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이뭣고? 화두2019. 5. 11. 13:45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 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에서]
 

(21분 39초)

 

[법문] 전강선사(No.250) - 고담화상법어 2 (72.06.03.새벽)[몽산법어 부록 06](전250)
 
세상에 참선같이 쉬운 것은—다른 것은, 저 돈 같은 것을 번다든지, 무슨 금 같은 것을 그놈을 금 같은 것을 어떻게 땅속에서 캔다든지, 여의주 보배 같은 것을 바다 속에서 구한다든지, 이런 것은 무척 어렵고 못혀.
 
땅속에 그놈 금이 꼭 거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나?
어쩌다가 참, 땅을 파 가지고 금도 나와서 얻기도 허지마는, 거 어쩌다가 그거 원 참! 봉사 문고리 잡기라더니. 문고리같이 쉬운 것이 없지마는 봉사는 눈이 없으니까 문고리를 못 잡거든.
 
금이 땅속에 바로 모두 묻혔지마는, 알면 파면 거기 있지마는, 그거 누가 아나?
모르니까 금 있는 데는 파들 못하고, 없는 데만 파 제끼니 생전 파니 있나?
 
바다 속에 여의주가 있건만, 바다 속에 여의주가 그놈이 어디가 있는지를 알 수가 있어야 바다 속의 여의주를 캐지.
그것은 어쩌다가 바다 속의 여의주를 캘 수도 있고, 어쩌다가 땅속에 금을 팔 수도 있고, 어쩌다가 다행히 봉사가 문고리를 잡을 수도 있지마는, 참으로 얻기가 어렵다 그말이여. 영판 어려워. 전연 없던 않지마는 어려워.
 
허지마는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은 『내가 나를 찾아』
내가 나를—보는 놈, 아는 놈, 밥 먹는 놈, 똥 싸는 놈, 가는 놈, 오는 놈, 그놈이 낸디, 그놈을 찾는 것이여. 그 찾는 놈을 찾아.
그놈은 분명히 있거든. 분명히 있는 놈을 찾는디.
 
어디가 뭐 바다 속에 여의주는 없나? 있지. 허지마는 어디가 있는지 아나?
허지마는, 아! 이 참선은 찾는 놈 고놈이여. 이것 보소. 말하는 놈 이놈이여.
 
세상에, 내가 '나'다.
어째서 내가 나를, 찾은 놈을 찾는데 못 찾아?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찾느니라' 내가 한 말이여, 이 말이? 부처님이 바로 허신 말씀이지.
'콩인지 팥인지만 아는 사람이면은 다 찾느니라' 하! 이렇게 말씀해 놓았다 그말이여.
 
그런데 참선허라고 허면, “아이고! 참선을 해서 견성을 혀? 하이고! 견성헌 사람이 있는가?” 이렇게 그만 이렇게 미(迷)해 버렸다 그말이여.
이 미(迷)해서, 하도 오래오래 미(迷)해서, 내가 나를 찾을 줄 믿지 않아서.
 
믿으면 그만이요. 믿으면 그만 그놈이 낸.. 응, 참선인데.
믿지 않고, 하지 않고, 겁약심만 낸다. “흐! 내가 어찌...” 이것 참.
 
참선이라는 것은 안 된 법이 없느니라.
 
 
또 화두를 어제 아침에 말했지마는 '이뭣고?'
화두 어저께 와, 어제 좀 감서 옴서 떡 서서 “화두 좀 가르켜 달라”고. 그런 법이 아니여. 어디 도를 그렇게 묻고, 그렇게 배우는 법 있는가?
 
그 단정히 참, 위법망구(爲法忘軀)라니 법을 위해서 몸을 바치는 법이고.
하룻밤 하룻낮을, 참선이 천하에 쉽고 찾는 놈, 내가 나를 찾는 놈, 찾는 놈을 되찾는 놈, 아! 천하에 쉽지마는 불가불 배우자면은 그 스님을 찾아가서 조실(祖室) 스님을 찾아가서 여법(如法)히 법다이 그 신심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그렇게 배우는 법이지,
 
가다오다가 '나 참선 좀 가르켜 주시오' '나 화두 하나 일러주시오' 그렇게 허는 법이 아니다 그말이여. 생각해 봐. 거기서 화두를 일러줄 거여?
 
