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ㄷ/단전호흡'에 해당되는 글 17건

  1. 2023.12.05 단전호흡(세등08)—단전에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 단전호흡은 참선 잘하기 위한 방편 | 깨닫기 전에도,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의 지시에 의해서 오후공부(悟後工夫)를 지어가야.
  2. 2021.09.12 참선 자세, 단전호흡((No.472))—단전호흡은 공양을 하고 2시간 뒤에 하라 | 의심이 크면은 크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은 깨닫지 못한다 | 不急尋師 空過一生.
  3. 2020.10.25 단전호흡(세등24)—올바른 자세, 호흡, 화두의심 |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 있는 선방, 선불장(選佛場)이다.
  4. 2020.09.20 참선 자세, 단전호흡(No.256)—철저한 신심, 분심, 의심 | 바른 자세, 단전호흡, 수승화강(水昇火降) |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觀法)’
  5. 2020.05.19 단전호흡(No.445)—화두를 안 들기가 더 어렵다 | 상기(上氣)와 단전호흡. 단전호흡 안 하면 참선 못합니까? | 상기병 약은 단전호흡과 요료법.
  6. 2020.02.06 단전호흡(No.578)—不淨觀. 數息觀 | 수식관이 차츰 발달한 것이 지금의 단전호흡 | 가슴이 답답할 때는 단전호흡을 반대로 | 화두를 단전에다 두고 관(觀)하라.
  7. 2019.07.31 참선의 자세, 단전호흡 (No.086)—몸을 바르게 하고 그다음에 호흡을 바르게 한 다음에는 화두(話頭)를 참구를 해야 합니다.
  8. 2019.03.03 참선의 자세, 단전호흡 (No.264)—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하라, 좌선 시간.
  9. 2017.07.04 단전 호흡(丹田呼吸) (No.715)—참선을 하려면 건강해야, 건강을 유지할라면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을 여법(如法)하게 해야.
  10. 2017.05.31 단전호흡(丹田呼吸) (세등선원No.34)—단전호흡을 올바르게 하면 정진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만 잘못하면 부작용이 일어난다.
ㄷ/단전호흡2023. 12. 5. 20:16

단전호흡(세등08)—단전(丹田)에다가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 수승화강(水昇火降) | 상기병(上氣病) | 단전호흡을 하는 것은 참선 잘하기 위한 방편 | 깨닫기 전에도,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의 지시에 의해서 오후공부(悟後工夫)를 지어가야.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19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19분 3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08)—1976(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17) (세등08)

그런데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고 '어째서? 어째서?' 하고 해 가다 보면은, 너무 힘을 써 가지고 하다 보면은 기운이 자연히 머리로 모여져 가지고 상기(上氣)가 되고 골치가 아프고, 이렇게 되어 가지고 공연히 육단심(肉團心)이 동(動)해 가지고 혈액순환이 잘못되고, 소화가 잘못되고, 잘못 이 혈기(血氣)가 고르지 못한 그러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이니까.

그래서 이 참선(參禪)을 하려면은 몸을 단정히 가지고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해야 하거든.
복식 심호흡이라 하는 것은 호흡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저 아랫배까지 호흡을 들어마셨다가 조용히 내쉬는,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조용히 내쉬는, 깊이 들어마시니까 자연히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볼록해진 다음에는 또 조용하니 숨을 내쉬니까 배가 홀쪽해지는, 숨을 마셨다 내쉬었다 하는데 따라서 아랫배가 볼록해졌다가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 하복부(下腹部) 단전(丹田)에다가 그 거기에다가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그거거든.
그렇게 하면은 우리의 기운은 자연히 아랫배로 내려가 가지고 머리가 시원해져서 그래서—이 사람 몸에는 불기운과 물기운이 있는데, 화(火)와 수(水) 있는데, 우리의 모든 생각은 불기운에 해당이 되는 것이여. 그래서 생각은 아래로 써야 혀.

그래서 단전에다가 생각은 거기다가 집중을 해야 불기운은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는 것이고, 단전 있는 데에는 우리의 그 콩팥, 신장(腎臟)이 있는데 신장은 그것이 수(水)인데, 그 콩팥에다가—우리의 생각은 화(火)인데, 생각의 불을 거기다가 지져 댐으로 해서 콩팥, 콩팥은 솥에 물이 담어진 거와 같아서 그 솥 밑구녁에다가 밑바닥에다가 불을 갖다가 지져 대니까 그 솥에 물이 끓어 가지고 수증기가 위에로 올라간 것이다 그 말이여.

그러면 우리의 생각은 (몸) 앞에서 밑으로 내려가고, 수증기는 밑에서 (몸) 뒤로 해서 올라가기 때문에, 불기운은 (몸) 앞으로 해서 밑으로 내려가고, 물기운은 (몸) 뒤로 해서 위에로 올라가니까 물기운과 불기운이 수승화강(水昇火降), 물은 올라가고, 불은 내려가서 수승화강이 잘되어 가지고 몸이 건강하고, 몸이 건강함으로 해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맑아져서 그래서 정진해 나가는 데 부작용이 없이 잘되어 가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 못되기 때문에 그놈이 수승화강이 아니라, 까꾸로 불은 위로 올라가고 올라가기 때문에 물기운은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물기운은 내려가고 불기운은 올라가서 수승화강이 아니라, 수화(水火) 승강(昇降)이 까꾸로 돌아가기 때문에 골치가 아프고 맑은 정신이 없어 가지고 얼굴이 벌개져 가지고 골치는 뽀개질라고 그러고, 정신이 안정이 안 되어 가지고 화두만 생각했다 하면 골치부텀 아프고 공부가 안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 참선 공부를 참으로 밤잠을 안 자고 열심히 공부를 해도 몸에 지장이 없이 할라면은 호흡법을, 호흡법을 잘 알아 가지고 단전호흡, 복식 심호흡을 제대로 익혀 가지고 해야 한다 그 말이여. 그런 위에 화두를 떠억 든다고 하면은 만무일실(萬無一失)이여. 아무리 용맹정진한다고 해도 몸에 병이 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것을 모르고서 덮어놓고 말뚝 신심을 내 가지고서 억지로 파고들다 보니까, 수화승강(水火昇降)이 안 되어 가지고 상기병(上氣病)이라고 하는 그런 병에 걸리는, 상기병은 약으로는 안 고쳐지는 것이여. 결국은 그 상기병은 이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잘해 가지고 참선을 잘하므로 해서 그 병이 낫는 것이지, 상기병은 약 먹어 가지고 병이 고쳐지질 안 혀.

그래서 그전에도 이 호흡하는 법에 대해서 누차 말을 했지마는, 몸을 단정히 가지고 이 호흡을 하되 처음에 잔뜩 가슴으로 들어마셔, 호흡을. 가슴이 터지도록 그리고 빨리 호흡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는 잔뜩 들어마신 다음에 입으로 '후~' 하고 내쉬란 말이여. 다 가슴을, 아주 이 가슴 속에 있는 호흡이 한 점도 남김없이 다 내쉬어 버려.(한 번)
다 내쉰 다음에 다시 한번 또 들어마셔.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참어. 참었다가 또 '후~' 하고 다 내쉬어 버려.(두 번)

그렇게 두 번을 하고서 세 번째부터서는 조용히 들어마셔. 들어마시되 가슴으로 들어마시지 말고 들어마신 호흡을 아랫배까지 내려가도록 들어마시란 말이여. 아랫배까지.
그래서 좌선을 하려면은 허리띠를 느슨하게 매야 해. 너무 꽉 허리띠를 짬매 노면 안 돼. 그래서 느슨하게 매고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까지 들어가도록, 손가락으로 이렇게 눌러 보면 빵빵하도록 그러되 100%로 다 들어마시지 말고 80%까지만 들어마셔.
들어마신 상태에서 한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히 호흡을 내쉬되, 호흡을 내쉼에 따라서 차츰차츰 배가 홀쪽해지도록. 그러니까 뱃속에 가득찬 호흡을 이렇게 눌러 가지고 (배) 뒤로 밀어 버리란 말이여. 뒤로 그 차츰차츰 (배를) 홀쪽이 맨들면은 그 호흡이 뒤로 해서 돌아 나가도록.

들어마신 호흡은 앞으로 해서 그 아랫배까지 들어마셔 가지고, 들어마신 호흡을 2~3초 머물렀다가 뒤로 밀어. 살모시 아조 아껴서 뒤로 밀면은 그놈이 뒤로 해서 이렇게 나가도록.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볼록해진 호흡을 2~3초 머물렀다가 조용히 뒤로 밀어 버리면은, 배를 홀쪽이 하면은 그 호흡이 뒤로 해서 요렇게 이 코로 나간다 그 말이여. 이것을 계속 되풀이하되 우리의 생각은 항시 아랫배 단전 거기에 가서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 말이여.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생각을 두고 '이뭣고?' 또는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그 알 수 없는 의심, 의심하는 마음, 의심이 거기에다가 거기에 가서 항시 있도록 그렇게 화두를 해 나가면 저절로 수화...(녹음 끊김)
이대로 잘해 나가면은 아랫배는 뜨뜻해지고, 온기가 아랫배에서 생겨 가지고 차츰차츰 그 온기가 커지면은 온몸이 훈훈해지는 것이여. 그러고는 머리는 아조 뒤통수가 시원해져 가지고 그렇게 깨끗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이것만 열심히 잘해도 '신선(神仙)이 되어 간다'고, 도교에서는. 도교에 신선들은 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해 가지고 장생불사(長生不死)를 하는 것이여. 일체 몸이 다 낫고, 밥을 먹지 아니하고 그 솔잎만 먹고 맹물만 마시고도 칠백 세, 천이백 세까지도 사는 사람도 있다 그 말이여. 중국에 도교에 팽조(彭祖) 같은 신선은. 이 심호흡을 잘하면은 그렇게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정신을 맑게 하고, 수명까지도 연장을 하고, 오신통(五神通)도 난다는 것이여.

우리가 단전호흡을 하는 것은 그러한 무슨 신통이 나고, 무슨 오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건강해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맑아짐으로 해서 참선을 잘하자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도(外道)가 하는 목적과 우리가 이 호흡을 하는 목적은 다른 것이다 그 말이여.
이러한 그 기초를 모르고서 덮어놓고 해 가지고서는 우리의 목적인 깨달음은, 깨달음의 목적지에는 도달하기 전에 중간에 부작용이 생겨 가지고 병이 나 가지고 공부도 못하고 인생을 참 헛되게 보내게 되는 그러한 안타까움을 만나게 되는 것이니까, 상기(上氣)가 있거나 없거나 이 호흡을 어쨌든지 잘해야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출가해 가지고 몸이 건강해야 공부를 하지, 몸이 아파 놓으면은 무슨 공부를 할 것이냐 그 말이여.

이 호흡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얼마든지 와서 의논을 해서 자기가 하고 있는 호흡이 옳은가 그른 것인가를 잘 알아 가지고, 잘 호흡법을 알아 가지고 해야—이 호흡만 잘되면은 추운 것도 잘 바우고, 더운 것도 잘 바우고 또 수화승강(水火昇降)이 잘되기 때문에 소화도 잘되고, 머리가 깨끗해서 화두를 들어도 정진이 깨끗하게 잘 나가지는 것이니까 그걸 좀 잘하도록.

그리고 이 호흡은 어디까지나 참선 잘하기 위한 방편(方便)이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참선은 어디까지나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간절하고 의심이 커야만 깨닫게 되는 것이니까, 궁극은 '참선'하면 화두(話頭)지마는 그 화두를 잘하려면은 몸을 단정히 하고, 호흡을 골라서 수승화강(水昇火降)이 잘되도록 그러한 기초 위에 마지막에 가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이 간절해야 한다.
'의심(疑心)이 간절하다'고 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따져서 알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못 '어째서 무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이 무엇고?'

자기 화두(話頭) 해야 혀. 이 화두 좀 해봤다, 이것이 좀 안된다고 해서 다른 화두 좀 해봤다 그런 게 아니라, 잘되거나 안되거나 잘되면 잘되는 대로 화두를 관(觀)해 나가고, 잘 못되면 못되어도 그 화두를 계속 들고 나가야 하는데,
'잘 못된다' 하는 것은, 화두를 들면은 금방 든 지가 얼마 안 되는데 딴생각[別念]이 들어오고—이 생각, 저 생각이 아무 주책없는 생각이 지내간 생각, 현재 닥치는 생각, 앞으로 다가올 생각, 또는 얼토당토않는 쓸데없는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리고 시간은 지루하고 몸은 뒤틀리고 애를 먹게 되는데 그러한 경지가 오더라도 그것이 나쁜 경지가 아니여.

짜증을 내지 말고 조용히 일어서서 바람을 좀 쐬고 들어와 가지고는 정신이 맑아지면 또 앉아서 하고. 하다가 또 몸이 뒤틀리고 혼침(昏沈)이 졸음이 와 가지고 영 맑은 정신이 안 나면은 다시 또 살모시 일어나 가지고 나가서 왔다갔다 정신을 좀 채려 가지고 들어와 가지고 또 하고 해서 그 고비를 넘기면은 또 한결 수월하게 또 잘되는 것이니, '잘된다'고 해서 또 좋아하지 말고 기쁜 마음을 내지 말고, 여법(如法)하게 화두만 들고 나가면은,
그렇게 해서 잘될 때도 있다가, 또 잘 안될 때도 있다가 하는 그런 많은 고비를 넘기고 또 넘기면서도 한결같이 퇴전하지 말고 번뇌심을 내지 말고, 여법히 화두를 들고 나가면은 반드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어 가지고 확철대오(廓徹大悟)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말이여.

확철대오하게 되면 반드시 선각자(先覺者)를 찾아서 점검을 받아야지, 자기 나름대로 알았다 해 가지고는 선지식을 찾지 아니하면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번성독약(翻成毒藥)이라」 제호(醍醐)라고 하는 것은 우유로 만든 최고로 맛있는 음식인데, 그 맛있는 음식이 변해 가지고 독약이 되는 격이 되아.
그 애써서 얻은 그 깨달음이 선지식을 만나지 아니하고 그것으로써 스스로 자족(自足)을 해 가지고 살림을 해 가면은 그 좋은 제호상미(醍醐上味)가 독약이 된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깨닫기 전에도 선지식을 의지해서 공부를 해야 하고, 깨달은 뒤에도 선지식의 지시에 의해서 오후공부(悟後工夫)를 지어가야 참 옳게 닦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 해제(解制) 때까지 한 보름 남었는데 보름 동안, 정초(正初)가 되어서 좀 어수선한 점도 있겠지마는, 어수선하거나 말거나 언제든지 우리는 처음보다도 중간, 중간보다도 끝으로 가면서 공부가 알뜰하게 되어져야, 알뜰하게 공부를 지어가야 그 사람은 참으로 발심한 사람이고, 옳은 사람이여.
처음에는 근사하니 아주 발심한 것처럼 하다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그 신심(信心)이 식어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그런 것을 용두사미(龍頭蛇尾)라 그러는데, 용두사미로 된 사람은 백사(百事)가 불성(不成)이여.

보통 납월팔일(臘月八日)이 지내면은 해제만 기다리고 있는 그러한 수가 있는데, 우리 대중은 해제가 가까워질수록에 더욱 채찍을 가하면서 알뜰히 정진을 해 가지고 그렇게 참 용두사미가 아니도록 끝으로 갈수록 점점 공부가 충실하도록 그렇게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20분30초~39분30초) (끝)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版과 板은 동자(同字).
[참고] 『선문염송(禪門拈頌)』 (고려 진각혜심眞覺慧諶 선사 편찬) 475칙 ‘판치(版齒)’
 (古則) 趙州因僧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版齒生毛.

조주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投子靑頌) 九年小室自虛淹 爭似當頭一句傳 版齒生毛猶可事 石人蹈破謝家船

투자청이 송했다.
9년을 소림에서 헛되이 머무름이 어찌 당초에 일구 전한 것만 같으리오.
판치생모도 오히려 가히 일인데 돌사람이 사가(謝家)의 배를 답파했느니라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 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3~54.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할지어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상기(上氣) ; ①[한의] 피가 뇌로 몰리는 현상. 얼굴이 붉어지고 열이 나며, 발한, 두통, 이명(耳鳴), 현기증 따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②얼굴이 흥분이나 수치감으로 붉어짐.
*육단심(肉團心) : [범어] Hrdaya. 흘리다야(紇利陀耶)는 번역해 육단심(肉團心)이며 약칭이 육심(肉心)이다. 4심(四心)의 하나. 사람 육신의 오장(五臟) 중의 심장(心臟)이다. 그 형태가 8판(瓣)의 육엽(肉葉)으로 이루어졌다. 의근(意根)이 의탁한 곳.
참선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하복부(下腹部) 단전(丹田)에다가 그 거기에다가 화두를 두고 의심을 관(觀)하라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 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 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 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 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 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 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 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 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19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수승화강(水昇火降) ; 시원한 물 기운은 위에로 올라가고, 더운 불기운은 밑으로 내려가게 하는 것.
물이라 하는 것은 원래 위에서 밑으로 흘러내리고, 불은 밑에서 위로 타오르는 것이 그 원래 가진 성질이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우리의 정신을 배꼽 밑에 단전에다가 집중을 함으로써 우리의 불기운은 밑으로 내려가서 아랫배가 뜨뜻해지고, 시원한 물 기운은 위로 올라가서 머리가 시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뚝 신심 ; 말뚝은 보기에는 견고해 보이나 뿌리가 없어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거나 썩어 버린다. 이것에 비유하여 보기에는 열심인 듯하나, 꾸준하지 않고 잠깐 일어난 신심을 '말뚝 신심'이라 한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이뭣고? ;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라는 뜻으로, 줄여서 '이뭣고?'라 하는데, 모든 화두(공안)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입니다. 화두(話頭)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저 하늘에 별은 몇 개나 되며 큰 것은 얼마만큼 크냐?' 그런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언제 죽겄다. 저 사람은 35살이 되아야 국장이 되겄다' 그러한 것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여기 앉아서 백 리, 이백 리, 저 광주나 부산 일도 생각하면 환하고 그래서 공간에 걸림이 없이 마음대로 왔다갔다하고,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면 시간적으로도 걸림이 없이 그놈은 왔다갔다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누구보고 물어봐도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무엇이겠느냐’ 다 그렇게 얘기하겠지만 ‘마음’이라 하는 것도 고인(古人)이 편의상 지어 놓은 이름에 지나지 못하지, ‘마음’  ‘성품’  ‘주인공’ 뭐 얼마든지 우리나라 이름도 많고, 중국 한문 문자도 많고, 서양 사람은 서양 사람대로 다 그놈에 대한 이름을 여러 가지 붙여 놓았을 것입니다마는, 붙여 놓은 이름은 우리가 들은 풍월로 알고 있는 것뿐이고, 그런 이름은 몇천 개라도 앞으로 새로 만들어 붙여 놓을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런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붙인 그 자체, 그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놈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이 몸을 받아나기 이전부터 그놈은 있었고, 몇천만 번을 그놈이 이 옷을 입었다 벗어버리고 저 옷 입었다 벗어버리고—사람 옷도 몇백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짐승의 껍데기도 몇천만 번 입었다 벗었다 했을 것이고, 그놈이 지옥에도 천당에도 가봤을 것이고, 귀신으로 떠돌아도 봤을 것입니다.
그렇게 무량겁을 생사윤회를 돌고 돌다가 전생에 무슨 인연으로 해서 금생에 이 사바세계 대한민국에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래가지고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오시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이나 모든 성현들은 진즉 이 문제에 눈떠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 해서 생사(生死)에 자유자재하고, 그 자유자재한 그놈을 마음껏 수용을 하고 활용을 하신 분들인 것입니다.

화두(공안)이라 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을 여는 열쇠인데,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나의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오신통(六神通) ; 보통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을 헤아림을 신(神)이라 하고, 걸림 없는 것을 통(通)이라 한다. 다섯 가지 불가사의하고 자유 자재한 능력.
①신족통(神足通) 마음대로 갈 수 있고 변할 수 있는 능력.
②천안통(天眼通) 모든 것을 막힘없이 꿰뚫어 환히 볼 수 있는 능력.
③천이통(天耳通) 모든 소리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
④타심통(他心通) 남의 마음 속을 아는 능력.
⑤숙명통(宿命通) 나와 남의 전생을 아는 능력.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 용화선원刊) p94-95 참조.(가로판 p99~100)
“제일통으로부터 제오통까지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음을 고요히 가지기만 힘쓰는 유루정(有漏定)을 닦는 외도(外道)나 신선(神仙) • 하늘 사람(天人) • 귀신들도 얻을 수가 있고, 약을 쓰든지 주문(呪文)을 읽어도 될 수 있다。그러나 누진통만은 아라한(阿羅漢)이나 불•보살만이 능한 것이다”
*누진통(漏盡通) ; 번뇌를 모두 끊어, 내세에 미혹한 생존을 받지 않음을 아는 능력.
*외도(外道 바깥 외/길 도) ; ①불교 이외의(外) 다른 종교(道)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②그릇된 가르침, 그릇된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
*바우다 ; ‘감당하다(堪當--, 능히 견디어 내다) 혹은 피하다, 이겨 내다’를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딴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參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주책없다 ; (언행이) 일정한 줏대나 요량이 없이 자꾸 이랬다저랬다 하여 몹시 실없는 데가 있다.
*얼토당토않다 ; ‘얼토당토아니하다(전혀 관계가 없다)’의 준말.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타성일편(打成一片 칠 타/이룰 성/한 일/조각 편) : ①'쳐서[打] 한 조각(一片, 덩어리)을 이룬다[成]' 참선할 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疑心)만이 독로(獨露)한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②차별대립을 여읜 경지. 이분법적이고 상대적인 것이 융화 · 용해되어 하나가 되는 것.
*확철대오(廓徹大悟 클 확/통할 철/큰 대/깨달을 오)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을 깨달음.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제호상미(醍醐上味) 번성독약(翻成毒藥) ;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74~75. (가로판 p78)
然(연)이나  一念子(일념자)를  爆地一破然後(폭지일파연후)에  須訪明師(수방명사)하야  決擇正眼(결택정안)이니라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뒤에는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 눈이 바른가를 결택 받아야 하느니라。
    
註解(주해) 此事(차사)는  極不容易(극불용이)하니  須生慚愧(수생참괴)하야사  始得(시득)다  道如大海(도여대해)하야  轉入轉深(전입전심)하니 愼勿得小爲足(신물득소위족)하라  悟後(오후)에  若不見人則(약불견인즉) 醍醐上味(제호상미)가  翻成毒藥(번성독약)하리라
 
이 일은 결코 쉽지 않으니 모름지기 부끄러운 생각을 내야 한다。도(道)란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욱 더 깊어 가는 것이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 하지 말라。깨친 뒤에 만약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제호(醍醐)와 같은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되리라.

