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법보시2020. 11. 17. 11:04

법보시(세등선원No.39)—스님과 신도가 여러 생을 지내는 동안 서로 교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하게끔 공양을 해 주고 있다 |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무슨 핑계 안돼!

 

*법보시(法布施) ; 다른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타인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법을 보시한 공덕은 매우 뛰어나 한량이 없다고 하셨다.

 

[참고] 『제경요집(諸經要集)』 10권. 18. 육도부(六度部) [육도부에는 여섯 가지 편(篇)이 있음]

제1 보시편(布施篇第一)[보시에 따로 일곱 가지 연(緣)이 있음] (4)법시연(法施緣).

故智度論云 佛說 施中法施第一 何以故 財施有量 法施無量 財施欲界報 法施出三界報 財施不能斷漏 法施淸升彼岸 財施但感人天報 法施通感三乘果

 

그러므로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시 중에는 법시(法施)가 제일이다. 왜냐 하면 재물의 보시는 한량이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한량이 없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욕계(欲界)의 과보를 얻지만 법(法)의 보시는 삼계(三界)를 벗어나는 과보를 얻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번뇌[漏]를 끊을 수 없으나 법(法)의 보시는 저 언덕[彼岸]에 청정하게 오르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다만 인간 세계와 천상의 과보를 감득(感得)하지만 법(法)의 보시는 삼승(三乘)의 과보를 감통(感通)하기 때문이다.

 

財施愚智俱閑 法施唯局智人 財施唯能施者得福 法施通益能所 財施愚畜能受 法施唯局聰人 財施但益色身 法施能利心神 財施能增貪病 法施能除三毒

 

재물의 보시는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 다 할 수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게 국한되었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오직 보시한 사람만이 복을 얻을 수 있으나 법(法)의 보시는 보시한 사람과 보시를 받은 사람이 통틀어 이익이 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어리석은 짐승도 받을 수 있지만 법(法)의 보시는 오직 총명한 사람에 국한될 뿐이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다만 색신(色身)만을 이롭게 할 뿐이지만 법(法)의 보시는 능히 마음과 정신까지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탐욕과 질병을 증장시킬 수 있으나 법(法)의 보시는 삼독(三毒)을 다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니라'

 

제6 지혜편(智慧篇第六)[여기에는 두 가지 연(緣)이 있음] (2)구법연(求法緣第二)

布施飮食 濟一日之命 施珍寶者 濟一世之厄 增益生死 說法敎化者 能令衆生 出世間道 得三乘果 免三惡道 受人天樂 是故佛說 以法布施 功德無量

 

음식을 보시하는 것은 하루 동안의 목숨만을 구제해 주는 것이요, 진귀한 보배로 보시하는 것은 한 세대의 재액을 구제해 주고 생사에 이익을 더하는 것에 그치지만, 법을 설하여 교화하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을 벗어나게 하는 도(道)로써 삼승(三乘)의 과(果)를 얻고 세 갈래 악한 세계[三惡道]를 면하게 하여 인간이나 하늘의 즐거움[人天樂]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法)을 보시(布施)하는 것은 그 공덕이 한량없다」고 하셨습니다.

 

(7분 35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39)—1982(임술)년 하안거 결제 법어(82.04.17) (세등39)

 

스님네는 여러 신남신녀(信男信女)가 정성스럽게 바친 보시와 공양(供養)에 의해서 이 도(道)를 닦아가야 할 이 소중한 육체를 보전해 나가고, 그러한 여러분의 신심과 공양하는 공덕(功德)으로 도업을 잘 닦아서 스스로 깨닫고 나아가서는 많은 중생을 제도(濟度)해야 할 중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물질적으로 정성으로 부처님과 법과 스님네를 잘 공양하고 보호하고 받듬으로써 스님으로부터서는 법(法)의 보시(布施)를 받는 것입니다.

재물을 물질을 여러분은 스님네에게 보시하고, 스님네는 수행으로써 여러분에게 법보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밤낮 보시만 하고, 스님네는 우리한테 무엇을 보시를 해 주느냐?'

법을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숙명통(宿命通)을 얻지를 못해서 전생사(前生事)를 잊어버려서 잘 모릅니다마는, 전생에 여러분이 스님이었었고 우리가 신도였었을런지도 모릅니다.

