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즉(卽)해서2023. 7. 19. 20:52

즉(卽)해서(No.341)—(게송)眼見耳聞元不隔 |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한번 뛰어 가지고 바로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최상승법 |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똑바로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 | 여래의 정법은 상주불멸(常住不滅)이여. 부처님께서는 상주설법(常住說法).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지금 불법(佛法) 시대가 말법(末法)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바로 믿고 실천을 해 나가면 여래(如來)의 정법(正法)은 상주불멸(常住不滅)이여. 부처님께서는 상주설법(常住說法)이여. 우주 법계에 가득차 있는 모든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바로 부처님께서 상주설법하시는 바로 그 법문(法門) 아닌 것이 없고, 경전 아닌 것이 없고.

 

(19분 5초)



[법문] 송담스님(No.341)—1987년 11월 첫째일요법회(87.11.01) (용341)

안견이문원불격(眼見耳聞元不隔)하고  주명야암절상량(晝明夜暗絶商量)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본래성현하다사(本來成現何多事)ㄴ고  절기당기자부장(切忌當機自覆藏)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안견이문원불격(眼見耳聞元不隔)이여.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 원래 조금도 맥히지 않는다, 간격이 없더라. 눈으로 여러 가지 색상을 보는 것이나 귀로 무슨 소리를 듣는 것이 원래 간격이 없어.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주장자(柱杖子)를 터억 들어서 대중에게 보이고, 그리고서 그 주장자로써 법상(法床)을 탕! 한번 치시고서,
황앵(黃鶯)이 상수(上樹)하니 일지화(一枝花)요. 노란 꾀꼬리가 나무에 오르니 한 가지 꽃이요.
백로하전천점설(白鷺下田千點雪)이다. 흰 해오라기가 밭에 내리니 천 점의 눈송이다.

이런 게송을 읊으셨는데, 눈으로 주장자 들은 것을 보건, 눈으로 꽃이 피고 잎이 지는 청황적백의 모든 것을 보건, 또 귀로 주장자 치는 소리를 듣거나, 자동차 소리나 개 짓는 소리를 듣거나 원래로 조금도 막힌 것이 아니다, 간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여.

주명야암절상량(晝明夜暗絶商量)이다. 밝은 낮이나 어두운 밤에 상량(商量)을 끊어 버려라. 일체 분별 ・ 시비 ・ 비교 ・ 사량 그런 걸 끊어 버려라 그 말이여.
귀로 무슨 소리를 듣고, 그 듣는 그 소리에 대해서 그리 쫓아가 가지고 온갖 분별 사량심을 내고, 눈으로 무슨 사람을 보거나 모든 사물을 보고서 거기에 대한 온갖 사량분별(思量分別)을 내고 시비심을 내. 그것이 바로 경계(境界)에 속는 것이여.

이쁜 사람을 보면은 거기에 집착을 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든 사람을 보면은 미운 생각을 내고, 자기를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은 좋아서 환영을 하고, 자기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들으면 진심(瞋心)을 내고 미워하고.
그 한마디 자기 비방하는 소리를 듣고서 속에 ‘요놈 가만 놔둬서는 안 되겠다’ 해 가지고 갖은 악한 방법으로써 끝내 그 사람을 갖다가 못살게 굴고, 모가지를 띠어 버리고 그러한 일이 동서고금의 역사에 참 많습니다마는.

우리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고 실천하는 여러 형제자매 도반(道伴)들은 칭찬한다고 해서 또 내 마음에 드는 일이라고 해서 그렇게 거기에 빠져서 집착할 것도 없고, 나를 좀 험담을 하고 욕을 하고 나를 좀 해롭게 한다고 해서 거기에서 확! 진심을 내 가지고 보복을 하고 미워하고 끝끝내 그 사람을 못살게 하고 그러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를 칭찬하는 소리를 듣고도 나는 거기에 떨어지지 않고 화두(話頭)를 들고, 나를 비방하는 말을 듣더라도 거기에 동요가 되지 말고 화두를 들고 이렇게 해서.

본래성현하다사(本來成現何多事)냐, 본래, 본래 다 이뤄져. 우리가 본래, 새로 도(道)를 닦아서 성불(成佛)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맛 깨닫지 못할 뿐이지 본래 원만구족(圓滿具足)한 부처님이거든, 우리가. 그러기 때문에 견성성불(見性成佛)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어.
‘그걸 저 부처님이나 닦고, 최상근기나 닦고 그러지 우리는 참선(參禪)해봤자 소용이 없다. 이렇게 세속에서 살기 바쁘고 일이 복잡한데 무슨 참선을 하냐?’ 이렇게 적극적으로 해보지도 아니하고 미리서부터서 자포자기하고 그러지를 말라 그 말이여.

절기당기자부장(切忌當機自覆藏)이여. 모든 기틀을 당해서, 모든 경계를 당해서 스스로 덮어 버리지 말아라. 스스로 매(昧)해 버리지 말아라. 경계에 속아 가지고 거기에 빠져 버리면 그게 자기가 자기를 갖다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해 버리는 거고, 바로 성불할 수 있는 기회를 갖다가 잃어버린 거다 그 말이여.

견성성불(見性成佛),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을 닦아야 성불을 한다’ 이렇게 소승 경전에 그렇게 표현이 된 데도 있습니다마는,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거든. 한번 뛰어 가지고 바로 여래(如來)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인 것입니다.

‘중생이다, 부처다’, 무슨 ‘번뇌다, 보리다’ 그런 분별심을 냄으로써 그 분별의 쇠사슬에 맥혀 가지고 거기서 나아가지를 못하는 거여.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가—눈으로 볼 수 있는 거, 귀로 들을 수 있는 거, 코로 맡을 수 있는 거, 혀로 맛볼 수 있는 거, 몸으로 촉감하는 거, 생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도 버리고 취할 것이 없는 것들이여. 바로 거기에 즉(卽)해서 자기(自己)로 돌아올 줄 알아야 돼.

무엇이 자기냐?
볼라야 볼 수 없고, 들을라야 들을 수 없고, 잡을라야 잡을 수 없는, 알 수 없는 이놈, ‘대관절 이게 무엇이냐?’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으로 돌아오는 거여. 이것이 바로 똑바로 깨달음에 나아가는 길이여.

천 가지 만 가지 부처님의 방편법(方便法)이 있지만 그러한 방편법이 하나하나 다 소중하고 훌륭하지만, 방편법이라 하는 것은 원래 오래 거기에 묶여 있어서는 아니되는 거여. 방편은 잠깐 거기 디디고서 저 건너로 건너가야지, 오랫동안 머물러 있으면 부처님의 참다운 뜻을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고기를 잡으면은 통살을 버려 버려야 하고, 물을 건너가면 배는 버리고 육지로 올라가야지, 육지에 가서도 배를 짊어지고 다니고 끌고 다니려고 한다든지, 고기를 잡은 뒤에도 계속 통살을 메고 다닌다면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이여.

지금 불법(佛法) 시대가 말법(末法)이 되었다고 하지만, 우리가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바로 믿고 실천을 해 나가면 여래(如來)의 정법(正法)은 상주불멸(常住不滅)이여. 부처님께서는 상주설법(常住說法)이여. 우주 법계에 가득차 있는 모든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바로 부처님께서 상주설법하시는 바로 그 법문(法門) 아닌 것이 없고, 경전 아닌 것이 없고.
이 정법을 믿지 않고 최상승법을 믿지 않고 그러한 사람에게는 정말 이 세상은 오탁악세(五濁惡世)요, 말법시대(末法時代)인 것입니다. 투쟁으로 자기도 멸망하고 남도 멸망하는 이러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악독한 세계를 불법이 아니고서는 막을 길이 없고 제도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온통 투쟁의 세계가 되었고, 우리나라도 지금 민주화(民主化)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최상승법을 믿고 자기 마음을 비우고 그러한 마음으로 해 나가지 아니하면 아무리 입으로 민주화를 떠들어 봤자 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민주화는 모두가 다 마음을 비우고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과 명리(名利)를 떠나서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고 인류 평화를 생각하는 뜨거운 마음이 아니고서는 민주화는 오지를 아니한 것입니다.

정치가(政治家)와 정객(政客), 때로는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정말 민족을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는 인류를 생각해서 경륜을 가지고 정치를 한 사람은 정치가라 하는 것입니다. 정치가라 그러는 거고.
사리사욕(私利私慾)에 불타고, 자기의 한 당략(黨略)에 빠져 가지고 설쳐대는 사람은 정치가가 아니라 정치꾼인 것입니다. 그런 정치꾼들이 날뛰어 가지고서는 이 나라에 민주화는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고, 인류의 평화도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앞으로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위해서 우리는 참 노력을 해야 할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온 세계가 눈에 불을 켜고 사리사욕과 당략에 떨어져서 날뛴다 하더라도 우리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은 부처님의 자비(慈悲)와 지혜(智慧)로써 속살림을 해 나가고, 자비와 지혜로써 갑옷을 삼고 등불을 삼고, 정말 국가와 민족과 인류를 위해서 벽돌 한 장이 돼. 그 수십 층 건물도 벽돌 한 장 한 장이 바로 놓임으로써 건물이 준공이 되는 것입니다.
천하없이 많은 벽돌을 갖다 놨어도 바로 쌓지 아니하면 그것이 집이 되지를 않고, 설사 쌓는다 하더라도 이리 삐딱 저리 삐딱 해서 중심을 잃어버리고 100층을 쌓은들 그것은 그 건물은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또 100층을 쌓은들 기초가 튼튼히 되지 아니하면 그 건물은 언젠가 넘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바로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로써 우리의 마음에 기초를 튼튼히 함으로써 민주화는 올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지혜와 자비로써 탁! 마음을 가다듬고서 보면 어느 사람이 정치꾼인가, 어느 사람이 진정한 정치가인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근백참현인(謹白參玄人)하노니  광음막허도(光陰莫虛度)니라
나무~아미타불~
금생미명심(今生未明心)하면  적수야난소(滴水也難消)니라
나무~아미타불~

근백참현인(謹白參玄人)하노니, 삼가 참선을 하는 사람에게 사룁나니,
광음(光陰)을 막허도(莫虛度)어다. 광음(光陰), 시간, 세월을 헛되어 보내지 마십시오.

금생(今生)에 미명심(未明心)하면, 금생에 이 마음을 깨닫지를 못하면,
적수(滴水)도 야난소(也難消)니다. 방울 물도 녹이기 어려우니라. (54분42초~1시간13분58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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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안견이문원불격(眼見耳聞元不隔)~ ; 중봉명본 스님의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峯和尙廣錄)』 제30권 '無隱' 게송 참고.
*전강영신(田岡永信) ; (1898-1974)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저서로는 《전강대종사 법어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가 있다.

*주장자(柱杖子 기둥·버틸 주/지팡이 장/접미사 자) ; 수행승이 갖는 긴 지팡이. 설법(說法)할 때나, 외출할 때에 지니는 지팡이. 주장자(拄杖子)와 같음.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게송) 황앵상수일지화(黃鶯上樹一枝花) 백로하전천점설(白鷺下田千點雪) ; 『오등회원(五燈會元)』 제15권 「奉先深禪師」 참고.
〇師曰 ‘古人道白鷺下田千點雪,黃鶯上樹一枝花’ 維那作麼生商量?
*해오라기[鷺鷥 노사] ; 왜가릿과의 새. 백로(白鷺)는 왜가릿과의 새 가운데 몸빛이 흰색인 새를 통틀어 이르는 말.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상량(商量 헤아릴 상/헤아릴 량) ; 알음알이. 지해(知解).
*알음알이[知解. 解. 會. 解會] : 참선은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생각으로써 이리저리 따져서 아는 것은 깨친 것이 아니다。참선하는 데 가장 꺼리는 것이 이 알음알이이다。그러므로 『이 문 안에 들어오려면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入此門內莫存知解)』라고 크게 써서 절 문에 붙이는 것이 이 까닭이다.
*사량분별(思量分別) : 사량복탁(思量卜度), 사량계교(思量計較)와 같은 말。 생각하고 헤아리고 점치고 따짐。 가지가지 사량분별(思量分別)로 사리(事理)를 따짐。 법화경 방편품(法華經方便品)에 「이 법은 사량분별로 능히 알 바가 아니다」라고 함.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몽산화상 저 | 혜각존자 편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55~158 에서.(가로판 p149~151)
做工夫호대  不可在古人公案上하야  卜度하야  妄加解釋이니,  縱一一領畧得過라도  與自己로  沒交渉하리라.  殊不知古人의  一語一言이  如大火聚로다.  近之不得하며  觸之不得이온  何況坐臥其中耶아.  更于其中에  分大分小하며  論上論下인댄  不喪身失命者幾希리라.

공부를 짓되 옛사람의 공안에 대하야 헤아려[卜度]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지 말지니, 비록 낱낱이 알아낸다 할지라도 자기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리라.
자못 고인의 한 말씀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어리 같음을 알지 못하는도다。 가까이 할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거늘 하물며 그 속에 앉았다 누웠다 하리요? 더구나 그 가운데서 크고 작음을 분별하며 위라 아래라 따진다면, 생명을 잃지 않을 자 거의 없으리라。

做工夫人은  不可尋文逐句하며  記言記語니,  不但無益이라  與工夫로  作障礙하야  眞實工夫가  返成緣慮하리니,  欲得心行處絕인들  豈可得乎아

 공부 지어 가는 사람은 문구(文句)를 찾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 말지니, 아무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되어서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망상의 실마리가 되리니, 마음의 자취가 끊어지기[心行處絕]를 바란들 어찌 가히 될 수 있으랴?