*오후공부 ; 오후보림(悟後保任). 보림(保任). 선종(禪宗)에서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의 습기(習氣)를 제하고 도(道)의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 공부.
'보임'은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로서 ‘찾은 본성을 잘 보호하여 지킨다’는 뜻이다. 또는 ‘保其天眞 任其自在, 그 천진함을 보전하고 그 자재함을 따른다’는 뜻이다. 장양성태(長養聖胎). 한자 독음상 ‘보임’이지만 관습적으로 ‘보림’이라고 읽는다.

[참고] 『몽산법어(蒙山法語)』 「고담화상법어(古潭和尙法語)」 (용화선원刊) p137~139. (가로판 p133~135)
迷雲이  散盡하면  萬里靑天에  中秋寶月이  湛徹澄源하리니 虛空에  發焰하며  海底에  生煙하야  驀然磕着에  打破重玄하리니 祖師公案을  一串에  都穿하며  諸佛妙理가  無不周圓하리라

미혹의 구름이 다 흩어지면 만리청천(靑天)에 가을달이 깊이 맑은 근원에 사무치리니, 허공에서 불이 나며 바다 밑에서 연기가 나면 문득 맷돌 맞듯 하야 깊은 현관(玄關)을 타파하리니, 조사의 공안을 한 꼬챙이에 모두 꿰뚫으며 모든 부처님의 묘한 진리가 두루 원만치 않음이 없으리라.

到伊麼時하얀  早訪高玄하야  機味를  完轉하야  無正無偏하야  明師가  許爾어든  再入林巒하야  茅庵土洞에 苦樂을  隨緣하야  無爲蕩蕩하야  性若白蓮호리니

이런 때에 이르러서는 일찌감치 덕 높은 선지식을 찾아서, 기미(機味)를 완전히 돌려서 바름[正]도 치우침[偏]도 없게 하야, 밝은 스승이 허락하거든 다시 숲속으로 들어가서 띳집과 동굴에서 고락을 인연에 따르되 하염없이 탕탕(蕩蕩)하여 성품이 흰 연꽃 같게 할지니.

*해제(解制 풀 해/만들•법도 제) ; ①(안거)를 마침. ②재계(齋戒)하던 것을 그만두고 풂.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납월팔일(臘月八日) ; 납월(臘月)은 음력으로 한 해의 맨 마지막 달을 이르는 말. 음력 12월 8일.
석가모니가 35세의 12월 8일 중인도 마갈타국 니련선하(尼連禪河)가에 있는 보리수 아래에서 샛별[明星]이 뜰 무렵 별을 보고 불도(佛道)를 이루던 날. 부처님의 성도일(成道日). 납팔(臘八)이라고 줄여 쓰기도 하고, 성도회(成道會) · 성도절(成道節) · 성도재일(成道齋日) 등이라고도 한다.
이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한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단전호흡2021. 9. 12. 08:00

참선 자세, 단전호흡((No.472))—단전호흡은 식사를 하고, 공양을 하고 2시간 뒤에 하라 | 의심이 크면은 크게 깨닫고, 의심이 적으면 적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은 깨닫지 못한다 | 간절하게 하는 것과 우격다짐으로 용을 쓰고 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 | 달마 스님은 『혈맥론(血脈論)』에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바른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헛되이 일생을 보내리라'



*참선 자세 ; 단정(端正)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나 목이나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단정히 한 것’과 ‘긴장을 해서 몸에다 힘을 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참선을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단전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 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〇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12분 8초)

 


[법문] 송담스님(No.472)—1992년 5월 첫째일요법회(92.05.03) (용472)

첫째, 참선하는 데는 자세를 바르게 하거든. 가부좌(跏趺坐)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를 떠억 하고. 해서 자세를 바르게 해.
자세를 앞으로 숙어도 안 되고, 좌우로 이렇게 기울어도 안 되고 또 단정히 한답시고 너무 지나치게 뻣뻣하니 뒤로 자지바지 이것도 못쓰는 거여. 단정하면서도 양어깨에 힘을 다 빼고 목에 힘도 빼고, 눈은 감지 말고, 그렇다고 해서 너무 뚝 부릅뜨지도 말고 평상(平常)으로 뜨는 거여.

평상으로 뜨되, 앉은 자기한테로부터 약 2미터 지점에다 눈을 떨구는 거여.
'눈을 떨군다' 하는 것은 그 2미터 지점에다가 무슨 콩 같은 것을 놔두고 그 자리를 이렇게 그걸 쳐다보고 그렇게 하면 못쓰는 거고, 그냥 본 바 없이 평상으로 눈을 거기다 떨구라는 것이지, 그 자리를 응시(凝視)할 필요는 없어. 응시해선 안 되아.

그렇게 해서 자세를 바르게 하고 눈을 그렇게 평상으로 떴으면, 그다음에 호흡을 하되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는데, 단전호흡은 깊이 들어마셔서 조용히 내쉬는, 그리고 천천히 들어마시고 천천히 내쉬는 거여.
왜 이 단전호흡이 필요하냐 하면 사람이 살아 있는 증거는 숨을 쉬고 있으면 '살아 있다' 하고, 숨을 못 쉬면 죽은 거여. 그래서 이 호흡은 인간 생사(生死)와 즉결되는 문제여. 대단히 중요한 거여.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흡을 무심히 하는 거여. 그저 무심히 하고 있지만, 사실은 호흡은 바르게 하는 호흡이 있고, 바르지 못한 호흡이 있어.
바르게 호흡을 해야 몸의 노폐물이 밖으로 잘 배설이 되고, 따라서 피로도 회복이 빨리 되고 몸도 가벼워지고, 몸만 가벼워질 뿐만 아니라 정신도 맑아지고 안정이 되는 거여.

그래서 어렸을 때, 어머니 뱃속에서 막 갓 태어났을 때는 저절로 이 단전호흡을 하고 있는 거여. 그런데 차츰차츰 커가면서 그 단전호흡을 잊어버린 거여.
그래 가지고 잘못 호흡을 해 가지고, 요새 사람들이 어떻게 조금만 건들면 파르르르 신경질을 내고 단기(短氣)하고, 참을성이 없고 경솔하고, 신경질을 잘 내고 한 것이 전부 어렸을 때 배우지 않고도 알고 있었던 그 단전호흡을 잊어버리고 잘못 호흡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되는 거여.

그래서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까 단전호흡법을 잘 알아 가지고 서서히 그 어렸을 때 숨쉬던 단전호흡으로 돌아가면 사람이 신경질 잘 내던 사람도 안 나게 되고, 사소한 일에 흥분하는 버릇도 없어지고, 한 번 속상했다 하면은 며칠씩 그것이 안 없어지고 한 것도 단전호흡을 하면 금방 속이 좀 상하려고 하다가 금방 안 상할 수도 있고, 자기도 모른 새 상했다 하더라도 금방 그 생각을 돌이킬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여. 그렇게 중요해.
그래서 몸도 가벼워지고 어지간한 병은 다 없어지고, 혈압이 높은 사람도 혈압 약을 안 먹어도 이 단전호흡을 잘하면 혈압도 조정할 수가 있어.
물론 오줌만 잘 먹어도[요료법(尿療法)] 혈압 같은 건 대번에 일주일이면 낫지마는, 오줌 안 먹더라도 단전호흡만을 열심히 해도 사람이 달라지는 거여. 자기의 감정을 자기가 자유자재로 할 수가 있는 능력이 생기는 거여.

그래서 참선을 안 하는 사람도 이 단전호흡을 하면 참 좋고, 단전호흡을 하면서 참선까지 한다면 몸도 건강하고 정신도 건전하고 나아가서 확철대오해서 생사(生死)까지 해탈(解脫)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말이여.

그래서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하는 법을—단전호흡하는 법을 이 자리에서 더이상 내가 자세히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이 「참선법」이라고 하는 카세트(cassette)가 이 사무실에 가서 말하면, 그것을 구해 가지고 열 번, 스무 번, 백 번, 천 번을 들으면은 자연히 이 단전호흡을 바르게 하는 법을 터득을 하게 되고, 화두를 드는 법도 터득을 하게 될 것인데 오늘은 간략히만 말씀을 드립니다.

준비 호흡을 세 번, 빨리 가뜩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코로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입으로 '후~~~' 완전히 하나도 없을 때까지 다 내쉬고, 다 내뿜었으면 또 들어마셔.
될 수 있으면 빨리 가뜩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어. 그래 가지고 입으로 '후~~~' 하고 다 내쉬어.
이렇게 하기를 세 번을 하면 가슴속에 있는 묵은 공기가 완전히 다 밖으로 내뿜게 된다 그말이여.

그러면서 세 번을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는 그때는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조용하게 숨을 들어마시되 배꼽 밑에 단전, 아랫배가 차츰차츰 볼록해진 것을 느끼면서 숨을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되 너무 가뜩 들어마시지 말고 8부쯤만 들어마시는 거여. 8부쯤만 들어마셨으면 하나, 둘, 셋,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조용하니 숨을 내쉬되, 입으로 내쉬지 말고 코로 내쉬어. 코로 들어마셨다가 3초 동안 정지했다가 코로 조용하니 내쉬는 거여.

그러면 들어마시는 시간이 약 3초, 정지하는 시간이 약 3초, 내쉬는 시간은 조금 길게 한 4, 5초 이렇게 조용하니... 들어마시는 것도 약 8부쯤만 들어마시되, 내쉬는 것도 약 8부쯤만 내쉬어.
가뜩 너무 가뜩 들어마시고, 너무 오래 참고, 너무 완전히 내쉴라... 준비호흡은 그렇게 하지만,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8부쯤만 들어마시고, 참는 것도 약 3초 동안만 정지했다가, 내쉬는 시간도 완전히 다 내쉴라 하지 말고 8부쯤만 내쉬라 그거거든.

하되 식사를 하고, 공양을 하고 2시간 이내에는 단전호흡을 하지 말아. 하면은 위(胃)에 압박을 주니까 2시간 이내에 하지 말고, 2시간 뒤에 단전호흡을 하고.
처음으로 한 사람은 한 5분간만 하고, 또 쉬었다가 또 하고 해서 조금씩, 조금씩 해서 익혀 나가도록.

이것이 좋다 하니까 너무 무리를 해 가지고, 밥 금방 먹고 가득 위에 음식물이 들어 있는데 무리를 해 가지고 소화가 잘 안되거나, 가슴이 답답하거나 이런 수가 있으니까.
아무리 좋은 것도 맛있는 음식일수록에 조그만치 먹어야지, 맛있는 음식이라고 해서 배가 터지도록 먹고 배탈이 나고 설사하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로 단전호흡이 좋다니까 이걸 너무 무리하게 해 가지고 병 난 사람을 내가 가끔 보거든.

그래서 그런 일이 없도록 서서히 부담 없이, 자연스럽게 이렇게 해서 조금씩 조금씩 해서 익혀 나가도록 하고.

화두는 '이뭣고?'를 하되, 숨을 들어마셨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처음에는 그렇게 익혀 나가도록.

「'이뭣고?'를 하되 의심(疑心)을 간절하게 의심을 하라」 이렇게 고인(古人)이 말씀을 하셨고, 「대의지하(大疑之下)에 대오(大悟)하고, 크게 의심이 크면은 크게 깨닫고, 의심이 적으면 적게 깨닫고, 의심이 없으면은 깨닫지 못한다」 이렇게 고인이 말씀을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마에다가 아주 여기다 '내 천(川)’ 자를 쓰면서 (힘을 주면서)'이뭣고? 이뭣고?' 해 가지고 막 그냥 용을 쓰고 이렇게 얼마 안 가면 그 사람은 골이 뽀개지는 병이 생기는 거여.

간절하게 하는 것과 우격다짐으로 용을 쓰고 한 것과는 전혀 다른 거여.

그래서 이 참선하는 분은 반드시 법문(法門)을 자주 듣고 그 법문에 의지해서 바르게 해 나가야지, 참선이 아무리 좋아도 자기 식으로 우격다짐으로 말뚝 신심이 나 가지고 어거지로 막 몰아붙여 상기병(上氣病)이 생기고, 골치 아픈 병이 생기고, 소화불량이 생기고 아무짝에도 못쓴다 그 말이거든.

반드시, 그래서 달마 스님은 그 『혈맥론(血脈論)』에 '불급심사(不急尋師)면 공과일생(空過一生)이다. 급히 바른 스승을 찾지 아니하면 헛되이 일생을 보내리라' 하고 아주 탁! 못 박아서 말씀을 하셨다 그 말이여.
눈으로 보고 가는 길도 두 갈래, 세 갈래 길이 나오면은 어디로 갈 줄 모르는 것인데, 그래서 반드시 길 아는 사람한테 물어봐야 하는데, 이 참선은 눈으로 보이는 길이 아니거든. 마음으로 하는 것인데 어떻게 바른 스승 없이 제대로 해 갈 수가 있겠느냐?
까딱하면 병나고, 잘못하면 미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말이여. 사견(邪見)에 빠지면 그거 미친 것이거든.

그래서 이것은 참! 바른 스승 없이는 하기가 어려운 것이고, 기왕 시작했다 하면 반드시 이것은 전신투구 전력투구(全力投球)를 해서 깨달아야 되는데, 바르게 해 나가야 한다.

오늘 화두를 새로 탄 사람은 그렇게 알고, 어쨌든지 출가한 사람은 '이거 하나 하자'고 출가를 하고, 출가법을 부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이니까 어쨌든지 철저하게 바르게 해서 대도(大道)를 성취하기를 바랍니다.(59분1초~1시간11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단전호흡2020. 10. 25. 06:37

단전호흡(세등24)—올바른 자세, 올바른 (단전)호흡하는 법과 화두 드는 법 |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 있는 선방(禪房), 선불장(選佛場)이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24)—기미년 동안거 결제 법문(79.10.17) (세등24)

 

(1) 6분 45초.

(2) 14분 40초.

 

(1)------------------

 

첫째, 참선을 하려면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궁뎅이를 탁 뒤로 밀어버리고, 단전(丹田) 밑의 배는 앞으로 이렇게 밀고서, 24퇴 척추 척량골(脊梁骨)을 쭈욱 펴고, 고개는 앞으로 숙이지도 말고 뒤로 젖히지도 말고,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게 하고, 두 귀가 두 어깨 위에 수직으로 딱 놓이도록 몸을 단정히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뒤로 자지바지 허니 버티지도 말고, 단정하면서도 목에 힘을 빼야 합니다.

 

요새 조금 자리가 올라가면 ‘목에다 힘을 준다’고 합니다마는 목에 힘주는 건 대단히 좋지 못합니다.

특히 참선하는 사람은 목에 힘을 빼고서 그리고 어깨의 힘을 빼고 그리고 단정하니 앉되, 눈을 감아서는 안됩니다. 눈을 감으면 앞의 것이 보이지를 않아서 아주 조용해진 것 같아서 공부가 잘된 것 같지마는 눈을..(녹음끊김)

 

가득 들어마셔 가지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입으로 ‘후〜’하고 내쉽니다. 다 내쉽니다.

다 내쉰 다음에 다시 한번 또 될 수 있으면 빨리 가슴이 미어지도록 가득 들어마십니다. 가득 들어마신 호흡을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또 입으로 ‘후〜’하고 다 내쉽니다.

 

이것은 허파 속에 있는 묵은 공기를 깨끗이 소지(掃地)해 내는 준비 호흡이 되는 것입니다.

 

가슴속의 허파는 풍선처럼 속이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벌집처럼 생겼습니다. 벌집처럼 생겨 가지고, 보통 가볍게 숨을 짧게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해 가지고서는 허파의 저 구석구석까지 새로운 공기가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참았다가 다 내쉬고, 이렇게 해서 한 2번 내지 3번을 해야 허파 속의 묵은 더러운 공기가 깨끗이 대청소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다음에 정식으로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는데 단전호흡은 배꼽과 불두던과의 중간에 단전(丹田)이라고 하는 곳이 있습니다.

 

그 단전이라고 하는 곳은 사람의 삼백육십 골절과 오장육부와 팔만사천의 경락(經絡)의 총중심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시 거기다가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육체적으로도 거기다 중심을 잡아야 하고, 우리의 의식도 거기다 중심을 잡아야 그 몸의 균형이 잡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시 궁둥이를 뒤로 쭉 빼고, 아랫배를 앞으로 내민듯한 기분으로 그리고 허리를 쭈욱 펴고 앉으면 그것이 바로 중심이 단전에 딱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걸어갈 때에도 그러한 기분으로 걸어가고, 누구와 이야기할 때도 그런 기분으로 이야기를 하고, 참선할 때도 그러한 기분으로 참선하게 되면, 몸의 중심이 딱 잡히기 때문에 저절로 혈액순환도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도 가벼워지고 피도 맑아지고 정신도 안정이 되고 정신도 깨끗해지기 때문에,

참선할려면은 몸이 건강하고 혈액순환이 잘되고, 정신이 안정이 되고 깨끗해져야 참선도 잘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도리여.

 

그래서 단전호흡 자체가 참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참선을 성취하는 데에는 화두(話頭)를 올바르게 참구(參究)를 해서 화두를 타파(打破)함으로써 자아를 깨닫게 되는 것이지마는, 그것이 장애가 없이 잘되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 몸이 건강해야 하고, 몸이 건강하려면 혈액순환이 잘되어야 하기 때문에 단전호흡을 잘 익혀서, 단전호흡을 참선의 기초공사라 이리 생각을 하고.

 

기초공사가 튼튼해야 그 지어진 집이 벽이 벌어지지도 아니할 것이며, 집이 쓰러지지 아니할 것이다.

기초공사 없는 곳에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봤자 와우(臥牛) 아파트처럼 그러한 대춘사(大椿事)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말이여.

 

몸을 건강하게 하는 기초공사 없이 어떻게 발심(發心)했다고 해서 억지로 밤잠을 안 자고, 밥을 굶고, 묵언을 하고 애쓴다고 해봤자, 까딱하면 상기병(上氣病)이 걸리고, 소화불량이 걸리고, 혈액순환이 안되어 가지고 밤낮 아프다고 약만 다려 먹고 해봤자 낫어야지.

 

약을 먹지 아니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법, 그러한 법이 바로 이 단전호흡을 하면서 생수를 마시고 또 자연식(自然食)을 하고, 이것이 바로 참선하는 사람의 건강관리에 있어서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44분30초~51분12초)

 

 

 

(2)------------------

 

언제든지 좌선을 해서, 딱 참선 시작할 때에는 준비 호흡으로 숨을 가득 가슴으로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만큼 참었다가 입으로 ‘후—’하고 다 내쉬어 버리고 나서, 그렇게 2번을 하고서,

 

3번째는 가슴으로 들어마시지를 말고 가슴과 윗배는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불어나도록, 볼록해지는 것을 스스로 의식하면서 숨을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시는 거여.

들어마시되 윗배와 가슴은 약간은 움직이겠지만 거의 가만히 있도록 유지를 하면서 아랫배만 약간 볼록해진다 말이여.

 

들어마시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초, 3초 동안에 스르르르 하니 아주 수월하게 들어마시는 거여. 너무 오랜 시간을 걸려서 들어마실라고 하지를 말고,

스르르르 하니 들어마셨으면 너무 가득 들어마시지를 말고, 아까 준비 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지만 인자 본(本) 호흡, 단전호흡에 들어가서는 배가 터지도록 들어마시면 안된다.

 

8부쯤만 들어마셔. 더 들어마실수 있지마는 8부쯤만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8부쯤 들어마신 상태에서 약 3초 동안을 머물러.

딱 정지한 상태에서 머물렀다가 조용하게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이렇게 홀쪽해지도록.

 

그 홀쪽해지기 시작할 때 그때 ‘이뭣고~?’ 속으로 그렇게 하면서 숨을 내쉬는 거여.

 

이것은 아주 초보자를 위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보자는 이러한 방법을 써서 하면 단전호흡과 화두가 함께 되어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지어 들어가면 머지않아서 단전호흡도 잘되고, ‘단전호흡 했다’하면 화두도 거기에 붙여서 함께 잘되어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가 익숙해진 사람은 숨을 들어마시거나 내쉬거나, 밥을 먹거나, 옷을 입거나, 그까짓 것도 구애 없이 항시 화두의 의단(疑團)이 항시 목전(目前)에 상주해서, 눈앞에 항시 나타나서 일여(一如)하겠지만,

처음 한 사람은 ‘이뭣고?’해도, 금방 ‘이뭣고?’한 사이에 생각은 동쪽으로 서쪽으로 왔다갔다 하고, 어렸을 때로 날아갔다, 집으로 날아갔다, 야단이거든. 그러다 보면 화두를 놓쳐 버린다.

 

그래서 다시 또 챙길라면은 힘이 들거든. 그러다 억지로 ‘이뭣고?’ ‘이뭣고?’하다 보면은 모가지만 뻣뻣해 가지고 골만 빠개질라고 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도 안되고.

아! 이러니 할려고 마음은 내는데, 할려고 하면은 잘 안되니 그거 어떻게 하냐?

 

그래서 과거에 도인(道人)들이 여러 가지로 다 경험을 해 보고 연구를 한 결과 이 단전호흡을 겸해서 하도록 이렇게 모다 지도를 해 오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지금 오늘 유독 결제날이기 때문에 단전호흡하는 법과 화두 드는 법에 대해서 이렇게 자세히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시간이 벌써 넘어서 배가 고파 죽겠는데, 고만 했으면’ 이러시겠지만 굶어서 돌아가시지를 않습니다. 조금 배가 고파야 말이 들어가지, 잔뜩 먹고 쌕쌕거리게 되면은 졸음만 오지 법문이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시장한 다음에 잡숴야 밥이 맛이 있습니다.

