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거울 법문2017.07.03 21:39

*거울 법문 ; 거울이라는 것은 그 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비추는 것이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눈을 통해서 보는 모든 것이 다 이 거울에 나타나는 자기 모습입니다. 거울만 거울이 아니라 이 삼천대천세계, 끝없는 허공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거울입니다.

이 허공의 거울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색상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 모든 것도 그 허공의 거울에는 나타나는 것입니다. 허공으로 된 거울에 나타나는 모든 것이 바로 자기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의 허물은  허물의 그림자다. 저 사람 잘못한 것은 바로  허물이  사람이라고 하는 거울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회사나,  사회나,  국가나,  세계에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때나, 무엇을 들을 때나, 무엇을 맡을 때나, 무엇을 먹을 때나, 무슨 생각이 나거나 바로  찰나 찰나가 자기가 자기의 모습을 보고서  잘못된 곳을 반성하고 고쳐 나갈  있는, 그리고 자기를 아름답게   있는 거울로  사용을  나간다면 우리는 나날이 아름다워지고 나날이 향상이  것이며, 나아가서는 참나’로 돌아오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면 진정코 참다운 자기 모습을  것입니다.

(8분 30초)

[법문] 송담스님(No.026)—76 동지법문 (76.12.22)


어째서  동짓날 이렇게 법회를 갖게 되느냐?  다른 절에서는 동짓날 시(時)가 새벽에 들었으면 새벽에 팥죽을 쑤어서 올리고 축원(祝願) 하고, 밤에 들었으면 밤에  팥죽을 쑤어서 올리고 축원을 하고 이러느냐?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우주의 모든 질서가 음양(陰陽)으로 노나서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본래는 그것이 음양이 없는 것이지마는일단 그것이 본래는 음도 없고 양도 없는 ,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마는,

그것이 아무 바람도 없고 아무 움직임이 없을 때는 물결이  일다가 그것이 물결이 일어났다 하면은 한 물결, 버큼 하나 일어남으로 해서  조용했던  넓은 호수에 파도가 좌악 일기 시작한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물결 일어남으로 해서 일만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래는 음양도 없지마는  없는 자리에서 음양이 벌어지고,  음양이 팔괘(八卦)로, 팔괘에서 24, 24괘에서 360도로 이렇게 해서  세계가 벌어지고,  가운데 생로병사(生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 벌어져 가지고, 그것을 가리켜서 윤회(輪廻), 결국은 윤회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윤회의 물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부자가 가난해졌다가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었다.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것이 아니라,  얼마 동안 가다가  가난해지고 이렇습니다. 한번 부자가 되면 영원히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지마는 시절인연(時節因緣) 도래(到來)하면은  차츰차츰 차츰  가난해지게 됩니다.

가난해져 가지고 영원히 가난하게 살면은 큰일날 텐데 가난한 사람이  차츰차츰 일어나기 시작하면은 국중(國中)에 거부(巨富)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당대(當代)에 일생 동안  부귀를 누리기도 하고  , 삼 대 가기도 하고 십 대를 가기도 하고, 당신 일대에도 채우지 못하고 금방 말년에 고생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가지 각가지인데,

  년에 24계절이 돌아가는 , 그것을 보고서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무상(無常)하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깨달라야만  사람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지가 돌아오건, 입춘이 돌아오건 그것이 무슨 참선(參禪)해 나가는데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마는, 그러한 우주의 질서, 천지자연의 섭리를 보고서, 그것을 보고서 생사 없는 도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옛날부터서 그러한 계절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법회(法會)를 거행해 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주의 변화, 대자연의 섭리 이런 것들이 전부가 뭐라고 표현할  없는 ‘한 물건’의 발현인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한 물건’이라고도   없는  진여자성(眞如自性)의 그 자리에서 파도가 일어나 가지고 가지가 뻗고, 잎이 피고 하는 것이 그렇게 표현된 것이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인 것입니다.


그래서 당장 자기 마음이 바르고 자기 마음이 편안하고 자기 마음이 기쁘고 행복한 사람은 하늘을 봐도 희망에 넘치고 꽃이 피는 것을 보고도 희망에 넘치고, 가을에 단풍이 지는 것을 보고도 조금도 슬퍼할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마음이 고독하고 자기 마음이 의지할 곳이 없고 자기 마음이 서글픈 사람은 그 달, 밝고 뚜렷한 가을의  고운 달을 보고도 눈물이 주루루 한숨이  쉬어지고,  곱게 곱게  꽃을 보고도 한숨을 쉬게 되고, 어떠한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도 하나도 아름다운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느냐? 자기 마음과  우주 법계에 삼라만상과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허공이라고 하는 커다란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자기의 마음이 보인 것이 바로 우리의 눈으로   있는 것들이요, 귀로 들을  있는 것들이요, 코로 맡을  있는 것들이요, 입으로 맛볼  있는 것들이요, 몸뚱이로 촉감으로 감각할  있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화엄경(華嚴經) 제일게(第一偈)에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일체(一切)란 말은 ‘모든 것’이라  말이예요.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마음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으로 되았다』  말이예요.

