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을 수 있겠습니까((No.650))—이 공부는 마음길이 끊어져야 하고 자기의 본참공안에 철저하게 몰입을 해서 다못 그렇게 실참(實參)해 갈 따름인 것입니다.


*지난 석 달 동안에 가행정진을 했는데 과연 얻은 바가 무엇이냐? 그동안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느냐?

이 공부는 마음길이 끊어져야 하고 자기의 본참공안에 철저하게 몰입을 해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다못 그렇게 실참(實參)해 갈 따름인 것입니다. 동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는 언제 넘어져도 동쪽으로 넘어질 것이고, 불법을 믿고 올바르게 정진을 한 사람은 언제 깨달아도 확철대오를 할 수밖에는 없습니다.

 

 

(1) 19분 40초.

 

 

(2) 4분 31초.

 


[법문] 송담스님(No.650)—2001년 동안거해제 및 백일기도 회향(01.02.07) (용650)

(1)------------------

과연 지난 삼동, 석 달 동안에 밤잠을 안 자고, 그저 가행정진을 했는데 과연 얻은 바가 무엇이냐? 그동안에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느냐?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얻었다, 이런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것이 보였다’ 여러 사람 가운데에는 나름대로 무엇인가 얻은 바가 있고, 본 바가 있고, 깨달은 바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마는,
사실은 ‘아무것도 얻은 바가 없었다. 보이는 것도 없었다. 얻은 바가 없고 보인 바가 없고, 석 달 동안이 언제 어떻게 지내간 줄을 모르고 오늘 해제를 맞이했다’ 산승(山僧)은 그분이야말로 석 달 동안을 정말 올바르게 수행을 한 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뭣이 보였다든지 뭣이 나타났다든지 뭣을 얻었다든지 했다 하면은 그 정진(精進)은 마장(魔障)이 일어난 것이고. 그런 것을 얻었고 보였고 나타났다고 해서 좋아한 생각을 냈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은 참다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한 분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을 합니다.

혹 그런 것이 나타나고 보였다 하더라도 없었던 걸로 하고 전혀 그런데 집착을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본참공안(本參公案)만을 턱 거각(擧却)을 해서 알 수 없는 의심만을 가지고 잡드리하고 싸웠다면은 그분이야말로 정진을 올바르게 하려고 노력을 한 분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 공부는 다른 세속의 공부, 학문 그런 거와 달라서 얼마만큼 하면 뭣이 나타나고, 뭣이 얻어지고 그럴 수 있는 공부가 아닙니다.
해 갈수록 알 수가 없고, 아무것도 보인 것이 없고, 아무것도 나타난 것도 없고, 아무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어야 참으로 이 활구참선을 올바르게 해 가는 수행자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지나가는 과거를 붙잡지도 말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해서 어떠한 꿈도 꾸지 말아라. 그리고 오직 현재 이 순간에 너의 마음을 집중하라’ 하셨습니다.
순간에 무엇에다 집중을 하느냐? 알 수 없는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 그 의심에 자기의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집중한다’는 말은 부득이해서 하는 말이고, 알 수 없는 의단(疑團)만을 거각해 나갈 따름인 것입니다.

얻어질 것도 없고, 보일 것도 없고, 나타날 것도 없습니다. 무슨 재미로 그런 짓을 하고 있느냐? 무엇을 하기 위해서 그것을 하고 있단 말이냐?
한 달을 하고, 두 달을 하고, 석 달을 하고, 일 년을 하고, 삼 년을 해도 아무것도 얻어지는 것이 없고 나타난 것이 없는데 뭣 때문에 그런 짓을 하고 있느냐?

