ㅈ/정성심2016.08.05 22:34

정성심(情誠心) (No.706)—오조 홍인(五祖弘忍)대사의 『최상승론』 | 속마음으로부터 일어난 진실한 발심 | 거짓 바보 노릇.


*정성심(情誠心 진심·성심·참마음 /정성·진실 /마음 ) ; 정성심(精誠心).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생사 문제, 일대사(一大事) 해결했는데, 무슨 연고로 나는 아직도 생사 문제를 해결 못했나? 진실로 힘을 다하여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

(7분 32초)

[법문] 송담스님(No.706)—2006(병술년) 동안거 결제 법어(06.12.05)


오조 홍인(五祖弘忍)대사의 법문에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일대사를 해결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생사 문제를 해결을 못했느냐? 이런 데에 대한 신심(信心) 분심(憤心) 대해서, 그리고 화두를 타고 정진을 사람은 의심(疑心), 자기 마음으로부터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하는 정성심(情誠心) 일어나야 한다 것입니다.


그러한 정성심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속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진실한 발심이 아니고 진실한 분심이 아닌 것입니다.

정말 진실한 정성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면 저절로 신심과 분심이 한목 일어나서 화두를 들라고 하지 해도 저절로 터억 화두가 드러난다. 이러한 오조 스님이 직접 화두란 단어는 사용하지 아니했지마는 그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법문 끝에다맛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고 요연(了然) 수본진심(守本眞心) 하되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양치(佯癡) 하는 것은거짓 ()’, ‘어리석을 ()’ 양치입니다.

거짓 ()’, ‘병들 ()’ 양병(佯病)이라 하면 사실은 병이 났는데 병이 것처럼 거짓 꾀병을 앓는 것을 양병이라 하는데, 실지는 바보도 아니고 어리석지도 않지마는 바보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바보 노릇을 하냐 하면은 말귀를 알아들은 것처럼 바보 노릇을 하라 이것입니다.


선방에 가지고 똑똑한 하고 잘난 하고 그래가지고 시비(是非) 하고 그래서 옆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대중을 소란케 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양치(佯癡) 아니라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방에 와서는내가 과거에 좋은 훌륭한 대학을 나왔거나, 과거에 무슨 자랑할만한 경력이 있거나 무슨 말을 잘하거나 외국어를 잘하거나, 수단이 있어서 무슨 일을 처리하고, 무슨 재주가 있어서 뭣을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고, 물건을 만들고...’ 그런 생각을 버리고, 출가한 뒤에 선방에 나온 지가 여러 철이 되어서 구참이 되거나 그런 생각도 버리고,

오직 말귀도 알아들은 바보가 되어 가지고, 거짓 바보가 되어가지고 하루 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달을 그렇게 지내서, 그러면서 속으로는 떠억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거각(擧却) 해서 퍼뜩 잊어버리면 챙기고, 놓치면 챙기고 해서, 그렇게 해서 누구하고 잡담 겨를도 없고.


밥이 맛있거나 없거나 반찬이 맛이 있거나 말거나, 밥이면 , 찰밥이면 찰밥, 국수면 국수, 라면이면 라면, 그저 원주 별좌 공양주가 정성껏 해다 올리면 그저 죽비() 따라서 공양을 들되 숟갈을 들고 밥을 뜨고, 저분으로 반찬을 들고 것이 이것이 전체가 화두를 드는 의심속에서 그렇게 하되,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밥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렇게 철을 하루 하루를 지내면 반드시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마침내는 의단을 타파(打破)하고 자기의 본각(本覺), 본성(本性) 깨닫게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바보 노릇을 하면서, 말귀도 알아들은 바보 노릇을 하면서 이렇게 정진(精進) 해야 기력(氣力) 적게 소모하고서도 정진에 크게 () 있으니 이렇게 정진한 사람을 과연 대정진인(大精進人)이라고 수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조 스님 당시에 화두라고 하는 간화선법(看話禪法) 없었으나 그때 화두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면 오조 스님께서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듯 산승(山僧) 지금 말한 것처럼 화두를 어떻게 거각을 하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정진을 한다면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사이에 달이 지나가서 정말 정진하는 사람으로서의 기틀이 달을 지내고 나면 자리가 잡혀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내가 오늘 부탁을 드리는 것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정진을 하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하고.(1211~1944)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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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 홍인대사 ; (602 – 675) 이름은 홍인(弘忍)이고, 성은 ()씨인데, 호북성 기주(蘄州) 황매현(黃梅縣)에서 났다.

