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아상(我相)2023. 12. 13. 19:37

아상(No.414)—도(道)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 아상(我相)이 무너져야 하는 것 | 벼는 익을수록에 고개를 숙인다 | 태교(胎敎) | 금강경(金剛經)의 요지가 아상을 깨트리는 것 | 이념 전쟁이나, 종교 전쟁도 한마디로 말해서 아상(我相) 때문에 일어나는 것 | 아상을 꺾으려면 ‘이뭣고?’를 해야.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①오온(五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형성된 아(我)를 실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②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타자와 구분짓는 자의식 또는 그것을 형성하는 온갖 관념의 집합.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서 육조구결(六祖口訣).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 p135~136) (『육조 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 p98~99) 참고.
衆生佛性 本無有異 緣有四相 不入無餘涅槃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迷 卽佛是衆生 悟 卽衆生是佛

중생과 불성이 본래 다름이 없건만 사상(四相)이 있으므로 인하여 무여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님입니다. 미(迷)하면 불(佛)이 곧 중생이 되고,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불(佛)입니다.

迷人 恃有財寶學問族姓 輕慢一切人 名我相 雖行仁義禮智信 而意高自負 不行普敬 言我解行仁義禮智信 不合敬爾 名人相 好事歸己 惡事施人 名衆生相 對境取捨分別 名壽者相 是謂凡夫四相
 
어리석은 사람이 재산이나 학문 또는 출신[族姓]이 있음에 의하여 모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我相)이라 하고, 비록 인의예지신을 행하나 뜻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져서 널리 모든 사람들을 공경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인의예지신을 행할 줄 안다’하고 남을 공경하지 않음을 인상(人相)이라 합니다.
좋은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나쁜 일은 남에게 돌리는 것을 중생상(衆生相)이라 하고, 어떤 경계에 대하여 취사분별하는 것을 수자상(壽者相)이라 하니 이것들을 범부(凡夫)의 사상(四相)이라 합니다.

修行人 亦有四相 心有能所 輕慢衆生 名我相 自恃持戒 輕破戒者 名人相 厭三塗故 願生諸天 是衆生相 心愛長年 而勤修福業 諸執不忘 是壽者相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수행인도 또한 사상(四相)이 있으니, 마음에 능소(能所)가 있어서 중생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이라 하고, 자신은 계를 지킨다고 파계자를 업신여기는 것을 인상이라 합니다.
삼악도의 고통을 싫어하여 천상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 중생상이요, 오래 살고자 부지런히 복업을 닦으면서도 온갖 집착을 잊지 못하는 것이 수자상이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님입니다.

(19분 11초)



[법문] 송담스님(No.414)—1990년 4월 첫째 일요법회(용414)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에 상관이 없고, 지식의 유무도 상관이 없고, 몸이 아프면 아픈 대로, 지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지식이 있다고 뽐낼 것도 없고, 재산과 권리가 높다고 남을 업신여길 것도 없고,
이 공부를 해 나가는 이 최상승법(最上乘法)에서는 첫째, 내가 지식이 있다고 해서 아상을 갖거나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으니—도(道)에 들어가는 첫 관문이 아상(我相)이 무너져야 하는 것인데, 아상이 어디에 있느냐 그 말이여.

아무리 권리가 높고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내가 권리가 높다고 권리를 부리거나, 아무리 내가 재산이 많다고 남을 업신여기는 생각이 없는데, 그리고서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이뭣고?’ 화두만을 거각(擧却)하고, 거각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성실히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데 어디에 아상(我相)이 붙고, 아만(我慢)이 붙고, 남을 경멸하는 생각이 잠시인들 어디가 붙을 수가 있느냐 그 말이여.

