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위법망구2024. 1. 21. 09:24

위법망구(전강선사 No.011)—제산 스님 역사 | 경허 스님에 대한 제산 스님의 신심. 발심 | (게송)曠劫障道 睡魔莫大.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29분 29초)


[법문] 전강선사(No.011)—전강선사 일대기 제4호(경술1970년 12월 3일 새벽.음) (전011)

내 과거 공부헐 때, 여그저그 댕기면서 선지식(善知識) 친견허는 그때 그 행각(行脚)헐 때 그 실기(實記)를 좀 말해 달락 해서 시방 설허는 도중에, 혜월 스님을 모시고 와서 김천 직지사에다가 조실 스님을 모시고 크게 선방을 한번 해 볼라고 하다가, 모시고 와 놓으니 또 직지사에는 제산(霽山) 큰스님이 계시고.
그 제산 큰스님이 계셨지마는, 제산 큰스님은 그 계행(戒行)이 참 청정허시고—한국에 계행으로 제일 청정헌 어른이 누구냐? 김제산 스님이여.

여기에 인자 제산 스님 역사(歷史) 잠깐 좀 말씀을 해야 허겄구만.

제산 스님도 발심(發心)허시기 전에는 사판(事判)중으로서, 그때 사판중이 있거든. 사판중으로써서 술도 자시고 어육주초(魚肉酒草)를 그저 마음대로 자시고. 사판중 노릇은 그때 누룩이나 디뎌서 팔고, 그것이 사판중들이여. 참선법은 영 모르고. 없었으니까 그때도. 그래 계시다가 사판중 노릇허는 법밖에는 모르제.
합천 해인사 현당(玄堂)에서 사판중 노릇을 허고 있는데 그때에 나이, 제산 스님 나이 한 30살 잡솼는데, 뜻밖에 ‘경허(鏡虛) 스님이 오셨다’ 소문을 들었거든. ‘경허 스님은 아주 참, 한국 도인(道人)으로는 다시 없다’ 소문이 났는데.

‘그러면 경허 큰스님을 좀 가 뵈야 허겄다’고, 현당에 사판중으로 그래 있다가는 그 마음 난 것도 이상하지. 그런 도인 한번 뵈야겄다고 척 올라갔다.
올라가 보니, 머리는 숭났어 그 어른 머리가. 내 방에 그 경허 스님 사진 있제. 머리도 숭나고, 얼굴은 여가 덥텁헌 양반이 조실(祖室)에 척 와 앉았어.
처억 보니까 눈이 다른 이보담도 더 쭉 째지고 아주 그런 어른이 앉었는디, 탁자(卓子)의 부처님보담도 훨씬 더 숭배심이 나.

탁자의 부처님은 의호(宜乎)이 아침 저녁에 예불(禮佛)하고, 이렇게 그저 중이 왔으면은 그저 등상(等像)께 예불한갑다 뿐인디. 아, 이 경허 스님은 척 보니 산 부처님이시다. 어떻게 숭배심이 나는지, 굉장혀 그 마음이 믿어지기를. 이렇게 마음이 믿어져야사 도는 닦는 것이지. 믿음이 없으면 된 법이 없어.
그만 그 경허 스님을 보고는 얼마나 믿어졌던지—뭐, 경허 스님도 똥싸고 오좀 싸고 밥 먹고, 오히려 저 나쁜 행은 보통 사람보담 더 많이 가져 계시네. 그런디 그것이 도모지 눈앞에 하나 안 보이고, 어떻게 믿어지는지 한량없이 믿어져.

앞에 가서 참, 망구(忘軀) 배(拜)를 허고. 여지없이 가서 절을 허고.
‘내가 중 되기 전에는 물론 아무것도 몰랐지마는, 중이 되아 가지고도 사판중이 되아 가지고 삼십이 넘도록까지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모르고, 내가 나 찾는 법을 모르고 이렇게도 망칙허게 망허게 살아 나왔단 말이냐. 날마당 술이나 퍼먹고, 날마당 그저 누룩 장사나 중이 허고, 이따구 짓만 허고 지내고 있단 말이냐. 탁! 믿어 가지고 경허 큰스님께 도 배워 가지고 도를 닦아야겄다’
결심을 딱! 하고 나가서 여지없는 위법(爲法), 법을 위해서 내 몸뚱이를 갖다 바쳤다 그 말이여.

절을 척 허니깐, “하구래(何求來)냐. 네가 무엇을 구해서 왔느냐?” 물으신다 그 말이여.
“큰스님께 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무슨 법을 배우러 왔단 말이냐?”
“참선, 참선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허니께.

“허, 그래야. 좋은 말이다. 참선법을 배울라면은, 참선법 배울 학자가 첫번에 인자 법을 배울라면은 이물표신(以物標信)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물건으로써 신(信)을 표해야 하는디. 내 좋아허는 걸 네가 해 주어야 할 것 아니냐.
내가 다른 걸 좋아허는 것 아니다. 첫째, 내가 술을 그렇게 좋아헌다. 평생에 술을 내가 좋아해서 술을 끊지 못허고, 또 술 먹을 때는 주효(酒肴)라니, 술에는 안주가 있어야 하는 법이니, 안주허고 술허고 네가 사 오너라. 내가 술을 한잔 먹고 네가 사 온 안주를 내가 먹고, 술 한잔 먹고 나서 너한테 참선 화두를 일러주마.
화두 타는 법이 그렇게 쉬워서는 못쓰느니라. 네가 값이 있이 타야 허는 법이니, 네가 네 신심(信心)으로써 술허고 그 닭 한 마리, 내가 닭고기를 좋아허니 닭 한 마리 삶어서 가지고 오너라”

아, 그 퇴설당(堆雪堂) 그 조실에 앉어 계셔서 바로 거가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그 퇴설당인데, 그 퇴설당에 조실에 앉어 계셔서 그런다.
내가 지금 녹음해 넣는 법문인데, 녹음해 넣는 법문을 위조로 혀? 그거 아녀. 똑 사실이여. 제산 스님 실기(實記)여.

한 말씀 듣고는 그대로 나왔어.
‘도인이라고 허는 이가, 경허 스님 도인이라고 나는 도인인 줄만 알았더니 조실(祖室)에 앉어서 술 사오고, 살생—닭은 살생을 해야 하니, 닭 모가지 삐틀쳐 죽여서 내가 그놈을 삶아가지고 가지고 와?’ 그러헌 마음이 나기가 처꺽 쉬울 것인디, 없어! 그런 마음이 어디가 있어.

응, 조꼼도 그런 마음이 없고, 그 위법망구(爲法忘軀) 속에서 그만 그대로 바로 내려가서, 각사 십 리(十里)나 내려가서—당신이 뭐 어떻게 손수 닭이야 잡을 수가 있나?
그러고 그때 또 사판중으로 계시니까, 그런 것 뭐 닭 모가지 짤르고 이런 거 뭐 죄이니 뭣이니도 없지마는 내려가서, 각사라는 데 내려가서 그 어디 아는 집에, 다 절에 그 십 리 동구(洞口)에 있으니깐 아는 집이 있제. 내려가서.

“나 닭 한 마리 잡아서 수증기로 잘 삶아서 줄 수 없겠느냐?”
“왜 못 해 드려요. 해 드리지요” 의호이 해 주지. 뭐, 안 해주어? 돈 받고 하는디.

그놈을 삶고, 홍류동 찹쌀막걸리 그 밥튀가 동동 뜬 놈 잘해서 그 청주로 떠놓은 홍류동 찹쌀막걸리, 옌장 술 잘 먹는 이는 비우 동(動)허겄네, 술 먹고 싶어서. 나도 동허는구만, 그 말을 헌께.

허! 아, 나도 글쎄 대구서 그 칠곡 넘어가는 그 잿말랑에 올라가다가 목은 컬컬헌데 아, 나이 또 그때 나도 스물 몇 살 먹었을 때니 술도 잘 먹을 때고 헌디. 아, 그 노인이 찹쌀술을 해놨다고 “한잔 잡수고 가시오” 그려. “아, 그래요!” 그것 잘 먹겄당, 오목식기로 하나 뚝 떠 주데.
아, 이놈의 술을 먹어 보니 입이 짝짝 들어붙으면서 참, 맛이라는 건 그 위에 더헐 수 없네. 찹쌀막걸리 그놈 잘되아 놓으면 맛 좋거든, 옛날 누룩으로. 지금은 그런 것 없구만. 암만 정종 그 같은 것 암만 좋아도 소용없구만.
한 독식기를 먹었네. 처 철렁, 기분이 좋고 하나도 취기는 없고. 또 한 접시를 한 오목식기를 먹었네. 둘 먹었제. 아, 그런게 또 인자 참 더 먹고 싶네. 셋을 먹었네, 큰 놈! 그 자리에 앉어서 다섯을 먹었어, 오목식기로. 그래도 아무 일 없어.

다섯을 척 먹고서는 그 재를 넘어서 도더기재를 올라가는데, 그 재 밑에 까장은 알았어. 온 줄 알았어. 재 밑에 와서는 어떻게 된지를 몰라. 그 뒤에라도. 아, 그랬는데 그도 어떻게 찾아갔든지 넘의 묏등을 찾아갔어. 묏등! 나는 평생에 안 잊히는구만. 묏등에 올라...

참, 별놈의 역사를 내가 내 입으로 다 말허네. 이래야사 그게 내가 지은 죄가 화반탁출(和盤托出)이 되제. 이런 청정 대중에 못 떨어 내놓고 어따 떨어 내놓을 것인가.
감추면 그 죄가 되고, 탁! 떨어 내버리면은 오히려 죄가, 좀 지은 죄를 받기야 받지마는 발로참회(發露懺悔)가 되아. 내가 그래서 이렇게 그 문둥이 지랄 같은 짓헌 걸 내가 다 까바쳐 놓는구만. 대중에 다 내가 다 까바쳐.

남의 묏등에 들어가서는, 묏등 밑에 가서 잤단 말이여. 그냥 꺼꾸러져 몰라 버렸어. 자다가 보니 하늘에 별이 총총 나고 그 산은 어떻게 험악헌 그 대구 칠곡, 그 산 모도 산천 험악헌 디는 그 도덕산 그 다 알지. 정공, 다 환히 알지, 몰라?
그 산은 뒷산은 칙칙헌디, 호랭이란 놈이 거그 살다가 밤낮 마을에 내려와서 개를 가져가고 헌 그런 놈의 디여. 아, 그런 놈의 디인디 거가서 자도 호랭이란 놈은 안 왔더구만. 거 실컷 자고 나서 총총헌디 아, 밤이 얼마나 되았는지 시계도 나 그때 없었고.

아, 헐 수 할 수 없어, 추워서 살 수가.... 술이 인자 깨든 거여. 그래 그 마을을 찾아 들어가니까 깜깜 모도 불 다 꺼번지고, 전기도 없는 딘데 아, 문에 가서 뭐 누구를 찾으니 누가 나오나?
그 밤이 그렇게 한 두 시나 세 시나 되았는가 어쨌는가. 그래 그만 ‘동네 사람, 사람 좀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아, 누가 듣고 ‘웬 사람이냐?’고 나와서,
‘아 여보시오. 내가 술을 먹고 그만 어디 가다 취해서 자고 아, 인자사 내가 일어나니 추워 죽겠어서 인가를 찾아온디 날 좀 구해 주시오. 추워 죽겄오’
‘아! 그러냐’고, 문을 열고 뜨거운 방으로 나를 안내해서 들어가서 자고 아침 거그서 얻어먹고 그 참 나온 일이 있었어.

그놈의 찹쌀술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홍류동 술맛 좋다고 그 말헐라다가 여까지 했구만. 고놈은 또 인자 거그서 그만두고.


아, 그래 제산 큰스님도 홍류동을 떡 올라오셔서 그 찹쌀막걸리를 잘 그냥 뜬 놈을 사르르 받쳐 가지고는 병에다 넣어 가지고 수증기로 삶은 닭 한 마리하고... 그 알겠제, 들어서 알겠제 잉. 아까 있는 디를 알아야제.
그래 가지고 올라와서 정성껏 바쳤다. 누구한테 바쳐? 경허 큰스님한테 바쳤다 그 말이여. 퇴설당 옆에 있는 조실방에 갖다 바치고는 참으로 절을 기가 맥히게 헌 뒤에 “잡솨 주십소사” 허고는, "그러제"

척 큰 대접에 하나 쭈욱 잡숫더니, 닭 그놈 그 자리에서 떠억 그 뼉다구 추켜들고 쭉쭉 “거, 잘 삶았구나. 맛이 있다” 그러시고는.
아, 그저 젊을 때시고 뭐 뼉다구 그놈 막 들고는 그저 막 그저 깨문 놈도 있고 뼉다구 뱉은 놈도 있고. 척 추려서 척 잡수고는 손수건 입 썩 닦으시고. 그까짓 닭 한 마리 그냥 얼른 잡솨 버린다 말이여.