 

숨을 들어마셨다가 3초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하면서 내쉬는데,

숨을 들어마실 때 어떻게 들어마시냐 하면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불룩하도록 이렇게 하지를 말고, 물론 코로는 들어가겠지만 우리의 기분으로는 저 궁둥이 뒤에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이렇게 볼록해지도록 그런 기분으로 들어마시고,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머물렀다 내쉴 때는 ‘이리 해서 코로 내쉰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내쉴 때도 저리 뒤로 해서, 궁둥이 뒤로 해서 저 뒤로 쑤욱 내보낸다는 그런 기분으로 내쉬어 보시라 그말이여.

 

저 뒤에서 쑤욱 들어마셨다, 들어마신 호흡을 3초 동안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저 뒤로 쑤욱 배꼽을 뒤로 잡어당기면서 뒤로 내쉬는 거여.

 

그런데 절대로 무리하게 억지로 하지를 말어. 너무 억지로 해 가지고는 그냥 한 두어 번만 하면 숨이 가쁘게 이렇게 하시다가 ‘아이고! 그거 되아서 못하겠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하시는 게 아니예요.

 

아주 수월하게—들어마시는데 3초 걸리고, 3초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한 4~5초 걸리게 조용하게 내쉬고,

이렇게 들어마셨다 내쉬었다 하는 거기에다가 ‘이뭣고~?’하는 알 수 없는 의단을 거기다가, 배꼽밑에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거기다가 관심을 두고서 화두를 거각(擧却)해 보시라 그말이여.

 

백 명이면 백 명, 몸도 차츰 건강해지고 가벼워지고 골치 아픈 병이 있는 사람도 그렇게 하면 병이 낫거든.

가슴이 답답한 증세가 있는 사람도 그게 낫고, 집안에서 무슨 일로 속이 상해서 가슴앓이 속병이 있는 사람도 이것을 하면 그 병이 낫는다 그말이여.

 

이것을 하면서 화두까지 거기다 겸해서 하면은 결정코 깨달음까지 이르른다 이말이여.

화두는 아니하고 밤낮 고것만 하고 있으면 그것은 병을 고치는 데에는 효과가 있지만 그래 갖고는 그건 깨닫지를 못하는 것이여.

 

거기에다 화두를 꼭 붙여 가지고 의단이 독로(獨露)하도록, 의단이 순일무잡(純一無雜)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면 몸도 건강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에까지 이르른다. 이것이 바로 정법(正法)이요, 최상승법(最上乘法)이다.

 

이렇게 해 나가면 선방에 방부(房付)를 들이지 아니하고 가정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그렇게 하시고 낮에도 시간 있는 대로 그렇게 하시고,

이 공부는 꼭 앉어서만 하는 게 아니라 일하면서, 말하면서, 걸어가면서, 차 타면서, 행주좌와 간에 할 수 있는 것이라, 오늘 백일기도에 동참하시고 또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은 모두가 다 이 세등선원에 방부를 들인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다못 장소가 형편상 이 세등선원일 수도 있고, 또 보문사일 수도 있고, 군산일 수도 있고, 또 시내일 수도 있고, 조치원일 수도 있고, 청주일 수도 있고, 서울일 수도 있습니다. 장소야 어디건 그거 상관이 없어.

 

한 생각 딱! 챙겨 가지고 ‘이뭣고?’할 때 바로 그 자리가 선방(禪房)이여. 선불장(選佛場)이여. 바로 그 자리가 부처님을 모시고 앉아 있는 선방이다.

 

이렇게 생각하시고 한 생각 한 생각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말고, 한 생각 일어나는 그자리에서 숨을 스르르르 들어마셔 가지고 ‘이뭣고?’ 이렇게 단속해 나가.

업장(業障)이 거기에서 봄눈 녹듯이 녹아 없어지거든. 업장이 녹아지면은 소원성취는 거기에 있거든.

 

 

내가 그전에는 얼굴이 아주 시커먼 사람인데, 아! 30년을 참선을 하니까, 내 얼굴보고 검다고 하지 않는다 그말이여.

성질이 아주 불같아 가지고 신경질을 잘내기로 아주 유명하고, 고집이 센 사람인데, 아! 참선을 했더니 나 보고 마음보 고약한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 별로 없다.

 

여러분 가운데 혹 얼굴이 검어서 고민인 사람, 얼굴에 무엇이 많이 나서 고민인 사람, 또 신경질을 많이 내고 고집이 세다고 욕을 먹고 그러한 평판이 있는 분,

오장육부에 병이 많은—내가 또 병주머니여서 학교를 다닐 때는 1년에 한 달 내지 두 달은 꼭 결석을 했다.

 

아, 그런데 출가해 가지고 참선을 하니까, 사람들이 나보고 대단히 건강하다고 그런는데, 내가 별로 약도 많이 먹지도 않고, 병원에 가기를 그렇게 죽기보다 더 싫어한 사람이어서 병원에 잘 안 가고 그러는데, 참선을 해서 이렇게 몸도 건강해진 것 같어.

 

여러분들도 참선을 열심히 하시고, 제가 금방 이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의식주 문제라든지, 일상 생활 속에서 화두를 단속하는 이러한 법을 명심을 해서 실천에 옮기신다면 얼굴도 예뻐질 것이고 오장육부의 병도 다 나아질 것이고,

성격이 고약하다고 평판이 있는 시어머니, 며느리, 스승, 상좌 할 것 없이 다 불보살과 같이—나는 워낙 고약한 사람이라 그렇지, 보통 된 사람이 그만큼 열심히만 하면 틀림없이 금생에 불보살과 같이 될 것을 나는 맹세를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아까 몽산 스님한테 책임을 따져야 됩니다. 몽산 스님이 '대신 지옥에 간다'고 맹세를 하셨거든.

나도 역시 몽산 스님과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깨닫지 못한다면 나도 여러분을 대신해서 지옥에 간다』고 자신있게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나는 경험을 통해서도 그것을 느꼈고, 이러한 선지식(善知識)들의 법문을 여지없이 믿기 때문에 추호(秋毫)도 나는 의심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것이니 오늘 결제일을 기해서 여기에 모이신 출가한 스님네나 마을에 계신 신도 여러분들, 오늘 새로 태어났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정말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해서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서 결정코 대도를 성취해 주시기를 간곡(懇曲)히 부탁을 드리고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수설운산천만사(雖說雲山千萬事)라도  해천명월본무언(海天明月本無言)이니라

나무~아미타불~

 

구름 일어나듯이, 산에 구름 일어나듯이 한도 없이 끝도 없이 천 가지, 만 가지 말을 이렇게 말을 한다 하더라도 저 바다 위에 떠있는 밝은 달은 원래로 말이 없느니라.

 

마지막 한마디는 끝내 여러분에게 드리지를 못합니다. 이 주장자에게 맡기고 내려갑니다.(1시간11분36초~1시간26분1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1)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척량(脊梁 등마루 척/대들보 량) ; 등마루의 거죽 부분. *등마루 ; 등골뼈가 있어서 울룩불룩하게 줄진 등의 가운데 부분.

*자지바지 ; 좌선(坐禪)할 때 몸에 너무 힘을 주어, 몸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좌선 할 때는 몸을 단정(端正)히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빼야 한다.

*소지(掃地) ; ①마당(땅)을 쓸다. ②청소.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불두던 ; 불두덩(남녀의 바깥 생식기 주위에 볼록하게 솟은 부분)의 사투리.

*경락(經絡 길 경/맥락 락) ; 우리 몸의 안에서 기혈(氣血)이 순환하는 통로.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화두(話頭)를 타파(打破) ;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스승)으로부터 화두(공안)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그 화두(話頭)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꽉 막힌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을 타파하여 확철대오(廓徹大悟)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고] 화두라 하는 것은 무엇이냐? 공안(公案)이라고도 말하는데, 화두는 깨달음에 이르는 관문이요, 관문을 여는 열쇠인 것입니다.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그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疑心)을 관조(觀照)해 나가는 것, 알 수 없는 그리고 꽉 맥힌 의심으로 그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그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더이상 그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더이상 의심이 커질 수 없고, 더이상 깊을 수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내 가슴속이 가득차고, 온 세계가 가득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눌 때에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탈 때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안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잘 때에는 꿈속에서도 그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그 항아리를 큰돌로 내려치면은 그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를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52분12초~54분46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렇게 의심을 해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이···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공안은 이 우주세계에 가득차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해 나가면 이 한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공안이 일시(一時)에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이 화두 조금 해 보고, 안되면 또 저 화두 좀 해 보고, 이래서는 못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한 화두 철저히 해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분34초~78분22초) [ 참선법 A, 송담스님(No.088)]

*와우 아파트 붕괴 사건 ; 1970년 4월 8일 서울 마포구 창천동에 있던 와우시민 아파트 건물 1동이 낮은 공사비, 기초공사 허술, 짧은 공기등의 부실 공사로 인해 무너져 대형 참사를 낸 사건.

*춘사(椿事 신기할 춘/일 사) ; 뜻밖에 일어나는 불행한 일.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자연식(自然食) ; 인공의 첨가물을 사용하여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성분을 유지하고 있는 식품. 또는 그런 식품을 먹는 것.

 

 

 

 

------------------(2)

 

*8부쯤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홀로(獨) 드러나다(露).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순일무잡(純一無雜 순수할 순/하나 일/없을 무/섞일 잡) ; 대상 그 자체가 순일(純一)해 전혀 이질적인 잡것의 섞임(雜)이 없음(無).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최상승법(最上乘法)=활구참선법(活句參禪法)=간화선(看話禪) ; 더할 나위 없는 가장 뛰어난 가르침.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방부(房付)를 들이다 ; 수행자가 절에 머물며 공부할 것을 인사드리고 허락을 구해 결제(結制)에 참가하다.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큰방. 선실(禪室). ②선원(禪院).

‘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 수행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참고 ❶]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p249.

선방만 선방이 아니라 참선하는 사람은 각각 자기 육체가 곧 선방이라, 선방에 상주(常住)하는 것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에 간단(間斷) 없이 정진할 수 있나니라.

 

[참고 ❷] 송담스님(No.582)—1997년 성도재 법회(96.12.08)에서.

보살선방 또는 비구선방, 시민선방 또 후원, 사무실 각자 자기 있는 처소에서 자기 분(分) 따라서 모다 열심히 정진을 하고 계시고, 가정에서도 터억 화두를 들고 정진을 하면 가정이 바로 자기의 선방(禪房)입니다. 차를 타고 갈 때는 차 안이 바로 선방인 것이고, 화장실에 가면 화장실이 바로 선방인 것입니다.

일체처 일체시, 시간과 공간에 따질 것 없이 언제나 한 생각 돌이키면은 바로 그 자리가 활구참선 도량(道場)이여.(53분52초~54분41초)

 

[참고 ❸] 송담스님(No.401)—1989년 11월 첫째일요법회. (4분 48초)

이제 가을도 가고 겨울철에 접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음력 10월 보름에 겨울철 안거(安居)가 시작이 됩니다. 보살님네는 뒤로 미루지 말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다 보면 한량이 없습니다. 탁! 큰 마음을 내서 결단심을 내서 방부(房付)를 들이고 또 이 한 철을 열심히 정진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금년에 새로 선방(禪房)을 확장을 했으니 어찌던지 와서 정진을 잘 하시길 바라고, 부득이한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직접 나와서 공부를 못하신 보살님네, 거사님네들도 가정에서, 직장에서, 생활 속에서 항상 '바로 있는—발 디디고 서 있는 그 자리, 앉어 있는 그 자리, 그 자리가 바로 선방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뭣고?」만 탁 들면 벌써 용화사 선원에 와서 방부를 들이고 죽비(竹篦)를 치고 입선(入禪)을 한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용화사에 방부를 들이고, 와서 큰방에 앉어 계셔도 밤낮 여기 앉어서 집안 생각, 아들 생각, 딸 생각 그러고 있으면은 그건 방부 들이나마나 하는 거고. 댁에 계시더라도 항상 「이뭣고?」를 들고 일 하다가도 퍼뜩 챙기고, 앉어서 챙기고, 서서 챙기고, 밥 먹으면서 챙기고, 똥 누면서 챙기면은 바로 집이 용화사 선원이거든.

 

시간도 공간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지척지간(咫尺之間)이 수천 리, 수천 리가 지척이 되는 것입니다. 백년 천년 하면 긴 것 같지마는 일 찰나간이고, 일 찰나간이 잠깐인 것 같지마는 이것이 바로 무량겁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법성게(法性偈)」를 외우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무량원겁(無量遠劫)이 즉일념(卽一念)이거든. 이것은 진리에 입각해서 하신 말씀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그래.

 

둘이 나란히 한집에서 한 이불 속에서 자도 벌써 생각이 틀어져 버리면은 천리(千里)거든. 부부간도 천리 웬수여. 저 천리 밖에 떨어졌어도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끼고 있으면은 벌써 부부일신(夫婦一身)이거든.

 

시간과 공간을 그것이 또 다른 것이 아니야. 시간이고 곧 공간이고, 공간이 시간이거든. 공간 없는 시간이 없고 시간 없는 공간이 없어. 시간이 있는 곳에 반드시 공간이고 시간과 공간은 베의 날과 씨가 서로 이렇게 짜여져서 베를 짜듯이 시간과 공간도 역시 마찬가지여.

 

그래서 어느 때, 어느 시간 무엇을 하실 때라도 항상 화두를 들고, 화두 하나만을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그저 딱 화두를 거각(擧却)하면 그 자리에는 부처님이 계신 자리요, 그 자리는 모든 조사(祖師)가 계신 자리요, 그 자리에는 전강 조실 스님이 계신 자리요, 그 자리에는 입승(立繩) 스님이 탁! 죽비를 들고 앉아 있는 자리다 그말이거든.

 

그러니 입승 스님이 죽비를 들고 앉아 있고, 조실 스님이 탁! 지켜보고 계시고, 모든 조사 스님이 그 자리에 계시고, 삼세제불(三世諸佛)이 그 자리에 계시는데 어느 곳이 선불장(選佛場)이 아니겠습니까?(54분57초~59분45초)

*선불장(選佛場) ; 부처[佛]를 뽑는[選] 장소[場]라는 뜻. 과거시험(科擧試驗 예전에,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관리 채용 시험 제도로서 보는 시험)을 보는 장소에서 유추된 말이다.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곳. 선당(禪堂) · 승당(僧堂) · 선방(禪房) 등을 가리킨다. 수행자들이 선방에서 좌선하여 도를 깨달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참고]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14권 「단하천연전(丹霞天然傳)」

鄧州 丹霞天然禪師不知何許人也 初習儒學 將入長安應擧 方宿於逆旅 忽夢白光滿室 占者曰 解空之祥也 偶一禪客 問曰 仁者何往 曰 選官去 禪客曰 選官何如選佛 曰 選佛當往何所 禪客曰 今江西馬大師出世 是選佛之場 仁者可往 遂直造江西

 

등주 단하천연선사는 어느 곳의 사람인지 모른다. 처음에 유교를 배워서 장안으로 과거에 응시하러 가던 길에 여관에서 자다가 홀연히 밝은 빛이 방에 가득차는 꿈을 꾸었다. 이에 점치는 자가 '공을 터득할[解空] 상서로운 조짐이다'라고 풀었다.

우연히 어떤 선객(禪客)이 '당신은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어 '관리 뽑는 시험을 보러 갑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그 선객이 '관리 뽑는 시험이 어찌 부처 뽑는 시험만 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단하가 '부처 뽑는 시험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물었고, 선객이 '지금 강서(江西)에서 마조대사가 출세 했습니다. 그곳이 부처를 뽑는 시험장[選佛之場]이니 그곳에 가보도록 하십시오'라고 한 말을 듣고 그길로 강서로 갔다.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 ‘개당보설(開堂普說)’에 방거사(龐居士)의 게송이 다음과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법[無爲]을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 급제하여 돌아가네’ 『고봉화상선요•어록』 (통광 스님 역주) p37, 46에서.

*업장(業障) ; 전생(前生)이나 금생(今生)에 행동•말•마음(신구의,身口意)으로 지은 악업(惡業)으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 장애(障礙)가 생기는 것.

*병주머니 ; 갖가지 병이 많은 사람 또는 그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몽산(蒙山) : 남송과 원(元)대의 임제종 양기파 스님, (1231 ~ 1298 또는 1308) 이름은 덕이(德異), 강서성(江西省) 여릉도(廬陵道) 시양 고안현(時陽高安縣)에서 났다。그 고향 시양이 당나라 때에는 균주(筠州)였기 때문에 고균(古筠) 비구라고 한 일도 있었고, 여릉도 몽산에 있었으므로 몽산 화상이라 하며, 강소성(江蘇省) 송강현(松江縣) 전산(殿山)에 있었으므로 전산 화상이라기도 하고, 휴휴암(休休庵)에 있었으므로 휴휴암주라기도 하였다.

고산(鼓山)의 완산(皖山) 정응선사(正凝禪師)의 법을 이었다。그의 교화한 시기는 원나라 세조(世祖)때이며, 우리 고려의 충렬왕 때이다。그래서 고려의 고승들과 문필의 거래가 많았고, 그의 저서 가운데 <법어약록(法語略錄)> <수심결(修心訣)>등은 이조 중엽에 있어 우리 글로 번역되기까지 하였다.

*몽산법어(蒙山法語) ; 원(元)나라 「몽산 스님의 법어」로 참선 수행의 구체적인 길을 자상하게 제시한 법어집.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몽산법어』가 있다.

*'그렇게 열심히 해 가지고 그것이 되지 않는다면 아까 몽산 스님한테 책임을 따져야 됩니다. 몽산 스님이 '대신 지옥에 간다'고 맹세를 하셨거든' ;

[참고]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몽산화상시중(蒙山和尙示衆) ; 몽산화상이 대중에게 보이심」 p97-99. (가로판 p95~97)

若有來此(약유내차)하야  同甘寂寥者(동감적료자)인댄  捨此世緣(사차세연)하며  除去執着顚倒(제거집착전도)하고  眞實爲生死大事(진실위생사대사)하야  肯順菴中規矩(긍순암중규구)하야 截斷人事(절단인사)하고  隨緣受用(수연수용)호대  除三更外(제삼경외)에  不許睡眠(불허수면)하며 不許出街(불허출가)하며  不許赴請(불허부청)하며  未有發明(미유발명)이어든 不許看讀(불허간독)하며  非公界請(비공계청)이어든  不許閱經(불허열경)이니

 

만약 이에 와 고요함을 같이 즐기려는 이는, 이 세상 인연을 다 여의며 제 고집과 애착과 모든 거꾸러진 생각을 다 버리고, 참으로 생사의 큰일을 위하야 절의 규칙을 잘 지키고 인사(人事)를 끊고 먹고 입는 것을 되어가는 대로 하되, 밤 삼경 외에는 자지 말고 거리에도 나가지 말며 오라는 데도 가지 말고 깨치기 전에는 글도 읽지 말며 예식 때가 아니거든 경도 보지 말지니

 

如法下三年工夫(여법하삼년공부)호대  若不見性通宗(약불견성통종)인댄 山僧(산승)이  替爾(체이)하야  入地獄(입지옥)호리라

법다이 삼 년 동안 공부해 만약 견성하여 종지(宗旨)를 통달하지 못하면, 산승(山僧)이 너희들을 대신하여 지옥에 들어가리라.

*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추호(秋毫 가을 추/가는 털 호) ; ‘추호도’, ‘추호의’의 꼴로 쓰여, 가을에 짐승의 털이 매우 가늘어지는 데에서 가을 털끝만큼 ‘매우 조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간곡히(懇曲- 간절할 간/간절할 곡) ; 간절하고 정성스럽게.

 

 

 

---------------------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단전호흡2020. 9. 20. 05:21

참선 자세, 단전호흡(No.256)—바른 신심 · 뜨거운 분심 · 간절한 의심 | 바른 자세, 단전호흡, 수승화강(水昇火降)으로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안정과 청정을 유지 | 묘한 의심관(疑心觀) |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觀法)’

 

*참선 자세 ; 단정(端正)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나 목이나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단정히 한 것’과 ‘긴장을 해서 몸에다 힘을 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참선을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20분 14초)

 

[법문] 송담스님(No.256)—19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 (용256)

 

오늘은 초학자(初學者)를 위해서 ‘도 닦아가는 사람이 먼저 바른 스승을 만나야 한다. 바른 스승을 만나서 옳게 공부를 지어 나가야 한다’ 옳게 지어 나갈라면, 첫째 바른 사상이 탁! 중심 잡혀져야 하는 것입니다.

 

첫째 바른 믿음, ‘나도 성불할 수 있다. 결정코 나도 도를 이룰 수가 있다’고 하는 신념이 서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과거의 불보살과 모든 선지식들은 진즉 이 문제를 해결을 지어가지고 대도를 성취해서 일체 중생을 제도하시고 계시는데, 나는 오늘날토록 무엇을 하느라고 육도윤회(六途輪廻)를 하면서 오늘까지 도를 이루지 못했던가’ 그 분심(憤心)이 속에서 솟구쳐 올라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선지식으로부터 간택 받은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대해서 대의심(大疑心)이 돈발(頓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밑받침되지 않고서는 대의정(大疑情)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심과 분심이 확고하고 불같은 그러한 뜨거운 신심, 분심이 한목 솟구치지 않고서는 화두를 들어도 들 때뿐이고 금방 돌아서면 없어져버리고, 하루는 겨우 한 듯하다가 이틀 사흘 가면 차츰차츰 풀어져 버리고. 이것이 모두가 다 그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게 뒷받침되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어째서 화두를 들어도 간절한 의심이 안 나는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진정한 의심이 나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그 점에 있어서 고민을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어 볼 것도 없이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지 못한 그 까닭이라고 할 것입니다.

 

첫째에 그런 신심과 분심이 철저하다면 그다음에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여.

