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인가2017. 7. 2. 22:15

*인가(印可 도장 /옳을·인정할 ) ;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인정함.

 

(14분 36초)

 

[법문] 송담스님(No.026)—76 동지법문 (76.12.22)(용026)

 

‘참선(參禪)을  나가는 데에는 바른 스승을 구해야 한다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떠한 것이 바른 스승이냐? 실오실참(實悟實參), 실답게 닦아 가지고 실다웁게 깨달라서 바른 선지식(善知識)의 인가(印可)를 맞아야 한다.


전강 조실 스님께서는  목구녕에서 선지피가 덩어리 덩어리 맺혀서 쏟아지도록, 그렇게 말로써  형언할 수 없는 그러한 고행정진을 하셔 가지고, 급기야 확철대오(廓徹大悟)를 가지고서 한국의 6대선지식으로부터서 법문답(法問答)을 해 가지고 인가를 받으셨습니다.

 

조실 스님께서 받으신 인가는 오냐, 옳게 알았다. 니가 견성을 했다 이렇게 인가를 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선지식과 법문답을  가지고  선지식이  조실 스님의 깨달은 증득한  힘과 역량이 너무나도 투철하시고 확철대오를 하셨기 때문에 어떠한 선지식도  조실 스님의  밝고 투철한  깨달은 경지에 대해서 무릎을 꿇지 않코서는 배기지 못했던 것입니다. “옳다, 니가 옳다하고 말씀하실 겨를 조차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러한 다섯 분의  선지식의 인가를 받어 가지고 마지막에 만공 큰스님한테  가지고 만공 큰스님과 법거량(法擧)을 하셨는데, 만공 스님께서는 중요한 꼬타리를 ! 붙잡으셔 가지고 조실 스님을 인정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거기에서 처음에는 조실 스님께서는 만공 스님께서 나를 떠볼라고, 시험해 볼라고 이러시지 않나?하고 처음에는 범연(泛然) 그렇게 생각하셨다가 두고 두고 인정(認定)을  하시고, 놀리시고, 무시를 하시고, 그러시기 때문에,

‘선지식이 학인(學人)을 그러실 수는 없다. 반드시 무슨 까닭이 있기 때문에 저러신 것이지, 어찌 선지식으로서 깨달은 학인이 온다면 분명히 깨달은 사람을 깨달았다고 하실 일이지, 절대로 거짓말하시거나, 후배를 농락하실 리는 없다

 

그래 가지고 거기서  생각을 돌이켜 가지고, 철봉대(鐵棒臺)를 붙잡고 날새기 공부를 하시면서 그때 하신 화두가 판치생모(板齒生毛)’ 화두였습니다.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화두를 철봉을 붙잡고 밤이슬을 맞으면서 며칠을 두고 용맹정진을  끝에 확철대오를 하셨던 것입니다.

 

밤이나 낮이나 철봉을 잡고, 남이야 개천가에서 히히닥거리고 장난을 하거나, 잡담을 하거나 그런 것도  불구하고, 어떻게 발심(發心)을 하고 분(憤)이 나서 철봉대를 붙잡고 정진을 하신 가운데,

개천에서 무무(無無)도 역무(亦無)다 어떤 도반들이 그런 소리를 지르면서, 가재를 잡으면서 모다 그런 소리가 들려온 것을 보고서 그때 확철대오를 하셨는데,

 

 즉시에 무슨 공안(公案)의 도리가 나타났냐 하면은 마조(馬祖)의 원상(圓相),

마조 스님이 둥그러미를 땅에다가 그려 놓고서  안에 들어가도 치고,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친다 이렇게 어떠한 스님에게  법을 물었습니다.  스님이  둥그러미 안에 뛰어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은 가지고 계시던 주장자로  스님을  방맹이 쳤습니다.