이런 법문 듣고는 안 자올으셔야 헐턴디, 자꾸 눈을 그저 알로 감는다. 겉으로는 참선헌 체허지만 속으로는 잠자고 계신다.
내가 다 안디. 눈을 깜아도 설법 듣는 거, 설법 안 듣고 자는 거, 내 다 안단 말씀이여. 그 뭔 참말로 내가 아니께 안닥 하제 뭐.

졸지 말어야 돼요. 법문같이 소중헌 게 없거늘, 참선허는 학자가 법문 들을 때 자는 법이 어디 있다? 그건 없어.
내가 여태까지 법문 들을 때 자꾸 슬며시 눈 감고 자는 것을 보고도 암말도 안 했지마는, 인자는 뭐 금년 동(冬) 산림이, 삼동 산림이 얼마 안 남았는디 가만두어 되야? 못 자게 해야 하고, 좀 그렇게 조으는 것을 내가 좀 꼬쟁이로 푹푹 쑤셔 줘야지, 그냥 둘 수가 없어.

자지 마시오. 누구를 위해서 허는 법문인디 자냐 그 말이여. 그만큼 잤으면 무던허지.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나무~아미타불~

광겁장도(曠劫障道)에는 수마(睡魔)가 막대(莫大)니라. 너룬 겁으로 오면서 여태까장 도(道)를 못 닦게 허고 여태까장 도문(道門)에 들어오지 못헌 원인이 어디 있느냐? 잠, 그놈이 제일 큰 놈이다.
여러 가지 나를 방해허고, 나를 도(道) 못 닦게 헌 것이 많이 있다마는 잠보담 더 큰 놈이 없구나. 잠 마구니란 놈 따문에 이렇게 도를 이루지 못허고, 도를 닦지 못허고 여태까장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그 못된 잠 그놈! 화두를 한번 추켜들면은—화두는 참, 금강보검(金剛寶劍)같은 것인디, 금강같은 좋은 쇠로써 보검(寶劍)을 맨든 고런 칼같은 것인디 어디가 그놈 잠이, 그놈이 어디가 제가 도를 못 닦게 마구니 행동을 헐 것인가? 허니 그 잠을 좀...

법문 들을 때도 또 자? 법문이라는 것은 언하(言下)에 대오(大悟)가 있는 것인디.
이런 말이 대꼬쟁이로 모두 쑤신 것이여. 잠 그놈 못 자게, 못 자올게 쑤셔 드린 거 아니여?


그래 술허고 닭고기허고 잡순 후에 그래 설법을 해 주셔. 그 참, 그 조실에서 그렇게 막 아무 거침없이 잡순다. 잡수고는 그 자리에서 ‘오냐!’
그 벌써 거까장 가 술 사 오고 닭까장 가서 맨들어 올 때에는 그 사람의 신심이 여간 아니여. 그 신심이. 발써 그 신심을 봤거든. 그만헌 신심 가운데에서 일러주는 것이여. 그래야사 도 배우는...

똑 그래 내가 뭔 술 사 오고 뭐 닭 삶아 오라고 요런 소리헌 것 같여? 내가 그렇게 삶아 오고 술 받아 오라는 게 아니라, 그랬다 그 말씀인데, 또 갖다가 나를 갖다 손그락질 허면서 ‘술 사 오고 닭 잡아 오라고 저러는구만’ 그러지 말란 말씀이여. 그렇게 거다가 찢어서 해필 왈 갖다 내 허물을 둘러씌우지 말란 말씀이여.

잡숫고는 화두 설법을 해 주시는데, 화두를 타 가지고 나오는디, 아무 흔적 없는 것이요 말 한마디언만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니라” 일러주셨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를 물으니까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으니, ‘뜰 앞에 잣냉기, 어째서 뜰 앞에 잣냉기라고 했는고?’ 이놈을 해라” 해서, 그 화두를 받아 가지고 나오는데, 어떻게 걸음을 걸어서 나온지를 몰라. 어떻게 기가 맥히고 좋던지! ‘이런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를 탔다’

화두 타 가지고 그날부텀 정전백수자 화두를 허는데, 뒷방에서 스님을 모시고 살림살이허는 중인데, 살림살이고 무엇이고 하나 허다가 눈앞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인자 그때부텀은 ‘이 몸은 죽는구나. 내 이 몸은 사형선고를 받은 아주 기한 딱 정해 놓은 몸뚱이다. 죽을 사형 무대밖에는 없는 이 몸뚱이! 이놈 사형선고는 받았다마는 오늘인지 내일인지 시간이나 좀 알았으면 쓰겄는디, 이놈의 사형선고 기간이라는 것은 알 수가 없구나. 내가 서른 한 살 먹어 갈라는가 원, 사형을 집행해 갈라는가, 스물 둘에 갈라는가, 이건 원 당최 알 수가 있나. 허니 참, 시각이 급허고, 참말로 내가 이 참선을 해서 생사 없는 대도를 깨달라 얻지 못허고 내가 이 목숨을 내버리고 가다니. 이 목숨 있을 적에 해야겄구나!’

그만 그대로 발심(發心)이 척 되는디, 아무것도 안 보인다.
뭣이 보이여?

그렇게 그 참, 사판중으로 들어와서 여러 가지 돈도 많이 벌라고 남 모도 이자도 놓기도 허고, 사판중은 그렇거든. 누룩 디뎌서 모도 팔아 가지고는 사방 모도 논 살라고 계획해 놓았던 그런 것 저런 것 받을 것이 꽉 찼고. 허지마는 하나도—또 그 모도 집안이 부자 집안에 중이 되았으니까—하나도 정리고 무엇이고, 뭐 요리조리 모도 써 놓았던 계약서 받을 거 이거 불 탁! 질러 쏵 질러버리고는.

상좌 하나 들여서, 들인 것도 뭣도 없지마는 어른이 그렇게 참 노래(老來)에 또 시봉허다 나오니까 어디로 이리저리 의탁해 번지고 그러고는 선방에 척 나왔습니다. 경허 큰스님한테 화두 하나 타 가지고 다만 화두만 묶어 짊어지고는 나왔지. 아무것도 없고.
그대로 선방에 앉어서 지독허게 공부를 허셨습니다. 제산 큰스님께서 공부 한번 험서 그날부텀 그렇게 술도 자시고 헌 것 쏵 끊어 번지고는, 계행이 청정허기를 그렇게 청정헌 어른이 없고, 수행이 당최 참선해서 한번도 밥 먹을 사이도 없이 화두를 다루어 나간 어른은 그 어른밖에 없어. 기차제.

그러지마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서 그 인가(印可)를 얻은 데가 없어.
인가를 누구한테 얻었어야제. 인자 제산 스님은 그저 그렇게 도만 잘 닦아 오셨제, 인가 얻은 데는 없었으니까 학자(學者)는 제접(提接)을 못 혀.
아, 보통 참선허는 학자야 왜 제접 못 헐까마는, 계행이 청정허고 하도 거룩허시니까 인자 보통 학자들은 가 많이 지내야. 뭐 보통 지내는 게 아니지마는, 대도를 통헌 분은 제접을 못 혀.

누가 “하암” 그랬어? 내 그런 ‘하암’은 참, 법상(法床)에서 듣기 싫다.
헤헤, 거 세상에 “하암” 그려? 그 어디서 나와?

내 법문도 “하암” 허면서 한번 허까?
그런 시원찮은 행동은 그만 좀 톡톡히 해버리지, 왜 그렇게 시지부지헐까?

그래도 그런 ‘하암’ 한번이 대단히 좋은 것이여.
여러분이 그 ‘하암’ 한번 헌 바람에 내가 이렇게 허니까 그 ‘하암’ 헌 이는 부끄러울 것이지마는 한번 해 논 바람에 내가 그놈을 가지고 그냥 그만 한번 광고를 헌 바람에 여러 모인 대중들이 듣고는 정신채리거든. 옆에서 ‘하암’을 헐 이도 안 허거든. ‘하암’ 헐 이도 안 혀. 그러니 그 이익을 많이 준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니 부끄럽게 생각허시지 마시오.

법상에서 조실 스님이 법문허다가 그런 걸 한번 알려 주는 바람에 그게 정절(程節)에 들어가는 것이여. 반다시 인자 이담에는 그러지 안 헐 것이고. 그러니 그런 좋은, 그 좋은 설법이제.


그래 가지고는 제산 큰스님이 그렇게 깨끗허게 청정허게 오래오래 화두를 조금도 밥 먹을 사이도 틈이 없이 공부를 잘허셨기 따문에 ‘제산스님’ 헌 이름이 나서 학자는 많이 그 어른 밑에 지낸다 그 말이여. 그때는 더더군다나 그리 선지식(善知識)이 귀혔고.

그래 가지고는 합천 해인사에서 하도 오래 지내—경허 큰스님은 인자 거그서 좀 계시다가, 조실에 계시다가 딴 디로 가셨고—합천 해인사에 들어오셔서 오래오래 계시니깐 그대로 제산 스님이 합천 해인사 조실 스님으로 계셔. 뭐 학자들 뭐 그렇게 눈을 띄워 주든 못허는 그러헌 스님이시지마는 그래도 원청 수행이 참 존중허시니까 조실 스님으로 계시는데.(15분24초~44분5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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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실기(實記 열매·내용·행적 실/기록할 기) ; 사실(事實)을 있는 그대로 적은 기록(記錄).
*계행(戒行) ; ①계(戒)를 지켜 수행하는 것.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것. ②계율과 도덕.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사판중(事判- 일 사/판단·맡을 판) ; 사판승(事判僧). 절의 모든 재물과 사무를 맡아서 처리하는 스님.
*어육주초(魚肉酒草) ; 어육(魚肉)은 생선과 짐승의 살코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고, 주초(酒草)는 술과 담배.
*누룩 ; 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 밀이나 찐 콩 따위를 굵게 갈아 반죽하여 덩이를 만들어 적당한 온도에 띄워서 누룩곰팡이를 번식시켜 만든다.
*디디다 ; ①발을 올려놓고 서거나, 발로 내리누르다. ②누룩(술을 빚는 데 쓰는 발효제)이나 메주의 반죽을 보자기에 싸서 발로 밟아 덩어리를 짓다. ③어려운 상황을 견디어 내거나 이겨 내다.
*경허선사(鏡虛禪師) ; (1849-1912) 성(姓)은 송(宋)씨이고 법명은 성우(惺牛), 이름은 동욱(東旭)이요 호(號)는 경허(鏡虛)이며 여산(礪山) 사람이다.
헌종 15년 기유(己酉)년 8월 24일 전주 자동리(子東里)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송두옥(宋斗玉)이요 어머니는 밀양(密陽) 박(朴)씨였다. 태어난 뒤 사흘동안 울지 않다가 목욕을 시키자 아기 소리를 내니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겼다.

일찌기 아버지를 여의고 9세에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경기도 광주군 청계사(淸溪寺)에 가서 계허(桂虛)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고 계를 받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뜻은 컸으며 비록 고달픈 환경이라도 피곤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이 없이 나무하고 물긷고 밥을 지으며 은사스님을 모셨다.

14세가 되도록 글을 배울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날 한 선비가 절에 와서 여름을 지낼 때에 그 선비가 소일꺼리로 곁에 불러 앉히고 천자문·통사(通史) 등의 글을 가르쳐 보니 눈에 스치면 배우고 듣는대로 외우고 문리를 해석할만큼 크게 진보가 있으니 선비가 크게 감탄하였다.
얼마되지 않아서 은사인 계허스님이 환속(還俗)을 하며 스님의 공부를 크게 성취시키지 못함을 애석히 여겨 편지를 써서 계룡산 동학사 만화화상(萬化和尙)에게 추천하였다. 화상은 그 당대에 큰 강사였다.

