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아나율실명2020. 11. 26. 09:52

아나율실명(阿那律失明) (No.256)—부처님 설법 중에 아나율 졸음 | 아라한, 벽지불의 여습(餘習) | 권아라한(權阿羅漢) | 사리불과 아나율의 굳은 결심.

 

*아나율(阿那律) : 산스크리트어 Aniruddha, 팔리어 Anuruddha. 아나율다(阿那律陀) · 아니율다(阿泥律陀) · 아니로두(陀泥盧豆) · 아니루두(陀尼樓豆) · 마니루다(摩尼婁陁) 등으로 음사하고, 여의(如意) · 무빈(無貧) · 무탐(無貪) · 무멸(無滅) · 불멸(不滅) · 무장(無障) · 부쟁유무(不爭有無) 등으로 한역한다.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석가족 정반왕(淨飯王) 동생 곡반왕(斛飯王)의 아들이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아난(阿難) · 난타(難陀) · 우바리 · 데바닷타 등과 함께 출가하였다.

부처님께서 설법을 할 때 졸고 있다가 꾸짖음을 들은 후에, 다시는 잠자지 않고 수행할 것을 맹세하고 실천하다 오래도록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육안(肉眼)을 잃게 되었으며 오직 천안(天眼)으로써 세간의 모습들을 보았다. 부처님 제자 중 천안(天眼)이 가장 뛰어난 사람, 천안제일(天眼第一)로 칭송받았다.

 

아나율 존자는 아주 오래전 과거에 기아가 극심하던 때 벽지불(辟支佛)에게 한 끼니의 식사를 공양한 과보로 천상에 태어나 뜻한 대로 즐거움을 얻었기에 여의(如意)라고 하고, 이후 부족함이 없었기에 무빈(無貧)이라 하고, 과보가 소멸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멸(不滅)이라고도 한다.

[참고]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 마니루다품(摩尼婁陁品) 卷第五十九上,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31권 '38. 역품(力品)'

 

(9분 20초)

 

[법문] 송담스님(No.256)—19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 (용256)

 

또 부처님 십대제자에 아나율(阿那律) 존자라 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부처님 법문을 듣다가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그것을 보시고 부처님이 크게 꾸지람을 하셨습니다.

“도를 닦는 수행자가 법문을 들을 때 졸을 수가 있느냐? 똥을 가지고는 아무리 좋은 조각을 한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고, 변소에다가는 아무리 울긋불긋 단청을 해봤자 그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가 있겠느냐” 그런 비유를 드시면서 크게 꾸지람을 하셨는데, 아나율 존자는 그 부처님의 꾸지람을 깊이 명심(銘心)을 해가지고 ‘내가 도업(道業)을 성취할 때까지는 결정코 잠을 자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명심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밤이나 낮이나 옆구리 땅에 대지 아니하고, 잠을 자지 아니하고, 잠이 오면 일어서서 포행을 하고, 온갖 방법을 써서 잠을 쫓으면서 기어코 잠을 안 자면서 계속해서 가행정진을 용맹정진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 이틀, 일주일, 열흘, 보름, 한 달이 되니까 잠을 안 자니까 눈이 발간 하니 되더니 나중에는 눈갓이 찌적찌적하니 물르고 나중에는 눈이 차츰차츰 어두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그것을 대단히 걱정을 하시고 기파(耆婆) 대감을 시켜서 치료를 시켰습니다.

기파대감이 아무리 약을 쓰고, 침을 놓고, 여러 가지 치료를 했습니다마는 차도(瘥度)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이제 좀 차도가 어떠냐?”

“저로서는 치료할 수가 없습니다”

 

“왜 치료를 할 수가 없단 말이냐?”

“약을 쓰고 치료를 하면서도 잠을 푹 자야만 치료가 될 텐데. 잠을 일절 안 주무시니 아무리 치료해 봤자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 부처님께서 “육체가 있어야 도를 닦는 것이니 어찌 그렇게 어리석게 해가지고 치료를 지연을 시킬 수가 있느냐, 잠을 자라”해도, “저는 도를 성취할 때까지는 결정코 잠을 자지 않겠습니다”

부처님이 아무리 타이르고 꾸짖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아나율 존자는 두 눈이 멀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두 눈이 멀자 아나율 존자는 천안통(天眼通)을 얻었다 그랬습니다.