똑 부처님이 사석(私席)에서—부처님이 평생에 그렇게 출세(出世)해 가지고는 중생을 가르킬라고 원허고 원허고 사바세계(娑婆世界)에 강림하셨지마는 부처님이 사석 설법이 없어.
가다오다 아무데나 앉어서 “화두 해라” 이렇게 일러준 법이 없어. 사석 설법이 없다 그말이여.
 
이렇게 법상(法床)에 올라서 법상에서 해 준 참선법을 잘 들어야 하지.
왜 법상에서 헌 설법을 잘 못 듣고, 설법을 잘 못 믿고 왜 사석에서 가다오다가 아무데나 그렇게 물을 수가 있나 말이여.
 
'이뭣고?'를 허는데 '이-뭣고?' 시심마(是甚麽)거든. 시심마.
'이 시(是)'자, 심(甚)자는 '무엇'이란 심(甚)자여. '무엇인고?' 그 심(甚)자여.
시심마(是甚麽), 마(麽)자는 아무 거 의미 없는 자여. '뭣이냐?' 그말이여. 뜻 밑에 그 받침이여.
 
두 자 뿐이여. 심마(甚麽)뿐이여. 심마(甚麽).
시심마(是甚麽)여. 석자 뿐이여.
 
“이”, 봐 “이” 했지.
“이”, “이” 해 놓고 보니 뭐냐? 그말이여. 뭐여?
 
다시 들어보시오. “이” 해 놓고 보니 뭐여?
그걸 못 들어? 못 들을 게 뭐여.
 
천하에 도무지 무슨 뭐, 어디 그 무슨 뭐 뭐 뭐, 어디 거다가 뭐 책보로 싸 놨나? 뭘로 뭐 뭉쳐 놓았나?
 
'이뭣고?' '이- 뭣고?'
'이- 헌 놈이 뭣고?' 할 것 없어. '이- 뭣고?'
 
'뭣고?' 허면 '이- 뭣고?' 
'뭣고?' 허면 알 수 없는 놈 하나 딱! 불거진다.
알 수 없다. 알 수 없구나. 그거이 그걸 활구(活句)라 햐. 알 수 없는 걸 활구라 햐.
 
요만큼이라도 조만큼이라도 터럭끝만큼이라도 실끝만큼이라도 뭣이 붙으면, 뭐 거 따질, 분석할 것이, 해석할 것이, 아는 것이 붙으면 그걸 사(邪)라 햐. 사견(邪見)이라 햐. 그거 사견참선(邪見參禪)이여. 그것은 해석참선이고. 못써.
 
그까짓 참선은 미(迷)헌 중생이 더 미(迷)혀. 단조무명(但助無明)이여. 더 무명만 더 죄만 짓는 것이여. 참선헌다고 해 봤던들 죄만 짓는 것이여.
따져 보고, 분석해 보고, 알아보고 허면은 그만 고것이 숭악한 사선(邪禪), 삿된 선이여.
 
더 참선 되도 않고, 더 되기만 하고, 참선방 앉을래야 앉을 수도 없고, 앉으면 잠 아니면 따지고 분석허고. 천하에 못쓸 것이여.
 
'이- 뭣고?' '이-헌, 이- 뭣고?' 가만히 힘쓸 것 하나 없어. 거 힘쓸 것 하나 없어.
'이뭣고?' 그놈 인자 가만히 '뭣고?'해 놓고는 알 수 없는 놈이 하나 나오면은, 가만히 알 수 없는 그놈의 대가리를, 알 수 없는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가만히 관(觀)헌다. 관혀.
 
관(觀)은 무슨 관인고? 관이라는 것이 '볼 관(觀)'자인디 뭐 다른 것인가?
 