중국 선종의 4(四祖) 도신(道信) 법을 받아 황매현 쌍봉산(雙峰山)에서 오래 교화하였다.

많은 제자들 가운데 혜능(慧能) 신수(神秀) 분이 있었으므로, 6 혜능 계통은 남돈(南頓) 남종선이 되었고, 신수 계통은 북점(北漸) 북종선이 되어 종파가 생기게 되었다.

671년에 법을 혜능에게 전하고, 당나라 고종(高宗) 상원(上元) 2년에 74살로써 입적하였다. 시호(諡號) 대만선사(大滿禪師) 하고, 황매산 동산에 탑을 세웠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성립된 선종(禪宗) 2 혜가(慧可), 3 승찬(僧粲) 거쳐 4 도신(道信) 스님으로 이어진다. 도신의 제자 법융(法融) 스님이 우두산에서 선법을 선양하여 우두종(牛頭宗) 생겼다. 그리고 5 홍인 대사의 문하에서 남종과 북종으로 갈라져 남종선, 북종선이 되었다.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있다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분심(憤心)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해 없는 생각 막히는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또는어째서 () 했는고?’ 또는조주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바른 깨달음은 없는 의단, 없는 의심에 막힌 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요연히(了然- 밝을 /그럴·명백할 ) ; 분명하고 명백하게.

*거각(擧却 /어조사 )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〇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丹田]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이뭣고~?’   ‘ 없는 생각()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거나, 공양할 공양순서를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의단독로(疑團獨露 의심할 /덩어리 /홀로·오로지 /드러날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홀로() 드러나다().

*타성일편(打成一片) : ‘쳐서 조각을 이룬다’. 참선할 화두를 들려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려서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일체처 일체시에 오직 화두에 대한 의심만이 독로(獨露) 순수무잡(純粹無雜) 경계.

*타파(打破) ; 화두의 생명은 의심입니다.

화두(話頭) 대한 의심(疑心) 관조(觀照) 나가는 , 없는 그리고 맥힌 의심으로 화두를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모든 번뇌와 망상과 사량심이 거기에서 끊어지는 것이고, 계속 의심을 관조해 나감으로 해서 이상 의심이 간절할 수가 없고, 이상 의심이 커질 없고, 이상 깊을 없는 간절한 의심으로 가슴속이 가득 차고, 세계가 가득 차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화두를 의식적으로 들지 않어도 저절로 들려져 있게 되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똥을 때에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차를 때도 화두가 들려져 있고, 이렇게 해서 들려고 해도 저절로 들려진 단계. 심지어는 잠을 때에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져 있게끔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6, 7일이 지나면 어떠한 찰나(刹那) 확철대오(廓徹大悟)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항아리에다가 물을 가뜩 담아놓고 항아리를 돌로 내려치면은 항아리가 바싹 깨지면서 물이 터져 나오듯이, 그렇게 화두를 타파(打破)하고, ‘참나 깨닫게 되고, 불교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참선법 A’ 에서]

*본각(本覺) ; 본래 갖추어져 있는 깨달음. 부처님의 본래의 깨달음.

*본성(本性) ; 상주불변한 절대의 진실성. 본래의 모습. 본체. 불성(佛性)

*간화선(看話禪) ; () 화두(話頭) 준말이다. 간화(看話)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을 본다[]’ 말로써,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막힌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화두를 ()해서, 화두를 통해서 확철대오하는 간화선을 전강 조실스님과 송담스님께서는최상승법(最上乘)’ ‘활구참선(活句參禪)’이라고 말씀하신다.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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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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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정성심2016.06.21 09:45

정성심(情誠心) (No.712)—오조 홍인(五祖弘忍) 스님의 『최상승론(最上乘論)』 ‘정성심(情誠心)이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정성심(情誠心 진심·성심·참마음 /정성·진실 /마음 ) ; 정성심(精誠心). 온갖 힘을 다하려는 진실되고 성실한 마음. 과거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생사 문제, 일대사(一大事) 해결했는데, 무슨 연고로 나는 아직도 생사 문제를 해결 못했나? 진실로 힘을 다하여 나의 생사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마음.