아무리 팔만대장경을 종횡으로 읽고 외우고, 아무리 박사 학위를 수십 개를 가졌고, 모르는 것이 없이 온 세상의 학문을 다 통달했다 하더라도 ‘내가 잘났다, 내가 제일이다’ 아상과 아만을 가지고 남을 업신여기고, 남을 짓밟고 이러한 생각이 마음속에 차 있다면 정말 그 사람은 존경 받을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에 고개를 숙인다’ 했습니다. 학벌이 높고 재산이 많고 권리가 높을수록에 아만심(我慢心)이 없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고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남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다면 어디를 가나 그 사람은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남을 업신여기고 짓밟은 아만심과 아상이 꽉 차 가지고 목에 힘을 주고 있으면, 가는 곳마다 그 사람은 미움을 받게 되고 아무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하고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무엇을 많이 해 가지고 가야 시집가서 업신여김을 안 받고 그런다고 부모를 졸라서 기둥뿌리까지 뽑아 가지고 무엇을 잔뜩 해 가지고 갈려고 그러고, 갈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니까 그러한 정도의 인간으로 밖에는 취급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절대로 귀여움 받고 존경 받지 못합니다.
해 가지고 가는 것은 가정 형편대로 해 가지고 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리를 해서 큰 빚을 내다가 해 가지고 가는 것도 옳지 못하고, 또 형편이 넉넉하면 좀 잘해 가지고 가는 것도 좋지 형편이 넉넉하면서도 쬐금 해 가지고 가고,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여. 형편대로 하면 되는 거여.

곤란하면 곤란한 대로 해 가고, 또 넉넉하면 넉넉허니 해 가지고 가서 모다 선물도 하고 그게 좋지마는, 첫째는 해 가지고 간 사람도 그러려니와, 또 시댁에서도 그거 많이 해 간 것으로써 며느리의 점수를 매겨서 되겠느냐 그 말이여.
형편이 어려운데 너무 많이 해 가지고 오면 오히려 그것을 좋아하지 않고, 미리서부터서 조금만 해 오라고 이렇게 해 주어야 하거든.

며느리가 누구입니까? 생전 사후에 자기의 부모를 버리고 내 집 식구로 온 사람이니, 바로 내 집 호적(戶籍)으로 들어와 가지고 나의 혈통을 이어갈 며느리니 그 참 얼마나 소중하냐 그 말이여. 어쨌든지 자기 뱃속에서 난 딸보다도 더 소중히 여기고 귀엽게 봐 주어야 하거든. 딸은 자기 뱃속으로 낳지마는 결국은 자기를 버리고 신랑 따라서 갈 사람이니까.

며느리는 비록 남의 뱃속에서 나왔지마는 그 자기 부모를 버리고 나의 혈통을 이어주기 위해서 내 자식과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어서 내 손자를 낳아 줄 며느리니, 어쨌든지 처음부터서 그러한 마음으로 맞아들이고 그러한 마음으로 안아주면, 얼마나 시부모를 마음으로부터서 존경하고 친정 어머니보다도 더 좋아할 것이 아니냐 그 말이여.
그러면은 아들 마음도 편하고, 시부모 마음도 편하고, 며느리 마음이 편해야 온 식구 마음이 편하고, 또 그 뱃속에서 나오는 손주 손녀도 이쁘고 좋은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다 그 말이여.

포태(胞胎)해 가지고 또 그 포태하기 전부터서 속 썩고 한탄과 원망, 슬픔과 괴로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애기를 포태를 하게 되면 그 애기가 절대로 훌륭한 자식을 낳을 수가 없습니다. 또 포태한 뒤에도 계속 속 썩고 원망하고 슬픔과 원한에 사무치는 마음으로 열 달을 지내면은 바로 애기가 그런 생각을 먹고 삽니다.
낳아 가지고 아무리 잘먹이고 잘 입혀 봤자 뱃속에 열 달 있는 동안에 그 애기 엄마가 속 썩고 원망하고 신경질 내고 미워하고 이러한 생각으로 되면은 그 애기는 나중에 잘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 태교(胎敎)라고 그러죠.