이 공부는 마음길이 끊어져야 하고 자기의 본참공안에 철저하게 몰입을 해서, 다맛 그렇게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다못 그렇게 실참(實參)해 갈 따름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한 나무가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그 나무는 언제 넘어져도 넘어질 때에는 동쪽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불법을 믿고 최상승법을 믿고 최상승법에 의지해서 그 믿음 속에서 한결같이 정진을 해 나가면 그 사람은 언제 죽어도 부처님의 청정국토(淸淨國土)에 태어날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청정국토라 하는 것은 우리의 청정한 진여불성(眞如佛性)이요, 나의 마음자리일 것입니다. 다맛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한 것만이 우리가 닦아갈 길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 나가는 사람은 설사 일 년 내지 삼 년 내지 십 년, 삼십 년이 걸려서도 깨닫지 못했다 하더라도 조금도 조급한 생각을 낼 필요가 없고,
설사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마지막 죽음에 다다랐서도 알 수 없는 본참공안에 대한 의단이 독로(獨露)한 그 상태에서 숨을 거둔다 하더라도 후회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마음에 허덕이는 마음이 없고, 구하는 것이 없고 다맛 철저하게 최상승법을 믿고 자기의 본참공안이 그 의단이 독로해서 순수무잡(純粹無雜)한다면 바로 그 경계는 깨달음의 바로 이웃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생각이 없지만 본참공안에 의단이 독로해서 조급한 생각도 없고 깨달으려고 하는 생각도 없고, 후회도 없고 순수무잡한 의단이 독로한 상태에 도달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된다면 그것이 우리 수행자가 목숨 바쳐 나아갈 길이요, 우리가 그런 상태에서는 삼세제불(三世諸佛)과 파수공행(把手共行)한 자리일 것입니다. 파수공행(把手共行)이라 하는 것은 부처님과 손을 맞잡고 함께 걸어간다는 말입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들의 초롱초롱한 그 눈망울을 보니 과연 그렇게 지난 한철을 잘 정진하신 분들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도 중국의 천목산 고봉(高峰) 스님의 「선요(禪要)」에 있는 법문에 잠깐 언급을 하셨습니다마는,

죽비(竹篦)를 치면 형식적으로 입선(入禪)을 하고, 입선 중에는 혼침(昏沈)에 빠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산란심(散亂心)에 그렇게 지내다가, 방선(放禪) 죽비를 치면 금방 머리를 모아서 한화잡담(閑話雜談)을 하고, 온갖 시비를 하고 그러다가 또 입선 시간이 되면 입선을 하고, 또 죽비 치면 방선하고.
혼침과 산란과 잡담과 시비로써 그럭저럭 그렇게 지낸다면 만만천천(萬萬千千)을 타살(打殺)을 한들 무슨 죄가 있겠느냐.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과연 혼침, 산란에 시달리지 아니하고 한화잡담과 시비쟁론을 하지 아니하고, 일 초 일 분을 헛되이 지내지 아니하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본참공안 하나만을 거각하면서 한결같이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열흘을 그렇게 지내고, 한 달을 그렇게 지내고, 석 달, 백일을 그렇게 지내면서 일념(一念)이 만년(萬年)토록 그렇게 지낸 분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는가?