(1)(6분 40초)  (2)용어풀이(644오조스님법문/11분19초)  (3)용어풀이(666오조스님법문/5분19초)  (4)용어풀이(706오조스님법문/7분15초)

[법문] 송담스님(No.712)—2007(정해) 하안거 결제 법어(07.05.31)


게송에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飜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撲鼻香), 황벽 스님의 게송을 읊었습니다마는 게송의 뜻을 올바르게 이해를 못하면 육체를 억압하고 들볶고 무리하게 하는 것을 바로 용맹정진(勇猛精進), 가행정진(加行精進)이라고 착각을 수가 있습니다.

육체를 갖다가 잠을 자지 않고 밥을 굶고 묵언을 하고, 모다 수행자들이 이렇게 해서 육체를 억압을 하는 것으로써 정진을 열심히 것으로 착각할 수가 있습니다.


산승도 묵언도 봤고, 단식도 봤고, 잠도 있으면 잘라고 애를 써봤습니다마는, 결과 그렇게 것만이 정말 올바르게 용맹정진한 것이 아니다고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후배 여러분들께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컷 먹고, 실컷 자고, 마음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잡담을 하고 그러라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지 참선을 하는 사람은 필요한 외에는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고, 잠도 선방에서 지정된 여섯 시간이—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니까 여섯 시간을 자도록 되어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선방 스님네들은 그렇게 여섯 시간을 수가 없어서 설사 잠잘 시간에도 시간을 잠자지 않고 자고 할라고 애쓰고.

3시에 일어나게 되었지마는 30분이나 시간 자고 일찍 일어나서 조용히 앉아서 정진을 하는 그러한 스님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잠을 잔다던지, 아주 말을 한다던지, 밥도 적당하니 먹어야지 너무 과식을 하면 아니된 것입니다. 과식을 해야 하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너무 밥을 적게 먹어도 그것도 영양이 부족해서 정진을 계속해서 하기 어려우니, 말과 수면과 먹는 것도 지혜롭게 해야 앞으로 꾸준히 정진해 나가는데 장애가 없을 것입니다.


아까 조실 스님 법문 가운데에도진정신심(眞正信心) 발해야 한다. 진정으로 신심을 내야 한다 그런 구절이 나왔습니다마는 신심이다, 분심이다, 의단이라 하는 것이 억지로 하는 것과 저절로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 차등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득불 억지로 신심도 내고, 분심도 내고, 의심도 내려고 몸부림을 수밖에는 없겠습니다마는, 오조(五祖) 스님 법문 가운데에정성(情誠) 자내발(自內發)해야 한다. 안으로부터서 정성심이 일어나야 한다 하는 간곡한 말씀이 있습니다.


억지로 겉으로 지어서 가지고는 몸만 괴롭히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고, 안에서부터 정성심(情誠心) 솟구쳐 나오면 억지로 분심을 낼라고 해도 저절로 분심이 나고, 억지로 화두를 낼라고 해도 저절로 화두가 떠억 들어지는 것입니다.

정성심이 안으로부터서 발하면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저절로 잡담을 아니하게 되고, 잠을 억지로 잘라고 해도 저절로 조금만 자도 머리가 개운하고 좋은 것입니다.


정성심(情誠心) 안으로부터 발해야 한다 하는 것은 결국은 초단계에 있어서는 대중 법도를 지키면서 최소한도로 다른 대중 스님네에 ()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는 자기 나름대로 노력을 계속 함으로 해서 정성심이 안으로부터 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용화사 청규(淸規)에는 완전 묵언을 하지 않도록 규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출을 삼가하라고 했고.

비록 인제 용화사나 여기나 또는 용주사 중앙선원이나 밖에 세등선원・복전암・승련사・화운사, 위봉사・회룡사 이런 선방에서도 전강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조실 스님을 ()하는 대중이므로 청규를 지키면서 정진을 함으로 해서 장애가 일어나지 아니할 것이고, 정진을 하되 병이 일어나지 아니할 것이며, 동안 원만하게 안거(安居) 성취하게 것입니다.(17~2340)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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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진로형탈사비상 긴파승두주일장~’ ; [황벽단제선사완릉록(黃檗斷際禪師宛陵錄)]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 게송 참고.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오조(五祖) 스님 법문 ; 오조 홍인(五祖弘忍) 스님의 『최상승론(最上乘論)』에서.