가부좌(跏趺坐)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서—가부좌는 참선을 해 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기본자세입니다. 그래서 대도를 성취한 아라한(阿羅漢) 또 성불하신 부처님 같은 성현도 항시 시간 있는 대로 숲속에서, 당신 처소에서 항시 가부좌를 하셨던 것입니다.

 

부처님이 무엇을 더 닦을 것이 있고, 무엇을 더 깨달을 것이 있으시리오마는, 그 가부좌를 하고 앉는 자세 그 자체가 훌륭한 것입니다.

일체 마군(魔軍)이 엿보지 못하고, 일체 악신(惡神)이 근접을 못하고, 항시 25선신(善神)이 그 주위를 호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정법을 믿는 사람, 불법을 믿는 사람은 어디 가서 앉던지—차를 타던지, 정거장에 대합실에 앉던지, 가정에서나 어디를 가더라도 항시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의자에 앉아서도, 의자 위에서 가부좌를 틀기는 조금 어렵겠습니다마는 설사 가부좌는 안 하더라도 항시 허리를 쭉 펴고 머리끝과 회음부(會陰部)가 수직상에 놓여지도록 그렇게 자세를 바르게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자세 하나만 바르게 가져도 벌써 정신 상태가 딱! 근엄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리를 꼬부리고 그리고서 턱이 앞으로 나와 가지고 이렇게 앉으면 멀쩡한 사람이 바보처럼 보이고, 농판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허리를 쭉 펴고 앉기만 하면 일자무식(一字無識)일망정 남 보매 호락(瓠落)하게 보이지 아니하고 아주 그분은 보면은 학문도 많고, 수행도 있고, 인격자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속은 똥만 가득 들어갖고 남 보매 인격자로 보이라고 한 말씀이 아니라, 먼저 자세를 바르게 함으로써 정신이 딱! 차려지기 때문에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육체를 먼저 바로잡으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도를 안 닦은 일반 세속 사람도 조금 뭐한 사람은 다 보면 자세가 훌륭하고, 앉은 자세나, 선 자세나, 그 자세가 바른 것입니다. 대학자나 또는 장군이나, 대실업가의 두목이나, 다 세속에 아무개 한 사람 보면은 자세가 바르고 늠름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최상승법(最上乘法)에 의지해서 도를 닦은 사람이, 순(純) 그 바르고 근엄한 정신생활을 하는 수도인이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아니한다고 해서야 말이 안 될 것입니다.

 

첫째, 자세를 바르게.

 

자세를 바르게 하라니까 너무 어깨에다 힘을 주고 목에다 힘을 주어가지고 그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정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의 힘을 빼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에 힘도 빼야 하고,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는 그 요령을 터득을 해야 합니다.

 

단정하게 앉으면서도 헛심, 쓸데없는 힘을 뺀다고 하는 것은 조금 어렵지만 자기가 자기를 항시 요렇게 가늠해 보고 살펴보면서 어깨의 힘도 빼고, 목의 힘도 빼.

 

힘을 빼면서도 단정하고, 단정하면서도 힘을 빼면 그 자세가 너무너무 두 어깨의 선이라든지, 앞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뒤에서 볼 때 너무너무 훌륭한 것입니다. 아름답기조차 하는 것입니다. 근엄하면서도 엄숙하고 그러면서도 너무너무 그 두 어깨의 선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요령을 터득하지 못하고 너무 힘을 주어가지고 뻣뻣하게 앉아 있으면 영판 그것이 부자연스럽고 공부하는 데에도 얼마 못 가서 피로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르게 앉는 법에 대해서 항시 스스로 잘 살피면서 또 잘 아는 분에게 점검을 받아서 어디가 잘못되었는가를 구체적으로 교정을 받는 것도 대단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좌선(坐禪)에 들어갈 때에 좌우로 몸을 흔들어서 차츰차츰 이렇게 한가운데에다 중심을 잡는 것.

 

그리고 포행을 한다든지, 방선(放禪)할 때 일어설 때에도 느닷없이 갑자기 불끈 일어서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좌우로 몸을 흔들어서 준비 운동도 하고, 다리도 앞으로 뻗어서 주무르기도 하고, 발목도 이리저리 돌려서 발목 운동도 하고, 이렇게 한 다음에 살며시 이렇게 두 손을 땅에다 짚고서 조용하게 일어나 가지고 기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불끈 일어나 가지고는 달음박질을 친다든지, 높은 데서 뛰어내린다든지, 이런 것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조용하게 앉았다가 갑작스런 운동으로 변하게 되면 피나 심줄이나 근육이 놀래기도 하고, 때로는 발을 헛디뎌서 미끄러지거나 발목을 삐는 수도 있고.

 

그리고 정진은 앉아서만 하고 일어서면 아니한 것이 아니라, 앉아서 공부하다가 일어서더라도—일어서서 걷거나, 일을 하거나 하더라도 앉았을 때 공부하던 그 의단(疑團)이 고대로 유지가 되도록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랴면 자연히 앉은 자세에서 서는 자세로 옮길 그 한계선이 언제든지 중요한 것입니다.

앉았을 때까지는 잘되다가 불끈 일어서는 찰나에 놓쳐 버리기도 하고, 뭘 가만히 앉았다 무슨 소리가 딱! 들어오는 찰나에 화두를 놓치기도 하고, 뭘 보다가 딱! 놓치기도 하고.

 

그래서 한 생각에서 다음 생각으로 옮기는 그 즈음 새, 어떤 행동에서 다른 행동으로 옮길 때에 그 중간 경계, 그런 데서 우리는 화두를 놓치는 수가 많기 때문에 그러할 때 딱! 그 경계에 속지 아니하고 화두를 이어서 관조(觀照)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한 철, 두 철, 공부를 해 나가는 데 있어서 스스로 터득되어질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자세를 바르게 한 다음에는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호흡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이 죽었나 살았나를 볼려면은 그 호흡이 끊어졌느냐, 안 끊어졌느냐? 그것을 보면 죽었느냐, 살았느냐를 알 수 있을 만큼 호흡은 바로 생사(生死)와 직결되는 것입니다.

 

(선생님 오셨나? 이해창 선생님)

 

그래서 이 호흡을 뱃속에서는 배꼽을 통해서 숨을 쉰다고 하고, 태어나면 그때부터서 인자 코로 숨을 쉬게 되는데, 숨쉬기 시작해 가지고 숨을 못 쉬게 되면 그때는 인자 금생(今生)이 끝나는 것입니다.

밥은 하루 이틀 내지 한 달, 두 달, 석 달을 굶어도 안 죽습니다. 그런데 호흡은 3분 내지 5분만 딱 숨을 못 쉬게 하거나 안 쉬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요가라든지 그런 특별한 훈련을 쌓은 사람은 일주일씩도 숨을 안 쉬고 물속에 가만히 들어앉았다가 나중에 나와도 다시 또 살아나기도 하고, 인자 그러한 특수한 훈련을 쌓은 사람은 그럴 수도 있다고 합니다마는, 일반적으로는 5분 내지 10분만 숨 못 쉬게 하면 금방 죽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호흡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어서 누구나 무심 속에 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호흡을 하지만 올바른 호흡을 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전부 다 가슴으로 호흡을 하는데, 수행을 하는 사람은 배로 호흡을 해야 해.

마음이 딱 중심이 잡혀서 안정이 되면 저 호흡하는 선이 밑으로 내려가고, 마음이 들뜨거나 중심을 잃거나, 긴장하고 초조하고, 몸에 병이 나거나 열이 있거나, 그러면은 호흡은 차츰차츰 위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편안할 때는 아랫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면서 호흡을 하다가 갑자기 놀래거나, 분을 내거나, 흥분해서 놀래거나 하면은 배로 호흡을 안 하고 가슴으로 호흡으로 하고, 가슴으로 씩쌕 씩쌕 하면서 가슴으로 호흡을 하는데, 차츰차츰 또 그 분한 생각이 가라앉고 안정이 되면 가슴 벌떡벌떡한 것이 없어지면서 호흡이 밑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숨을 들어마시면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 배가 홀쪽해지도록 의식적으로 배를 내밀었다 또 홀쪽하니 했다 해서, 계속 호흡 들어마실 때는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쉴 때는 배를 차츰차츰 홀쪽하니 해서 등허리가 딱 붙도록 해서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라’ 이것입니다.

그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데 우리의 의식을 거기다 두고서 호흡을 하면 우리의 생각이 아랫배 단전(丹田) 부위에 우리 의식이 고리 집중이 되게 되는 것이고, 우리의 의식이 아래로 집중이 되면 우리 몸안에 있는 기(氣), 기(氣)도 밑으로 내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로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면 피도 머리로 모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 몸안에 있는 기(氣)도 머리로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막 깊이 생각하고 그러면은 상기(上氣)가 되고, 머리가 띵해지고 피로를 느끼게 되고, 눈도 벌게지고 뒤통수를 만져 보면 뜨끈뜨끈하고 그러거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30분, 1시간 이렇게 하고 난 뒤에 몸을 만져 보면 아랫배는 뜨뜻하고, 뒤통수를 만져 보면 시원하거든. 그것은 더운 기운은 밑으로 내려가고 시원한 물 기운은 위로 올라가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 수승화강(水昇火降), 시원한 물 기운은 위에로 올라가고, 더운 불 기운은 밑으로 내려가게 하는 것.

물이라 하는 것은 원래 위에서 밑으로 흘러내리고, 불은 밑에서 위로 타오르는 것이 그 원래 가진 성질이지만, 우리가 의식적으로 우리의 정신을 배꼽 밑에 단전에다가 집중을 함으로써 우리의 불 기운은 밑으로 내려가서 아랫배가 뜨뜻해지고, 시원한 물 기운은 위로 올라가서 머리가 시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몸을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하고 몸안에 있는 온갖 독소를 그 호흡을 통해서 밖으로 배출해 버리고 그래서 몸은 가벼워지고, 정신은 안정이 되면서 맑아지게 하는 그러한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부터 수행하는 사람에게 이 수식관(數息觀)을 시키고, 대대로 내려오면서 단전호흡을 익혀서 수승화강을 하게 해서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안정과 청정을 유지함으로써, 도 닦아 가는 데에 부작용—상기병(上氣病) 같은, 소화불량이나 혈액 부조화한 그러한 병을 예방하고 도업(道業)을 장애 없이 빨리 성취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房付)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그렇게 참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이렇게 삼위(三位)가 일체(一體)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53분19초~73분33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단전호흡2020. 5. 19. 11:13

단전호흡(No.445)—화두를 안 들기가 더 어렵다 |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과 「화두를 바르게 들어가는」 이 3가지를 잘 알아서 해나가는 것은 우리가 도업(道業)을 바르게 빠르게 그리고 크게 성취하는데 절대로 필요한 것 | 상기(上氣)와 단전호흡. 단전호흡 안 하면 참선 못합니까? | 호흡과 화두 | 상기를 낫으는 약은 단전호흡과 요료법.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〇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19분 23초)

 

[법문] 송담스님(No.445)—1991년 5월 첫째 일요법회 (용445)

 

시삼마(是甚麼).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 몸뚱이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뭉쳐진, 아버지의 피 한 방울과 어머니의 피 한 방울이 만나 가지고 이 몸을 받아 낳는데, 이 몸은 머지않아서 병들어서 늙어서 결국은 또 버리게 되는데, 이 몸뚱이를 끌고 다니는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主人公)이 있거든.

 

그놈이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욕하면 성낼 줄도 알고, 칭찬하면 기뻐할 줄도 알고, 성도 낼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알고, 슬퍼할 줄도 알고, 욕심도 낼 줄도 알고, 착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고, 한 생각 돌이켜서 착하게 먹으면은 찰나간(刹那間)에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과 같이 되기도 하고 천사와 같이 되기도 하는데,

한 생각 비뚤어지면은 찰나간에 악마가 될 수도 있어. 나찰(羅刹) 귀신이 될 수도 있고, 독사가 될 수도 있고. 한 생각 잘못 먹으면 음흉하기가 구렁이보다도 더 고약하게 될 수도 있다 그말이여.

 

그러한 놈을 우리가 낱낱이 다 가지고 있어. 대관절 그놈이 무엇인가?

이거 화두(話頭)가 무엇인 줄도 모르고, 불법(佛法)이 무엇인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가만히 자기 자신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의심(疑心)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거든.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시삼마 화두는 천칠백 공안(千七百公案) 가운데에 가장 최초의 화두고, 가장 근원적인 화두여. 화두를 새로 타기 전에 모두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는 본참공안(本參公案)이여.

 

의심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거든. 이건 화두를 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화두를 안 들기가 더 어려운 것이다 그말이여.

자기가 자기 자신을 몰랐으니 의심이 없을 수가 없고, 다못 올바르게 참구(參究)해 나가는 법만 몰랐지 이 시삼마 본참공안은 사람 사람이 다 원래부터 가지고 있어. ‘대관절 이게 무엇이냐?’

 

그 참구하는 방법을 바로 알고 하면 공부하다가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고, 이걸 바르게 참구를 안 하면 이거 하다가 정신이 샐쭉해지기도 하고, 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으면서도 자기도 깨달은 것처럼 착각을 하는 수가 있고, 이걸 참구를 잘못하면 상기병(上氣病)이 올라서 골이 뽀개질라 그러고 눈알이 빠질라 그러고 잘 안돼.

 

그래서 바르게 이 화두를 들어가는 법을 알고 공부를 해야 한다 그말이여.

 

전강(田岡) 조실 스님께서도 대발심(大發心)을 하시고 대분심(大憤心)이 나고 대의단(大疑團)이 한목 일어나 가지고 어떻게 무섭게 하셨던지, 다못 거문고 줄 고를 때에 너무 팽팽하게 해도 안되고 너무 느슨하게 해도 안되는 것인데, 어릴적 그 순수한 마음으로 너무 긴(緊)하게 급(急)하게 하셨기 때문에 상기병이 일어나셨다 그말이여.

그래서 눈알이 뻘겋게 충혈이 되고, 머리에 부스럼이 일어나 가지고 툭툭 터지고, 코에서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말이여.

 

그래서 이 참선(參禪)을 해 나가는 데에는 앉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또 그런 상기병이라든지 그런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아무리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고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하더라도 상기병과 같은 그런 무서운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이 호흡법, 단전호흡(丹田呼吸)을 잘 알아서 하고.

 

그런 가운데에 올바르게 화두를 잡드리해 나가는, 「바른 자세」와 「바른 호흡법」과 「화두를 바르게 들어가는」 이 3가지를 잘 알아서 해나가는 것은 우리가 도업(道業)을 바르게 빠르게 그리고 크게 성취하는데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상기(上氣)와 단전호흡>

 

얼마 하지도 못해 가지고 상기병이 나서 고생하는 스님네가 참 많습니다. 미리 일어나지 않도록 지혜롭게 해서 단속을 해야지, 한번 상기병이 터져 놓으면 약을 먹어 가지고도 안되고 여간해서 이거 고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머리가 띵하고 목이 뻣뻣하고 ‘이뭣고?’만 할라면 골치부터 아퍼서, 공부만 조금 가행정진을 하고 애써 좀 힘차게 할려고만 하면 벌써 골치부터 아퍼.

그럭저럭 잡담하고 살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딱 정신차려서 화두만 들고 공부만 할려고 하면 아프기 시작해. 그렇다고 해서 공부를 안 할 수도 없고.

 

출가를 안 했다면 이거 뭐 잡담을 하고 지내도 상관이 없고, 뭐 장사를 하고 지내도 상관이 없고, 뭐 농사를 지어도 상관이 없고 아무렇게 지낸들 상관이 없는 일이지만, 머리를 깎고 출가 해가지고 참선을 안 하면 무엇을 할 것이냐 그말이여.

천상 할 것은 참선밖에는 없고, 할려고 하면은 골치만 아프고, 큰일이거든.

 

어떤 분은 가끔 ‘단전호흡 안 하면 참선 못합니까?’ 그런 질문을 가끔 와서 하는데 상기만 안된다면 뭐 꼭 단전호흡을 안 해도 상관이 없어.

체질상 단전호흡을 안 하면 상기가 잘 오르게 된 그런 체질을 가진 사람이 있거든. 그런 사람은 꼭 단전호흡을 해야 하고.

 

아무리 신경을 쓰고 해도 상기가 잘 안된 체질을 타고난 사람이 있어. 기운이 밑으로 내려가서 그런 사람은 혹 단전호흡을 안 해도 상관이 없겠지만. 특히 체질을 기운이 위로 잘 올라가는, 조금 신경쓰면 얼굴이 벌게지는 그런 체질을 가진 사람은 단전호흡을 꼭 해야 하거든.

출가를 안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은 단전호흡을 해야 하고, 참선을 안 한 사람도 사회의 학문을 해도 단전호흡을 해야 해. 지지리 공부해 가지고 고시에 합격해 갖고도 상기로 고생하는 사람도 내가 봤거든.

 

이 단전호흡은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보통 호흡보단 조금 더 길게. 보통 호흡은 1초 동안에 들어마셨다 1초 동안에 내쉬고 보통 그렇게 하고, 혹 호흡이 좀 느린 사람은 2초 동안에 들어마셨다 2초 동안에 내쉬고 그런데.

1초가 걸린지 2초가 걸린지 그것도 아지도 못하고, 무심 속에 호흡은 마지막 죽기 전까지는 그때그때 따라서 달음박질하거나 산을 올라가고 그럴 때는 좀 급하게 쉬고 또 그렇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는 느리게 쉬고, 호흡에 대해서는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눈을 뜨나 감으나 호흡을 하고 있는데,

 

이 단전호흡이란 것은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거여. 어떻게 하느냐?

들어마시는 호흡 약 3초 동안에 들어마셔 가지고 또 3초 동안 정지했다가 내쉬면서 조금 길게 3~4초, 이렇게 해서 한번 들어마셨다가 정지했다가 내쉬는데 약 10초 가량 걸리도록. 의식적으로 하거든.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배꼽 밑에 단전(丹田), 아랫배가 약간 볼록하게 만들면서 숨을 들어마시는거여. 들어마셔 가지고 약 3초 동안 딱 정지를 하거든. 정지했다가 조용하게 숨을 내쉬는데 내쉼에 따라서 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만드는 거여.

 

그러면 들어마신 호흡을 이렇게 해 가지고는 저 아랫배까지 이렇게 밀어넣을랴고 생각할 필요는 없고, 그냥 들어마시기만 하고 배는 약간 볼록하게만 만들면 돼. ‘호흡이 거기까지 내려간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들어마신 다음에는 정지를 하거든. 정지한 상태로 약 3초 동안을 가만히 있다가 또 내쉬면서 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그거 조금도 힘이 드는 거 아니여.

 

처음에는 한 10초 걸려서 하면은 별로 힘이 안 드는데 ‘될 수 있으면 오래 참을수록 좋다’해 가지고, 그런 소리를 어디서 들어가지고, 들어마셔 가지고 참기를 한 30초 정도 참었다가 얼굴이 벌게지면 그때 내쉬고. 아, 그렇게 억지로 하는 사람이 있다 그말이여. 그러다가는 큰일난 것이다 그말이여.

 

처음에는 그렇게 한 9초나 10초 동안에 하다가 차츰차츰 1년을 하고 이태를 하다 보면 호흡이 조금씩 길어져서 나중에는 혹 20초 동안에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 내쉬고,

나중에는 10초 동안에 들어마시고, 10초 동안에 머물르고, 10초 동안에 내쉬고 해서 한번 숨을 들어마셨다 내쉬는데 30초 걸려서 하는, 무리가 없이 할 수가 있다면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무리를 하면서까지 억지로 그렇게 시간을 늘릴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이고, 해서는 안된다. 그것을 잘 아셔야 해.

 

그런데 호흡은 그때그때 상황 따라서 어쨌든지 무리가 없고 편안하도록 하면 되어.

언제나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여. 누구에게나 고정된 것이 아니고 때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길게 해도 편안하면 길게 하고, 짧게 해서 편안하면 짧게 하고, 어쨌든지 무리가 없이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호흡과 화두의 관계>

 

그러면 ‘호흡에 신경을 쓰면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이 시원찮고, 화두에 대해서 간절히 의심을 하면 호흡이 잘 안된다' 이런 말씀을 한 분이 있는데, 그럴 것이다 그말이여.

그럴 것이나, 처음으로 참선하는 사람은 이 호흡 쪽으로 신경을 써서 해서 호흡이 잘 익숙해져서 무심 상태에서도 호흡이 잘되면은 나중에는 호흡에 대해서는 그냥 저절로 놔둬 버리고 화두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이 좋다 그말이여.

 

그런데 호흡과 화두의 관계는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다 숨이 나가면 또 스르르~하니 들어마셨다가 또 정지했다가 내쉴 때 ‘이뭣고----?’ 이렇게.

 

그러면은 숨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이뭣고?’ 또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이뭣고?’ 최초에 시작하는 얼마 동안은 그렇게 해도 좋습니다

그러다가 한 달쯤 된 다음에는 또 두 달, 석 달 이렇게 지나간 뒤에는 꼭 호흡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화두를 들지 않아도 되요.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가 내쉴 때 ‘이뭣고---?’

‘이뭣고’ 그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이 있으면, 그 다음에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 화두를 새로 들지 않고, 그 들어있는 의심을 따악 관조(觀照)를 하거든. 『알 수 없는 의심』을 보는 거여.

 

또 숨을 들어마셨다가 머물렀다가 내쉴 때도 아까 들었던 그 화두에 대한 의심이 고대로 있으면, 세 번째에도 화두를 새로 ‘이뭣고?’ 안 들어도 괜찮은 거여. 그러다가 딴 생각[別念]이 나거나 화두가 없어져 버리면 그때 또 들어마셨다 내쉬면서 ‘이뭣고?’ 한번 또 거각(擧却)을 하는 거여. 챙기는 거여.

 

이렇게 해서 아침에 들었던 화두가 점심밥 먹을 때까지 그대로 의심이 있으면, 뭐 아침에 한번 들은 채로 그냥 그대로 있으면 되는 거고, 한번 들었던 화두가 하루 종일 있으면 자꾸 ‘이뭣고?’ ‘이뭣고?’할 필요가 없거든.