그럭저럭 한화잡담으로 형식적으로 정진하고 지낸다면 그건 참 공양주(供養主) ・ 채공(菜供)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원주(院主)와 별좌(別座) 스님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시주 단월(檀越)들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나를 낳아주신 부모와 스승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도량 신장(神將)에게도 부끄러울 일이고, 삼세제불께도 부끄러울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자가 먹고 입고 살고 있는 모든 시설과 재산은 석가모니(釋迦牟尼) 부처님께서 사십 년 동안 수용하실 그 유산을 우리 말세(末世)의 제자들에게 남겨 놓으신 그 덕으로 우리는 걱정없이 먹고 입고 이렇게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재산은 목숨 바쳐서 정진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남겨주신 재산이지, 그럭저럭 한가하게 그럭저럭 먹고 편안히 놀고 한화잡담하고 지내면서 살으라고 남겨주신 유산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소떼가 지내가니까 ‘저 소떼들을 아느냐? 당면에 철저하게 수행을 하지 아니하고, 철저하게 도를 닦지 아니하고 그럭저럭 지낸 그러한 중들이 저 소가 되었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인연 따라서 죽이면 죽, 밥이면 밥, 국수면 국수, 찰밥이면 찰밥, 그날 그때 나온 대로 경건한 마음으로 공양을 하고 공양을 하면서도 화두를 들고,
입선 중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방선 중에도 또 운력(運力)을 할 때에도, 소지(掃地)를 하고 화장실에 갈 때도, 포행(布行)을 할 때도 한결같이 화두를 거각하고 한 생각을 단속해서 정진한 사람은 설사 금생에 확철대오을 못하고 그랬다 하더라도 그렇게 지낸 사람은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동쪽으로 기울어진 나무는 언제 넘어져도 동쪽으로 넘어질 것이고, 불법을 믿고 올바르게 정진을 한 사람은 언제 깨달아도 확철대오를 할 수밖에는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사람의 전생에 닦아온 것과 금생에 닦은 그러한 것이 복합적으로 해서 칠 일만에 깨닫기도 하고, 석 달만에 깨닫기도 하고, 삼십 년만에 깨닫기도 하고 또 그렇게 애써서 정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생에 확철대오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바르게 그리고 얼마나 열심히 도(道)를 닦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지, 누가 먼저 깨달았느냐 그것은 크게 문제 삼을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올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닦았으면 우리는 후회할 것도 없고 부끄러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는 수원 용주사 중앙선원 선객(禪客)들, 그리고 대전 세등선원, 전주 위봉사 비구니 스님들 또 남원 승련사 또 의정부 회룡사, 각처에서 공부하다가 토굴(土窟)에서 공부하던 그런 납자(衲子)들도 오셨습니다. 그리고 용화사 법보선원, 인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정진하신 도반(道伴)들도 이 자리에 다 모이셨습니다. 그리고 각 선원에서 공부한 청신사(淸信士) ・ 청신녀(淸信女)들도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석 달 동안 열심히 정진하다가 오신 그 증거가 여기 둘러보니, 그 역력히 가행정진 용맹정진 알뜰하게 정진하신 모습이 역력합니다. 그리고 더 정확한 것은 여러분 자신들이 석 달 동안을 과연 내가 어떻게 정진을 해 왔는가 잘 검토를 해보면 더 잘 아시게 될 것입니다.

이 공부는 공연히 육체만을 들볶는 고행(苦行)을 위한 고행을 하는 것은 올바른 정진이 아니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건강도 지혜롭게 관리하고, 정진도 지혜롭게 정진을 해야 중간에 퇴타(退墮) 인연이 없다고 하셨습니다.(7분58초~27분36초)





(2)------------------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이라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인덴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이리요
나무~아미타불~

진로형탈(塵勞逈脫)이 사비상(事非常)이다. 생사 진로(塵勞)를 멀리 벗어나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어.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이다. 꽉 승두(繩頭)를 잡아서 한바탕 정진을 해야 한다.

한번 그 추위가 뼛골에 사무치지 않는다면 어찌 매화꽃 향기가 코를 침을 얻으리오.
겨울에 되게 강추위를 한 뒤끝에 피어야 그 매화꽃 향기가 유난히 진동을 한다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겨울에 이상 난동으로 날이 뜨뜻한 뒤끝에 매화꽃이 피면 별로 향기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 할 일은 오직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알뜰히 한 생각을 단속해 나가는 일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아직도 산과 들에는 허옇게 눈이 남아 있습니다. 입춘이 지나고 또 우수가 돌아오는데 여기서 저기서 매화꽃이 필 때가 왔습니다. 다니시다가 매화꽃을 보시거든 그 향내가 얼마나 좋은가 한번 맡아보시고, 과연 자신도 향내 나는 매화꽃처럼 열심히 정진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석 달 동안 정진하시느라고 애쓰고 또 그 외호(外護)하느라고 원주, 별좌, 공양주, 채공 그러신 분들 모두 그런 형제자매 도반 여러분께 원장으로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다시 또 이다음 철에 건강한 모습으로 또 만나서 정진하기를 기약을 하고, 이 법당에서 일어나시더라고 항상 결제(結制) · 해제(解制) 상관 말고, 입선 · 방선 상관 말고 알뜰히 정진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27분40초~32분1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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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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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대중스님들께서 참선수행에 더욱 도움이 되고자 선정(추천)한 법문목록도 함께 보급합니다.