〇經云  衆生若情誠不內發者  於三世縱値恒沙諸佛無所能爲  經云  衆生識心自度  佛不能度衆生  若佛能度衆生者  過去諸佛恒沙無量  何故我等不成佛也  只是情誠不自內發  是故沈沒苦海  努力努力. 勤求本心勿令妄漏  過去不知已過未來亦不及 今身現在有遇得聞妙去  分明相勸決解此語  了知守心是第一道  不肯發至誠心求願成佛受無量自在快樂  乃始轟轟隨俗貪求名利  當來墮大地獄中受種種苦惱  將何所及 奈何奈何  努力努力  但能着破衣飱麤飱  了然守本眞心  佯癡不解語  最省氣力而能有功  是大精進人也  世間迷人不解此理  於無明心中  多涉艱辛廣修相善  望得解脫  乃歸生死苦  了然不失正念而度衆生者  是大力菩薩(아래 밑줄친 한글 문장이 원문에 해당)


[법문①] 송담스님(No.644)—2000 7 첫째 일요법회에서(11분 19초)


홍인대사(弘忍大師)께서 말씀하시기를, () 이르되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스러운 마음이 안으로부터 돈발(頓發)하지 아니한 자는 삼세(三世) 비록 항하사의 모든 부처님을 만난다 하더라도 무소득(無所得)이니라. 어찌할 바가 없느니라.


고봉 스님께서 말씀하신 선요(禪要)대신심(大信心) 대분심(大憤心) 대의단(大疑團) 갖추어지지 못하면 그것은 결정코 공안(公案) 타파해서 자기의 본래면목(本來面目) 깨달을 수가 없다이런 말씀이 있는데 정성(情誠) 안으로부터 돈발하지 아니하면 삼세제불을 비록 만난다 하더라도 어찌해 수가 없는 것이다 말이 바로 거기에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마음을 스스로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濟度)해야지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으니 만약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있다하고 말을 한다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무량의 수없는 부처님이 계셨는데 무슨 연고로 우리들은 아직도 성불(成佛) 못했을 것이냐. 다못 이것은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돈발하지 못한 연고로 생사고해에 침몰한 것이니 노력하고 노력해서 부지런히 본심을 깨달라서 잠깐 동안도 한눈을 팔지 말지니라. 이렇게 오조(五祖) 스님은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돌아오지 아니했어. 다못 지금 우리가 현재 최상승법(最上乘法) 만났으니 분명히 서로 권고해서 선배는 후배에게 권고하고 후배는 선배를 따라서 밀고 끌면서 결정코 내가 이제 말한 법을 깊이 이해해 가지고 확실하게 자기의 본심을 지킬 줄을 알아야 것이니 이것이 바로 제일의 ()니라.


지극한 정성스런 마음을 발하지 못해 가지고 막연하게 성불하기를 바라고 자재해탈(自在解脫) 얻고자 한다면 이것은 일이 아니고, 그럭저럭 속심(俗心) 버리지를 못하고 명예나 이끗을 탐구해서 그렇게 그럭저럭 지낸다면은 당래(當來) 대지옥에 떨어져서 가지가지 고통을 받게 것이니 그때 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노력하고 노력할지니라. 이렇게 오조 스님은 간곡히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 끝에 누차(屢次) 산승(山僧) 법상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마는, 바로 이와 같이 우리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단능착파의(但能着破衣)하고, 다맛 해어진 옷을 입고 누더기를 입고, 먹는 것은 산해(山海) 진미(珍味)라든지 고량진미(膏粱珍味) 아니고 거칠고 머트러운 음식을 먹으면서[飱麤飱], 요연수본진심(了然守本眞心)하야, 요연히 본래의 자기 참마음을 지키되,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 거짓 바보가 되어가지고 말귀도 알아듣는 사람 같은 그런 바보가 되어가지고 자기의 본심을 향해서 수행을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힘은 최고로 적게 들이면서 가장 효과적으로 도업을 성취할 있으니 이런 사람이야말로 대정진인(大精進人)이라고 말할 수가 있다.


세간(世間) 사람은 이러한 이치를 아지를 못하고서 무명심(無明心) 가운데에 갖은 고통을 겪으면서 널리 () 나타나는 그러한 () 닦음으로 해서 해탈도(解脫道) 바래니, 그러다가 결국은 생사고(生死苦)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느니라.