만화강백(萬化講伯) 처소에서 일대시교(一代時敎)를 수료하였다. 공부를 하는데 한가하지도 바쁘지도 않게 해도 남보다 열배 백배 앞섰으며 영호(嶺湖)의 강원에 두루 참석하여 학문이 날로 진취되고 널리 내외전(內外典)을 섭렵하여 정통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이름이 팔도에 떨치었다.
23세 때에 대중들의 요청으로 동학사에서 개강(開講)하니 교의(敎意)를 논(論)하매 큰 바다의 파도와 같으니 사방에서 학인들이 몰려왔다.

31세 때 하루는 전날 은사 계허스님이 보살펴 아껴주던 정이 생각나서 한번 찾아뵙고자 대중에게 고하고 길을 떠나게 되었다. 도중에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급히 어느 집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려 하자 주인이 내쫓았다.
그 동네 수십 집을 찾아갔지만 집집마다 다 쫓기를 매우 급히 하며 큰 소리로 꾸짖기를 “지금 이곳에는 전염병(콜레라)이 크게 돌아 걸리기만 하면 서있던 사람도 죽는 판인데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사지(死地)에 들어왔는가!”하였다.
스님이 그 말을 듣자 모골(毛骨)이 송연(竦然)하고 마음이 떨리며 마치 죽음의 벼랑에 다다른 것 같으며, 목숨이 참으로 호흡하는 사이에 있어서 일체 세상 일이 도무지 꿈 밖의 청산 같았다.

이에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되 “금생에 차라리 바보가 될지언정 문자(文字)에 구속되지 않고 조사(祖師)의 가르침을 찾아 삼계(三界)를 벗어나리라”하고 발원을 마치고 평소의 읽은 바 공안(公案)을 생각해보니, 이리저리 의해(義解)로 배우던 습성이 있어서 지해(知解)로 따져지므로 의심으로 참구(參究)할 분(分)이 없으나,
오직 영운선사(靈雲禪師)의 “여사미거 마사도래(驢事未去 馬事到來)—나귀의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닥쳐왔다.”라는 화두(話頭)는 해석도 되지 않고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듯하여 ‘이것이 무슨 도리인가?’하고 참구하였다.

산에 돌아온 뒤에 대중들을 흩어 보내며 말하기를 “그대들은 인연따라 잘들 가게나. 내가 뜻을 두어 원하는 것은 이에 있지 않다네”하고 문을 폐쇄하고 단정히 앉아 전심(專心)으로 참구(參究)하는데, 밤으로 졸리면 송곳으로 허벅지를 찌르고 혹은 칼을 갈아 턱에 괴며 이와같이 3개월을 화두를 들고 정진하였다.

한 사미(沙彌)스님이 옆에서 시중을 드는데 속성(俗姓)은 이(李)씨라, 그의 아버지가 좌선을 여러 해 동안 하여 스스로 깨달은 곳이 있어서 사람들이 다 이처사(李處士)라고 부르는데, 사미의 스승이 마침 그 집에 가서 처사와 이야기를 하는데,
처사가 말하기를 “중이 필경에는 소가 된다”하니까, 그 스님이 말하기를 “중이 되어 마음을 밝히지 못하고 다만 신도의 시주만 받으면 반드시 소가 되어서 그 시주의 은혜를 갚게 된다”고 했다.

처사가 꾸짖어 이르기를 “소위 사문(沙門, 스님)의 대답이 이렇게 도리에 맞지 않습니까”하니까,
그 스님이 이르기를 “나는 선지(禪旨)를 잘 알지 못하여서 그러하오니 어떻게 대답해야 옳습니까?”하니 처사가 이르기를 “어찌 소가 되기는 되어도 콧구멍 뚫을 곳이 없다고 이르지 않는고?”

그 스님이 묵묵히 돌아가서 사미에게 이르기를 “너의 아버지가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하던데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하니,
사미가 말하길 “지금 주실(籌室) 화상이 참선(參禪)을 매우 간절히 하여 잠자는 것도 밥먹는 것도 잊을 지경으로 하고 있으니, 마땅히 이 이치를 알 것이니 사부(師傅)께서는 가서 물으소서”

그 스님이 흔연(欣然)히 가서 절하고 앉아서 이처사(李處士)의 말을 전하는데 ‘소가 콧구멍이 없다(牛無鼻孔處)’는 말에 이르러 화상의 안목(眼目)이 정(定)히 움직여 ‘옛부처 나기전 소식(古佛未生前消息)’이 활연히 앞에 나타나고, 대지가 꺼지고 물질과 나를 함께 잊으니 곧 고인(古人)의 ‘크게 쉬고 쉬는 경지(大休歇之地)’에 도달한지라, 백천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가 당장에 얼음 녹듯 기와가 깨어지듯 하니, 때는 고종 16년 기묘(己卯 1879) 동짓달 보름께였다.

그날 이후 스님은 방에 누워 사람들의 출입을 상관하지 않았다. 만화강사가 들어와서 보아도 또한 누워서 일어나지 않으니 강사가 이르기를 “무엇때문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고?”하니, “일 없는 사람은 본래 이러합니다(無事之人 本來如是)”고 하였다.
스님은 그 이듬해인 경진년 봄에 어머니와 형 태허스님이 계신 연암산 천장암(天藏庵)으로 옮겨 오후보림(悟後保任)하였다.

게송으로 그 깨달아 증득한 곳을 이르기를,
홀문인어무비공(忽聞人語無鼻孔)  돈각삼천시아가(頓覺三千是我家)
유월연암산하로(六月燕巖山下路)  야인무사태평가(野人無事太平歌)

홀연히 콧구멍없다는 말을 듣고, 몰록 삼천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 길에,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천장암에 머물면서 하루는 대중에게 설법할 적에 특히 전등(傳燈)의 연원(淵源)을 밝히는데 스님의 법은 용암화상(龍巖和尙)에게 이었으니 청허(淸虛)의 12세손이 되며 환성(喚惺)의 7세손이 된다 하였다.
그 뒤로 호서(湖西)에 20여 년 간 오래 주석하니 천장암과 서산의 개심사와 부석사, 마곡사·칠갑산 장곡사·아산 봉곡사·금산 태고사·계룡산 갑사·동학사·신원사·속리산 법주사 등지로 왕래하며 때로는 마음을 고요히 묵상하며 때로는 사람을 위하여 설교하면서 호서에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었다.

51세 때 기해년(1899) 가을에 합천 해인사 조실로 초대받고 가니 때마침 칙명으로 대장경을 인출하는 불사와 수선사(修禪社)를 설치하는 사업이 있었는데 대중이 스님을 추대하여 법주로 모셨다.
영축산 통도사·표충사·대승사·동화사·파계사와 금정산 범어사와 호남의 화엄사·실상사·쌍계사·송광사·태안사는 모두 화상께서 유력(遊歷)하던 곳이다. 이로부터 사방에서 선원(禪院)을 다투어 차리고 발심한 납자 또한 구름 일 듯하니, 이 기간처럼 부처님 광명이 다시 빛나 사람의 안목을 열게 함이 이와같이 성(盛)함이 없었다.

임인년(1902) 범어사에서 「선문촬요(禪門撮要)」 편찬 불사. 가을 동래 범어사의 금강암과 마하사 나한 개분불사(改粉佛事) 때 증명법사를 하였다.
56세 때 갑진년(1904) 2월 11일에 천장암에서 만공스님에게 전법게(傳法偈)를 내리고 불조의 혜명을 이어가도록 부촉하였다. 봄에 오대산과 금강산을 거쳐서 안변 석왕사에 이르러 오백나한 개분불사의 증명으로 참여하였다.

그 뒤로 자취를 감추고 스스로 선비 박난주(朴蘭洲), 또는 유발거사(有髮居士) 박진사(朴進士)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차림을 하고 갑산·강계 등지로 내왕하며 시골 서당에서 훈장도 하며 만행두타(萬行頭陀)로써 진흙에도 들고 물에도 들어가서 인연따라 교화하였다.

64세 때 임자년(1912) 4월 25일 갑산(甲山) 웅이방(態耳坊) 도하동(道下洞)에서 입적(入寂)하니 법랍 56세였다. 입적 소식을 듣고 만공(滿空)·혜월(慧月)선사가 곧 그곳에 가서 난덕산(難德山)으로 운구하여 다비(茶毘)를 하고 임종게(臨終偈)를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忘)  부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이 외로이 둥글게 빛나니, 빛이 만상을 삼켰도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엇인고.

만공선사 주재, 한용운 스님의 편찬으로 스님의 법어를 모은 「경허집(鏡虛集)」이 있다.
[참고] 『경허집(鏡虛集)』 (석명정 역 | 극락선원), 『경허법어(鏡虛法語)』 (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편 | 김진성 역 | 인물연구소)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탁자(卓子) ; ①물건을 올려놓기 위하여 책상 모양으로 만든 가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②불상(佛像) 앞에 붙박이로 만들어 두고, 공양물(供養物) · 다기(茶器) 따위를 차려 놓는 상.
*의호(宜乎 마땅할 의/오조사 호) ; 마땅하게.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등상(等像) ; 등상불(等像佛 : 나무, 돌, 흙 등으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만든 부처님).
*오좀 ; ‘오줌’의 옛말.
*여지(餘地)없다 ; (무엇이)달리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주효(酒肴 술 주/안주 효) ; 술과 안주(按酒)를 아울러 이르는 말.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각사 ; 해인사 입구에 있는 마을 이름.
*동구(洞口) ; ①마을로 들어서는 어귀(드나드는 목의 첫머리). ②절로 들어서는 산(山)의 어귀.
*찹쌀막걸리 ; 찹쌀로 빚어서 담근 막걸리.
*옌장 ; 실망의 뜻을 나타낼 때 욕으로 하는 말.
*비우 ; ‘비위(脾胃)’의 사투리.
*비위(脾胃) ; ①어떤 음식을 먹고 싶거나 어떤 일에 대하여 하고 싶은 마음. ②음식을 잘 삭여 내는 능력. ③이니꼽고 탐탁지 않은 일이나 싫은 것을 견디어 내는 성미. ④지라와 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잿말랑(잿말랭이) ; ‘잿마루(재의 맨 꼭대기)’의 사투리.

* ; 길이 나 있어서 넘어 다닐 수 있는, 높은 산의 고개. 영(嶺).
*찹쌀술 ; 찹쌀로 빚어서 담근 술.
*오목식기(--食器) ; ‘오목주발(--周鉢 : 놋쇠로 둘러[周] 만든 속이 오목한 밥그릇[鉢])’의 비표준어.
*묏등 ; 무덤의 윗부분.
*화반탁출(和盤托出 화하다 화/소반·쟁반 반/맡기다·밀다 탁/나다·드러내다 출) ; ‘얻은 밥을 밥상까지 전부 다른 사람에게 내어 준다’는 말이며, ‘일체 남기지 않고 있는 대로 다 털어놓다’는 뜻이다.
*발로참회(發露懺悔 드러내다·밝히다 발/드러내다 로/뉘우칠 참/뉘우칠 회) ; 죄나 허물을 숨기지 않고 사실 그대로 드러내어 참회하는 것. 발로백불(發露白佛), 발로참제(發露懺除)라고도 한다.
*참회(懺悔 뉘우칠 참/뉘우칠 회) ; ①자기의 잘못에 대하여 깨닫고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같은 잘못을 짓지 않겠다고 결심함. ②신이나 부처님 또는 대중 앞에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구함.
[참고 ❶]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156~157 참고. (가로판 p163~164)
有罪則懺悔하고  發業則慚愧하면  有丈夫氣象이요,  又改過自新하면  罪隨心滅이니라.

허물이 있거든[有罪] 곧 참회하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發業] 곧 부끄러워할 줄 알면[慚愧]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할 것이요, 또한 허물을 고쳐 스스로 새롭게 하면, 그 죄업은 마음을 따라 없어지느니라.

(註解) 懺悔者는  懺其前愆이요  悔其後過라.  慚愧者는  慚責於內하고  愧發於外라.  然이나 心本空寂이라  罪業이  無寄니라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뒷날에는 다시 짓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다. 부끄러워한다[慚愧]는 것은 안으로 자신을 꾸짖고, 밖으로는 자기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본래 비어 고요한 것이라,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것이다.