 

그리고 그렇게 해 나가면 상기(上氣)가 일어날 까닭이 없으나, 그러나 이미 상기가 일어났거나 또 중간에 본의 아니게 상기가 일어날 때에는, 그 상기를 낫을려고 약도 먹고 쑥도 뜨고 온갖 좋다는 건 다 해도 그렇게 별로 큰 효과가 없어.

 

상기를 낫으는 약은 결국은 단전호흡으로 낫어야 돼.

단전호흡을 정말—우선 화두 드는 것은 보류해 놓고, 상기 때문에 고생하시는 분은 화두는 좀 보류해 놓고 단전호흡에 전력을 해야 해. 그러면 상기가 다스려지고, 상기가 다스려지면 그때 화두를 챙기면 되는 것이고.

 

그리고 부득이해서 단전호흡을 해도 잘 안되는 경우는 요료법(尿療法)을 하는 것이 가장 상책이여. 그건 기운을 밑으로 내리고 혈압도 내리고 기운을 내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그건 굉장히 효과가 있는 거여. 그건 새삼스럽게 자세히 말씀을 안 드리겠습니다.(23분23초~42분4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사대(四大) ; 사람의 몸을 이르는 말. 사람의 몸이 땅, 물, 불, 바람(地,水,火,風)의 네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데에서 연유하였다.

*소소영령(昭昭靈靈) ; 한없이 밝고 신령함. 소소(昭昭)도 영령(靈靈)도 함께 밝은 뜻. 밝은 모양. 진여(眞如), 법성(法性), 불심(佛心)을 의미하는 말.

[참고] 『임제록(臨濟錄)』

道流 儞欲得作佛 莫隨萬物 心生種種法生 心滅種種法滅 一心不生 萬法無垢 世與出世 無佛無法 亦不現前 亦不曾失 設有者 皆是名言章句 接引小兒 施設藥病 表顯名同 且名句不自名句 還是儞目前 昭昭靈靈 鑒覺聞知照燭底 安一切名句

 

도를 배우는 이들이여. 그대들이 부처가 되고자 한다면 일체 만물을 따라가지 말라. 마음이 나면 온갖 법이 나고 마음이 멸하면 온갖 법이 멸하니, 한 마음 나지 않으면 만법에 허물이 없다. 세간과 출세간에 불(佛)도 없고 법(法)도 없어서 현전하지도 않고 잃은 적도 없다.

설사 무엇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 언어의 구절이어서,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해 병에 따라 약을 준 것이며 무엇을 표현하는 이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언어의 구절은 그 자체로 언어의 구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그대들 눈앞에서 밝디 밝고 신령하게[昭昭靈靈] 살피거나 느끼거나 듣거나 알거나 비추는 바로 그것이 모든 언어의 구절을 붙이는 것이다.

*주인공(主人公)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청정한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주인옹(主人翁).

*찰나간(刹那間 절·짧은시간 찰/어찌 나/사이 간) ; 지극히 짧은 시간 동안.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세간(世間 : 이 세상, 미혹한 세계)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보살. 자비의 화신.

*나찰(羅刹) : 신속하게 땅이나 공중으로 다니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다는 무서운 악귀(惡鬼). 나중에 불교의 수호신(守護神)이 되었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글)를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해 ‘알 수 없는 생각’에 콱 막히는 것.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이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수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이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또는 ‘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알 수 없는 의단, 알 수 없는 의심에 꽉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사견(邪見) : ①잘못된 견해. 틀린 생각 ②인과(因果)의 이치를 부정하는 잘못된 생각 ③올바로 자신의 마음의 실상을 알수가 없는 것.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년(戊戌)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제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등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년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강송(江松)에 백운(白雲)이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년(甲寅) 음력 12월 2일,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억!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

 

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세,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 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될 수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수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이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분심(憤心, 忿心, 奮心 분하다·원통하다·성내다·힘쓰다·떨치다·분격하다)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왜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수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단(疑團 의심할 의/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참고] 송담스님(No.793) - 2018년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

우리는 생로병사 속에서 살면서 생로병사가 없는 도리를 깨닫고자 불법을 믿고 참선(參禪)을 하고, 비록 한 생각 한 생각 났다가 꺼지고 또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울다가 웃다가 그러면서 죽음을 향해서 가고 있지마는, 그 죽음을 향해서 가는 속에서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도리가 있다고 하는 것을 우리는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의지해서 그것을 믿고 생사해탈을 위해서 우리는 참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사해탈이라 하는 것이 이 육체를 가지고 죽지 않고 백 살, 이백 살, 오백 살, 천 살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생사해탈이 아니고 생사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달음으로 해서 생사해탈을 할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법(佛法)은 생사윤회(生死輪廻) 속에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는 종교인 것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우나 부처님으로부터 역대조사(歷代祖師)를 통해서 오늘날까지 경허 선사, 만공 선사, 전강 선사로 해서 생사 없는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법문을 우리는 믿고, 이론적으로 따져서 가리키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다맛 간단한 방법으로 그 진리를 깨닫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 법에 의해서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법을 믿고, 불법 가운데에서도 최상승법(最上乘法)인 활구참선(活句參禪)! 역대조사를 통해서 전수해 온 활구참선에 의해서 무상(無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믿고 그것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고도 간단한 일이나 이 최상승법 활구참선법을 믿는 사람은 확실히 불법의 근본 진리를 향해서 그것을 우리 몸을 통해서 그 진리를 체달(體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〇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1분 32초)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 ‘저 뒤에서 쭈욱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쑤욱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쑤욱 내쉰다,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에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을 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이뭣고’ 그 글자가 문제가 아니라, ‘이뭣고?’할 때 그 『알 수 없는 의심』 그 의심이 있으면, 그 다음에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 화두를 새로 들지 않고, 그 들어있는 의심을 따악 관조(觀照)를 하거든. 『알 수 없는 의심』을 보는 거여' ; 의심관(疑心觀).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딴생각 ; 별념(別念).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에서.

做工夫호대  着不得一絲毫別念이니  行住坐臥에  單單只提起本叅話頭하야  發起疑情하야 憤然要討箇下落이니라.  若有絲毫別念하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라하니  學者는 不可不謹이니라

 

공부를 짓되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을 두지 말지니, 가고 멈추고 앉고 누우매 다못 본참화두(本叅話頭)만을 들어서 의정을 일으켜 분연히 끝장 보기를 요구할 것이니라. 만약 털끝만치라도 딴 생각[別念]이 있으면 고인이 말한 바 「잡독(雜毒)이 마음에 들어감에 혜명(慧命)을 상한다」하니, 학자는 가히 삼가지 않을 수 없느니라.

 

余云別念은  非但世間法이라  除究心之外에  佛法中一切好事라도  悉名別念이니라.  又豈但佛法中事리요  於心體上에  取之捨之  執之化之가  悉別念矣니라

 

내가 말한 딴 생각[別念]은 비단 세간법만 아니라 마음을 궁구하는 일 외에는, 불법(佛法)중 온갖 좋은 일이라도 다 딴 생각[別念]이라 이름하느니라. 또 어찌 다만 불법중 일뿐이리오?  심체상(心體上)에 취하거나[取], 버리거나[捨], 집착하거나[執], 변화하는[化] 것이 모두 다 딴 생각[別念]이니라. (p164-166) (가로판 p157~158)

 

做工夫호대  不得將心待悟어다.  如人이  行路에  住在路上하야  待到家하면  終不到家니 只須行하야사  到家오  若將心待悟하면  終不悟니  只須逼拶令悟요  非待悟也니라

 

공부를 짓되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사람이 길을 가매 길에 멈춰 있으면서 집에 이르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집에 이르지 못하나니, 다만 모름지기 걸어가야 집에 도달하는 것과 같아서, 만약 마음을 가져 깨닫기를 기다리면 마침내 깨닫지 못하니, 다만 모름지기 애써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닫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니라. (p163-164) (가로판 p156~157)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p180-181) (가로판 p171~172)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요료법(尿療法) ; 요료법은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600 개가 넘는 ‘(참선) 법문’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 있습니다.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600 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ㄷ/단전호흡2020. 2. 6. 17:20

단전호흡(No.578)—不淨觀. 數息觀 | 수식관이 차츰 발달한 것이 지금의 단전호흡 | 가슴이 답답할 때는 단전호흡을 반대로 | 화두를 단전에다 두고 관(觀)하라.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20분 40초)

 

[법문] 송담스님(No.578)—96년(병자년) 동안거결제 법어(96.10.15) (용578)

 

호흡을 단전호흡을 하는데, 부처님 당시부터 수식관(數息觀)이라고 하는, 참선 수행자가 그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행에 들어가는데 수식관이 대단히 요긴한 것인데.

 

어떻게 해서 부처님께서 수식관을 설하시게 되었느냐 하면은 비파사나(vipassanā)라고 신(身) · 수(受) · 심(心) · 법(法),

'이 몸뚱이[身]는 더러운 것이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그 몸에 아홉 구멍으로부터서는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고 몸안은 피와 오줌과 고름과 똥이 가득차 있고, 머지않아서 인연이 다하면은 죽어서 썩어 문드러진다. 그런 이 몸뚱이는 하여간 더러운 똥 주머니다' 이러한 생각을 항상 그렇게 관(觀)하며.

 

밖에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수(受), 받아들이는 것은 괴로운 것이다.

눈으로 무엇을 받아들이거나, 귀로 받아들이거나, 코나 혀로 받아들이거나, 몸뚱이로 받아들이거나, 생각으로 받아들이거나 밖에서 무엇만 받아들였다 하면은 그것이 결국은 차츰차츰 변해 가지고 고통으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이다.

 

셋째에 가서는 우리의 마음[心]은 무상(無常)한 것이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하루에면 수천수만.... 일(一) 호흡지간에 구백생멸(九百生滅)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데 그것이 모두 무상하다 그말이여.

아침에 먹었던 생각이 벌써 밤에는 딴 생각,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할려고 마음을 먹어도 금방 그 생각이 변해 버리고. 이것을 누구를 줄려고 마음먹었다 해도 돌아서면서 마음이 변해 가지고 줄 생각이 없어지고. 우리의 마음이라 하는 것은 시시때때로 변해서 무상한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내 몸[身]과 받아들이는 것[受]과 우리의 마음[心]을 제외한 것, 모든 것이 바로 법(法)인데 그것을 '제법(諸法)이라, 모든 법이다' 그러거든.

모든 법은 무아(無我)다. '내'라고 하는 자성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몸은 더러운 것이요, 받아들이는 것은 괴로운 것이요, 우리의 마음은 무상한 것이요, 그 밖에 모든 법은 다 무아 한 것이다.

 

그것을 제자들한테 설한 가운데에 유독(唯獨) 육체에 대한 집착심을 갖고 또 이성 간에 이쁘게 생긴 사람, 마음에 든 사람에 애착심을 가지고 그러니까,

일단은 '이 몸뚱이라 하는 것은 내 몸이나 다른 사람 몸이나 할 것 없이 다 똥 주머니요, 피고름 주머니요, 다 더러운 것이다'하는 부정관(不淨觀)을 가리켜서 그것을 열심히 하다 보니까 이 몸뚱이가 정말 싫어지고.

 

이 몸뚱이를 끌고다니는 자체가 이 몸뚱이를 먹여야 하고, 입혀야 하고, 이 몸뚱이를 편안하게 해 주어야 하고 그래 봤자 결국은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밖에는 안되고. 이 몸뚱이가 싫어지고 아주 원수같이 느껴져서 이를 마치 뱀을 목에다가 칭칭 감고 다니는 것처럼 이 몸뚱이가 싫어지게 되었다 그말이여.

 

그래서 녹장외도(鹿杖外道)한테 가 가지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바리때하고, 요 입는 가사(袈裟)하고 밖에 없는데 이것을 당신한테 줄 테니 제발 자비로써 나를 좀 죽여 달라"고,

이래가지고 몽둥이로 쳐서, 맞아서 죽은 사람 또 목 매달아서 자살한 사람, 물에 빠져서 죽은 사람, 그래서 60명 가량이 한 여름에 죽었습니다.

 

포살(布薩) 날을 기해서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기 위해서 대중 종을 쳐서 모여 놓고 보니 60명이 비었으니 "어떻게 대중이 이렇게 많이 줄었느냐?" 아란존자 보고 물으니까,

"그렇게 해서 부정관(不淨觀)을 하다가 이렇게 60명이 자살하고 녹장 비구한테 자원을 해 가지고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여쭈니까, 부처님께서는 "그렇다면은 수식관(數息觀)을 해라"

 

수식관이 차츰 발달한 것이 지금의 단전호흡(丹田呼吸)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수식관은 숨을 깊이 들어마셨다가 조용하니 내쉬고 '하나', 다 내쉬었으면 또 스르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또 조용하니 내쉬고 '둘',

이렇게 해서 열까지 세어 올라갔다가 열에서 그 다음에는 열하나로 가지 말고 아홉, 여덟, 일곱... 해서 까꾸로 해서 하나로 내려오고 해서 하루 종일 호흡을 세는 거여.

 

그것이 잘되면은 하나에서 스물까지 올라갔다가 열아홉, 열여덟 내려오고 그것이 잘되면 서른, 마흔 해서 백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도록,

그런 동안에 중간에 망상이 일어나 가지고 '몇까지 세었는가?' 잊어버리면 다시 다 없었던 걸로 하고 다시 하나서부터 다시 시작하고.

이렇게 하기를 몇 날 며칠을—한 달, 두 달, 한철 내 하다보면 그것이 차츰차츰 되어간다 그말이여.

 

사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실 만한 일인데, 초학자(初學者)들은 해 볼 만한 일인데, 대단히 어렵습니다.

 

이것이 수식관인데, 지금 용화사에서 초학자에게 수식관부터 하라고 그렇게 간곡히 권(勸)은 하고 있지 않으나,

워낙 망상이 심하고 정진이 잘 안되고 건강도 안 좋고 그러면 수식관을 한번 자기가 몇까지 세었다가 또 내려올 수가 있는가. 그것을 자기가 얼마만큼 정신 집중력이 있고 되어가는 것을 시험 삼아 한번 해 보시길 바라는데.

 

전강 조실 스님 때부터서 단전호흡을 권하게 된 동기는 여러분께서도 조실 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을 들으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첫 철에 너무 용을 쓰고 용기를 내서 의심을 하다가 결국은 상기(上氣)가 복받쳐 올라서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되고 뒤통수가 툭 툭 터져서 곪아터지고, 목구멍으로부터서는 선지피가 막 쿨쿨 넘어오고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도록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공부를 그치지 않고 계속하시니까, 직지사에서 제산 스님께서 "그렇게 내가 시킨 대로 안 하고 네 멋대로 해 가지고 병이 나면 다 내가 너를 공부를 잘못 가르켜 가지고 그랬다고 할 것 아니냐"

 

제산 스님께서는 '일념미생전(一念未生前)을 관(觀)하라. 한 생각 일어나기 전을 관(觀)해라' 그렇게 참선하는 법을 일러 주셨다고 그럽니다.

그런데 조실 스님께서 『서장(書狀)』을 보나, 『선요(禪要)』를 보나 보면 그렇게 공부하라는 법은 없고.

 

조주 무자(無字)를 관하시는데 「어째서 무(無)라 했는고?」 「어째서?」라는 것을 너무 용을 쓰고 하시다가 결국은 상기병(上氣病)이 나 가지고 그렇게 하시다, 결국은 그러한 병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계속해 가지고 깨달음을 얻으시긴 얻었지만,

그 상기병으로 해서 피가 거꾸로 넘어온 그걸로 해서 참 여러 해 동안을 고생을 하시고, 만행을 하신 그런 과거를 생각하셔서 우리 후학(後學)들에게는 그렇게 우격다짐으로 용을 쓰고 그렇게 하지 말고 급(急)하고 완(緩)한 것을 득기중(得其中)이여. 그 중(中)을 얻어야 한다.

 

불급불완(不急不緩)하게—너무 용을 써서 되게 몰아붙인 것도, 과도하게 몰아진 것도 못쓰고, 그렇다고 해서 매카리 없이 멍하니 그렇게 해서도 안 되지마는.

그래서 그러한 병을 미연에 방지하고 그런 상기병과 같은 무서운 병에 걸리지 아니하면서 정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단전호흡을 설하시게 된 것입니다.

 

물론 단전호흡을 전강 조실 스님께서 처음으로 그것을 창안하신 것이 아니고, 임제종(臨濟宗) 종사(宗師)들은 단전호흡에 대한 언급을 별로 안 하셨지만, 육조 스님 밑에 청원행사(靑原行思) 선사라고 조동종(曹洞宗)의 개종이신, 그 조동종에서는 단전호흡을 정식으로 다 수좌(首座)들에게 권장을 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도.

 

그래서 특히 이 간화선(看話禪)을 하는, 공안(公案)을 참구(參究)해서 수행해 나가는 간화선에 있어서 폐단이 너무 간절하게 한답시고 용을 쓰고 의심을 일으키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기와 같은, 약으로는 낫을 수 없는 그런 무서운 장애에 부닥치게 되기 때문에 초학자일 때부터 단전호흡을 잘 기본으로 익혀 나가는데,

 

처음에는 준비 호흡.

준비 호흡은 가뜩 가슴으로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꾸었다가 입으로 '후-'하고 다 내뿜어. 또 가뜩 들어마셨다가 잠시 머물렀다 내쉬고 하기를 두서너 번 그렇게 해 가지고 허파 안에 있는 묵은 공기를 다 쓸어버리고.

 

그리고서 인자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조용히 들어마시되 가슴으로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아랫배 단전(丹田)이 약간 볼록하도록 들어마셨다가 잠시 쉬었다가 조용하니 코로 내쉬되, 볼록해졌던 배가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이렇게 해 나가는데.

 

그 호흡을 수식관처럼 '하나, 둘' 셀 필요는 없고, 계속 그렇게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드는데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길게 이렇게.

다 내쉬면 또 스르르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내쉬면서 '이뭣고?' 그러는데,

 

이것도 잘못하면 내쉬는 숨만 있고 들어마시지를 못해. 가슴이 답답해 가지고 콱! 맥혀 가지고 영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말이여.

그게, 이 단전호흡을 하는데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다 잘되는 게 아니라 어쩌다 하나씩은 가슴이 답답해 가지고 호흡이 잘되지를 않고, 가슴이 답답해 가지고 굉장히 그것 때문에 고민을 호소하는 사람을 가끔 보게 되는데, 그러헐 때는 어떻게 허느냐?

 

숨을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를 볼록이 하고 내쉴 때는 배를 홀쪽이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가슴이 답답해 가지고, 체해 가지고 할 때는 그 반대로 하는 거여.

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를 홀쪽이 하고, 숨을 내쉴 때는 배를 볼록하게 만들어. 반대로 하는 거여. 그렇게 하다 보면 이 가슴 답답한 것이 차츰차츰 없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가슴 답답한 것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는 호흡법과 배가 볼록해졌다 홀쪽해졌다 하는 것을 반대로 얼마 동안 해도 상관이 없고, 그렇게 해서 편안하면 상당히 오래까지도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답답한 것이 없는 사람은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가 볼록하게 하되 너무 가뜩 들어마셔 가지고 배가 터질 때까지 그렇게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얼굴이 벌게지도록 참고 그렇게 무리하게 해서는 안 돼.

들어마시되, 준비 호흡 3번 할 때에는 가뜩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완전히 내뿜도록 다 내뿜고, 3번을 준비 호흡은 그렇게 하지만, 본 호흡으로 들어가서는 팔부(八部)쯤만 들어마시는 거야.

 

팔부쯤만 들어마셨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는 게 아니고, 한 3~4초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되 또 완전히 다 내뿜으려 하질 말고 편안할 만큼만 내쉬는 거여.

10분 20분 30분을 해도 숨이 가쁘거나 힘들게 하는 것은 그건 잘못한 거고, 한 시간 두 시간을 해도 조금도 무리가 없도록 자연스럽게 해야 해.

 

자기의 호흡량에 맞추어서, 자기 체질에 맞추어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해야 되지 그것을 무리하게 하니까 꽉 체해 가지고, 막혀 가지고 숨도 못 쉬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거야.

단전호흡을 하기는 하되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해야지, 무리하게 하면 그런 부작용이 일어나서 고생을 하는 수가 있으니까 그 점을 유의를 하기를 바라고.

 

 

화두를 드는 것은 간절한 의심이라고 하니까 '이뭣고?'하고 이마를 찡그리면서 머리로 화두를 해서는 안된다 그말이여.

알 수 없는 의심을 갖되, 그 화두가 배꼽 밑에 단전에다 두고 화두를 관(觀)하는 거야. 이건 말로써 설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나 자꾸 스스로 해 보면 그 말을 알아들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볼록하게 하고, 내쉴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홀쪽한 것을 느끼면서 하니까 우리의 생각이 단전에 가서 자연히 거기에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하는 그 의심이 단전에 가 있게 된다 그말이여.

 

단전에 가 있게 하는 방법이 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이렇게 불어 나오는 것을 느끼면서 하니까 거기가 생각이 있게 되고, 차츰차츰차츰 내쉴 때는 배가 홀쪽한 것을 느끼면서 하니까 우리의 생각이 단전에 가서 머물게 된다 그말이여.

 

그 머무른 거기에서 알 수 없는 의심 '이뭣고?' 이렇게 해서 하면 단전에다가 화두를 두고 관하는 뜻이 거기서 스스로 계합(契合)을 하게 된다 그말이여.

 

그렇게 해 나가면 상기병(上氣病)이 일어날라야 일어날 수가 없어.

단전호흡을 안 하고 이 머리로만 '이뭣고? 이뭣고?'하니까 자연히 우리의 기운이 머리로 올라가 가지고 나중에는 머리가 뽀개지려고 그러고, 뒤통수가 뜨끈뜨끈하니 열이 오르고 나중에는 그렇게 해서 상기병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그말이여.(20분41초~41분2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수식관(數息觀) ; (산스크리트어) ānāpāna-smrti (팔리어) ānāpāna-sati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것.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염입출식(念入出息) · 식념관(息念觀) · 지식념(持息念) 등이라고도 한다.