 맞은 스님이  말이, 조주 스님을 ! 쳐다보면서 스님은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조주 스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고,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공안에 대해서 조실 스님께서는 여지없이 간파(看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분이 솟구쳐 나고, 어떻게 말로써 표현할  없는 분이 나던지,

그길로조실로 계시는 만공 스님께서는 이미 보월 스님에게 조실 자리를 물려주시고 당신께서는 금선대(金仙臺)에 은퇴하고 계실 때입니다. 증사(證師)로 그렇게 금선대에 계시고, 조실에는  만공 스님의 수제자이신 보월 스님께서 조실로 계실 ,

 

 조실방에 뛰어 들어가서 보월 조실 스님 앞에다가 원상 떠억 그려 놓고  안에 들어가도 치고,  안에 들어가지  해도 친다고 하셨으니,  말씀 일러주십시오 보월 스님께서  원상을 손으로 이리 뭉개버리셨습니다.

그러니까 ! 천하 선지식으로서 학자를, 이렇게 천하 학자를 죽일 수가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조실에 앉어 계실 수가 있습니까?” 고함을 지르면서 그러니까 , 이 사람 보소,  사람 봐!” 그리고 어리둥절하실 ,

 

그길로 금선대에 쫓아 내려가서 만공 스님 앞에 가서 제가 조실 스님을 매장(埋葬) 하고 왔습니다! 세상에 조실에 앉아서 천하 학인의 눈을 그렇게 멀릴 수가 있습니까?” 이래 가지고, 아까 전강 조실 스님께서  말씀하셨죠.

 

그렇게 해서 전강 조실 스님은 만공 스님께 정식으로 다시 그렇게 해서 어디  안에 일러봐라 그러니까 큰스님께는  이르겠습니다.”

 

 옆에 용담 스님이라고 하는, 여러분이 지금 선가귀감(禪家龜鑑) 번역한 것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마는,  처음에  용담 스님께서  선가귀감을 번역을 하신 것입니다. 그걸 번역을 했던 것을 근본으로 해서 법정 스님이 새로 교정을  가지고 내놓은 것이 요새 발간해 나오는 선가귀감입니다.

 처음에 번역했던  용담 스님이 전강 조실 스님과는 아주 다정한 도반이었었습니다.

 

마치  용담 스님이 옆에 계시는데, 그러면 용담, 자네가 묻소 그래서 용담 스님이 원상을 떠억 그려 놓고서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치노라.” 그러니까는 전강 조실 스님께서 거기서 터억 일르셨습니다. 이것은 설파(說破)가 되기 때문에 조실 스님께서는 말씀을 하시지  했습니다.

 

 

그리고  밖에  처음에 만공 스님한테 가서 절을 하니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전강 스님께서)주먹을 터억 내미니까는 허어, 습기를 면치 못했구나. 아니다!  견성이 아니다. 견성이 아니다 이렇게 부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스님, 그때  법을 다시 물어 주십시요 그랬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허허허,  보게

 

이렇게 해서 그날부터서는 모든 공안에 대해서 정식으로 탁마(琢磨) 허락을 하셔 가지고, 천칠백 공안 낱낱이 만공 스님과 서로 탁마를 해 가지고,

결국은 만공 스님께서 허허, 학자(學者)가 선지식 똥구녁에 들어가기도 하고, 선지식이 학자 똥구녁에도 들어간 것일세 이렇게 해서 모든 탁마를  마치시고,

 

그래 가지고 조실 스님을 하직을 하고  팔도에 자유자재로 다니시면서 오후보림(悟後保任) 해 가지고, 말년에 이르러서  용화사 법보선원에서 말년 회향을 우리를 지도하시면서 마지막 열반하신 그날까지 법상에 올라가셔서 설법을  주시고 열반(涅槃) 드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실오실참(實悟實參)을  가지고 바른 선지식의 인가를 맞아야,  선지식이라야 비로소 우리가 목숨 바쳐 의지해서 공부에, 참선에 지도를 받을  있는 바른 스승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지식은, 우리의 도를 지도해 주실 선지식은 무엇과 같으냐? 하면은 목수(木手)에다가 비교할 수가 있고, 도를 배우는 학자는 재목(材木)에다가 비유할 수가 있습니다.