가끔 ‘며느리’나 ‘시어머니’ 말씀을 이 법상(法床)에 와서 하게 되는데, 여러 보살님네나 거사님네, 또 아직 결혼을 안 한 청년이나 처녀들, 일단은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시부모를 모시게 되고, 자기도 얼마 안 가면 또 애기를 포태하고, 또 그 애기가 나서 자라면은 또 며느리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도 닦는데 아상(我相)을 깨트리는 것이 깨달음에 나아가는 제1 단계다.
그래서 금강경(金剛經)에도, 그 금강경은 부처님께서 21년 동안 설하신 반야부(般若部) 육백부(六百部) 경전 속에의 한 권인데, 거기에 21년 동안 설하신 법문의 요지가 아상을 깨트리는 것이거든.
아상,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했지마는 결국은 아상이여. 아상(我相) 하나를 무너뜨림으로써 도(道)에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21년 동안을 설하신 것이다 그 말이여.

이것은 도에 들어가는 데에만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세속에 사는 데에도 그 아상 그놈 때문에 부부간에도 싸우게 되고, 며느리와 시부모와도 싸우게 되고, 형제간에도 싸우게 되고, 온 세계가 이 아상 그놈 때문에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기 마음을 비우고, 피차 자기 마음을 비우면 저 사람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데, 각자 내 마음을 주장을 하고, 내 의견을 주장하고,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그런 데에서 남의 의견은 무시하고 짓밟게 되니까 그래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념의 전쟁, ‘공산주의다 사회주의다 민주주의다 자본주의다’ 하는 이념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를 않고, 앞으로 언젠가는 또 신앙의 종교의 싸움이 있으리라고 진즉부터 그런 말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것도 역시 이념의 전쟁이나, 종교 신앙의 전쟁도 한마디로 말해서 아상(我相) 때문에 그런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그러한 오천 년 역사에 처음 맞이하는 그러한 세계에 도약하는 그런 좋은 계기를 맞이했으면서도 아상(我相), 아애(我愛), 아만(我慢), 아치(我癡), 그 '내'라고 하는 그것 때문에 그러한 좋은 도약의 계기를 살려나가지 못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 대단히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노사의 관계가 그 공장, 회사의 경영자나 또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가 어찌 따로따로 남이겠습니까?
사장이 공장을 지음으로 해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거기에 직장을 얻어 가지고 일을 하게 되고, 그 노동자가 열심히 일을 잘함으로 해서 회사가 잘되어야 사장도 사업이 번창을 할 것이고, 아무리 노동자가 일을 할려고 해도 회사 자체가 문을 닫고 망해 버리면은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고, 다같이 피차(彼此)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관계이면서 어찌 자기 쪽만 생각하고 웬수처럼 미워하고, 자기 욕심만 챙겨 가지고서야 어떻게 그 회사가 잘될 수가 있겠습니까?

또 정부와 백성의 관계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정부는 백성이 세운 정부이기 때문에 정부는 백성을 위해서 모든 일을 잘해야 할 것이고, 백성은 그 정부가 잘되어 갈 수 있도록 모두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더 열심히 함으로 해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잘 다스려져야 우리나라가 잘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또 역시 나라고 하는 아만(我慢), 아상(我相) 이놈을 비움으로 해서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남북이 통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역시 아만(我慢) ‘내가 제일이고 내가 나만이 옳다’고 주장을 하고 상대방의 의사나 상대방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대화가 통하지를 않을 것입니다.