‘마음으로 되었다’는 말이 바로 아까 말씀드린 ‘자기의 마음이 밖으로 나타나 가지고, 그것이 다시 자기에게 비추어  것이다’


허공이라고 하는 거울이 우리의 앞에나, 뒤에나, 머리 위에나, 다리 밑에나,  거울이 거울이, 무한대로  거울이 있는데,  거울에 보인 것이 자기의 얼굴이 보인 것이다. 자기의 마음이, 자기의 모습이  거울에 비추어서 반사되어서 자기에게 돌아온 것이다.


이것은 여러분이 참선을 하시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히 관찰을 해 보고 반성을 해 보면 이러한 이치는 분명 여러분이 ‘아, 과연 그렇구나!’하고 아실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동짓날을 맞이해서 우주  시간, 계절의 변화를 인연해서  자신의, 나의 일신(一身)에 따르는 빈부귀천 모든 것이 그와 같다고 하는  이치를 우리는 되돌려서 깊이 뉘우치고, 거기에서 ‘참나’를 발견할  있는 참선법(參禪法)에 가일층 정진을 하셔야  것으로 생각합니다.(3~1130)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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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원(祝願) ; 어떤 일이 희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불보살(佛菩薩) 간절히 원하고 .

*음양(陰陽) ; 우주 만물의 서로 반대되는  가지 기운으로서 이원적 대립 관계를 나타내는 . 달과 , 겨울과 여름, 북과 , 여자와 남자 등은 모두 음과 양으로 구분된다.

*버큼 ; ‘거품 사투리.

*팔괘(八卦) ; 중국 상고 시대의 복희씨(伏羲氏) 만들었다고 하는 여덟 가지 (). 양효(陽爻) 음효(陰爻) 이루어진  개의 효를 겹치어 자연 세계의 기본 요소인 여덟 가지의 () 나타내는 것으로 (:, 하늘), (:, ), (:, ), (:, ), (:, 우레), (:, 바람), (:, ), (:, ) 말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 ; 중생이 반드시 겪어야 하는 4가지 고통. ,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

*성주괴공(成住壞空) : 세상의 모든 것은 크나 작으나  변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곧 성립되어 가는 과정, 안정(安定)하여 진행하는 과정, 쇠퇴하여 가는 과정, 멸망하여 없어지는 과정이 반드시 있게 된다。모든 물질도, 우리 몸도 사회도, 국가도, 세계 전체도  그렇게 된다.

이것을 성주괴공(成住壞空)이니, 생주이멸(生住異滅)이니, 생로병사(生老病死) 하는데,  원인은 우리의 마음 속에 생각이   없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기 때문이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함(). 또는 그런 현상.

*윤회(輪廻) ; ①수레바퀴가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이, 중생이 번뇌와 업(業)에 의하여 삼계 육도(三界六道) 생사(生死)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 ②어떤 사물이 일련의 변화 과정을 단계에 따라 차례로 밟아 가거나 되풀이함.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 : 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 : 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 : 어떠한 ,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때.

*국중(國中) ; 나라의 안.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 조건()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없다[].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 물건 ; 일물(一物). 일상(一相). ‘ 물건’ ‘ 모양이란 불교에서 진여(眞如) 본체를 들어 일컫는 말이다.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 11~13.

有一物於此호대  從本以來로  昭昭靈靈하야  不曾生不曾滅이며  名不得狀不得이로다

여기에  물건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하여, 일찌기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이름 지을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음이로다.


