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요(三要) : 참선하는데 갖추어야 할 세 가지 요건. 첫째는 큰 신심(大信心)이요, 둘째는 큰 분심(大憤心)이요, 세째는 큰 의심(大疑心)이다.
 
①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②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③의심(疑心) :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14분27초)

 

[법문] 송담스님(No.336)—87 8 첫째일요법회(87.08.02)(용336)
 
 참선(參禪)을 하려면 그래서 대신심(大信心) 있어야 . 대신심이 있어야 하고  다음에는 대분심(大憤心) 있어야 하고, 대의심(大疑心)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지를 삼요(三要) 그러는데, 대신심이란 것이 무엇이냐?
 
부처님께 절을 많이 하고, 부처님께 공양을 많이 올리고 모다 그런 것도 신심의  표현이라고  수가 있겠지만,  최상승법(最上乘法) 있어서 대신(大信)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부처다하고 믿는 거여.
 
 자신이 본래 부처라고 하는 !
 생각 () 가지고 내가 부처인 것을 망각하고 있을 뿐이지, 본래 내가 원만(圓滿)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히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생각 깨달으면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과 조금도 다름없는 견성성불(見性成佛) 수가 있다』고 하는 자신감을 가져야 이것이 바로 대신심이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생각 () 가지고 중생노릇을 하고 있지만  실지 내용에 있어서는 부처님과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성내고 괴로워하고 하는 이러한 작용이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몸뚱이 속에 살아 있는 부처님의 작용인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을 ()했기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마음도 내고, 탐심도 내고, 진심(瞋心) 내고 그렇지만,  자체는 다른 데에서 그러한 작용이 나온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부처님한테서 나오는 작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작용을 일으킬  있는 사람이면 자기의 몸뚱이 속에 살아계신 부처님이 분명히 계신 증거이기 때문에 자기도 깨달을  있다’고 깊이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고서는 아무리 참선을 해봤자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깨달을  있다’고 믿어야 깨닫게 되는 것이지, 해보지도 않고 나는 깨달을 수가 없다’ ‘나는 중생이기 때문에 나는 지옥밖에는  간다 자꾸 스스로를 자포자기하고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는 깨달음에 이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한 그런  신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대분심을 일으켜야 한다. 그런 신심이 있어도 분심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공부가 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분심은 바로 용기인 것입니다. 용기를 내서 분심을 내야 공부를 계속해서  나갈 수가 있고 깨달음에 나아갈 수가 있지, 분심이 죽어버리고 용기가 없으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과 모든 조사, 선지식들은 진즉  문제를 해결을 해서 생사해탈을  가지고 중생교화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이렇게 육도(六途) 윤회(輪廻)하고 있는가
그러한 생각으로 분심을 일으켜야 하는 것입니다.
 
세속의 명예나 권리나 또는 재산 모다 그런 것에 관해서는 시기를 내고 질투를 내고, 그래 가지고 피투성이가 되어가지고 싸우면서, 심지어는 동포끼리 싸우고, 심지어는 형제 친구끼리 싸우고, 심지어는 재산 때문에 형제간에도 싸우면서,
어째서 영원한 생사해탈(生死解脫) 하기 위한  깨달음을 위해서는  그러한 분심을  수가 없느냐?
 
정말  문제에 관해서는 부모한테도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분심을 내고 도업(道業) 성취하는데 있어서의  욕심은 아무한테도 양보해서는 아니됩니다.
다른 모든 것은 다른 중생을 위해서, 형제를 위해서, 친구를 위해서  양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욕심, ‘ 나는 여태까지 깨닫지 못했는가?’  공부에 대한 분심은 천하 없이도 양보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밤을 패서 공부하고, 시간을 아껴서 공부하고, 다른 사람은 앉아서 하더라도 자기는 앉을 시간이 없으면은 서서 하고, 차를 타면서 하고, 방부(房付) 들이고금년에도 88명이나 방부를 들이고 보살님네들이 정진하고 계십니다마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선방(禪房) 와서 공부는 못하신다 하더라도, ‘내가 어찌  수가 있겠느냐! ’ 집에서 살림하고, 빨래하고, 소지하고,  짓고 또는 직장에서 이를 갈아붙이고  생각  생각을 무섭게 돌이켜 가며 다잡이를  간다면 그분이 먼저 대도를 성취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신심을 가지고,  다음에 대분심을 가져야 한다.
 