(전생에) 우리가 신도가 되어서, 스님으로 공부하시는 여러분에게 보시를 해서 그 인연으로 금생에는 우리가 출가해서 스님이 되고, 여러분은 세속에서 신도가 되어 가지고 교대해서 여러분이 우리를 또 이렇게 보시를 하고 우리를 잘 공양을 해서 우리를 이렇게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는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이 가운데 혹 숙명통이 열린 분이 보면 틀림없이 그러한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보시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이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금강경(金剛經)』에 말씀하시기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야말로 그 공덕이 한량이 없이 크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무주상으로 보시를 하고 대중공양(大衆供養)을 해서 스님네가 어쨌든지 영양보충을 충분히 해서 건강한 육체로 건전한 정신으로 정진을 잘해서 결정코 금생에 대도를 성취하도록 잘해 주시고.

그 공덕으로 여러분 가정에는 항시 신심과 기쁨이 넘쳐 흘러서 모든 재앙은 다 물러나가 버리고, 크고 작은 소원이 차례로 다 성취가 되어서 부처님 제자로서 만복(萬福)을 성취하고 유루복(有漏福)과 무루복(無漏福)을 갖추어 구족(具足)해서, 위로는 보리(菩提)를 구하고 아래로는 부처님의 뜻을 받들어서 모든 사람이 자기로 인해서 부처님께 귀의(歸依)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인연이 되도록 해주시기를 간절히 부탁을 합니다.

 

오늘도 강영선 보살이라고 하는 신심 있는 보살이 대중공양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공양을 기쁜 마음으로 받으시고 그 인연으로 ‘법(法)의 기쁨과 선(禪)의 기쁨’, 법희선열(法喜禪悅)을 얻으셔서 세세생생(世世生生)에 그 강영선 보살님과 함께—악도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항시 정법문중(正法門中)에 다시 만나서 대도를 성취할 인연이 되기를 부처님께 축원을 합니다.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후세당연한만단(後世當然恨萬端)하리라

나무~아미타불~

 

금생(今生)에 약불종사어(若不從斯語)하면, 금생에 만약 이렇게 간절히 일러드리는 말씀을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후생(後生)에 당연한만단(當然恨萬端)하리라.

 

후생에 염라대왕(閻羅大王) 앞에 가서 ‘아! 내가 그때 송담 스님이 그렇게 목이 쇠도록 일러준 그 말할 때 공연히 아들 핑계, 딸 핑계, 살림 핑계, 무슨 핑계, 뒤로 미루고 그럭저럭 지내가지고 내가 이런 일을 당하는구나. 어째서 내가 그때 열심히 공부를 안 했던가!’

염라대왕 앞에 가서, 저승에 가서 아무리 후회하고 한탄을 해봤자 그때는 이미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참선해 나가는 구체적인 법문에 대해서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녹음을 통해서 너무너무 고구정녕(苦口叮嚀)하게 해 주셨기 때문에 생략을 하고 하좌하겠습니다.(53분3초~60분3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법보시(法布施) ; 다른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타인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법을 보시한 공덕은 매우 뛰어나 한량이 없다고 하셨다.

 

[참고] 『제경요집(諸經要集)』 10권. (석도세釋道世 집集 |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18. 육도부(六度部) [육도부에는 여섯 가지 편(篇)이 있음]

제1 보시편(布施篇第一)[보시에 따로 일곱 가지 연(緣)이 있음] (4)법시연(法施緣).

 

述曰:此明財 法相對 挍量優劣

故智度論云 佛說 施中法施第一 何以故 財施有量 法施無量 財施欲界報 法施出三界報 財施不能斷漏 法施淸升彼岸 財施但感人天報 法施通感三乘果

財施愚智俱閑 法施唯局智人 財施唯能施者得福 法施通益能所 財施愚畜能受 法施唯局聰人 財施但益色身 法施能利心神 財施能增貪病 法施能除三毒

 

[自述] 이것은 재시(財施)와 법시(法施)를 서로 대비시켜 그 우세하고 하열함을 비교하여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론(智度論)』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보시 중에는 법시(法施)가 제일이다. 왜냐 하면 재물의 보시는 한량이 있지만 법의 보시는 한량이 없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욕계(欲界)의 과보를 얻지만 법의 보시는 삼계(三界)를 벗어나는 과보를 얻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번뇌[漏]를 끊을 수 없으나 법의 보시는 저 언덕[彼岸]에 청정하게 오르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다만 인간 세계와 천상의 과보를 감득(感得)하지만 법의 보시는 삼승(三乘)의 과보를 감통(感通)하기 때문이다.