보통 우리는용맹정진한다. 가행정진한다결제 안거 동안에 밤잠을 자고, 먹고, 말도 아니하고 어떻게든지 알뜰하게 정진을 하려고 애를 쓰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건 대단히 칭찬할만한 일이고 갸륵한 일이 아닌 것은 아니나, 세상 사람들은 수행을 육체를 들볶는 것으로써 용맹정진을 삼고 형식에 나타나는 특별한 묵언이라든지 또는 단식이라든지 또는 장좌불와라든지 그러한 여러 가지 ()으로 나타나는 수행을 함으로 해서 정말 용맹정진으로 삼는 그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참다운 용맹정진이라고 것이 어찌 가시적인 그런 행동이라든지, 육체를 들볶는 것으로써 참다운 정진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조 스님은 요연불실정념(了然不失正念)하야, 요연히 바른 생각을 잃지 아니하고 중생을 제도하는 것만이 이것이 대력보살(大力菩薩)이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

쉽게 말해서 먹을 , 공양할 적당히 공양하고, 잠을 너무 많이 자는 것도 좋지 않지마는 너무 적게 자므로 해서 정말 입선(入禪) 시간에 노상 꾸벅꾸벅 많이 졸고만 있는 것도 지혜로운 수행이라고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너무 음식을 적게 먹거나, 너무 잠을 적게 자거나, 옷을 너무 부족하게 입은 것도 이것도 퇴타(退墮) 인연이 되는 수가 있느니라

그래서 지나치게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지나치게 안락을 취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최소한도(最小限度) 먹을 만큼은 먹어줘야 하고, 입을 만큼은 입어줘야 하고, 최소한도로 만큼은 자줘야 그래야 평상시에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정진을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선관책진(禪關策進)』에 보면너무 그렇게 초학자(初學者)들에게 말하면 마냥 먹으려고 그러고, 마냥 입으려고 그러고, 잠도 충분히 자려고 한다면 어느 겨를에 정진을 수가 있겠느냐. 적어도 초학자는 잠도 잘라고 하기도 하고, 먹는 것도 어느 정도 제한도 하고, 말이라든지 모든 것도 제한을 가면서 이를 악물고 정진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인데 처음부터서 그래서야 수가 있겠느냐이런 고인이 말씀도 있습니다.


오늘 일요법회에 날씨도 더웁고 그런데 과거에 수없이 이런 말씀도 산승도 말했고, 전강 조실 스님도 말씀을 하신 바를 오늘 다시 중언부언 이렇게 말씀을 하게 됩니다마는, 정말 우리는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121~2321)



[법문②] 송담스님(No.666)—2002(임오년) 부처님오신날 법문에서(5분 19초)


그러면 과연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덕을 찬양하고 나아가서 부처님의 법문을 믿고 실천해서 정말 부처님을 기쁘게 드리는 길이 무엇이냐? 이것에 대해서 잠깐 말씀을 하고자 합니다.


() 말씀하시기를 중생이 만약 정성(情誠) 안으로부터서 ()하지 아니하면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항하사(恒河沙) 모래수와 같은 그러한 모든 부처님을 만나뵌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능히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자기가 속에서부터 능동적(能動的)으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속에서 터져 나와야지 그렇지 아니하면 억만 부처님을 친견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사람을 어떻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말씀도 하시고.


중생이 자기 마음을 깨달아서 자기가 자기를 제도한 것이지,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렇게 말씀도 하셨습니다.

경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오조 홍인(五祖弘忍)대사께서는 『최상승론(最上乘論)』이라고 하는 법문을 통해서만약 부처님이 능히 중생을 제도할 있는 것이라면 과거의 모든 부처님이 항하사 모래수와 같이 한량이 없으신데 무슨 까닭으로 우리는 오늘날까지 성불(成佛) 못하고 이렇게 생사윤회(生死輪廻) 하고 있겠느냐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못 정성이 안으로부터서 능동적으로 터져 나오지 아니한 까닭에 과거에 무량 부처님이 출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한량없는 법을 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고해(苦海) 침몰하고 우리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오조 스님께서 말씀을 하시고노력하고 노력할지어다. 부지런히 자기의 본마음을 찾아서 잠시 동안도 잊어서는 아니되느니라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보면 부처님의 위대하심과 덕을 찬양하는 그치지 말고 부처님께서 열어주신 일러주신 깨달음으로 가는 길을 목적을 향해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일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왕궁의 부귀를 버리시고 설산에 들어가셔서 6 고행을 하시고 그래 가지고 깨달으신 우리가 믿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마지막 사라쌍수 간에서 열반하실 유언으로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나는 어진 의원과 같아서 사람들의 병에 따라서 병을 진단을 가지고 좋은 약을 일러줬지만 좋은 약을 가르켜 주었지만 먹고 먹는 것은 의원의 허물이 아니니라

나는 인도(引導)하는 사람과 같아서, 바른 길로 안내(案內)하는 사람과 같아서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일러주었지마는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니라