 
 번째 가서  의심(疑心) 가져야 한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녹음법문을 통해서 화두를 일러 주셨습니다.
판치생모(板齒生毛)’ 이뭣고?’  가지를 말씀을 하셨는데, 이미 조실 스님으로부터 판치생모 화두를 타신 분은 계속해서 판치생모 하셔야 하고,
 
조실 스님께 이뭣고?’ 타셨거나 또는 산승으로부터 탔거나, 오늘 화두를 타시려는 분은 이뭣고?’
이뭣고?’  말은 한문으로는 시심마(是甚)’ 그러는데, 우리말로는 번역하면 이것이 무엇인고?’ 그말이거든.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말로는 이뭣고?’ 그러거든.
, , , , , , 하면 일곱 자인데 , , 하면  자란 말이여. 그래서 간단하면서도 의심이  .
그래서 옛날부터 이뭣고?’ 화두를  때에는 경상도 말로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뭣고?’
 
이것이 무엇이냐?’한 거, ‘이것’을 무엇을 지칭해서 이것이라고 하냐 하면은 『지금 말하는 바로 이놈』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을 듣고 계시는데 무엇이 듣고 있느냐?’ 그말이거든. 『듣는 그놈』
 
그놈이 바로 욕도  줄도 알고, 칭찬할 줄도 알고  정든 사람이 죽으면 슬퍼할 줄도 알고, 그놈이   삐뚤어지면은 찰나간(刹那間) 악마가 되기도 하고, 그놈이  생각 ! 돌이켜서 착하게 쓰면은 천사가 되기도 한다 그말이여.
 
그놈이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도 있고,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이  수도 있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수도 있고,
그놈이 나찰(羅刹) 귀신도  수도 있고, 독사도  수도 있고, 아귀(餓鬼)  수도 있고, 지옥찌꺼기가  수가 있다 그말이여.
 
어떻게 해서 그놈이 그렇게 찰나간에 천당에 올라갔다가, 찰나간에 지옥에 떨어졌다가, 찰나간에 독사 배때기로 들어갔다가, 찰나간에 돼지가 되었다가, 찰나간에 사람이 되었다 하는 것이냐 그말이여.
 
신기하고 묘하기가 어디다가 비유할 데가 없어. 그래서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이거거든. ‘이뭣고?’
 
의심을   라야   수가 없어!
 
의심을 할려고 해도 자꾸 화두가  잊어버린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분은 신심이 철저하지 못하고, 분심이 철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심이  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참으로 신심이 돈독하고 분심이 있다면 의심을  할라야   수가 없어! 일부러 의심을  하고  생각을  해볼려고 해도 안되는 것이다 그말이여.
 
눈을 감으나 뜨나, 앉으나 서나, 그냥 제절로, 자동으로 그냥 이뭣고?’ ‘이뭣고?’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먹으면서도 이뭣고?’ 똥을 누면서도 이뭣고?’
 
누가 나한테 욕을 하고 억울한 소리를 해도 이뭣고?’
옛날부터서  내온  습기(習氣) 있어서 잠깐 부애가   하다가도 냉큼 이뭣고?’ ! 챙겨 버리면 이뭣고?’거든.
언제 속상할 겨를도 없고, 언제 억울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고, 미워할 생각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뭣고?’ 하나 ! 챙길  알면 그냥  몸뚱이 요대로 바로 천사가 되고 싶으면 천사가 되고, 관세음보살이 되고 싶으면 관세음보살이 되고,
자기가 일부러 독사가 되고 싶으면 독사도 되고, 호랑이가 되고 싶으면 호랑이가 되고, 지옥에도 한번 가보고 싶으면   수가 있다 그말이여.

쏜살같이 지옥에 떨어지다가도 !  생각 돌이켜 버리면 금방 천상에 올라간다 그말이여.
 
죽어서 지옥에 가고, 죽어서 천당에 가는 그렇게도 믿어야 하고 사실 그렇기도 하지만,
우리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은 죽어서 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당장  찰나간에 생사 문제』가  소중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지금  몸뚱이 살아서 이렇게  쉬고,  먹고,  입고  때에  생각 돌이켜서 화두를 들고, 화두에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를 해서 공안(公案)을 타파(打破)하도록 노력한 사람은 죽어서 어디에  것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인연 따라서 천당에 가게 되면 가는 거고, 인연 따라서 지옥에 가게 되면 가는 것이지, 지금부터 걱정할 필요도 없고, 참으로 죽어서 지옥에 가기 싫고, 축생에 가기 싫거든 지금 이뭣고?’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뭣고?’
 