[참고 ❷] 『아비달마집이문족론(阿毘達磨集異門足論)』 (사리자존자 說 | 현장 역) ‘삼법품(三法品) 제4의 2’
應發露勿覆藏 發露則安穩 不發露罪益深 是名覺察擧罪

마땅히 죄를 드러내고, 덮어서 숨기지 마라. 드러내면 마음이 편안해지지만 만약 은폐하면 죄가 더욱 깊어진다. 이것을 자신의 죄를 살펴 대중 앞에 드러내는 것이라 한다.
*까바치다 ; (어떤 사람이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속속들이 들추어내어 일러바치다.
*총총 ; 총총히(촘촘하고 많은 별빛이 또렷또렷한 모양).
*(게송) ‘曠劫障道 睡魔莫大’ ;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자경문(自警文)’ 참고. ‘오랜 겁에 도에 방해되는 일은 수마(睡魔)보다 큰 것이 없다’
*수마(睡魔) ; 참선할 때 어느새 잠이 와 졸음이 쏟아지면 정신 차려 정진하기가 매우 어려우므로 ‘졸음·잠(睡)’을 수마(睡魔)로 일컫는다.
*도문(道門) ; ①도에 이르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 ②불문(佛門). 부처님의 법문(法門). 불교(佛敎)라는 문.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서는 문. 깨달음으로 들어서는 문.
*마구니 ; 마(魔). [범] māra 음을 따라 마라(魔羅)라 하고, 줄여서 마(魔)라고만 한다。장애자(障礙者) · 살자(殺者) · 악자(惡者)라 번역。목숨을 빼앗고 착한 일을 방해하며 모든 것을 파괴하는 악마를 말한다. 그러나  마(魔)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선사 역 | 용화선원 刊) p64에서. (가로판 p66~67)
마(魔)란 생사를 즐기는 귀신의 이름이요,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마가 본래 씨가 없지만, 수행하는 이가 바른 생각을 잃은 데서 그 근원이 파생되는 것이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道人)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마가 대들게 된다。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선정(禪定) 중에 혹은 상주(喪主)를 보고 제 다리를 찍으며 혹은 돼지를 보고 제 코를 쥐기도 하는 것이, 모두 자기 마음에서 망상을 일으켜 외부의 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마의 온갖 재주가 도리어 물을 베려는 것이나, 햇빛을 불어 버리려는 격이 되고 말 것이다。옛말에 ‘벽에 틈이 생기면 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가 들어온다’고 하시니라.
*금강보검(金剛寶劍) ; 금강(金剛 : 다이아몬드)으로 만든 견고하고 예리한 보배로운 검. ①모든 번뇌를 자유자재로 끊어 없애는 지혜를 비유한 말. ②진리를 꿰뚫는 선지식의 날카로운 마음 작용을 비유한 말.
*언하(言下) ; [주로 ‘언하에’의 꼴로 쓰여]말이 떨어진 바로 그때. 또는 말을 하는 그 즉시.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 :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와서 불교의 대혁명을 일으켰는데, 경(經)이나 모든 글이 소용없다 하여 「불립문자(不立文字)」를 표방하였고, 계율이나 염불이나 송주(誦呪)를 죄다 부인하고 오직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법이 들어 있다(觀心一法總攝諸行)」하고, 「바로 마음을 가리켜서 대번에 성품을 보고 부처가 되게 한다(直指人心見性成佛)」고 하였다.
실로 그의 문하에서 많은 성인이 나왔었다. 그리하여 사람마다 다투어 묵은 불교를 버리고 이 새 법, 참선법(參禪法)을 배우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란 것은 달마조사가 전하여 온 특별한 법, 비밀한 이치 곧 「불법의 똑바른 이치(佛法的的大意)」란 말과 같은 말이다.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 화두의 하나.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에게 한 스님이 와서 묻기를,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라고 했을 때, 조주선사가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있는 잣나무니라”라고 한 데서 유래한 화두이다.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421칙. 「백수(栢樹)」 『선문염송 · 염송설화 4』 (혜심·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 동국역경원) p251~252.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僧云和尙莫將境示人 師云我不將境示人 僧云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庭前栢樹子

조주(趙州)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스님이 말하였다. "화상께서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마십시오"
선사가 말하였다. "나는 경계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이니라"
*노래(老來 늙을 노/올 래) ; ‘늘그막’을 점잖게 이르는 말.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인가(印可 도장 인/옳을·인정할 가)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학자(學者) ; 학인(學人). ①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수도(修道)의 성자. ② 수행승. 선(禪)을 닦는 수행승. ③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제접(提接 이끌 제/응대할•가까이할 접) ; (수행자를) 가까이하여 이끌다.
*법상(法床) ; 법을 설하는 자리. 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법하는 스님이 올라앉는 상.
*톡톡히 ; ①구실이나 역할 따위에 충실히. ②비판이나 대가의 정도가 심하게.
*시지부지 ; ‘흐지부지(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흐리멍덩하게 넘어가거나 넘기는 모양)’의 사투리.
*정절(程節) : ①길목. 길가는 데 종요로운 어귀. ②공부해 나가는 데 중요한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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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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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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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위법망구2019. 4. 23. 12:55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14분 10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41)—임술년 동안거 결제 법어(82.10.17) (세등41)

 

방금 조실 스님, 고(故)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혜가(慧可) 대사가 달마(達摩) 스님을 찾아가서 눈 속에, 눈이 허리까지 찰 때까지 달마 스님 계신 굴 앞에서 달마 스님의 법(法)을 듣기 위해서 서 있다가 마침내는 신(信)을 보이기 위해서 팔을, 자기 손으로 자기의 팔을 잘라서 바쳤습니다.

 

그래 가지고 달마 스님의 법(法)을 이은 법문과 또 우리나라 이조 때 서산(西山) 큰스님 밑에 소요(逍遙) 스님이 대강사로 삼 년 동안을 능엄경 한 토씩을 배우면서 위법망구(爲法忘軀)적으로 서산 스님 밑에 수행을 하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서산 스님을 하직하고 떠날 때에 서산 스님이 주신 때묻은 공책 하나를 가지고 고개를 넘어가다가, '대관절 그 공책에 무슨 글이 쓰여 있기에 이것을 주셨나?'

 

3년을 위법망구적으로 서산 스님 밑에서 공부를 하다가 참선(參禪)은 가리켜 주지도 않고, 화두(話頭) 한마디도 일러주지 아니하고, 다 알고 있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능엄경을 하루에 글자 넉 자씩만 배우라 하니 삼 년이란 세월이 너무 지루하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것도 법(法)인가 보다. 이렇게 하다 보면은, 내가 이렇게 해 나가다 보면 반드시 나에게 화두도 일러주실 것이고, 참선하는 법을 가리켜 주실 것이다' 이리 생각을 하고, 다 알고 있는 거지만 참고 참으면서 3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지냈습니다.

3년이 지낸 뒤에는 도저히 더이상 참을 수가 없어. 그래서 퇴태심(退怠心)이 나 가지고, 말하자면 반감이라고 할까, 배신이라고 할까, 퇴태심이 나 가지고 그곳을 떠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공책을 열어 보니, 아까 조실 스님께서는 그 게송(偈頌)을 읊으시기만 하고 그 게송의 뜻은 해설을 해 주시지 아니했기 때문에 간단히 그 게송의 뜻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 우습구나, 소를 탄 자여.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로구나. 소를 타고서 소를 찾고 있구나.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하야 소진수중구(銷盡水中漚)니라. 그림자 없는 나무를 베어다가 물 가운데 버큼을 녹일지니라.

 

허허 참 우습구나. 소 탄 자여.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고 있구나.

'내 소가 어디가 있는가?' 소를 타고 있으면서 소를 찾고 있구나.

그것은 여러분들도 '아! 그 무슨 뜻이로구나' 상식적으로 가남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아는 것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3년 동안을 위법망구적으로, 저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는 그러한 신심으로 3년이라고 하는 세월을 서산 스님 밑에서 능엄경 넉 자씩을 배우면서 그 일심으로 지낸 그러한 신심 끝에 그 글을 보니까 소요 스님이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맨 처음부터 그 글을 봤다고 해서 터질 리가 없습니다.

 

소요 스님은 그 글을 보고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을 타파(打破)해 버리고 삼세제불(三世諸佛)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골수를 깨달라 버렸지만, 우리가 그 글을 아무리 해석할 줄을 알고 상식적으로 무슨 뜻이다 하고 아는 것 가지고는 깨닫게 되지를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구(句)에 가서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하야 소진수중구(銷盡水中漚)니라. 그림자 없는 나무를 찍어다가, 베어다가 물 가운데 버큼을 다할지니라. 물 가운데 버큼을 녹여 다할지니라' 그 무슨 말씀이여?

이것은 사량심(思量心)으로, 상식적으로, 분별심으로도 따져서 알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깨달은 사람만이 이 글의 뜻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 세등선원 삼동안거(三冬安居) 대중이 오십여 명이나 됩니다. 또 흥천사 반야선원 대중도 십여 명이고, 그리고 여기 각처에서 오신 여러 스님네와 신남신녀도 몇백 명이 오셨습니다. 무엇을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까?

「법문(法門)을 들어서 확철대오해서 생사해탈(生死解脫)을 하자」 그 목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 가운데에는 10년 20년 내지, 30년 40년을 참선을 하신 분도 있을 것이고, 금년에 처음으로 선방에 나온 그러한 수좌(首座)도 있을 것입니다.

소요 스님은 3년 만에 글 한 수(首)를 보고서 확철대오를 했는데, 오늘 이 대중 가운데에는 이 서산 스님이 주신 이 게송, 「가소기우자(可笑騎牛者) 기우갱멱우(騎牛更覓牛) 작래무영수(斫來無影樹) 소진수중구(銷盡水中漚)」라. 이 게송을 듣고서 과연 확철대오한 사람이 있느냐 말이여.

 

왜 고인(古人)은 이 한 수의 게송을 보고 확철대오를 했는데, 어째서 나는 그 게송을 듣고도 확철대오를 못하는가? 과연 법을 위해서 내 몸과 목숨을 바쳤는가?

 

법을 위해서 참으로 내 몸과 목숨을 바쳐 버린 사람은 이것이 바로 진발심(眞發心)인데,

진발심을 한 사람은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화두에 대한 대의심(大疑心)이 일시에 돈발(頓發)해서 밥을 먹어도 밥맛을 모르는 것이고, 하늘을 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고, 땅을 봐도 땅이 보이지를 아니하는 것이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오직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한 의단(疑團)뿐인 것입니다.

 

화두를 들려고 아니해도 저절로 의단이 돈발해서 번뇌 망상이 저절로 일어나지 아니하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오직 알 수 없는 의단만이 현전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나, 똥을 눌 때나, 세수를 할 때나, 양치질을 할 때나, 방선(放禪)을 하거나, 입선(入禪)을 하거나, 화두 하나만이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서 일부러 화두를 들 것이 없어. 저절로 화두가 독로(獨露)해.

 

이렇게 해서 이러한 경계, 심지어는 꿈속에서까지 화두가 현전(現前)을 하게 되는 거여. 이렇게 나가면 일주일이 못 가서 확철대오를 하는 것이여. 이것은 과거에 여러 도인(道人)들이 다 증험을 해서 말씀을 하신 것이여.

 

'혼침이 와서 못한다. 잡념이 일어나서 못한다. 상기(上氣)가 되어서 못한다. 소화가 안되어서 못한다' 이건 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 이 삼요(三要)가 갖추지를 못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인 것이여.

 

오늘은 결제날이라, 삼동에 지내 가는데 있어서 대중은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해 갈 것인가?

삼요(三要)! 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단이 몰록 발(發)하면 여러 가지 잔소리가 필요가 없습니다. 규칙에 대한 말도 필요가 없고, '이렇게 공부를 하고 저렇게 공부를 해라' 그런 말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3분51초~17분4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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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퇴태(退怠 물러날 퇴/그만둘·물러설 태)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오는 것. 불교를 믿는 마음에서 물러나 다른 데로 옮기는 것. 퇴타(退墮),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게송(偈頌) ; 시(詩), 게(偈)와 송(頌) 모두 불교의 가르침을 싯구로 나타낸 것.

*가남 ; '가늠(어떤 목표나 기준에 맞는지 안 맞는지 헤아려 봄)'의 사투리.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 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 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 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 차고, 온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무영수(無影樹 없을 무/그림자 영/나무 수) ; 그림자 없는 나무. ①몰저선(沒底船 밑 없는 배) · 무저선(無底船 밑바닥이 없는 배) · 몰현금(沒絃琴 줄 없는 거문고) · 무공적(無孔笛 구멍 없는 피리) 등과 같은 말로 '진여(眞如)'의 이명(異名)이다。 ②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철저(徹底)한 경지.

