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용맹정진2023. 12. 19. 10:20

용맹정진(세등35)—종단(宗團) 분규의 원인인 아상(我相)을 비워야 | 불법(佛法) 정화(淨化)는 마음을 청정히 가지고 용맹정진하는 데에서만이 정법은 가까워질 것입니다.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 :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 해태(懈怠 : 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④참선하는 사람은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

[참고 ❶] 송담스님(No.455)—1991년 9월 첫째일요법회에서.
부처님께서 아함경(阿含經)에서 말씀하시기를,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그러나 그것들은 달빛의 16분에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기에 달빛은 밤하늘에서 가장 위대하다고 여겨진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여러 길이 있건만, 그것들은 모두 불방일(不放逸)로 근본을 삼는다. 그러기에 온갖 착한 법[善法]에 있어 불방일이 최대가 되고 최상이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밤하늘에서 온갖 별들은 빛난다..." ; 「잡아함경」 (882. 불방일근본경 不放逸根本經), 「상윳다니까야」 (S45:146) 달(月)경 참고.
*선법(善法, 산스크리트어: kuśalā dharmāh, 팔리어: kusala dhamma) ; 선법(착한 법)은 '선한 교법'의 줄임말로, 5계(五戒) · 10선(十善) · 3혜(三慧) · 4혜(四慧) · 4성제(四聖諦) · 3학(三學) · 5온설(五蘊說) · 12연기설(十二緣起說) · 8정도(八正道) · 37도품(三十七道品) · 6바라밀(六波羅蜜) 등 이치에 맞고, 자신과 세상을 이익되게 하는 법(法), 즉 도리와 방편, 즉 가르침 또는 선한 행위와 수행법을 말한다.

[참고 ❷] 「불교평론」 (2005년 겨울), ‘붓다의 죽음’(안양규 글) p33에서.
팔리어본 「열반경」에 의하면 붓다는 제자들로부터 ‘불법에 의심이 없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최후의 가르침을 남긴다.
“비구들이여! 이제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제행(諸行)은 소멸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않고(appamādena) 정진하라.”(디가 니까야, 열반경 D16) 무상한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정진하라는 가르침은 붓다의 유언으로 제자들에게 남겨졌을 법한 내용이다.

불방일(不放逸)의 원어는 'appamāda'인데 부정접두사 'a'와 'pamāda'로 이루어진 말이다.  'pamāda'는 어떤 자극에 의해 정신이 마비된 것을 가리키는 말로 특히 만취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appamāda'는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단순히 무엇인가를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diligent) 아니라 마음이 또렷이 각성(覺醒)한 상태(vigilance)이다. (Nyānatiloka, Buddhist Dictionary : Manual of Buddhist Terms and Doctrines. Kandy. 1980) 불방일의 가르침은 결국 붓다(깨어있는 자, 覺者)라는 말과 상통하는 것이다.

 

(5분 48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35)—1981년 하안거 해제(81.07.17.음) (세등35)

방금 우리는 고(故) 전강(田岡) 조실 스님의 법문을 녹음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수행자는 마땅히 재색(財色)을 삼가해라. 재색은 도(道)를 가로막는 무서운 독사(毒蛇)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 그러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종단(宗團)이 아직도 분규가 수습이 되지 아니하고 여기저기서 관(官)의 개입을 받으면서 출가인(出家人)의 면목(面目)을 손상하고 부처님과 조사(祖師)의 얼굴에 구정물을 끼얹는, 얼굴을 들 수 없는 그러한 사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용을 알고 보면 보다 더 종단을 바로잡고 불교를 정화(淨化)하기 위한 명분(名分)이 있겠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부처님의 참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이러한 분규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해도 변명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출가인으로서 부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한다면 나의 아상(我相) 인상(人相)을 비워버리고 무슨 싸움이 있을 것이냐? 내 마음이 허공과 같고, 저 사람의 마음이 허공과 같다면 두 허공(虛空)이 서로 합(合)해진들 무슨 거리낌이 있을 것이냐 이 말씀이여.
내 주장(主張)이 옳고, 내 주장만 옳고 상대방의 주장은 그르다고 주장할 때 상대방도 또한 그러한 입장으로 맞서게 된다면 아무리 세월이 지내간다 해도 두 의견은 합해지지 못할 것입니다. 마침내 새우 싸움이 고래의 등을 터지게 한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입니다.

여기에 모이신 비구(比丘) ‧ 비구니(比丘尼) ‧ 청신사(淸信士) ‧ 청신녀(淸信女)는 종단의 일각(一角)에서 그러한 분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신심(信心)을 돈발(頓發)해서 밤잠을 안 자고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해 왔습니다.

세 시간, 서너 시간밖에는 자지 아니하고 하루에 열 칠팔 시간을 가행정진을 한 사람, 한 도량에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이십사 시간을 붙배기로 앉어서 용맹정진을 한 사람, 밥 먹고 옷 입고 앉고 서고 일체처(一切處) 일체시(一切時)에 단 일분일초 한 생각도 소홀히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눈에 보이지 않는 채찍을 가하면서 이마빡에 '죽을 사(死)' 자를 써 붙이고 이를 악물고 용맹정진을 해 온 납자(衲子)들입니다.
이렇게 가행정진을 하고 용맹정진을 할 때에 비로소 정법(正法)에 싹은 무럭무럭 자라고 위없는 정각(正覺)에 열매는 무르익어 갈 것입니다. 불법(佛法) 정화(淨化)는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면서 상대방을 꺾을려고 하는 데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을 청정히 가지고 용맹정진하는 데에서만이 정법은 가까워질 것입니다.(6분28초~12분17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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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영신(田岡永信, 1898-1974) ; 선사는 1898년 11월 16일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을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를 어머니로 태어났다. 1914년 해인사에서 인공 화상(印空和尙)을 득도사(得度師)로, 제산 화상(霽山和尙)을 은사(恩師)로, 응해 화상(應海和尙)을 계사(戒師)로 득도하였으며, 영신(永信)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1918년 해인사 강원에서 대교과(大敎科)를 수료한 뒤, 도반의 죽음을 보고 무상함을 느껴 김천 직지사(直指寺) 천불선원(千佛禪院)으로 가서 제산 화상의 가르침을 받으며 불철주야 정진하였고, 예산 보덕사(報德寺)ㆍ정혜사(定慧寺) 등에서도 수도하였다. 이 기간 동안의 수행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덩어리 같은 피가 코와 입으로 흘러나오거나 머리가 터져 삭발조차 할 수 없었으며, 특히 백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수행한 일화는 유명하다.
23세 때인 1921년에 곡성 태안사 동리재를 넘다가 개오(開悟)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남겼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어젯밤 달빛은 누(樓)에 가득하더니,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창 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을 잃었는데,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그 뒤 당대의 선사들을 찾아가 탁마(琢磨)를 하여 인가(印可) 받았는데, 1923년 금강산 지장암(地藏庵)의 한암(漢巖) 선사를 찾아가자 한암 선사가 묻기를, “육조(六祖) 스님께서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라 일렀지만, 나는 본래무일물이라 하여도 인가를 못하겠으니, 그대는 어떻게 하여 인가를 받겠는가?” 하였다. 이에 손뼉을 세 번 치고 물러나왔다.
같은 해 서울 대각사(大覺寺)의 용성(龍城) 선사를 찾아가 제일구(第一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고, 부산 선암사(仙巖寺)의 혜월(慧月) 선사를 찾아가 공적영지(空寂靈知) 공안으로 인가를 받았다.

1923년 수덕사 금선대의 만공(滿空) 선사를 찾아가 예배하니,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다시 예배를 하였다. 만공 선사가 거듭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여, 서슴없이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자, “네 견성(見性)이 견성이 아니다” 하며 여지없이 부인하고 상대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재발심하여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를 잡고 용맹정진 하였으며, 반철만에 홀연히 마조원상공안의지(馬祖圓相公案意旨)가 분명히 드러났다.
그길로 만공 선사의 처소에 나아가 마조원상 공안을 여지없이 이르니, “누가 밤사람 행한 것을 알 수 있겠는가[誰知更有夜行人]!” 하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인가하고, 옛 조사들의 중요한 공안에 대한 탁마를 낱낱이 마쳤다. 그 뒤 만공 선사 곁을 떠나려 하자, 만공 선사가 묻되 “부처님은 계명성(啓明星)을 보고 오도하였다는데, 저 하늘에 가득한 별 중 어느 것이 자네의 별인가?” 하였다. 곧 엎드려 땅을 더듬는 시늉을 하니 만공 선사가 “옳다. 옳다![善哉善哉]” 하고,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하였는데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나도 또한 얻은 바 없네.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이 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猿嘯在後峯 (원소재후봉)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라는 전법게(傳法偈)와 함께 선종 제77대의 법맥(法脈)을 전수하였다.

33세 때인 1931년 통도사 보광선원(普光禪院)의 조실(祖室)을 시작으로, 1934년 법주사 복천선원(福泉禪院), 1936년 김천 수도선원(修道禪院), 1948년 광주 자운사(紫雲寺) 등 전국 유명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면서 중생교화에 임하였고, 6‧25가 일어나자 광주에서 가게를 차리고 제자 송담(松潭)의 오도를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그 뒤 1955년부터 해남 대흥사(大興寺) 주지, 담양 보광사(普光寺) 조실, 인천 보각사(普覺寺) 조실을 역임하였고, 1959년 구례 화엄사 주지 및 전라남도 종무원장(宗務院長)이 되었다.

