서 생식(生食)을 하면서 그 공부를 알뜰히 한답시고 한 것이 겨우 이런 무기공에 빠져가지고 그 공적(空寂)한 맛을 탐익(耽溺)해서, 그래가지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그렇게 지내가다가 무엇이 좀 알아지고 그러면은 자기가 도통(道通) 했다고 착각(錯覺)을 하는 수없이 많은 부류가 있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 공적한 경지에서 화두(話頭)를 매(昧)하지 말아야, 그 가운데 화두가 성성(惺惺)해야만 그것을 '신령 령(靈)'자, '알 지(知)'자, 영지(靈知)라 하는 거여.

 

그 공적(空寂)한 경지(境地), 적적한 그 경지에서 화두가 성성해야만 무잡무괴(無雜無壞)여.


그 경지에서 견문각지(見聞覺知)에 섞이지 말고, 그 공적한 경지에서 화두가 순일한 그 경지가 무너지지 말아야 정진(精進)을 바로 해가는 것이여.

 


그렇게 공부를 지어가게 되면 불일성지(不日成之)라 그랬어.

며칠 안 가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해. 공안을 타파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 할 날이 오는 것이다.

 


공부라 하는 것은 다못 이렇게 공부를 지어갈 따름인 거여.

여기에 무슨 깨닫기를 구할 것도 없고, 누가 와서 나를 깨닫게 해주기를 기다릴 것도 없고.

 


오늘이 반살림이라, 금년 삼동(三冬)에도 그 참 좋은 선객(禪客)들이 30명이 이렇게 모여가지고 정말 여법하게 이렇게 정진을 해가고 있으니 그런 다행할 도리가 없어.(21분51초~30분52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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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 ; 보제존자가 각오선인에게 보이심.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p103-104. (가로판 p101~103)

念起念滅(염기염멸)을 謂之生死(위지생사)니 當生死之際(당생사지제)하야 須盡力提起話頭(수진력제기화두)호리니 話頭(화두)가 純一(순일)하면 起滅(기멸)이 卽盡(즉진)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生死)라 이르나니, 생사(生死)의 즈음을 당하야 모름지기 힘을 다하야 화두(話頭)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起滅卽盡處(기멸즉진처)를 謂之寂(위지적)이라하니 寂中(적중)에 無話頭(무화두)하면 謂之無記(위지무기)요 寂中(적중)에 不昧話頭(불매화두)하면 謂之靈(위지령)이라하나니 卽此空寂(즉차공적)과 靈知(영지)가 無壞無雜(무괴무잡)하야 如是用功(여시용공)하면 不日成之(불일성지)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하나니 고요한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함이요, 고요한 가운데 화두를 매(昧)하지 아니하면 영(靈)이라고 이르나니, 이 공적(空寂)과 영지(靈知)가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어서 이와 같이 공부를 하면 며칠 안 가서 성취하리라.

 

*보제존자(普濟尊者) : (1320 ~ 1376) 나옹혜근(懶翁惠勤). 고려 스님.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참고.

*무기(無記) : [범] Avyaksita 선(善)•악(惡)•무기(無記) 3성의 하나. ①온갖 법의 도덕적 성질을 3종으로 나눈 가운데서 선도 악도 아닌 성질로서, 선악 중의 어떤 결과도 끌어오지 않는 중간성(中間性)을 말한다. 이 무기에는 바른 지혜의 발생을 방해하는 유부(有覆) 무기가 있고 순수해서 방해하지 않는 무부(無覆) 무기가 있다.

②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온갖 생각이 끊어져 공적(空寂)한 상태에 있을지라도 깨달음에 이른 것이 아니므로 공적한 가운데서도 화두가 성성(惺惺)해야 한다.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딴 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무기공(無記空) ; ①의식이 깨어있지 않고 멍하거나 기억이 없으면서 편안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상태 ②참선중에 고요함에 매료되어 화두를 망각하고 몽롱한 상태.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의식이 대상을 진실 그대로 인지할 수 있도록 분명하게 깨어 있는 상태.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무괴무잡(無壞無雜) ; 무너짐도 없고 섞임도 없다.

*견문각지(見聞覺知) ; 육식(六識) 작용. 외부 대상을 식별, 인식하는 마음의 작용을 이르는 말이다. 안식(眼識)의 작용을 견(見), 이식(耳識)의 작용을 문(聞),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등 3식의 작용을 각(覺), 의식(意識)의 작용을 지(知)라고 한다.

견(見) · 문(聞) · 지(知)에 안식(眼識) · 이식(耳識) · 의식(意識) 등을 각각 배대하고, 각(覺)에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 등을 합해서 배대하는 이유는 안식(眼識) · 이식(耳識) · 의식(意識) 등은 수도(修道)에 유익하고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의 대상을 모두 인식하며, 선(善) · 악(惡) · 무기(無記) 등에 모두 걸쳐 있는 것에 비해 비식(鼻識) · 설식(舌識) · 신식(身識)은 세간의 대상만 인식하고 무기에만 걸쳐 있기 때문이다.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공안을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〇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

 

〇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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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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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