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만년위패 법보재2024. 1. 20. 13:35

만년위패(No.378)—전강 조실스님께서 용화사에 만년위패 제도를 개설, 영가(靈駕)들이 법문을 듣고 해탈케 하심 |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면 영가가 되는 것, 소소영령한 그 영가는 산 사람이나 돌아가신 분이나 내나 마찬가지.
조상의 영가를 잘 받드는 사람은 또 살아계신 부모와 조부모, 모든 어른들을 잘 받드는 마음을 거기서 배우게 된다 |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에 모셨으니 우리는 도반(道伴)이면서 한 가족.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유주무주(有主無主)의 영가(靈駕)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유주무주(有主無主) ; ①주인(영가를 인도해 줄만한 인연있는 사람)이 있거나 없는. ②제주(祭主)가 있거나 없는.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9분 32초)


[법문] 송담스님(No.378)—1989년 설날차례(89.02.06) (용378)

기사(己巳) 새해를 맞이해서 차례(茶禮)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대사자후(大獅子吼)로 오늘 차례를 모시게 될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원근 친척과 이 법보단(法寶壇)에 모신 만년위패(萬年位牌) 여러 영가(靈駕)분과 이 도량 내외 우주법계의 무량 법계 영가들이 일시에 도탈(度脫)을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저 신라 이전부터서 내려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설날이 양력(陽曆)을 쓰게 됨으로 해서 그 전통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가정에 따라서 차례를 젓수기도 하고 양력설을 쇠기도 하고, 근자에는 '민속의 날'이니 뭐니 해 가지고 갈팡질팡하다가 금년부터 정식으로 ‘설날’로써 국가적으로 공인하는 우리의 명절을 찾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부터 내려오는 우리 한국에서는 돌아가신 부모님으로부터 저 5대조 부모까지 집안에 사당(祠堂)을 모시고 거기에 위패 내지 신주(神主) 가묘를 모시고서 명절에는 차례를 올리고, 제사 때에는 그 가묘와 신주를 모셔다가 제사를 올리고 그래 내려왔었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거의 집안에 사당을 모시는 집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저 시골에나 가면 혹 있을란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발붙일 곳이 없어졌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용화사 법보전(法寶殿)에 만년위패 제도를 개설을 하셔서, 법보단이라고 합니다마는, 법보단을 개설을 하셔서 우리의 선망부모를 편안하게 모시고 조석으로 축원해 드리고 명절 때면 차례를 올리고, 모든 법요식 때마다 그 영가들을 초혼(招魂)을 해서 그 천도(薦度) 법요식에 떳떳하게 초대받아서 감응(感應)을 하시게 해드렸고,
법회 때마다 그 영가들은 우리의 살아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영가의 자리에서 법문(法門)을 듣고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해서 인연 따라서 좋은 곳으로 환생(還生)하시도록 이러한 참 고마운 그런 제도를 마련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영가들이, 발붙일 곳 없는 그 영가들이 편안한 자리를 마련하고 그렇게 법문을 듣고서 해탈(解脫)해 간 그러한 영가들이 많이 계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가정도 편안하고, 물론 그 영가도 해탈해 가니 좋지마는 그 유족 가정도 편안해지고, 사회도 편안해지고, 온 법계도 편안해질 것입니다.