1957년 담양 보광사에 있을 때 10년 묵언을 하며 수행하던 제자 송담이 활연대오(豁然大悟)하니 오도송은 이러하였다.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차운 기러기는 저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했던고!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달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에 탁마하고는 흔연히 인가하였다.

1960년 망월사(望月寺) 조실로 있을 때, 법석에서 제자 송담에게 다음과 같은 전법게를 내리고 불조 제78대 법맥을 잇게 하시니, 대중이 모두 이를 증명하였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도 아니니라.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법(法)도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낙양에는 추색(秋色)이 많고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강 소나무에는 흰구름이 날더라.

1961년 인천 용화사(龍華寺)에 법보선원(法寶禪院)을 개설하여 그곳에서 15년 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그와 함께 1962년 대구 동화사(桐華寺) 조실, 1966년 부산 범어사(梵魚寺) 조실, 1967년 천축사(天竺寺) 무문관(無門關) 조실 및 대한불교조계종 장로원(長老院) 장로를 역임하였고, 1970년 용주사(龍珠寺)에 중앙선원을 창설하였으며, 1974년 지리산 정각사(正覺寺) 선원의 조실을 역임하였다.

1975년 1월 13일(음 갑인년 12월 2일) 영가를 위한 천도법문(薦度法門)을 마치고 제자들을 모아, “어떤 것이 생사대사(生死大事)인고? 할(喝), 구구(九九)는 번성팔십일(翻成八十一)이니라”는 법문과 함께, 화장한 뒤 사리(舍利)를 수습하지 말고 재를 서해에 뿌릴 것을 당부한 다음 앉아서 입적하였다. 세수 77세, 법랍 61세.
평생 활구참선(活句參禪)을 제창하였고,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로써 학자들을 제접하였다. 또한 입적한 날까지 10여 년 동안 새벽마다 수행자들을 위하여 설법하였으며, 특히 700여 개의 육성테이프를 남겨 후학들이 참선공부를 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하였다. 제자로는 전법제자(傳法弟子)인 송담을 필두로, 정공(正空)ㆍ정우(正愚)ㆍ정무(正無)ㆍ정대(正大)ㆍ정락(正樂) 등 50여 명과 손상좌 200여 명이 있다. 저서로는 《전강대종사 법어 「언하대오(言下大悟)」》가 있다.

*조실(祖室) ; 선원의 가장 높은 자리로 수행인을 교화하고 참선을 지도하는 스님. 용화선원에서는 고(故) 전강대종사(田岡大宗師)를 조실스님으로 모시고 있다.
*'수행자는 마땅히 재색(財色)을 삼가해라. 재색은 도(道)를 가로막는 무서운 독사(毒蛇)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다' ; 재색지화(財色之禍) 심어독사(甚於毒蛇).
[참고] 『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 보조 지눌(普照知訥)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財色之禍  甚於毒蛇  省己知非  常須遠離

재물과 색(色)의 화는 독사보다 심하니, 제 몸을 살펴 그릇된 점을 알아 항상 멀리 여의어야 하느니라.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漢譯, 舊譯). 신역(新譯)에서는 각(覺)이라 한역하고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⑤취(趣 산스크리트어 gati)의 다른 번역어. 열반을 향하는 길을 가리키는 도(道)에 대해 생사윤회의 길을 가리키는 용어로도 자주 사용된다. 지옥취(地獄趣)—>지옥도(地獄道).
*정화(淨化) ; 불순하거나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함.
*신심(信心) : ①‘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이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을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②‘올바르게 열심히 참선을 하면 나도 깨달을 수 있다’는 믿음. 진리에 대한 확신.

[참고]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저 | 송담스님 역 | 용화선원刊) p54~55. (가로판 p56~57)
參禪엔  須具三要니  一은  有大信根이요  二는  有大憤志요  三은  有大疑情이니 苟闕其一하면  如折足之鼎하야  終成癈器하리라

참선하는 데는 모름지기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하나니, 첫째는 큰 신심이요, 둘째는 큰 분심이요, 셋째는 큰 의심이니, 만약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 부러진 솥과 같아서 소용없는 물건이 되리라.

註解(주해) 佛云, 成佛者는  信爲根本이라 하시고  永嘉云, 修道者는  先須立志라 하시며 蒙山云, 參禪者는  不疑言句가  是爲大病이라 하고  又云, 大疑之下에  必有大悟라 하시니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시고, 영가스님은 이르기를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워야 한다」 하시며, 몽산스님은 이르기를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 된다」 하시고, 또 이르기를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하시니라.
*돈발(頓發 갑자기 돈/일어날·나타날·밝힐 발)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頓 - 直頓의 뜻, 곧바로.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붙배기 ; '붙박이(어느 한 자리에 고정되어 박혀 있어서 움직임이 없는 상태. 또는 그런 사물이나 사람)'의 사투리.
*납자(衲子) : 「납」은 누더기옷이란 말인데, 도를 닦는 이는 어디까지나 검박하게 입어야 한다. 본래 가사(袈裟)는 쓰레기에서 주어서 깨끗이 빨아 가지고 누덕누덕 기워서 만드는 것이므로, 분소의(糞掃衣) 또는 백납(百衲)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선하는 이를 납자라고 하는 것이다.
옛글에 『誰知百衲千瘡裡 三足金烏徹天飛』란 것이 있다. 곧 『뉘 알랴, 누더기에 밝은 해가 숨은 줄을 ! 』 이것이 누더기 입은 도인, 곧 납자의 본색을 말하는 것이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정각(正覺) ; (산스크리트어)sambodhi. 삼보리(三菩提)라 음역. ①깨달음. 부처님의 깨달음. 바른 깨달음. 진리를 깨닫는 것. ②부처님. 여래(如來). 진리를 깨달은 사람. 정등각(正等覺). 등정각(等正覺). 정등보리(正等菩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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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께서 설하신 법문을 모두 합하면 1700여 개의 ‘참선 법문(法門)’이 있습니다.
용화선원에서는 그 중에서 몇 개의 법문을 선정해서 「참선법 A, B, C, D, E」 라고 이름을 붙여, 처음 참선을 하시는 분들에게 이 「참선법 A, B, C, D, E」 를 먼저 많이 듣도록 추천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용화선원 : 송담스님」 '재생목록'에 들어가면 <송담스님 참선법 A~E>이 있습니다.
그리고 법문 블로그 「용화선원 법문듣기」 분류 '참선법 A,B,C,D,E'에도 있습니다.

참선법 A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B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C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D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E (유튜브)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참선법 A (블로그) 법문은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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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강선사, 송담스님 법문 전체(1700여 개의 육성 법문)을 새끼손가락 손톱만한 microSD 메모리카드에 저장하여 스마트폰에 장착하여 들으실 수 있게 용화선원에서는 이 microSD 메모리카드를 보급하고 있습니다. (문의 : 032 - 872 - 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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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닥공닥정
ㅇ/용맹정진2018. 2. 24. 18:50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 해태(懈怠, 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④참선하는 사람은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

 

(13분 48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18)—무오년 하안거 결제 법어(78.04.17)(세등18)

 

옛날에 한 스님이 있었는데 그 스님은 철저히 발심(發心)을 해가지고 오직 몸과 목숨을 바쳐서 참선(參禪)하는 그 돈독한 마음 하나밖에는 없었습니다.

선방에도 지내고, 전국 방방곡곡에 선지식(善知識)도 다 친견허고, 여기저기 좋은 선방 다 다니면서 참선을 했지마는, 아무리 애를 써서 해도 바닥이 나지를 않어.

 

그래서 할 수 없이 저 지리산 칡덩쿨 우거진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이리저리 토굴(土窟)을 하나 지어가지고 거기서 공부를 하는데, 늦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이 다가왔습니다.

 

그해도 탁발(托鉢)을 해다가 보리쌀 몇 말 얻어다 놓고, 나무를 줍고 산에 과일도 좀 따고 해서 준비를 해 놓고 삼동(三冬) 공부를 들어갈라고 허는데,

해가 저물었는데 어디서 부인 한 분이 광주리에다가 산에 모다 과일도 산초도 따고 나물도 캐고 더덕도 캐고 그래 가지고 한 바구니 해가지고는 들어와서, “해가 저물었으니 오늘 저녁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갑시다”

 

그 그날부터서 결제에 들어가서 삼동을 들어갈려고 허는데 부인이 떠억 와서 자자고 허니, 그 깊은 산중에 길을 찾지 못하고 자고 가자고 허니 안 재울 수도 없고 또 청정한 계율을 지키면서 공부하시는 비구(比丘) 스님인데, 아! 부인하고 같이 잘 수도 없고.

 

방이나 하나, 조그만한 됫박 방에 천상 같이 몸을 맞대고 같이 잘 수 밖에는 없게 되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안 재우면은 산중에서 호랭이는 더글더글하고,

‘부처님 자비심으로 오늘 저녁에 천상 날새기를 헐 수밖에는 없구나’ 이리 생각하고, “그러면 하루 저녁을 여기서 지내십시오”

 

그날 저녁에 같이 한방에서 지내게 되는데 그 스님은 앉은 채 떠억 참선을 허고, 부인도 스님이 안 주무시는데 잘 수는 없고, 앉어서 그저 벽에다 대고 졸다가 눈을 떴다가 그 갖은 몸부림을 치면서 하루저녁을 지내는데, 밤중 자정(子正)이 넘으면서부터서 눈이 퍼부섰습니다.