(註解) 一物者는  何物고    古人이  頌云,  古佛未生前에  凝然 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니 *迦葉이  豈能傳가 하니  此一物之所以不曾生不曾滅이라  名不得狀不得也라

六祖가  告衆云하사대  吾有一物하니  無名無字라  諸人은  還識否아 하시니 神會禪師가 卽出曰,  諸佛之本源이요  神會之佛性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孽子也

懷讓禪師가  自嵩山來어늘  六祖問曰,  麼物  麼來 師가 罔措라가  至八年에사  方自肯曰,  説似一物이라도  卽不中이니다 하니  此所以爲六祖之嫡子也라


 물건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송하기를  「옛 부처 나기 전에  상이 두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하니, 이것이  물건의 나는 것도 아니요,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이르시되 나에게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 없다。너희들은 알겠는가?”하시니 신회선사가  나와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의 근본이요, 신회의 불성입니다하니, 이것이 육조의 서자가  까닭이다.

회양선사가 숭산에서 와뵈니 육조스님이 물으시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하시니 회양은 어쩔줄을 모르다가   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물건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하였으니 이것이 육조의 적자가  소이이다.

*진여자성(眞如自性)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삼라만상(森羅萬象) 두두물물(頭頭物物) ;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현상.

*화엄경(華嚴經) ; 본이름은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며,  경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 깨달음의 내용을 그대로 표명한 경전이다.

3가지 번역이 있는데, 60권은 동진(東晋) 불타발타라(駄跋陀羅) 번역이고, 80권은 ()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 40권은 () 반야(般若) 번역임.

 가운데 40권은 60권과 80권의 마지막에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 해당하며, 십지품(十地品) 입법계품(入法界品) 산스크리트 원전이 남아 있다.


[참고] 법장현수(法藏賢首) 스님의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 보면,

용수보살(龍樹菩薩) 용궁(龍宮) 가서 대부사의경(大不思議經=화엄경) 보았는데, 상본·중본·하본 3가지 () 있었다.  중에 상본(上本) 십삼천대천세계미진수(十三千大千世界微塵數)게송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이었다 한다.

중본(中本) 49 8800게송 1200()이고, 하본(下本) 10 게송 38품이었다 한다.

용수보살이 상본과 중본은 사바세계 사람들 마음의 힘으로서 능히 가질  없으므로 전하지 않고, 하본(下本) 외어 세상에 전하였고  그것을 간략히  약본(略本) 80 , 60 본이 되었다 한다.

일사천하미진수품(一四天下微塵數品) 미진수(微塵數   없는 무한수)’ ()으로 우주 사이에 벌여 있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 삼라만상(森羅萬象) 전부가  화엄경을 이루고 있으며,  비로자나(毘盧遮那) 전신체(全身體) 우리 개개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말한다.(전강선사 법문 275 참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삼라만상(森羅萬象) 모든 것이 오직 마음으로 되었다’

[참고] 『화엄경(華嚴經) 실차난타(實叉難陀 制譯) 19  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에서 각림보살(覺林菩薩) (). 『대방광불화엄경 강설(19) (여천 무비 강설 | 담앤북스) p133~142 참고.

爾時  覺林菩薩承佛威力  遍觀十方而說頌言

譬如工畵師  分布諸彩色  虛妄取異相  大種無差別  大種中無色  色中無大種  亦不離大種  而有色可得


그때에 각림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시방세계를 두루 관찰하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여러 가지 색을 칠해 가면서 허망하게 여러 모양을 그리지마는 대종(大種 물감의 요소) 차별이 없느니라. 대종 가운데 빛깔이 없고 빛깔 중에 대종이 없지만 그러나 또한 대종을 떠나서 빛깔을 찾을 수도 없느니라.


心中無彩畵  彩畵中無心  然不離於心  有彩畵可得  彼心恒不住  無量難思議  示現一切色  各各不相知  譬如工畵師  不能知自心  而由心故畵  諸法性如是  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五蘊悉從生  無法而不造


마음속에 그림이 없고 그림 속에 마음이 없지만 그러나 마음을 떠나서 그림을 찾을  없도다.  마음 항상 머물지 않고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일체 빛깔을 나타내 보이지만 각각 서로 알지 못하도다.

비유하자면 마치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자기의 마음을 알지 못하지만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나니 모든 법의 성품도 그러하도다. 마음은 화가와 같아서 모든 세간을 그려 내나니 오온이 마음 따라 생기어서 무슨 법이나  짓는  없도다.



如心佛亦爾  如佛衆生然  應知佛與心  體性皆無盡  若人知心行  普造諸世間  是人則見佛  了佛眞實性  心不住於身  身亦不住心  而能作佛事  自在未曾有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마음과 같이 부처도 또한 그러하고 부처와 같이 중생도 그러하니 응당히 알라. 부처나 마음이나  성품 모두 다함이 없도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의 작용이 모든 세간을  짓는 줄을 안다면  사람은 부처를 보아 부처의  성품 알게 되리라.