做工夫호대 最怕比量이니, 將心湊泊하면 與道轉遠하리니, 做到彌勒下生去라도 管取沒交渉하리라. 若是疑情이 頓發的漢子인댄 如坐在*鐵壁銀山之中하야  只要得個活路이니, 不得箇活路면  如何得安穩去리요  但恁麼做去하야  時節이  到來하면  自有箇倒斷하리라

 공부를 지어 가되 가장 두려운 것은 비교하여 헤아리는 것[比量]이니, 마음을 가져 머뭇거리면 도(道)와 더불어 더욱 멀어지리니,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공부를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만약 의정이 몰록 발한[頓發] 사람일진댄 마치 철벽(鐵壁)이나 은산(銀山) 속에 들어앉아서 다만 살 길[活路]을 찾는 것같이 할지니, 살 길을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히 지내가리오? 다만 이와같이 지어 가서 시절이 오면 저절로 끝장이 나리라.
*시비(是非) ; ①옳음과 그름. ②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 또는 옳고 그름을 따지며 하는 말다툼.
*경계(境界) ; ①산스크리트어 viṣaya 구역을 나눈다(疆域分劃)는 뜻. 줄여서 경(境). 곧 감각기관[根] 및 인식작용[識]의 대상이나 인식이 미치는 범위를 말한다.
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 · 희로애락 · 빈부귀천 · 시비이해 · 삼독오욕 · 부모형제 · 춘하추동 · 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곧 인간은 경계 속에서 살고 있고, 경계가 삶의 내용이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 · 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대하여 미워하거나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원만구족(圓滿具足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갖출 구/충족할 족) ; 모자라거나 결함이 없이 완전히 모두 갖추어져 있음.
*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참고] 『아비달마순정리론(阿毘達磨順正理論)』 제32권 「辯緣起品 第三之十二」 (대정장29, p.525c21)
言圓滿者 謂於佛身 衆相周圓 無缺減故

원만이라는 말은 부처님 몸에 온갖 상호가 두루 완비되어 결함이 없다는 뜻이다.

『대보적경(大寶積經)』 제60권 「文殊師利授記會 第十五之三」 (대정장11, p.346c3)
文殊師利言 善男子 若法不增不減 是名圓滿 云何圓滿 若於諸法 不能了知 則生分別 若能了知 則無分別 若無分別 則無增減 若無增減 此則平等 是故善男子 若見色平等 卽是色圓滿 受想行識 及一切法圓滿 亦復如是

문수사리가 말했다. 선남자야, 증가하지도 않고 감소하지도 않는 법을 원만이라 한다. 무엇을 원만이라 하는가? 모든 법에 대하여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분별이 일어나지만, 분명하게 안다면 분별이 사라진다. 만일 분별이 사라진다면 증감이 없고, 증감이 없다면 이것이 평등이다. 그러므로 선남자야, 만일 색을 평등하게 보면 색의 원만이니, 수 · 상 · 행 · 식과 다른 모든 법의 원만도 이와 같다.
*구족(具足 갖출 구/충족할 족) ; 구비만족(具備滿足)의 줄임말. ①부족함 없이, 빠짐없이 완전하게 갖춤. ②원만(圓滿)과 같음. 완전.
*부처님[佛]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깨달은 어른), 지자(知者), 각(覺 깨달음)으로 한역(漢譯).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공경하는 뜻으로,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 모든 번뇌를 소멸한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불교(佛敎)’ 그러면, ‘깨닫는[佛] 가르침[敎]’ ‘깨닫는 길’ 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깨달아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깨달음 ; 각(覺). 진리(부처님의 가르침),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견성의 성(性)은 본성(本性), 자성(自性), 본심(本心), 법성(法性) 등과 같으며, 이런 맥락에서 견성을 견자심불성(見自心佛性), 견불성(見佛性), 견자본성(見子本性), 견법성(見法性)이라고도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삼아승지겁(三阿僧祇劫) ;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을 말한다. 보살이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 수행하는 아주 긴 시간.
*일초직입여래지(一超直入如來地) ; ‘한 번 뛰어 여래(如來)의 경지에 바로 들어간다’
*여래(如來) : 부처님 10호(十號)의 하나。 범어 tathāgata의 역(譯)。 여(如)는 진여(眞如)의 뜻이니 곧 진여로부터 나타나 오신 각자(覺者)의 뜻。 또 여거여래(如去如來)의 뜻으로서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사바세계에 오셔서 중생의 근기에 응하신 까닭에 여래(如來)라고 함。 금강경에는 좇아온 곳이 없고 또한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여래라고 이름한다 했음.
[참고] 『증도가(證道歌)』 (영가永嘉 스님)에서.
覺卽了不施功  一切有爲法不同  住相布施生天福  猶如仰箭射虛空  勢力盡箭還墜  招得來生不如意

깨닫고 나면 공(功)을 베풀지 않으니 일체 유위법(有爲法)과 같지 않다. 상(相)에 머문 보시는 천상에 나는 복이나, 마치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 올라가는 힘이 다하면 화살은 다시 떨어지니, 내생(來生)에 뜻과 같지 않음을 초래하게 되리라.

爭似無爲實相門  一超直入如來地  但得本莫愁末  如淨琉璃貪寶月  我今解此如意珠  自利利他終不竭

어찌 무위(無爲)의 실상문에, 한 번 뛰어 여래의 경지에 바로 들어가는 것만 하겠는가. 다만 근본을 얻을지언정 지엽은 근심하지 말라. 마치 깨끗한 유리구슬 안에 보배 달을 머금은 것과 같네. 내, 이제 여의주를 아나니 나와 남을 이롭게 함에 마침내 다함이 없도다.
*즉해서(卽-- 곧·즉시 즉) ; 곧. 곧바로. 당장. 즉시(卽時 : 어떤 일이 행하여지는 바로 그때). 즉각(卽刻 : 일이 일어나는 그 순간 바로. 당장에 곧).
[참고] 송담스님(No.434)—1991년 2월 첫째 일요법회.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슨 생각이 일어날 때나—번뇌 망상이 일어나건, 진심이 일어나건, 슬픈 생각이 일어나건, 외롭고 괴로운 생각이 일어나건, 억울한 생각이 일어나건, 미운 생각이 일어나건, 어떠한 생각이 일어날 때라도 그 생각을 버릴라고 할 것 없이 그 생각에 즉(卽)해서 ‘이뭣고?’거든.
'즉(卽)한다'고 한 것은 버리고 여의고 띠어 내던진다는 것이 아니라, 고냥 고대로 놔둔 바로 그 자리에서 ‘이뭣고?’거든. 이것이 바로 최상승법(最上乘法) 하는 법이여.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불법(佛法) ;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法). 부처님의 교법(敎法). 부처님이 설한 법. 부처님의 가르침.
*말법(末法 끝 말/부처님의 가르침 법) ; 말법시대(末法時代).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후 교법(敎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습을 시기별로 정법(正法), 상법(像法), 말법(末法)으로 분류하는데 정법이 쇠퇴한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처음 정법시대는 교법이 온전히 있음은 물론 닦아 가는 사람도 많고, 닦는 사람은 대개 깨쳐서 성과(聖果)를 얻게 되지마는, 그 다음 상법시대는 교법도 있고 수행하는 사람도 있지마는 깨치는 사람은 적게 되고, 그 다음 말법시대는 곧 쇠잔하고 미약한 교법만 남아 있어 수행하고 증득하는 자가 없는 시기이다. 구체적인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잡아함경(雜阿含經)>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지런히 신(身)·수(受)·심(心)·법(法)의 사염주(四念住)를 닦아서 탐욕과 분심을 끊으면 정법은 영원토록 세상에 머물러 빛나게 될 것이나, 수행하지 않게 되면 정법은 곧 소멸하고 말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여러 경전에도 『누구나 부처님 말씀대로 닦으면 다 반드시 견성성불한다』하였고,
조사들의 말씀에는 『참선하는 이가 견성하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처럼 아주 쉽고 당연한 일이다』하였으므로, 누구나 공부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다만 우리는 사학(邪學)과 외도(外道)가 번성한 이 시대에 났으므로, 망녕된 알음알이를 내지 말고 줄기차게 정진한다면, 하나도 실패함이 없을[萬無一失]뿐 아니라 정법은 영원히 나아갈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상주불멸(常住不滅 항상 상/머무를 주/아닐 불/꺼질·없어질·멸할 멸) ; ‘항상 머물고 사라지지 않는다’
변함없는 본질을 유지하며 소멸하지 않는 존재를 나타낸다. 법신(法身) 또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경지를 묘사한다. 열반(涅槃) 등의 무위법(無爲法)에만 해당하는 속성이며 어떤 유위법(有爲法)에도 이러한 본질은 없다.
*상주설법(常住說法) ; 우주 대자연의 운행 그대로가 설법이라는 말.
흐르는 물소리, 노래하는 새소리, 세월이 흘러가고 춘하추동 사계절이 돌아가는 것 모두 그대로가 부처님이 출세하신 모습이요, 쉴 사이 없이 하는 설법이다.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오탁악세(五濁惡世 다섯 오/흐릴 탁/악할 악/세상 세) ; 명탁(命濁), 중생탁(衆生濁), 번뇌탁(煩惱濁), 견탁(見濁), 겁탁(劫濁)의 다섯 가지 더러운 것으로 가득찬 죄악의 세상.
[참고] ①명탁(命濁) : 말세가 다가와 악업(惡業)이 늘어감에 따라 사람의 목숨이 점차 짧아져 백년을 채우기 어려움을 이른다.
②중생탁(衆生濁) : 중생이 죄가 많아서 올바른 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을 이른다.
③번뇌탁(煩惱濁) : 번뇌로 인하여 마음이 더럽혀지는 것을 이른다.
④견탁(見濁) : 그릇된 견해나 사악한 사상이 만연해지는 것을 이른다.
⑤겁탁(劫濁) : 기근과 전쟁과 질병 등의 재앙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
*자비(慈悲) ; 자(慈)는 ‘우정•친애의 생각’라는 원의(原義)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뜻, 비(悲)는 ‘연민•동정’을 원의(原義)로, 남의 괴로움을 덜어준다는 뜻.
불•보살이 중생을 불쌍히 여겨 고통을 덜어 주고 안락하게 해주려는 마음.
*지혜(智慧) ; ①모든 현상의 이치와 선악 등을 명료하게 판단하고 추리하는 마음 작용.
②분별하지 않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는 마음 작용.
③미혹을 끊고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는 마음 작용.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이 끊어져 집착하지 않는 마음 상태. 모든 분별을 떠난 경지에서 온갖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 작용.
*(게송) 근백참현인(謹白參玄人) 광음막허도(光陰莫虛度) ; ‘이치를 참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부디 광음을 아껴 헛되이 보내지 말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34~135. (가로판 p139~141)
(59)佛云,  無常之火가  燒諸世間이라 하시고  又云,  衆生苦火가  四面俱焚이라 하시며 又云,  諸煩惱賊이  常伺殺人이라 하시니  道人은  宜自警悟하야  如救頭燃이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덧없는 불꽃이 온 세상을 살라 버린다」하시고, 또 「중생들의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하시며, 또 「모든 번뇌의 적이 항상 너희들을 죽이려고 엿보고 있다」하시니, 수도인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쳐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할지어다.

註解(주해) 身有生老病死하고  界有*成住壞空하고  心有生住異滅하니  此無常苦火가 四面俱焚者也라
【謹白參玄人하노니  光陰을  莫虛度하라

몸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고, 세계에는 이루어지고[成] 지속되고[住] 파괴되고[壞] 없어져[空] 버리는 것이 있으며, 마음에는 일어나고[生] 머물고[住] 변해 가고[異] 사라져[滅] 버리는 것이 있으니 이것이 덧없는 고뇌의 불이 사면에서 함께 불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치를 참구하는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부디 광음을 아껴 헛되이 보내지 말라.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주요한 네 가지 현상. 출생하여 나타나는 현상을 생(生), 노쇠하는 현상을 노(老), 병든 현상을 병(病), 마지막으로 사라지는 현상을 사(死)라 한다.
생사를 반복하는 윤회의 일반적 형식으로서 사상(四相)이라고도 하고, 이것이 고통이기 때문에 사고(四苦)라고도 한다. 생로병사가 사라진 경계가 무위법(無爲法)인 열반(涅槃)이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다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成],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住], 쇠퇴하여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壞], 모든 것이 괴멸되어 허공만 있는 과정(상태)[空]이 반드시 있게 된다.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生), 머물고(住), 변화하고(異), 소멸함(滅). 또는 그런 현상.
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다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니 하는데, 그 원인은 우리의 마음속에 생각이 쉴 새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게송) 금생미명심(今生未明心) 적수야난소(滴水也難消) ;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도 소화시키기 어려우니라’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에서.
自從耕種 至于口身 非徒人牛 功力多重 亦乃傍生 損害無窮 勞彼功而利我 尙不然也 況殺他命而活己 奚可忍乎 農夫 每有飢寒之苦 織女 連無遮身之衣 況我長遊手 飢寒 何厭心

밭 갈고 씨 뿌리는 것에서부터 먹고 입는 데 이르기까지 비단 사람과 소의 공력이 많고 무거울뿐 아니라 또한 벌레들이 죽고 상한 것도 그 수가 한량없도다. 다른 이를 수고시켜 내 몸을 이롭게 하는 것도 오히려 못할 것인데, 하물며 남의 생명을 죽여 내 몸 살리는 일을 어찌 차마 하겠는가? 농부도 늘 춥고 배고픔의 고통이 있고, 베 짜는 아낙네도 늘 몸 가릴 옷이 없는데 하물며 나는 항상 손을 놀리거니 어찌 춥고 배고픔을 마음에 싫어하겠는가?