눈이 와가지고 눈이 어떻게 많이 왔던지 도저히 그 이튿날 해가 떴지마는 길이 맥혀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지를 못하고 하루를 지내고 이틀 사흘이 되아도 눈이 녹지를 않고 길이 꽉 막혀서, 한 해 겨울을 같이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겨울이 지내고 봄이 되아도 눈이 녹지를 않고 그래서 천상 2월 · 3월 · 4월이 될 때까지 눈이 안 녹아서 그 눈 속에서 여섯 달을 같이 지내는데.

 

아, 그 부인도 “대관절 스님 앉어서 그 무얼 생각합니까?”

“참선을 헌다”고.

“아, 그러면 나도 좀 가르쳐 주시쇼. 나도 그 앉어서 심심허니 나도 참선을 좀 가르켜주시오”

 

앉은 자세—허리를 쭉 펴고, 고개를 반듯허게 들고, 아금니를 지긋이 물고서 혀는 위로 꼬부려서 입천장에다 딱 갖다가 대고, 눈은 평상으로 뜨고, 그리고서 몸을 그렇게 단정허게 가진 다음에 심호흡을 허는데.

 

숨을 깊이 들어마셔 가지고 아랫배가 볼록해지도록 들어마셔. 들어마신 다음에는 딱 정지를 해. 3초 동안 정지를 했다가 조용허니 숨을 내쉬는데, 숨을 내쉼에 따라서 볼록해졌던 배가 차츰차츰 차츰차츰 홀쪽해지도록.

다 내쉰 다음에는 또 수르르르 숨을 들어마시는데, 들어마심에 따라서 아랫배가 차츰차츰차츰 볼록해지도록. 다 들어마셨으면 들어마신 상태로 딱 정지를 헌 상태로 3초 동안을 머물렀다가 또 조용허니 숨을 내쉬어. 다 내쉬면 배가 홀쪽해지고.

 

이렇게 몸을 단정히 허고 그 다음에는 배로 숨을 심호흡을 하고.

 

숨을 들어마셔 가지고 3초 동안 머물렀다 내쉬면서 ‘이뭣고~~~?’허면서 숨을 내쉬어.

다 내쉬었으면 또 수르르르 들어마셔. 들어마셨다 3초 동안 머물렀다 내쉬면서 ‘이뭣고~~~?’

이렇게 가리켜 주었습니다.

 

그러면은 우리가, 나는 부인 여자고, 스님은 남자 스님이고 그러니 이 좁은 방에서 이불을 덮고 나란히 잘 수도 없는 것이고, 기왕 우리가 자지 않고 앉어서 샐 바에는 참선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허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이쪽에, 한 사람은 저쪽에 앉아서 가운데에다 기다란한 작대기를 하나 갖다 놓고, 스님이 졸면은 부인이 작대기로 스님 대골통을 탁 때리고, 또 부인이 졸면은 그 스님이 작대기로 부인 머리빡을 탁 때리고. 이렇게 해서 피차 잠을 깨워주면서 참선을 허기로 했습니다.

 

아, 그 부인이 처음에는 온 산중을 다니면서 더덕도 캐고 나물도 캐고 산초도 따고 허면서, 산과 산골짜기를 헤맸으니 좀 졸음이 오겠어요? 스님한테 밤새도록 얻어맞았습니다.

맞었는데 이틀, 사흘, 열흘, 보름 이렇게 지내가면서 차츰차츰 그 보살은 잠을 덜 자고, 아! 스님이 자꾸 조는데 어떻게 맞었던지 대가리가 뿔이 많이 돋아났습니다.

 

“거 스님! 나는 인자 참선법을 처음 배웠는데, 나가 처음에는 많이 맞았지마는 스님이 그렇게 맞으니 참 안되았습니다. 그러나 서로 맞기로 약속을 했으니 안 때릴 수도 없고 단단히 정신을 채려야 겠습니다” 아! 이러면서 때리는데, 어떻게 되게 때려 부리던지 기가 막혀서.

아, 그러는 가운데 스님도 정신을 바짝 차려가지고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뜨고 참선을 허는데, 그러다가 석달이 지내고, 석달이 되아도 눈이 안 녹아서 다시 석달해서 6개월이 되는데.

 

아, 하루는 달이 훤허니 밝은데 같이 이를 악물고 용맹정진을 허는데,

아! 졸음도 안 오는데, 깜빡할 사이에 분명히 졸지 안 했는데 깜빡허는데, 아! 그 보살이 탁! 대골통을 때려부렸네. 깜짝 놀랜 바람에 툭 깨쳐 버렸거든.

깨쳐 놓고 보니 기가맥히다 그말이여. 그래서 그냥 어떻게 감개무량(感慨無量)해서 눈물이 비오듯 쏟아지면서 일어서서 그 보살 앞에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했습니다.

 

절을 허며 “내가 깨달았오”

“무엇을 깨달았냐? 깨달은 도리를 일러라. 대관절 스님이 깨달랐다니 옳게 깨달랐는지, 잘못 깨달랐는지 나도 한번 들어 봅시다. 그 깨달은 도리(道理)를 한번 일러 보시오”

 

답착평추경사철(踏著秤鎚硬似鐵)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답착평추(踏著秤鎚)하니 경사철(硬似鐵)입니다. 저울대 추를 밟으니 굳기가 쇠와 같습니다” 아,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울대 추를 밟으니 굳기가 쇠와 같다고 허니 그 도리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일르시오”

 

무수호손(無鬚猢猻)이 도상수(倒上樹)니다. 나무~아미타불~

“수염 없는 원숭이가 나무를 거꾸로 올라갑니다”

 

그 보살이 그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치면서,

“스님, 출가해서 30년 수고 많이 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고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인데, 스님이 목숨 바쳐서 정진헐랴고 허는 그 신심(信心)이 장해서 내가 이 한 해 겨울을 결정코 스님으로 하여금 견성성불(見性成佛)허도록 허기 위해서 내가 화현(化現)으로 나타났소. 그러니 행여나 어디 나가서 관세음보살을 보았다고 말을 허지 마시오”

 

그러니까 그 스님이 일어서서 다시 절을 허고 얼굴을 드니까 간 곳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목숨 바쳐서, 목숨 바쳐서 용맹정진을 허게 되면, 반드시 관세음보살이나 문수보살(文殊菩薩)이나 보현보살(普賢菩薩)과 같은 그러헌 성현이 나타나서 우리로 하여금 그 깨달을 수밖에 없도록 경책(警策)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13분4초~26분49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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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를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을 일으킴[發].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냄.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냄.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참선(參禪) ; ①선(禪)의 수행을 하는 것.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이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선지식(善知識) ; 부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지도자. 좋은 벗.

*토굴(土窟) ; 사전적인 원래의 뜻은 ‘땅을 파고 위에 거적 따위를 얹고 흙을 덮어 추위나 비바람만 가릴 정도로 임시로 지은 집’이나, 근래에 절에서 쓰이는 의미는 대중이 함께 거주하는 ‘사찰(절)’과 대비되는 의미로, 어떤 집 형태와는 관계없이 스님의 ‘개인 거처’를 말함.

*탁발(托鉢 맡길 탁/바리때 발) ; 도를 닦는 스님이 경문(經文)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보시를 받음. 수행자의 아집(我執)과 아만(我慢)을 없애고, 동시에 보시하는 이의 복덕을 길러 주는 공덕이 있다고 하여 부처님 생존 당시부터 행하였다.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비구(比丘) ; 출가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남자 승려. 걸식하는 남자 수행승.

산스크리트어 bhikṣu 팔리어 bhikkhu의 음사. 걸사(乞士)·파번뇌(破煩惱)·파악(破惡)·포마(怖魔)라고 번역.

*됫박 ; '되'를 속되게 이르는 말. *되 ; 곡식, 가루, 액체 따위를 담아 분량을 헤아리는 데 쓰는 그릇. 주로 사각형 모양의 나무로 되어 있다.

*천상 ; 천생(天生). 어쩔 수 없이.

*날새기 ; 저녁, 밤을 지나 날이 밝아 올 때까지 자지 않는 것.

*이뭣고(是甚麼 시심마) : ‘이뭣고? 화두’는 천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 어떤 일이 일어난 그 자리)를 찾는 것이다.

표준말로 하면은 ‘이것이 무엇인고?’ 이 말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은 ‘이뭣고?(이뭐꼬)’.

‘이것이 무엇인고?’는 일곱 자(字)지만,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이, 뭣, 고’ 석 자(字)이다. ‘이뭣고?(이뭐꼬)'는 '사투리'지만 말이 간단하고 그러면서 그 뜻은 그 속에 다 들어있기 때문에, 참선(參禪)을 하는 데에 있어서 경상도 사투리를 이용을 해 왔다.

*대골통, 머리빡 ; ‘머리’를 격이 낮게 이르는 말.

*감개무량(感慨無量) ; 마음에 깊이 사무치는 느낌이 그지없음(이루 다 말할 수 없음).

