ㅅ/심로절2018.10.23 15:01

심로절(心路絶) ; 사량분별로 이리저리 따지고 헤아리는, 마음[心]으로 모색할 길[路]이 끊어졌다[絶]는 말. 심사로절(尋思路絶). 심식로절(心識路絶).

우리의 육근(六根), 육식(六識)을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경계에 즉(卽)해서 화두를 들고 자꾸 화두를 들어 나가면 마음길은 저절로 거기서 끊어져 들어간다. 마음길 끊어짐으로써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게 되고,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확철대오(廓徹大悟)가 가까워지는 것이다.

(9분 9초)

[법문] 송담스님(No.427)—90년 10월 첫째일요법회


참선수투조사관(參禪須透祖師關)이요  학도요궁심로단(學道要窮心路斷)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심로단시전체현(心路斷時全體現)하니  여인음수지냉난(如人飮水知冷暖)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참선(參禪)은 수투조사관(須透祖師關)이여.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祖師關)을 뚫어야 한다 그말이여. 조사관.

학도요궁심로절(學道要窮心路絶)이여. 도를 닦아. 도를 닦는 것이 내나 참선인데, 도를 닦아 가는 데는 마음길이 끊어져야 해.

밤낮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이렇다. 돈오가 어떻고 점수가 어떻고, 이것이 어떻고 저것이 어떻고' 밤낮 교리를 가지고 이리저리 따지고 또 공안을 가지고 이리저리 따지고 따지고 따져 봤자 깨달음에서는 점점 멀어져 버리는 거다 그말이여.


정말! 바른 참선을 하고 바르게 도를 닦고자 하면 공안을 타파—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가지고 그 공안의 의단을 타파(打破)하기 위해서는 마음길이 끊어져야 해.

'이뭣고?' 알 수 없는 화두 의심(疑心)을 거각(擧却)할 때에 앞뒤 생각이 탁탁 끊어져 나가야 돼.


눈으로 무엇을 보거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거나, 금강경을 읽거나, 화엄경을 듣거나, 일체처 일체시에 마음길이 탁탁 끊어져 나가야지,

마음속으로 사량계교(思量計較), 사량복탁(思量卜度), 공안에 대해서, 교리에 대해서, 누가 뭔 말을 하면은 그놈을 가지고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고, 비교하고 분석하고, 이러는 동안에는 깨달음을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여.


심로단시전체현(心路斷時全體現)이여. 공안을 타파해 가지고 마음길이 끊어져 버리면은 전체가 드러나. 이러쿵저러쿵 따지기 전에 전체가 드러나는 거다 그말이여.

여인(如人)이 음수(飮水)에 지냉난(知冷暖)이여. 사람이 물을 마시매 차웁고 더운 것을 스스로 알아.


'물이 얼마나 차운가? 얼마나 더운가?' 먹어 보지도 않고 남 보고 물어봤자 어떻게 그것을 가르키며, 먹어 보기도 전에 '이 물이 따신가? 차운가?' 이리저리 따져봤자 무슨 소용이 있냐 그말이여. 떠억 꿀떡꿀떡 마셔 보면 얼마나 뜨시고 얼마나 차운 것을 알 수가 있어.


깨달은, 돈오가 깨달아 보지 않고서는 깨달음이 무엇인가는 정말 알 수가 없는 거여.


깨달아 보지도 않고 깨달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아직 깨닫기도 전에 '닦을 것이 있느냐 없느냐? 돈오돈수냐, 돈오점수냐? 돈오돈수라야지 돈오점수는 그것은 바른 깨달음이 아니다'

백만 년을 두고 패를 갈라서 토론을 하고 따져 본들 그것 따지고 있는 동안에는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갈 뿐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 아니어.


물론 불교 학자들은 어디까지나 학술적으로 경전을 연구하고 또 조사(祖師)의 어록(語錄)도 학자로서 연구하고 그런 입장에서 그런 이론적으로 따지고 분석하고, 비교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르게 나아가는 것이다' 학자로서 따져 가는 것을 나는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학자는 그렇게 따지는 것이 그것이 학자의 본업이고, 그거 학자의 그 나아갈 길이니까.


그러나 우리는 불교를 이론적으로 따지는 그러한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또 전강(田岡) 조실 스님이나 산승(山僧)이 항상 마음으로 원하고 또 이렇게 바라는 것은 학자로서의 나아가는 것을 말씀한 것이 아니라,

정말 활구 선객(禪客)으로서, 참선하는 사람으로서 정법(正法)을 믿고 참선을 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그런 이론적인 연구나 추구보다는 바로 화두 공안에 입각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해 가야만 하루 하면 하루, 한 시간 하면 한 시간, 일 분 하면 일 분,

한 번 화두를 듦으로써 마음길이 일 분 동안 끊어진다면 그만큼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 마음길이 끊어짐으로써 그것이 바른 수행이고, 마음길이 끊어짐으로써 조사관을 타파해 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할 수가 있다.


왜 그러냐?

생사(生死)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삼세육추(三細六麤)의 생각, 그 생각으로 인해서 온갖 몸으로 입으로 뜻으로 업(業)을 지어 가지고 거기서 생사윤회를 하기 때문에 생사윤회를 끊으려면은 우리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단속을 해야 한다.


단속은 덮어 놓고 그놈을 끊으려고 그러고 억누르려고 할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경계(境界)를 당하든지—눈을 통해서, 귀를 통해서, 우리의 육근(六根)을 통해서, 육식(六識)을 통해서 일어나는 모든 경계에 즉(卽)할 때마다 화두를 들고 자꾸 화두를 들어 나가면 화두를 듦으로써 마음길은 저절로 거기서 끊어져 들어간다 그말이여.