軟衣美食 當恩重而損道 破衲蔬食 必施輕而積陰 今生未明心 滴水也難消 頌曰 菜根木果慰飢腸 松落草衣遮色身 野鶴靑雲爲伴侶 高岑幽谷度殘年

부드러운 옷과 맛있는 음식은 시은(施恩)이 무거워 도를 덜게 하지만, 떨어진 옷과 나물밥은 반드시 시은이 가벼워 음덕을 쌓는다.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今生未明心] 한 방울의 물도 소화시키기 어려우니라[滴水也難消]. 게송으로 말하노라. 풀뿌리 나무 열매로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 송락과 풀잎으로 몸을 가리며, 들 학과 푸른 구름 벗으로 삼아 높은 산 깊은 골에 남은 생애 보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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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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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진심(瞋心) (No.341)—양무제, 치씨 부인,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 | 진심을 다스리는 정말 훌륭한 방법은 참선법 | 一念瞋心起 百萬障門開 | 한 번 진심을 냄으로써 무량겁 쌓은 공덕이 일시에 소멸되어 버린다.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 - 탐(貪) · 진(瞋) · 치(癡) · 만(慢) · 의(疑) · 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36분 8초)



[법문] 송담스님(No.341)—1987년 11월 첫째일요법회(87.11.01) (용341)

양무제는 본래 옹주, 중국에 옹주(雍州)라는 데가 있는데, 천자가 되기 전에 옹주자사(雍州刺史)로 있었습니다. 옹주자사로 있었는데, 치(郗)씨라고 하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황후(皇后)가 아니고 치씨 부인인데, 참 얼굴이 예쁘고 그런데 성질이 어떻게 표독하고 질투심이 강했어.
그래 가지고 양무제가 다른 여자와 가까이 한 꼴을 보지를 못하고,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오직 자기만을 위해 주고, 자기만을 사랑해 주고, 자기만을 갖다가 알아주기를 그렇게 바랬어. 조금만 한눈을 팔거나 그러면은 어떻게 강짜가 심하고 투기가 심하던지 도저히 용납이 없다 그 말이여.

그래도 그때 당시 임금이라든지 또는 원님이라든지... 옹주자사라 하면은 아마 원님이 아닌가 싶은데, 그런 고관을 지내면은 다 첩실(妾室)도 있고 다 기생과 놀기도 하고 술도 먹고 그러기 마련인데, 치씨 부인은 그러한 꼴을 못 봐 가지고 나중에는 어떻게 독기(毒氣)를 피우다가 자기가 자기의 분노를 이기지 못해 가지고 집 앞에 있는 우물에 빠져 가지고 자살을, 투신(投身)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쫓아와 가지고 우물 속에 들어가 가지고 간신히 건지려고 가니까 어느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큰 무서운 독사, 아주 오색이 찬란한 금색 구렁이가 되어 가지고는 혀를 널름널름. 그래 가지고 깜짝 놀래 가지고 사람들이 접근을 못했어.
눈은 번쩍거리면서 오색이 찬란한 비늘이 번쩍거리면서 그냥 무서운 독사의 어금니를 갖다가 벌리고서 혀를 널름거리는 통에 혼비백산(魂飛魄散)해 가지고 구제하지를 못하고 기절초풍을 해 가지고 우물에서 다 기어나와 버렸다 그 말이여.

그런데 꿈에면 그 무제(武帝) 자고 있는 후궁(後宮)으로 무서운 독룡이 기어 들어와 가지고는—본래 처음에 들어올 때에는 구렁이로 들어와 가지고는 스르르르 깜짝할 사이에 본래의 그 치씨 부인의 모습이 되어 가지고 아양을 떨면서 품안으로 파고들어. 깜짝 놀래 가지고 양무제가 눈을 떠 보면은 간 곳이 없다 그 말이여.
아, 후궁에만 들어가면 그놈이 나타나 가지고 독사가 되었다 사람이 되었다 그런 통에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꼬치꼬치 말라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또 그 연못에서 그냥 꼬리를 치면서 물을 치면은 거기서 안개가 자욱하게 일어나고. 그래 가지고 양무제가 할 수 없이 그 우물 위에다가 치씨 부인의 사당(祠堂)을 짓고, 인자 초상화를 그려서 딱 모시고.
그래 가지고 『자비도량참(慈悲道場懺)』이라 하는 십 권에 달한 참회하는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이라고 하는 십 권의 책을 저술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 고승(高僧)을 청해다가 도량참법에 의해서 치씨 부인을 갖다가 원한을 풀고 그래 가지고 천도(薦度)하는 의식을 거행을 했는데.

그 치씨 부인이 결국은 그 공덕(功德)으로 그러한 업(業)의 몸뚱이를 벗어버리고 천상으로 올라가는데, 올라가면서 공중에서 소리를 치기를 “양무제한테 내가 그동안에 옹졸한 생각으로 그런 독을 품다가 결국은 투신 자살해서 이런 흉악한 몸을 받아 가지고, 결국은 아주 복수를 해서 당신도 죽이고, 당신을 가까이 한 모든 여자를 갖다가 다 말려서 죽이려고 내가 작정을 했는데, 『도량참법』을 만들고 사당을 지어서 나를 고승을 청해다가 이렇게 천도를 해 주니, 내가 모든 원한을 풀고서 내가 천상에 올라가니 참 감사하다”고.
이렇게 올라간 뒤로는 다시는 꿈에 나타나서 괴롭히는 일도 없고, 그 우물에서 갖다가 꼬리를 치고 모다 그런 일도 없고 조용해졌는데, 그 뒤로 양무제가 지은 『도량참법』이라고 하는 참회법이 널리 세상에 행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 ‘극념(克念), 자기의 생각을 스스로 이겨야 한다. 수행을 해 나가는 데에는 자기가 자기를 이겨야 한다’ 하는 말씀이 계셨고, 부처님께서도 ‘백만 군사를 갖다가 호령을 해서 움직이고 이기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자기가 자기를 이기고 다스리기는 참으로 어렵다’ 하는 그런 말씀도 있지마는, 참선(參禪)을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자기를 이기는 힘, 자기를 이기는 수행과 노력이 없이는 도업(道業)은 성취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특히 무슨 재물에 대한 욕심이라든지, 색(色)에 대한 욕심이라든지, 명예 ・ 권리에 대한 그런 일어나는 욕심을 이기는 것도 그것도 모두가 어려운 일이고 중대하지만, 그 여러 가지 가운데에 가장 수행하는 데에 막대한 지장을 가져오고, 자기가 무량겁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쌓아 온 모든 공덕을 한 생각에 멸진(滅盡)을 시켜 버리는 그 무서운 것이 바로 진심(瞋心)을 내는 것입니다.
이 진심(瞋心)이라고 하는 것은—우리가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살아가는 데에 정말 진심을 내지 않고는 살기가 어렵습니다. 크고 작은 모든 진심, 아마 이 세상에 사람이 지금 현재 40억이니 50억이니 하고 또 세계 역사가 생긴 이래로 몇 천만억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진심(瞋心)을 한 번도 내지 않고 사는 사람은 몇 사람이 될는지 모릅니다.

부처님께서도 전생에 왕으로 계실 때에 어떤 문둥병보다도 더 무서운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무서운 만신창이(滿身瘡痍)가 된 무서운 창병(瘡病)이 걸린 거지를 나수기 위해서, 결국은 환자를 갖다가 치료해 주기 위해서 어명(御命)으로 치료하게 되는데 도저히 그 병이 하도 무서운 병이라 치료할 수가 없어.
그래서 “오직 이 사람의 병은 한 번도,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난 이후로 한 번도 진심(瞋心)을 내지 아니한 사람의 피를 뽑아 가지고 약을 제조해야만 이 병을 낫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임금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임금님께 그 의사가 “그러니 이 세상에 성 안 낸 사람을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약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임금님이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자기 자신이 한 번도 진심을 낸 기억이 안 나. 그러나 철이 들기 전 어렸을 때는 혹 몰라서 유모한테 가서 물어봤습니다. “내가 혹 철난 뒤에는 진심을 낸 기억이 없지만, 철이 나기 전 아주 어렸을 때는 내가 혹 진심을 냈느냐?”고 물어보니까, “정말 갓난아기 때부터서 진심을 내신 일도 없고, 철이 난 뒤로도 오늘날까지 진심 내시는 것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어.
그래서 임금님은 의원에게 “내 피를 뽑아서 만들어라” 하니까 “어떻게 감히 상감마마의 옥체에서 피를 뽑을 수가 있습니까?” “괜찮다. 어명이니까 피를 뽑아서 해라” 그래 가지고 피를 뽑아 가지고 무서운 그 병을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그 환자가 병을 낫고서 그래 가지고는 10생(十生)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을 갖다가 갖은 방법으로 부처님을 괴롭힌 바로 조달(調達)이의 전신(前身)이고, 그 어진 상감마마는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신인 것입니다.

어째서 상감마마로서 자기의 피를 뽑아서 무서운 병을 고쳐 주었는데 무엇 때문에 10생을 따라다니면서 그렇게 부처님을 갖다가 못살게 굴고, 이생에는 부처님이 사바세계(娑婆世界)의 교주로 태어나시니까 저도 사촌으로 태어나 가지고 가지가지 못된 방법으로 부처님을 죽이려고까지 하다가 결국은 생함지옥(生陷地獄)을 해서 무간지옥에 떨어졌습니다마는.

참, 소승불교에서는 ‘그런 죄를 지어서 무간지옥에 떨어졌다, 부처님 몸에 피를 나게 한 죄로 생함지옥을 했다’ 이렇게 보지마는, 최상승법에 있어서는 ‘정말 조달이야말로 10생을 따라다니면서 부처님께 그렇게 큰 은혜를 갚았다. 조달이의 공덕이 아니면 어떻게 부처님이 그렇게 빨리, 그렇게 크게 대도를 성취를 하셨겠느냐. 조달이야말로 정말 부처님보다 먼저 깨달으신 선불(先佛)이시고 그렇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마는.
순행(順行)으로 항상 뜻을 맞추어 주고, 따라 주고, 부드럽게 대해 주고 그런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고, 역행(逆行)으로 그 사람의 정신과 육체에 충격을 주면서 고통을 주면서 그래야만 보다 더 큰 발심(發心)과 분심(憤心)을 내 가지고 대도를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비단 도문(道門)에서 뿐만이 아니라 세속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칭찬하고 좋은 얘기만 해 주고 그러한 친구만을 좋아하는 사람은 친구로 삼지 말아라. 나의 단점을 지적해 주고, 충고해 주고 그러한 친구를 고맙게 생각할 줄 아는 그러한 사람을 친구로 삼아라’ 그런 말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만약 조달(調達)이가 10생을 따라다니면서 갖은 악한 행동으로써 고통을 주었을 때, 그것을 갖다가 원수로 생각하고 미워하고 진심을 내고 복수를 하셨다면 부처님은 마침내 성불을 하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고통을 주어 왔지만 부처님께서는 한 번도 진심을 내거나 원한심을 내서 복수할 마음을 내지 않고, 보다 더 신심을 내고, 분심을 내고 그래 가지고 더욱 정진(精進)을 하셨기 때문에 그런 대도(大道)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방금 양무제, 그 치씨 부인이 그러한 악독을 품고서 투신 자살을 해 가지고 독사가 되어서 그렇게 했지만, 양무제는 그것을 독한 마음으로 구렁이를 잡아 가지고 태워서 죽일 수도 있고 그러겠지마는, 그것을 자비심으로써 사당을 짓고 또 『도량참법』을 지어서 큰스님네를 청해 가지고 천도를 잘 해주었으므로 해서 그 악독한 치씨 부인을 천상에 태어나게 했어.
비록 양무제가 그 당시 최상승법을 믿지를 못하고 달마 스님을 알아보지를 못했다고는 하지만, 양무제는 역사적으로 길이 잊지 못할 신심이 돈독한 천자였습니다.

이 진심(瞋心)! 진심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께서도 여러 경전에 진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에 대해서 누누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련존자(目連尊者)도 오백 생을 두고 타살(他殺)을 당하고, 금생에 와서는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한 부처님의 오른팔과 같은 그러한 성현이 되어 가지고도 그렇게 결국은 외도(外道)한테 타살을 당했습니다마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오백 생을 두고 그러한 성현이, 거룩한 수행자가 그렇게 아무 허물도 없이 그렇게 맞아서 돌아가셨느냐? 저 전생에 진심(瞋心)을 냈어.
자기 어머니가 자식 내외의 정분 좋게 지내는 것을 보고 그것을 좋게 보지를 않고, 자식 며느리를 미워하고 못살게 구니까, ‘어떤 기운 센 장사가 나와 가지고 저 늙은이 때려죽일 사람이 없겠느냐?’고 이렇게 진심을 내고, 참 자식으로서 해서는 안 될 그러한 욕설을 퍼부은 그 과보(果報)로 오백 생을 두고 맞아 죽는 과보를 받았습니다.