마음이 몸에 머물지 않고 몸도 또한 마음에 머물지 않지만 모든 불사(佛事) 능히 지어 자재함이 미증유(未曾有)하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삼세(三世) 일체 부처님을 알고자 하면 마땅히 법계의 본바탕[] 일체가 오직 마음으로  줄을 관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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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싼또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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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인가2017.07.02 22:15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14분 36초)

[법문] 송담스님(No.026)—76 동지법문 (76.12.22)


‘참선(參禪)을  나가는 데에는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떠한 것이 바른 스승이냐? 실오실참(實悟實參), 실답게 닦아 가지고 실다웁게 깨달라서 바른 선지식(善知識)의 인가(印可)를 맞아야 한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목구녕에서 선지피가 덩어리 덩어리 맺혀서 쏟아지도록, 그렇게 말로써  형언할 수 없는 그러한 고행정진을 하셔 가지고, 급기야 확철대오(廓徹大悟)를 가지고서 한국의 6대선지식으로부터서 법문답(法問答)을 해 가지고 인가를 받으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받으신 인가는 오냐, 옳게 알았다. 니가 견성을 했다 이렇게 인가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과 법문답을  가지고  선지식이  조실 스님의 깨달은 증득한  힘과 역량이 너무나도 투철하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어떠한 선지식도  조실 스님의  밝고 투철한  깨달은 경지에 대해서 무릎을 꿇지 않코서는 배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옳다, 니가 옳다하고 말씀하실 겨를 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다섯 분의  선지식의 인가를 받어 가지고 마지막에 만공 큰스님한테  가지고 만공 큰스님과 법거량(法擧)을 하셨는데, 만공 스님께서는 중요한 꼬타리를 ! 붙잡으셔 가지고 조실 스님을 인정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처음에는 조실 스님께서는 만공 스님께서 나를 떠볼라고, 시험해 볼라고 이러시지 않나?하고 처음에는 범연(泛然) 그렇게 생각하셨다가 두고 두고 인정(認定)을  하시고, 놀리시고, 무시를 하시고, 그러시기 때문에,

‘선지식이 학인(學人)을 그러실 수는 없다.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기 때문에 저러신 것이지, 어찌 선지식으로서 깨달은 학인이 온다면 분명히 깨달은 사람을 깨달았다고 하실 일이지, 절대로 거짓말하시거나, 후배를 농락하실 리는 없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  생각을 돌이켜 가지고, 철봉대(鐵棒臺)를 붙잡고 날새기 공부를 하시면서 그때 하신 화두가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였습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를 철봉을 붙잡고 밤이슬을 맞으면서 며칠을 두고 용맹정진을  끝에 확철대오를 하셨던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철봉을 잡고, 남이야 개천가에서 히히닥거리고 장난을 하거나, 잡담을 하거나 그런 것도  불구하고, 어떻게 발심(發心)을 하고 분(憤)이 나서 철봉대를 붙잡고 정진을 하신 가운데,

개천에서 무무(無無)도 역무(亦無)다 어떤 도반들이 그런 소리를 지르면서, 가재를 잡으면서 모다 그런 소리가 들려온 것을 보고서 그때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즉시에 무슨 공안(公案)의 도리가 나타났냐 하면은 마조(馬祖)의 원상(圓相),

마조 스님이 둥그러미를 땅에다가 그려 놓고서  안에 들어가도 치고,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친다 이렇게 어떠한 스님에게  법을 물었습니다.  스님이  둥그러미 안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은 가지고 계시던 주장자로  스님을  방맹이 쳤습니다.

 맞은 스님이  말이, 조주 스님을 ! 쳐다보면서 스님은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조주 스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고,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공안에 대해서 조실 스님께서는 여지없이 간파(看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분이 솟구쳐 나고, 어떻게 말로써 표현할  없는 분이 나던지,

그길로조실로 계시는 만공 스님께서는 이미 보월 스님에게 조실 자리를 물려주시고 당신께서는 금선대(金仙臺)에 은퇴하고 계실 때입니다. 증사(證師)로 그렇게 금선대에 계시고, 조실에는  만공 스님의 수제자이신 보월 스님께서 조실로 계실 ,


 조실방에 뛰어 들어가서 보월 조실 스님 앞에다가 원상 떠억 그려 놓고  안에 들어가도 치고,  안에 들어가지  해도 친다고 하셨으니,  말씀 일러주십시오 보월 스님께서  원상을 손으로 이리 뭉개버리셨습니다.