영가는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마는 살아 있는 사람의 이 소소영령한 마음자리, 그 영혼이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면 영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영가가 지은 업과 인연에 따라서 혹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는 다시 인도(人途)에 환생하기도 하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에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탈을 쓰느냐? 뒤집어쓰는 탈만 달랐지, 그 탈 속에 들어 있는 소소영령한 그 영가는 산 사람이나 돌아가신 분이나 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한국에 옛날부터서 내려오는 선현(先賢)들의 옛법에, 돌아가신 조상을 참 살아계실 때보다도 더 경건한 마음으로 사당을 모시고 꼭 받들고 또 산소에도 일 년에 몇 번씩 성묘(省墓)를 드리고 또 산소가 허물어지면은 벌초(伐草)도 하고 사초(莎草)도 해서 그렇게 잘 받들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 깊은 그 명절을 금년부터 되찾게 된 것은 대단히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돌아가신 영가를 잘 받드는 데에는 그와 같은 뜻도 있지마는 돌아가신 조상을 잘 받드는 그러한 옛법이 살아계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나아가서는 이웃 어른, 다른 집 집안의 어른, 모든 어른들을 존경할 수 있는 마음을 거기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잘 받들 줄 모르는 사람은 또 살아계신 부모와 조부모를 잘 받들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은 이 부모에 대한 효사상은 거의 없고 연세가 몇 살 이상 넘으면은 의례히 양로원으로 갖다가 계시게 하는 제도가 발달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근자에 와서 차츰차츰 우리의 전통 의식은 잃어가고 서양풍속이 들어와 가지고 그것도 정립을 하지 못한 채 돌아가신 영가도 발붙일 곳을 잃고, 살아계신 노인들도 발붙일 곳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으로는 돌아가신 영가도 잘 받들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도 효성스럽게 잘 받들 수 있는 그러한 우리 한국의 전통 예법 사상이 다시 잘 회복을 해서 젊은 사람이나 나이 잡순 분이나 모두가 한 가족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처음~9분3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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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己巳) ; 1989년.
*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전강대종사 법어집으로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일대기(田岡禪師一代記)』가 있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인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안에 위패를 모신 단(壇).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도탈(度脫) ; ①생사의 고해를 건너 깨달음의 언덕에 이름. ②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남.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남.
*젓수다 ; ①궁중에서 ‘잡수다’를 이르던 말. 잡수다-->‘먹다’의 높임말. ②신과 부처님께 소원같은 것을 비는 것. ③(사람이 제사를)차려 올리다.
*사당(祠堂 사당·제사 사/집 당) ; 조상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셔 놓은 집.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둔 곳.
*신주(神主) ; 죽은 사람의 위패(位牌).
*위패(位牌 지위·높여서 어떤 사람 위/명찰·위패 패) ; 죽은 사람의 위(位 이름 · 지위. 높여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를 모시는 나무패.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초혼(招魂) ; 죽은 사람의 혼을 부름.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감응(感應) ; 감응도교(感應道交). 부처님과 수행자의 마음이 교류하는 것. 중생의 신심, 선근(善根)이 모든 부처님•보살에게 통해서 그 힘이 나타나는 것. 중생의 신심이 진실하게 느껴져, 부처님과 보살이 답하는 것.
중생 기감(機感,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뜨거우면 부처님의 응(應)하는 마음도 또한 깊다. 그쪽과 이쪽이 사이를 두지 않음을 도교(道交)라 한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환생(還生) ; 생명체가 윤회하여 다시 태어남.
*해탈(解脫) ; 산스크리트어 vimokṣa 팔리어 vimutti
①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나 정신이 자유 자재한 것. 괴롭고 아픈 세계에서 해방된 평안한 상태.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상태. ②모든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 열반의 상태. ③깨달음. ④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곳에 집중하여 산란하지 않는 선정(禪定)의 상태. 평온한 경지.
*인도(人途, 人道) ; 인취(人趣). 인간계(人間界). 인간이 사는 세계. 수미산의 사방에 있다는 동승신주(東勝身洲) · 남섬부주(南膽部洲) · 서우화주(西牛貨洲) · 북구로주(北俱盧洲)의 네 대륙을 말함.
동쪽에 있는 승신주의 인간들은 신장이 뛰어나다 하고, 남쪽에 있는 섬부주는 우리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 함. 서쪽에 있는 우화주에서는 소를 화폐로 사용한다 하고, 북쪽에 있는 구로주는 네 대륙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이라 함.
*사초(莎草 잔디 사/풀 초) ; 무덤에 떼(흙이 붙어 있는 상태로 뿌리째 떠낸 잔디)를 입혀 잘 다듬는 일. 또는 무덤에 입힌 떼.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도반(道伴 깨닫다·도리·근본·불교 도/반려·동반자·벗 반) ; 함께 불도(佛道 부처님이 성취하신 최상의 깨달음)를 수행하는 벗. 불법(佛法)을 닦으면서 사귄 벗. 도려(道侶) · 도우(道友) · 동행(同行) 등과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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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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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ㄱ/거울 법문2022. 6. 20. 16:05

거울 법문(No.378)—상대방은 곧 내 마음의 거울이고, 내 얼굴은 상대방의 마음의 거울 | 진짜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것 | 내 마음을 비우면 상대방의 마음도 비워지는 것, ‘이뭣고?’ 한마디에 아공(인공)과 법공과 구공이 바로 성취가 되는 것이다 | 세계일화(世界一花).


*거울 법문 ; 거울이라는 것은 그 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비추는 것이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눈을 통해서 보는 모든 것이 다 이 거울에 나타나는 자기 모습입니다. 거울만 거울이 아니라 이 삼천대천세계, 끝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거울입니다.

이 허공의 거울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색상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모든 것도 그 허공의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허공으로 된 거울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바로 자기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의 허물은 내 허물의 그림자다. 저 사람 잘못한 것은 바로 내 허물이 그 사람이라고 하는 거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그 회사나, 그 사회나, 그 국가나, 그 세계에 모든 것들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볼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엇을 맡을 때나, 무엇을 먹을 때나, 무슨 생각이 나거나 바로 그 찰나 찰나가 자기가 자기의 모습을 보고서 그 잘못된 곳을 반성하고 고쳐 나갈 수 있는, 그리고 자기를 아름답게 할 수 있는 거울로 잘 사용을 해 나간다면 우리는 나날이 아름다워지고 나날이 향상이 될 것이며, 나아가서는 ‘참나’로 돌아오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진정코 참다운 자기 모습을 볼 것입니다. *송담스님(No.319)—1986년 병인년 성도재 법회(87.01.07)에서.