재물의 보시는 지혜로운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 다 할 수 있지만 법의 보시는 오직 지혜로운 사람만이 할 수 있게 국한되었기 때문이요, 재물의 보시는 오직 보시한 사람만이 복을 얻을 수 있으나 법의 보시는 보시한 사람과 보시를 받은 사람이 통틀어 이익이 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어리석은 짐승도 받을 수 있지만 법의 보시는 오직 총명한 사람에 국한될 뿐이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다만 색신(色身)만을 이롭게 할 뿐이지만 법의 보시는 능히 마음과 정신까지도 이롭게 하기 때문이며, 재물의 보시는 탐욕과 질병을 증장시킬 수 있으나 법의 보시는 삼독(三毒)을 다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니라.’

 

故大集經云 施寶雖多 不如至心誦持一偈 法施最妙 勝過飮食

又未曾有經云 天帝問野干曰 施食 施法 有何功德 唯願說之 野干答曰 布施飮食 濟一日之命 施珍寶財物 濟一世之乏 增益繫縛 說法敎化 名爲法施 能令衆生 出世間道

 

그러므로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아무리 많은 보물을 보시했어도 그것은 지극한 마음으로 한 게송을 외워 지니느니만 못하나니, 법의 보시는 가장 절묘하여 많은 음식을 보시한 것보다 우세하다'

또 『미증유경(未曾有經 : 未曾有因緣經)』에서 말하였다.

천제(天帝)가 야간(野干)에게 물었다. '음식을 보시하거나 법을 보시하면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부디 설명하여 주십시오'

야간이 대답하였다. ‘음식을 보시하면 하루의 목숨을 구제하고, 귀중한 보배나 재물을 보시하면 한 생[世]의 궁핍함을 구제하지만, 그것은 다 계박[繫縛 : 집착]만을 더할 뿐이다. 법을 설하여 교화하는 것을 법시(法施)라고 하는데, 이것은 능히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世間)의 도를 벗어나게 한다'

 

又大丈夫論云 財施者 人道中有 法施者 大悲中有 財施者除衆生身苦 法施者除衆生心苦 財施愛多者施與 財寶 愚癡多者施與 其法 財施者爲其作無盡錢財 法施者爲得無盡智 財施者爲得身樂 法施者爲得心樂 財施者爲衆生所愛 法施者爲世間所敬 財施者爲愚人所愛 法施者爲智者所愛 財施者能與現樂 法施者能與天道涅槃之樂 如偈曰

 

佛智處虛空 大悲爲密雲 法施如甘雨 充滿陰界池

四攝爲方便 安樂解脫因 修治八正道 能得涅槃果

 

또 『대장부론(大丈夫論)』에서 말하였다.

“재물의 보시는 인간 세계에 있는 일이고 법의 보시는 큰 자비 가운데 있는 일이다. 재물을 보시하면 중생들 몸의 고통을 없애주고, 법을 보시하면 중생들 마음의 고통을 없애준다. 재물의 보시는 애착이 많은 이에게는 재물과 보배를 베풀어 주지만, 어리석음이 많은 이에게는 그 법을 베풀어 준다. 재물을 보시하면 그 행위로 인하여 다함이 없는 재물을 얻고, 법을 보시한 사람은 다함이 없는 지혜를 얻으며, 재물을 보시한 사람은 몸의 안락을 얻고 법을 보시한 사람은 마음의 안락을 얻으며, 재물을 보시한 사람은 중생들에게 사랑을 받고 법을 보시한 사람은 세간의 존경을 받으며, 재물을 보시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법을 보시한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재물을 보시한 사람에겐 현재의 즐거움을 주고 법을 보시한 사람에겐 하늘 세계나 열반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게송으로 말한다.

 

부처님의 지혜가 허공에 있을 때에

큰 자비는 빽빽한 구름이 되며

법의 보시는 마치 단비와 같아

음계(陰界)의 못에 가득 찬다.

 

네 가지 섭법(攝法)은 방편이 되고

안락(安樂)과 해탈의 씨앗이 되며

여덟 가지 바른 도를 닦고 다스리면

능히 열반의 과보를 얻을 수 있으리.”

 

又月燈三昧經云 佛言 若有菩薩 行於法施 有十種利益 何等爲十 一棄捨惡事 二能作善事 三住善人法 四淨佛國土 五趣詣道場 六捨所愛事 七降伏煩惱 八於諸衆生施福德分 九於諸衆生修習慈心 十見法得於喜樂

 

또 『월등삼매경(月燈三昧經)』에서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어떤 보살이 법시(法施)를 실천하면 열 가지 이익이 있느니라. 그 무엇이 열 가지 이익인가?