천안통을 얻었으나 육안(肉眼)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옷을 꿰맨다든지 모다 그러한 일이 있을 때에는 부처님께서 손수 바늘귀를 끼워주시고, 바느질도 해주시고, 평생을 그렇게 보살펴 주시는 자비를 내리셨다고 하는 것이 전해 내려옵니다마는.

 

부처님의 십대제자나 육조 스님까지 삽삼조사(卅三祖師)는 다 전생에 불보살이 그런 화현(化現)으로 나타나가지고, 부처님의 법(法)을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왔다고 하는 말씀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서 삽삼조사는 아라한이지만 권아라한(權阿羅漢)입니다. 실지로 다생(多生)에 닦은 것이 겨우 아라한 밖에는 안 된 것이 아니고, 불보살 화현이 그 부처님의 법을 전해 내려오기 위해서 권(權)으로, 방편으로 아라한의 몸으로 출세를 하신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마는. 아라한의 성질은 다분히 그런 성현이면서도 조그마한 일에 탁! 골을 잘 내시고, 요새 말로 신경질적인 그러한 성격의 일모(一貌)가 있다고 하는 것이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성(獨聖) 기도나 그런 기도는 정말 몸을 깨끗이 하고, 모든 음식으로부터 모든 조그마한 행실에 이르기까지도 어긋남이 없이 청정한 마음과 청정한 몸으로 기도를 해야지, 잘못하면 벌을 받고, 까딱하면 골을 내 가지고 벌을 주어서 입이 비틀어져 버린다든지, 넘어져서 팔이 부러진다든지, 그러한 일이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리불 존자도 전생에 독사의 몸을 받았던 그 여습으로 해서 성현이 되어 가지고서도 그런 다분(多分)히 그런 진심(瞋心)의 여습이 있었다고 그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리불 존자나 아나율 존자나 그런 진심(瞋心)을 냈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그 말씀 한마디를 얼마나 깊이 받아들이고 뼛속 깊이 새겨들었으면 말씀 한마디에 ‘내가 도를 이루지 않는다면 결정코 눈을 감고 자지 아니하리라’

‘결정코 내가 어떠한 사람이 어떠한 경우에 공양을 청한다 하더라도 나는 공양에 응하지 아니하리라. 그러고서 세세생생에 청정한 공양을 받고 수행을 하리라’

 

이러한 결심은 우리에게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굳은 결심이 없고서야 어떻게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쌓인 우리의 업(業)을 극복을 해가지고 도업(道業)을 성취하는 데에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물에다 술 탄 듯, 술에다 물 탄 듯, 오늘도 이럭저럭, 내일도 그럭저럭 이렇게 해가지고서는 우리는 금생에 도업을 성취할 것을 기약하기는 매우 어려우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세속에 사업을 한다든지, 무슨 학문을 연구를 해서 학자가 된다든지, 무슨 예술가가 된다든지, 사업가가 된다든지, 무엇을 어떠한 방면으로 하더라도 그러한 모질고 모진 그러한 무서운 굳은 결심이 있어야 그 가지가지 난관을 극복을 하고, 어떤 어려운 일을 닥치고, 두 번 실패, 세 번, 네 번, 다섯 번을 실패하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그 일을 성취하고야만 말겠다고 하는 그러한 굳은 결심이 아니고서는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거든, 하물며 우리가 이 무량겁 업을 극복을 해가지고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는 이 도(道)에 있어서는 더 말할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취지에서 볼 때에 아나율 존자나 그 사리불 존자의 부처님 말씀 한마디에 그렇게 매서운 결심을 하고, 부처님이 아무리 설득을 하고 꾸짖어도 끝까지 두 눈이 멀 때까지 잠을 자지 아니한다든지, 국왕이 와서 청하고, 수달장자가 와서 청해도 소용이 없고 끝까지 공양에 응하기까지 아니한 그런 것은 우리 말세 중생들에게 그런 굳은 결심을 갖게 하기 위한 하나의 본보기로 그러한 것을 보여주시지 아니 했는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25분2초~34분22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고] 『증일아함경(增壹阿含經)』 31권 '38. 역품(力品)' (승가제바 한역 | 김월운 번역 | 동국역경원)

 

이와 같이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한량없는 백천만 대중을 위해 설법하고 계셨다.