 

(8분 26초)


[법문] 송담스님(No.378)—1989년 설날차례(89.02.06) (용378)

이 설날은 어렸을 때 그렇게 참 손꼽아서 기다리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마는, 무엇이 그렇게 설날을 그렇게 기다렸던가? 참 그렇게 가슴 설레이는 나날을 보내면서 그 그믐날 저녁은 잠을 자지 아니하고 그랬던 것을 우리는 기억을 할 수가 있습니다.

조부모님 또 부모님께 세배(歲拜) 드리고, 이웃 모다 대소가(大小家) 어른들께 세배 드리고, 온 마을에 어른들을 집집마다 새 옷을 입고 다니면서 세배를 드렸고, 그리고 그날 하루는 널도 뛰고 윷도 놀고 연날리기도 하고 그리고서 온 마을이 패를 갈라서 줄다리기를 하고 또 부인들은 상륙(象陸)도 치고 이러면서 정초(正初)를 그렇게 참 즐겁게 지냈던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일 년 동안 쌓인 모든 가슴속에 섭섭한 것, 원한 관계 모든 감정을 다 풀어버리고 서로 용서하면은 그래 가지고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가족이 단합을 하고 대소가 끼리 화목을 하고, 이웃과 화목을 하면서 또 일 년을 새롭게 출발을 하고 설계를 하고 그렇게 향상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세배할 때에는 서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복 많이 받으십시오” 또 결혼을 아직 못한 사람은 좋은 베필을 만나도록 또 축복을 해 주고, 공부하는 사람은 또 공부 성취하라 그러고, 아들을 못 난 사람은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으라고 또 이렇게 덕담을 해 주고, 그래서 온통 그날은 남 잘되기를, 자기 잘되는 거보다도 만나는 족족 그 사람 잘되라고 그렇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축복을 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들이 결국은 서로서로 그 상대방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 그러한 찰나 찰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과 개인, 가정과 가정 또 이 사회, 국가 이렇게 해서 서로의 서로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하는 그러한 기회로 승화시키는 그런 효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한 가정도 화합이 깨지면은 가정이 불행해지는 것이고, 어떠한 사회, 어떠한 그 회사라도 그 회사 내에 화합이 깨져서 서로 미워하고 모략하고 하면은 그 회사가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나라도 모든 국민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서로 단합하고 그런 데에서 그 나라의 힘이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멸망을 할라면은 간첩을 보내서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그 나라 민족의 민심을 갖다가 분열을 시키고, 이것은 그 전쟁을 이기는 데 절대적인 병법(兵法)인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더 올바르게 발전을 하고 훌륭한 나라가 될려면 어쨌든지 우리의 민족정기를 앙양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서로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합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선양하는 뜻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저 사람 마음과 내 마음이 화합이 되고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은 상대방을 힘으로 누르고 꾀로써 정복을 해 가지고는 하나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첫째, 내 마음을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비움으로써 내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착해지면 자연히 상대방이 나를 좋게 보고, 좋은 마음으로 또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곧 내 마음의 거울이고, 내 얼굴은 상대방의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피차(彼此)가 그 거울에 나타난 자기의 모습을 깨끗이 거울을 보고 자기의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줄 알면서, 진짜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것인데 그것을 보고는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줄 알면서 왜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집안에 미운 사람, 이웃의 미운 사람 그 사람 얼굴은 바로 자기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운 사람을 보고 자기도 성을 내면, 성을 낼수록 그 사람 상대방 얼굴은 점점 더 고약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로서 자기 마음의 때를 닦고서 고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상대하면 상대방의 마음도 굳었던 얼굴이 풀어질 것입니다.