첫째는 악한 일을 버리는 것이요, 둘째는 능히 착한 일을 지으며, 셋째는 착한 사람의 법에 머무르고, 넷째는 부처님의 국토를 깨끗이 하며, 다섯째는 도량으로 나아가고, 여섯째는 사랑하는 일을 버리며, 일곱째는 번뇌를 항복받고, 여덟째는 모든 중생들에게 복덕의 일부분을 베풀어 주며, 아홉째는 모든 중생들에 대하여 자비의 마음을 닦아 익히고, 열째는 법을 보고 기쁨을 얻는 것이니라.’”

 

又菩薩地持論云 菩薩知彼邪見求法智者 不授其法 不與經卷 若性貪財 賣經卷者 亦不施與法 若得經卷 隱藏不現 亦不施與法 若非彼人所知義者 亦不施與 若是彼所知義 於此經卷 已自知義 則便持經 隨所樂與 若未知義 自須修學 又知他人所有如是經 示語其處 若更書與 菩薩當自觀心 少有法慳者 當持經與 爲法施故 我寧以法施 現世癡瘂 爲除煩惱 猶尙應施 況作將來智慧方便

 

또 『보살지지론(菩薩地持論)』에서 말하였다.

“보살은 저들이 삿된 견해로 법의 지혜를 구하는 것을 알면 그에게는 법을 주지 않고 경전도 주지 않는다. 만약 그의 성질이 재물을 탐하여 경전을 파는 사람인 줄 알면 그에게는 법을 베풀어 주지 않고, 만약 경전을 감춰두고 내어놓지 않으면 그에게도 법을 주지 않는다.

만약 그가 이치를 아는 사람이 아니면 그에게도 베풀어 주지 않고, 만일 그가 이치를 알고 이 경전에 대하여 이미 스스로 그 이치를 알면 곧 경전을 가져다가 그가 좋아하는 바에 따라 줄 것이다. 만약 그 뜻을 알지 못하면 스스로 꼭 닦고 배워야 하느니라.

또 다른 사람이 이와 같은 경전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면 그 대목의 뜻을 가르쳐 주거나 또는 베껴서 주느니라. 보살은 마땅히 스스로 마음을 관찰하여 조금이라도 법을 아끼는 이가 있으면 법의 보시를 위해서라도 마땅히 경전을 가져다 주어야 한다.

나는 차라리 법을 보시함으로써 현재 세계에 벙어리가 될지언정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마땅히 보시해야 하겠거늘 더구나 그것이 장래에 지혜와 방편이 되는 것이겠는가?

 

又優婆塞戒經云 若有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夷 能敎化人 具足戒施多聞智慧 若以紙墨 令人書寫 若自書寫如來正典 然後施人令得讀誦 是名法施 如是施者 未來天上得好上色 何以故

衆生聞法 斷除瞋心 以是因緣 未來世中 得成上色

衆生聞法 慈心不殺 以是因緣 未來世中 得壽命長

衆生聞法 不盜他財寶 以是因緣 未來世中 多饒財寶

衆生聞法 開心樂施 以是因緣 未來世中 身得大力

衆生聞法 離諸放逸 以是因緣 未來世中 身得安樂

衆生聞法 除瞋癡心 以是因緣 未來世中 得無礙辯

衆生聞法 信心無礙 以是因緣 未來世中 信心明了

戒施聞慧 亦復如是 故知法施殊勝過於財施

 

또 『우바새계경』에서 말하였다.

“만약 비구ㆍ비구니ㆍ우바새ㆍ우바이가 사람을 잘 교화하여 계율ㆍ보시ㆍ다문(多聞)ㆍ지혜를 원만하게 갖추거나, 혹은 종이와 먹으로써 사람들을 시켜 쓰고 베끼게 하거나, 혹은 여래의 바른 경전을 스스로 베껴 쓴 뒤에 남에게 보시하여 그로 하여금 읽고 외우게 하면 이것을 법시(法施)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법을 보시하는 사람은 미래 세상엔 천상에 태어나서 최고로 좋은 몸을 얻는다.

 

왜냐 하면 중생들이 그 법을 들으면 성내는 마음을 끊어 없애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미래 세계에서 가장 좋은 몸을 얻는다.

중생들이 법을 들으면 인자한 마음으로 살생하지 않나니, 이런 인연 때문에 미래 세계엔 긴 수명을 얻는다.