*오체투지(五體投地) ; 불교 신자가 교만을 떨쳐버리고 어리석음을 참회하고 불·법·승(佛法僧) 삼보(三寶)께 큰절을 올려 최대의 존경을 표하는 방법.

신체의 다섯 부위를 땅에 닿게 하는 절. 먼저 두 무릎을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한다. 고대 인도에서 행하여지던 예법 가운데 상대방의 발을 받드는 접족례(接足禮)에서 유래한 것이다. 오륜투지(五輪投地)ㆍ오륜착지(五輪着地)ㆍ거신투지(擧身投地)ㆍ투지례(投地禮)라고도 한다.

*도리(道理) ; 이치(理致). 생기고 없어지고 변화하는 모든 만유(萬有)를 꿰뚫고 있는 법칙. 모든 것에 두루 통하는 진리. 진리와 결합된 이론이나 증명. 타당한 이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으로 중생을 구제하고 제도하는 보살. 관세음(觀世音)은 산스크리트어 avalokiteśvara의 번역, 보살(菩薩)은 산스크리트어 bodhi-sattva의 음사인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준말.

세간(世間)의 중생이 갖가지 괴로움을 받을 때, 그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음성(音聲)을 듣고(觀) 대자비와 지혜로써 자유 자재로 중생을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는 보살.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왼쪽 보처(補處).

또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 자재로운 관찰 등의 뜻으로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 한다. 또 광세음(光世音)·관세음(觀世音)·관세자재(觀世自在)·관세음자재(觀世音自在) 등으로 쓰며 줄여서 관음(觀音)이라 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화현(化現) ; 부처님이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각(各) 중생의 소질에 따라 여러 가지로 모습을 바꾸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 화신(化身)이라고도 한다.

*문수보살(文殊菩薩) ;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부처의 완전한 지혜를 상징함. 문수사리는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의 음사. 문수시리(文殊尸利) · 만수실리(蔓殊室利)라고도 쓴다.

‘문수’는 묘(妙, 신묘하다, 훌륭하다), ‘사리’는 길상(吉祥, 상서로움)의 뜻이다. 묘길상(妙吉祥)·묘덕(妙德)·유수(濡首)라 번역.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문수보살은 일반적으로 연화대에 앉아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왼손에는 푸른 연꽃을 들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위엄과 용맹을 상징하는 사자를 타고 있기도 하고, 경권(經卷)을 손에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도 많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완성을 상징하는 화신(化身).

≪화엄경≫ 속에서도 문수 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과 함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양쪽 협시 보살(挾侍菩薩)을 이룸.

*보현보살(普賢菩薩) ; 불교의 진리와 수행의 덕을 맡은 보살. 한량없는 행원(行願)을 상징함. 산스크리트어 사만타바드라(Samantabhadra). 삼만다발타라(三曼多跋陀羅)라고 표기. 보현(普賢), 편길(遍吉)이라 한역. 경전을 수호하고 널리 퍼뜨리며, 불법을 펴는 보살.

연화대에 앉거나 여섯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오른쪽에서 보좌하는 보살. 보현보살은 또 중생의 목숨을 길게 하는 덕을 가졌으므로 연명보살(延命菩薩)이라고도 한다.

모든 보살들은 다 각각 부처님 공덕의 어느 한 부분만을 나타내어 그것이 그의 특징이 된다.

*경책(警策 깨우칠 경/채찍·회초리 책) : ①좌선할 때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지는 사람을 깨우치는데[警] 사용하는 막대기[策]. ②정신을 차리도록 꾸짖어 깨우침.

Posted by 닥공닥정
ㅇ/용맹정진2017. 6. 28. 09:35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 해태(懈怠, 게으름)하지 않은 것. ②온갖 선법(善法)을 닦는 것.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것. ④참선하는 사람은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

 

(17분 33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59)—병인년 하안거 결제 법어(86.04.17)(세등59)

 

입선(入禪) 시간만 죽비(竹篦)를 치고 입선하면은 그때만 죽 앉아서 정진을 하다가, 방선(放禪) 죽비만 치면 치기가 무섭게 벌써 입을 벌리고 잡담을 하고 그렇게 지낸다면 미륵하생(彌勒下生), 56억 7천만년 뒤에 미륵불이 하생할 때까지 선방에서 지낸들 그건 깨달을 기약이 없는 것이여.

 

편의상 대중이 살다보니까 그러한 규칙적인 시간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죽비를 쳐서 입선도 하고 방선도 하고 거기에 따라서 공양(供養)도 하고, 모다 운력(運力)도 하고 그런 것이지,

공부 자체는 죽비와도 상관이 없는 것이고, 뭐 앉았거나 섰거나 누웠거나 일을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밥을 먹거나 똥을 누거나 전혀 그것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방선을 할 때도 화두(話頭)가 성성적적(惺惺寂寂)해야 하고, 밥을 먹을 때에도 화두가 성성해야 하고, 똥을 눌 때도 화두가 순일(純一)해야 하고, 양치질을 하고 세수를 할 때에도 바로 그때에도 화두가 성성해야 하고, 목욕을 하면서도 성성해야 하고, 일체처 일체시가 그저 입선할 때나 똑같이 화두를 거각(擧却)하고 단속을 해 나가.

그래서 겉으로 보면은 모다 대중들이 무슨 감정이 있는 사람처럼 말도 아니하고, 그 화두가 현전(現前)할 때에 보면은 밖에서 봐도 환히 다 알거든. 경건하고 엄숙한 눈매가 그냥 고대로 있단 말이여.


그렇게 야무지게 단속을 한다면 9나 10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어났다 하면은 하루 종일이 그냥 그대로,

구태여 밤에 101112시까지 잠을 안 자고 앉아서 그렇게 몸부림을 치지 안 해도 정말 잘 때 잘 시간 5시간이면 5시간, 그 잘 시간 딱 자 주고 그리고서 안 잘 때는 성성하게 정진을 해 나갈 수가 있어. 그렇게 해야 정말 알찬 공부를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참, 밤에 잠을 안 자고 설쳐 놓으면은—그 잠을 안 자고 애쓰는 그 뜻은 내가 충분히 인증을 하고 대단히 참 고맙고 기특하지만, 잘 잠을 안 자 놓으면 그 이튿날 낮에 정신이 흐리터분해 가지고 밤낮 꾸벅꾸벅 잠을 자는 것인지, 참선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거든.

입선만 해 놓으면 벌써 그냥 5분도 못되어서 그냥 침 지르르르 흘리면서 꼬부려 가지고 꾸벅꾸벅, 그렇게 해 가지고는 정진(精進)이라 할 수가 없어.

 

그래서 잘 시간, 최소한도 5시간은 딱! 자 주고, 그래야 그 이튿날 깨끗한 정신으로 정진을 할 수가 있고, 또 건강도 좋다 그말이여. 잠을 설쳐 놓고 밤이나 낮이나 그냥 그렇게 해 놓으면은 건강도 안 좋고 또 정진도 정진답지를 못혀.

한번 딱! 허리를 쭉 펴고 정진을 했다 하면은 성성하게 뽑아 나가야지, 노상 끄벅끄벅 벌써 혼침(昏沈)에 빠졌다 하면은 화두가 성성허들 못하는 법이고, 화두가 성성하지 못해 가지고 어찌 그것을 정진이라고 할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그래서 전강 조실 스님께서나 또 정혜사 만공 큰스님께서도 “용맹정진(勇猛精進)을 할라면 한 시간씩을 더 자라” 이런 말씀도 하셨다고 그럽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냐 하면은 진짜 용맹정진이라 하는 것은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해야 그것이 참 정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여.

 

그러니 어쨌든지 이 석 달 동안 입선 · 방선 시간을 어떻게 짰는가 모르겠는데, 접때 들으니까 ‘전국 선방(禪房)을 입선 · 방선 시간을 똑같이 딱 정(定)하자’한 것을 그 입승(立繩) 회의에서 결의를 했단 말을 들었는데,

‘전국 선방 규칙을 똑같이 입선 시간을 정하자’ 한 뜻을 내가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나, 대단히 좋지 못한 것을 정했다고 생각을 나는 속으로 하고 있습니다.

 

선방마다 법도(法度)가 다른 것이 아까 무방(無妨)하다고 했는데, 입선 시간도 한번 앉았으면 3시간씩 하자, 4시간씩 하기로 정한 선방도 있고 또 2시간씩 하기로 정한 선방도 있고 또 ‘아침에 일어나면은 저녁에 잘 때까지 계속 앉아서 정진하자’ 이런 선방도 또 좋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않고 계속 석 달 동안을 앉아서 정진을 하자’ 이렇게 또 정한 선방도 있을 수가 있는 것이지,

‘3시간이나 4시간을 전국 선방이 똑같이 하기로 결의를 하자’한 것은 참 좋은 규칙을 정한 것 같은데, 사실은 대단히 좋지 못한 법을 정한 것이다 그말이여.

 

사람의 근기(根機)에 따라서 다 그것이 적절히 맞아야 그것이 좋은 것이지, 근기를 무시하고 그 여러 가지 여건을 무시하고서 똑같이 정하자고 하는 것은 그것은 정법(正法)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법(邪法)인 것입니다. 지혜로운 법이 아니고 그것은 어리석은 법입니다.

