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암자2017. 6. 18. 09:51

*암자(庵子, 菴子) ; 작은 .  절에 딸린 부속 . () 닦는 자그마한 . 초암(草庵), 모암(茅庵)이라고도 한다.

 

(12분 15초)

 

[법문] 송담스님(No.663)—2002 동안거해제 법어(02.02.06)(용663)

 

오주차암오막식(吾住此庵吾莫識)인데  심심밀밀무옹색(深深密密無壅塞)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함개건곤몰향배(函蓋乾坤沒向背)하야  부주동서여남북(不住東西與南北)이로구나

나무~아미타불~

 

오주차암오막식(吾住此庵吾莫識)이다. 내가  절에 머물고 있으되,  암자(庵子) 머물고 있으되 나도 또한  수가 없구나. 내가  여기에 머물고 있는가를  수가 없다 이거거든.

심심밀밀무옹색(深深密密無壅塞)이여. 깊고 깊고 밀밀해서 옹색(壅塞)함이 없다. ‘옹색함이 없다’고  것은 아무 부족하고 부자유한 것이 없다 이것입니다.

 

함개건곤몰향배(函蓋乾坤沒向背). 하늘과 땅이 앞과 뒤가 없고,

부주동서여남북(不住東西與南北)이다. 동서남북에 주착한 바도 없다.

 

 게송은 태고보우(太古普愚) 선사가 당신이 주석하고 계시었던 태고암에서 태고암가(太古庵歌)’라고 하는 시를 읊은  구절입니다.

여기에 표현한 암자(庵子)라고 하는 것은 태고암에 대한 말이겠으나, 산승이  게송을  때에는 우리가 머물고 있는  사바세계가 자기의 암자요, 우리가 머물고 있는  대한민국이 자기의 암자요, 우리가 삼동(三冬) 지냈던 자기의  선원 그곳이 바로 자기의 암자요, 가깝게 말하면 우리가 머물러 입고 있는  육체가 각자 자기의 조그마한 암자가  것입니다.

 

 암자에  자기가 지금  육체를 짊어지고 다니며,    철에 자기의   동안 지낸  선방에 지내게 되었는가? 물론 이래저래 해서 이러한 인연으로 거기에 산다고 말은  수가 있겠으나 사실은  수가 없습니다.

 금생에  몸뚱이를 뒤집어쓰고 나왔는가?  조그만한 육체의 암자를 가지고 태어났는가?  생각  생각이    생각, 생각 자체를 우리는 암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없는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나되  생각이 밀밀(密密)하고 깊고 깊어서,  생각이 일어나는 생각을 어떻게 자기가   생각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가를 모릅니다. 그래도 아무 걸림이 없이 생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생각    초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우리의 육체도  생각으로 인해서  육체를 받아났으나,  육체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는지 모릅니다.

 

물론 분석을 하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졌고  죽게 되면은 지수화풍 사대로 돌아가겠으나, 지수화풍  자체를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의 생각이 일어나는 생주이멸(生住異滅)  수가 없고, 육체를 이루고 있는 지수화풍도 사실은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모르지마는 우리는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고    초를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머리 위에 있고 땅은 다리 밑에 있으나, 어디를 두고 앞이라고 하고 어디를 보고 뒤라고 하겠으며, 동서남북을 우리는 나침반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마는 동서남북은 원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편의상 경도(經度)다, 위도(緯度)다  가지고 동서남북을 지도상에 그려 놓고 있습니다마는 이름이 ()이고, 이름이 (西) 원래 동서남북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속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고,  시간  시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불법을 만나지 못하고  정법을 만나지 못해서 화두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은 우리는 나침반 없는 조각배로  태평양 속에 던져져 있는 거와 같은 신세일 것입니다.

 끝없는 우주법계 속에  몸뚱이는 태어났으며,  속에서 끊임없이 희로애락 속에서 우리는 물거품처럼 떠돌다가 언제 꺼져버릴는지도 모를 것입니다마는 우리는 다행히 불법을 만났고  정법을 만나서 우리는 우리의  길이 있습니다.

 

  없는 의심, 의관(疑觀)이라고 하는 화두를 가지고 우리는 분명히 목표가 있고,  목표를 향해서  하루를 살아가고 있어서, 정처 없는 무주고혼(無主孤魂) 신세로 일생을 살다가 육도(六途)  윤회(輪廻)하게  그러한 처절하고도 외로운 영혼이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곳이 있고 분명히 목표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비록 보잘  없는  중생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뚜렷이 목표가 있고, 우리 몸뚱이 속에 비로자나 법신(毘盧遮那法身)이 상주하고 계신  법을 믿기때문에,

우리는 설사 말세에 태어났고,  세계가 성주괴공과 흥망성쇠 속에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으로 싸우고 있고, 언제 불바다가 될는지도 모르는  사바세계에 살지마는 우리는 결단코 그러한 생사 속에 영원을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다행하고 행복한 존재들이면서 동시에 우리는 행복하고 경행(慶幸)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정녕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영원히 바르게 살려면은 우리는  생각 속에 화두를 놓치지 않도록 단속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해제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한 편을 듣고, 산승은 우리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들을 향해서 이러한 다행한 인연을 만난 것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동안에 용화사  중앙선원  인제 법보선원   전주의 위봉사 선원  승련사 선원, 대전에   복전암 선원  세등선원, 방방곡곡에서 정법을 믿는 목숨을 걸고 수행하던 정진하던 도반들이 모였으니 두서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마는 우리가  것은 오직   생각을 단속하는  뿐입니다.