목련존자는 부처님 10대 제자(十大弟子) 가운데에 신통(神通)이 제일인데, 과거에 지은 업으로 금생에 맞아 죽기 때문에 그렇게 참혹하게 외도한테 맞아서 돌아가시게 되면서도 신통을 부릴 여유가 없었어.
그 도반인 사리불존자가 “자네가 신통이 제일인데 신통술로 피하던지, 외도를 갖다가 방어를 하던지 그러지, 어찌 자네가 신통을 어디다 두고 쓸라고 그렇게 참혹하게 맞았나?” 하니까, “내가 과거에 지은 업(業)이기 때문에 신통이란 ‘신’ 자도 생각이 안 났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 진심(瞋心)!

그리고 또 홍도 비구(弘道比丘)라고 하는 스님은 다겁(多劫)으로 수행을 잘 쌓아 가지고 머지않아서 곧 견성성불(見性成佛)할 단계에까지 왔는데, 문턱에다가 손을 거기다 걸치고서 터억 정진을 하다가 삼매(三昧)에 들었어. 그래 가지고 시간이 흐르는 중을 모르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가지고 문이 탁! 닫혀지는 바람에 손가락이 깨져 가지고 깜짝 놀래 가지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까닭없이 진심을 폭! 냈다 그 말이여.
그 바람을 보고 성을 냈는지, 문짝을 보고 성을 냈는지 갑자기—삼매에 들었다가 그 삼매를 깨게 하고 손가락에서 피가 나오고 하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심이 폭! 났는데, 그 진심(瞋心) 한 번 낸 그 과보로 바로 뱀이 되었습니다.

독사가 되어 가지고, 독사가 되기는 했지만 워낙 다겁을 수행을 해 가지고 머지않아서 견성성불할 단계에까지 왔기 때문에 독사는 되었지마는 환하니 다 의식을 매(昧)하지를 안 해 가지고, 재를 갖다가 꼬리로 잘 요렇게 골라 놓고서 꼬리로써 글을 지었어.
‘다생에 내가 수행을 해 가지고 머지않아서 성불을 하게 되었는데, 일기진심수사신(一起瞋心受蛇身)이다. 한 번 진심을 낸 그 과보로 이렇게 뱀 몸뚱이를 받았다’ 한 그런 게송(偈頌)을 써서 그래서 ‘모든 수행자들은 이 게송을 벽에다 붙여 놓고, 크고 작은 모든 진심을 내지 않도록 하라’ 이러한 뜻의 게송을 지었습니다.

이러한 홍도 비구나, 목련존자나, 치씨 부인이나 그밖에도 경전에 나타난 진심(瞋心)의 무서운 것에 대한 말씀이 참 많지마는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고.


우리가 이 사바세계는 진심(瞋心)을 참! 안 내고 살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냐?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천상(天上)은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는 것이여. ‘무엇이 먹고 싶다’ 하면은 벌써 배가 불러져 있고, ‘어디 가고 싶다’ 하면 이미 그 자리에 와 있고, 무엇이고 내 마음먹은 대로 다 되고, 내게 조금도 해로울 일이라고는 일어나지를 않고 나타나지를 않어. 다 내 마음에 편안하고 즐겁고 좋은 일만 있는 곳이 천상입니다. 그러니까 천상에서는 진심(瞋心)을 낼 필요가 없죠.
지옥(地獄)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라고는 없어. 사사건건이 나를 괴롭히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일만이 있어.

그런데 이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즐거움도 있는가 하면은 괴로움도 있고, 슬픔도 있는가 하면은 기쁨도 있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다 섞여 있어서 다행히 내 뜻대로 뭔 일이 잘 되는가 싶으면은 금방 꼬리를 이어서 속상한 일이 또 일어나고, 금방 이만하면 참 좋다 싶으면 뜻밖에 사고가 일어나 가지고 슬픔이 닥쳐오고.
형제간에도 정이 서로 의합(意合)이 되는가 하면은 서로 싸우고, 부자간에도 싸우고, 며느리와 시어머니도 싸우고, 회사에서도 싸우고, 직장에서도 싸우고, 정치도 싸우고, 맨 싸움, 더군다나 이 말세(末世)는 투쟁견고(鬪諍堅固)의 시대인데, 투쟁이 치성하는 시대, 무엇이든지 그저.

서로 대화로써 해결하고, 타협으로써 해결하고, 양보로써 한다면 피차가 다 좋고 모든 일이 순리로 잘 풀려 갈 텐데, 사사건건이 한마디 두 마디 간 뒤로는 벌써 말이 거칠어지고, 제 욕심 챙기느라고 싸움을 하게 된다 그 말이여. 그래서 나라도 시끄럽고, 회사도 그걸로 인해서 화합이 깨지고, 가정도 그걸로 인해서 화합이 깨지고, 부부간에도 그걸로 인해서 원수가 되어서 생이별 사이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수행인은 비교적 수행에 열중을 하다 보니 언제 성낼 겨를이 없겠지만, 그래도 한철을 지내다 보면 속상한 일이, 크고 작은 속상한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그거거든.

밖으로 확! 진심(瞋心)을 내서 표현을 하는 것도 물론 나쁘지만, 밖으로 표현을 안 하고 속으로 진심을 내는 거 그것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꽉 참고—겉으로 목구멍까지 욕설이 나오고, 주먹이 쥐어지고, 곧 그냥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격분을 해도 꽉 참을성 있는 사람은 그놈을 참고서 속으로—표현을 하지 아니한 그런 분들도 있습니다.
다 참 그만큼 참을성 있는 것은 대단히 훌륭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 대승법(大乘法)에 있어서는 밖으로 표현한 것만 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표현을 안 하고 속으로만 일어나도 이미 범(犯)한 것이 돼. 그래서 속으로 일어나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니어. 오히려 밖으로 표현해 버리고 그냥 바로 깨끗이 잊어버리는 편이 속으로 참고 은근히 오랫동안 간직을 하고 속상한 것이 더욱 나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밖으로 표현을 해 버리면 사람들은 보고 ‘저 사람 진심(瞋心)을 잘 내는 사람이다. 저 사람 수양이 덜 된 사람이다’ 할는지 모르지만, 한마디 욕설 퍼부어 버리고 금방 잊어버린다면 그것이 오히려 육체적으로도 좋고, 정신 위생상으로도 괜찮은 경우가 있습니다.
겉으로 표현 안 하고, 속으로 참고 참고 억지로 눌러 놓은 것은 나중에 위장병도 생기고, 신장병도 생기고, 고혈압도 생기고, 천식도 생기고, 기관지도 나빠지고 해 가지고 골병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오목가슴 밑에 주먹같은 적(積)이 생겨 가지고 일생 동안 그놈이 풀리지를 않고 화병(火病)이 나 가지고 결국은 죽게 되고 그러는데, 그 속으로 참는 미덕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 참는 것이 그렇게 썩 훌륭한 것도 아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은 진심(瞋心), 일어나는 진심을 다스릴 수가 있느냐?
이것은 육바라밀(六波羅蜜)을 닦는다든지 모다 그러한 것, 평상시에 보시(布施) ・ 지계(持戒) ・ 인욕(忍辱) ・ 정진(精進) ・ 선정(禪定) ・ 지혜(智慧), 이러한 육바라밀을 항상 평상시에 닦아 가면 차츰차츰 자비심(慈悲心)이 충만하고, 또 모든 마음이 안정이 되고 또 남을 잘 용서하게 되고, 또 그렇게 해서 수행을 쌓아 나가면 그런 속상한 일이 당하더라도 상대방 입장이 되어서 잘 이해를 해 주고서 바로 용서를 하고 풀어 버리고 이렇게 되어 갑니다마는, 이런 것도 하나의 좋은 방편(方便)이 될 수가 있겠죠.

그러나 정말 훌륭한 방법은 참선법(參禪法)인 것입니다.

단전호흡(丹田呼吸)! 단전호흡을 하면서 항상 ‘이뭣고?’ 참선을 하면 어지간한 일에는 별로 성낼 일이 없어지고, 특수한 경우에 성이 날라다가도 턱! 한 생각 돌이켜서 화두(話頭)를 들어 버리면 언제 자취가 없이 그냥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한 달, 두 달 해 갖고 금방 그렇게 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일 년, 이태, 삼 년 꾸준히 수행을 해 나가다 보면 진심(瞋心)을 잘 내는 그런 성질을 가진 사람도 차츰차츰 진심을 내지 않게 되고 완전히 정신혁명(精神革命)이 일어나게 돼. 그래서 정신적인 체질 개선이 되어서, 뭐 인간 세상에 그까짓 일 가지고 성낼 만한 일이 여간해서 만나기가 어려워.
성내는 거, 탐심 내는 거, 탐진치(貪瞋癡) 삼독심(三毒心)이 그걸 억지로 참아 갖고는 참 어려운 일이고, 수행을 통해서 항상 마음을 청정히 갖고 자비심으로써 생활을 해 나가면 자연히 그런 진심(瞋心)이 순화가 되어서 승화(昇華)가 되는 것입니다.

이 진심(瞋心)이라 하는 것은, 여러 경전에 진심을 갖다가 진화(瞋火), ‘성낼 진(瞋)’ 자, ‘불 화(火)’ 자, 진화(瞋火)라고 이렇게 표현도 하셨습니다.
왜 진화(瞋火)라고 하냐 하면은, 그 성내는 열뇌(熱惱)가 마치 불과 같다. 왜 불과 같으냐 하면은 그 성을 내면은 무량겁에 지은 모든 공덕(功德)을 일시에 다 태워 버리기 때문에 그것을 진화(瞋火)라 그러고.
성을 내면은 벌써 눈도 붉어지고, 얼굴도 붉어지고, 몸뚱이도 뜨거워지고 그러고 마음도 갖다가 뜨거워져 가지고는 혈압도 오르고 그러기 때문에 몸과 마음을 뜨겁게 하기 때문에 진화(瞋火)라 그러거든.

진심을 많이 낸 사람은 열(熱)이 항상 위로 쳐 올라가 가지고 그래서 상기병(上氣病)이 생기고, 눈이 붉어지고, 눈이 빨리 나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은 진화(瞋火)가 일어나지 않게 하느냐?
항상 자비심(慈悲心), 자비심으로써 자기 마음을 윤택하게 만들어. 부드럽고 서늘하고 윤택하게 만들면 자연히 진심의 불이 자취 없이 식어 버리고 사그라져 버린다.

이 진심(瞋心)이라 하는 것은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는 근본이 탐진치 삼독인데, 삼독 가운데에 제일 악(惡)한 것이 바로 진심인 것입니다. 최악의 독(毒)한 것이 진심이다.

『화엄경』에도 말씀하시기를 ‘일념진심기(一念瞋心起), 한 생각 진심(瞋心)을 일으키면은 백만장문개(百萬障門開)다. 백만 가지의 장문(障門), 도를 갖다가 장애하는 문이 열린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한 생각 진심을 일으키면은 모든 재앙으로, 진심을 일으키는 재앙으로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이렇게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함경』에는 ‘부처님을 친견을 못하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것을 친견을 못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진심(瞋心)을 내는 그 과보로 부처님을 친견을 할 수가 없다’ 진심을 냄으로써 계속 삼악도(三惡途)를 돌다 보니 어떻게 부처님을 친견할 수가 있겠느냐 그 말이여.

탐심(貪心)도 나쁜 것이고 치심(癡心)도 나쁜 것이지마는, 차라리 백천만 번을 탐심을 낼지언정 한 번의 진심(瞋心)을 내지 말어라. 한 번 진심을 냄으로써 무량겁 쌓은 공덕이 일시에 소멸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렇다.
탐심을 내면은 그걸 안 내면 그만이고, 욕심을 냈다가도 다시 버려 버리면 그만이지만, 진심을 한번 내면은 저 지은 몸과 마음, 저 죽이고 남을 죽여. 한 사람이 집안에서 진심(瞋心)을 내 갖고 있으면 전 집안 식구가 그 독(毒)으로 인해서 모두 기분이 나쁘다 그 말이여. 진심을 내서 누구를 뚜드려 패고 욕설을 안 해도, 혼자 진심을 내 가지고 미간을 찌푸리고 진심을 내고 있으면은 공연히 옆에 있는 사람도 모두가 다 기분이 나쁘다 그 말이여.
더군다나 집안 어른일 때에는 더 그렇고, 회사에 사장이나 과장이나 우두머리에 있는 사람은 더 한 사람이 그렇게 공연히 진심을 내면 전 부하 직원들이 모두 기분이 나뻐. 그래서 모다 의욕을 상실을 하고 그런 것이다 그 말이여. 나라에서도 웃어른이 진심을 내고 그러면은 전 밑에 각료, 백성들이 모다 다 그 해독(害毒)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거거든.(18분20초~54분28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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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짜 ; ‘강샘(결혼한 상대자나 자신이 좋아하는 이성(異性)이 다른 이성을 좋아할 경우에 지나치게 시기함)’을 속되게 이르는 말.
*투기(妬忌 샘내다·시기하다·투기하다 투/꺼리다·질투하다·시기하다·미워하다 기) ; 사랑하는 사이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상대가 또 다른 이와 좋아하는 것을 지나치게 미워함.
*혼비백산(魂飛魄散)하다 ; (사람이)매우 놀라거나 혼이 나서 넋을 잃다.
*후궁(後宮) ; ①제왕(帝王)의 첩. ②주되는 궁궐의 뒤쪽에 있는 궁궐.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 ; ①총 10권으로 구성된 이 참법은 6세기에 중국 양무제(梁武帝)의 지시로 여러 학승이 502년에서 519년 사이에 편찬한 것으로 일종의 참회문 총서라고 할 만큼 여러 경전에 있는 참회의 방법과 내용을 일정한 체계로 엮은 것이다. 원(元)나라(1280-1368) 때 묘각지(妙覺智)가 재편집하였다.
별칭으로 『계운자비도량참법(啓運慈悲道場懺法)』, 『양황참(梁皇懺)』이라고도 하며, 주석서로는 고려 말 조선 초에 활동한 조구(祖丘) 스님(?~1395)이 저술한 『자비도량참법집해(慈悲道場懺法集解)』가 있다.