*진여(眞如) ; ①차별을 떠난,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②궁극적인 진리. ③모든 분별과 대립이 소멸된 마음 상태. 깨달음의 지혜. 부처의 성품. ④중생이 본디 갖추고 있는 청정한 성품.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삼세제불(三世諸佛) ; 삼세(三世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부처님[諸佛].

*역대조사(歷代祖師) ; 석가세존(釋迦世尊)으로부터 불법(佛法)을 받아 계승해 온 대대의 조사(祖師).

*사량(思量) ; 생각하여 헤아림. 사유하고 판단함.

*분별(分別) ; ①대상을 차별하여 거기에 이름이나 의미를 부여함. 대상을 차별하여 허망한 인식을 일으키는 인식 주관의 작용. ②구별함. ③그릇된 생각.

*삼동안거(三冬安居) ; 삼동(三冬, 겨울철의 석 달)에 하는 동안거(冬安居,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말한다.

*법문(法門 부처님의 가르침 법/문 문) ; 불법(佛法)을 문(門)에 비유한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에 들게 하는 문(門)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말. 진리에 이르는 문.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고인(古人) ; ①불보살(佛菩薩)님을 비롯한 역대조사(歷代祖師), 선지식을 말한다. ②옛날 사람. 옛날 선승(禪僧).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눈앞에 환히 드러나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몰록 ; 단박(에). 그 자리에서 바로 곧.

*발하다(發-- 일어날 발) ; 생기게 하거나 일어나게 하다. 생기거나 일어나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위법망구2018. 2. 19. 22:28

*위법망구(爲法忘軀) ; 법(法, 진리)를 구하기 위해[爲] 몸[軀] 돌보는 것을 잊는다[忘].

 

*법(法)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의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善). 올바른 것.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를 가리킴. ⑤본성. ⑥의(意)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1/2) 18분 15초.

(2/2) 8분 36초.

 

[법문] 송담스님(No.356)—88년 4월 첫째일요법회(1988.04.03)(용356)

 

(1)------------------

 

불법(佛法)을 믿지 않고 다른 외도(外道)를 믿는다던지 또는 불법을 믿되 최상승법(最上乘法)을 믿지 못하고 방편설(方便說)에 떨어져 있는 사람은 물론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이 최상승법을 믿고 또 활구참선을 의지해서 공부를 시작한 지가 벌써 오래된 그런 사람도 진정으로 아까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신 그 활구참선의 삼요(三要)를 갖추어서, 그 삼요는 대신심(大信心) · 대분심(大憤心) 그리고 대의심(大疑心) 대의단, 이 3가지를 한목 갖추어야 그래야 진실한 수행자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신심이란 게 무엇이냐? 무엇을 믿어야 대신심을 갖추었다고 할 것이냐?

내가, 내 자신이 부처라고 하는 사실, 내 자신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사실을 철두철미하게 믿는 것이 그것이 바로 대신심이여.

 

‘이론상으로는 우리도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다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참선을 해서 가지고 있는 불성을 깨달으면 바로 그것이 견성이다’ 이렇게 다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따로 있고, ‘내’라고 한 놈이 불성을 속에 가지고 있다’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할 줄 알고, 말을 들을 줄 알고, 성도 낼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아는 그 당처(當處), 그 당처를 여의지 않고 그 당처가 바로 불성이라, 바로 그것이 자성불(自性佛)이라고 하는 것을 철저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놈을 철저히 믿어야 그놈을 여의고 따로 부처를 찾지 않게 되는 거여.

그놈을 여의고 따로 ‘참 부처’를 찾는 한에는 영원히 찾어도 부처님은 나타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이 신심이 꽉 아주 견실(堅實)해야 그래야 참선을 할 수가 있는 것이여. 바른 참선을 할 수가 있어.

 

그 다음에 대분심(大憤心).

왜 내 자신이 부처이고, 그러면서 왜 이렇게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고 있느냐?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불보살, 역대조사는 진즉 이 문제를 일대사(一大事)를 요달(了達)을 해서 생사해탈을 하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이렇게 육도를 윤회하면서 생사고해 속에서 이렇게 헤매이고 있는가?

 

왜 멀쩡한 부처님이면서 부처님으로서 살지를 못하고, 부처님으로서 행하지를 못하고, 어찌 이렇게 업풍(業風)에 따라서 이렇게 윤회를 거듭하고 있고, 언제 그 기한 없이 이렇게 고취(苦趣) 속에 빠져서 몸부림을 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뼛골에 사무치도록 분심! 한탄이라고 할까? 원망이라고 할까? 기가 맥힐 일입니다. 그러한 뼛속에서부터 사무치는 그런 분심이 없고서는 도는 닦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신심과 대분심은 동시에 발(發)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하시기를 “내가, 과거 무량겁 무변 나유타 겁에 이 사바세계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그 부처님의 호(號)가 바로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하는 부처님이셨다”

삼천년 전에 인도에 출세하신 부처님도 석가모니 부처님이시지마는 그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과거 무량무변(無量無邊) 나유타(那由他) 겁(劫) 이전에도 이 사바세계에 석가모니 부처님이라고 하는 부처님이 계셨다” 이것입니다.

 

중생을 위해서 대열반경(大涅槃經)을 설하고 계셨어.

 

그때에 한 친구로부터 ‘지금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열반경을 설하고 계신다’ 그 말을 들었다 그말이여. 듣고서 마음 가운데에 큰 환희심을 내고서 바로 가서 공양(供養)을 올리고 법문을 듣고 싶었지만 너무 가난하고 아무 재산이 없어.

그래도 부처님을 가서 친견을 하고 법문을 들을려면 무엇인가 정성스럽게 공양할 거리를 마련해 가지고 가서 공양을 올리고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예배를 드리고 그리고서 위법망구(爲法忘軀)로 법문을 들어야 할텐데, 너무 가난해서 아무것도 없다 그말이여.

 

그래서 여러 가지로 궁리 끝에 ‘차라리 이 몸뚱이를 팔아 가지고라도 공양구(供養具)를 만들어야겠다’ 이래 가지고 읍에 나가 가지고 “이 몸뚱이를 사시오. 이 몸뚱이를 살 사람이 없소”하고 외치고 댕겼다 그말이여. 워낙 박복(薄福)한 사람이 되어서 아무도 그 소리를 들은 척도 안 해.

누가 몸뚱이를 살려고 한 사람이 있어야 팔텐데, 이 몸뚱이를 사라고 목이 쉬도록 외쳐도 아무도 살려고 한 사람이 없어. 사람이 모여들지를 않는다 그말이여.

 

그래서 할 수 없이 실망을 하고 집으로 허탈 상태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데, 한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어. 혹 이 사람은 내 몸을 살랑가 해서 “이 몸뚱이를 사시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아! 내가 사겠다”고.

 

“그런데 나한테 무서운 병이 있는데 의사한테 진단을 해서 처방을 냈는데 ‘사람 고기를 하루에 석 냥[三兩]중씩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고 그러니, 당신이 나한테 팔려오면 내가 당신을 사면 날마다 당신 살을 갖다가 석 냥씩 내가 뜯어서 먹어야겠는데 그렇게 먹어도 되겠느냐?”

그렇게 말하니까 “대단히 좋다”고.

 

“그러면 만약 내 집에 와서 하루에 석 냥씩을 나한테 바치면 내가 금전(金錢), 금으로 된 돈을 석 닢씩을 주겠다” 그렇게 해서 서로 언약이 되었어.

그래서 그 사람을 따라서 갔는데, “내가 소원이 하나 있는데 무슨 소원인고 허니는, 내가 이 몸뚱이를 팔아 가지고 그 돈을 다른 데에 쓸려고 헌 것이 아니라,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그리고 부처님께 법문을 듣기 위해서 내가 이 몸뚱이를 팔려고 그런 것이니, 이 몸뚱이를 날마다 그렇게 석 냥씩 띠어내면은 내가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가 없으니 7일 동안을 나한테 허락을 해주면 내가 먼저 가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법문을 듣고 와서 그래 가지고 당신에게 이 몸뚱이를 바치겠다”하니까.

 

“그래 좋은데, 7일은 너무 많고 하루만 승낙을 하겠다” 그러면서 돈을 석 닢을 주어서 그래서 인자 그놈을 가지고, 공양구를 마련을 해 가지고 부처님께 그 공양을 올리고서 절을 하고서 열반경 설하신 것을 들었다.

듣는데, 다른 많은 법 설하신 것은 다 잊어버리고 머리가 우둔해 가지고 게송 하나만을 기억을 해 가지고 왔어.

 

 

여래증열반(如來證涅槃)하사  영단어생사(永斷於生死)니라

나무~아미타불~

약능지심청(若能至心聽)하면  상득무량락(常得無量樂)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여래증열반(如來證涅槃), 여래가 열반을 증득하사,

영단어생사(永斷於生死)다. 길이 생사를 끊으셨도다.

 

약능지심청(若能至心聽)하면, 만약 능히 지극한 마음으로 들으면,

상득무량락(常得無量樂)이니라. 항상 무량의 낙을 얻으리라.

 

이 게송, 이 간단한 게송 한마디만 겨우 마음속에 새겨 가지고 돌아왔어. 그래 가지고 그 주인집에 와 가지고 날마다 그 게송을 속으로 읊어.

읊으면서 허벅지로 궁뎅이로, 살 좋은 데로 석 냥씩을 뜯어서 그래 가지고 그 주인한테 약으로 바쳤는데, 그러면서도 지극정성(至極精誠)으로 이 게송을 염송(念誦)하고 그러면서 했기 때문에 전혀 괴로운 줄도 모르고 아픈 줄도 몰랐어.

 

그러기를 날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렇게 해 가지고 한 달 동안을 그렇게 했다 그말이여.

이 세상에 좋다는 약은 다 써도 백약이 무효인데, 한 달 동안을 그 사람의 그 인육을 갖다가 먹고서 그 무서운 병이 나았다 그말이여. 그 병 이름이 무엇이라고는 경에 쓰여져 있지 않지마는.

 

그래 가지고 병이 나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주인의 병이 다 낫자마자, 그 온 몸뚱이에 그 한 달 동안 30번을 갖다가 석 냥씩 띠어낸 그 상처도 깨끗이 다 아물어 버렸다 그말이여.

 

그 날마다 그 석 냥씩이면 굉장히 그 많은 살점뱅이인데, 손톱 밑에 가시 하나만 들어도 잠을 못 자고 그렇게 아리고 쑤시고 아픈 것인데, 한 번만 띠어내도 그 상처가 아물라면은 여러 달이 걸려야 그 상처가 아물고, 염증이 생기면 고름이 나고 그래 가지고 그 새살이 차오를라면 힘이 들텐데,

날마다 띠어낸 자죽이 한 달 동안을 그랬으니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그 얼마나 그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겠지만,

 

부처님께 들은 그 열반경의 그 게송을 듣고서 그 게송을 갖다가 지극정성으로 독송하는 그 공덕으로 그 신심으로 아픈 줄을 전혀 몰랐고, 아픈 줄만 모를 뿐만 아니라 그 주인이 병이 다 나았다고 그 말을 듣고 그것도 기쁘려니와, 자기 상처도 이리 보니까 일시에 다 상처가 다 아물어서 다 나은 것을 보고서 너무너무 환희심이 났다.

 

그러자 대보리심(大菩提心)이 돈발(頓發)을 했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 원(願)을 세우기를 『내생에 내가 반드시 성불(成佛)을 하면 호를 석가모니불이라 허리라』 이렇게 원을 세웠어.

보리심을 발(發)해 가지고 원을 세우면은 그 원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어떠한 소원이 있으면 오욕락(五欲樂),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 그러한 마음으로 원을 세우지를 말고, 크고 작은 원이 있으면 보리심을 발해야 돼.

정말 청정한 마음으로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그리고 참선을 열심히 하시면서 원을 세우면 그 원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말이여.(17분12초~35분27초)

 

 

 

(2)------------------

 

그래서 언제나 이 기도할 때에도 말씀을 드리지만 ‘청정한 마음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기도를 해야 그 기도를 성취할 수가 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마는,

법을 위해서 자기의 몸뚱이를 팔고, 그래 가지고 한 달 동안을 날마다 살점을 띠어서 그 아픈 환자의 병을 낫으기 위해서 띠어 주면서도 계속 열반경에 그 부처님께 들은 그 게송을 외우면서 지극정성으로 했기 때문에, 아픈 줄도 모르고 오직 그 육체와 자기의 모든 것을 법을 위해서 바쳤어. 그래서 아픈 줄을 모르는 것이다.