 

 

조달(調達)이가 10생을 부처님을 따라 다니면서 갖은 방법으로 부처님을 해꼬자했는데, 부처님은 그 조달이의 그러한 해꼬자하는 데에 조금도 끄달리지 아니하시고, 더욱 지혜롭게 수행을 하셔 가지고 성불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삼천 년 전에 인도 가비라(迦毘羅) 왕국에 탄생하실 때에 조달이도 부처님 사촌으로 왕궁에 태어났습니다. 부처님이 출가하시자 조달이도 출가를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참 누구 못지않게 용맹정진을 했습니다. 계율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래 가지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만큼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부처님으로부터서 승단의 통솔권을 자기가 인수를 받을라는 야심을 가졌습니다.

 

부처님한테 “부처님, 인자 연세도 많으시고 그러니까 그 통솔권을 저한테 넘겨주십시오”하니까 부처님이 넘겨주지를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다른 곳에다가 자기 회상(會上)을 하나 꾸몄습니다.

꾸며 가지고 부처님 회상으로 와 가지고서—그때 목련존자 또 사리불존자와 같은 수제자들이 어디 다른 데로 포교를 하러 가시고 없을 때에 와 가지고서 대중들에게 일장 연설을 했습니다.

 

“부처님은 계율이 물러서 늙은 사람이나 병든 사람은 고기를 먹어도 좋다고 승낙을 하시고, 또 병든 사람은 또 오신채(五辛菜)도 먹을 수 있다고 하시고 또 어린 사람이나 늙은 사람은 사시공양(巳時供養)뿐만이 아니라, 아침도 먹을 수가 있고 저녁도 약으로 먹을 수가 있다고 이렇게 하셨으니 이러한 청정한 이 승단(僧團)에서 이렇게 법도가 물러 가지고 이래 가지고 무슨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할까 보냐?

내 회상은 늙었거나 어리거나 병들거나를 막론하고 일체 어육을 금하고, 오신채도 금하고, 사시공양 이외에는 절대로 승낙을 안 한다. 그러니 내 회상의 법도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니까 아직 불법(佛法)이 무엇인줄 그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 또 아직 젊은 사람들은 들어보니까 확실히 조달이의 법이 더 엄격하고 훌륭한 것 같거든. 그래서 “내 의견이 옳다고 하는 사람은 손을 들으라”고 하니까, 한 사람 들고 두 사람 들고 이리 뚤레뚤레 하다가 와~ 하니 거의가 다 손을 들었다.

“그러면 나를 따라오너라”하니까—부처님께서도 그 자리에 앉아 계셨지마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가만히 보고만 계셨어. 그러니까 조달이가 “나를 따라 오라” 그러니까는 위~ 하니 수백 명이 다 따라가 버렸어.

 

따라가서 조달이 밑에서 인자 조달이 법문을 듣고, 그 참 추상같은 법도 아래서 막 그냥 용맹정진 가행정진(加行精進)을 하는데, 처음에는 가서 보니까 참 이대로만 해 나간다면은 머지않아서 전부 그냥 다 견성 도통할 것 같이 느껴지고 모다 좋았었는데, 일주일을 지내,  이 주일을 지내, 삼 주일을 지내다 보니까, 차츰차츰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옳은 법이 아니다’

그래서 정말 부처님 법이, 우리 부처님의 법도가 정말 옳은 법이라고 하는 것을 한 사람씩 두 사람씩 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목련존자와 사리불존자가 저 먼 데로부터 돌아왔습니다. 와서 보니까 아! 부처님 회상에 그 시자 한 사람하고 몇 사람 안 남고 다 어디로 가버렸다 그말이여.

“다 어디로 갔냐?”고 물어보니까, 조달이가 약허이약허이 해서 전부 다 선동을 해 가지고 끌고 갔다 그러니까 그길로 조달이한테 쫓아가 가지고는 대중을 모아 놓고 설법을 했습니다.

 

“이 어리석은 대중들아! 아무리 어리석기로서니 정법(正法)과 사법(邪法)을 분간을 못한다는 말이냐? 늙은 사람과 병든 사람, 어린 사람에게 아침을 먹게 하고 저녁을 먹게 하는 것은 근기에 맞추어서 열어주신 부처님의 눈물겨운 자비를 모르고 어찌 그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단 말이냐?

 

병든 사람에게 오신채와 오정육(五淨肉)을 허락을 하신 것은 너무나도 넓고 넓으신 부처님의 자비심이지, 어찌 그것이 도업을 깨트리는 잘못된 법일까 보냐? 부처님의 자비가 거룩한줄 안 사람은 이 길로 일어서서 나를 따라오너라”하니까 와~ 따라서 모다 눈물을 흘리면서 참회를 하고 다 따라 왔습니다.

 

우리 부처님의 법은 중생의 근기를 맞추어서 팔만사천 방편법(方便法)을 설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계율법이 어찌 엄정허지 아니하리요마는, 계율 자체를 위한 계율이 아니라 도업(道業)을 성취하기 위한 계율이여. 그래서 병든 사람에게는 경우에 따라서는 오신채를 허락을 하셨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정육도 허락을 하신 까닭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정진 시간을 세 시간이 좋으냐? 세 시간보다 네 시간이 더 좋고, 네 시간보다 다섯 시간이 더 좋고,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24시간을 계속 용맹정진을 하면 더 좋을 것 같지마는 그러한 것이 아니여.

 

그래서 조실 스님께서는 정진 시간은 두 시간씩 사분정진(四分精進)으로 하고 방선 시간도, 어찌 방선 시간이라고 해서 잡담을 하고 섣불리 지낼 수가 있느냐 그말이여.

방선 시간도 포행(布行)할 사람은 포행을 하고, 또 큰방에 앉아서 정진할 사람은 얼마든지 계속해서 정진을 하라 이거여.

 

큰방에서 방선했다고 해서 잡담? 도저히 그것은 안 돼.

큰방에는 언제라도 묵언(默言) 구역으로 정해 놓고, 자기가 정진하고 싶으면은 마음껏 정진을 하라 이거여. 누가 뭐 어떻게 해.

 

어찌 입선 시간을 세 시간, 네 시간 정해 놓고 강제로 갖다가 꿇어앉아 주리를 틀게 할 필요가 있느냐 그말이여.

두 시간은 누구라도 할 수가 있는 것이니까 두 시간 딱! 정해 놓고 두 시간은 딱 하고, 두 시간 지낸 뒤에는 계속해서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사람은 계속해서 해! 공양 목탁 칠 때까지 계속 앉아서 정진을 해. 그 대신 앉아서 꺼벅꺼벅 조는 사람은 나가야 해. 나가서 포행을 하고 잠을 깨 가지고 들어와.

 

형식적으로 시간만 많이 해 가지고 형식적으로 ‘정진을 많이 헙네’하고 상(相)만 내고, 속으로 알짜배기 정진이 안 된다면은 무슨 도업을 깨달을 수가 있을 거여. 성취할 수가 있겠느냐 그말이여.

 

상(相)을 내고 속이 곯아 버린다면—겉으로만 사치스런 집을 짓고, 속은 빚만 잔뜩 져 가지고 그러한 부자가 요새 많은데 그러한 것은 참 부자가 아니여.

겉으로는 수수하게 살되 빚이 없고 속으로 살림이 알차야 한 것이고, 지식도 겉 소문만 나가지고 속은 실상은 실력이 없는 지식은 그건 진짜 훌륭한 지식이 아니여.

 

계율도 겉으로는 지키는 상이 없지마는 정말 안과 밖이 청정하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율사(律師)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도(道)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지 속 살림이 튼튼하도록 알뜰하고 짬진 정진을 해서 그러한 훌륭한 수행자가 되기를 부탁을 드립니다.(31분24초~48분54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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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미륵불(彌勒佛) : [범] Maitreya 대승보살, 또는 매달려야(梅呾麗耶), 매달례야(昧怛隷野)。번역하여 자씨(慈氏)。 이름은 아일다(阿逸多) 무승(無勝) 막승(莫勝)이라 번역.

인도 바라나국의 바라문 집에 태어나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고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아, 도솔천에 올라가 있으면서 지금 그 하늘에서 천인(天人)들을 교화하고,

석가모니 입멸후 56억 7천만 년을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생(下生)하여, 화림원(華林園) 안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설법으로써 석가모니의 교화에서 빠진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고 한다. 이 법회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 한다.

도솔천에서의 생을 마치면 인간으로 태어나 성불하여 석가모니불의 자리[處]를 보충(補充)한다는 뜻으로 보처(補處)의 미륵이라 하며, 현겁(賢劫) 천 불의 제5불(佛).

*공양(供養) ; ①불(佛)•법(法)•승(僧)의 삼보(三寶)에 음식•옷•꽃•향 등을 바침. ②공경함. 찬탄함. 칭송함. 예배함. ③봉사함. ④절에서 음식을 먹는 일.

*운력(運力) ; '함께 힘을 기울인다'는 의미. '많은 사람이 구름같이 모여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운력(雲力)이라고도 하며,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하는 일'이란 우리말 '울력'과 같다. 의미와 관계없이 운력(運力)은 사찰에서 대중들이 모여 육체적인 노동을 함께 한다는 뜻.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나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惺惺]한 상태.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화두를 든다’ ‘화두를 거각한다’는 말은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 때 알 수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그 알 수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하는 것이다.