마지막에 말씀을 하셨습니다.(912~1432)



[법문③] 송담스님(No.706)—2006 동안거 결제 법문에서(7분 15초)


오조 홍인(五祖弘忍) 대사의 법문에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조사들은 일대사(一大事) 해결했는데, 나는 오늘날까지 생사 문제를 해결을 못했느냐. 이런 데에 대한 신심과 분심에 대해서 그리고 화두를 타고 정진하는 사람은 의심이, 자기 마음으로부터서 그런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하는 정성심(情誠心) 일어나야 한다 것입니다. 그런 정성심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속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지 아니하면 진실한 발심이 아니고 진실한 분심이 아닌 것입니다.


정말 진실한 정성이 마음으로부터서 일어나면 저절로 신심(信心) 분심(憤心) 한목 일어나서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터억 화두가 드러난다. 이러한 오조 스님이 직접 화두(話頭)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아니했지마는 그런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법문 끝에 다맛 해어진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고 요연(了然) 수본진심(守本眞心) 하되 양치불해어(佯癡不解語)하면양치(佯癡)라는 것은거짓 ()’, ‘어리석을 ()’, 양치입니다. ‘거짓 ()’, ‘병들 ()’ 양병(佯病)이라 하면, 사실은 병은 났는데 병이 것처럼 거짓 꾀병을 앓는 것을 양병이라 하는데,

실지는 바보도 아니고, 어리석지도 않지마는 바보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바보 노릇을 하냐 하면은 말귀를 알아듣는 것처럼 바보 노릇을 하라 이것입니다.


선방에 가지고 똑똑한 체하고, 잘난 체하고, 그래 가지고 시비를 하고 그래서 옆에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대중을 소란케 하고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양치가 아니라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방에 와서는내가 과거에 좋은 훌륭한 대학을 나왔거나, 과거에 무슨 자랑할 만한 경력이 있거나, 무슨 말을 잘하거나, 외국어를 잘하거나, 수단이 있어서 무슨 일을 처리하고, 무슨 재주가 있어서 그림이나 글씨를 그리고 물건을 만들고....’ 그런 생각을 버리고, 출가한 선방에 나온 지가 여러 철이 되어서 구참이 되거나 그런 생각도 버리고,

오직 말귀도 알아들은 거짓 바보가 되어 가지고 하루하루를 그렇게 지내고 한달 한달을 그렇게 지내서, 그러면서 속으로는 떠억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거각을 해서, 퍼뜩 잊어버리면 챙기고, 놓치면 챙기고 해서 그렇게 해서 누구하고 잡담할 겨를도 없고,


밥이 맛있거나 없거나 반찬이 맛이 있거나 말거나 밥이면 , 찰밥이면 찰밥, 국수면 국수, 라면이면 라면, 그저 원주 별좌 공양주가 정성껏 해다 올리면 그저 죽비에 따라서 떠억 공양을 들되,

숟갈을 들고 밥을 뜨고, 저분으로 반찬을 드는 이것이 전체가 화두를 드는 의심 속에서 드렇게 하되 어떻게 밥을 먹었는지 말았는지, 밥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그렇게 철을 하루하루를 지내면 반드시 의단(疑團) 독로(獨露)해서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서 마침내는 의단을 타파(打破)하고 자기의 본성을 깨닫게 것입니다.


이렇게 거짓 바보 노릇을 하면서 말귀도 알아들은 바보 노릇을 하면서 이렇게 정진을 해야 기력(氣力) 적게 소모하고서도 정진에 크게 () 있으니 이렇게 정진하는 사람을 과연 대정진인(大精進人)이라고 수가 있는 것이다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조 스님 당시에 화두라고 하는 간화선법(看話禪法) 없었으나 그때 화두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면 오조 스님께서는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시듯 산승이 지금 말한 것처럼 화두를 어떻게 거각을 하라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정진을 한다면 달이 어떻게 지내간 모르는 사이에 달이 지내가서 정말 정진하는 사람으로서의 기틀이 달을 지내고 나면 자리가 잡혀나갈 것입니다.(1212~1927)

*( 부술·쓰러질·폐단 ) ; 남에게 끼치는 신세나 괴로움.

*청규(淸規) ; ①선종(禪宗) 사원에서, 여러 승려들이 지켜야 규칙. ②참되고 바른 규칙이나 법도.

*안거(安居 편안할 ,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일부터 다음해 1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안거의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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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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