 

재목도 좋은데다가 좋은 훌륭한 목수를 만나야 훌륭한 집을 지을 수가 있습니다. 어떠한 물건을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재목이 좋고 훌륭한 재목이라 하더라도 목수를서투르고, 경솔하고, 지혜롭지 못한 서투른 목수를 만나 놓으면은  아까운 재목을 버리고 말아 버리는 것입니다. 설사  재목이 조금  좋은 재목이라 하더라도 훌륭한 목수를 만나 놓으면은 상당한 효과를 나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근기(根機)가 수승하지를 못해서 중근기, 하근기라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 가지고 올바르게 지도를 받고, 그래서 올바르게 수행을 한다고 하면은 누구나  자기에게 있는 참나’를 깨달라서 생사해탈을  수가 있는 것이지마는,

우리 근기가 비교적 순수하고, 근기가 수승하다 하더라도 바른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자기는 영원히 깨닫기커녕은 삿된 도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바른 스승은  깨달은 바가 분명하면 되는 것입니다.

 

공자님 말씀에 소인(小人)에 유재자다(有才者多)이라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소인놈 가운데 재주있는 놈이 많느니라 이런 말씀을 공자님이 하셨습니다.

재주가 있어 가지고, 말 잘하고 똑똑하고, 영리하고 수단 좋고, 이러한 사람이 소인놈 가운데에소인(小人)은 유교에서는 군자(君子)의 상대말로 사용합니다. ‘군자가 아닌 소인 속에 재주있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공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불가(佛家)에도 세지총명(世智聰明),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가 있고, 총명한 사람은  도에 들어오기가 어렵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바른 선지식을 만나냐, 못 만나느냐, 만나 가지고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 내가 나를 깨달라서 생사해탈하는 바른 길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판가름이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나기 어려운 사람의 몸을 받어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불법을 만나 가지고, 만나기 어려운 선지식을 만나 가지고도 바로 믿지 못하고 갈팡질팡, 그렁저렁 하다가 아까운 세월  보내고, 마지막 죽어 갈 때에 천만 번 가슴을 쥐어뜯고, 눈물을 흘리면서 후회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155~2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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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 ; ①선() 수행을 하는 . ②내가 나를 깨달아서, 자신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성품을 꿰뚫어봐  생사 속에서 영원한 진리와 하나가 되어서 생사에 자유자재한 그러헌 경지에 들어가는 수행. 자신의 본성을 간파하기 위해 하는 수행.

*실참실오(實參實悟) ; 실답게 참구(參究)하고 실답게 깨달음. () 참선(參禪) 또는 참구(參究). 실참(實參) 공안(화두) 이론으로 분석하고 따지는 것이 아닌 선지식의 지도 아래 다못   없는 의심(疑心)으로 본참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

다만   맥힌 의심으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고, 의단이 더이상 간절(懇切) 수가 없고, 더이상 커질 수가 없고, 더이상 순일무잡(純一無雜) 수가 없어 가지고 타성일편(打成一片) 되어 그놈을 타파(打破) 때에 확철대오(廓徹大悟) 하는 것이다.

 

[참고] 『조계진각국사어록(曹溪眞覺國師語錄) 「서답(書答) 답노상서(答盧尙書 노상서에게 답함)’에서.

所以古德云 路途之樂 終未到家 見解入微 不名見道 參須實參 悟須實悟 閰羅大王 怕多語 若要實參實悟 須是從前坐禪處得底 經敎上得底 古人語錄上得底 宗師口頭下得底 有滋味寶悟處 一時掃向他方世界 好字細看

 

그러므로  스님은 길의 즐거움은 종내 집에 이르지 못하게 하며, 보고 알아 미세한  들어가는 것은 도를 보았다   없습니다. 참구는 진실한 참구이어야 하고 깨달음도 진실한 깨달음이어야 합니다. 염라대왕은 많은 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알차게 참구하여 진실로 깨달고자 하면, 종전에 좌선(坐禪)해서 얻은 것과 경전에서 얻은 것과 고인의 어록에서 얻은 것과 종사의 입을 통해 얻은  등에서 자미(滋味)있고 소중히 여긴 깨달았던 경계를, 한꺼번에 다른 세계에 쓸어 버리고 자세하게 살펴야 좋을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참고]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상권 흥성사입원소설(興聖寺入院小說)’에서.