사람을 척 보면 인상이 고약하게 생긴 사람이 있습니다. 그 고약한 사람을 보고 나도 위아래 훑어보면서 아니꼬운 표정을 지면서 같잖은 아주 그런 얼굴을 지어 보십시오. 상대방은 점점 험악해질 것입니다.
내가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부드러운 말로 “아, 어디가 안 좋으십니까?” 이렇게 부드럽게 달라들면,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해서 내 마음을 비우면 상대방의 마음도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공(我空), 인공(人空) 그래 가지고 구공(俱空)이 되는 것입니다. 아공(인공), 법공(法空), 구공 이것을 3공(三空)이라 그러는데, 이것은 교리적으로 풀어서 얘기하자면 그렇습니다마는 ‘이뭣고?’ 한마디에 아공(인공)과 법공과 구공이 바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가 되고 이러한 운동이 가정에서 가정으로 해서 온 세계에 퍼져 나간다면 이것이 국가도 하나가 되고, 세계도 하나가 되어서 세계가 뿌리가 한 뿌리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한 꽃이 되도록 세계일화(世界一花)가 되도록,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거룩한 법(法)인 것입니다.(9분36초~18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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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널뛰기할 때 쓰는 널빤지.
*상륙(象陸) ; '쌍륙'의 원말. 예전에 중국에서, 두 편이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사위대로 말을 놀려 먼저 궁에 들여보내는 쪽이 이기는 놀이를 이르던 말. 주사위는 오면체, 육면체 등 다양한 형태가 있었고 그 개수도 두 개 혹은 세 개 등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하는 놀이가 정착하면서 '쌍륙(雙六)'으로 바뀌었다.
*떡두꺼비 ; ①갓난 건장한 사내아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②크고 튼실하게 생긴 두꺼비.
*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송담스님(No.306)—86년 8월 화두 불명 수계 법회]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 참선법 A ]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어갈 수밖에는 없는 것이라,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가운데 우리는 죽을 날을 받아 놨으면서도 그 죽는 날만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일분 일초라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고 정말 알뜰하게 이 공부를 위해서 마음을 돌려 써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여기를 오는 놈. 그놈이 슬퍼할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알고, 근심 걱정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이 몸뚱이를 자유자재로이 작용하는 바로 이놈. 나의 주인공.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운전사.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그놈이 부모로부터 이 몸뚱이를 받어 가지고 이승을 하직(下直)할 때까지, 단 일초 동안도 이 몸으로부터 떠나보지 못한 채, 같이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단 한번도 우리는 그놈의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단 일초 동안도 이 몸을 떠나서 존재해 보지 못한 그놈인데, 어째서 온갖 것은 다 보고 알고, 듣고 알고, 만져보고 알고, 생각해서 알면서, 바로 그 자기의 주인공은 한번도 본 일이 없느냐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봐야 우리의 생사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봐야 나의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64분6초~66분26초) [ 참선법 A ]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

오직 ‘이뭣고?’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꽉 맥힌 의심(疑心)으로 ‘이뭣고?’를 생각하고 관조(觀照)해 나갈 때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중생의 분별식(分別識)이 다하고, 번뇌와 망상이 다해서 생각 없는 데에 도달하고, 생각 없는 데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서 이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큰 장독에다가 간장을 가뜩 부어놓은 것을 큰 메겡이로 메쳐서 그 간장독이 쩍! 벌어져서 간장이 와르르르 쏟아지듯이 우리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타파함으로써 무량겁의 칠통(漆桶)이 동시에 타파가 되고, 바로 나의 본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고,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고, 우주의 근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송담스님(No.086)—78년 7월 관음재일 법회]

*삼공(三空) ; 아공(我空, 인공人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을 가리킨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아집(我執)은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법공(法空) ; 법무아(法無我).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법집(法執)은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즉 보리(菩提)가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구공(俱空) ;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경지에 차례로 도달한 후, 다시 그 아공(我空)과 법공(法空)까지도 버려 비로소 제법(諸法)의 본성에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수행에 의해 이러한 경지를 증득한 것을 뜻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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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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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영가2022. 6. 20. 15:56

영가(No.378)—금년부터 정식으로 ‘설날’로써 국가적으로 공인 | 전강 조실 스님께서 용화사에 만년위패 제도를 개설, 영가들이 법문을 듣고 해탈케 하심 |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면 영가가 되는 것, 소소영령한 그 영가는 산 사람이나 돌아가신 분이나 내나 마찬가지.
조상의 영가를 잘 받드는 사람은 또 살아계신 부모와 조부모, 모든 어른들을 잘 받드는 마음을 거기서 배우게 된다 |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에 모셨으니 우리는 도반(道伴)이면서 한 가족.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영가는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마는 살아 있는 사람의 이 소소영령한 마음자리, 그 영혼이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면 영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영가가 지은 업과 인연에 따라서 혹 천상에, 혹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는 다시 인도(人途)에 환생하기도 하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에 가기도 하는데, 뒤집어쓰는 탈만 달랐지, 그 탈 속에 들어 있는 소소영령한 그 영가는 산 사람이나 돌아가신 분이나 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9분 32초)


[법문] 송담스님(No.378)—1989년 설날차례(89.02.06) (용378)