그때 아나율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 아나율은 대중 속에서 졸고 있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나율이 조는 것을 보시고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聞如是 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世尊與無央數百千萬衆 而爲說法 爾時 阿那律在彼坐上 是時 阿那律在衆中睡眠 爾時 佛見阿那律睡眠 便說此偈

 

법을 받들면 유쾌히 잠들고 / 그 뜻에 뒤섞인 어지러움 없다 / 저 성현께서 말씀하신 법 / 지혜로운 이들이 즐기는 것이라.(受法快睡眠, 意無有錯亂, 賢聖所說法, 智者之所樂)

마치 저 깊고 깊은 연못이 / 맑고 깨끗해 티끌 하나 없듯 / 그와 같이 법을 듣는 사람 / 청정한 마음으로 즐거이 받아들인다.(猶如深淵水, 澄淸無瑕穢, 如是聞法人, 淸淨心樂受)

마치 저 크고 반듯한 돌이 / 바람에 조금도 움직이지 않듯 / 그와 같이 칭찬이나 비방을 듣더라도 / 그 마음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亦如大方石, 風所不能動, 如是得毀譽, 心無有傾動)

 

그때 세존께서 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라의 법이나 도적이 두려워 도를 닦느냐?”

아나율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너는 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느냐?”

“이 늙음 · 병듦 · 죽음과 근심 · 걱정 · 괴로움 · 번민을 싫어하고, 고통에 시달리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기 위해 출가하여 도들 배우는 것입니다”

 

是時 世尊告阿那律 “汝畏王法及畏盜賊 而作道乎?” 阿那律報曰 “不也, 世尊” 佛告阿那律

“汝何故, 出家學道?” 阿那律白佛言 “厭患此老, 病, 死, 愁, 憂, 苦, 惱, 爲苦所惱故 欲捨之 是故出家學道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족성자(族姓子,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선행을 닦는 남자)야, 너는 지금 견고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있다. 그런데 지금 세존이 몸소 설법하는데 어떻게 거기서 졸고 있느냐?”

이때 존자 아나율이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세존께 아뢰었다. “지금부터는 몸이 문드러지더라도 결코 여래 앞에서 졸지 않겠습니다”

 

世尊告曰 “汝今族姓子 信心堅固 出家學道 世尊今日躬自說法 云何於中睡眠?” 是時 尊者阿那律卽從座起 偏露右肩 長跪叉手 白世尊言 “自今已後 形融體爛 終不在如來前坐睡

 

그때 존자 아나율은 새벽이 되도록 자지 않았다. 그러나 잠을 버릴 수는 없었고 결국 눈이 손상되었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너무 열심히 정진하면 조바심이라는 덮개[調戱蓋]와 상응하고 또 너무 게으르면 결박[結]과 상응하게 된다. 너의 행동은 그 중간이어야 하느니라”

아나율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전에 벌써 여래 앞에서 맹세하였습니다. 이제 와서 그 본래 약속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의사 기역(耆域, 빈바사라왕과 아사세왕의 어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나율의 눈을 치료해 주라”

기역이 대답하였다. “만일 아나율이 조금이라도 잠을 잔다면 저는 그 눈을 치료할 수 있습니다”

 

爾時 尊者阿那律達曉不眠 然不能除去睡眠 眼根遂損 爾時 世尊告阿那律曰 “勤加精進者 與調戲蓋相應 設復懈怠 與結相應 汝今所行 當處其中” 阿那律白佛 “前已在如來前誓 今不能復違本要”