 

세속에서도 그 어머니가 그 자식을 낳을 때, 그 고통이 참 낳아보지 아니한 사람은 도저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을 만큼 그렇게 고통이 심하다고 그럽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그 은중경(恩重經)을 통해서, 그리고 또 들은 바로서 그 고통이 매우 심하고, 그 애기를 낳으러 들어가면서 ‘다시 내가 또 이 신발을 신을 수가 있을런지’ 그렇게 참,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산고(産苦)라고 하는 것이 어렵다고 그러고.

 

또 애기를 낳아 가지고도 애기가 어디가 아프면은 그렇게 참, 밤잠을 안 자고 애기를 안고서 그 간호를 하고. 그 진자리 마른자리를 갈아 뉘우면서 그 애기를 길러낸 어머니의 그 고통.

또 그 애가 커서 학교를 가고 시험볼 때—지금 여러분들도 다 겪고 계시지만 참, 그 애 학교 합격하기 위해서 같이 밤을 지새우면서 그러한 어머니의...

 

또 그 애가 커서 장가를 들고, 그 애가 커서 또 군인에를 간다던지, 그 어머니가 팔구십이 되고 애가 칠팔십이 되어도 그 칠팔십, 육칠십이 된 늙은 아들을 보고도 항상 애기처럼 생각하는 그 어머니의 마음,

그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서는 어떠한 고통이라도 괴로운 줄을 모르고 다 갖다가 거기 정성을 다 쏟으신 거다 그말이여.

 

그 생각을 미루어서 생각해 보면 정말 이 부처님의 그 전생, 저 무량 아승지겁 이전에 그 법을 위해서 몸뚱이를 바치고 법을 위해서 살점뱅이를 띠어낼 때에 조금도 아픈 고통을 느끼지를 아니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치로 미루어 볼 때에 이해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법망구가 됨으로 해서 대도(大道)를 성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선을 허지만 참, 참선이 안된다. 정진이 잘 안된다. 혼침이 오고 망상심이 일어난다. 의단이 독로하지를 못하고 화두가 순일하지를 못한다. 무슨 잘못이 있어서, 공부를 잘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공안을 타파를 못하고 확철대오를 못한 것이 아니냐’

많은 분들이 그것을 호소를 하신 것을 들었습니다마는 순전히 그 원인은 다른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세하게 따지면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이 삼요(三要)를 갖추지 못한 데 그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대신심(大信心)과 대분심(大憤心)과 대의단(大疑團), 이 삼요를 갖추지 못함으로 해서 공부가 화두가 순일하지 못하고 의단이 독로하지를 못하는 것이지, 그밖에 딴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대신심과 대분심과 대의단만 한목 발(發)해 버린다면, 마치 전강 조실 스님께서 첫 철에 직지사 제산 큰스님 회상에 방부(房付)를 들이고 정진을 하실 때에, 공양 목탁을 치면 가서 발우(鉢盂)를 펴고 공양을 드시고는 온전히 입선 방선이 없어.

법당 뒤에다가 방석을 하나 갖다 놓고 거기서 그저 하루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녁부터 새벽까지 정진을 하셨던 것입니다.

 

조금 혼침기가 있으면 일어나서 왔다갔다 일직선상으로 포행(布行)을 하시면서, 그래 정신이 깨끗해지면 다시 그 자리에 와서 또 앉고, 또 쪼금 혼침이 온 듯하면 금방 일어나서 또 포행을 하시다가 또 하고, 이렇게 하기를 한 달 두 달,

 

처음에는 모다 대중이 ‘어린 사람이 말뚝 신심이 나가지고 지가 바로 무슨 공부나 한 척한다’고 모다 쑤군덕거리고 모다 그랬지마는.

열흘을 그렇게 해, 스무 날을 그렇게 해, 한 달을 그렇게 해, 두 달을 그렇게 해, 한결같이 그렇게 하니까 나중에는 쑤군덕거리고 모다 빈정거리고 하는 그런 말이 다 쑥 들어가 버리고.

 

예불(禮佛) 시간에 예불을 하면서 “지심귀명례~”하고 엎드려 가지고는 엎드린 채 잠에 깊이 빠져 가지고 일어나지를 못해.

그래서 일으킬라고 하니까, 입승(立繩) 스님이 “내비둬라. 엎드린 채 좀 한숨 자게 놔둬라” 이렇게까지 모다 입승 스님을 비롯해서 대중스님네들이 모다 그 애껴주셨다 그말이여.

 

그 어린 소년이 어떻게 그렇게 철저히 발심(發心)을 해 가지고 정말 폐침망찬(廢寢忘餐)하고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어리신 나이로 공안을 타파(打破)하고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신 것입니다.

 

그때에 그러헌 참, 목숨 바치는 그런 위법망구적인 그러헌 그 정진이 없었다면 어떻게 조실 스님이 그렇게 어린 나이로 확철대오를 허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과거의 모든 불보살과 역대조사들이 다 도를 성취하신 데에 있어서는 그만한 위법망구적인 그러헌 신심과 분심이 없고서는 도저히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35분28초~44분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방편설(方便說 방법·수단 방/편할 편/말씀 설) ; 실상(實相)으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상대와 조건에 알맞는 방법을 설정하여 말하는 것.

*불성(佛性) :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심성(心性)으로 사람사람에게 본래 갖춰져 있는 자성(自性)을 말함. 불타나 중생이나 심지어 꿈적거리는 미물(微物)에 이르기까지 그 자성에 있어서는 차등이 없다.

*당처(當處) ; ①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 그곳. 또는 이곳. ②그대로. 지금 현재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그곳에서.

*자성불(自性佛) ; 자성(自性)이 즉 부처라는 뜻.

*견실하다(堅實-- 굳을·강할 견/열매·실하다 실) ; ①튼튼하고 굳건하다. ②의지가 굳고[堅] 착실(着實)하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 :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일대사(一大事) ; 매우 중요하거나 아주 큰 일. 삶과 죽음, 즉 생사(生死)의 일.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큰 일.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뜻.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것. 인간으로서의 완성.

『법화경』 방편품에 ‘諸佛世尊, 唯以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 모든 부처님은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출현한다’라고 한 것에서 유래.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한 목적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보이고, 지혜를 발휘하여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고 구제하는 것’이다.

*요달(了達 마칠·완전히·밝을 료/통달할·이룰 달) ; ①통달해 마침. 완전히 통달함. 밝게 통달함. ②깨달음에 도달하다.

*업풍(業風) ; 업의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 업의 바람. 업의 세력[業力]을 ‘바람’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 선하거나 악한 업력에 따라 생사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중생의 현실이 마치 풍파(風波 : 세찬 바람과 험한 물결)에 날리는 낙엽이나 배와 같기 때문에 이렇게 비유한다.

*고취(苦趣) ; 고통의 세계. 공포와 고통이 극심한 지옥, 아귀, 축생의 세계. 취(趣)는 중생이 번뇌로 말미암아 지은 업(業 : 의지에 기초한 행위)에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세계를 말한다.

*발하다(發-- 일어날 발) ; 생기게 하거나 일어나게 하다. 생기거나 일어나다.

*대열반경 법문 ; 『대열반경』(남본南本) (혜엄, 혜관 등 번역) 제20권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②‘ 참고(0740c07~). 『열반경(2)』 (이운허 옮김 | 동국역경원) p494~495 참고.

*무량무변(無量無邊) ; 한없이 크고 넓음. 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음.

*나유타(那由他) ; 나유다(那庾多)라고도 한다. 지극히 큰 수를 나타낼 때 쓰는 말이지만, 어느 정도의 수인지는 명확하지 않음. 천만이나 천억에 해당된다.

*겁(劫) ; (산) Kalpa 음을 따라 갈랍파(羯臘波) 또는 겁파(劫波)라 하고, 다시 줄여서 겁(劫)이라고만 한다. 인도에서의 가장 긴 시간단위. 지극히 긴 시간. 무한히 오랜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참고] 겁(劫)의 무한히 긴 시간을 개자겁(芥子劫)•반석겁(盤石劫)으로 비유한다.

〇개자겁(芥子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성(城) 안에 겨자 씨를 채워, 100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겨자 씨가 다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〇반석겁(盤石劫) :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유순(由旬,약 8km)인 큰 반석(盤石)을 부드러운 천으로 100년에 한 번씩 쓸어 반석이 다 닳아 없어진다 해도 1겁이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나 스승, 부모, 영가에 음식, 옷, 약, 꽃, 향 등을 바침. ②스님들의 식사를 공양이라 하는데, 이것은 스님들은 시주(施主)의 공양물로 생활하기에 공양을 올리는 이[施主]의 시은(施恩)을 상기하여 잊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③신구의(身口意) 세 가지 방법으로 하는 공양으로 삼업공양(三業供養)이라 한다. 자세[身]를 낮추어서 삼가고 공경하는 예를 갖추는 공경, 입[口]으로 훌륭함을 기리는 찬탄, 오로지 마음[意]을 쏟는 존중이다.

*오체투지(五體投地) ; 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께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地)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공양구(供養具) ;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바치는 음식물·향·꽃 등의 물건, 또는 그 물건을 바칠 때 사용하는 기구.

*석 냥[三兩]중 ; 냥(兩)은 무게의 단위. 귀금속이나 한약재 따위의 무게를 잴 때 쓴다. 한 냥은 37.5그램으로 귀금속의 무게를 잴 때는 한 돈의 열 배이고, 한약재의 무게를 잴 때는 한 근의 16분의 1이다.

‘-중(쭝重)‘은 ‘무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게송) ‘여래증열반(如來證涅槃)~’ ; 『대열반경』(남본南本) (혜엄, 혜관 등 번역) 제20권 ‘22. 광명변조고귀덕왕보살품 ②‘ 참고.

*지극정성(至極精誠) ; 더할 수 없이 극진한 정성(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염송(念誦 생각할 염/욀·암송할 송) ; 마음속에 부처님을 염원(念願 마음속 깊이 생각하고 간절히 바람)하며 불보살(佛菩薩)의 명호(名號 이름)나 경(經), 진언(眞言) 등을 외는 것.

*살점뱅이 ; 살점배기. 살점(살點 : 큰 고깃덩어리에서 떼에 내거나 떨어져 나온 살조각이나 살덩이).

*보리심(菩提心) ; ①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 ②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원(願) ; 소원(所願). 바라고 원함. 또는 바라고 원하는 일.

*성불(成佛 이룰 성/부처 불) ; ①세상의 모든 번뇌를 끊고 해탈하여 불과(佛果)를 얻음. 곧 부처가 되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②석존이 붓다가야에서 깨달음을 연 것. ③올바른 깨달음을 얻은 것. 혹은 분명하게 완전히 깨달은 것이라는 뜻.

*오욕락(五欲,五慾,五欲樂) ; ①중생의 참된 마음을 더럽히는—색,소리,향기,맛,감촉(色聲香味觸)에 대한—감관적 욕망. 또는 그것을 향락(享樂)하는 것. 총괄하여 세속적인 인간의 욕망.

②불도를 닦는 데 장애가 되는 다섯 가지 욕심. 재물(財物), 색사(色事), 음식(飮食), 명예(名譽), 수면(睡眠).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만(慢)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의(疑) ; 인과(因果)의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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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중경(恩重經) ;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돈황본 『부모은중경』과 우리나라에서 옛부터 지금까지 널리 유통된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이 있다. 내용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부모님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설하고, 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에는 부모님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열 가지가 있는데, ①아이를 배어서 지키고 보호해 주신 은혜(회탐수호은 懷耽守護恩). ②출산하실 때에 고통을 받으신 은혜(임산수고은 臨産受苦恩). ③자식을 낳고 근심을 잊으신 은혜(생자망우은 生子忘憂恩).

④쓴 것은 어머니가 삼키고 단 것은 아이 먹이신 은혜(연고토감은 咽苦吐甘恩). ⑤마른 데 아이 누이고 젖은 자리 어머니 누우신 은혜(회건취습은 廻乾就濕恩). ⑥젖을 먹여 길러 주신 은혜(유포양육은 乳哺養育恩). ⑦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주시는 은혜(세탁부정은 洗濯不淨恩).