Posted by 닥공닥정

*내가 금생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확실히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3분 39초)

 

[법문] 송담스님(N0.427)—90년 10월 첫째일요법회(용427)

 

요새 더위도 갔고 아직 추위도 오지 안 했으니, 옛날에 학문을 하는 사람은 등화가친(燈火可親), 등불을 가까이 할 때다, 독서를 하기 좋은 때다 했습니다마는 우리는 펴 봤자 한 글자도 없는 경(經)을 읽는 거여.

 

알 수가 없는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도록만 잡드리한다면, 걸어가면서도 '이뭣고?' 차를 타면서도 '이뭣고?'

세수하고 양치질 하면서도 '이뭣고?' 누워서도 '이뭣고?' 앉아서도 '이뭣고?'

 

해 갈수록 뭣이 환히 알아지는 것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의단이 독로하도록만 잡드리해.

 

인간에는 생노병사가 있고, 세상에는 흥망성쇠가 있고, 이 지구도 앞으로 백만 년 후에는 뭐 없어진다던가? 지구도 틀림없이 없어집니다. 이 세상에 생겨난 것은 결국은 언젠가는 없어지고 마는 것이니까.

우주 이 세계나 우리의 몸뚱이나 결국 없어지는 것인데, 그 없어진 것 가지고 그놈에 붙잡고 늘어져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거고.

 

언젠가는 없어질 줄 알았다면 그 속에서 영원을 살아가는 길을 우리는 발견을 했으니 그 길에 벗어부치고 대든다면 우리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금생에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확실히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뭣한 사람은 그것이 궁금해서 나한테 '확실히 깨달을 수 있다'고 한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내가 깨달을 수가 있겠습니까? 깨달을 수 없다면 공연히 이 아까운 인생을 거기다 바치면 허송세월 할 것이고, 그러니 깨달을 수 있다면 내가 마음놓고 공부를 하겠습니다'

아! 거 대단히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뭐라고 대답하냐 하면은 '깨달을 수는 틀림없이 있는데, 앞으로 3년 후에 깨달을지, 10년 후에 깨달을지, 30년 후에 깨달을지, 마지막 숨 딱 질 때 깨달을지, 금생에는 못 깨닫고 내생에 깨달을지, 그것은 내가 알 수가 없으나,

그 언제 깨달을 것이냐 하는 것은 본인이 첫째, 과거에 어떻게 닦아 왔느냐 그것도 무시할 수가 없을 것이고 또 금생에 얼마 만큼 바른 법에 의해서 전력투구를 하느냐, 금생에 얼마만큼 여법(如法)하게 닦느냐 그것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언제 깨달을 것인가?' 자꾸 미리부터 그것에 신경쓰실 것은 전혀 없습니다. 그것 따질 시간이라도 화두(話頭)를 들어야 그만큼 시간은 단축 된다 이것입니다.(42분36초~46분15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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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펴 봤자 한 글자도 없는 경을 읽는 거여' ; '我有一卷經 不因紙墨成 展開無一字 常放大光明' '내게 한 권의 경(經)이 있으니 종이나 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펴보면 한 글자도 없건만 항상 큰 광명을 놓는구나' 서산대사의 『운수단가사(雲水壇謌詞)』 [부록(附錄)] '거량(擧揚)'에 있는 게송.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의/덩어리 단/홀로·오로지 독/드러날 로) ; 공안, 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가 홀로[獨] 드러나다[露].

*잡드리 ; ‘잡도리’의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그 대책. ③아주 요란스럽게 닦달하거나(단단히 윽박질러서 혼을 내다) 족침(견디지 못하도록 몹시 급하게 몰아치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뭣한 ; 뭣하다(무엇하다). 형용하기 어렵거나 그것을 표현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 암시적으로 둘러서 쓰는 말. 주로 '거북하다' '곤란하다' '난처하다' '딱하다' '미안하다' '쑥쓰럽다' 따위의 느낌을 나타낼 때 쓴다.

*여법(如法 같을·같게 할·따를·좇을 여/ 부처님의 가르침·불도佛道 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