기사(己巳) 새해를 맞이해서 차례(茶禮) 법요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의 대사자후(大獅子吼)로 오늘 차례를 모시게 될 우리의 선망부모(先亡父母)와 원근 친척과 이 법보단(法寶壇)에 모신 만년위패(萬年位牌) 여러 영가(靈駕)분과 이 도량 내외 우주법계의 무량 법계 영가들이 일시에 도탈(度脫)을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에 저 신라 이전부터서 내려오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설날이 양력(陽曆)을 쓰게 됨으로 해서 그 전통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개별적으로 가정에 따라서 차례를 젓수기도 하고 양력설을 쇠기도 하고, 근자에는 '민속의 날'이니 뭐니 해 가지고 갈팡질팡하다가 금년부터 정식으로 ‘설날’로써 국가적으로 공인하는 우리의 명절을 찾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부터 내려오는 우리 한국에서는 돌아가신 부모님으로부터 저 5대조 부모까지 집안에 사당(祠堂)을 모시고 거기에 위패 내지 신주(神主) 가묘를 모시고서 명절에는 차례를 올리고, 제사 때에는 그 가묘와 신주를 모셔다가 제사를 올리고 그래 내려왔었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거의 집안에 사당을 모시는 집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저 시골에나 가면 혹 있을란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조상들은 발붙일 곳이 없어졌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용화사 법보전(法寶殿)에 만년위패 제도를 개설을 하셔서, 법보단이라고 합니다마는, 법보단을 개설을 하셔서 우리의 선망부모를 편안하게 모시고 조석으로 축원해 드리고 명절 때면 차례를 올리고, 모든 법요식 때마다 그 영가들을 초혼(招魂)을 해서 그 천도(薦度) 법요식에 떳떳하게 초대받아서 감응(感應)을 하시게 해드렸고,
법회 때마다 그 영가들은 우리의 살아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영가의 자리에서 법문(法門)을 듣고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해서 인연 따라서 좋은 곳으로 환생(還生)하시도록 이러한 참 고마운 그런 제도를 마련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영가들이, 발붙일 곳 없는 그 영가들이 편안한 자리를 마련하고 그렇게 법문을 듣고서 해탈(解脫)해 간 그러한 영가들이 많이 계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가정도 편안하고, 물론 그 영가도 해탈해 가니 좋지마는 그 유족 가정도 편안해지고, 사회도 편안해지고, 온 법계도 편안해질 것입니다.