중생이 그 법을 들으면 다른 사람의 재물과 보배를 훔치지 않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미래 세계엔 많은 재물과 보배를 얻는다.

중생이 그 법을 들으면 마음이 열려 보시하기를 좋아하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미래 세계엔 몸에 큰 힘을 얻는다.

중생이 그 법을 들으면 모든 방일한 행위를 여의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미래 세계엔 안락한 몸을 얻는다.

중생이 그 법을 들으면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을 없애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걸림이 없는 말재주를 얻는다.

중생이 그 법을 들으면 믿는 마음에 의심이 없나니, 이러한 인연 때문에 미래 세상엔 믿는 마음이 밝고 또렷해진다.

계율ㆍ보시ㆍ다문ㆍ지혜도 또한 이와 같느니라. 그러므로 법을 보시하는 것은 재물을 보시하는 것보다 뛰어나고 훌륭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느니라.”

 

問 旣知法施勝過財施 今時 衆生但學法施 不行財施 未知得不

答 爲不解財施 迷心而施 苟求色聲人天樂報 恐墜三塗 不成出世 所以聖人慇懃歎法 令其悟解三事體空 而行財施 速成菩提涅槃勝果 自餘戒 忍六度萬行 皆藉智慧 開導成勝

 

【문】 법을 보시하는 것이 재물을 보시하는 것보다 우세하다는 것을 이미 알았다. 그런데도 현재의 중생들이 오직 법을 보시하는 것만 배우고 재물 보시는 실행하지 않는다면, 모르기는 해도 그래도 되는 것인가?

【답】 재물 보시하는 것을 진정 모르고 미혹한 마음으로 보시하여 구차하게 빛깔과 음성, 인간 세계나 천상의 즐거운 과보만 구하다가 삼악도(三惡塗)에 떨어져서 세간을 벗어나는 법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러울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들은 은근히 법을 찬탄하여 그들로 하여금 세 가지 일의 본체가 공(空)한 것임을 깨닫고, 재물을 보시하게 함으로써 속히 보리(菩提) 열반(涅槃)의 뛰어난 과업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밖의 계율과 인욕 등 육도(六度 :육바라밀)의 만행(萬行)은 다 지혜의 힘을 빌어 우세한 과업을 이룬다는 것을 개도(開導)한 것이다.

 

又智度論云 前五度譬同盲人 第六般若事同有目 若不得般若 開導前五 便墮惡道 不成出世 若聞法施 過於捨財 愚人不解 卽便秘財 唯樂讀經 若行此法 不如有人解心捨施一錢 勝過迷心讀經百千萬卷

是以如來設敎意存解行 若唯解無行 解則便虛 若唯行無解 行則便孤 要具解行方到彼岸 若唯解無行 如人有目無足 不能遠涉 若唯行無解 如人有足無目 不能見道 又唯解無行 譬同狂花不結子實 若唯行無解 譬同子實不依花發 是故要須解行雙行 方成佛果也

 

또 『지도론』에서 말하였다.

“앞의 다섯 바라밀[度]은 비유하면 눈먼 사람과 같고, 여섯 번째 반야바라밀의 일은 밝은 눈이 있는 사람과 같다. 만약 반야(般若)를 얻지 못하고 앞의 다섯 바라밀을 개도(開導)하면 곧 악한 세계에 떨어져서 세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만약 법을 보시하는 것이 재물을 보시하는 것보다 낫다는 설법을 듣고서 어리석은 사람은 알지를 못하고, 곧 재물을 감추어 두고 오직 경전 읽기만 즐겨한다. 만일 이러한 법을 실행한다면 이는 어떤 사람이 마음으로 깨닫고 일 전의 돈을 보시하는 것만 못하다. 일 전이라도 보시하는 것은 미혹한 마음으로 백천만 권의 경전을 읽는 것보다 나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는 해(解)와 행(行)에 뜻을 두라고 가르침을 베푸신 것이다. 만일 알기만 하고 실천이 없으면 그 앎은 곧 공허한 것이요, 만일 오직 실천만 있고 앎이 없으면 그 실천은 곧 외로울 것이니, 아는 것과 실천을 모두 갖추어야 비로소 저 열반의 언덕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到彼岸].

만약 오직 알기만 하고 실천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눈만 있고 발이 없어서 멀리 건너갈 수 없는 것과 같으며, 만일 오직 실천만 있고 앎이 없다면 그것은 마치 발만 있고 눈이 없어서 길을 보지 못하고 마구 가는 것과 같다.