 

음사어(音寫語)로 아나반나삼매(阿那般那三昧) · 아나파다념(阿那波那念) · 안나반나념(安那般那念) · 안반(安般) · 안반념(安般念) · 안반관법(安般觀法) · 안반수의(安般守意) 등이라고도 한다.

『대안반수의경(大安般守意經)』은 이 수식관을 집중적으로 설한 경전이다. 수식관에 제시된 기초적 관법은 사념처(四念處)에서 간화선(看話禪)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행법의 저변에 주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비파사나(팔리어 vipassanā, 산스크리트어 vipaśyanā) ; 비바사나(毘婆舍那)·비발사나(毘鉢舍那)로 음역. 능견(能見) · 정견(正見) · 관찰(觀察) · 관(觀)이라 번역.

비파사나(위빳사나)는 ‘분리해서vi  보는 것passanā’이라는 문자적인 뜻 그대로, 대상[유위제법(有爲諸法)—오온(五薀)·십이처(十二處)·십팔계(十八界)]을 나타난 모양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명상하고 관찰하여 법(法)의 무상(無常)하고 고(苦)이고 무아(無我)인 특성을 통찰하는 수행.

 

비파사나는 마음[心] · 마음부수[心所] · 물질[色]로 구분되는 71가지 구경법들 가운데 하나를 통찰하는 수행인데 이처럼 법을 통찰해 들어가면 제법의 무상이나 고나 무아를 철견(徹見)하게 된다.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비파사나의 힘으로 탐·진·치의 뿌리를 멸절시켜야 영원히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되며 그래야 해탈 · 열반을 실현하게 된다.

비파사나는 무상·고·무아를 통찰하는 것 그 자체이지 결코 특정한 수행기법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초기불교 이해」 (각묵 스님, 초기불전연구원) 참고.

*사념주관(四念住觀) ; (산스크리트어) catvāri smrty-upasthānāni (팔리어) cattāro sati-patthānāni]

신 · 수 · 심 · 법(身·受·心·法) 네 가지 대상에 혼신의 정력을 기울여 정확하고 빈틈없고 면밀하게 확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주의를 집중하여 관찰하는 수행. 이 수행은 자신의 탐욕과 모든 번뇌를 제거하여 최상의 지혜,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네 종류의 수행 방법. 네 가지의 관상법(觀想法). 네 종류의 실상을 바르게 관찰하여 마음이 고요해지는 내관(內觀). 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법념주(法念住, 法念處)의 네 가지에 대해 관찰하는 수행.

 

①신념주(身念住, 身念處) : 부모에게 받은 육신이 부정(不淨)하다고 관하는 것.

②수념주(受念住, 受念處) : 우리의 마음에 낙(樂)이라고 하는 음행·자녀·재물 등을 보고, 낙이라고 하는 것은 참 낙이 아니고, 모두 고통(苦痛)이라고 관하는 것.

③심념주(心念住, 心念處) : 우리의 마음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고, 늘 변화 생멸하는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관하는 것.

④법념주(法念住, 法念處) : 위의 셋을 제하고, 다른 만유에 대하여 실로 자아(自我)인 실체(實體)가 없으며, 또 자아가 없으므로 소유도 없다고, 무아관(無我觀)을 하는 것.

 

신 · 수 · 심 · 법(身·受·心·法) 네 가지를 따로따로 관하기도 하고[별상념처관 別相念處觀], 신수심법(身受心法)은 부정(不淨)하며, 고(苦)이며, 무상(無常)하며, 무아(無我)라고 총합하여 관하기도[총상념처관 總相念處觀] 한다.

 

'염주(念住)'의 염(念)에 해당하는 팔리어 사티(sati)는 '과거를 기억하는 기능'이라기 보다는 '마음의 앞에 나타난 모습, 현재에 대한 주의 집중, 분명한 알아차림, 충분히 깨어있음, 주의 깊음, 마음이 대상을 챙김(마음챙김)'의 뜻이 있다. 주(住)에 해당하는 파타나(팔리어 patthāna)는 '긴밀하고 확고하며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현장법사(600~664) 이전에 번역한 경전의 번역을 말하는 구역(舊譯)에서는 사념처(四念處)라 하고, 신역에서는 사념주(四念住)라고 함. 사념처관(四念處觀)과 같음. 사의지(四意止), 사지념(四止念), 사념(四念), 사념수관(四念隨觀)이라고도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들이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의 상호 관계를 통하여 형성된 것으로서 그 자체 독립적인 것은 하나도 없고, 인연(因緣)이 다하면 소멸되어 항상함[常]이 없다[無].

*구백생멸(九百生滅) ; 9백번 생겨나고 멸하는 것. 이것은 1소찰나(一小刹那) 동안에 생멸하는 숫자를 나타낸 것이다.

『불설인왕반야바라밀경(佛說仁王般若波羅蜜經)』에 (제2 관공품觀空品) '九十刹那爲一念 一念中一刹那經九百生滅' '90찰나가 한 생각[一念]이 되고, 한 생각 가운데 1찰나에 구백생멸이 지난다'

『인왕경소(仁王經疏) 상권(末)』에 (신라 때 원측圓測 지음) ‘以九十小刹那成一大念 一大念中一小刹那 復有九百生滅... 若生滅合論 卽有九百生滅 別論卽有一千八百’ ‘90소찰나(小刹那)는 1대념(大念)을 이루고, 1대념에 속하는 1소찰나에는 다시 9백생멸이 있다. ... 생멸을 합해서 논하면 9백생멸이 있는 것이고 따로 논하면 천팔백번의 변화가 있는 것이다’

*부정관(不淨觀) ; 몸이 청정하지 못한 것을 관찰하는 것. 초기불교에서부터 강조되어 온 수행법으로, 특히 탐욕이라는 번뇌를 물리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몸의 더러움을 관찰하여 몸에 대한 싫어하는 생각을 일으킴으로써 탐욕을 없에게 한다. 부정상(不淨想)이라고도 한다.

번뇌를 제거하기 위한 다섯 가지 수행법[五停心觀] 중 하나로 첫 번째인 부정관은 탐욕, 두 번째인 자비관(慈悲觀)은 분노, 세 번째인 연기관(緣起觀)은 어리석음, 네 번째인 계분별관(界分別觀)은 아집(我執), 다섯 번째인 수식관(數息觀)은 산란한 마음을 대치하기 위해 닦는다. 또한 사념처(四念處) 중 신념처(身念處)의 여러 가지 수행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녹장외도(鹿杖外道) ; 녹장(鹿杖) · 녹장사문(鹿杖沙門) · 녹장범지(鹿杖梵志) · 물력가난제(勿力伽難提) · 미린전타라(彌隣陀羅) · 녹난제(鹿難提)라고도 한다.

부처님께서 교설한 부정관(不淨觀)을 잘못 이해한 비구들이 세상에 대해 싫어하고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내어 녹장에게 찾아와서 목숨을 끊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그 대가로 의발(衣鉢, 가사와 발우)을 주겠다고 하는 말에 욕심이 난 녹장이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서 살해하였다. 비구를 죽인 칼을 씻으러 강에 갔던 녹장은 천마(天魔)로부터 해탈하지 못한 이를 해탈하게 한 훌륭한 일을 해냈다고 하는 칭찬을 받자 더 큰 공덕을 얻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비구들을 찾아다니며 해탈시켜 주겠다고 하였고, 많은 비구들이 그에게 요청하여 모두 60여 명을 살해하였다.

부처님께서 이 사실을 들어서 아시고 대중을 모아 놓은 후, 안나반나념(安那般那念, 入出息念 : 數息觀)을 설법하였다. 그리고 살생은 어떠한 경우에도 죄가 된다는 것을 교설하고 4바라이(四波羅夷)의 제3에 해당하는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을 제정하였다.

*바리때 ; 절에서 쓰는 스님의 공양(식사)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드는데, 나무에는 안팎에 칠(漆)을 한다. 발우(鉢盂)ㆍ발우대ㆍ응기(應器)ㆍ응량기(應量器)라고도 한다.

응량기(應量器)란 법에 응하는 또는 1명의 식량에 마땅한 그릇이니 먹을 만큼의 분량을 담는 그릇이고, 또 남의 공양을 받기에 마땅한 수행과 덕을 갖춘 성현(聖賢)이 사용하는 그릇이란 뜻이다.

*가사(袈裟) : 잡색(雜色) • 염색(染色) 곧 순색이 아닌 옷을 말한다。인도는 더운 곳이므로 속인(俗人)들은 모두 흰 옷을 입는데, 출가한 이는 그 옷을 달리하기 위하여 염색하되 검박한 빛으로 하게 되었다.

또한 품질이 좋은 새 옷감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것 저것을 주워 모아서 누더기같이 만들었는데, 크고 작은 세 가지(三衣)가 있어서, 다섯 폭으로 된 것(五條)은 일할 때에 입고, 일곱 폭으로 된 것(七條)은 보통 때에 입고, 아홉 폭(九條)으로부터 스물 다섯 폭(二十五條)까지는 법회와 예식에 입게 된다. 그러므로 인도의 승려들은 이 세 가지밖에 다른 옷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가 기후 풍토와 인정 풍속이 같지 아니한 여러 지방에 전파되면서, 가사의 빛도 황색 또는 적색의 보기 좋은 빛으로 변하게 되고, 바탕도 비단으로 하게까지 되었다。그 모양도 온갖 복덕이 이 법복(法服)으로 말미암아 심어지고 성숙(成熟)되는 것이라 하여, 복을 심는 밭(福田)을 상징(象徵)해서 규모가 반듯하고 법다운 밭두렁과 같은 것으로 하게 되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불교를 신앙하는 여러 나라와 그 종파에 따라 모양도 달리 한다.

또한 북방의 여러 나라에서는 추운 곳이기 때문에, 보통 입는 의복 위에 장삼(長衫)을 입고, 그 위에 다시 가사를 입게 되므로, 가사와 장삼이 함께 법복이 된다.

*포살(布薩) ; 산스크리트어 poṣadha, 산스크리트어 upavāsa, 산스크리트어 upavasatha, 팔리어 uposatha의 음사. 단식(斷食)·정주(淨住)·선숙(善宿)·근주(近住)·장정(長淨)이라 번역.

출가자들은 음력 매월 15일과 29일(또는 30일)에 한곳에 모여 계율의 조목을 독송하면서 그 동안에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재가(在家)의 신도는 육재일(六齋日) 곧 음력 매월 8·14·15·23·29·30일에 하루 낮 하룻밤 동안 팔재계(八齋戒)를 지키는 일.  포사타(布沙陀,哺沙陀), 포쇄타(褒灑陀)라고도 쓴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초학자(初學者) ; ①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②배워 익힌 지식이 얕은 사람.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 등이 있다.

 

눈부신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제는 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 천육백여 개의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 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이 저장된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선지피 ; ①선지. 짐승을 잡아 죽여서 받은 피. 식어서 굳어 덩어리진 피를 말한다. ②다쳐서 선지처럼 쏟아져 나오는 피.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서장(書狀) ; 원래 이름은 『대혜보각선사서(大慧普覺禪師書)』이며 『서장(書狀)』·『대혜서(大慧書)』·『대혜서문(大慧書門)』 등으로 불리우고 있다. 송나라 때의 대혜종고(大慧宗杲)선사가 당대의 사대부 관료 40명과 2명의 스님에게 보낸 총 62장(狀)의 서간문(書簡文 편지 형식의 글).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불교 수행을 할 때 생기는 의문과 올바른 수행 등에 대하여 주고받은 문답이 주 내용으로, 조용한 경계만을 묵묵히 지켜나가는 묵조선(默照禪)을 배격하고 일상생활에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看話禪)을 역설하였다.

*선요(禪要) ; 『선요』는 중국 송대 말기에서 원대 초기의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의 법어집으로 대중과 개인을 위한 법문과 편지글 및 스님 자신의 수행과정을 직접 말씀한 편지글을 포함해 29단락의 법어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참선 수행인이 생사 일대사(生死 一大事)의 해결을 위하여 간절하게 화두 참구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 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전강선사 법어집 | 용화선원刊) p52~53.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熱氣)가 머리에 치밀게[上] 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매카리 ; 매가리. 맥아리. 맥(脈 기운이나 힘)을 속되게 이르는 말.

*임제종(臨濟宗) ; 중국 선종 제6조(祖) 혜능(慧能)으로부터 남악(南嶽)·마조(馬祖)·백장(百丈)·황벽(黃檗)을 거쳐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에 이르러 일가(一家)를 이룬 종파이다.

임제종은 북방에서 널리 성행했는데, 송대(宋代)에 석상 초원(石霜楚圓) 문하에서 양기 방회(楊岐方會)의 양기파와 황룡 혜남(黃龍慧南)의 황룡파가 나와, 양기파는 성행했으나 황룡파는 얼마 안 가 쇠퇴함.

양기파 문하의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9-1163)는 천만 가지 의심도 결국은 하나의 의심에 지나지 않으며, 화두(話頭)의 의심이 깨뜨려지면 천만 가지 의심이 일시에 사라진다고 하여 화두와 정면으로 대결할 것을 역설했는데, 그의 선풍(禪風)을 간화선(看話禪)이라 한다.

*육조, 청원행사 ; 분류 '역대 스님 약력' 참고.

*조동종(曹洞宗) ; 중국의 선종은 달마(達磨)로부터 시작하여 당나라 때의 6조(六祖) 혜능(慧能)에 이르러 크게 성했다. 조동종은 이 혜능 문하인 청원행사(靑原行思)의 계통으로부터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와 그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 839-901)에 의해 형성된 종파이다.

굉지 정각(宏智正覺, 1091-1157)은 자신이 본래 부처의 청정한 성품을 갖추고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묵묵히 좌선만 하면 저절로 그 청정한 성품이 드러난다는 묵조선(默照禪)을 선양하였다.

 

이 이름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자세하지 않으나, 법안 문익(法眼文益)선사의 <종문십규론(宗門十規論)>에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일 것이다.

「동」은 동산양개(洞山良价)의 동이겠지만, 「조」는 동산의 제자 조산 본적(曹山本寂)이 그 종지를 크게 밝혀서 완성한 때문이라 하는 말도 있다. 중국의 문법에 선후와 시종을 거꾸로 붙이는 전례가 아주 없는 바도 아니지만 제자의 이름을 스승의 이름 위에 놓은 것이 당연한 경우는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송나라 이후에는 조계산(曹溪山)의 「조」로써 육조의 바른 갈래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왔다. 또한 조산 본적의 조산도 조계산을 사모하는 뜻으로 지은 이름인 것이다. 그 가풍은 정편 오위(正偏五位)를 세워서 아주 세밀하고 말과 행실이 서로 일치하고, 이치와 일이 무르녹게 합하여, 본래면목으로써 종지(宗旨)를 삼는다.

일본의 조동종은 도원(道元, 1200-1253)이 1223년 송나라에 들어가 중국 조동종의 선승인 여정(如淨) 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아 계승하였다. 도원 선사는 1227년 귀국하여 일본에 조동종을 전파하였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간화선(看話禪) ; 화(話)는 화두(話頭)의 준말이다. 간화(看話)는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을 본다[看]’는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이 화두를 관(觀)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 ‘최상승법(最上乘法)’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시삼마) :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인고?’

불교(佛敎)의 목적은 「깨달음」입니다. '불(佛)'이라 하는 말은 인도(印度) 말로 'Buddha'란 말인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 「깨달은 어른」. '불교(佛敎)'하면 깨달은 가르침, 깨닫는 가르침. '불도(佛道)'하면 깨닫는 길, 깨닫는 법.

 

깨닫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무엇을 깨닫느냐?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차고 더운 것을 느끼고, 생각으로 과거 현재 미래의 일을 생각하고, 때로는 슬퍼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때로는 성내고, 착한 마음을 낼 때에는 천사와 같다가도 한 생각 삐뚤어지면은 찰나간에 독사와 같이 악마가 되는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놈이 있습니다.

 

소소영령한 주인공이 그렇게 여러 가지로 작용을 할 수 있는데, '대관절 그러한 작용을 일으키는 이놈이 무엇이냐? 이뭣고?' 이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나의 근본을 깨닫는 것입니다.

모든 화두에 가장 기본이고 근본적인 화두는 내가 나를 찾는 ‘이뭣고?’가 첫째 기본이요 핵심적인 화두입니다. 무슨 공안을 가지고 공부를 해도 깨닫는 것은 나를 깨닫는 것이지, 저 무슨 우주의 무슨 그런 게 아닙니다.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를 하는 것.

 

[참고] 송담스님(세등선원 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 (5분 59초)

처음에 공부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힘을 좀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좀 써서 하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하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하고 자주자주 들을 수 밖에는 없지만, 한 철, 두 철, 세 철 이렇게 해 가다 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안 해도 화두가 잘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또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쌀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 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딴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알 수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막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안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걸랑, 그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한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를 하는 거여. 알 수 없는 의심의 관(觀)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가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안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안돼.

다맛 우리가 할 일은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잘 잡드리 해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되고, 긴(緊)과 완(緩)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혀. 그것이 묘한 관(觀)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에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관(觀)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줄 아는 사람은 바로 관(觀)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묘(妙)한 의심(疑心)의 관(觀)’으로 해 나가야 되는 거여.

 

1분의 백천 분의 1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그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할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 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잘 관해 나가면 그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이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그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그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헐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그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좀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허게 그 의심의 관(觀)을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 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제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 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을 막론하고 그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 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다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다 그말이여.

 

[참고] 송담스님(No.256)—85년 2월 첫째 일요법회(85.02.03) (5분 57초)

금년 여름에 보살선방에 백여섯 분이 방부를 들여서 항시 칠팔십 명이 그렇게 참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진들을 모다 애쓰고 계시는데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바르게 하고, 나아가서 세 번째 가서는 화두(話頭)를 어떻게 의심(疑心) 하느냐?

 

이 화두를 의심하는 방법, 이것이 또한 간단하지만 참 이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한 철, 두 철, 세 철, 3년, 5년, 10년을 해도 이 화두를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참구(參究)하고, 관조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이것은 한 말로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법문을 듣고 고대로 또 하고, 고대로 하면서 또 법문을 듣고 해서 스스로 많은 노력, 스스로 그것을 공부해 나가는 요령—급하지도 않고 너무 늘어지지도 아니하며, 그 요령을 스스로 터득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터득한다니까 선지식(善知識)도 필요 없고, 자기 혼자 어디 돌굴이나 토굴에 가서 막 해제끼면 되냐 하면 그게 아니에요.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되, 받아 가지고 하면서도 스스로 그 묘한 의관(疑觀)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묘한 의심관이라 하는 것은 도저히 어떻게 말로써 설명해 가르켜 줄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일구월심(日久月深) 항시 면면밀밀(綿綿密密)하게 의심해 가고 관해 가고, 그 자세와 호흡과 화두를 삼위가 일체가 되도록 잘 조정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필경에는 그 묘한 의심관인 것입니다. 그 의심관, 관(觀)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 없는 생각’을 관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데, 막연하게 어떤 관이 아니라 이 활구참선(活句參禪)은 ‘의심(疑心)의 관’이라야 돼.

 

옛날에는 해가 떨어지려고 할 때,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저 수평선에 해가 지려고 할 때에, 그 큰 맷방석만한 해가 땅에 질락 말락 할 때 그 빨갛고 아름다운 거—해가 중천에 있을 때는 눈이 부셔서 볼 수가 없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눈이 부시질 않고 그 아름답고 벌건 굉장히 큰 그 해를 볼 수가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를 한참 보는 것입니다. 마지막 딱 떨어져서 안 보일 때까지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을 눈이 부시지 아니할 때부터서 그것을 관하기 시작해 가지고 마지막 질 때까지 관찰하고서, 그 다음에는 밤새 그 눈을 감으나 뜨나 그 찬란하고 아름다운 둥그런 해를 관(觀)하는 것입니다.

 

눈을 감고서도 보이는 것이 그것이 관(觀)인 것입니다. 눈을 뜨나 감으나 상관없이 항시 있는 것이 그것이 관인데, 그것을 갖다가 일관(日觀)이라 그러거든. 해를 관하는 수행법이여.

 

밤새 그 둥근 해를 갖다가 관하고, 그 이튿날 하루 종일 관하다가 또 해 질 때 다시 또 그 관을 해서, 그 관을 다시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또 밤새 관하고, 그 이튿날 관하고 또 해 질 때 관하고 해서 평생 동안을 그렇게 관을 해 나가는데, 이것도 하나의 수행 방법입니다.

 

이러한 그 일관이라든지 또 달을 관하는 관법이라든지, 아까 백골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관법(觀法)이 있는데, 이 참선도 하나의 ‘의심의 관법’이라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면서도, 일부러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그 의심관이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그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 처음에는 ‘이뭣고?’ ‘이뭣고?’하지만 나중에는 ‘이뭣고?’ 안 해도 알 수 없는 의심이—해가 질 때 봐두었던 그 둥근 해가 밤에도 고대로 보이고, 그 이튿날에도 고대로 환하게 보이듯이, 의심관이 그렇게 되어야 하거든.

그렇게 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일주일을 가지 못해서 공안을 타파(打破)하게 되고, 일체 천칠백 공안을 일관도천(一串都穿)을 해.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역대조사(歷代祖師)의 면목을 사무쳐 보게 되는 것입니다.

*계합(契合 맺을 계/합할 합) ; ①(사물이나 현상이) 서로 꼭 들어맞음. ②진리나 본심을 깨달아 그것과 일체가 되는 것.

 

Posted by 닥공닥정
ㄷ/단전호흡2019. 7. 31. 07:32

*참선 자세 ; 단정(端正)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나 목이나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단정히 한 것’과 ‘긴장을 해서 몸에다 힘을 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참선을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8분 19초)

 

[법문] 송담스님(No.086)—78년 7월 관음재일 법회(78.08.27)(용086)

 

이 자리에는 처음 오신 거사님도 계시고, 보살님도 계신만큼 참선(參禪)을 해 가는 데에 구체적인 그리고 기초적인 것을 지도해 달라고 말씀을 하신 분이 여러분이 계셔서 한 분, 한 분에게 그러한 시간을 가질 수가 없어서 법회를 통해서 간단히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참선은 첫째, 바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서 직접적인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이 이것은 필수 조건이 되는 것이고.