마음길 끊어짐으로써 의단이 독로하게 되고, 의단이 독로해서 타성일편이 되면 확철대오(廓徹大悟)가 가까워지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러한 견지에서 본다면 '돈수돈오냐, 돈수점오냐, 보조 스님의 말이 옳으냐 그르냐'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20분56초~30분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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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참선수투조사관~'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示安山郡夫人妙幢(안산군 묘당부인에게 보임)'

〇參禪須透祖師關 學道要窮心路斷 心路斷時全體現 如人飮水知冷暖 到此田地莫問人 須參本色呈機看

*조사관(祖師關) ; 조사의 경지에 이르는 관문(關門), 곧 화두(공안)을 말함. 관문(關門)은 옛날에 국방상으로나 경제상으로 중요한 곳에 군사를 두어 지키게 하고, 내왕하는 사람과 수출입하는 물건을 검사하는 곳이다. 화두는 이것을 통과하여야 견성 성불하게 되는 것이므로 선종(禪宗)의 관문이 된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공안(公案) ; 또는 화두(話頭)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사량계교(思量計較)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분별(思量分別)과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돈오(頓悟) 점수(漸修) : 불도를 닦아 나아가는 데 그 사람의 바탕(기질)을 따라, 차츰차츰 여러 계단을 밟아 올라가서 나중에 대각(大覺)을 이루는 것을 「오래 닦음」 곧 점수(漸修)라 하고, 어떤 이는 단번에 크게 깨쳐서 한 뜀에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을 「단박(몰록) 깨침」 곧 돈오(頓悟)라고 한다.


이치는 비록 단박에 깨쳤다 하더라도 오랫동안 익혀 온 버릇, 곧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는 한때에 완전히 끊어 버릴 수가 없고, 현실의 사물 처리에 자유자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래오래 닦아 나아가야 한다。그러므로 결국은 누구나 「점수」가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깨치지 않고는 옳게 닦을 수가 없는 것이므로 조사 스님들은 닦는 것보다 깨치는 것을 중요하게 말하는 바이다.

*조사어록(祖師語錄) ; 선종(禪宗)에서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를 전하는 조사(禪師)나 귀의나 존경을 받을 만한 선승(禪僧)의 가르침, 문답, 언행을 모은 글, 또는 그 책.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선객(禪客 참선 선/손님·사람 객) ; 참선 수행을 하는 사람.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생사(生死) ; ①생과 사.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 ②유전(流轉 윤회의 생존. 생사의 갈림길)의 모습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말. 미혹(迷惑 도리에 어두운 것). 미혹의 세계. 미혹의 모습. 현실 사회의 고뇌. 태어남과 죽음이 번갈아 끊임이 없는 미혹의 세계. 윤회와 같음.

[참고] 송담스님(No.389)—89년(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에서.

중생의 번뇌심(煩惱心) ‘한 생각’ 일어날 때 새로 태어난 것이고, 그 번뇌가 꺼질 때 또 죽는 것, ‘우리의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것이 바로 생사(生死)인 것입니다.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한 그것이 원인이 되어서 생사윤회를 하는 것이어서, ‘이 몸뚱이 살아있으면서 생각 일어났다 꺼졌다’하는 거 그 자체가 바로 생사심(生死心)이요, 생사심이 바로 생사윤회(生死輪廻)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만의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지고, 생각이 일어났다 없어집니다.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을 모르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날 때마다 업(業)만 더하고, 점점 고통이 심한 윤회를 거듭할 것입니다마는,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한 생각이 일어날 때 ‘이뭣고?’ 자신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드는 것입니다.

‘이뭣고?’ 한마디 본참화두를 거각(擧却)할 때,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을 물리치고, 업장소멸이 되고, 진리를 향해서 나아가게 됩니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삼세육추(三細六麤 석 삼/가늘 세/석 삼/거칠 추) ; 『대승기신론』에서 말하는 근본무명(根本無明)의 3상(相)과 지말무명(枝末無明)의 6상(相)을 말함. 3세(細)란 그 상(相)의 작용이 미세하므로 세(細)라 하고, 6추(麤)는 거칠고 엉성하기 때문에 추(麤)라 함.


청정한 진여의 마음이 근본무명에 의하여 망동하여 유전하는, 진실에서 어긋난 마음으로의 3가지 미세한 마음 상태[三細]와 이어지는 거칠은 6단계의 마음 상태[六麤]를 설명하는 '대승기신론'에서 밝힌 교설.

*삼업(三業) : 몸(身)과 입(口)과 뜻(意)으로 짓는 세 가지 행동 전체를 말한다。몸으로 짓는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세 가지와, 입으로 짓는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네 가지와, 뜻으로 짓는 탐심(貪心), 진심(瞋心), 치심(痴心)의 세 가지가 있다。이것이 삼업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의 소의(所依)가 되어 육식을 일으켜 대상을 인식케 하는 근원이다。곧 눈(眼) • 귀(耳) • 코(鼻) • 혀(舌) • 몸(身) • 뜻(意)의 여섯 가지 기관(器官)을 말한다.

*육식(六識) ;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의 육근(六根)으로 각각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의 육경(六境)을 식별하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의 6가지 마음 작용. 산스크리트어 ṣaḍ-vijñāna 

①안식(眼識). 시각 기관〔眼〕으로 시각 대상〔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②이식(耳識). 청각 기관〔耳〕으로 청각 대상〔聲〕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③비식(鼻識). 후각 기관〔鼻〕으로 후각 대상〔香〕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④설식(舌識). 미각 기관〔舌〕으로 미각 대상〔味〕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⑤신식(身識). 촉각 기관〔身〕으로 촉각 대상〔觸〕을 식별하는 마음 작용.

⑥의식(意識). 의식 기능〔意〕으로 의식 내용〔法〕을 식별·인식하는 마음 작용.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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