영가는 우리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마는 살아 있는 사람의 이 소소영령한 마음자리, 그 영혼이 이 몸뚱이를 벗어 버리면 영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영가가 지은 업과 인연에 따라서 혹 천상에 태어나기도 하고 혹 극락세계에 태어나기도 하고 또는 다시 인도(人途)에 환생하기도 하고,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축생이나 아귀나 지옥에 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탈을 쓰느냐? 뒤집어쓰는 탈만 달랐지, 그 탈 속에 들어 있는 소소영령한 그 영가는 산 사람이나 돌아가신 분이나 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한국에 옛날부터서 내려오는 선현(先賢)들의 옛법에, 돌아가신 조상을 참 살아계실 때보다도 더 경건한 마음으로 사당을 모시고 꼭 받들고 또 산소에도 일 년에 몇 번씩 성묘(省墓)를 들이고 또 산소가 허물어지면은 벌초(伐草)도 하고 사초(莎草)도 해서 그렇게 잘 받들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전통 깊은 그 명절을 금년부터 되찾게 된 것은 대단히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돌아가신 영가를 잘 받드는 데에는 그와 같은 뜻도 있지마는 돌아가신 조상을 잘 받드는 그러한 옛법이 살아계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나아가서는 이웃 어른, 다른 집 집안의 어른, 모든 어른들을 존경할 수 있는 마음을 거기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잘 받들 줄 모르는 사람은 또 살아계신 부모와 조부모를 잘 받들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은 이 부모에 대한 효사상은 거의 없고 연세가 몇 살 이상 넘으면은 의례히 양로원으로 갖다가 계시게 하는 제도가 발달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근자에 와서 차츰차츰 우리의 전통 의식은 잃어가고 서양풍속이 들어와 가지고 그것도 정립을 하지 못한 채 돌아가신 영가도 발붙일 곳을 잃고, 살아계신 노인들도 발붙일 곳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으로는 돌아가신 영가도 잘 받들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도 효성스럽게 잘 받들 수 있는 그러한 우리 한국의 전통 예법 사상이 다시 잘 회복을 해서 젊은 사람이나 나이 잡순 분이나 모두가 한 가족으로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 만년위패에 우리의 조상 여러 영가와 원근 친척의 인연 있는 영가들을 모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여러분은 법보가족이라고 말을 할 수가 있습니다. 한 가족입니다.
조상의 영가를 한 법당에 모셨으니 우리가 한 가족인 것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는 또 이 도반(道伴)이면서 또 한 가족인 것입니다.(처음~9분3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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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茶禮) ; 음력 매달 초하룻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의 낮에 지내는 제사.
*법요식(法要式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요긴할·원할·얻을 요/법·제도·의식 식) ; ①법요(法要 : 법法의 요체要諦,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를 닦아 익히는 법식(法式). ②불사(佛事 : 재齋, 법회 따위의, 불가佛家에서 행하는 모든 일)의 의식. 법회(法會 : 불법을 강설하거나 불보살과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행사 모임).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사자후(獅子吼) ; ①부처의 위엄 있는 설법을, 사자의 울부짖음에 모든 짐승이 두려워하여 굴복하는 것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②사자의 울음소리처럼 우렁찬 연설.
*선망부모(先亡父母) ; 금생에 돌아가신 부모 뿐만 아니라 과거 우리의 모든 부모.
[참고] 송담스님(No.243)— 1984년(갑자년) 칠석차례 법문에서.
선망부모는 저 사람의 선망부모가 곧 나의 선망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영가(靈駕)는 수천만 번 몸을 바꾸면서 나의 조상이 되었다, 김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박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가, 이씨네 조상으로 태어났다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내 부모가 바로 저 사람의 부모고, 저 사람의 부모가 다 내 부모여서, 내 부모를 소중히 아는 사람은 바로 다른 노인들을 다 소중히 여기게 되고, 내 자식이 사랑스런 사람은 또 다른집 아기들도 아껴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동체대비(同體大悲)라 하는 것입니다.
*법보단(法寶壇) ;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인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안에 위패를 모신 단(壇).
*만년위패(萬年位牌) ; 전강 조실스님께서 우리들의 선망부모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제도.
영가에게 대웅전(舊 법보전) 법보단에 편안한 거처를 마련하여 이 법보단에서 좋은 도반들과 한 가족이 되어, 용화선원이 있는 한 계속 매일 예불시 축원하고 법회 때나 평소에 법문(法門)을 들려드려 영가가 원한심을 내려 놓고 모든 업장을 소멸하여 도솔천 내원궁이나 극락세계에 왕생하시거나,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더라도 정법(正法)에 귀의하여 스스로 깨닫고 모든 중생을 제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전강선사께서 만드신 제도.
*영가(靈駕) ;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 영(靈)은 정신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신 자체를 가리키고, 가(駕)는 상대를 높이는 경칭(敬稱)이다. 천도재(薦度齋) 등의 의식과 위패(位牌) 등에서 망자(亡者 죽은 사람)의 성명 뒤에 호칭으로 붙인다.
*법계(法界) ; ①모든 현상, 전우주. ②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③진리의 세계.
*도탈(度脫) ; ①생사의 고해를 건너 깨달음의 언덕에 이름. ②모든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남. 속세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남.
*사당(祠堂 사당·제사 사/집 당) ; 조상의 신주(神主 죽은 사람의 위패)를 모셔 놓은 집. 또는 신주를 모셔 놓기 위해 조그맣게 집처럼 만들어 둔 곳.
*신주(神主) ; 죽은 사람의 위패(位牌).
*위패(位牌 지위·높여서 어떤 사람 위/명찰·위패 패) ; 죽은 사람의 위(位 이름 · 지위. 높여서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를 모시는 나무패.
*법보전(法寶殿, 現 대웅전) ; 법보전(現 대웅전)은 용화선원의 주(主) 법당(法堂)으로 진리(法寶)의 전당이라는 뜻. 
그래서 진리 그 자체를 가리키는 법신불(法身佛)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毗盧遮那佛)을 모셨고, 그 좌우에 부처님 경전과 전강 조실스님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그리고 많은 유주·무주의 영가 천도를 위하여 만년위패를 봉안하여 놓았다.
*초혼(招魂) ; 죽은 사람의 혼을 부름.
*천도(薦度) ; 불교 의례의 하나. 돌아가신 이의 영혼을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주어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일.
*감응(感應) ; 감응도교(感應道交). 부처님과 수행자의 마음이 교류하는 것. 중생의 신심, 선근(善根)이 모든 부처님•보살에게 통해서 그 힘이 나타나는 것. 중생의 신심이 진실하게 느껴져, 부처님과 보살이 답하는 것.
중생 기감(機感,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중생의 소질이나 능력)이 뜨거우면 부처님의 응(應)하는 마음도 또한 깊다. 그쪽과 이쪽이 사이를 두지 않음을 도교(道交)라 한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업장소멸(業障消滅)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 · 말 · 생각(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생긴 장애[業障]가 사라져 없어짐[消滅]. 죄업소멸(罪業消滅).
*환생(還生) ; 생명체가 윤회하여 다시 태어남.
*사초(莎草 잔디 사/풀 초) ; 무덤에 떼(흙이 붙어 있는 상태로 뿌리째 떠낸 잔디)를 입혀 잘 다듬는 일. 또는 무덤에 입힌 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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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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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비우는 공부(No.378)—상대방은 곧 내 마음의 거울이고, 내 얼굴은 상대방의 마음의 거울 | 진짜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것 | 내 마음을 비우면 상대방의 마음도 비워지는 것, ‘이뭣고?’ 한마디에 아공(인공)과 법공과 구공이 바로 성취가 되는 것이다 | 세계일화(世界一花).


*비우는 공부 ; 이 도(道)는 무엇을 많이 알고, 많이 속에다가 쌓는 공부가 아니고 비우는 공부입니다.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다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다 비워 버려야 합니다.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 (28분40초~29분20초)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이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그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또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곧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과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는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밑 본/올 래/낯 면/눈 목)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깨달음 ; 각(覺). 법(法)의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앎.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4분 17초)


[법문] 송담스님(No.378)—1989년 설날차례(89.02.06) (용378)