책의 첫머리에 생전의 악업으로 사후(死後) 구렁이가 된 황후 치씨를 제도하기 위해 양무제가 지공 선사 등에게 이 참회문의 편찬을 지시한 동기가 적혀 있다.
본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정삼업(淨三業)에 관한 것으로 참법을 행하는 이가 먼저 갖추어야 할 몸과 마음가짐에 대해 설한다. 제1권과 제2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현과보(顯果報)에 관한 설명으로 과보가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 설한다. 제6권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는 자경(自慶)에 관해 설명으로, 자신의 업보를 해결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회향과 권유의 마음으로 예참하는 것에 대해 설한다. 제10권까지가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이 참법은 고려대장경 보유부(補遺部)에 수록된 것으로 미루어 고려 고종 연간 이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짐작된다. 또한 현재에 유통되는 예참법은 각 권의 처음에 찬(讚), 향찬(香讚) 등이 있어 이 참법과는 다른 점이 있다.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 자비도량참법전(慈悲道場懺法傳) (제대법사諸大法師 집찬 | 변각성 번역 | 불교기록문화유산 아카이브)
이 참법은 양무제(梁武帝)가 황후 치(郗)씨를 위하여 편찬한 것이다. 치씨가 죽은 후, 몇 달이 되도록 무제가 항상 생각하고 슬퍼하여 낮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어느 날 침전(寢殿)에 있노라니,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큰 구렁이가 전상(殿上)으로 기어 올라오는데, 벌건 눈과 날름거리는 입으로 무제를 바라보고 있지 아니한가. 무제가 크게 놀랐으나 도망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벌덕 일어나 구렁이를 보고 말하였다.

“짐(朕)의 궁전이 엄숙하여 너 같은 뱀이 생길 수 없는 곳인데, 반드시 요망한 물건이 짐을 해하려는 것이다”
뱀이 사람의 말로 임금께 여쭈었다. “저는 옛날의 치씨입니다. 신첩(臣妾)이 살았을 적에 후궁들을 질투하며 성품이 혹독하여 한 번 성을 내면 불이 일어나는 듯, 활로 쏘는 듯, 물건을 부수고 사람을 해하였더니, 죽은 뒤에 그 죄보로 구렁이가 되었습니다. 입에 넣을 음식도 없고, 몸을 감출 구멍도 없으며, 주리고 곤궁하여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 비늘 밑마다 많은 벌레가 있어 살을 빨아먹으니 아프고 괴롭기가 송곳으로 찌르는 듯합니다.
구렁이는 보통 뱀이 아니므로 변화하여 왔사오니 궁궐이 아무리 깊더라도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예전에 폐하의 총애하시던 은혜에 감격하여 이 누추한 몸으로 폐하의 어전에 나타나 간청하오니, 무슨 공덕이든 지어서 제도하여 주소서”

무제가 듣고 흐느껴 감개하더니, 이윽고 구렁이를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무제는 스님들을 궁궐 뜰에 모아놓고 그 사실을 말하고, 가장 좋은 계책을 물어 그 고통을 구제하려 하였다.
지공(誌公) 스님이 대답하였다. “모름지기 부처님께 예배하면서 참법(懺法)을 정성스럽게 행해야 옳을 것입니다”
무제는 그 말을 옳게 여기고, 여러 불경(佛經)을 열람하여 명호(名號)를 기록하고, 겸하여 생각을 펴서 참회문을 지으니, 모두 열 권인데 부처님의 말씀을 찾아서 번거로운 것은 덜어 버리고 참법을 만들어 예참하였다.

어느 날, 궁전에 향기가 진동하면서 점점 주위가 아름다워지는데 그 연유를 알지 못하였는데, 무제가 우러러 보니 한 천인(天人)이 있었다. 그는 용모가 단정하였다. 무제에게 말하기를, “저는 구렁이의 후신(後身)이옵니다. 폐하의 공덕을 입어 이미 도리천(忉利天)에 왕생하였으니, 이제 본신(本身)을 나타내어 영험을 보이나이다” 그리고 은근하게 사례하고는 마침내 보이지 않았다.
양 나라 때부터 오늘까지 천여 년 동안 이 참회본을 얻어 지성으로 예참(禮懺)하면 원하는 것은 모두 감응(感應)이 있었다. 혹시 그런 사실이 감추어지고 없어질까 두려워 대강 기록하여 여러 사람들께 알리는 바이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공덕(功德 공로·보람 공/덕 덕) ; ①복, 좋은 결과를 가져 오는 원인이 되는 뛰어난 복덕(福德). ②선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모든 행위와 마음 씀씀이.
무엇보다 가장 큰 공덕은 불법에 귀의하여 깨달음을 닦는 것이고, 이러한 사람을 보고 함께 기뻐하는 것도 큰 공덕(隨喜功德)이 된다. 이러한 공덕은 끝이 없어서 수천 사람이 횃불 하나에서 저마다 홰를 가지고 와서 불을 붙여 가더라도 원래의 횃불은 사그러들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참고] 『大乘義章』 (제9권) ‘二種莊嚴義四門分別’에서.
言功德者 功謂功能 善有資潤福利之功 故名爲功 此功 是其善行家德 名爲功德

공덕에서 공(功)은 공능(功能, 功績과 才能)을 말하니, 선을 쌓는 등 복되고 이로운 공능을 지닌 것을 공(功)이라고 하며, 이 공을 통해 이루어진 선행에 따른 덕을 공덕이라고 한다.
*업(業) ; (산스크리트어, karma 카르마) ; ①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행위와 말과 생각, 일체의 행위.
②행위와 말과 생각이 남기는 잠재력. 과보를 초래하는 잠재력.
③선악(善惡)의 행위에 따라 받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
④좋지 않은 결과의 원인이 되는 악한 행위. 무명(無明)으로 일으키는 행위.
⑤어떠한 결과를 일으키는 원인이나 조건이 되는 작용. 과거에서 미래로 존속하는 세력.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70)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멸진(滅盡 끄다·멸하다 멸/다하다·다 없어지다 진) ; 멸하여 없어짐 또는 없애 버림.
*진심(瞋心) ; 왈칵 성내는 마음.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경계에 대하여 미워하거나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만신창이(滿身瘡痍 찰 만/몸 신/부스럼 창/상처 이) ; 온몸이 제대로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상처투성이가 됨.
*창병(瘡病 부스럼 창/질병 병) ; 피부에 나는 질병을 통틀어 이르는 말.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번역하여 천열(天熱), 천수(天授), 천여(天與).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생함지옥(生陷地獄) ; 살아서[生] 지옥(地獄)에 떨어짐[陷].
*무간지옥(無間地獄) ; 아비지옥(阿鼻地獄)이라고도 함. 아비(阿鼻)는 산스크리트어 avīci의 음사(音寫)로서 ‘아’는 무(無), ‘비’는 구(救)로서 ‘전혀 구제받을 수 없다’는 뜻. 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은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끊임없이 고통을 받기 때문에 무간(無間)이라 한다.
아버지를 죽인 자, 어머니를 죽인 자, 아라한을 죽인 자, 승가의 화합을 깨뜨린 자, 나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나게 한 자 등, 지극히 무거운 죄를 지은 자가 죽어서 가게 된다는 지옥.

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인에게는 필파라침(必波羅鍼)이라는 악풍(惡風)이 있는데 온몸을 건조시키고 피를 말려 버리며 또 옥졸이 몸을 붙잡고 가죽을 벗기며, 그 벗겨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묶어 불 수레에 싣고 훨훨 타는 불구덩이 가운데에 던져 넣어 몸을 태우고, 야차(夜叉)들이 큰 쇠 창을 달구어 죄인의 몸을 꿰거나 입, 코, 배 등을 꿰어 공중에 던진다고 한다. 또는 쇠매(鐵鷹)가 죄인의 눈을 파 먹게 하는 등의 여러 가지 형벌로 고통을 끊임없이 받는다고 한다.
*소승(小乘) ; ①기원 전후에 일어난 불교 개혁파들이 스스로를 대승(大乘)이라 하고, 전통의 보수파들을 낮추어 일컬은 말.
②기원전 5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사이에 분열된 불교 교단의 여러 부파, 곧 부파 불교(部派佛敎)를 말함.
③자신의 깨달음만을 구하는 수행자, 성문(聲聞)•연각(緣覺) 또는 그들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
④열등한 능력이나 소질을 갖춘 자를 위한 붓다의 가르침.
승(乘)은 '타는 것'으로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붓다의 가르침이나 수행법을 뜻함.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선불(先佛) ; 과거에 이미 출현하셨던 부처님.
*순행(順行) ; 거스르지 아니하고 행함.
*역행(逆行) ; 보통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나아감.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14)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대도(大道) ; ①부처님의 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각(覺). 보리(菩提).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달마대사(達摩大師) : [범] Bodhidharma (? – 536) 남인도의 향지왕(香至王)의 세째 아들로서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의 법을 받았다。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배로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금릉(金陵)에 이르자 무제가 묻기를 『짐이 절을 짓고 탑을 쌓고 경을 쓰고 중을 득도시키기를 한정없이 하였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읍니까?』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그것은 인간이나 천상의 작은 복이며 유루(有漏) 공덕이 될 뿐이지요』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서 두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有爲) 일로써 구할 수가 없는 것이요』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 가는 도리(聖諦第一義)입니까?』
『훤칠하여 거룩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짐을 대하여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르겠읍니다(不識)』 무제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푸대접하였다.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의 석굴에서 구년 동안 면벽(面壁)하고 있었다。혜가(慧可)가 와서 지성으로 법을 물었다。『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편안하게 하여 줄 터이니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가 없읍니다』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에 혜가는 깨쳤다.