아! 우리집이, 지금 우리집 방안이 어떻게 생겼으며, 우리 방안에 농이 어디 놓아져 있으며, 우리 방 자리는 뭘로 깔았으며,
그 가만히 여기 있어도, 가서 직접—우리 실눈은 지금 여기 와 있고, 내 눈뜨고 보는 이 실눈은 여기 있지마는 눈 감아도 보이지 않어? 환하니. 그와 같은 관(觀)이 있어.
 
거 가서 눈으로 뚝 뜨고 내 눈깔 뚝 뜨고 보는 관(觀) 말고, 눈을 감아도 관이 있어. 그놈이 역력(歷歷)허게 나타나.
 
'이뭣고?' '이- 뭣고? 뭣고?' 의심 좋다.
그 의심, 알 수 없는 '의심 의(疑)'자거든, 알 수 없는 그 '의(疑)'자거든.
 
그게 활구참선이여. 서산 스님께서 바로 또 활구참선 말씀도 해 놓으셨지마는.
수참활구(須參活句)요, 오직 학자가 활구를 헐지언정 막참사구(莫參死句)다. 사구(死句) 말아라.
사구, '죽을 사(死)'자, 사구(死句) 죽은 참선. 사구(死句)란 건 아까 사선(邪禪) 모도 삿된 거, 요리 생각해서 알고, 조리 생각해서 붙여 보고, 요것이다 조것이다.
 
응, 요거 조그만한 것이, 조그만 어린 아이가 아! 그 여러 가지를 내가 한 댓 가지나 낱낱이 해석을 허고 앉었다 그말이여.
"그 어디서 배웠느냐? 니 어디서 그래 가지고 너 왔느냐?” 물은즉, 저 어디 정혜사에서인가 어디서인가 모도 그렇게 해석해 가지고 왔대.
 
고놈 정혜사서 했다고 않지마는, 아! 고런 몇이 거그서 왔는디 다 그러거든.
아 이거 이거 참, 큰일나 버렸어. 맨 그렇거든.
 
거기에는 무슨 참선이 그런 참선이 있는고, 참 이상스러운 선(禪)이여.
그래가지고 그 우리 견성이 어디 있으며, 생사해탈이 어디 있으며, 부처님의 정법이 거기에서 그만 모도 매장되어 버리지, 어디 있어?
그것을 그 뿌럭대기를 좀 파버리고 캐버려야 되지.
 
'이뭣고?'
해 들어갈수록에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 증대되면 그놈만 자꾸 해 나가면은 세상에 그뿐이여, 그뿐이여.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여. 단, 알 수 없는 놈 하나뿐이니 그렇게 단순하고 그렇게 그대로 응, 그대로 활구 아닌가. 얼마나 쉽냐 그말이여. 얼마나 그 참 직접이고.
 
하! 이런 내 참, 왜 거다가서 뭣 땀세 글쎄 사구(死句)를 만들아.
활구(活句)인디, 본래 활구인디 활구를 갖다 따지고 붙이면 사구가 되어 번져.
 
'참선 학자들아! 참선 허는 학자야! 활구참선을 허지 사구참선 말아라. 말아라' 부처님 말씀이 그 말뿐이여. 꼭 활구참선 하나뿐이여, 다시.
 
활구참선법이라는 건 경절문(徑截門)이여.
저 성불도(成佛圖) 놀아 보셨지? 성불도 놀아 보면은 왜 그 각 제취(諸趣)로 천취(天趣)로 모도 돌고, 저 지옥 아귀 삼악도 악취(惡趣)로 돌고 모도 그렇게 되고, 그 다음에는 오십오 위(五十五位) 점차(漸次)로 올라가기도 허고, 이 도 들어가지 못허고 있지?
 
경절문은 바로 뚝딱 올라가서 대각(大覺)으로 올라가 버리는 거여.
 