항상 사람이 얼굴이 다르면 생각도 다르듯이, 해방 후 40여 년이 지낸 동안 똑같은 민족이면서 체제가 다르니 만큼, 또 교육 제도가 다르니 만큼, 이념이 다른 만큼, 많이 차등이 생겼습니다.
아무리 이념이 다르고, 체제가 다르다 하더라도 우리는 단군(檀君)의 후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무리 38선(三八線)이라고 하는 선이 가로막혔다 하더라도 남북이 다 우리 한 나라인 것입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통일이 되어야만 하고, 다시는 한 민족끼리 싸우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는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부터 아만심 먼저 꺾고 아상을 꺾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데에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고, 상대방을 도와줄 수도 있고, 대화할 수 있는 길도 트이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가 옳다’—속담에 ‘방에 들어오면 시어머니 말이 옳고, 부엌에 나가면 며느리 말이 옳다’ 그러는데, 각자 나름대로의 다 의견이 있겠지만 자기의 의견만을 주장해 가지고서는 대화는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첫째, 어떻게 하면은 이 아상(我相)을 꺾느냐? 분별심(分別心), 눈으로 무엇을 보아도 ‘이뭣고?’ 귀를 통해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 ‘이뭣고?’ 먼저 해!
‘이뭣고?’ 먼저 터~억 챙기고 나면—처음에는 어렵지만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하면, 나중에는 챙기지 않아도 저절로 챙겨진 때가 오는 것입니다. 무엇이고 항상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체질화가 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집으로 오고, 직장으로 집으로 오고, 항상 그렇게 댕겨 버릇한 사람은 직장에서 나와 가지고 술을 잔뜩 먹고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다시피 그래도 집을 찾아옵니다. 왜 그러냐 하면, 많이 그 길을 다녔기 때문에 술이 만취가 되어 가지고 전혀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도 집을 찾아오는 예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꾸 ‘이뭣고?’를 하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안 된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또 ‘이뭣고?’를 챙겨. 자꾸 챙기고 또 챙기고 하면은 나중에는 챙길려고 안 해도 저절로 챙겨지거든. 척! 눈에 무엇이 들어왔다 하면 ‘이뭣고?’가 먼저 나오거든. 귀로 무슨 소리를 들었다 하면은 ‘이뭣고?’ 

나중에는 ‘이뭣고?’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산을 봐도 산이 보이지 않고, 물을 봐도 물이 보이지를 아니해. 수백 명 수천 명이 북실거리는 시장 바닥에 가서 있어도 아무것도 안 보여. 하나도 시끄럽지도 않고.
그래서 옛날에는 공부하시던 도인(道人)들이 일부러 요중 공부(鬧中工夫)를 시험해 보고 익히기 위해서 장날이 돌아오면은 점심밥을 싸 가지고 장터에 가서 그 복잡하고 시끄러운 데 가서 어디 한쪽에다가 방석을 하나 딱 놓고 가만히 앉아서 정진을 하고, 점심때가 되면 그놈 까먹고, 그러고 또 해 저물 때까지 또 하다가 장이 파하면은 토굴에 돌아와서 공부하고. 그러한 분들도 있었다고 그럽니다.(32분32초~51분4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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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 ; 모든 곳 모든 때에. 언제 어디서나.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 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아만(我慢 나 아/거만할·게으를 만) ; ①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아(我)를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호적(戶籍) ; 호주(戶主)를 중심으로 하여 호주와 가족과의 관계, 본적지, 성명, 생년월일 등 신분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공적인 장부. 2008년 호적법 폐지에 따라 없어지고 ‘가족 관계 등록부’가 이를 대체하게 되었다.
*일심동체(一心同體) ; 한마음 한 몸이라는 뜻으로, 서로 굳게 결합함을 이르는 말.
*포태(胞胎 배·태보胎褓·자궁 포/아이를 배다·태아 태) ; 아이나 새끼를 뱀.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금강경(金剛經) ; 금강경의 완전한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또는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金剛)은 단단하고 날카로움을 뜻하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키며, 반야(般若)는 지혜를, 바라밀(波羅蜜)은 저편 언덕으로 건너는 것, 즉 열반에 이른다는 바라밀다(波羅蜜多)의 줄임말이다. 풀이하면 ‘금강석처럼 견고한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라는 부처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이 금강경은 대 반야경 육백부(六百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고, 그 내용이 약 3백송(三百頌) 정도의 분량이기 때문에 ‘삼백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대략 서기 150~200년경의 대승경전 최초기에 만들어진 경전이라 할 수 있다.