[참고] 송담스님 세등선원(No.09)—병진년 동안거 결제중 법어(76.12.26)에서.

화두를 먼저 이마로 의심을 하지 말고, 이 화두를—호흡하는데 배꼽 밑[丹田]에 숨을 들어마시면은 배가 볼록해지고 숨을 내쉬면은 배가 홀쪽해지는데, 그 배가 빵빵해졌다 홀쪽해졌다 허는 거기에다가 화두를 들고 ‘이뭣고~?’   ‘알 수 없는 생각’ 관(觀)하는 그것이 화두를 드는 것이여.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 것.

*현전(現前) ; 앞에 나타나 있음.

*정진(精進) : [범] Virya  음을 따라 비리야(毘梨耶 • 毘離耶) • 미리야(尾利也)라고도 쓴다。보살이 수행하는 육 바라밀(六波羅蜜)의 하나.

순일하고 물들지 않는(純一無染) 마음으로 부지런히 닦아 줄기차게 나아가는 것이다。그러나 닦는 생각(能)과 닦는 것(所)이 있어서는 안 된다。함이 없이 하는 것이 정진이다.

*혼침(昏沈 어두울 혼, 잠길 침) ; ①정신이 미혹(迷惑)하고 흐리멍덩함. ②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하여 잠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진 상태.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②선원(禪院).

*입승(立繩) ; 선원(禪院)에서 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또는 그 일을 맡은 스님.

*법도(法度 법 법/법도 도) ; 법칙(法則)과 제도(制度). 법규(法規)라고도 한다. 지켜야 할 규칙이나 의례를 가리키는 말이다.

*무방하다(無妨-- 없을 무, 방해할·거리낌 방) ; (사람이 어찌하여도)거리낄 것이 없이 괜찮다.

*근기(根機 뿌리 근/베틀 기)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사법(邪法) ; 부정한 가르침. 외도(外道)의 가르침.

*조달(調達) ; 제바달다(提婆達多 산스크리트어, 팔리어 devadatta의 음사).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됨. 부처님에게 승단을 물려줄 것을 청하여 거절당하자 오백여 명의 비구를 규합하여 승단을 이탈함. 여러 번 부처님을 살해하려다 그 과보로 살아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한다.

*해꼬자 ; 해꼬지. 해코지(害코지)—남을 해치고자 하는 짓.

*가비라(迦毘羅) 왕국 ; ‘석가모니(釋迦牟尼, Śākyamuni)’의 아버지 슈도다나왕(Śuddhodāna ; 淨飯王)이 다스리던, 인도와 지금 네팔 남쪽 국경 근처에 있던 석가족의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 迦毘羅) 나라를 말함.

*회상(會上) ; ①대중이 모여서 설법을 듣는 법회. 또는 그 장소. ②대중들이 모여서 수행하는 공동체 및 그 장소. ③‘회상(會上)’이란 말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함께 모인 것을 ‘영산회상(靈山會上)’이라 부른 데에서 유래한다.

*오신채(五辛菜) ; 우리나라 절에서 냄새가 강하고 독특해 음욕과 분노를 일으켜 수행에 방해가 된다 하여 특별히 먹지 않는 다섯 가지 채소. 마늘·파·부추·달래·흥거. 경론(經論)에 따라 그 종류가 달라 일정하지 않다.

*사시공양(巳時供養) ; 절에서 평소 하루에 딱 한번 오전 중 사시(巳時 오전 9~11)에 하는 공양(식사)을 말한다.

*승단(僧團) ; 승가(僧伽). (산스크리트)(팔리) saṃgha(상가)에서 유래하였다. 중(衆)·화합중(和合衆)이라 번역.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그 가르침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의 집단. 화합하고 있는 불교 교단을 뜻한다. 보통은 출가자의 집단을 가르키지만, 넓게는 재가(在家)의 신도도 포함한다.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性]을 꿰뚫어 보아[見] 깨달아 부처가 됨[成佛].

*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의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것.

*약허이약허이 ; 약하(若何)하다—여하(如何)하다의 높임 말. 여하(如何)하다 : 어떠하다(어떻다, 의견·성질·형편·상태 따위가 어찌 되어 있다).

*오정육(五淨肉) ; 스님들이 먹을  있도록 허용된 다섯 가지의 청정한 고기. 오종정육(五種淨肉).

①나를 위해 죽이는 것을 목격하지 않은 (不見爲我殺). ②나를 위해 죽였다는 것을 듣지 못한 (不聞爲我殺). ③나를 위해 죽였다고 의심되지 않는 (不疑爲我殺). ④수명이 다하여 저절로 죽은 (自死). ⑤새가 먹다 남긴 (鳥殘).

*방편(方便 방법·수단 방/편할 편) ; 중생을 깨달음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그때마다의 인연에 적합하게 일시적인 수단으로 설한 뛰어난 가르침. 중생 구제를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편의적인 수단과 방법.

곧 불보살이 중생의 근기에 적절하게 응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법을 펼쳐 보임으로써 그들을 교화하여 이익되게 하는 것을 말한다.

*도업(道業) ; 도(道)는 깨달음. 업(業)은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의 수행. 진리의 실천.

*사분정진(四分精進) ; 참선이나 기도를 하루 네 번(새벽, 오전, 오후, 저녁)씩 시간을 정해 정진하는 것.

*포행(布行) ; 참선(參禪)을 하다가 잠시 방선(放禪)을 하여 몸을 푸는 뜻으로 자신의 본참화두를 들면서 조용히 뜰을 걷는 일.

*큰방 ; 스님들의 본업인 수행을 행하는 장소. 예불과 공양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참선만을 행하는 선원(禪院)에서 대중이 한 자리에 모여 참선수행 방(房)을 말한다.

*주리(周牢)를 틀다 ; 주리 틀다. 예전에, 죄인을 심문할 때 주리(죄인의 두 다리를 한데 묶고 다리 사이에 두 개의 긴 막대기를 끼워 비틀던 형벌)의 형벌을 주다.

*상(相) ; ①모습, 형태 ②특징, 특질 ③생각, 관념, 상(想)과 같음 ④종적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 생각

*율사(律師) ; 계(戒)와 율(律)에 능통한 스님. 일반적으로 계행이 청정한 수행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도(道) ;  ①깨달음. 산스크리트어 bodhi의 한역. 각(覺). 보리(菩提)라고 음사(音寫). ②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또는 그 방법. ③무상(無上)의 불도(佛道). 궁극적인 진리. ④이치. 천지만물의 근원. 바른 규범.

*짬지다 ; 일하는 솜씨가 여물고 깐깐하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용맹정진2017. 5. 31. 18:52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해태(懈怠 게으름)하지 않은 . ②온갖 선법(善法) 닦는 .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 ④참선하는 사람은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

 

(4분 10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34)—신유년 하안거 반결제 법어(81.05.29)(세등34)

 

공부는 다른 것이 아니여.

밤잠을 안 자고 하는 것도 가행정진(加行精進)의 하나요, 오후불식(午後不食)이나 일종(一種)을 하는 것도 가행정진의  방법이요, 묵언을 하고 말을 아니 하는 것도 가행정진의  방법이지만, 말을 아니 한다든지, 잠을 안 잔다든지, 또는 밥을 굶는다든지, 이러한 것은 육체적인 면으로 가행정진이 표시된 것이고,

 

진짜 가행정진, 용맹정진(勇猛精進)은 그런 밖으로 표현되지 아니한 정신적인, 마음으로 다져 나가는 채찍질하는 그것이야말로 참으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이다.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의단(疑團)이 한목 돈발(頓發)하도록 그렇게 해 나가는 ,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가행정진이요, 용맹정진이다.

 

억지로 잠을 안 잘라고, 억지로 밥을 굶고 억지로 말을 안하고 벙어리 흉내를 해도, 속으로 온갖 시비(是非)에 참견하고, 온갖 분별심을 내고 온갖 번뇌 망상을 하고 시비에 휩싸이고, 화두(話頭)는 행주좌와 어묵동정 간에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들리지는 아니하고, 그러면서 잠만 안 자면 무슨 그것을 갖다가 가행정진이라  것이 있느냐.

 

잠을 안 자는 것으로서 가행정진을 삼는다면 불면증이 있어    사람은 벌써 진묵겁(塵墨劫) 전에 견성(見性)을 했을 것이고. 등창이 나서 앉은뱅이는 공부를 누구보다도  잘할 것이고, 나면서부터 벙어리로 태어난 사람은 뱃속에서부터 도통(道通)해 가지고 나올 것이고, 위장병으로 밥을  먹은 사람은 일찍 도를 통하겠지만은 그러한 것이 아니거든.