참선법은 점차(漸次) 지위도 없고, 이렇게 차제(次第)도 없고, 한 계단 한 계단 뛰어서 부처 되아 가는 법도 없고.
바로 그만 내 마음, 내 마음 '이- 헌 놈 이놈, 이- 헌 놈이 뭣고? 이놈' 툭 깨달라 버리면 그만 한발에 한걸음에 오십오 위(位)니 뭔 위(位)니 없어. 그냥 저 최상 대각에 올라가 버려.
 
무슨 점차가 있으며 무슨 지위가 있어?
아! 그런 참선법, 경절문 법이란 말이여. 그렇게 활구참선을 허셔야 된다 그말이여.
 
그러니 내 마음 내가 깨닫는 걸 참선법이라고 허는디—도통법, 그것이 그 바로 도통법이여.
그 법을 내놓고, 정법을 내놓고 뭘 할 것이냐 그말이여.
 
 
이 법을, '이뭣고?'를 해 나가는데....
 
'이뭣고?'를 한번 거각(擧却)하고 또 한번 거각하고.
처음에는 대체 원 그 하도 처음이니까, 하도 내가 생겨난 때가 없건마는 역사가 없건마는, 한번도 해 본 때가 없기 땀세, 처음이기 땀세 안되아.
 
한번 해 봐도 안되고, '이뭣고?' 해 봐도 안되고, '이뭣고?' 허면 도무지 그놈의 자리가 점점 더 껌껌허기만 하고, 뭣이 '이뭣고?'만 허면 뭣이 아는 것이 푹 나올까 싶고.
별별 망상이 그만 뒤끓고, 아무 망상이니 뭣이니 없다가도 '이뭣고?'만 탁 허기만 하면은 그만 그런 놈의 망상이 더 퍼일어나고, 잠이 또 그놈만 생각하면은 그놈 마구니 잠이 들어오네.
 
그놈 참, 그러니까 좀 성가셔. 좀 처음에는 그렇게 성가셔.
 
한 철 혀. 첫 철, 한철 해 보면은 안되아. 그러지마는 안된다고 해서 퇴타(退墮)해 버리고 안 해 버리면 쓸 것인가? 무엇을 헐라고.
 
이놈을, '이뭣고?'를, 내가 나를 깨달라 놓지 못하면, 찾아 놓지 못하면 밤낮 이놈의 칠통(漆桶), 이놈의 깜깜한 중생—세상에 내 낯반대기 나를 몰랐으니 내 온 곳도 깜깜하고,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때도 깜깜해.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건마는 깜깜해. 열 달 동안을 어머니 뱃속에서 그 감옥 생활 했지마는 깜깜혀. 나올 때까장도 깜깜혀. 두어 살 응, 서너 살 먹도록까장 깜깜혀.
아! 겨우겨우 한 너더댓 살 먹으면 인자 그 사람의 그 의식이, 사람의 그 식(識)이 뭣이 붙어서 인제 다 안다 그말이여.
 
자! 허니, 인생 문제다. 세상에 이놈의 인생 문제가 어째도 이렇게 나를 몰라 가지고 이렇게 깜깜해 가지고는 거기에서 남[生]에, 늙어서, 병이 들어서, 뒈지는 것 밖에 없으니 죽는 것 밖에 없으니,
죽으면은 몸뚱이만 죽지, 내가 죽는가? '참내'가 죽어?
 
그 내가 어째 이놈의 고(苦)뿐이 하고야, 아이고야! 고(苦)밖에는 없어.
지옥밖에 떨어질 디 없고, 짓는 것이 죄밖에는 지은 것이 없고, 그저 천사만념(千思萬念)이 깨닫지 못한 중생은 그저 이놈의 생각 일어나는 것이 맨 죄다.
 
맨 삿된 마음, 못된 마음, 살생할 마음, 넘 속일 마음, 도둑질헐 마음, 사음질헐 마음, 그저 맨 그런 못된 마음뿐이니, 마음 죄가 더 크다. 몸뚱이로 짓는 죄보담도 마음으로 짓는 죄가 더 크다.
내가 이 몸뚱이로 남을 때려 패 죽이는 것보담도 마음으로 '저놈 내가 죽여야지' 그것이 더 커. 그게 대승계(大乘戒)여. 더 크다 그말이여.
 