是時 世尊告耆域曰 “療治阿那律眼根” 耆域報曰 “若阿那律小睡眠者 我當治目”

 

세존께서 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잠을 자라. 왜냐하면 모든 법은 먹어야 존재하고 먹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눈은 잠[眠]으로 음식을 삼고, 귀는 소리로 음식을 삼으며, 코는 냄새로 음식을 삼고, 혀는 맛으로 음식을 삼으며, 몸은 감촉으로 음식을 삼고, 뜻은 법으로 음식을 삼는다. 그리고 나는 지금 열반(涅槃)에도 음식이 있다고 말한다”

 

世尊告阿那律曰 “汝可寢寐 所以然者 一切諸法由食而存 非食不存 眼者以眠爲食 耳者以聲爲食 鼻者以香爲食 舌者以味爲食 身者以細滑爲食 意者以法爲食 我今亦說涅槃有食”

 

아나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열반은 무엇으로 음식을 삼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나율에게 말씀하셨다. “열반은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으로 음식을 삼는다. 그러므로 방일하지 않는 것을 타고 무위(無爲)에 이르느니라”

아나율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께서 비록 눈은 잠으로 음식을 삼는다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차마 잘 수 없습니다”

 

阿那律白佛言 “涅槃者以何等爲食?” 佛告阿那律 “涅槃者以無放逸爲食 乘無放逸 得至於無爲”

阿那律白佛言 “世尊雖言眼者以眠爲食 然我不堪睡眠”

 

그때에 아나율이 낡은 옷을 깁고 있을 때였다. 이때 육안은 허물어지고 티 없이 맑은 천안을 얻었다. 그때 아나율은 보통의 방식대로 옷을 기우려 하였으나 실을 바늘구멍에 꿸 수가 없었다. 이때 아나율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 세상에서 도(道)를 얻은 나한(羅漢)은 나를 위해 바늘을 꿰어다오’

세존께서는 깨끗한 천이(天耳)로 ‘이 세상에서 도를 얻은 아라한은 나를 위해 바늘을 꿰어다오’라고 하는 이 소리를 들으셨다. 세존께서는 아나율이 있는 곳으로 가 말씀하셨다. “너는 그 바늘을 가져 오라. 내가 꿰매 주리라”

 

爾時 阿那律縫故衣裳 是時 眼遂敗壞 而得天眼 無有瑕穢 是時 阿那律以凡常之法 而縫衣裳 不能得使縷通鍼孔中 是時 阿那律便作是念 '諸世閒得道羅漢 當與我貫鍼'

是時 世尊以天耳淸淨 聞此音聲 '諸世閒得道阿羅漢者 當與我貫鍼' 爾時 世尊至阿那律所 而告之曰 “汝持鍼來 吾與貫之”

 

아나율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까 제가 말한 것은 세상에서 복을 구하려는 사람은 저를 위해 바늘을 꿰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세상에서 복을 구하는 사람으로 나보다 더한 사람은 없다. 여래는 여섯 가지 법에 있어서 만족할 줄을 모른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보시요, 둘째는 교계(敎誡, 가르쳐 경계하는 것)이며, 셋째는 인욕이요, 넷째는 법다운 설명과 이치에 맞는 설명이며, 다섯째는 중생을 보호하는 것이요, 여섯째는 위없이 바르고 참된 도를 구하는 것이다. 아나율아, 이것이 이른바 ‘여래는 이 여섯 가지 법에 있어서 만족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니라”

 

阿那律白佛言 “向所稱說者 謂諸世閒欲求其福者 與我貫鍼”

世尊告曰 “世閒求福之人 無復過我 如來於六法 無有厭足 云何爲六? 一者施 二者敎誡 三者忍 四者法說義說 五者將護衆生 六者求無上正眞之道 是謂阿那律 如來於此六法 無有厭足”

 