⑧멀리 갈 때 걱정하시는 은혜(원행억념은 遠行憶念恩). ⑨자식을 위해서는 모진 일 하신 은혜(위조악업은 爲造惡業恩). ⑩끝없는 연민으로 사랑해주는 은혜(구경연민은 究意憐愍恩) 등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한량없는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①가령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어버지를 업고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고, 살갗이 닳아서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서 골수(骨髓)가 드러나도록 수미산을 백천번 돌더라도,

②설사 예리한 칼로 부모님을 위하여 자기의 눈동자를 도려내어 여래(如來)에게 바치기를 백천겁을 하더라도,

③가령 어떤 사람이 부모님을 위해 몸을 심지로 삼아 불을 붙여서 부처님께 공양하기를 백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④설령 어떤 사람이 뼈를 부수고 골수를 꺼내며, 또는 백천 개의 칼과 창으로 한번에 몸을 찌르기를 백천겁이 지나도록 하더라도, 또한 위와 같은 여러 난행고행(難行苦行)을 하더라도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설하셨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중생을 보니 어리석고 미련하여 부모님의 큰 은혜를 생각하지 않고, 공경치 않고 은혜를 저버려 부모님께 어질지 못하고 효성스럽거나 의롭지 못하다. 이같이 부모님의 은덕은 한량없지만 불효한 허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불효한 사람은 죽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져, 감당하고 참기 어려운 무서운 고통을 받아 하루 동안에도 수없이 죽고 또 다시 태어나기를 몇 겁이 지나도록 조금도 쉬지 않고 받는다.

 

그리고 부모님의 깊은 은혜를 갚는 갚으려면 음력 7월 15일의 우란분재(盂蘭盆齋)에 부모를 위해서 삼보(三寶)에 공양하고, 이 경을 간행하여 널리 보급하고, 부모님을 위하여 죄와 허물을 참회하고, 부모님을 위하여 재계(齋戒)를 받아지니고, 부모님을 위하여 보시하고, 복을 닦도록 설하셨다.

그리고 부모를 위한다면 이 경의 한 구절, 한 게송을 잘 받아지니고 읽고 쓰며, 잠깐이라도 보거나 들은 사람은 오역(五逆)의 중한 죄라도 영원히 다 소멸된다고 하셨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발우(鉢盂) ; 발(鉢)은 (산)patra의  음역어인 발다라(鉢多羅)의 준말로 식기, 우(盂)는 그릇을 뜻함. 음역어와 번역어의 합성어로, 수행승들의 식기를 일컬음.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예불(禮佛) ; ①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에게 절함. ②절에서 아침·저녁 두 차례에 걸쳐 불·보살(佛·菩薩)에게 예배하는 의식.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폐침망찬(廢寢忘餐 폐할 폐/잘 침/잊을 망/밥 찬) : 자는[寢] 것을 폐(廢)하고 밥 먹는[餐] 것을 잊으며[忘] 일에 심혈을 기울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 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Posted by 닥공닥정
ㅇ/위법망구2017. 6. 27. 18:52

*위법망구(爲法忘軀) ; (, 진리) 구하기 위해[] [] 돌보는 것을 잊는다[].

 

*() ; (산스크리트) dharma, (팔리) dhamma 한역(漢譯). ①진리. 진실의 이법(理法). ②선(). 올바른 . 공덕. ③부처님의 가르침. ④이법(理法)으로서의 연기(緣起) 가리킴. ⑤본성. ⑥의() 대상. 의식에 드러난 현상. 인식 작용. 의식 작용. 인식 내용. 의식 내용. 마음의 모든 생각. 생각.

 

(11분 17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세등59)

 

잉풍기랑낭생구(仍風起浪浪生)한데  참괴청평해상부(慚愧淸平海上)로구나

나무~아미타불~

금일홀연풍랑식(今日忽然風浪息)허니  징명원시일강추(澄明元是一江秋)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잉풍기랑낭생구(仍風起浪浪生). 바람으로 인해서 물결이 일어났고, 물결로 인해서 버큼(거품)이 일어났더라.

참괴청평해상부(慚愧淸平海上).  맑고 평평한 바다 위에  버큼이 떠있는 것이 부끄럽구나.

 

바람으로 인해서 물결이 일어났고, 물결로 인해서 버큼이 일어나 가지고,  더러운 버큼이  맑고 평평한 깨끗한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니  얼마나 추악하고  부끄러울 일이냐 그말이여.

 

금일홀연풍랑식(今日忽然風浪息)하니, 오늘 홀연히  바람과 물결이 쉬어 버리니,

징명원시일강추(澄明元是一江秋). 맑고 밝은 원래 그대로의  강(江)의 가을이더라.

가을이 돌아와  하늘은 맑고 공기도 맑은데, 바람과 물결이 잔잔히 가라앉어 버리니까  맑고 밝은 강이 본래 그대로더라 그거죠.


출가해서 10, 20 내지 평생을 참선(參禪)을 한다고 했건마는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하고 어제도 이럭저럭 오늘도 이럭저럭 이렇게 늙어간다면, 그것은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만나지 못했거나, 바른 선지식을 만났으되 용기가 부족했거나, 용기를 가지고 했으되 자기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이 틀렸거나,

또는 금생에는 자기 나름대로 선지식을 만났고  용기도 가졌고  바른 방법으로 했건마는 전생에 워낙 닦아 놓은 것이 없거나, 이러한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해서  도업(道業) 성취를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새로 이제 출가한 젊은 스님네들, 어쨌든지  도를 성취헐라면 바른 선지식을 찾고 바른 선지식에게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서  몸을 잊어버려.

 

‘몸을 잊는다하는 것은자기의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치(我癡), 자기가 잘났다는 생각, 자기는 많이 배웠다는 생각, 내로라하는  아만심(我慢心), 자존심 이러한 것이  속에  있어 가지고—정말  법(法)을 위해서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 보고 듣고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모든 것을 갖다가 깨끗이 비워버리는 거여.

 

말하자면은 어떠한 좋은 깨끗한 물을 담을라면은  그릇에 담겨있는 모든 것을 비워 버려야 되거든.

 안에 들어있는 무슨 음식이 되었건, 음식 찌꺼기가 되었건, 기름기가 묻었건,  반찬 냄새가 묻었건, 일단 깨끗한 물을 담을라면  안에 어떠한 맛있는 물건이라도  버려 버리고 깨끗이  다음에라야  맑은 물을 담을 수가 있는 것이지, 거기에 본래 어떠한 것이 담어져 있는 상태에다가 아무리 맑은 물을 부어 봤자  물은 구정물이 되고 말아 버리는 것이다.


 () 그러한 음식과도  달라서, 음식은 다른 것이 담아 있어도  옆에다  곁들여서 담어서  가지  가지도 담을  있지만, () 영판  .

 

천하 없는 경전에 있는 말씀이라도 속에 담어져 있으면 그것은  되는 거여. 팔만대장경을 육두로  외우고,  풀이를   알아도  생각이 속에 들어있으면은 도는 이룰 수가 없는 것이여.

천하 없이 십계, 십중대계, 48경계와 비구 250계, 비구니 500계를 낱낱이  실천을 해서 청정하기가 말로   없다 하드라도,  청정한 데에 맥혀 갖고 있으면 도는 이루지를 못하는 것이여.

 

심지어  보다 더한 것이 속에 있다 하드라도, 얻은 바가 있다 하드라도 그러한 것이 () 갖고 있으면은 도는 통할 수가 없는 것이여.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증득했으되 내가 아라한과를 증득했다’하는 생각을 가지면 벌써 아라한이 아니고, 보살도를 증득했으되 내가 보살도를 증득했다하면은 벌써 그것이 보살이 아니여.

 

깨달았으되 깨달았다’는 생각에 () 있으면은  깨달음은 바른 깨달음이 아닌 것이여.

 

그렇거든 이제 공부하려는 사람이 선지식을 구할 때에 내로라하는 생각을 속에 가지고 있어 가지고  선지식이 믿어지냐 하면 믿어지지도 않는 것이고, 선지식으로부터 아무리 좋은 법문을 들어봤자  법문은 귀에 들어오지를 않는 것이여.

 

그래서  () 무엇을 많이 알고, 많이 속에다가 쌓는 공부가 아니고 비우는 공부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다생겁래(多生劫來)로 익힌 모든 선업(善業), 악업(惡業), 일체 업도  비우려니와 법견(法見), 불견(佛見)까지라도  비워버려야 .

비우는 데에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보는 것이지, 비우지 않고서는 점점 깨달음으로부터서는 멀어져 가버리기 때문에 그런 것이야.


그래서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금강경에  사상(四相) 말씀하셨지마는  첫째  아상이 문제거든. 아상(我相) 하나만 무너져 버리면은 다른 나머지기 3상() 문제가 없는 것이여.

 아상(我相), ‘내’라고 하는 이놈 하나 때문에 결국은 무량겁 생사윤회도 거기에서 원인이 되는 것이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도 거기에 원인이 되는 것이고, 육도법계(六度法界)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온갖  태란습화(胎卵濕化) 그놈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웬수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여.

 

‘내’라는 놈이 없다면은 남하고 다툴 필요도 없는 것이고, 내라는 놈이 없다면은 탐진치(貪瞋痴)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이냐 그말이여.

그래서  대중생활 하는 데에도 내’라 하는 생각 있는 데에서 온갖 불평이 일어나고, 온갖 서로 다툼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모든 장애도 거기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도량(道埸)에 들어오면은 첫째, 아상을 무너뜨려 버리고,  주장을 버려 버리고,  선원의 규칙대로 순종을 하고 적응을 하도록 그렇게 한다면은   동안 장애 없이 공부할 수가 있어. 아무 장애 없이   동안을 정말 온전히 알차게 짬지게   동안을 정진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205~3122)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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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잉풍기랑낭생구~’ ; 《허응당집(虛應堂集) (허응당 보우) ‘시부상인(示膚上人)’ 참고.

*버큼 ; ‘거품 사투리.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아견(我見) ; ①나라는 견해. 자아(自我)라는 견해. ②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여겨서 집착하여 분별하는 잘못된 견해. 신견(身見)이라고도 한다.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아만(我慢  /거만할·게으를 ) ; ①오온(五蘊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 실체라고 생각하는 그릇된 견해에서 일어나는 교만. 자아가 실재한다는 교만. ②우열의 관점에서 남과 나를 차별하여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아관.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7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아치(我癡)() 대한 무지(無知). 무아(無我) 이치를 알지 못하여 일으키는 번뇌.  가지 근본번뇌(四根本煩惱, 四惑)  나머지  가지 번뇌를 일으키는 근본이다. 안으로 자아를 대상으로 삼아[攀緣] 집착하는 말나식(末那識)  가지 번뇌[我癡我見我愛我慢] 하나.

*내로라하다 ; (주로 내로라하는 꼴로 쓰여) 어떤 분야에서 두드러지거나 대표할 만하다.

*()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 한역. ().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방법. ③무상(無上)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아라한과(阿羅漢果) ; 아라한(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깨달음의 경지.  소승 불교의 궁극에 이른 성자의 지위로서, 성문 사과(聲聞四果 : 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 가장 윗자리이다.

*깨달음 ; (). () 실체와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 지혜의 체득.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다겁생래(多劫生來) ; 매우 오랜 세월동안 세상에 태어난 이래로.

*선업(善業) ; ①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는 착한 . ②탐진치(貪瞋癡) 감소시켜 없애기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하는 .

*악업(惡業) ; 나쁜 결과의 원인이 되는 나쁜 행위. 또는 전생(前生) 나쁜 행위.

*() : [] karma [] Kamma 음을 따라 갈마(羯磨)라고 하며, 짓다() 뜻이다。중생들이 몸으로나 말로나 뜻으로 짓는 온갖 움직임(動作) 업이라 한다。개인은  업으로 말미암아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운명과 육도(六道) 윤회(輪廻) 받게 되고, 여러 중생이 같이 짓는 공업(共業)으로 인하여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건설되고 진행되며 쇠퇴하거나 파멸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처음에는 악업(惡業) 짓지 말고 선업만 지으라고 가르치다가, 필경에는 악과 선에서도  뛰어나고, 죄와 복에 함께 얽매이지 말아서 온갖 국집과 애착을  버리도록 하여, 부처님의 말씀에까지라도 걸리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법견(法見) ; 법에 대한 견해. 법에 집착하는 견해 또는 법이라는 관념에 집착하는 것은 정견(正見) 아니며, 법에 대한 집착이 없는 견해라야 정견이라 한다.