그 뒤에 세상 인연이 오래지 못할 것을 알고, 제자들을 불러서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였다.
도부(道副)는 『문자에 국집할 것도 없고 문자를 버릴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비구니 총지(總持)는 말하기를 『제가 본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한 번 보고(阿難見阿閦佛國)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은 『오온(五蘊)이 본래 비었으므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읍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혜가는 다만 나와서 절하고 제자리에 물러가 섰다.
이에 『네가 나의 골수를 얻었다』하고 부처님의 의발(衣鉢)과 아래와 같은 전법게(傳法偈)를 혜가에게 주었다. 「내가 이 땅에 온 뜻은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건질 뿐, 한 꽃이 피어 다섯 잎 벌어지면 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리(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예물만은 부득이 받았다。그러나 광통율사(光統律師) 같은 이들은 그를 시기하여 다섯 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지마는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 번째는 그대로 두어 그 중독으로 인하여 입적하자 웅이산(熊耳山)에 매장하였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오다가, 총령(葱嶺)에서 달마대사가 맨발 벗고, 신 한 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 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니, 신 한 짝만 남았더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
*목련(目連, 目犍連) ; 산스크리트어 Maudgalyāyana의 음사. 대(大)목건련 또는 마하(摩訶)목건련이라고도 한다. 부처님 십대제자(十大弟子)의 한 사람.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인근 마을의 사리불(舍利弗)와 친하여 어느 날 둘이 바라문교의 축제를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혼잡하게 뒤섞여 놀고 있는 것을 보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스승을 찾아나서 라자가하[王舍城]의 유명한 회의론자 산자야 문하로 들어갔으나 완전한 마음의 평화를 얻지는 못하던 중에,
사리불이 라자가하의 거리에서 탁발을 하던 부처님의 제자 아설시(阿說示 Aśvajit 馬勝)를 만나 들은 “일체는 원인이 있어 생기는 것 / 여래는 그 원인을 설하시네 / 그리고 또 그 소멸까지도 / 위대한 사문은 이와 같이 가르치네”라는 연기(緣起)의 가르침을 사리불한테 듣고는, 사리불과 산자야의 제자 250명과 함께 죽림정사를 방문해 부처님께 귀의했다.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컫고, 사리불과 함께 불교교단의 중심인물이었다.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았고, 탁발하는 도중에 과거 전생에 부모에게 한 악행의 과보로 외도(外道)들이 던진 돌과 기왓장에 맞아 고통을 겪는 중에, 사리불이 열반에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처님에게 나아가 열반에 들겠다고 말씀 드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다 마수촌에서 열반에 들었다.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의 깨달음의 경지. 곧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의 가장 윗자리이다.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과보(果報 열매 과/갚을 보) ; 인과응보(因果應報,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 행과 불행이 있는 일).
*십대제자(十大弟子) ; 석가모니의 제자 중 수행과 지혜가 뛰어난 10명을 이르는 말.
①사리불(舍利弗) : 산스크리트어 śāriputr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지혜가 뛰어나 지혜제일(智慧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목건련(目犍連)과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붓다의 제자인 앗사지로부터 그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250명의 동료들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②목건련(目犍連) : 산스크리트어 maud galyāyan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신통력이 뛰어나 신통제일(神通第一)이라 일컬음. 원래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사리불(舍利弗)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보다 나이가 많았다.
③가섭(迦葉) : 산스크리트어 kāśyapa의 음사. 마가다국(magadha國) 출신으로, 엄격하게 수행하여 두타제일(頭陀第一)이라 일컬음. 결혼했으나 아내와 함께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됨.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그 모임을 주도함.
④수보리(須菩提) : 산스크리트어 subhūti의 음사. 사위국(舍衛國)의 바라문 출신으로, 공(空)의 이치에 밝아 해공제일(解空第一)이라 일컬음. 그래서 공(空)을 설하는 경(經)에 자주 등장하여 설법함.
⑤부루나(富樓那) : 산스크리트어 pūrṇa의 음사. 바라문 출신으로, 설법을 잘 하여 설법제일(說法第一)이라 일컬음. 녹야원(鹿野苑)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됨. 인도의 서쪽 지방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거기에 입적함.
⑥아나율(阿那律) : 산스크리트어 aniruddh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아난(阿難)·난타(難陀) 등과 함께 출가함. 통찰력이 깊어 천안제일(天眼第一) 이라 일컬음.
⑦가전연(迦旃延) : 산스크리트어 kātyāyana의 음사. 인도의 서쪽에 있던 아반티국(avanti國)의 크샤트리야 출신으로, 왕의 명령에 따라 붓다를 그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출가함. 깨달음을 얻은 후 귀국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함. 교리에 밝아 논의제일(論議第一)이라 일컬음.
⑧우바리(優波離) : 산스크리트어 upāli의 음사. 노예 계급인 수드라 출신으로 석가족의 이발사였는데, 아난(阿難)·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이 출가할 때 같이 붓다의 제자가 됨.
계율에 엄격하여 지계제일(持戒第一)이라 일컬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계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함으로써 율장(律藏)의 성립에 크게 기여함.
⑨나후라(羅睺羅) : 산스크리트어 rāhula의 음사. 붓다의 아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犍連)을 스승으로 하여 출가함.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 잘 지켜 밀행제일(密行第一)이라 일컬음.
⑩아난(阿難) : 산스크리트어 ānanda의 음사.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왔을 때 난타(難陀)·아나율(阿那律) 등과 함께 출가함. 붓다의 나이 50여 세에 시자(侍者)로 추천되어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보좌하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어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일컬음.
붓다에게 여성의 출가를 3번이나 간청하여 허락을 받음. 붓다가 입멸한 직후, 왕사성(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結集) 때, 아난이 기억을 더듬어 가며 “이렇게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붓다께서는……”이라는 말을 시작으로 암송하면, 여러 비구들은 아난의 기억이 맞는지를 확인하여 잘못이 있으면 정정한 후, 모두 함께 암송함으로써 경장(經藏)이 결집됨.
*신통(神通 불가사의할 신/통할 통) : 수행을 통(通)하여 도달하는 걸림없는 초인간적인(神) 능력.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견성의 성(性)은 본성(本性), 자성(自性), 본심(本心), 법성(法性) 등과 같으며, 이런 맥락에서 견성을 견자심불성(見自心佛性), 견불성(見佛性), 견자본성(見子本性), 견법성(見法性)이라고도 한다.
*삼매(三昧) : 정(定)。 ①계(戒) • 정(定) • 혜(慧) 3학의 하나。②[범] samadhi 음대로 써서 삼마지(三摩地)•삼마야(三摩耶) 또는 삼매(三昧)라고 한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서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지 않음을 말한다.
*매하다(昧-- 어두울 매) ; (지혜가)어두워지다.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 잊어버리다. 모른다. 어둡다.
*게송(偈頌) ;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gāthā 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노래 글귀로 찬미한 것.
게(偈)는 게타(偈陀 gāthā 가타伽陀)의 줄임말, 송(頌)은 그 뜻을 한역(漢譯)한 것으로 게송(偈頌)은 범어와 한어를 병칭(倂稱)한 것이다.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투쟁견고(鬪諍堅固 싸움 투/다툴 쟁/굳을 견/굳을 고) ;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이천오백 년을 불법(佛法)의 성쇠(盛衰)에 따라 나눈 다섯 시기 가운데 다섯 번째 시기. 수행승들이 자기 주장만 옳다고 싸워 불법이 자취를 감추는 시기이다.
*오목가슴 ; 복장뼈(가슴의 한복판에 세로로 있는 뼈) 아래 한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곳.
*적(積) ; 적취(積聚). 몸 안에 쌓인 기로 인하여 덩어리가 생겨서 아픈 병. 적(積)은 오장에 생겨서 일정한 부위에 있는 덩어리이고, 취(聚)는 육부에 생겨서 일정한 형태가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덩어리를 이른다.
*육바라밀(六波羅蜜) ;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pāramitā의 음사로, 도피안(到彼岸)·도(度)·도무극(度無極)이라 번역. 깨달음의 저 언덕으로 건너감, 완전한 성취, 완성, 수행의 완성, 최상을 뜻함.
보살이 이루어야 할, 생사의 바다를 건너 열반의 언덕에 이르는 여섯 가지 수행의 완전한 성취.
①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 보시를 완전하게 성취함. 보시의 완성.
②지계바라밀(持戒波羅蜜). 계율을 완전하게 지킴. 지계의 완성.
③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 인욕을 완전하게 성취함. 인욕의 완성.
④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 완전한 정진. 정진의 완성.
⑤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 완전한 선정. 선정의 완성.
⑥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완전한 지혜를 성취함. 지혜의 완성.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
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〇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19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 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 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심(三毒心)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 성냄 ·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열뇌(熱惱) ; 매우 심한 괴로움. 몹시 심한 고뇌(苦惱)에 핍박되어 몸과 마음이 활활 불타오르는[熱] 것.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육도윤회(六途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윤회(生死輪廻) ; 육도윤회(六途輪廻).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윤회(生死輪廻 날 생/죽을 사/바퀴 윤/빙빙돌 회) ; 사람이 어리석음(無明)으로 인한 번뇌와 업에 의하여 삼계육도(三界六道)에서 났다가(生) 죽고(死) 났다가 죽는 것이 바퀴(輪)가 돌듯이(廻) 반복함.
*일념진심기(一念瞋心起) 백만장문개(百萬障門開) ; 한 생각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리느니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06~107 (가로판 p110~111)
(47) 有人이  來害어든  當自攝心하야  勿生瞋恨하라. 一念瞋心起하면  百萬障門開니라.

만약 어떤 사람이 와서 해롭게 하거든 마땅히 마음을 거두어 성내거나 원망하지 말지어다. 한 생각 성내는 데에 백만 가지 장애의 문이 열리느니라.

(註解) 煩惱雖無量이나  瞋慢이  爲甚이니  涅槃云,  塗割에  兩無心하라 하시니, 瞋如冷雲中에  霹靂起火來니라

번뇌가 비록 한량없으나 성내는 것이 가장 심하니 『열반경』에 이르기를 「창과 칼로 찌르거나 향수와 약을 발라 주더라도 두 가지에 다 무심하라」하시니, 성내는 것은 찬 구름 속에서 벼락치고 번갯불이 번쩍이는 것과 같으니라.

*도할양무심(塗割兩無心) ; 한 사람은 와서 칼로 그 팔을 찍어 내고, 한 사람은 와서 전단향수(栴檀香水)로 씻어 주고 좋은 약을 발라 준다 하여도, 미워하거나 감사한 생각이 함께 없어야 한다고 하였다.
*삼악도(三惡道) ; 악인(惡人)이 죽어서 간다는 세 가지 괴로운 세계. 곧 지옥도(地獄道), 축생도(畜生道), 아귀도(餓鬼道)를 가리킨다. 지옥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태어날 지옥세계이며, 축생도는 중생이 죄를 지어 죽은 뒤에 짐승의 몸이 되어 괴로움을 받는다는 길이고, 아귀도는 먹으려고 하는 음식은 불로 변하여 늘 굶주리고 매를 맞는 아귀들이 모여 사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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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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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최상승법(No.341)—어떻게 해서 우리는 불법(佛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게 되었는가? 화리생련(火裏生蓮), 불 속에서 연꽃이 났다 | 달마대사(達摩大師)와 양무제(梁武帝)의 대화, 여지없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의 그 면목을 바로 거기서 드러내 버린 것.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본참공안]를 받아서,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천칠백 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8분 37초)


[법문] 송담스님(No.341)—1987년 11월 첫째일요법회(87.11.01) (용341)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 참 누누이 말씀이 계셨지마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오욕락(五欲樂)—재산이다, 명예다, 권리다, 색(色)이다, 안락이다, 이러한 오욕락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그렇게 착각을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 시간과 목숨까지라도 거기에 바치면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이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난 말세 중생(末世衆生)들이 어떻게 해서 최상승법, 이 생사(生死) 없는 영원한 진리를 깨닫는 최상승법을 믿게 되며 또 그걸 믿고 실천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온 세상은 온통 명예와 권리와 부귀영화, 모다 색(色), 모다 이러한 것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고, 그것을 갖다가 보다 더 많이 획득을 하고, 그것을 수용을 하기 위해서 참 부자간에, 형제간에, 이웃간에 모다 피투성이가 되어서 싸우고 있는 이 속에서 어떻게 해서 우리는 불법(佛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게 되었는가?

그래서 이러한 것을 비유해서 「화리생련(火裏生蓮)이다. 불 속에서 연꽃이 났다」
그 연꽃이라 하는 것은 진흙과 물속에서 뿌리를 박고 피는 것인데, 훨훨 타고 있는 불 속에서 연꽃이 어떻게 필 수가 있겠습니까? 그 필 수 없는, 도저히 상상으로는 있을 수 없는, 불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에다가 그렇게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를 해 나가는데 그 만나기 어려운 사람 몸을 받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佛法)을 만나서 그 불법 가운데에도 여러 가지 모다 그 권(權), 방편(方便), 수없는 방편에 모다 떨어져 가지고 허송세월(虛送歲月)을 하고 있는 사람이 참 많은데 그 가운데에서 천행으로 최상승법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달마대사(達摩大師)께서도 150세의 고령으로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오셔서 양무제(梁武帝)를 만나 가지고—양무제가 중국 천자(天子) 중에서는 제일 불법에 대한 신심이 돈독한 천자인데, 그분은 천자이면서 가사(袈裟)를 떠억 수(垂)하고 정사(政事)를 볼 만큼 그렇게 신심이 돈독을 했습니다.
절을 짓는다든지, 경을 판각을 해서 모다 편다든지, 스님네를 모다 도 잘 닦아가도록 많은 스님네를 외호를 한다든지, 탑을 세운다든지, 불상을 조성한다든지 그러한 상(相)이 있는 그러한 불사(佛事)는 말할 것도 없고, 하나에서부터 백까지 불법(佛法)을 여의고는 살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불사 밖에는 모르고.

그러던 양무제가 달마 스님이 인도에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칙사(勅使)를 보내서, 저 남해로 보내 가지고 달마 스님을 영접을 해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짐(朕)이 이렇게 절을 짓고 탑을 세우고, 많은 스님네를 이렇게 도승(度僧)을 하고 그랬으니 짐의 공덕이 얼마나 됩니까?” 하고 이렇게 달마 스님께 자기가 그동안에 한 불사에 대한 공덕도 자랑 겸해서 또 달마 스님한테 칭찬도 받기 아울러서 그렇게 해서 떠억 물으니까, 달마 스님이 “소무공덕(小無功德)입니다.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아!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에 달마 스님이 ‘아! 참 장하시다’고, ‘천자로서 그렇게 불법을 숭앙하고, 이렇게 불사를 많이 하니 그 공덕이 참 한량이 없어서 말로써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터억 찬양을 해 주었으면 양무제가 신심을 더욱 발해 가지고 온통 중국 천지를 아주 불법으로 장엄을 하고 그럴 텐데, 아 그 “아무 공덕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 말이여.

그러니까 양무제가 “그러면 어떠한 것이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그렇게 물어보니까,
“확연해서 성스러울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해.

“그러면 내 앞에 있는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어보니까,
“불식(不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을 했다 그 말이여.

양무제와 달마 대사의 대화는 거기서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 양무제가 달마 스님을 푸대접을 해서 달마 스님은 그길로 돌아서서 양자강을 건너 가지고, 위나라 소림굴(少林窟)에 들어가서 9년 동안을 묵언을 하면서 면벽(面壁)을 하고 계시다가, 혜가 대사(慧可大師)가 나타나 가지고 팔을 끊어서 올리고 신심을 보여 가지고, 드디어 달마 스님의 법을 이어받았습니다마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말씀에도 달마 스님이 그때, 양무제를 만났을 때 양무제를 찬양을 해서 그렇게 해서 양무제의 절대적인 외호(外護)를 받으면서 법을 설하고 참선법을 선양을 할려고 했다면은 중국 천지에 최상승법을 그렇게 널리 펼 수도 없고, 융숭하게 선양할 수도 없었고, 오늘날까지 참선법이 전해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가장 성스러운 진리입니까?”)
“확연무성(廓然無聖)입니다”

“짐을 대한 그대는 누구냐?”
“모르겠소”

탁! 이렇게 함으로써 여지없이 최상승법(最上乘法)의 그 면목을 바로 거기서 드러내 버린 것입니다.(9분38초~18분1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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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영신(田岡永信) ; (1898-1974)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저서로는 《전강대종사 법어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가 있다.