또 오직 알기만 하고 실천이 없으면 마치 헛꽃과 같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고, 또한 오직 실천은 하되 앎이 없으면 마치 종자와 같아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반드시 이해와 실천을 함께 행해야 비로소 부처님의 과업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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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 지혜편(智慧篇第六)[여기에는 두 가지 연(緣)이 있음] (2)구법연(求法緣第二) 중에서.

 

布施飮食 濟一日之命 施珍寶者 濟一世之厄 增益生死 說法敎化者 能令衆生 出世間道 得三乘果 免三惡道 受人天樂 是故佛說 以法布施 功德無量

 

음식을 보시하는 것은 하루 동안의 목숨만을 구제해 주는 것이요, 진귀한 보배로 보시하는 것은 한 세대의 재액을 구제해 주고 생사에 이익을 더하는 것에 그치지만, 법을 설하여 교화하는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세간을 벗어나게 하는 도(道)로써 삼승(三乘)의 과(果)를 얻고 세 갈래 악한 세계[三惡道]를 면하게 하여 인간이나 하늘의 즐거움[人天樂]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법(法)을 보시(布施)하는 것은 그 공덕이 한량없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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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신녀(信男信女) ; 불교에 귀의한 재가의 남자 신도와 여자 신도를 말한다.

*공양(供養 이바지하다·받들다·모시다·바치다 공/기르다·공양하다 양)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제도(濟度 건널 제/건널 도) ; 중생을 미혹의 큰 바다(생사고해 生死苦海)로부터 구하여[濟], 생사없는 피안(彼岸, 깨달음의 언덕)에 이르게 하는[度] 것. 제(濟)는 구제(救濟). 도(度)는 도탈(度脫). 비유적인 표현으로 교화(敎化)를 의미한다.

*구제(救濟 건질 구/건널 제)—어려움이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돕거나 구하여 줌.

*도탈(度脫 건널 도/벗을 탈)—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법보시(法布施) ; 다른 사람에게 부처님의 가르침[法]이나 불서(佛書)를 베풂. 타인으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법을 보시한 공덕은 매우 뛰어나 한량이 없다고 하셨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보시(布施) : [범] dāna 음을 따라 단나(檀那) · 다나(柁那) · 단(檀) 등으로 음사(音寫)한다. 물질 또는 정신적인 측면에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베풀어 준다는 뜻이다.

재물로써 주는 것을 재시(財施)라 하고, 설법하여 정신의 양식과 도덕의 재산을 풍부하게 하여 주는 것을 법시(法施)라 하고, 계를 지니어 남을 침해하지 아니하며 또는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게 하여 주는 것을 무외시(無畏施)라 한다.

 

[참고] 『선가귀감』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105~106. (가로판 p110)

貧人이 來乞이어든 隨分施與하라. 同體大悲가 是眞布施니라.

가난한 이가 와서 구걸하거든 분을 따라 나누어 주라。한 몸같이 두루 어여삐 여기는 것이 참 보시니라.

 

(註解) 自他爲一曰同體요, 空手來空手去가 吾家活計니라.

나와 남이 둘 아닌 것이 한 몸이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우리들의 살림살이니라.

*숙명통(宿命通) : 수행으로 갖추게 되는 여섯 가지의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인 육신통(六神通)의 하나로,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자유 자재한 능력.

*전생사(前生事) ; ①'전생(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살았던 삶)'에 있었던 일. ②'마음에 담아둘 필요가 없는 이미 지나간 일'을 일컫는 말.

*무주상(無住相) ; 집착함이 없는 모습. 집착함이 없는 상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 대승불교도들의 실천덕목 중 하나. 상(相)에 머뭄[住]이 없는[無] 보시.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를 의미한다. 보시는 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로서 남에게 베풀어주는 일을 말한다.

무주상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참고] 『금강경오가해』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p141~145, 『금강경오가해 설의 - 육조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p101~104.

復次 須菩提 菩薩 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 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 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 不住相布施 其福德 不可思量

 

또 수보리야, 보살은 법(法)에 응당히 머문 바 없이 보시를 할지니, 이른바 색(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성향미촉법(聲香味觸法)에도 머물지 않고 보시해야 하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하여 상(相)에 머물지 않아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보살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육조 스님 해의解義)

부차(復次)라 한 것은 앞을 이어서 뒷말을 일으키려는 것이니라.