若也眞實參學者 參須實參 悟須實悟 始得 且作麽生是實參實悟耶 於二六時中 四威儀內 以生死大事爲念 離心意識 參出凡聖路 學以無心無爲 綿密養之 常常無念 常常不昧 了無依倚 到冥然地 自然合道 不見古人云 無心方見本來人

 

만약 진실한 참학자(參學者)라면 참구는 반드시 진실한 참구이어야 하고 깨달음도 진실한 깨달음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실한 참구이며 진실한 깨달음인가?

하루 열두 시간과 사위의(四威儀) 가운데서 생사의  일을 생각하되, 심의식(心意識) 떠나 참구하여 범성(凡聖) 길을 벗어나고 무심(無心) 무위(無爲) 배우고 그것을 면밀히 길러 언제나 무념(無念)하고 항상 어둡지 않아, 마침내 기댈 곳이  사라지고 명연(冥然) 자리에 이르면 자연히 도에 합할 것이다. 고인이 무심(無心)이어야 비로소 본래인(本來人) 본다라는 말을 모르는가?

*선지식(善知識) ; ①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덕이 높은 스승. 수행에 도움이 되는 좋은 지도자. 훌륭한 지도자. 바르게 이끄는 사람. ②좋은 . 마음의 . 선우(善友).

*전강선사(田岡禪師) ; (1898-1974) 법명은 영신(永信), 호는 전강(田岡). 선사는 1898(戊戌) 11 16 전남 곡성군 입면 대장리에서 정해용(鄭海龍) 아버지로, 황계수(黃桂秀) 어머니로 태어나셨다.

16세에 인공(印空) 화상을 득도사로, 제산(霽山) 화상을 은사로, 응해(應海) 화상을 계사로,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경을 보다가 도반의 죽음으로 무상함을 느끼고 선방으로 나가 용맹정진하여 23세에 견성하시고 다음의 오도송을 지으셨다

 

昨夜月滿樓 (작야월만루)  窓外蘆花秋 (창외노화추)  佛祖喪身命 (불조상신명)  流水過橋來 (유수과교래)

어젯밤 달빛은 () 가득하더니  창밖은 갈대꽃 가을이로다. 부처와 조사도 신명(身命) 잃었는데  흐르는 물은 다리를 지나오는구나.

 

당시 유명한 육대 선지식 혜월혜봉한암용성보월만공 선사와 법거량을 하여 모두 인가를 받으시고 25세에 만공선사로부터 아래의 전법게를 받으시니 경허-만공으로 이어지는 불조정전(佛祖正傳) 77대의 법맥을 이으셨다.

 

佛祖未曾傳 (불조미증전)  我亦無所得 (아역무소득)  此日秋色暮 (차일추색모)  猿嘯在後峰 (원소재후봉)

불조가 일찍이 전하지 못했는데  나도 또한 얻은  없네.  이날에 가을빛이 저물었는데  원숭이 휘파람은 후봉에 있구나.

 

33세의 젊은 나이로 불찰대본산 통도사 보광선원 조실로 추대된 이래 법주사 복천선원경북 수도선원도봉산 망월사부산 범어사대구 동화사  여러 선원의 조실을 두루 역임하시었다.

 

제자 송담선사를 만나 10 묵언수행을 지도하시자 송담선사는 

 

黃梅山庭春雪下 (황매산정춘설하)  寒雁唳天向北飛 (한안여천향북비 何事十年枉費力 (하사십년왕비력)  月下蟾津大江流 (월하섬진대강류)

황매산 뜰에는 봄눈이 내렸는데, 차운 기러기는  장천에 울며 북을 향해서 날아가는구나.  무슨 일로 십년 동안을 헛되이 힘을 허비 했던고  아래 섬진대강이 흐르는구나.