앞으로 우리나라가 더 올바르게 발전을 하고 훌륭한 나라가 될려면 어쨌든지 우리의 민족정기를 앙양을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서로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합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선양하는 뜻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저 사람 마음과 내 마음이 화합이 되고 하나가 되느냐?’ 하는 것은 상대방을 힘으로 누르고 꾀로써 정복을 해 가지고는 하나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첫째, 내 마음을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비움으로써 내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착해지면 자연히 상대방이 나를 좋게 보고, 좋은 마음으로 또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곧 내 마음의 거울이고, 내 얼굴은 상대방의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피차(彼此)가 그 거울에 나타난 자기의 모습을 깨끗이 거울을 보고 자기의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줄 알면서, 진짜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것인데 그것을 보고는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줄 알면서 왜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집안에 미운 사람, 이웃의 미운 사람 그 사람 얼굴은 바로 자기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운 사람을 보고 자기도 성을 내면, 성을 낼수록 그 사람 상대방 얼굴은 점점 더 고약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로서 자기 마음의 때를 닦고서 고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상대하면 상대방의 마음도 굳었던 얼굴이 풀어질 것입니다.

사람을 척 보면 인상이 고약하게 생긴 사람이 있습니다. 그 고약한 사람을 보고 나도 위아래 훑어보면서 아니꼬운 표정을 지면서 같잖은 아주 그런 얼굴을 지어 보십시오. 상대방은 점점 험악해질 것입니다.
내가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부드러운 말로 “아, 어디가 안 좋으십니까?” 이렇게 부드럽게 달라들면,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해서 내 마음을 비우면 상대방의 마음도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공(我空), 인공(人空) 그래 가지고 구공(俱空)이 되는 것입니다. 아공(인공), 법공(法空), 구공 이것을 3공(三空)이라 그러는데, 이것은 교리적으로 풀어서 얘기하자면 그렇습니다마는 ‘이뭣고?’ 한마디에 아공(인공)과 법공과 구공이 바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가 되고 이러한 운동이 가정에서 가정으로 해서 온 세계에 퍼져 나간다면 이것이 국가도 하나가 되고, 세계도 하나가 되어서 세계가 뿌리가 한 뿌리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한 꽃이 되도록 세계일화(世界一花)가 되도록,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거룩한 법(法)인 것입니다.(13분47초~18분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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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正法 바르다·올바르다 정/부처님의 가르침 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정법시대(正法時代 : 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상재동용중(常在動用中)하되, 한 물건이 여기에 있으니 항상 움직여 쓰는 가운데 있으되, 몸을 움직거리고[動] 정신을 쓰고[用] 하는 그 가운데 이 '한 물건'이 항상 있다.
그런데 그 몸을 움직거리고 정신을 쓰고 하는 그 가운데에 그놈을 찾으면 얻을 수가 없어[動用中收不得]. 분명히 소소영령(昭昭靈靈)하게 있는데 그놈을 거두어 찾을라고 하면 얻을 수가 없다.

눈으로 볼라고 해도 보이지 않고, 손으로 잡을라고 해도 잡히지도 않고, 생각으로 아무리 그놈을 알라고 해도 알 수가 없더라.
그러니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한문으로는 시삼마(是甚麼). 우리말로는 ‘이것이 무엇인고?’ 줄여서 ‘이뭣고?’[송담스님(No.306)—86년 8월 화두 불명 수계 법회]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 참선법 A ]

한번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어갈 수밖에는 없는 것이라,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가운데 우리는 죽을 날을 받아 놨으면서도 그 죽는 날만을 알지 못한 채 살고 있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일분 일초라도 헛되이 시간을 보내지 말고 정말 알뜰하게 이 공부를 위해서 마음을 돌려 써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를 끌고 여기를 오는 놈. 그놈이 슬퍼할 줄도 알고, 성낼 줄도 알고, 근심 걱정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이 몸뚱이를 자유자재로이 작용하는 바로 이놈. 나의 주인공.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운전사.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그놈이 부모로부터 이 몸뚱이를 받어 가지고 이승을 하직(下直)할 때까지, 단 일초 동안도 이 몸으로부터 떠나보지 못한 채, 같이 생활을 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단 한번도 우리는 그놈의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단 일초 동안도 이 몸을 떠나서 존재해 보지 못한 그놈인데, 어째서 온갖 것은 다 보고 알고, 듣고 알고, 만져보고 알고, 생각해서 알면서, 바로 그 자기의 주인공은 한번도 본 일이 없느냐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것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봐야 우리의 생사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봐야 나의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64분6초~66분26초) [ 참선법 A ]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

오직 ‘이뭣고?’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꽉 맥힌 의심(疑心)으로 ‘이뭣고?’를 생각하고 관조(觀照)해 나갈 때에 끊임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우리의 중생의 분별식(分別識)이 다하고, 번뇌와 망상이 다해서 생각 없는 데에 도달하고, 생각 없는 데에서 다시 한 걸음 나아가서 이 화두를 타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큰 장독에다가 간장을 가뜩 부어놓은 것을 큰 메겡이로 메쳐서 그 간장독이 쩍! 벌어져서 간장이 와르르르 쏟아지듯이 우리 본참화두(本參話頭)를 타파함으로써 무량겁의 칠통(漆桶)이 동시에 타파가 되고, 바로 나의 본면목을 보게 되는 것이고, 불조(佛祖)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보는 것이고, 우주의 근본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송담스님(No.086)—78년 7월 관음재일 법회]