아나율은 아뢰었다. “여래의 몸은 진실한 법의 몸이신데 다시 무슨 법을 구하려 하십니까? 여래께서는 이미 생사의 바다를 건너고 또 애착을 벗어나셨는데, 지금 또 복의 으뜸되기를 구하십니까?”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렇다, 아나율야. 네 말과 같다. 여래도 이 여섯 가지 법에 있어서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안다. 만일 중생들이 죄악의 근본인 몸ㆍ입ㆍ뜻의 행(行)을 안다면 끝내 세 갈래 나쁜 곳[三惡趣]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 중생들은 죄악의 근원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세 갈래 나쁜 곳에 떨어지는 것이니라” 그때 세존께서는 곧 이런 게송을 말씀하셨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힘 중에 / 천상과 인간에서 노닐게 하는 것 / 복의 힘이 가장 훌륭하나니 / 그 복으로 불도(佛道)도 성취하네.

 

“그러므로 아나율아, 방편을 구해 이 여섯 가지 법을 얻도록 하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공부해야 하느니라” 그때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阿那律曰 “如來身者 眞法之身 復欲更求何法? 如來已度生死之海 又脫愛著 然今日故求爲福之首?”

世尊告曰 “如是 阿那律 如汝所說 如來亦知此六法爲無厭足 若當衆生知罪惡之原 身口意所行者 終不墮三惡趣 以其衆生不知罪惡之原故 墜墮三惡趣中” 爾時 世尊便說此偈 : 世閒所有力 遊在天人中 福力最爲勝 由福成佛道

“是故阿那律 當求方便 得此六法 如是諸比丘 當作是學” 爾時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기파(耆婆)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jīvaka의 음사. 고대 인도의 사위성에서 살던 의사.

덕차시라국의 반가라에서 7년간 배운 뒤 본국인 바가타성에 귀국, 여러 사람들에게 약을 나누어 주고 남쪽 나라의 폭군의 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불교에 귀의하여 석가모니와 그의 제자들의 병을 치료하였다.*천안통(天眼通) ; 멀고 가까움과 크고 작은 것에 걸림 없이 무엇이나 밝게 보는 것.

*삽삼조사(卅三祖師) : 삼십삼세 조사(三十三世祖師).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에 부처님을 대신할 전 교단(敎團)의 어른을 한 분씩 정하여 내려왔다。그것은 스승되는 어른이 그 제자들 가운데서 빼어난 이를 선택하여 법(法)을 전하고, 그 증거로써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를 전해 주었다.

그리하여 인도에서 1.가섭존자, 2.아란존자, 3.상나화수....이렇게 전승되어 28대 되는 달마대사(達摩大師)가 중국에 와서 중국의 초조(初祖)가 되고, 그로부터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대사(慧能大師)로 내려왔는데, 위 33인의 조사를 삽삼조사라 한다. 6조 혜능에 이르러서는 불법을 대중화하기 위하여 정통(正統)으로 내려가는 전례를 폐지하고, 따라서 의발을 전하는 것도 그만두었다.

*등등상속(燈燈相續) ; 등(燈)은 중생의 무명(無明)을 밝히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를 등(燈)에 비유한 말, 이 진리의 등(燈)을 스승이 그 제자로 해서 계속 면면히 이어짐을 일컬음.

*권아라한(權阿羅漢) ; 실지로 다생(多生)에 닦은 것이 겨우 아라한 밖에는 안 된 것이 아니고, 불보살 화현이 그 부처님의 법을 전해 내려오기 위해서 권으로, 방편(方便)으로 아라한의 몸으로 출세를 하신 것.

*독성(獨聖) ;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수행한 성자였다고 하는 나반존자(那畔尊者)를 말함. 나반존자는 우리나라에서 말세의 복밭이라고 신앙하는 나한(羅漢). 독수성(獨修聖)이라고도 한다.

이 존자는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일을 꿰뚫어 알고 있고,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중생에게 복을 주고 소원을 성취시켜준다고 함.

*사리불진에기분(舍利弗瞋恚氣分) ; 사리불의 성냄[瞋恚]과 관련한 고사. 사리불진습미소(舍利弗瞋習未消)라고도 한다.