첫째는 몸을 바르게 가져야 한다. 둘째는 호흡을, 단전호흡(丹田呼吸)을 바르게 해야 한다. 셋째는 화두(話頭)를 선지식으로부터 받아가지고 바르게 참구(參究)해 나가야 한다.

 

 

첫째, 몸을 바르게 갖는 것은 가부좌(跏趺坐)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해라. 오른발목을 왼다리 무릎에다가 구부려 올려놓고, 왼발목은 오른다리 무릎 위에다가 올려놓아라.

그리고 허리는 쭉 펴고 그리고 그 발 위에다가 오른손을 얹어놓고 그 위에다 왼손을 포개서 올려놓은 다음, 엄지손은 서로 배끼리 이렇게 딱 맞대서 세워라.

그래가지고 그 손을 배꼽 밑 앞에다가 갖다가 딱 대라. 배꼽 앞에 발 위에다 얹어 놔라.

 

그리고 어금니는 지그시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갖다 대라.

두 귀는 두 어깨 위에 수직상(垂直上)에 놓이도록 하고, 코끝은 배꼽 밑에 단전(丹田)과 수직상에 놓이도록 해라. 이렇게 하면 몸이 단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몸을 단정하게 한 다음에는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 한가운데에다가 딱 안정을 시켜라.

 

그리고 눈은 평상(平常)으로 떠서 앉은 자리에서 3미터 지점에다 떨구어라.

3미터 지점에다 눈을 떨구되 의식적으로 어떠한 한 점을 응시(凝視)해서는 아니되고, 의식적으론 아무것도 본 바가 없이 그저 평상으로만 떠라. 이렇게 자세를 갖는 것이 몸을 바르게 갖는 것이다.

 

 

그다음 호흡을 바르게 하는 것은 보통 사람은 가슴으로 호흡을 하는데, 아랫배로 호흡을 해라.

숨을 들어마실 때는 배꼽 밑에 단전이 앞으로 불룩하니 나오도록 하면서 숨을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배를 차츰차츰 홀쪽하게 하면서 숨을 조용하게 그리고 길게 내쉬어라.

 

들어마실 때나 내쉴 때나 코로 들어마시고 코로 내쉬되 ‘코로 들어마신다 코로 내쉰다’는 생각은 전혀 갖지를 말고,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저 궁뎅이 뒤에서, 저 뒤에서 쑤욱 궁뎅이를 통해서 들어마신 호흡이 아랫배로 가득히 들어오도록 이러한 기분으로 들어마시고, 들어마신 호흡은 약 3초 동안 정지 상태로 머물렀다가 내쉴 때는 또 뒤로, 쑤욱 저 뒤로 내보내는 기분으로 내쉬어라.

 

분명 숨은 코로 들어갔다 코로 나오겠지마는, 우리 의식으로는 '코로 들어마신다 내쉰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저 궁뎅이 뒤에서 쑤욱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에 머물렀다가 다시 나갈 때에는 저 궁뎅이 뒤로 쑤욱 나가는 그러한 기분으로 숨을 쉬어라.

 

들어마신 시간은 약 3초 동안에 들어마시고, 머무르는 시간 약 3초 동안, 내쉴 때는 한 4 ,5초 걸려서 내쉬도록. 이렇게 해서 한번 들어마셨다 머물렀다 내쉬기를 약 10초 내지 11초 이러한 정도로 시간을 잡어서 하되 절대로 무리하게 억지로 시간을 오래 머무르려 하지 말고, 너무 호흡을 배가 가뜩 들어마시지 말어라.

들어마실 때는 약 8부(八部) 정도만 들어마셔. 더 들어마실 수 있지마는 8부쯤 해서 숨을 멈추고 3초 동안 머물렀다 조용하니 내쉬는 이것이 바로 단전호흡입니다.

 

이 단전호흡을 하면은 혈액 순환이 잘되어서 몸안에 머물러 있는 많은 노폐물, 피로의 원인이 되는 독소를 이 복식(腹式) 심호흡(深呼吸)을 통해서 코로 그리고 혈액 순환을 통해서 밖으로 전부 다 배설하게 됩니다.

그래서 피가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져서 오장육부 기능이 활발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이 안정이 되고 정신이 맑아져서 그러한 상태에서 참선을 해 나가게 되면은 공부가 잘될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몸도 건강해지고 정신도 건전해져서 참선하는 데에는 필요 불가결한 것이 이 단전호흡법입니다.

 

이러한 호흡법을 모르고서 무턱대고 화두만을 파고들게 되면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기운이 위로 올라가서 골이 아프고 상기병(上氣病)에 걸려서 도저히 참선을 더이상 계속할 수 없게 되는 것이고, 소화불량 내지 온갖 오장육부에 부작용이 생겨나서 도업은 성취하기도 전에 병 먼저 앓게 되는 것입니다.

 

이래서 옛날부터 수식관(數息觀), 부처님 당시부터 수식관을 권장을 하셨고,

대대로 조사(祖師)들이 내려오시면서 다 단전호흡을 통해서 더위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추위도 이 단전호흡으로 이겨내고 나아가서는 잠 오는 것, 혼침(昏沈)도 그놈으로 이겨내고, 산란심(散亂心)도 이 단전호흡으로써 다 제어를 해가지고 나아가서는 견성성불(見性成佛)하기에 가장 편리하도록 그렇게 지도를 해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단전호흡에 대해서도 직접 하시면서 한 열흘, 한 달, 두 달, 직접 해보시면 다시 또 문의해 보고 싶을 때에 다시 또 와서 물어보시면 되는 것입니다.

 

몸을 바르게 하고 그 다음에 호흡을 바르게 한 다음에는 화두(話頭)를 참구를 해야 합니다.(28분55초~37분1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벗. 마음의 벗. 선우(善友).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화두(공안)에는 '이뭣고?' '판치생모' '무자' '정전백수자' 등이 있다.

*참구(參究 헤아릴 참/궁구할 구) ; ①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 ②선지식의 지도 아래 참선하여 화두(공안)을 꿰뚫어 밝히기 위해 집중함. 화두 의심을 깨뜨리기 위해 거기에 몰입함.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 :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응시(凝視 엉길 응/보일 시)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팔부(八部)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수식관(數息觀) ; 출입하는 숨을 세어서 마음을 통일하는 것. 그것에 의해 마음의 산란을 막음. 호흡을 세어서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법.

*조사(祖師) : 부처님의 바른 종지(宗旨), 곧 조사선법(祖師禪法)을 전하는 스승을 말함이니 종사(宗師)와 같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Posted by 닥공닥정
ㄷ/단전호흡2019. 3. 3. 16:09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참선 자세 ; 단정(端正)하게 몸을 가지면서도 어깨나 목이나 몸에 힘을 빼는 것입니다. ‘단정히 한 것’과 ‘긴장을 해서 몸에다 힘을 준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온 몸에 힘을 다 빼고 지극히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가 참선을 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19분 32초)

 

[법문] 송담스님(No.264)—1985년 4월 첫째 일요법회(용264)

 

법회 때마다 오셔서 ‘참선은 좋다. 이뭣고?를 해라’ 이런 말씀을 수없이 귀에 들었지만, 실상 이 가운데에 본격적으로 참선을 하고 계신 분이 과연 몇 분이나 되시며,

참선이라고 헌 것에 대해서 얼마만큼 확실하게 이해를 하시고, 또 ‘이뭣고?’를 어떻게 해야 하며, 단전호흡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해하시고 실천하고 계신 분은 정말 그렇게 많지 못하시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자세>

 

참선(參禪)은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는 것은 이것이 참선의 기본자세이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 또는 시간이 있는 대로 이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항상 익혀서 습관을 들이도록.

처음에는 발목이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몸이 아프고 그렇지만 그러한 고비를 참고 견디면서 꾸준히 하면 나중에는 한 시간을 까닥하지 않고 앉았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두 시간 내지 서너 시간씩을 앉았어도 다리가 저린 법이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이 참선은 오랫동안 앉었는 것만이 좋은 것이 아니고, 앉었거나 섰거나 상관없이 마음이 안정이 되어서, 한결같이 화두(話頭)에 대한 의심 ‘이뭣고?’헌 그 알 수 없는 의심 덩어리가 우리의 단전(丹田)에서 흩어지지 않도록 잘 공부를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부좌나 반가부좌는 참선의 기본자세인 만큼 기본자세를 잘 익히는 것은 서서도 헐 수 있고, 걸어가면서도 헐 수 있고, 누워서도 할 수 있고, 차를 타거나 일을 하면서도 헐 수가 있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어데서, 언제, 무엇을 허고 있을 때라도 이 공부가 가부좌를 하고 앉았을 때처럼 똑같이 잘되도록 우리는 훈련을 쌓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은 그 기본자세를 잘 익히는 것이 순서적으로 당연한 것입니다.

 

기본자세는 바로 이 가부좌, 반가부좌인 것입니다. 오른발을 왼쪽 무릎에다 올려놓고, 또 왼발을 오른쪽 무릎에다 올려서 이렇게... 다리를 이렇게 해서 딱 앉고.

그리고 손은 오른손 위에다가 왼손을 포개 놓고, 엄지손가락을 이렇게 딱 맞대서, 이렇게 만들어 가지고 이것을 배꼽 앞에 아랫배 있는 데다 갖다가 딱 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다음에는 몸을 좌우로 서너 번 흔들어서 따악 이렇게 중심이 잡히도록 해 놓고서, 눈은 평상(平常)으로 뜨고, 이는 지그시 물고,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가 갖다 딱 대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선하는데의 기본자세입니다.

눈을 너무 뚝 부릅뜨면 산란(散亂)하고, 눈을 너무 감으면은 혼침(昏沈)에 떨어지기 쉽고, 또 눈을 감고 하면은 처음에는 좀 밖의 경계가 보이질 아니하니까 잠잠하고 조용하고 공부가 더 잘된 것 같이 느껴지지만.

 

눈을 감고 참선을 해 버릇하면 나중에 이상한 헛것, 환상 같은 것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 이 망상(妄想)이 가라앉아서 심경(心境)이 고요해지면 그때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에 떨어지기가 쉽기 때문에,

참선허는데 있어서 눈을 감고 익히지를 말고 눈을 항상 평상으로 떠서 자기 앉은 자리에서 약 2미터나 3미터 정도에 눈을 떨구되, 의식적으로 어느 한 점을 응시(凝視)허거나 주시(注視)를 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2미터나 3미터 지점에다가 콩 같은 것을 하나 갖다 놓고 그것을 갖다가 응시하는, 그렇게 하면 좋을 것이다' 해서, 서양 사람이 참선을 소개하는 책을 보니까 그렇게 하는 것도 좋다고 써진 것을 내가 본 일이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유치원 학생들에게는 혹 그 콩을 놓고 ‘여기 봤다 저기 봤다 하지 말고, 그 콩을 한 30분 꼼짝 말고 들여다보고 있어라’ 이렇게 해서 유치원 학생에게 참선을 시킬 때는 혹 그런 방법을 써볼 수도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어른들은 그렇게 허시지 말고 그냥 눈을 평상(平常)으로 뜨되 의식적으로 어느 한 점을 응시하지는 말고, 다맛 눈을 2미터 지점에다가 떨구기만 허되 의식적으로 어떤 점을 응시(凝視)를 허지 말아라.

 

 

<준비 호흡>

 

그렇게 하고서 숨을 될 수 있으면 빨리 가뜩 들어마시되, 가슴에 가뜩차도록 숨을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한번 여러분 해 보세요.

 

들어마시세요. 가뜩 들어마셨으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꾹 참고 있다가, 입을 조금 벌리고서 입으로 '후~'허고 다 내뿜어 보세요. 그러면 가슴이 미어질 듯 (숨이) 가득했던 가슴이 인제 더이상 바람이 한 점도 남지 않도록 완전히 다 토해 내는 것입니다.

다 뱉은 다음에 또 스르르르르 허니 또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또 가슴을 약간 들은 듯 허면서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다 들어마셨으면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았다가, 또 입으로 후~ 허고 내뿜는 것입니다.

 

이렇게 2번 내지 3번을 허고 나면 가슴속에 있는 묵은 공기가, 저 가슴속에 구석구석 있던 묵은 공기가 완전히 다 밖으로 나가고, 새 공기가 가슴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선에 들어가는, 단전호흡에 들어가는 ‘준비 호흡’이라 하는 것입니다.

 

 

<본 호흡> ①방법 - ‘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하라’

 

이렇게 준비 호흡이 3번이 끝났으면 그다음에는 인자 ‘본 호흡’으로 들어가는데, 본 호흡은 아까처럼 빨리 그리고 가슴이 미어지도록 잔뜩 들어마시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조용하게 스르르르르르 허니 코로 들어마셔요. 들어마시되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가슴은 고대로 놔두고 배꼽 밑에 아랫배, 단전이 볼록해지도록 허면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이 들어마신 공기가 가슴을 통하고 윗배를 통해서 아랫배까지 이렇게 해서 밀어넣는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하면 큰일이 나는 것입니다. 왜 큰일이 나느냐?

 

아무리 들어마셔서 아랫배까지 보낼라고 해도, 이 가슴까지 밖에는 바람이 들어가질 않습니다. 왜 그러냐?

허파가 가슴에만 있고 허파 밑에는 횡경막(橫膈膜) 가로막이 있어 가지고, 그 가로막 밑에까지는 바람이 들어가질 않는데, 그놈을 억지고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넣을라고 하니까 이 가슴에 콱 맥혀 가지고.

 

처음에 한두 번은 괜찮은데 10번, 20번, 하루, 이틀 하다 보면 나중에는 이 오목가슴 눌러보면 아프고 답답하고 뻐근하고, 밥을 먹어도 소화가 잘 안되고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단전호흡이 좋다 좋다해서 단전호흡 허다가 소화가 안되고 가슴이 답답한 병이 생겨서 고민을 허는 사람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준비 호흡을 할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셨다가 내뿜고 그렇게 허기를 3번을 허되,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들어마신 호흡이 이리해서 아랫배까지 내려간다’ 이렇게 생각을 아니하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저 뒤에서 (궁둥이로) 들어마셔 가지고 이 아랫배가 앞으로 이렇게 나오도록 그렇게 생각을, 의식을 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뿜을 때도 이리해서 코로 이리 내보낸다’ 이렇게 생각허지 말고, ‘저 뒤에로 내보낸다’ 이런 기분으로 호흡을 허는 것입니다.

 

숨을 들어마실 때는 가슴은 그냥 고대로 놔두고,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볼록허게 맨들면 되아요, 의식적으로.

또 숨을 내쉴 때는 물론 코로 나가지만 ‘코로 내쉰다’는 생각은 전혀 허지 말고,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져 등어리가 붙으면서 ‘호흡은 저 뒤에로 내보낸다’ 이리 생각을 하고 호흡을 허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흡은 위아래로 쉬는 것이 아니라, 앞뒤로 호흡을 하라’ 이것입니다.

 

그렇게 헌다면 가슴이 답답할 것도 없고, 오목가슴이 아플 것도 없고, 소화가 안될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이미 올바르게 호흡을 해서 단전호흡을 잘하고 계신 분도 계시겠습니다마는, 호흡법을 아직 확실히 통달허지 못한 분, 그런 분은 오늘 제가 말씀드린 방법에 의해서 단전호흡을 서서히 익혀가도록.

 

 

②호흡의 양 - ‘8부쯤만’

 

주의할 것은 숨을 들어마실 때에, 준비 호흡을 헐 때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들어마시지만 그렇게 허는 것은 3번만 그렇게 하고, 그다음에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숨을 들어마시며 배가 앞으로 차츰차츰차츰 볼록해지는데, 그때도 ‘배가 터지도록 맹꽁이처럼 잔뜩 들어마셔야 허냐’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8부쯤만 들어마셔. 앞으로 더 들어마실 수 있지만 십분(十分) 다 들어마시지 말고, 100% 다 가득 터지도록 들어마시는 게 아니라, 8부쯤만 들어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 부담이 없지요.

또 내쉴 때에도 완전히 다 내뿜는 게 아니여. 준비 호흡을 헐 때는 가슴을 약간 조인 듯 허면서 완전히 다 내뿜지만, 본 호흡에 들어가서는 내뿜을 때에도 너무 완전히 다 내뿜을라고 하면 그것도 힘이 드니까 8부쯤만 내뿜는 거여.

 

들어마실 때에도 8부쯤만 들어마시고, 내쉴 때에도 8부쯤만 내쉬어서, 부담없이 무리없이 편안하게 들어마시고 편안하게 내쉰다면, 30분을 계속해서 단전호흡을 한다 해도 하나도 힘들지를 않고 편안한 것입니다.

 

 

③호흡 시간 - ‘무리가 없이 하라’

 

이 단전호흡을 잘못해 가지고—너무 100% 들어마셔 가지고 또 될 수 있으면 오래 참을수록 좋다 하니까, 꽉 참아서 얼굴이 뻘게지도록 10초 20초 30초씩 억지로 참았다가 또 내쉬니까, 10번도 못해서 헐근헐근하고, 중간에 한번씩 쉬었다가 호흡을 해야 하고. 이렇게 하면...

 

단전호흡을 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피가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되고, 정신이 맑아지고, 그렇게 해서 오래오래 허면 백 살 이백 살도 산다 하니까, 그 장생불사(長生不死)를 하기 위해서 이 단전호흡을 허다가 사십도 못 가고 피를 막 토하면서 그렇게 죽은 사람도 중국에나 한국에나 일본에나 상당수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아무리 좋다해도 잘 알아서 여법(如法)허게 해야지, 좋다고 한다고 마구잽이 막하면 반드시 해(害)를 보는 것입니다.

 

인삼, 녹용이 좋다 하니까 동이로 그놈을 삶아서 막 먹고 혈압이 올라서 죽은 사람도 있고, 또 요새 몸과 팔다리를 막 흔드는 에어라빅인가 그것 좋다고, 그러면 살이 빠지고 좋다니까, 그 몸이 비대하고 혈압 높은 분이 가서 막 흔들어 대다가 혈압이 막 오르고 해서 허리 아픈 생병(生病)을 얻은 그런 예도 있다고 말을 들었습니다마는,

이 참선법도 생사해탈(生死解脫)하는 그러헌 좋은 것이지만, 이것도 방법을 잘 모르고 자기 나름대로 잘못 허다가는 이것도 또한 얼마든지 병이, 생병이 날 수도 있고 그런 것입니다.

 

이 호흡법도 잘 알아서 하되, 제일 중요헌 것은 ‘무리가 없이 허라’ 이거거든.

 

숨 한번 들어마시는 시간이 약 3초, 8부쯤 들어마셨으면은 일단 딱 정지해 가지고 약 3초 동안을 딱 정지를 했다가 또 조용허게 내쉬는데, 내쉬는 시간은 약 3~4초 내지 4~5초 조금 길게 시간을 잡는 것은 좋습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분은, 숨 들어마셨다 잠시 정지했다가 내쉬는 거 합해서 10초 내지 십이삼 초 이런 정도로 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그것도 걸어다니다가 왔거나, 달음박질한 뒤끝에는 그렇게 안 됩니다. 그때는 숨이 급허면 급헌 대로, 숨이 짧으면 짧은 대로 하다가 차츰차츰 무리 없이 익혀 나가야지,

그래서 석 달이나 1년, 3년 나가면 이 숨도 차츰차츰 길어져서, 숨 한번 들어마셨다 내쉬는데 한 20초도 걸리기도 하고 30초도 걸리기도 허는데, 그것도 체질 따라서 숨이 긴 사람도 있고 짧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체질에 맞추어서—꼭 길다고만 좋은 것이 아니니까, 억지로 길게 늘릴려다가 오히려 수명을 단축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하시기를 바라고.

 

 

이 자세를 바르게 허고, 또 단전호흡을 허는 것은, 참선을 올바르게 해 나가는데 대단히 중요한 기본이 되는 것입니다. 기초가 되는 것인 만큼 앉는 자세를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좌선 시간>

 

처음에는 다리가 저리고 그렇지만, 이것도 10분 20분씩 차츰차츰 늘려가고 30분씩 늘려가고 또 나중에 1시간이 되면 더이상은 계속해서 앉을려고 말고, 1시간이 되면은 일어서서 포행(布行)을 헌다든지 다리를 뻗고 다리를 오그리고 또 발목을 돌리는 그러헌 운동을 해서 몸을 좀 풀고 그래 가지고 한 10분간 그렇게 쉬었다가. 그래 가지고 다시 또 앉아서 1시간, 이렇게 해서 2시간을 하신다면 중간에 1시간 (앉은 후)에 쉬는 시간을 갖고.

또 1시간을 헌다면, 중간에 한 30분쯤 해서 한 5분쯤 잠깐 포행을 하고 발목 운동도 하고 이렇게 해서 중간에 그런 포행 시간을 갖고 이렇게 해서 지혜롭게 해 나간다면 아무 부작용은 없이 공부는 나날이 익숙해질 것입니다.(33분34초~53분6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줄임말.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두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단전(丹田) ; 배꼽 아래로 한 치(寸) 삼푼 되는 곳(위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랫배에 해당. '단'은 약(藥)을 뜻하며, '단전'은 인체에서 가장 귀중한 약을 만들어내는 장소로서의 밭[田]이라는 의미. 도가와 한의학에서는 단전을 생명력, 활동력의 원천으로 본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산란(散亂 흩을 산/어지러울 란) ; 혼침(昏沈)의 반대인데 도거(掉擧)라고도 한다. 정신을 흐트러 어지럽혀 다른 곳으로 달아나게 하는 정신작용. 마음이 흐트러져 정리되어 있지 않은 것. 마음이 어지러운 것.

*혼침(昏沈 어두울 혼/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망상(妄想 망령될 망/생각 상) ; ①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으로 상정하고 집착하는 의식의 작용. 분별(分別), 망상분별(妄想分別), 허망분별(虛妄分別), 망상전도(妄想顚倒) 등으로도 한역한다. ②이치에 맞지 아니한 망령(妄靈)된 생각[想]을 함, 또는 그 생각. 잘못된 생각. 진실하지 않은 것을 진실하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

*응시(凝視 엉길 응/보일 시) ; ①시선을 한곳으로 모아 집중해서 뚫어지게 바라봄. ②어떤 일이나 현상에 대하여 깊이 살핌.