그러니까 ! 천하 선지식으로서 학자를, 이렇게 천하 학자를 죽일 수가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조실에 앉어 계실 수가 있습니까?” 고함을 지르면서 그러니까 , 이 사람 보소,  사람 봐!” 그리고 어리둥절하실 ,


그길로 금선대에 쫓아 내려가서 만공 스님 앞에 가서 제가 조실 스님을 매장(埋葬) 하고 왔습니다! 세상에 조실에 앉아서 천하 학인의 눈을 그렇게 멀릴 수가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셨죠.


그렇게 해서 전강 조실 스님은 만공 스님께 정식으로 다시 그렇게 해서 어디  안에 일러봐라 그러니까 큰스님께는  이르겠습니다.”


 옆에 용담 스님이라고 하는, 여러분이 지금 선가귀감(禪家龜鑑) 번역한 것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처음에  용담 스님께서  선가귀감을 번역을 하신 것입니다. 그걸 번역을 했던 것을 근본으로 해서 법정 스님이 새로 교정을  가지고 내놓은 것이 요새 발간해 나오는 선가귀감입니다.

 처음에 번역했던  용담 스님이 전강 조실 스님과는 아주 다정한 도반이었었습니다.


마치  용담 스님이 옆에 계시는데, 그러면 용담, 자네가 묻소 그래서 용담 스님이 원상을 떠억 그려 놓고서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노라.” 그러니까는 전강 조실 스님께서 거기서 터억 일르셨습니다. 이것은 설파(說破)가 되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는 말씀을 하시지  했습니다.



그리고  밖에  처음에 만공 스님한테 가서 절을 하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전강 스님께서)주먹을 터억 내미니까는 허어, 습기를 면치 못했구나. 아니다!  견성이 아니다. 견성이 아니다 이렇게 부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스님, 그때  법을 다시 물어 주십시요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허허허,  보게


이렇게 해서 그날부터서는 모든 공안에 대해서 정식으로 탁마(琢磨) 허락을 하셔 가지고, 천칠백 공안 낱낱이 만공 스님과 서로 탁마를 해 가지고,

결국은 만공 스님께서 허허, 학자(學者)가 선지식 똥구녁에 들어가기도 하고, 선지식이 학자 똥구녁에도 들어간 것일세 이렇게 해서 모든 탁마를  마치시고,


그래 가지고 조실 스님을 하직을 하고  팔도에 자유자재로 다니시면서 오후보림(悟後保任) 해 가지고, 말년에 이르러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말년 회향을 우리를 지도하시면서 마지막 열반하신 그날까지 법상에 올라가셔서 설법을  주시고 열반(涅槃) 드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실오실참(實悟實參)을  가지고 바른 선지식의 인가를 맞아야,  선지식이라야 비로소 우리가 목숨 바쳐 의지해서 공부에, 참선에 지도를 받을  있는 바른 스승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지식은, 우리의 도를 지도해 주실 선지식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목수(木手)에다가 비교할 수가 있고, 도를 배우는 학자는 재목(材木)에다가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재목도 좋은데다가 좋은 훌륭한 목수를 만나야 훌륭한 집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물건을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목이 좋고 훌륭한 재목이라 하더라도 목수를서투르고, 경솔하고, 지혜롭지 못한 서투른 목수를 만나 놓으면은  아까운 재목을 버리고 말아 버리는 것입니다. 설사  재목이 조금  좋은 재목이라 하더라도 훌륭한 목수를 만나 놓으면은 상당한 효과를 나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기(根機)가 수승하지를 못해서 중근기, 하근기라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 가지고 올바르게 지도를 받고, 그래서 올바르게 수행을 한다고 하면은 누구나  자기에게 있는 참나’를 깨달라서 생사해탈을  수가 있는 것이지마는,

우리 근기가 비교적 순수하고, 근기가 수승하다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자기는 영원히 깨닫기커녕은 삿된 도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바른 스승은  깨달은 바가 분명하면 되는 것입니다.


공자님 말씀에 소인(小人)에 유재자다(有才者多)이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인놈 가운데 재주있는 놈이 많느니라 이런 말씀을 공자님이 하셨습니다.