*사바세계(娑婆世界) ; 고뇌를 참고 견디지 않으면 안되는 괴로움이 많은 이 세계. 현실의 세계. 인토(忍土) · 감인토(堪忍土) · 인계(忍界)라고 한역. 석가모니 부처님이 나타나 중생들을 교화하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가 모두 사바세계이다.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말세(末世 끝 말/세상 세)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 년을 정법(正法)의 세상, 그 다음 천 년을 상법(像法)의 세상, 그 후의 일만 년을 말법(末法)의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곧 불멸(佛滅) 후 오랜 기간을 지나 부처님의 가르침이 쇠퇴하는 시기.
*중생(衆生) : 참 성품을 잃어버리고 망녕된 온갖 생각이 분주하게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에, 온갖 세계에 돌아다니면서 났다 죽었다 하는 무리들, 곧 정식(情識)이 있는 것들을 모두 중생이라 한다。그러므로 사람뿐 아니라 모든 동물과 귀신들과 하늘 사람들까지 합쳐서 하는 말인데, 유정(有情) • 함령(含靈) • 함식(含識) • 군생(群生) • 군맹(群萌) • 군품(群品) 같은 여러 가지 말로도 쓴다.
부처님은 구제의 대상을 인류(人類)에게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중생 전부를 가르치고 건지시는 것이다.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생사(生死) 없는 영원한 진리’ ; 생사는 본래 없다[生死本無. 本無生死].
[참고 ❶] 송담스님 법문(No.366, No.636)에서 정리.
생사는 무엇이냐? 그것은 깨닫지 못한 중생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번뇌로 매(昧)했기 때문에 있는 것으로 착각되어 '태어났다, 죽었다' 그런 것이지, 원래는 우주보다도 먼저 있었고, 이 우주 법계가 다 가루가 되어서 없어진다 하더라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진여불성(眞如佛性)자리, 우리의 ‘참나’라고 하는 이 불성(佛性)은 생사가 없는 것입니다.

그 생사가 없는 이치를 깨닫지를 못하고 있으니까 분명히 생사로 우리에게는 보이는 것이지 「생사는 본래 없다」 이것입니다. 마치 눈병이 일어난 사람은 맑은 허공을 봐도 허공 속에 무슨 헛꽃이 이글이글 피어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한 것처럼 보이나 눈병만 낫고 보면 원래 허공의 꽃은 없었고, 눈병이 낫으나 안 낫으나 허공의 꽃이란 것은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사(生死)도 역시 그와 마찬가지여서,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이 ‘참선(參禪)’이라 하는 것입니다. 용화사에서는 전강 조실스님 법문이나 산승이 말씀을 할 때마다 그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는 방법’을 항상 말씀을 드려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뭣고?’는 천하 맛없는 간단한 한마디지만, 알 수 없는 의심으로 자꾸 ‘이뭣고?’를 해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우리의 그 착각으로 인식되어진 번뇌일망정 언제 끊어진 줄 모르게 번뇌가 끊어져 버리고, 그 의단이 더이상 커질 수 없을 때 그 의단을 깨뜨리게, 타파(打破)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불성을 깨닫게 되고, 나의 면목(面目)을 깨닫게 되고,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 공부를 열심히 해야 진실로 불법(佛法)을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참고 ❷] 『진심직설(眞心直說)』 (보조 지눌) '진심출사(眞心出死)' (참마음 이야기, 진심직설 강의 |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199~208.
문 : 或曰 嘗聞見性之人 出離生死 然往昔諸祖 是見性人 皆有生有死 今現見世間修道之人 有生有死事 如何云出生死耶

일찍이 견성한 사람은 생사를 벗어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조사들은 다 견성한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생사가 있었고, 지금 세상의 수도하는 사람들도 다 생사가 있는데 어떻게 생사를 벗어난다고 합니까?

답 : 曰 生死本無 妄計爲有 如人病眼 見空中花 或無病人 說無空花 病者不信 目病若無 空花自滅 方信花無 只花未滅 其花亦空 但病者 妄執爲花 非體實有也

생사는 본래 없는 것[生死本無]인데, 망령되이 있다고 헤아린다. 어떤 사람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볼 때 눈병 없는 사람이 허공의 꽃이 없다고 하면 병자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눈병이 나으면 허공의 꽃이 저절로 없어져 비로소 꽃이 없음을 믿게 된다. 다만 그 꽃이 없어지지 않았더라도 그 꽃은 또한 공한 것이므로 단지 병자가 망령되이 꽃이라 집착하였을 뿐이요, 그 본체가 참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如人妄認生死爲有 或無生死人 告云本無生死 彼人不信 一朝妄息 生死自除 方知生死本來是無 只生死未息時 亦非實有 以妄認生死有

그와 같이 사람들이 망령되이 생사가 있다고 인정하다가 생사를 초월한 사람이 '본래 생사가 없다[本無生死]'고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믿지 않다가, 하루아침에 망심이 쉬어 생사가 저절로 없어져서야 비로소 본래 생사가 없는 것임을 안다. 다만 생사가 없어지기 전에도 실로 있는 것이 아니건만, 생사가 있다고 그릇 인정하였던 것이다.

故 經云 善男子 一切衆生 從無始來 種種顚倒 猶如迷人 四方易處 妄認四大爲自身相 六塵緣影爲自心相 譬彼病目 見空中花 乃至 如衆空花 滅於虛空 不可說言 有定滅處 何以故 無生處故 一切衆生 於無生中 妄見生滅 是故說名輪轉生死

그러므로 경(經, 圓覺經)에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가지가지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의 방위를 혼동하는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제 몸이라 잘못 생각하고, 육진(六塵)의 반연하는 그림자를 제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으로 허공의 꽃을 보고, 나아가서는 그 온갖 허공의 꽃이 허공에서 사라져도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본디 생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들은 생멸이 없는 데에서 망령되이 생멸을 보기 때문에 이를 일러 '생사에 윤회한다'고 말한다" 하였다.

據此經文 信知達悟 圓覺眞心 本無生死 今知無生死 而不能脫生死者 功夫不到故也 故敎中說 菴婆女 問文殊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被生死之所流 文殊云 其力未充故 後有進山主 問修山主云 明知 生是不生之法 爲甚麽 却被生死之所流 修云 笋畢竟成竹去 如今作筏使得麽

이 경에 의하면 원각의 진심을 환히 깨치면 본래 생사가 없음[本無生死]을 진실로 알게 된다. 그러나 지금 생사가 없음을 알았지만 능히 생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직 공부가 완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르침 중에 이렇게 설하셨다. 암바(菴婆)라는 여자가 문수보살에게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고 물었다. 문수보살은 "그 힘이 아직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 하였다.
그 뒤에 진산주(進山主)가 수산주(修山主)에게 묻기를 "생이 바로 생이 아닌 법을 분명히 알았는데, 무엇 때문에 생사에 흘러 다닙니까?"하였다. 수산주는 "죽순이 마침내는 대나무가 되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으로 뗏목을 만들어 쓰려한다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선문염송』 제1314칙 '명지(明知)' 참고]

所以 知無生死 不如體無生死 體無生死 不如契無生死 契無生死 不如用無生死 今人 尙不知無生死 況體無生死 契無生死 用無生死耶 故認生死者 不信無生死法 不亦宜乎

그러므로 생사가 없음을 아는 것[知無生死]이 생사가 없음을 체득함[體無生死]만 못하고, 생사가 없음을 체득한 것은 생사가 없음에 계합함[契無生死]만 못하며, 생사가 없음에 계합한 것은 생사가 없음을 마음대로 쓰는 것[用無生死]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아직 생사가 없음도 알지 못하거늘 하물며 생사가 없음을 어찌 체득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에 계합하겠으며, 어찌 생사가 없음을 활용하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인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생사가 없는 법을 믿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본무(本無) ; [s] abhūtvā, amūla, apūrvo bhāvah 본래 없다는 말. 모든 존재의 무상한 본질을 나타낸다. 인연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는 모든 법의 공성(空性)을 나타내는 말이다. 또는 그러한 인연의 존재에 대하여 망상으로 집착하여 '있다'고 착각하는 것도 본래 없는 것이므로 본무라 한다.

*권(權) ; 권교(權敎). 부처님의 깊은 이치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대번에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일시적인 방편으로 처음에는 옅은 이치의 차별법(差別法)을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참된 실상(實相)의 둘 아닌 법(不二法 • 眞如 • 平等)을 말씀하게 된다。그리하여 권교와 실교(實敎)의 다름이 있는 것이다。권교를 방편설(方便說)이라고도 한다.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佛菩薩)이 중생의 근기(根機)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달마대사(達摩大師) : [범] Bodhidharma (? – 536) 남인도의 향지왕(香至王)의 세째 아들로서 출가하여 반야다라 존자(般若多羅尊者)의 법을 받았다。본국에서 오래 교화하다가 양(梁)나라 무제(武帝) 대통(大通) 1년(527)에 배로 광동성 광주(廣州)에 닿았다.
금릉(金陵)에 이르자 무제가 묻기를 『짐이 절을 짓고 탑을 쌓고 경을 쓰고 중을 득도시키기를 한정없이 하였는데, 어떤 공덕이 있겠읍니까?』
『조금도 공덕이 없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그것은 인간이나 천상의 작은 복이며 유루(有漏) 공덕이 될 뿐이지요』

『그러면 어떤 것이 참 공덕입니까?』
『맑은 지혜는 묘하게 밝아서 두렷이 비치어 있을 뿐이라, 세상의 함이 있는(有爲) 일로써 구할 수가 없는 것이요』

『어떤 것이 거룩한 법의 첫째 가는 도리(聖諦第一義)입니까?』
『훤칠하여 거룩한 것도 없습니다』

『그러면 짐을 대하여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르겠읍니다(不識)』 무제는 그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고 푸대접하였다.

대사는 양자강을 건너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의 석굴에서 구년 동안 면벽(面壁)하고 있었다。혜가(慧可)가 와서 지성으로 법을 물었다。『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편안하게 하여 줄 터이니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마음을 찾아도 얻을 수가 없읍니다』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이에 혜가는 깨쳤다.

그 뒤에 세상 인연이 오래지 못할 것을 알고, 제자들을 불러서 각기 소견을 말하라 하였다.
도부(道副)는 『문자에 국집할 것도 없고 문자를 버릴 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

비구니 총지(總持)는 말하기를 『제가 본 바로는 아난이 아촉불국을 한 번 보고(阿難見阿閦佛國)는 다시 보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너는 나의 살을 얻었다』

도육(道育)은 『오온(五蘊)이 본래 비었으므로 한 법도 얻을 것이 없읍니다』
『너는 나의 뼈를 얻었다』

혜가는 다만 나와서 절하고 제자리에 물러가 섰다.
이에 『네가 나의 골수를 얻었다』하고 부처님의 의발(衣鉢)과 아래와 같은 전법게(傳法偈)를 혜가에게 주었다. 「내가 이 땅에 온 뜻은 오직 법을 전하여 중생을 건질 뿐, 한 꽃이 피어 다섯 잎 벌어지면 많은 열매가 저절로 맺히리(吾本來玆土  傳法救迷情  一華開五葉  結果自然成)」

위(魏)나라 효명제(孝明帝)가 세 번이나 모시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고 예물만은 부득이 받았다。그러나 광통율사(光統律師) 같은 이들은 그를 시기하여 다섯 번이나 음식에 독약을 넣었지마는 번번이 토하여 무사하였는데, 여섯 번째는 그대로 두어 그 중독으로 인하여 입적하자 웅이산(熊耳山)에 매장하였다.
그 후에 위나라 사신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에 갔다오다가, 총령(葱嶺)에서 달마대사가 맨발 벗고, 신 한 짝을 들고 가는 것을 만나 보고 와서 그 묘를 파보니, 신 한 짝만 남았더라고 하는 전설이 있다.

*가사(袈裟) : [범] kasaya  범어를 음대로 쓴 것인데, 뜻대로 번역하면 잡색(雜色) • 염색(染色) 곧 순색이 아닌 옷을 말한다。인도는 더운 곳이므로 속인(俗人)들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출가한 이는 그 옷을 달리하기 위하여 염색하되 검박한 빛으로 하게 되었다.
또한 품질이 좋은 새 옷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주워 모아서 누더기같이 만들었는데, 크고 작은 세 가지(三衣)가 있어서, 다섯 폭으로 된 것(五條)은 일할 때에 입고, 일곱 폭으로 된 것(七條)은 보통 때에 입고, 아홉 폭(九條)으로부터 스물 다섯 폭(二十五條)까지는 법회와 예식에 입게 된다。그러므로 인도의 승려들은 이 세 가지밖에 다른 옷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기후 풍토와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가사의 빛도 황색 또는 적색의 보기 좋은 빛으로 변하게 되고, 바탕도 비단으로 하게까지 되었다.