 

밥을 굶는다든지, 잠을  잔다든지, 말을 아니한다든지 그것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분심을 내고 발심(發心)을 하고 보다  공부에 보탬이 될까 하는 생각에서 그런 단식이나, 오후불식이나, 묵언이나 또는  시간  시간을 덜 자고 몸부림을 치고 애를 쓰는 , 대단히 갸륵하고  존경할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근본을 망각하고 형식적인 지엽적인 데에만 치중을 하면 기본축말(棄本逐末)이여. 근본은 버리고  지엽(枝葉) 끄터리를 쫓아가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

 

물론 뿌리도 튼튼히 하고 가지, 형식도 충실히 한다면 그거야 금상첨화(錦上添花)요,  이상  좋을 수는 없지만, 항시 근본에 대해서  충실할  알면 지엽적인 것은 자동으로 따라가는 것이 최상승(最上乘) 학자의 수행 자세다.(3344~3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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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행정진(加行精進) ; 별도의 노력을 기울여서 하는 정진. 어떤 일정한 기간에 좌선(坐禪) 시간을 늘리고, 수면도 매우 단축하며 정진하는 .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열두  지나면 먹지 않는 .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신심(信心) : ‘내가 바로 부처다 따라서 부처는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요, 일체처 일체시에 언제나  몸뚱이 끌고 다니는 주인공,  소소영령한 바로 이놈에 즉해서 화두를 거각함으로써 거기에서 자성불(自性佛) 철견을 해야 한다는 믿음.

*분심(憤心) : 과거에 모든 부처님과 도인들은 진즉 확철대오를 해서 중생 제도를 하고 계시는데, 나는  여태까지 일대사를 해결 못하고 생사윤회를 하고 있는가. 내가 이래 가지고 어찌 방일하게 지낼  있겠는가. 속에서부터 넘쳐 흐르는 대분심이 있어야. 분심이 있어야 용기가 나는 것이다.

*의심(疑心, 疑情) : ‘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놈이 무엇인고?’ ‘이뭣고?’ ‘이놈 무엇이길래 무량겁을 두고  없는 생사를 거듭하면서 오늘 지금  자리까지 왔는가? ‘대관절 이놈이 무엇이냐?’ 자기의 본참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어서 드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부터 저절로 들려지게 해야.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돈발(頓發 갑자기 /일어날·나타날·밝힐 ) ; 일정한 단계를 밟지 않고 직접적, 비약적으로 일어나는. [참고]  - 直頓의 , 곧바로.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체의 행위.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진묵겁(塵墨劫) ; 티끌이 쌓여 ()  만큼의 오랜 시간.
*견성(見性)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 꿰뚫어 보아() 깨달음. 미혹을 깨뜨리고 자신의 청정한 본성을 간파하여 깨달음.

*도통(道通) ; ①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훤히 통함. ②깨달음.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금상첨화(錦上添花) ;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 뜻으로, 좋은  위에  좋은 일이 더하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Posted by 닥공닥정
ㅇ/용맹정진2016. 5. 26. 21:21

용맹정진(勇猛精進) (세등선원No.68)—일체 수용(受用)은 인연(因緣)에 맡기고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일념만년(一念萬年)으로 한결같이 정진해야.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 해태(懈怠 게으름)하지 않은 . ②온갖 선법(善法) 닦는 .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 ④참선하는 사람은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

 

(7분 56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세등68)

 

조실 스님께서 아까 가운데에 화택(火宅) 속에 있고, 사방에서 불이 들어오고 있고, 바로 불더미 속에 우리가 있으니 거기에서 가행정진, 용맹정진을 해서 거기서 해탈(解脫) 해야 한다

 

가행정진(加行精進), 용맹정진(勇猛精進) 과연 무엇이냐?

납월 팔일(臘月八日)초하룻날부터서 십이월 팔일 새벽까지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앉아서 정진을 하고, 화장실에 가는 시간만을 제외하고는 노상 앉아서 정진을 하는데 그것을 보통 용맹정진이라 그러고 가행정진이라 그러는데, 어찌 참다운 가행정진 참다운 용맹정진이 어찌 옆구리를 땅에 대고 대고 하는 데에 걸려있겠습니까?

 

옆구리를 땅에 대지 아니하고, 잠을 억지로 자기 위해서 장군죽비(將軍竹) 치면서그렇다면은 불면증이 들어서 자는 사람,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나서 없는 사람은 일찌감치 견성성불(見性成佛)하지 않겠습니까? 절대로 용맹정진, 가행정진이 옆구리를 땅에 대고 대는 있는 것이 아니여.

 

앉아서도이뭣고?’  서서도이뭣고?’  걸어가면서도이뭣고?’  차를 타면서도이뭣고?’

밥을 먹으면서도이뭣고?’  빨래하고 소지를 하고, 목욕하고 양치질하면서도이뭣고?’

일체처 일체시에 한눈 팔지 아니하고 경계에 끄달리지 아니하고, 보되 바가 없고 듣되 듣는 바가 없고, 먹되 먹는 바가 없고 걸어가되 걸어가는 바가 없어.

 

오직 화두(話頭) 하나만을 잡드리 나가되 성성(惺惺)하고 적적(寂寂)하게, 생각없는 생각으로 터억 의단(疑團) 관조(觀照) 나간다면,

저녁 9시나 10시에 자고 새벽 3시에 일어난다 하드라도 눈뜨고서는 일체 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오직 생각 간절한 마음으로 화두를 잡두리 나가고, 잠을 10시나 9시에 취침시간이 되아서 자리에 눕되, 누워서도 계속 의단을 관조해 나가고 잡두리 나가다가 언제 잠이 든중 모르게 잠이 든다 그말이여.

 

잠이 들어서도 꿈속에서도 화두를꿈속인지 꿈이 아닌지 하여간 언제 잠이 모르게 잠이 들어서도 고대로 화두가 있고, 새벽에 눈을 ! 떴을 새로 화두를 것도 없이 엊저녁에 들고 자던 화두가 고대로 있도록 그렇게 잡드리를 해나간다 그말이여. 이것이 바로 가행정진이요, 이것이 바로 용맹정진인 것이여.

 

동안 안거(安居) 하는데 결제 때부터서 해제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잡드리를 나가.

거기에 무슨 시비가 있으며 무슨 분별이 있으며, 무슨 밥이 어떻고 반찬이 어떻고 차가 어떻고, 옆에 사람하고 시비할 겨를이 어디가 있으며, 일체 수용(受用) 인연(因緣) 맡겨 버려.

 

밥이 되면 대로 질면 대로, 반찬이 짜면 대로 싱거우면 싱거운 대로, 차를 한번 먹게 되면 한번 먹고 먹게 되면 먹고, 사찰 선방의 모든 규칙에 따라서 순응(順應)하면서,

오직 자가철주(自家鐵柱), 자기 스스로에 쇠기둥과 같은 법도(法度) ! 세워서 처음 시작한 날부터서 끝나는 날까지 여여부동(如如不動)하게 일념만년(一念萬年)으로 한결같이 그렇게 잡두리를 나간다면 이것이야말로 명실공히 용맹정진이요, 가행정진이 되는 것이여.

 

듣자니 이번에 세등선원에 결제한 모든 대중, 그리고 저기 군산에 반야선원의 대중들이 정말 산승(山僧) 이렇게 말한 고대로 정진을 왔다고 들었습니다.

부처님 가신 삼천 년이 되어서 말세(末世) 수가 있는데, 말세에 이르러서 한국에 여러 군데 비구·비구니의 선방에서 이렇게 알뜰히 정진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알뜰히 가지고 일대사(一大事) 요달하지 못하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전생(前生) 닦은 모든 시절인연(時節因緣) 따라서 빨리 깨닫기도 하고 더디 깨닫기도 뿐이지, 중간에 중단하지 아니하고, 중간에 사견에 빠지지 아니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그렇게 열심히 간다면 결국은 깨닫고야만 마는 것입니다.

 

나무토막이 상류에서 강을 따라서 흘러 내려가되, 중간에 맥히지 아니하고, 양쪽 언덕에 걸리지 아니하고, 가다가 썩어버리지 아니한다면, 나무토막은 결정코 망망대해(茫茫大海) 도달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덩어리의 나무둥치를 우리 중생의 발심(發心) 수행자에다 비교한 것입니다.

 

출가해서 선지식을 찾아서 발심(發心) 가지고 바른 법으로 목숨 바쳐서 도를 닦아나갈 때에 중간에 중단하지 않고, 중간에 사견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끝까지 목숨 바쳐서 수행을 한다면은 만이면 , 천만 명이면 천만 , 사람 빠짐없이 견성성불 있다고 하는 사실을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2044~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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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해탈(解脫) ;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납월 팔일(臘月八日) ; 음력 12 8, 석가모니가 성도(成道) 날을 말함. 석가모니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선원에서는 초하루부터 팔일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勇猛精進) 한다.

*장군죽비(將軍竹) ; 보통 죽비()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40~50센티의 불교 용구인데, 장군죽비는 참선할 졸거나 자세가 흐트러진 수행자의 어깨를 쳐서 졸음을 쫓는 2m 죽비.

*견성성불(見性成佛) ;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 보아 깨달아 부처가 .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잡드리(잡두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성성적적(惺惺寂寂) ; 정신이 고요하면서도 깨끗하고 또록또록 상태.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안거(安居 편안할 /있을 )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인도의 불교도들은 4 15(또는 5 15)부터 3개월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 15일부터 7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 15일부터 다음해 1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 한다.

*수용(受用) ; (물건을 남에게) 받아 .

*순응(順應) ; 상황의 변화나 주위 환경에 맞추어 부드럽게 대응함.

*법도(法度) ; 규칙법칙율법법규결정들.