재주가 있어 가지고, 말 잘하고 똑똑하고, 영리하고 수단 좋고, 이러한 사람이 소인놈 가운데에소인(小人)은 유교에서는 군자(君子)의 상대말로 사용합니다. ‘군자가 아닌 소인 속에 재주있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공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불가(佛家)에도 세지총명(世智聰明),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가 있고, 총명한 사람은  도에 들어오기가 어렵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바른 선지식을 만나냐, 못 만나느냐, 만나 가지고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내가 나를 깨달라서 생사해탈하는 바른 길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판가름이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받어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선지식을 만나 가지고도 바로 믿지 못하고 갈팡질팡, 그렁저렁 하다가 아까운 세월  보내고, 마지막 죽어 갈 때에 천만 번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155~294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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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실참실오(實參實悟)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깨달음. () 참선(參禪) 또는 참구(參究). 실참(實參) 공안(화두)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다만   맥힌 의심으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고, 의단이 더이상 간절(懇切)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순일무잡(純一無雜) 수가 없어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그놈을 타파(打破) 때에 확철대오(廓徹大悟) 하는 것이다.


[참고]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서답(書答) 답노상서(答盧尙書 노상서에게 답함)’에서.

所以古德云 路途之樂 終未到家 見解入微 不名見道 參須實參 悟須實悟 閰羅大王 怕多語 若要實參實悟 須是從前坐禪處得底 經敎上得底 古人語錄上得底 宗師口頭下得底 有滋味寶悟處 一時掃向他方世界 好字細看


그러므로  스님은 길의 즐거움은 종내 집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보고 알아 미세한  들어가는 것은 도를 보았다   없습니다. 참구는 진실한 참구이어야 하고 깨달음도 진실한 깨달음이어야 합니다. 염라대왕은 많은 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알차게 참구하여 진실로 깨달고자 하면, 종전에 좌선(坐禪)해서 얻은 것과 경전에서 얻은 것과 고인의 어록에서 얻은 것과 종사의 입을 통해 얻은  등에서 자미(滋味)있고 소중히 여긴 깨달았던 경계를, 한꺼번에 다른 세계에 쓸어 버리고 자세하게 살펴야 좋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참고]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상권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에서.

若也眞實參學者 參須實參 悟須實悟 始得 且作麽生是實參實悟耶 於二六時中 四威儀內 以生死大事爲念 離心意識 參出凡聖路 學以無心無爲 綿密養之 常常無念 常常不昧 了無依倚 到冥然地 自然合道 不見古人云 無心方見本來人


만약 진실한 참학자(參學者)라면 참구는 반드시 진실한 참구이어야 하고 깨달음도 진실한 깨달음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한 참구이며 진실한 깨달음인가?

하루 열두 시간과 사위의(四威儀) 가운데서 생사의  일을 생각하되, 심의식(心意識) 떠나 참구하여 범성(凡聖) 길을 벗어나고 무심(無心) 무위(無爲) 배우고 그것을 면밀히 길러 언제나 무념(無念)하고 항상 어둡지 않아, 마침내 기댈 곳이  사라지고 명연(冥然) 자리에 이르면 자연히 도에 합할 것이다. 고인이 무심(無心)이어야 비로소 본래인(本來人) 본다라는 말을 모르는가?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戊戌) 11 16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어젯밤 달빛은 ()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없네.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78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 아니니라.  ()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낙양에는 추색(秋色) 많고  강송(江松) 백운(白雲)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甲寅) 음력 12 2,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선지피 ; ①선지. 짐승을 잡아 죽여서 받은 . 식어서 굳어 덩어리진 피를 말한다. ②다쳐서 선지처럼 쏟아져 나오는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법문답(法問答)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객(禪客) 사이에 주고받는 () 대한 문답.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신미년) 3 7 출생하였다. 1884(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 하면서 공부하기란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 가서 노전(爐殿)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을미년) 7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홀연히 벽이 ()하고 일원상(一圓相)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공산의 이기(理氣) 고금 밖이요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 , 1896(병신년) 7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 하니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화두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정진하던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 되었다.

31 (1901)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 (1904 7 15)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구름달 시냇물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叟山禪子)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히 무문인(無文印) 분부하노니,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 살았구나.


1905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 중창하고 선풍(禪風)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병술년) 10 20일에 목욕 단좌(端坐)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꼬타리 ; ‘꼬투리(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실마리)’ 사투리.

*범연(泛然)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학인(學人) ;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 수도(修道) 성자.  수행승. () 닦는 수행승.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철봉대(鐵棒臺) ; 체육 도구의 하나. 두 기둥 사이에 일정한 높이로 쇠막대를 평행하게 걸쳐 놓은 기구.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날새기 ; 저녁, 밤을 지나 날이 밝아  때까지 자지 않는 .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 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분(憤/忿)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5 165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스님을   후려치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 1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2분 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