범부(凡夫)의 보시는 다만 아름다운 외모와 오욕의 쾌락을 구하는 고로, 그 과보가 다하면 곧 삼악도(三惡途 지옥,아귀,축생)에 떨어지므로, 세존께서 크나큰 자비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무상보시(無相布施)’를 행하도록 가르치시니, 아름다운 외모나 오욕(五欲)의 쾌락을 구하지 않고, 다만 안으로는 인색한 마음을 없애고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함이니, 이와 같이 상응(相應)하는 것이 ‘색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色布施)’이니라.

 

무상(無相)의 보시를 한다는 것은,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없으며, 받는 사람도 분별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을 '상에 머물지 않는 보시(不住相布施)'라 하느니라.보살이 보시(布施)를 행할 때 마음으로 바라는 것이 없으면 그 얻는 복이 시방(十方)의 허공과 같아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일설에 '보(布)'란 '普(넓다)'요, '시(施)'란 '散(사방에 흩어버린다)'이니, 가슴 가운데 있는 모든 망념·습기·번뇌를 널리 흩어버려 사상(四相)도 끊어지고 마음에 전혀 쌓여 있지 않는 것이 '참 보시(眞布施)'라 하며, 또 일설에는 '보(布)'란 '普'니 육진 경계(六塵境界)에 머물지 않으며 유루(有漏)의 분별도 하지 않아 오직 항상 청정한 데 돌아가서 만법(萬法)이 공적(空寂)함을 요달함이니라.

만약 이 뜻을 요달하지 않으면 오직 온갖 업(業)만 더하므로, 모름지기 안으로 탐애(貪愛)를 없애고 밖으로 보시를 행해서 안밖이 상응하여야 무량한 복을 얻게 될 것이니라.

 

다른 사람들의 악행을 보아도 그 허물을 보지 않아서 자성(自性) 가운데 분별을 내지 않음이 '이상(離相)'이 되느니라.

가르침에 의해 수행해서 마음에 능소(能所)가 없는 것이 곧 선법(善法)인 것이라. 수행인이 마음에 능소가 있으면 선법이라 할 수 없고, 능소심(能所心)이 멸하지 않으면 마침내 해탈치 못하니, 순간순간 항상 반야지혜를 행하여야 그 복이 무량무변한 것이니라.

 

이같은 수행에 의지하면 일체 인천(人天 사람과 하늘신)의 공경하고 공양함이 따르니 이것을 복덕(福德)이라 하도다. 항상 부주상보시(不住相布施 어떠한 것에도 집착이 없는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중생들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 없어서 가히 헤아릴 수 없느니라.

*대중공양(大衆供養) ; ①수행자에게 음식을 올리는 일. ②대중이 함께 식사하는 일.

*만복(萬福) ; 온갖 복.

*유루복(有漏福) ; 평범한 범부 중생이 지은 복(福)—부귀영화, 명예, 권리, 오욕락 따위의 복으로, 유루(有漏)—샘이 있는, 번뇌 또는 고를 더욱 증장시키는—의 복이어서 한도(限度)가 있어 영원성이 없고 영원히 믿을 것이 못된다.

하늘에다 쏘아 올린 화살이 아무리 힘이 센 장사가 활을 당겨서 활을 쐈다 하드라도 올라갈 만큼 올라가면 결국은 다시 땅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처럼, 아무리 큰 복을 쌓는다 하드라도 그 복이 인천(人天)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된다 하드라도 자기가 지은 복만큼 다 받아버리면 다시 또 타락하게 된다.

 

그래서 옛날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그 유루복(有漏福)이라 하는 것은 그 복을 얻으면서 죄를 짓고 또 얻어가지고 누리면서 죄를 짓고, 또 그 얻었던 것을 결국은 다 없애면서 그 죄를 짓는다. 그래서 『인간의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이렇게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려면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므로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 하고,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이다.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보시(布施)와 같은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보시도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다.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이어서,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는 것이다.

 

(4분 42초)

[참고] 송담스님(No.565) - 1996년 설날통알 및 설날차례(1996.02.19)에서.

유루복은 삼생(三生)의 원수다. 왜 그러냐?