불법은 모든 속박을 벗어나 해탈에 이르기 위한 것인데,  법에 집착하여 반대로  하나의 속박을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용어로 쓰인다. 부처님의 경지에 집착하는 견해인 불견(佛見)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불견(佛見) ; ①부처님의 견해. 부처님의 경지에 도달하여 생기는 진정한 견해.  모든 법의 실상을 관조하여 아는 지견을 말한다. 불지견(佛知見) 같은 말이다.

②부처에 집착하는 견해. 부처에 대한 견해나 법에 대한 견해[法見] 모두 집착을 촉발하는 근거가 되므로 부정해야  대상으로 본다. 모든 견해에 대한 집착을 부정하는 선종의 입장을 반영한다.

*본래면목(本來面目  / / / ) ; ①자기의 본래(本來) 모습(面目). ②자신이 본디부터 지니고 있는, 천연 그대로의 심성(心性). 부처의 성품.

*사상(四相) ;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전도(顚倒) 생각에서 실재한다고 믿는  가지 분별심.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오온(,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형성된 () 실체라고 잘못 생각하는 . 나라는 관념 · 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 · 생각.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 · 생각.  타자와 구분짓는 자의식 또는 그것을 형성하는 온갖 관념의 집합.

인상(人相) ; 사람은 고귀하므로 지옥 중생이나 축생들과 다르다고 집착(執着)하는 견해.

중생상(衆生相) ; 산스크리트어 sattva-saṃjñā  중생이라는 관념 · 생각.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같은 중생이 어떻게 부처가 되고 무엇을   있으랴 하고 스스로 타락하고 포기하여 향상과 노력이 없는 소견.

수자상(壽者相) ; 산스크리트어 jīva-saṃjñā  목숨이라는 관념 · 생각. 목숨이 있다는 관념 · 생각. 생명체라는 관념 · 생각. 자기의 나이나 지위나 학벌이나 문벌이 높다는 것에 집착된 소견.

 

[참고]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3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서 육조구결(六祖口訣). (무비 역해 | 불광출판부 | p135~136) (『육조 스님 금강경』 원순 옮김 | 도서출판 법공양 | p98~99) 참고.

 

衆生佛性  本無有異  緣有四相  不入無餘涅槃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卽佛是衆生   卽衆生是佛

중생과 불성이 본래 다름이 없건만 사상(四相) 있으므로 인하여 무여열반에 들어가지 못하니, 사상이 있으면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부처님입니다. ()하면 ()  중생이 되고, 깨달으면 중생이  ()입니다.

 

迷人  恃有財寶學問族姓  輕慢一切人  名我相  雖行仁義禮智信  而意高自負  不行普敬  言我解行仁義禮智信  不合敬爾  名人相  好事歸己  惡事施人  名衆生相  對境取捨分別  名壽者相  是謂凡夫四相

 

어리석은 사람이 재산이나 학문 또는 출신[族姓] 있음에 의하여 모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我相)이라 하고, 비록 인의예지신을 행하나 뜻이 높다는 자부심을 가져서 널리 모든 사람들을 공경하지 않고 말하기를 나는 인의예지신을 행할  안다하고 남을 공경하지 않음을 인상(人相)이라 합니다.

좋은 일은 자기에게 돌리고 나쁜 일은 남에게 돌리는 것을 중생상(衆生相)이라 하고, 어떤 경계에 대하여 취사분별하는 것을 수자상(壽者相)이라 하니 이것들을 범부(凡夫) 사상(四相)이라 합니다.

 

修行人  亦有四相  心有能所  輕慢衆生  名我相  自恃持戒  輕破戒者  名人相  厭三塗故  願生諸天  是衆生相  心愛長年  而勤修福業  諸執不忘  是壽者相  有四相  卽是衆生  無四相  卽是佛

 

수행인도 또한 사상(四相) 있으니, 마음에 능소(能所) 있어서 중생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상이라 하고, 자신은 계를 지킨다고 파계자를 업신여기는 것을 인상이라 합니다.

삼악도의 고통을 싫어하여 천상에 나기를 원하는 것이 중생상이요, 오래 살고자 부지런히 복업을 닦으면서도 온갖 집착을 잊지 못하는 것이 수자상이니, 사상이 있으면  중생이요, 사상이 없으면  부처님입니다.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 세계. 육도(六道, 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

*태란습화(胎卵濕化) ; 사생(四生).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인 육도(六途)에서의  가지 (),  가지 태어나는 방식. 태생(胎生), 난생(卵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이른다.

*() ; 자기의 뜻에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악견(惡見) 여섯 가지 근본 번뇌] 하나.

*() ; 남을 업신여기고 자신을 높이는 마음 작용.

*() ; 인과(因果) 진리를 의심하는 마음 작용.

*악견(惡見) ; 올바르지 않은 견해. 그릇된 견해.

*도량(道場) : ①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  붓다가야의 보리수(菩提樹) 아래를 말함. ②불도(佛道) 닦는 일정한 구역. 수행하는 . ③사찰. [참고] ‘도장으로 읽지 않고 도량으로 읽음.

*짬지다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위법망구2016. 2. 12. 18:51

위법망구(爲法忘軀) (No.389)—‘이뭣고?’ - ‘한 생각’ 돌리는 것이 소신연비(燒身燃臂),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신심인 것입니다.

 

*위법망구(爲法忘軀) ; (, 진리) 구하기 위해[] [] 돌보는 것을 잊는다[].

 

(5분 47초)

 

[법문] 송담스님(No.389)—89(기사년) 부처님오신날 법어(89.05.12)(용389)

 

그래서 부처님의 법문(法門), 선지식의 법문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발심(發心)하기도 어렵고 진리의 눈을 뜨기도 어렵기 때문에,

옛날에 부처님이 인행(因行) 때에, 설산에서 고행을 하고 계실 때에,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고 하는 구절 게송을 듣기 위해서, 설산동자(雪山童子) 나찰귀신(羅刹鬼神) 향해서 소중한 몸뚱이를 던지셨던 것이며,

 

부처님께서 향성(香城)에서 반야경을 설하실 상제보살(常啼菩薩)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고서, 너무도 부처님의 법문이 감사하고 고마워서 무엇으로 공양(供養) 올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그래서 공양을 올리지 못한 한이 사무쳐 있을 때에 마치 성안에 어떤 부자가 병을 얻었는데 사람의 뼈골 속에서 뽑은 골수(骨髓) 넣어서 만든 약을 지어 먹어야만 병을 낫을 수가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골수를 가져 사람에게는 많은 돈을 주겠다이런 광고를 했어.

 

마침 상제보살이 광고를 보고서 자기의 () 가지고 골을 두들겨서 속에 들어있는 골수를 팔았습니다. 장자한테 팔아가지고 돈을 구해서 꽃과 향을 사가지고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분골쇄신(粉骨碎身)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법을 위해서 몸뚱이를 잃어버리는 위법망구(爲法忘軀) 신심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가운데에 경제사정이 여의치 못해가지고 부처님과 절에 공양을 올리기 위해서 행여나 골을 빼가지고 골수를 빼려고 하시지는 마십시오.

 

비록 설산동자는 몸뚱이를 나찰귀신에게 던지셨고, 상제보살은 골수를 빼서 장자에게 팔았지만,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을 들으면 법문이 과연 법문의 요지(要旨), 진의(眞意) 무엇인가 우리는 바로 그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소신연비(燒身燃臂), ‘소신연비를 해야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경전에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뭣한 사람은 손가락을 둘씩 셋씩 넷씩 태워서 연비(燃臂) 그러한 뜨거운 신심을 가진 수행자를 요새도 가끔 수가 있습니다.

연전에는 장작불을 놓고 자기의 몸뚱이를 사룬등신불(等身佛)’이라고 하는 그러한 드라마도 있습니다마는 그런 분이 실지로 과거에 있습니다. 몸뚱이를 잃어버리는 손가락 하나를 태우고 팔을 하나 태우고 몸뚱이를 태우는 것이, 얼마나 하기 어려운 것인가는 압니다.

 

뜨거운 신심은 백만금(百萬金) 주고라도 우리는 사야 것입니다마는, 소신연비분골쇄신의 참뜻은우리가 여기 있는 대중들이 날마다 손가락을 태우고 몸뚱이를 태우라고 나는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신심을 가지고 정말 탐진치 삼독심을 찰나 간에 돌이켜서이뭣고?’ 들으시라 이것입니다.

이뭣고?’ 생각돌리는 것』이 손가락 태우는 것에다가 비교할 있겠습니까?

슬플 때도이뭣고?’, 괴로울 때도이뭣고?’, 기쁠 때도이뭣고?’, 즐거울 때도이뭣고?’ 것입니다.

 

생각돌이킨 것』이 바로  생(生) 돌이키고  목숨 돌이킨 것』과 맞먹는 것입니다.

 

몸뚱이의 생사(生死)’만을 생사(生死) 아는 사람은 범부(凡夫) 중생(衆生)이고, 최상승법(最上乘法) 믿는 사람은 몸뚱이는 본래 () 것이여. 본래 공한 것이여!

 

생각돌이킬 때에, 비로소 최상승법을 믿는 사람이라 수가 있는 것입니다.(3810~4359)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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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法門 부처의 가르침 / ) : 부처님의 가르침은 중생으로 하여금 나고 죽는 고통 세계를 벗어나, 열반(涅槃) 들게 하는 문이므로 이렇게 이름.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르는 . 진리에 이르는 .

*발심(發心) ;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인행(因行) ; 수행. (부처가 되기 위한) () 되는 (). 깨달음을 여는 근본이 된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 제행무상게(諸行無常偈), 설산게(雪山偈)라고 한다. 번역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무상하니, 이것이 나고 죽는 법이로다. 생과 멸이 다하면은(생멸심이 끊어지면), 적멸이 낙이 되느니라.’

열반경에 부처님 과거 인행(因行) 때에 설산에서 설산동자로 고행을 하고 계실 , 앞의 구절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을 들은 후에, 나머지 게송을 듣기 위해 나찰귀신으로 변한 제석천왕(帝釋天王)에게 몸을 바친 전생담에서 나온 게송.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 되었다.

*상제보살(常啼菩薩) ; 중생을 근심하고 염려하여 울고 있는 보살이다. 산스크리트로는 사다프라루디타(Sadaprarudita) 음역하여 살타파륜(薩陀波倫)이라 하고, 의역하여 상제보살(常啼菩薩)이라 한다.

보자보살(普慈菩薩상비보살(常悲菩薩)이라고도 한다. 부처가 없는 세계, 말법(末法) 세상에 태어나 중생에 이익을 주기 위해 불도를 추구하고 숲속에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운다.

《대지도론》에는살타()’, ‘파륜' '()’ 뜻한다고 되어 있다. 어려서부터 울기를 좋아하여 상제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중생이 나쁜 길에 빠지거나, 가난하여 굶주리고, 늙고 병들거나, 근심하고 염려하는 모습을 보면 이를 가여워하여 슬피 운다. 《지도론》에는 보살을 《반야경》의 수호자로 등장하고, 《반야바라밀다경》에는반야바라밀다를 들으면 생각으로 환희에 가득 엉엉 소리를 내어 운다 나와 있다.

*분골쇄신(粉骨碎身) ; 뼈를 빻고 몸을 부순다는 뜻으로,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지극한 정성으로 있는 힘을 다한다는 .

*위법망구(爲法忘軀) ; (진리) 구하기 위해 () 돌보는 것을 잊는다().

*요지(要旨) ; 말이나 따위에서, 핵심이 되는 중요한 .

*진의(眞意) ; 참된 의도나 마음. 또는 진짜 의도.

*연비(燃臂) ; 불교에서 수행자가 () 받을 , 팔뚝에 향이나 심지로 불을 놓아 뜨는 의식 또는 자국.

*소신연비(燒身燃臂) ; 소신공양(燒身供養). 자기 몸을 태워 부처님 앞에 바침. 또는 그런 .

*범부(凡夫 무릇·보통 /남편·사내 ) ; 번뇌(煩惱) 얽매여 생사(生死) 초월하지 못하는 사람.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