지금  생각 등한히  가지고 지옥에 가는 것이지, 지옥에  사람이 미리부터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생각 어떻게 단속하느냐에 따라서 지옥에도 가고, 천당에도 가고, 극락에도 가고, 인도환생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과를 믿어도 그렇게 믿어야 옳게 믿는 것이고, 그렇게 믿어야 최상승 학자의 믿음인 것입니다.(26분7~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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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부처 ; ‘부처’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는 buddha이다. 이 buddha의 온전한 음사어는 불타(佛陀·佛馱), 부도(浮圖·浮屠), 부타(浮陀), 부두(浮頭), 발타(勃陀·馞陀), 몰타(沒駄) 등이 있다. 각자(覺者), 지자(知者), 각(覺)으로 한역. 불타(佛陀)라는 말이 순우리말로 ‘부텨’라고 읽히고 이 말이 점차 변하여 ‘부처’가 되었다. 보통 경칭어미를 붙여 ‘부처님’이라 한다.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며, 가장 크고 높고 참된 이치를 자기가 깨치고[自覺] 남들까지 깨치게 하여[覺他], 그 지혜와 복이 끝없이 원만하고 이치와 일에 두루 걸림없고[覺行圓滿],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한 이를 말한다. 그 참 이치를 가르쳐서 누구나 부처가 되고, 어디나 밝고 깨끗하고 평등하고 싸움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치심 곧 불교(佛敎)다.
*미(迷) ; 미혹(迷惑), 미망(迷妄), 미집(迷執)의 준말. 진리에 어두움. 마음이 흐리고 혼란함. 깨달음(悟)의 반대. 무명번뇌로 인하여 사리를 밝게 깨치지 못하고 전도몽상(顚倒夢想, 바르게 사물을 볼 수 없는 미혹함)하는 것.
*원만(圓滿 둥글·온전할·원만할 원/찰·가득할 만) : ①완전한. 부족함이 없는. 결함이 없는. 모두 갖추어져 있음. ②증감이 없는 평등무애한 경지. 흠 없는 법의 특징 또는 구경의 깨달음 등을 형용하는 말.
*석가모니(釋迦牟尼) : sakya-muni 음역. 샤카족의 성자(聖者)•현인(賢人)이라는 . 불교의 교조(敎祖). 과거칠불(過去七佛) 일곱째 부처님. 석가모니세존(釋迦牟尼世尊)•석존(釋尊)이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지금의 네팔 지방의 카필라성의 정반왕과 어머니는 마야 왕비. B.C 623 룸비니 동산 무우수(無憂樹) 아래에서 탄생하셔서, 어머니가 그를 낳은  7 만에 세상을 떠나자 이모 마하프라자파티가 그를 양육하였다. 17세에 야소다라와 결혼하여 아들 라훌라를 낳고,
29( 19) 출가하여 여러 선인(仙人) 만나 6 고행한 끝에 고행금욕(禁欲)만으로는 아무 이익이 없음을 알고,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아래에서 단정히 앉아 사유(思惟)하여 마침내 35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여 붓다(buddha) 되었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다섯 수행자에게 처음으로 설법한 것을 시작으로 교단을 이루어, 45  갠지스  중류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설법하다가 80세에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B.C 544 2 15. 입적  그의 가르침이 경전으로 모아져 세계로 전파되었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成佛].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방부(房付)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 참가하다.
*다잡이 ; 늦추었던 것을 바싹 잡아 .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 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찰나간(刹那間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비로자나 부처님(毘盧遮那佛) ;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日),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그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①진리 그 자체인 모든 곳에 편재(遍在)하는 법신으로서의 비로자나 부처님.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관세음보살의 주처는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이다. 한국에서는 동해에 있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관음 도량으로 유명하다.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아귀(餓鬼 굶주림·굶길 아/귀신·아귀 귀) ; 항상 굶주림과 갈증으로 괴로워하는 귀신. 전생에 탐욕이나 질투가 많아, 악업을 지은 사람이 죽은 뒤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餓鬼道)에 태어나 고통을 당한다.
아귀의 배는 산과 같이 크지만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다. 먹을거리가 없어 항상 굶주림과 목마름의 고통에 있고, 우연히 먹을 것을 얻더라도 입에서 불이 나거나 먹을 것이 화염으로 변하여 고통 받는다.
*습기(習氣) ; 과거의 인식행위경험학습 등이 아뢰야식(阿賴耶識) 남긴 기운, 잠재력. 종자(種子) 같음.
*부애 ; 부아. 분하고 노여운 마음.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화두(공안)를 타파(打破) ;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