중생의 거족동념(擧足動念)이, 우리 인생의 거족동념이—발 한 번 옮겨 놓고, 마음 한 번 내는 것이 전부가 죄뿐이니, 이놈의 죄만 퍼지어서 저 악도(惡途), 지옥에 떨어지고 개 배때기, 말 배때기, 구렁이 배때기 속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문제냐 그말이여. 인생 문제.
 
금생에 사람 몸뚱이 요까짓 것 좀 되었다고, 똥자루 하나 짊어지고 돌아댕기는 것이지.
참선도 않고 그만 그저 동념 죄업(罪業)만, 거족동념 죄업만 퍼짓고 말 것이여?
 
이놈의 인생 문제 봐라.
인생이 이런 문제를 두고 오늘 살았으니깐 족하고, 오늘 이만 하니깐 족하고, 내 세상이야 싶지. 아이고, 참!
 
이 좀 편안하고, 이 좀 젊고, 이 좀 이만헌 요만한 기회 있을 적에 정신채려라 말이여. 참 채려라.
어찌 '이뭣고?'를 모르냐? 아! '이뭣고?' 하나를 몰라? 글쎄.
 
'이뭣고?' 허는 법이다.
 
한 번 혀, 또 한 번 혀. 그렇게 안되지마는 퇴타하지 말아라. 안될수록에 더욱 발심(發心)을 하고 더욱 믿고 더 철저히 해야 하는 법이다.(13분14초~35분24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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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品)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출세(出世) : ①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②태어나는 것. 법을 체득한 사람이 중생교화를 위해서 세상에 나오는 것 ③세간을 초월하는 것. 출세간(出世間)의 준말. 삼계(三界)를 나오는 것.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단조무명(但助無明) ;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용화선원刊) p82. (가로판 p86)
迷心修道하면  但助無明이니라
미욱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 것은 오직 무명만 도와 줄 뿐이니라.
 
(註解) 悟若未徹이면  修豈稱眞哉리요  悟修之義는  如膏明이  相賴하고  目足이  相資니라
철저히 깨치지 못하였다면 어찌 참되게 닦을 수 있으랴!  깨침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따르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으니라.
*관(觀)한다 ;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한다.
[참고]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
화두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냐 하면은 의심(疑心)입니다.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이뭣고, 이뭣고’하는 글자 석 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을 관(觀)하는 것입니다.
‘이뭣고?’하는 것은 그 의심을 나게 하는 것이고, 그 ‘이뭣고?’함으로써 나온 그 의심을 떠억 관(觀)하는 것입니다. ‘관(觀)한다’고 하는 것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관(觀)한다’고 표현을 하는 건데.
 
그 화두는 혼침(昏沈)이 오고 그럴 때에는 미간(眉間)에다가 두고 관하고, 혼침이 안 올 때에는 배꼽밑에 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초학자가 너무 미간에다가 화두를 들고 관(觀)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上氣)가 될 수가 있으니, 어쨌든지 숨을 들어마실 때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다 들어마셨으면 한참 머물렀다가 내쉬면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이뭣고?’
 
화두를 들 때에는 기왕이면 들었다가 내쉴 때 ‘이뭣고?’를 초학자는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마는 나중에 익숙해지면 호흡에 상관없이 항상 알 수 없는 의심이 단전에 딱 있도록 호흡은 무심(無心) 속에 항상 단전호흡을 하도록 이렇게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39분12초~41분12초)
*역력(歷歷 지낼·수를 셀·다할·두루 력) ; '뚜렷하다'는 말. 눈앞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그 무엇에 대한 묘사이다. 사유 분별할 여지도 없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현상을 묘사한다.
*역력명명(歷歷明明) ; 뚜렷하고 분명하다는 말. 역력과 명명은 동일한 뜻이며, 중첩하여 어감을 강하게 한다.
사유 분별할 여지도 없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현상을 묘사한다. 어떤 조작도 없고 어떤 분별도 들어설 여지없는 본분(本分)이 드러난 경계를 나타낸다.
*수참활구(須參活句) 막참사구(莫參死句) ; '활구를 참구할지언정, 사구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용화선원刊) p49~50. (가로판 p50~51)
大抵學者는  須參活句언정  莫參死句어다
대저 배우는 이들은 모름지기 활구를 참구할지언정, 사구를 참구하지 말지어다.
 