아라한(阿羅漢)이나 벽지불은 비록 탐욕[貪] · 성냄[瞋] · 어리석음[癡]의 삼독(三毒), 세 가지 번뇌를 모두 제거했음에도 여전히 잠재되어 있는 인상[氣分]을 완전히 없애진 못하였다. 비유하면 향을 담은 그릇은 향을 꺼낸 후에도 남은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고, 초목을 불태우면 타면서 재가 다 없어지지는 않으니 화력(火力)이 약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세 가지 독[三毒]을 영원히 다하여 남은 것이 없으니, 비유컨대 겁이 다하여 불이 수미산을 태우고 모든 대지가 다 사라져서 연기도 없고 재도 없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사리불은 성냄의 습성이 잔존하고, 난타(難陀)는 음욕의 습성이 잔존하고, 필릉가바차(必陵伽婆磋)는 교만함의 습성이 잔존하였으니,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쇠사슬에 묶여 있다가 처음 풀려났을 때 걷기가 불편한 것과 같다.

 

*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의 샤리푸트라(Śāriputra), 팔리어(語) 샤리푸타(Sāriputta)의 음역(音譯)이며, 추로자(鶖鷺子) · 사리자(舍利子)라고도 한역(漢譯)한다.

사리자(舍利子 · 舍梨子)는 샤리(Śāri)의 음역어 '사리'와 푸트라(putra)의 한역어 '자(子)'를 합한 것이다. 이는 '사리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사리란 그 어머니의 이름이다. 그 어머니가 많은 여인들 가운데 총명하기가 제일이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따서 불렸다고 한다.

 

인도 중부의 마가다왕국 수도 왕사성(王舍城) 근처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목건련(目犍連)과 친하여 어느 날 둘이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혼잡하게 뒤섞여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Sañjaya)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초전법륜(初轉法輪)으로 제도된 오비구(五比丘)중 한 분인 아설시(阿說示 Aśvajit 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듣고 깨달아 목건련(目犍連) 및 250명의 산자야의 제자들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했다.

 

초기 경전의 여러 곳에 부처님께서 그를 높이 평가하여, 경전 중에는 부처님을 대신하여 설법한 경우도 적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십대제자(十大弟子) 중 수제자로, 지혜가 가장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칭송되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1년 전, 목건련이 외도들의 몰매를 맞고 열반에 들려고 하자, 사리불은 목련에게 자신이 목련보다 먼저 열반에 들겠다고 하고, 그리고 또 자신이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에 들 것을 허락받기 위해 부처님이 계시는 기원정사로 갔다.

사리불은 ‘부처님께서 곧 열반에 드실 것을 알기에, 차마 제 눈으로 부처님의 열반을 볼 수 없어 먼저 열반에 들고자 합니다’하고 간청을 하여 허락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처님께 귀의하게 한 후 열반에 들어, 다비한 후 기원정사에서 장례를 치렀다. 수달장자는 존자를 위해 탑을 세웠다.

 

[참고] 大智度初品中婆伽婆釋論第四 (大智度論卷第二) (龍樹菩薩造, 鳩摩羅什 譯)

 

問曰 如阿羅漢 辟支佛 亦破婬怒癡與佛何異 答曰 阿羅漢 辟支佛 雖破三毒 氣分不盡 譬如香在器中 香雖出 餘氣故在 又如草木薪 火燒煙出 炭灰不盡 火力薄故 佛三毒 永盡無餘 譬如劫盡火 燒須彌山 一切地都盡 無煙無炭 如舍利弗瞋恚氣殘 難陀婬欲氣殘 必陵伽婆磋慢氣殘 譬如人被鎖 初脫時 行猶不便

*여습(餘習) ; 번뇌를 끊음 후에도 아직 몸에 남아 있는 습기(習氣 잠재적 가능력)를 말함. 부처님만이 여습(餘習)을 끊을 수 있고, 이승(二乘,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의 무리는 이것을 끊을 수 없다. 잔습(殘習), 여기(餘氣), 습기(習氣)라고도 함.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