*주시(注視 물을 대다·마음을 쏟음 주/볼 시) ; ①어떤 일에 정신을 모아 자세히 살핌. ②어떤 목표물을 주의깊게 잘 살펴봄.

*횡격막(橫膈膜) ; 포유류의 가슴과 배 사이에 있는 근육으로 이루어진 막. 수축과 이완에 따라 위아래로운동을 하여 폐의 호흡 작용을 돕는다.

*오목가슴 ; 복장뼈(가슴의 한복판에 세로로 있는 뼈) 아래 한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곳.

*팔부(八部)쯤만 ; 보통 호흡하는 양의 80% 정도 만큼.

*장생불사(長生不死 길 장/날 생/아니 불/죽을 사) ; 오래도록[長] 살고[生] 죽지[死] 않음[不].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병.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를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것.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Posted by 닥공닥정
ㄷ/단전호흡2017. 7. 4. 19:06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7분 13초)

 

[법문] 송담스님(No.715)—2007년(정해년) 동안거결제 법어(07.11.24)(용715)

 

오늘 결제(結制)일이므로, 결제날이므로   나온 분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화두(話頭)에 대한 말을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습니다.

 

아무렇게나 앉고, 아무렇게나 숨을 쉬고, 아무렇게나 이뭣고?’ 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자세를 바르게 합니다. 가부좌(跏趺坐)나 또는 반가부좌(半跏趺坐).

억지로  가부좌를  것은 없고 가끔 시간이 있으면 가부좌도 하고서  분씩,  분씩 그렇게 앉아보는 것도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이 옛날에  가부좌를 하셨기 때문에 가부좌를 평소에 익히고 앉도록 해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부좌는 그렇게 오래 앉기가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반가부좌만 해도 되는 것입니다.

반가부좌는 보통 우리가 행감친다’고 이렇게 표현합니다마는 자세히 설명을 안 해도, 한 다리를 오그리고 다른 다리를  위에다가 포개는 것입니다. 그렇게 포개되 허리를  펴고 고개를 반듯이 드는 것입니다.

너무 뒤로 자지바지할 것도 없고, 앞으로 너머 숙여도 아니되고 반듯하되 어깨나 허리나 목에 너무 힘을 주어서는  됩니다. 정당(正當)하게 앉되  긴장을  풀고 앉는 것입니다.

 

눈은 너무 뚝 부르떠도 안되고 눈을 감어서도 안되고 평상(平常)으로 눈을 뜨는 것입니다.

 쳐다보라는 것은 아니지만  앞에서  2~3m 정도가 보일 정도로, 그렇다고 해서 거기다가 어떤 사람은 콩이나  그런 것을 갖다놓고 그것을 들여다보면서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마는 그것은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눈을 뜨고 보되  바가 없어야 하고, 자연스럽게 눈을 뜨면  2m 3m 지점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런 정도로 눈을 뜨라는 것입니다.

 

자세를 그렇게 했으면 호흡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호흡은 보통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도록 권장을 합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도  호흡에 대해서 말씀이 있었습니다마는 호흡은 대단히 참선(參禪)하는데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참선뿐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살아있다하는 것은 숨을 쉬고 있다’는 얘기고, ‘숨을  쉰다 것은 죽었다’고  말과 똑같은 말인 것입니다.

 

그래서 밥은 며칠도 굶을 수가 있고,  달도 굶고,  달도 굶는 사람이 있습니다마는 호흡은   분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가를 하는 사람은  주일 동안을 물통 속에 들어가서 있다가 나온 그런 특수한 사람도 있습니다마는 그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숨을  ,  분도  못 견디는 것입니다.

 

기왕 호흡을  바에는 바른 호흡을 해야 한다 이것입니다. 바른 호흡이라 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은 깊이 들어쉬었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내쉬는 것입니다.

 

호흡은 슬플 때는 자연히 호흡이 제대로  되고, 흥분해도 호흡이   되고, 누구를 미워하는 생각을 내도  되고, 병이 나도 호흡을 제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호흡을 제대로 하면 혈액순환도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에 노폐물은 밖으로  배설해버리고 맑은 피를 몸으로 고루고루 순환시켜서 그래서 있는 병도 낫고 따라서 건강도 좋아지는 것입니다.

 

참선은, 아프면 아플수록에 정신을  가다듬어야 하고, 어떤 걱정스러운 일이 있을수록에 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참선을 해야 하고,

사업이  안되고 가정에 어떤 걱정스러운 일이 나더라도 오히려 몸을 가다듬고 호흡을, 깊은 호흡을 하면서 참선을 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안정을 시켜야 하는 것인데.

 

더욱이 부모와 형제와 가정을 버리고 인생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이 참선을 할려면, 첫째 건강해야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건강이  좋아가지고서는 절대로 정진을 충분히 잘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밤낮 보약을 먹고 그래가지고 건강을 회복해야 정진해야 된다 그런 얘기가 아니고.

 

첫째, 건강을 유지할라면은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여법(如法)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호흡을 여법하게 하는 데는 별로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시간도 필요가 없습니다. 보약을 먹거나 특별한 운동을 할려면은 시간이 따로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고 그러겠지만 호흡을 바르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필요가 없고, 올바르게 하는데.

 

호흡을 바르게 하는 법은 깊이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는 아랫배가 약간 볼록해진 것을 느끼고, 내쉴 때는 아랫배가 홀쪽해진 것을 느끼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엔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만 나중에 하루 이틀 열흘 한  하다보면 무의식중에 그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올바르게 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1727~2441)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하안거는 음력 4 15일에 결제하며, 동안거는 음력 10 15일에 결제한다.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이뭣고(是甚 시심마, 시삼마) : ‘이뭣고? 화두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자리)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 일곱 ()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 ,   ()이다. ‘이뭣고?(이뭐꼬)'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뜻은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왔다.

 

[참고] 이뭣고? 이것이 무엇인고?

···뭣고·····?” 이렇게 의심을  나가되, 이런 것인가 저런 것인가 하고 이론적으로 더듬어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못 ···뭣고······?” 이렇게만 공부를 지어나가야 됩니다. 여기에 자기의 지식을 동원해서도 안되고, 경전에 있는 말씀을 끌어 들여서 아하! 이런 것이로구나!” 이렇게 생각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화두(공안)  우주세계에 가득  있는 것이지마는 문헌에 오른, 과거에 고인(古人)들이 사용한 화두가 천칠백인데,  이뭣고?’ 화두 하나만을 열심히  나가면   문제 해결함으로 해서 천칠백 공안이 일시(一時) 타파가 되는 것입니다.

화두가 많다고 해서  화두 조금  보고, 안되면   화두   보고, 이래서는  쓰는 것입니다. 화두 자체에 가서 좋고 나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화두 철저히  나가면 일체 공안을 일시에 타파하는 것입니다.(7634~7822) [ ‘참선법 A’ 에서]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책상다리할 /앉을 ) ; 결가부좌(結跏趺坐) 줄임말.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 발바닥을, ()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다리를 교차시켜 양쪽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앉는 좌법(坐法). 가부(跏趺) · 가좌(跏坐)라고도 한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행감치다 ; ‘양반다리 하고 앉다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

*자지바지 ; 좌선(坐禪)  몸에 너무 힘을 주어,  전체가 긴장으로 인해 뻣뻣하게 되어 있는 모습. 좌선  때는 몸을 단정(端正) 하면서도 긴장과 힘을 빼야 한다.

*정당(正當)하다 ;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

*평상(平常) ; 평상시(平常時,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

*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여법(如法 같을·같게 ·따를·좇을 /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Posted by 닥공닥정
ㄷ/단전호흡2017. 5. 31. 03:52

*단전 호흡(丹田呼吸) ;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일반적으로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그리고 공양(식사) 후 2시간 지나서 하라.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이다.

 

(12분 23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34)—신유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81.05.29) (세등34)

 

어제 오늘 몇 사람의 수좌(首座)로부터 공부에 관한 자문을 받았는데, 이 정진은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상관이 없어.

걸어갈 때나, 서 있을 때나, 앉았을 때나, 누워 있을 때나, 말을 할 때나, 말을 아니하고 있을 때나, 움직일 때나, 고요히 있을 때나, 일체처 일체시에 분별이 없이 다못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 간에 알 수 없는 화두(話頭)만을 거각(擧却)할 뿐이여.

 

그렇게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때도 없이, 어떠한 특정한 장소도 없이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갈 뿐이지만,

그래도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앉아서 기본자세, 가부좌(跏趺坐)나 반가부좌(半跏趺坐)를 하고 기본자세로 정진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가장 힘을 얻기 쉽다.

 

그래서 고래(古來)로부터 참선(參禪)을 ‘좌선(坐禪)’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기본자세로 앉아서 정진한 것이 제일 효과적이고 득력(得力)을 하기가 쉽기 때문에 그래 해 온 것이다.

 

 

앉아서 다못 화두만을 거각할 뿐인데, ‘기왕 먹는 떡에 살을 박아서 먹어라’

흰떡을 풍풍 찧어서 그냥 뭉탱이로 만들어 가지고 아무렇게 생겼거나 말았거나, 입으로 비어서 잘 씹어서 먹으면 그만이지만. 아! 그걸 길게 길게 가래떡으로 늘여 가지고, 그것을 또 떡살로 눌러서 옴자나 꽃무늬나 그런 모양을 박아 가지고 그렇게 먹는다 그말이여.

 

뭐하러 그냥 먹으면 좋을텐데 팔 아프고 시간 걸리고 힘들여서 떡살로 박아서 먹느냐 그말이여.

그래도 먹는 떡에 살을 박아서 먹으면 접시에다 놓아도 좋고, 봄에도 좋고 또 먹기도 편리하고 그렇듯이, 앉아서도 하고, 누워서도 하고, 엎져서도 하고, 걸어가면서도 하고 아무렇게 해도 상관이 없고.

 

그렇지만 이왕이면 자세를 바르게 하고서 호흡도, 아무렇게 쉬어도 호흡을 숨 안 쉬고 누가 사는 사람이 있느냐 그말이여. 누웠거나 앉았거나 숨은 전혀 의식을 하지 아니 해도 무의식 중에 콧구멍으로 숨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살게 되어 있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숨을 아무리 쉬지 말라고 해도 소용이 없고, 심지어는 잠 잘 때도 스스로 숨을 쉬게 되고, 잠자고 있을 때도 누가 콧구멍을 살며시 막을라고 하면은 무의식중에 손을 탁! 때려서 치워 버리고 숨을 쉬는 것이다 그말이여.

갓난애기도 누가 콧구녁을 막으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애기도 코 앞을 갔다 손으로 집어 쳐 버리고 숨을 쉬는 것이다 그말이여.

 

그렇게 숨을 무의식중에 쉬게 되는데 구태여 무슨 단전호흡(丹田呼吸)이다, 복식 호흡(腹式呼吸)이다 뭐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단전호흡 하는 법을 잘 알아서 여법(如法)하게 단전호흡을 하면 혈액 순환이 잘되고, 혈액 순환이 잘됨으로써 몸안에 있는 노폐물이 잘 밖으로 배설이 되고, 따라서 정신이 안정이 되고 정신이 맑아지기 때문에 기왕이면 가부좌나 반가부좌를 하고서 단정히 앉아서 호흡도 안정되게 단전호흡을 하면, 그러면서 화두를 거각하면 정진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첫째, 상기병(上氣病)을 예방을 하고,

까딱하면 ‘이뭣고?’ ‘어째서 정전백수자라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자꾸 의심을 들고 들고 또 들고 그렇게 의심을 하다 보면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에 머리로 상기(上氣)가 될 우려가 다분히 있기 때문에,

 

항시 의식적으로 숨을 들어마실 때에는 배꼽 밑에 단전이 약간 볼록해진 것을 의식을 하고, 내쉴 때는 약간 홀쪽해지도록 느끼면서 하면은 우리의 의식이 하복부에 집중이 되기 때문에 몸의 기운도 하복부로 기운이 모여지게 되는 것이다.

 

‘기운’이라 하는 것은 현대 의학에서는 전혀 모르는 소리고, 동양 의학이나 음양오행(陰陽五行)에서는 ‘기운’ 소리를 이해를 하고 말을 하고 있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기운’이란 소리를 몰라.

전혀 모르고, 아무리 신체 해부를 해도 그것이 나타나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것이지만 실지로 우리가 생활을 해 보면, 흥분을 하면 벌거니 위로 상충(上衝)이 되서 얼굴이 붉어지고, 참선을 해 보면 머리가 개운하고 상쾌하고 깨끗하게 될 때가 있고.

 

괜히 머리로 기운이 위로 올라가 가지고 얼굴이 약간 붉으면서 골치가 띵해 갔고 맑은 정신이 없어서 아무리 공부를 헐라고 해도 영 잘 안되는 것같이 기분이 나쁘고 그런 것을 느끼는데, 분명히 그게 상기의 일종이다 그말이여.

 

그런데 몸을 바르게 단정히 갖고, 그리고서 단전호흡을 올바르게 하면 머리가 자연히 개운해지면서 상쾌하면서 성성(惺惺)하게 정진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항시 이 단전호흡을 권장을 하고 그러는데,

 

이 단전호흡을 잘못하면—너무 억지로 힘을 쓴다든지, 너무 숨을 잔뜩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고무풍선처럼 터질 듯이 배가 빵빵해지도록 숨을 들어마시고,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오래하기 위해서 얼마 동안을 참으면서 얼굴이 벌거질 때까지 참고 있다가, 내쉴 때는 아주 뱃가죽이 등허리에 붙을 때까지 하고 해서 너무 무리하게 단전호흡을 해 가지고,

 

그래 가지고는 어깻죽지가 눌린 것같이 느끼기도 하고, 오목가슴이 조여들어서 그다음에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면, 숨을 내쉴라고 해도 내쉴 숨도 없고, 들어마실라고 해도 들어마시지도 않고 이렇게 해서 또 애를 먹고 그러는데, 이것이 모두 다 단전호흡을 무리하게 잘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억지로 무리하게 해서 부작용이 일어나게 할 바에는 단전호흡을 아니하고 그냥 호흡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을 갖지 말고, 지가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 그말이여. 그리고 그냥 화두만을 자꾸 들면 차라리 그게 나은 것이다.

 

이 참선도 불법(佛法)에 여러 가지 수행 방법 가운데에 최고의 방법이지만 참선도 잘못하면—아까 사량복탁을 한다든지, 분별심으로 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간다든지, 또는 화두도 없이 우두거니 빈곳을 들여다보고 앉았다든지, 이런 식으로 참선을 잘못하면 차라리 참선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해.

 

그와 마찬가지로 단전호흡도 올바르게 잘하면 상기병도 예방을 하고, 상기병이 걸린 사람도 이것을 잘하면 상기병을 나을 수도 있고, 위장병이 있는 사람도 위장병이 나을 수도 있고, 소장이나 대장이 좋지 못한 사람도 이것을 하면 그런 병이 나을 수도 있고,

온갖 병을 이 단전호흡을 함으로써 한 달, 두 달, 석 달, 1년 하는 가운데에 언제 어떻게 낫은 중도 모르게 그러한 병이 자연히 낫게도 되는데, 잘못하면 없는 병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욕득장생(欲得長生)이라가 반치요절(反致夭折)이다. 장생(長生)을 할려고 한 것이 오히려 생병(生病)이 나가지고 일찍 죽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고인은 말씀을 했습니다.

 

전강 조실 스님 녹음법문(錄音法門) 가운데에도 단전호흡에 관해서 가끔 법문을 하셨고, 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단전호흡에 대해서 말했지만, 단전호흡을 올바르게 해야지 잘못하면은 그러한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을 다시 한번 이렇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11분27초~23분4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무시선(無時禪) 무처선(無處禪) ; 어떤 특정한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못 일여(一如)하게 화두에 대한 의심을 관조해 나가는 선(禪).

*가부좌(跏趺坐 책상다리할 가/책상다리할 부/앉을 좌) ;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가(跏)는 발바닥을, 부(趺)는 발등을 가리키는 말인데,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드러나게 앉는 항마좌(降魔坐)와,

왼발을 오른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은 뒤, 오른발을 왼편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아 양쪽 발바닥이 위를 향하게 하여 앉는 길상좌(吉祥坐)가 있다.

*반가부좌(半跏趺坐) ; 부처님의 좌법(坐法)으로 좌선할 때 앉는 방법의 하나. 한쪽 다리를 구부려 다른 쪽 다리의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고 앉는 자세이다.

*고래(古來) ; ('고래에', '고래로' 꼴로 쓰여)옛날부터 줄곧.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득력(得力) ; 수행이나 어떤 기술, 운동에서 자꾸 되풀이해서 하면, 처음에는 잘 안되던 것이 할라고 안 해도 저절로 잘 되어질 때 득력(得力)이라 표현. 수월하게 되어 힘이 덜어지는 것을 다른 표현을 쓰면 그것을 ‘힘을 얻었다(得力)’하는 것.

참선 수행에서는 화두에 대한 의심을 할려고 안 해도 저절로 의심이 독로(獨露)하게 되는 것을 ‘득력’이라고 말한다.

* ; 떡살로 찍은 무늬.

*떡살 ; 떡에 갖가지 무늬를 찍어 내는, 나무나 사기로 만든 판. 또는 그것으로 찍어 낸 무늬.

*단전 호흡(丹田呼吸) ; 참선 수행에 있어서 호흡법은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하고, 마음도 안정을 시키고 통일되게 하여 우리가 참선을 해 나가는 데에 중요한 준비, 기초 훈련입니다.

단전 호흡을 하게 되면은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됨으로 해서 몸안에 모든 노폐물이 깨끗하게 밖으로 배설이 되서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지고 따라서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이 안정이 된다.

주의할 점은 자신의 호흡의 길이에 알맞게 시작하고 자연스럽게 해야지, 절대로 억지로 호흡 시간을 길게 잡아 무리해서는 안된다.

 단전호흡 요령.

의식적으로 숨을 저 배꼽 밑에 아랫배 하복부[丹田]까지 숨을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하니 길게 숨을 내쉬는 호흡.

들어마시는 시간 한 3초, 들어마셨다가 잠깐 머무르는 시간이 한 3초, 내쉬는 시간은 4~5초, 이렇게 해서 내쉬는 시간을 좀 길게 잡아서 내쉰다.

 

들어마시되, 아랫배가 터지도록 잔뜩 들어마시지 말고 한 80%정도만 들어마시고, 80% 들어마신 상태에서 3초 동안 잠깐 머물렀다가 조용히 내쉬는데, 들어마실 때에는 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게 만들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 배를 홀쭉하게 만든다.

그래서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No.118)—80년 동안거해제 법문에서.

숨을 들어마실 때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을 하지 말고—저 뒤에서 쭉 들어마셔 가지고, 이 궁둥이로 해서 아랫배로 요렇게 들어온다고 이렇게 생각을 하고 들어마시면 아주 수월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숨을 코로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까지 이렇게 집어 넣는다’고 생각하면, 들어마셔 가지고 이 윗배 오목가슴 정도까지 가 가지고 거기서 딱 맥혀 가지고 아래로 내려가지를 않아서 애를 먹게 됩니다. 그런 상태에서 억지로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하고 영 시원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코로 들어마신다고 생각하지 말고 ‘저 뒤에서 궁둥이로 쑥 들어마셔 가지고 직선으로 들어와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온다’ 이렇게 생각하고 들어마시고, 내쉴 때도 ‘그 자리에서 직선으로 뒤로 쑥 내쉰다, 내보낸다’ 이러한 기분으로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그래서 『숨은 직선으로 뒤에서 이렇게 들어마시고 내쉴 때는 직선으로 뒤로 이렇게 내보낸다』

들어마실 때는 배가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볼록해지고, 내쉴 때는 차츰차츰차츰 아랫배가 홀쪽해진다. 이렇게 의식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복식 호흡(腹式呼吸) ; 숨을 들어마셨다 잠깐 머물렀다 또 내쉬되, 배가 그것에 따라서 볼록해졌다 또 홀쪽해졌다,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도록 해서 가로막의 신축에 의하여 하는 호흡. 단전호흡(丹田呼吸).

*상기병(上氣病 오를 상/기운 기/병 병) ; 화두를 머리에 두고 여기에 속효심(速效心)을 내어 참구하다가, 모든 열기[氣]가 머리에 치밀게[上]되어 생기는 머리 아픈 병(病).

상기병이 생기면 기운이 자꾸 위로 올라와서, 화두만 들면 골이 아파서 공부가 지극히 힘이 들고 심하면 머리로 출혈이 되며 몸이 쇠약해짐. 상기병의 예방과 치료로 단전호흡과 요료법(尿療法, 오줌을 이용하여 질병을 치료하는 민간 요법의 하나)이 사용된다.

[참고] '요료법'에 관한 책. ①『기적을 일으키는 요료법』 (김정희 저 | 산수야). ②『요료법의 기적』 (나까오 료이치 | 산수야). ③『의사가 권하는 요료법』 (이영미 | 산수야). ④ 『요료법의 기적』 (건강신문사 편집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 ; 음·양의 2기(氣)와 수(水)·화(火)·목(木)·금(金)·토(土)의 5행으로 자연현상이나 인간·사회의 현상을 설명하는 사상.

*상충(上衝 위 상/찌를 충) ; 위로 치밀어 오름.

*오목가슴 ; 복장뼈(가슴의 한복판에 세로로 있는 뼈) 아래 한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곳.

*생병(生病) ; 무리한 일을 해서 공연히 얻은 병.

*전강선사 녹음법문(錄音法門) ; 전강 스님께서 후학을 위해 참선법(參禪法)을 핵심으로 설한 법문이 칠백여 시간 분량이 녹음되어 있다. 이 중에는 『전강선사 일대기』 『몽산법어』 『초발심자경문』등이 있다. 용화선원(녹음실)에서 전강선사 및 송담스님의 모든 법문을 mp3 파일로 구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