(註解) 活句下에  薦得하면  堪與佛祖爲師요  死句下에  薦得하면  自救도 不了니라  此下는  特擧活句하야  使自悟入이니라 【 要見臨濟인댄  須是鐵漢이니라
 
활구에서 얻어 내면 부처나 조사의 스승이 될 만하고, 사구에서 얻는다면 제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이 아래는 특히 활구를 들어 스스로 깨쳐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 임제를 친견하려면 쇠뭉치로 된 놈이라야.
 
(評曰) 話頭에  有句意二門하니  參句者는 徑截門活句也니 沒心路沒語路하며  無摸索故也요  參意者는  圓頓門死句也니 有理路有語路하며  有聞解思想故也라
 
평해 가로되, 화두(話頭)에 참구(參句)와 참의(參意)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참구는 경절문 활구니, 마음 길이 끊어지고 말 길도 끊어져서 더듬고 만질 수가 없는 때문이요, 참의라 하는 것은 원돈문 사구니, 이치의 길도 있고, 말의 길도 있으며, 들어서 알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절문(徑截門 지름길 경/끊을 절/문 문) ; 지름길문. 경절(徑截)이란 ‘바로 질러 간다’는 뜻. 교문(敎門)의 55위 점차(漸次)를 거치지 않고 한 번 뛰어서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문.
다시 말하면 화두(공안)을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 즉 일체의 어로(語路), 의리(義理), 사량분별의 길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체에 계합함을 일컫는다.
*성불도(成佛圖) ;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놀이 가운데 하나.
염불 · 참선 · 교학의 수행을 통해 성불의 길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을 108단계로 구성한 도판(그림판)과 '나무아미타불'이 적힌 3개의 주사위와 두 분의 부처님과 18분 보살님 명호가 적힌 20개의 말을 사용하여 수행을 통해 육도윤회를 벗어나 깨달음을 이루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게 구성된 놀이.
*오십오위(五十五位) ; 처음 건혜지(乾慧地)를 지나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사가행(四加行)·십지(十地)를 하나하나 거쳐서 올라가야 성불하게 된다는 말.
*점차(漸次) ; 시간이나 차례에 따라 조금씩.
*대각(大覺) ; 부처님의 깨달음. 정각(正覺) 대오(大悟) 등과 같은 뜻이다. 스스로 깨닫고[自覺] 남들도 깨달음으로 인도하여[覺他] 각(覺)과 행(行)이 원만하게 갖추어졌으므로 대각이라 한다. 또는 부처님 자체를 가리키는 말.
*차제(次第) ; 차례(次例 순서 있게 구분하여 벌여 나가는 관계).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땀세 ; 땀새. ‘~땜에(~때문에)’의 사투리.
*마구니 ; 마(魔). [범] ma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퇴타(退墮 물러날 퇴/떨어질·게으를 타)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것.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칠통(漆桶 옻 칠/통 통) ; ①옻칠을 한 통 ②중생의 마음은 무명이 덮여서 어둡고 검기가 옻을 담은 통 속과 같은 상태 또는 그런 상태의 사람. ③무명(無明).
*대승계(大乘戒) ; 대승의 보살이 받아 지켜야 할 계율. 보살계라고도 한다.
*악도(惡道, 惡途) ;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 · 아귀 · 축생 등의 세계. 삼악도(三惡道).
*죄업(罪業) ; 자신과 남에게 해가 되는 그릇된 행동[身]와 말[口]과 생각[意]. 괴로움의 과보를 초래하는 악한[罪] 행위[業 : 身口意 三業]. 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