유루복은 복을 짓느라고 죄를 지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삼악도(三惡道)에 가게 되니까 그래서 그 유루복은 원수이고, 또 하나는 지어놓은 복을 그놈을 지키고 사용하느라고 또 죄를 짓게 되니까 그래서 또 원수고, 마지막에는 언젠가는 유루복은 나의 몸과 마음과 가정을 갖다가 갈기갈기 짓밟고 찢어 놓고서 떠나기 때문에 또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루복일망정, 유루복이 없어 갖고는 정말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유루복이 삼생의 원수라 하더라도 그것이 없어 갖고는 당장 어찌 해 볼 도리도 없고, 사람노릇 할 수도 없고, 생활도 할 수도 없고, 자식교육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루복도 있기는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구해야—힘들고 일확천금(一攫千金)은 안 되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을 해서 얻은 복은 그래도 나를 그렇게까지 큰 죄를 짓지 않게 하고, 언젠가 떠나더라도 나를 그렇게 크게 해롭게는 하지 않고 곱게 떠나는 것입니다.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남을 해롭게 하고, 나라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무리한 방법으로 취득을 해 놓으면 그것은 머지않아서 큰 재앙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루복이라도 좋은 방법으로 구하고 또 좋은 방향으로 잘 사용을 하는데, 그것을 사용을 할 때에는 보시를 하는데, 무주상(無住相) 보시를 해야 같은 재보시(財布施)를 해도 결과로 돌아오는 복은 한량이 없는 것이고.

 

남에게 금전이나 어떤 재산을 보시하면서 내가 이것을 했다고, ‘너한테 보시를 했으니 나한테 너는 응당 고맙게 생각해야 하고, 나한테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 그래 가지고 그 과보(果報)를 바래.

공투세를 해 가지고 과보를 바라면 그것이 유주상(有住相)의 보시가 되어서 상대방에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감을 주어가지고, 내것 보시하고서 주고받는 사이가 서먹하게 되고, 나중에는 결국 원수가 되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는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해야 한다.

 

무루복(無漏福)은 어떻게 짓느냐?

물론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無畏布施)를 하되, 무주상(無住相)으로 하면 그것이 무루복과 연결이 되고, 그 무루복을 참으로 더 훌륭하게 크게 깊게 심으려면 우리 자신이 항상 정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입각해서 참선(參禪)을 열심히 함으로서, 참선하는 것이 바로 나를 무심(無心)한 상태로 이끌게 만들고, 무심한 상태에서 보시를 하면 그것이 바로 무주상 보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도 한다면, 유루복과 무루복을 겸해서 닦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서부터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갈 수밖에 없는 그러한 복을 심고 종자(種子)를 심기 때문에, 우리는 도솔천 내원궁에 가는 것은 걱정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무루복(無漏福) ; 번뇌가 없는 더러움이 없는 복. 영원히 끝장이 나지를 않고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바닥이 나지를 않고 다할 날이 없는 복(福) 그것이 무루복입니다.

무루복이라 하는 것은 참선법(參禪法)에 의해서 내가 내 마음을 닦아 가지고 생사해탈하는 이것만이 영원히 생사를 면하는 무루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참선하는 마음으로 살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돈도 벌고, 참선하는 마음으로 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나를 깨닫는 정법」을 믿도록 권고하고 인도하고, 자기도 열심히 닦으면서 남도 같이 닦게 하여 무루복(無漏福)과 유루복(有漏福)을 겸해서 닦아야, 남도 좋고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빠짐없이 두루 갖춤.

*보리(菩提) ; ‘bodhi’의 음사(音寫). 각(覺)•지(智)•도(道)라고 번역. 모든 집착을 끊은 깨달음의 지혜.

*귀의(歸依)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의지함. ②몰아의 경지에서 종교적 절대자나 종교적 진리를 깊이 믿고 의지하는 일. ③돌아가거나 돌아와 몸을 의지함.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듣고 따르는 기쁨[喜]과 선정(禪定)에 드는 기쁨[悅].

*세세생생(世世生生) ; 많은 생애를 거치는 동안. 태어날 때마다. 세세(世世)토록.

*정법문중(正法門中) ;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을 따르는 집안.

*(게송)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게송.

勸汝慇懃修善道 速成佛果濟迷倫 今生若不從斯語 後世當然恨萬端

 

너에게 도 닦기를 은근히 권하노니, 어서 빨리 불과(佛果) 이뤄 미혹 중생 건지어라.

금생에 만일 이 말을 안 따르면, 후세에 당연히 한(恨)이 만 갈래나 되리라.

*염라대왕(閻羅大王) : 죽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의 생전에 행한 선악(善惡)을 심판하여 벌은 주는 왕.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고/말할 구/신신당부할•정성스러울 정/간곡할 녕)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叮) 간곡하게(嚀) 말씀하심(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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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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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