*삼공(三空) ; 아공(我空, 인공人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을 가리킨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에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아집(我執)은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법공(法空) ; 법무아(法無我).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에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법집(法執)은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즉 보리(菩提)가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구공(俱空) ;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의 경지에 차례로 도달한 후, 다시 그 아공(我空)과 법공(法空)까지도 버려 비로소 제법(諸法)의 본성에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수행에 의해 이러한 경지를 증득한 것을 뜻한다.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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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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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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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ㅅ/삼공2016. 2. 8. 15:33

삼공(三空) (No.378)—상대방은 곧 내 마음의 거울이고, 내 얼굴은 상대방의 마음의 거울.

 

*삼공(三空) ; 아공(我空, 인공人空), 법공(法空), 구공(俱空) 가리킨다.

 

*아공(我空) ; 인공(人空). 인무아(人無我).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아집(我執) 대해, 인간 자신 속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없다고 보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경지이다.

아집(我執) 번뇌장(煩惱障)이라고도 하는데, 번뇌장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번거롭게 하여 열반(또는 해탈)을 가로막아 중생으로 하여금 윤회하게 하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법공(法空) ; 법무아(法無我). 존재하는 만물 각각에는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보는 법집(法執) 대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기는 것이므로 실체로서의 자아는 없다는 견해 혹은 이치, 또는 이러한 깨우침을 증득한 상태 또는 경지이다.

법집(法執) 소지장(所知障)이라고도 하는데, 소지장은 참된 지혜,  보리(菩提) 발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라는 의미이다.

 

*구공(俱空) : 아공(我空) 법공(法空) 경지에 도달한 , 다시  아공(我空) 법공(法空)까지도 버려 비로소 제법(諸法) 본성에 계합하는 것을 뜻한다. 또한, 수행에 의해 이러한 경지를 증득한 것을 뜻한다. [참고] 위키백과 '()' 항목.

 

(4분 15초)

 

[법문] 송담스님(No.378)—89 설날차례(89.02.06)(용378)

 

앞으로 우리나라가  올바르게 발전을 하고 훌륭한 나라가 될려면 어쨌든지 우리의 민족정기를 앙양을 하고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는 서로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단합을 해야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부처님의 정법을 선양하는 뜻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은  사람 마음과  마음이 화합이 되고 하나가 되느냐?’하는 것은 상대방을 힘으로 누르고 꾀로써 정복을 해 가지고는 하나가 되는 법이 없습니다.

 

첫째,  마음을 비워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움으로써 내 마음이 맑아지고 깨끗해지고 착해지면 자연히상대방이 나를 좋게 보고, 좋은 마음으로 또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상대방은   마음의 거울이고,  얼굴은상대방의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피차(彼此)가  거울에 나타난 자기의 모습을 깨끗이 거울을 보고 자기의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알면서, 진짜 자기의 마음의 모습이 상대방의 얼굴에 나타난 것인데 그것을 보고는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모르는것입니다.

 

얼굴에 묻은 때는 닦을  알면서  자기의 마음의 때를 닦을 줄을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집안에 미운사람, 이웃의 미운 사람  사람 얼굴은 바로 자기 마음의 거울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운 사람을 보고 자기도 성을 내면, 성을 낼수록  사람 상대방 얼굴은 점점  고약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자기의 마음을 돌이켜서 이뭣고?’ ‘이뭣고?’로서 자기 마음의 때를 닦고서 고운 마음으로 상대방을 상대하면 상대방의 마음도 굳었던 얼굴이 풀어질 것입니다.

 

사람을  보면 인상이 고약하게 생긴 사람이 있습니다.  고약한 사람을 보고 나도 위아래 훑어보면서 아니꼬운 표정을 지면서 같잖은 아주 그런 얼굴을 지어 보십시오. 상대방은 점점 험악해질 것입니다.

내가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부드러운 말로 , 어디가  좋으십니까?” 이렇게 부드럽게 달라들면, “아니요, 괜찮습니다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아주 간단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해서  마음을 비우면 상대방의 마음도 비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공(我空), 인공(人空) 그래가지고 구공(俱空)이 되는 것입니다.  아공(인공), 법공(法空), 구공 이것을3공(三空)이라 그러는데, 이것은 교리적으로 풀어서 얘기하자면 그렇습니다마는 이뭣고?’ 한마디에 아공(인공) 법공과 구공이 바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와 다른 사람과의 마음이 언제나 하나가 되고 이러한 운동이 가정에서 가정으로 해서  세계에퍼져 나간다면 이것이 국가도 하나가 되고, 세계도 하나가 되어서 세계가 뿌리가  뿌리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꽃이 되도록 세계일화(世界一花)가 되도록,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거룩한 법(法)인 것입니다.(1347~18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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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뭣고(是甚) ; 「이뭣고」 화두는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찾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