*일념만년(一念萬年) : 한결같은 마음.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말세(末世 /세상 ) ; ①도덕, 풍속, 정치 등의 모든 사회 질서와 정신이 매우 타락하고 쇠퇴하여 끝판에 이른 세상. ②석존입멸후 오백년을 정법(正法) 세상, 다음 천년을 상법(像法) 세상, 후의 일만년을 말법(末法) 세상이라고 한다.

*일대사(一大事) ; ①부처님이 중생구제를 위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하는 .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는 목적 ②가장 중요한 일이란 . 수행의 목적. 깨달음을 얻는 . 인간으로서의 완성.

*시절인연(時節因緣) ; 시절이 도래(到來)하고 인연이 합쳐지는 기회. [참고]시절(時節)—어떤 시기나 . 도래(到來)—어떤 기회나 시기가 닥쳐옴. 기회(機會)—어떠한 행동을 하기에 가장 좋은 .

*망망대해(茫茫大海) ; 한없이 넓고 바다.

*발심(發心) ; ①위없는 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菩提心]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초발의(初發意), 신발의(新發意), 신발심(新發心), 초심(初心), 발의(發意) 등이라고도 한다. 갖추어서 발기보리심(發起菩提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라고 한다.

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이 부처님이 있었던 바탕이 되는 종자이고 청정한 법이 자라날 있는 좋은 밭이기 때문에 , 마음을 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면 속히 위없는 보리를 증득한다.

 

Posted by 닥공닥정
ㅇ/용맹정진2016. 2. 28. 06:41

용맹정진(勇猛精進) (No.500)—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항상 한 생각 단속해서 간절한 생각으로 의단이 독로하도록 잡드리한 것이 참다운 용맹정진.

 

*용맹정진(勇猛精進) ; 두려움을 모르며 기운차고 씩씩한 그리고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불방일(不放逸) ; ①방일(放逸, 거리낌없이 제멋대로 마음 놓고 지냄해태(懈怠, 게으름)하지 않은 . ②온갖 선법(善法) 닦는 . ③능히 마음을 수호하는 . ④참선하는 사람은 일체처 일체시에 항상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불방일(不放逸).

 

(8분 5초)

 

[법문] 송담스님(No.500)—93 동안거해제 백일기도 회향(93.02.06)(용500)

 

용맹정진, 가행정진의 말이 나왔습니다마는 흔히 용맹정진하면은 장좌불와(長坐不臥) 또는 묵언(默言) 또는 일종(一種), 오후불식(午後不食) 또는 단식(斷食), 이런 것들을 흔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도, 물론기어코 도업(道業) 성취해야겠다 하는 그러한 발심에서 나온 행동인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단식을 하고, 묵언을 하고, 오후불식을 하고, 장좌불와를 하고 그보단 훨씬 참다운 용맹정진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앉았거나 누웠거나 걸어가거나 일을 하거나, 행주좌와간에 어묵동정간에 항상 생각을 단속을 해서 간절한 생각으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도록 잡드리한 것이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용맹정진이다 이거거든.

 

장좌불와하면은 장좌불와한 데에 끄달리고, 묵언을 하면은 묵언한는 데에 끄달리고, 생식이나 단식을 하면은 생식하고 단식하는 데에 끄달리고, 일종을 하고 오후불식을 하면 일종 하고 오후불식하는 데에 끄달리고,

평생을 누데기 벌만 가지고 입지, 내가 시은(施恩) 짓겠다 가지고 누덕누덕 누더기를 짓고, 멀쩡한 옷에다가 걸레를 찢어서 갖다가 붙여갖고, 그것 누데기에 집착을 하게 되더라.

 

부처님은 집착심이 없는 것이 바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금강경에도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마는, 생각을 정말 간절하게 알뜰하게 단속을 해야지, 생각을 단속하지 않고 외형적인 데에 집착을 하고 공연히 몸뚱이만을 못살게 구는 것으로써 용맹정진을 삼아서는 되겠더라.

 

산승(山僧) 그럭저럭 10년을 묵언을 봐서 묵언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정말 정진에 묵언을 해야만 된다고 하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고 잡담을 많이 하고 쓸데없는 참견하고,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은 입을 아주 철사로 꿰매버려야 만한 그러한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말을 많이 하고 잡담을 많이 하고 가지고 자기도 공부를 하면서 남까지 정진을 방해를 하는 그런 사람은 시한부(時限附) 묵언을 하는 것도 무방(無妨)하다고 생각하나,

10년이니, 20년이니 내지 평생을 완전 벙어리가 되는 것은전혀 공부에 이익이 없다고는 수가 없으나, 반면으로 많은 불편과 손해도 있고 남에게 첫째 불편을 주고, 백에 열이나 이익이 있으면 구십 정도는 손해도 있다고 나는 생각을 .

그래서 장좌불와도 역시 마찬가지고, 묵언도 역시 마찬가지고, 일종도 역시 마찬가지여.

 

부처님 당시에는 사시공양(巳時供養) 한끼만을 모다 공양을 하시도록 그렇게 되어 있지마는 지금은 중생근기가 약해서 하루 한끼 먹고는 도저히 허기(虛飢) 져서 공부를 수가 없어.

그래서 아침도 공양을 하고, 저녁도 약석(藥夕)이라 해서 저녁도 공양해서 공양은 하되 과식을 아니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너무 적게 먹어가지고 기운이 떨어져서도 돼고.

 

잠도 역시장좌불와를 하고 옛날에 그런 조사도 계시고 그런 스님네도 계시지마는,

다섯 시간, 시간 내지—9시에 자고 3시에 일어나면 여섯 시간인데아무리 길어도 여섯 시간을 넘지 말고, 아무리 짧아도 시간은 자야 그래도 건강이 유지가 된다.

그래서 고인이 말씀하시기를의식주, 가지가 지나치게 작아도 퇴타(退墮) 인연이 된다지나치게 너무 지나쳐도 좋지 않고, 지나치게 부족해도 못쓴다 이거거든.

 

해제를 했으니 마음대로 걸망을 지고 선지식을 찾아갈 수도 있고, 도반을 찾아갈 수도 있고 삼동에 너무 정진에 애를 쓰다 보니 기운이 탈진이 되어가지고 어디 적당한 가서 쉬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가든지 가는 걸음걸음이 화두를 들고, 어디 가서 쉬더라도 쉬는 자리에 바로하루를 쉬면 하루 결제(結制)했다 생각하고, ‘사흘을 쉬면은 사흘 결제했다 생각하고,

 

비록 허리가 아프면 허리를 잡아서 와선(臥禪) 하고, 다리가 아프면 다리를 뻗는 한이 있더라도 생각만큼은 터억 구속 없는 가운데 화두(話頭) 터억 들어보시라 그말이여.

결제 중에 짜인 법규 하에서 죽비() 치고 입선(入禪) 보단, 죽비를 치고서 터억 부담 없는 마음으로 화두를 들어보면 한결 공부가 되거든.

 

어느 산중에 계곡을 지나갈 바위 턱에 걸터앉아서 흘러가는 시냇물을 보면서 화두를 들고, 이제 입춘도 지내고 해서 여기서 저기서 산새가 것입니다. 산새를 들으면서도 터억 화두를 들어보시라 그말이여.(3719~4523)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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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좌불와(長坐不臥) ; 밤이 되어도 눕지 않고 앉아서 수행 정진하는 .

*일종(一種) ; 일종식(一種食). 하루에 끼만 먹는 .

*오후불식(午後不食) ; 정오(正午), 열두 시가 지나면 먹지 않는 .

*도업(道業) ; () 깨달음. () 영위(營爲 일을 계획하여 꾸려 나감). 불도(佛道) 수행. 진리의 실천.

*의단(疑團 의심할 ,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잡드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누데기 ; ‘누더기(누덕누덕 기운 )’ 사투리.

*시은(施恩) ; ①시주(施主)에게서 받은 은혜. ②은혜를 베풂.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

*시한부(時限附 /한정 /붙을·붙일 ) ; 어떤 일에 대해 일정한 시간의 한계를 .

*무방하다(無妨-- 없을 , 방해할·거리낌 ) ; (사람이 어찌하여도)거리낄 것이 없이 괜찮다.

*사시공양(巳時供養) ; 절에서 평소 하루에 한번 오전 사시(巳時 오전 9~11) 하는 공양(식사) 말한다.

*허기(虛飢 /주릴·굶주림 ) ; 굶어서 몹시 배고픈 느낌.

*약석(藥夕)절에서 저녁 식사를 이르는 . 원래 계율에는 오후의 식사를 금하였으나 병자(病者) 어리고 늙은 사람을 위해 저녁 식사는 '치료한다' 뜻에서 이와 같이 일컬음.

*퇴타(退墮 물러날 /떨어질·게으를 ) ; 어떤 경지로부터 물러나 되돌아 오는 . 퇴전(退轉)이라고도 한다.

*결제(結制 맺을 /만들법도 ) ; 참선 수행하는 안거(安居) 들어감.

*화두(話頭) : 또는 공안(公案) • 고측(古則)이라고도 한다. 선종(禪宗)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참선 공부하는 이들은 이것을 참구하여, 올바르게 간단없이 의심을 일으켜 가면 필경 깨치게 되는 것이다.

*죽비( 대나무 /빗치개·통발 )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 들어가는 , 좌선(坐禪) 시작하는 . 참선(좌선)수행.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