「금강경」의 금강(金剛)은 금강석 곧 다이아몬드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기에 무엇이라도 부술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예리하기에 무엇이라도 자를 수 있으며, 세상에서 가장 반짝이기에 어둠을 밝게 비출 수 있다는 금강석을 부처님의 가르침, 반야의 지혜로 비유한 것이다. 금강석처럼 단단하고 예리하고 반짝이는 완전한 반야의 공지(空智)로 보살행을 수행하면 열반을 성취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설한 경전이란 뜻.
「금강경」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문답으로 전개되어, 공(空)사상에 입각하여 집착 없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일을 중심 내용으로 대승불교의 기본 사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①오온(五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형성된 아(我)를 실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것. ②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타자와 구분짓는 자의식 또는 그것을 형성하는 온갖 관념의 집합.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제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서 육조구결(六祖口訣).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 p135~136) (『육조 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 p98~99) 참고.
衆生佛性 本無有異 緣有四相 不入無餘涅槃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迷 卽佛是衆生 悟 卽衆生是佛

중생과 불성이 본래 다름이 없건만 사상(四相)이 있으므로 인하여 무여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님입니다. 미(迷)하면 불(佛)이 곧 중생이 되고,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불(佛)입니다.

迷人 恃有財寶學問族姓 輕慢一切人 名我相 雖行仁義禮智信 而意高自負 不行普敬 言我解行仁義禮智信 不合敬爾 名人相 好事歸己 惡事施人 名衆生相 對境取捨分別 名壽者相 是謂凡夫四相
 
어리석은 사람이 재산이나 학문 또는 출신[族姓]이 있음에 의하여 모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我相)이라 하고, 비록 인의예지신을 행하나 뜻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져서 널리 모든 사람들을 공경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인의예지신을 행할 줄 안다’하고 남을 공경하지 않음을 인상(人相)이라 합니다.
좋은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나쁜 일은 남에게 돌리는 것을 중생상(衆生相)이라 하고, 어떤 경계에 대하여 취사분별하는 것을 수자상(壽者相)이라 하니 이것들을 범부(凡夫)의 사상(四相)이라 합니다.

修行人 亦有四相 心有能所 輕慢衆生 名我相 自恃持戒 輕破戒者 名人相 厭三塗故 願生諸天 是衆生相 心愛長年 而勤修福業 諸執不忘 是壽者相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수행인도 또한 사상(四相)이 있으니, 마음에 능소(能所)가 있어서 중생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이라 하고, 자신은 계를 지킨다고 파계자를 업신여기는 것을 인상이라 합니다.
삼악도의 고통을 싫어하여 천상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 중생상이요, 오래 살고자 부지런히 복업을 닦으면서도 온갖 집착을 잊지 못하는 것이 수자상이니, 사상이 있으면 곧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곧 부처님입니다.

*아애(我愛) ; 아(我)에 대한 깊은 애착심. 아탐(我貪).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제7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아치(我癡) ; 아(我)에 대한 무지(無知). 무아(無我)의 이치를 알지 못하여 일으키는 번뇌. 네 가지 근본번뇌(四根本煩惱, 四惑) 중 나머지 세 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이다.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의 네 가지 번뇌[我癡, 我見, 我愛, 我慢]의 하나.
*단군(檀君) ; 우리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 단군 신화에 따르면 천제(天帝)인 환인(桓因)의 손자이며 환웅(桓雄)의 아들로 기원전 2333년경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朝鮮), 즉 단국(檀國)을 세워 약 2천 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38선(三八線) ; 제2차 세계 대전의 전후 처리 과정에서 1945년 8월15일 맥아더가 발표한 ‘일반명령 제1호’에 의해 한반도의 38도선 이북의 일본군의 항복은 소련이, 이남의 일본군의 항복은 미국이 접수한, 미·소 양국의 한반도 분할점령 군사분계선.
38선은 1953년 6 · 25 전쟁이 끝나고 정전협정에 따라 설정된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다르지만, 현재까지도 흔히 군사분계선을 삼팔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칠 타/이룰 성/한 일/조각 편) : ①'쳐서[打] 한 조각(一片, 덩어리)을 이룬다[成]'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요중 공부(鬧中工夫 시끄러울 뇨/가운데 중) ; 시끄러운 가운데 하는 공부.
*공부(功夫, 工夫) ; ①배우거나 닦음. 힘써 수행함. 생각을 집중함. ②노력. 수고.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6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의 수행 거처’를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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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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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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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