 

 생각으로 인해서 그것이 무량겁(無量劫) 되고,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도솔천(兜率天)에도 가고 극락세계(極樂世界)도 가고  육도도 윤회하게 되는 것인 만큼,

해제(解制)를 했다고 해서다음 산철결제  여름결제를 우리는  결제(結制)를 하게 됩니다해제 동안에 정말 단속을 잘해서 정진을 잘해야 우리는 분명 목적을 달성하게  것입니다.(1249~25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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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오주차암오막식~’ ; 『태고집(太古集) (雪栖 , 김달진 역주 | 세계사) ‘태고암가(太古庵歌)’ p90 참고.

*밀밀(密密 빽빽할·촘촘할 밀) ; 빈틈없이 빽빽히 들어찬 것.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 사람의 몸이 , , , 바람(,,,) () 원소()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생주이멸(生住異滅) ; 모든 사물이 생기고(), 머물고(), 변화하고(), 소멸함(). 또는 그런 현상.

*의관(疑觀)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밖에는 없지만  ,  ,   이렇게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할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 2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  ,  , 3, 5, 10년을 해도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하고, 고대로 하면서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묘한 의관(疑觀)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조정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의심관,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활구참선(活句參禪) 의심(疑心) 이라야 .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 서산에 지려고  ,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때에,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빨갛고 아름다운 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수가 없는데, 해가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해를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떨어져서  보일 때까지  시간 내지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때까지 관찰하고서,  다음에는 밤새  눈을 감으나 뜨나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다시   관을 해서,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밤새 관하고,  이튿날 관하고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일관이라든지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 있는데,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해도   없는 의심이해가   봐두었던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 .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역대조사(歷代祖師)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것입니다.

*무주고혼(無主孤魂) ; 이름없는 또는 천도주체가 없는 외로운 영혼. 천도(薦度)  시식(施食) 행할  () 올려주는 생존하는 인연주체가 없는 영가(靈駕) 일컫는다. 이에 대하여 천도재를 모시는 주체가 있는 영혼을 유주혼(有主魂)이라 한다.

*육도(六途, 六道) ; 중생이 선악(善惡) (: 의지에 기초한 행위) 의하여 생사 윤회하는 여섯 가지의 세계.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있다.

*비로자나(毘盧遮那) ;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 음사(音寫). 노사나(盧舍那자나(遮那) 등으로도 음사한다. 태양처럼 일체법을 비추어 관조하는 광대무변한 지혜를 지닌 부처님.

한역어로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는 뜻에서 광명변조(光明遍照, ), 허공과 같이 드넓은 세계에 거처하며  공덕과 지혜가 청정하다는 뜻에서 광박엄정(廣博嚴淨), 시공간적으로 어떤 한계도 없이 일체법과 모든 중생으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는다는 뜻에서 변일체처(遍一切處) 등이라 한다.

*법신(法身) : []  dharma - kaya   이란 말인데, 법불(法佛) · 이불(理佛) · 실불(實佛) · 법신불(法身佛) · 법성신(法性身) · 자성신(自性身) · 진여불(眞如佛) · 법계성(法界性) 같은 말들이 모두 한뜻이며, 「선가귀감」 첫머리에 있는 한물건이란 것도 이것이다.

진리  자체, 또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 우주  자체, 진여의 청정한 법계를 가리키며,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가 여기에 해당한다.

진리  자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진여의  바탕(眞如本體)’ 이름이니, 중생에 있어서 부족할 것이 없고 부처님이라고  특별할 것이 없어, 본래 깨끗하고 빛나고 두렷하여 무한한 공간과 무궁한 시간에   있으되,  가지 말로도 설명할  없고(離四句)  가지 아닌 것으로도 옳게 가르칠  없으며(絕百非), 무엇으로나 형용하여  수가 도저히 없는 것이다.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시기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 해치는  가지 번뇌. 욕심·성냄·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경행(慶幸) ; 경사스럽고 다행(多幸) .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동자(同字).

*도솔천(兜率天) ; 욕계 육천(欲界六天) 넷째 하늘.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우주의 중심은 수미산(須彌山)이며,  꼭대기에서 12 유순(由旬) 위에 도솔천이 있는데 이곳은 내원(內院) 외원(外院)으로 구별되어 있다.

내원은 내원궁(內院宮)으로 불리기도 하며 석가모니가 보살일 당시에 머무르면서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렸던 곳이며, 오늘날에는 미래불인 미륵보살(彌勒菩薩) 설법하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시기(석가모니가 입멸한 56 7천만  뒤에) 기다리고 있는 곳이고, 외원은 수많은 천인(天人)들이 오욕(五欲) 충족시키며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솔(兜率) 뜻은 지족(知足).

*극락세계(極樂世界) :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 괴로움과 걱정이 없는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世界]이다. 안양(安養), 안락국(安樂國),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 무량수불토(無量壽佛土), 무량광명토(無量光明土), 무량청정토(無量淸淨土)라고도 .

*해제(解制  /만들·법도 ) ; (안거)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