그 모양도 온갖 복덕이 이 법복(法服)으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성숙(成熟)되는 것이라 하여, 복을 심는 밭(福田)을 상징(象徵)해서 규모가 반듯하고 법다운 밭두렁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불교를 신앙하는 여러 나라와 그 종파에 따라 모양도 달리 한다。또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보통 입는 의복 위에 장삼(長衫)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가사를 입게 되므로, 가사와 장삼이 함께 법복이 된다.
*수(垂)하다 ; 가사(袈裟), 장삼(長衫) 따위를 걸쳐 입다.
*상(相) ; ①모습, 형태. 상대어는 성(性)으로 본래 지니고 있는 성질을 가리킨다.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불사(佛事) ; ①불법(佛法)을 알리는 일. 법회, 불공(佛供), 재(齋)의 봉행, 경전의 간행과 유통, 사찰의 중창과 전각 중수, 불상·탱화·불구(佛具)·가사(袈裟) 조성 등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킨다. ②부처님께서 중생을 교화(敎化)하시는 일.
*칙사(勅使 칙서·조서 칙/사신·하인 사) ; 임금의 명령을 받아 전하여 주는 사신(使臣).
*짐(朕) ; 예전에, 임금이나 군주가 자기를 이르던 말.
*도승(度僧 법도·모습·깨닫다·승려가 되다 도/중·스님·승려 승) ; 일정한 의식을 거쳐 속인을 승려로 만듦.
*면벽(面壁) ; 좌선(坐禪)의 다른 이름. 벽을 향하여 좌선하는 것.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양 무제(武帝)를 만나 문답하였으나 무제가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마침내 물러나 양자강을 건너 위(魏)나라의 낙양으로 가서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렀다. 경론을 강설하지도 않고, 불상에 절을 하지도 않으며 종일토록 말하지 않고 벽을 향하여 좌선하기 9년을 지냈다. 이를 '면벽구년(面壁九年)'이라 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뒤부터 선승(禪僧)들이 선원에서 벽을 향하여 좌선하게 되었다.
이로부터 면벽은 단순히 좌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경론 등 문자에 의한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관하여 깨달음을 얻는 선종의 수행법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외호(外護) ; 불법(佛法)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데 힘이 되도록 수행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것을 말한다. 신(身)·구(口)·의(意)를 보호하는 것을 내호(內護)라고 한다. 내호와 외호를 합하여 이호(二護)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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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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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ㅂ/법문(듣는 법)2023. 7. 15. 11:51

법문(No.341)—전강 스님께서 설법하신 방대한 녹음법문 | 경건한 마음으로 듣고 또 듣고 하면 나중에는 발심해서 철저하게 믿고 정진을 할 수 있다 | 정진하면서 듣고, 듣고서 또 정진하는 가운데에 바른 공부해 나가는 길을 스스로 터득하고 마침내는 화두(話頭)가 순일무잡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에 이르르는 것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5분 31초)



[법문] 송담스님(No.341)—1987년 11월 첫째일요법회(87.11.01) (용341)

전강 조실 스님께서 열반(涅槃)하시기 한 5, 6년 전부터서 『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를 비롯해 『몽산법어』, 그밖에 『초발심자경』 그밖에 불교의 여러 조사(祖師) 스님네의 기연(機緣)과 불조의 기연(佛祖機緣), 여러 가지 중생의 근기(根機) 따라서 수없는 설법을 하신 것을 녹음을 해 놓은 것이 큰 릴(reel)로 100개, 또 작은 릴로 50개 이렇게 해서 150개나 되는 릴에다가 몇백 시간을 연거푸 틀어도 다 틀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방대한 법문을 녹음(錄音)을 해서 소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법회 때마다 그 한 편씩을 듣고, 또 대중들도 결제(結制) 중에 그 법문을 들으면서 정진을 하고, 전국 모다 여러 선방에서도 이 법문을 듣고, 또 여러 사부대중도 그 테이프(tape)를 구득해서 다 듣고, 외국에 가 계신 분들도 테이프를 구해서 모다 듣고, 이렇게 해서 천하에 이 최상승 법문을 두루두루 듣고서 발심(發心)을 하고, 정법(正法)이 무엇인가를 알고 거기에 차츰 신심(信心)을 내서 참선(參禪)을 할려고 이렇게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많은 법문 가운데에 어느 법문이 더욱 좋고, 좋지 못하고 한 것이 있으리오마는 언제나 들을 때마다 법문마다 새롭고 참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도 더욱이 오늘 들은 법문은 참 감명 깊게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신심(信心)과 분심(憤心)으로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몸뚱이를 바칠 그러한 간곡한 뜨거운 신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한마디, 한 말씀이 폐부를 찌르는 그러한 법문으로 받아들여질 것이고, 본인이 신심이 박약하고 분심이 없이 자기가 정진(精進)을 하지 아니한 사람으로서 듣게 되면 이것이 별 큰 감동을 받지 못하는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듣고 또 듣고, 세 번, 네 번, 열 번, 스무 번, 백 번, 이백 번 이렇게 경건한 마음으로 듣고 또 듣고 하면 처음에 들을 때에는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를 못하고 별로 발심이 되지를 안 하던 사람도 나중에는 무슨 말씀인가를 그 마음에 계합(契合)을 하게 되고, 나중에는 발심을 하게 되고 분심이 나고 그래서 철저하게 믿고 정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정진을 하면서 또 듣고, 듣고서 또 정진하고, 정진을 하면서 듣고 이렇게 하는 가운데에 아무리 근기(根機)가 약한 사람도 그렇게 노력을 해 나가면 결국에 가서는 진발심(眞發心)을 하게 되고, 어떻게 정진을 해 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그 바른 공부해 나가는 길을 스스로 터득을 하게 되고, 마침내는 화두(話頭)가 순일무잡(純一無雜)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지경에 이르르는 것입니다.(4분1초~9분3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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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영신(田岡永信) ; (1898-1974)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저서로는 《전강대종사 법어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가 있다.

*열반(涅槃) ; 산스크리트어 니르바나(nirvāṇa) 팔리어 nibbāna의 음사. 멸(滅)·멸도(滅度)·적멸(寂滅)·적정(寂靜)·적(寂)·안온(安穩)이라 번역. 불어서 끈 상태라는 뜻.
① 불어서 불을 끄듯,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癡〕이 소멸된 심리 상태. 모든 번뇌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 사제(四諦)에서 집(集), 곧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渴愛)가 소멸된 상태. 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하여 평온하게 된 상태. 모든 미혹의 속박에서 벗어난 깨달음의 경지. 번뇌를 소멸하여 깨달음의 지혜를 완성한 경지.
② 석가모니의 죽음.  ③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에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 ; 전강 선사(1898~1974)께서 제자들의 청법(請法)에 인천 용화사에서 1970년 11월 20일(음)부터 설하신 18편의 법문(法門) 녹음(錄音)한 것을 고대로 활자화한 법문집.

전강 선사께서 어린 시절과 17세에 해인사에 출가하셔서 20세에 강원을 수료하시고, 직지사 선원에서 용맹정진하신 것, 23세에 곡성 태안사 동리산 너머 산밑에 징검다리를 건너시다가 견성오도(見性悟道)하신 내용.
그리고 혜봉 스님, 혜월 스님, 한암 스님, 용성 스님, 보월 스님, 만공 스님, 당시 여섯 분의 대선지식(大善知識)과 서릿발 같은 칼을 휘두르면서 맞부딪치는 법거량을 해서 인가(印可)를 받은, 오늘날까지 부처님으로부터 정법의 등불이 등등상속(燈燈相續)해서 전해 내려온 한 장면이 전강 선사의 「일대기(一代記)」 법문 속에 낱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위의 역사적인 내용과 더불어 전강 선사께서 평생 선양하신 참선법(參禪法), 최상승 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의 구체적인 수행 방법의 내용—포구발심(怖懼發心) · 화두(話頭) · 수참활구(須參活句) 막참사구(莫參死句) · 대의지하(大疑之下) 필유대오(必有大悟) · 삼요(三要, 신심 분심 의심) · 묘관(妙觀) · 의단독로(疑團獨露) · 화두타파(話頭打破) · 확철대오(廓徹大悟) · 용무생사(用無生死) 현중현(玄中玄) · 고봉 선요 법문 · 법문 듣는 법 · 경책(警策) 등등 전강 선사께서 후학을 위하여 일대사(一大事), 생사해탈(生死解脫)의 길을 제시하는 간절하신 말씀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경허 스님과 제산 스님의 만남, 해인사 이회광 스님 진산식 때 일화, 오대산을 넘으며 겪으신 일화, 경봉 스님과 탁마, 홍도여관에서의 무애행, 무주 안국사 시절 등과 개별적으로는 상기병(上氣病) 자연치료와 추천원 스님의 호랑이 이야기와 차력하는 김익수, 가야금을 타는 박홍록과의 만남, 1920~30년대 신여성(新如性), 다꾸시(택시) 이야기 등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전강선사 일대기> 동영상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전강선사 일대기'에도 자세한 용어풀이와 함께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중국 원(元)나라 「몽산 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한 법어집.
[참고] 송담스님(No.299)—1986년 5월 첫째 일요법회
 『몽산법어』는 활구참선(活句參禪)하는 데에 관한 법문(法門)만을 수록한 법어집입니다. 여러분이 이 『몽산법어』 서문(序文)을 읽어보시면 이 책이 어떠한 책이며, 얼마나 공부해 나가는 데 요긴한 책인가를 아실 수가 있고.
그리고 이 몽산법어를 한 구절씩—여러분은 선지식(善知識)을 항상 만나 뵙기가 어려우니까 공부하다가 가끔 법문을 듣고 싶으면, 이 몽산법어를 한 편씩을 보시면 선지식 법문 들은 거와 같아서 신심(信心)이 돈발(頓發)하고 또 의정(疑情)이 돈발을 해서 참선이 잘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몽산법어> 총 68편의 동영상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몽산법어'에도 자세한 용어풀이와 함께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 고려 중기 보조지눌(普照知訥)이 지은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과 신라의 원효(元曉)가 지은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고려 후기 야운(野雲)이 지은 《자경문(自警文)》의 세 가지의 글을 합쳐서 한 권으로 엮은 책.
《계초심학인문》은 불교에 입문한 초심 행자가 알아야 할 범절과 수행에 관한 내용이고, 《발심수행장》에는 수행에 필요한 마음가짐이 적혀 있고, 《자경문》에는 수행인이 스스로 일깨우고 경계해야 할 내용이 담겨 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초발심자경문> 동영상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초발심자경문'에도 자세한 용어풀이와 함께 법문을 보고 들으실 수 있습니다.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기연(機緣 기틀·기회·작용·때 기/인연·이유·연줄 연) ; ①시기인연(時機因緣)의 준말. 어떠한 기회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동기. ②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부처님 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을 만한 인연, 조건이 되는 것. ③가르침을 주고받게 된 스승과 제자의 인연.
*불조(佛祖) : 부처님과 조사(祖師), 불(佛)은 삼세제불(三世諸佛), 조(祖)는 역대(歷代)의 조사를 말함.
*불조기연(佛祖機緣) : 차별기연(差別機緣)。 ①중생이 발심하여 구경의 깨달음에 이를 때까지 모든 불•보살이 그 근기(根機)와 단계에 따라 가지가지 방편을 써서 중생에게 작용하는 것。 ②선종에서는 종사가 학자의 근기와 인연에 따라 베푸는 수단으로, 고금(古今) 불조의 언교(言敎) • 기연(機緣) • 공안 등을 말함.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근기(根器), 또는 줄여서 기(機)라고도 한다.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결제(結制 맺을 결/만들·법도 제)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에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월 15일에 결제한다. 
*테이프(tape) ;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 전용 플라스틱 케이스에 들어 있는 자기 테이프. 1963년 네덜란드의 필립스사가 개발하였다.
이 카세트테이프(cassette tape)를 간편하게 장착하여 녹음을 하거나 녹음된 것을 재생할 수있도록 만든 녹음기인 카세트(cassette, 카세트 테이프 리코더 cassette tape recorder)가 있다.
*최상승(最上乘) ;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교법. 최상의 가르침. 가장 뛰어난 가르침.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14)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정진(精進) : [범] Vī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 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참고]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보살馬鳴菩薩 지음. 진제 삼장眞諦三藏 한역漢譯)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論】 云何修行進門 所謂於諸善事 心不懈退 立志堅强 遠離怯弱 當念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是故應勤修諸功德 自利利他 速離衆苦

정진문(進門)을 어떻게 수행하는가? 소위 모든 선(善)한 일에 대하여 마음으로 게으르거나 물러남이 없어서, 뜻한 바가 굳세고 강하여 겁약(怯弱)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아주 오래된 이래로 헛되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음을 생각하여야 한다. 이러한 고로 마땅히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를 행하여 속히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 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 爲邪魔諸鬼之所惱亂 或爲世間事務種種牽纏 或爲病苦所惱 有如是等衆多障礙 是故應當勇猛精勤 晝夜六時 禮拜諸佛 誠心懺悔 勸請隨喜 迴向菩提 常不休廢 得免諸障 善根增長故

또한 어떤 사람이 비록 신심(信心)을 수행할지라도 선세(先世)로부터 중죄와 악업의 장애가 많이 있는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의 뇌란(惱亂)을 받기도 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 때문에 이리저리 끄달리고 얽매여 끌려다니며 혹은 병고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니,
이러한 여러 많은 장애들이 있는 까닭에 응당 용맹히 정근하여 주야로 여섯 번[六時]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誠心)으로 참회하며, 법사에게 법문을 청하고[勸請] 다른 사람의 선행에 따라 기뻐하며[隨喜], 깨달음의 지혜[菩提]를 회향하기를 항상 쉬지 아니하면 모든 장애에서 벗어나고 선근(善根)이 더욱 증장하는 까닭이다.
*계합(契合 맺을 계/합할 합) ; ①(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②진리나 본심을 깨달아 그것과 일체가 되는 것.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타성일편(打成一片 칠 타/이룰 성/한 일/조각 편) : ①'쳐서[打] 한 조각(一片, 덩어리)을 이룬다[成]'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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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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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