 

이와 같이 오도송을 짓고 선사와 탁마하시니 선사께서는 흔연히 인가하시고 다음의 전법게와 함께 법을 전하시어 송담선사로 하여금 불조 78 법맥을 잇게 하셨다.

 

非法非非法 (비법비비법) 無法亦無心 (무법역무심)  洛陽秋色多 (낙양추색다)  江松白雲飛 (강송백운비)

법도 아니요 비법(非法) 아니니라.  () 없지마는 마음도 없느니라.  낙양에는 추색(秋色) 많고  강송(江松) 백운(白雲) 날으니라.

 

말년에는 천축사 무문관인천 용화사 법보선원용주사 중앙선원의 조실로 계시다가 1974(甲寅) 음력 12 2, 인천 용화선원에서 

여하시생사대사(如何是生死大事)인고?  ! 九九는 번성(翻成) 八十一이니라.”라는 임종게를 남기시고, 평소 정진하시던 의자에 앉으시어 열반에 드시니 세수 77, 법랍 61세이셨다. 선사께서는 후학을 위한 칠백여 시간 분량의 육성 녹음법문을 남기셨다.

*선지피 ; ①선지. 짐승을 잡아 죽여서 받은 . 식어서 굳어 덩어리진 피를 말한다. ②다쳐서 선지처럼 쏟아져 나오는 .

*확철대오(廓徹大悟) ; 내가 나를 깨달음. 내가 나의 면목(面目, 부처의 성품) 깨달음.

*육대 선지식(六大善知識) ; 전강 조실 스님이 수행하시던 1920년대 당시 유명한 혜월 · 혜봉 · 한암 · 용성 · 보월 · 만공 선사를 말씀하신다.

*법문답(法問答) ; 법거량(法擧揚). ①스승이 제자의 수행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주고받는 문답. ②선객(禪客) 사이에 주고받는 () 대한 문답.

*만공월면(滿空月面) ; (1871~1946) 법명은 월면(月面), 호는 만공(滿空), 속명은 송도암(宋道岩). 전라북도 태인(泰仁)에서 1871(신미년) 3 7 출생하였다. 1884(갑신년) 14세에 태허 스님을 은사(恩師), 경허 스님을 계사(戒師) 충남 서산 천장암(天藏庵)에서 출가하였다.

  계속 천장암에서 지내다, 어른 시봉(侍奉) 하면서 공부하기란  힘드는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온양 봉곡사(鳳谷寺) 가서 노전(爐殿) 보며 공부를 계속하다가, 1895(을미년) 7 25일에 동쪽 벽에 의지하여 서쪽 벽을 바라보던  홀연히 벽이 ()하고 일원상(一圓相) 나타났다.

하룻밤을 지나 새벽 종송(鐘頌) 할때,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외우다가 깨닫고 오도송(悟道頌) 읊었다.

 

공산이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이라

공산의 이기(理氣) 고금 밖이요  백운과 청풍은 스스로 가고 오는구나.  달마는 무슨 일로 서천을 건넜는고  축시에 닭이 울고 인시에 해가 뜨느니라.

 

  마곡사 근처 토굴에서 공부하다가, 스님 나이 26 , 1896(병신년) 7 보름날 경허 선사가 오시니, 선사께 지금까지 공부해  것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경허 선사가 스님에게 묻기를 () 토시 하나와 미선(美扇) 하나가 있는데, 토시를 부채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부채를 토시라고 하는 것이 옳으냐?’ 스님의 대답이 토시를 부채라고 하여도 옳고 부채를 토시라고 하여도 옳습니다

 

경허 선사가 네가 일찌기 다비문(茶毘文)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경허 선사가 다시 묻기를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 하니  참뜻이 무엇인고?’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이르되, ‘유안석인제하루(有眼石人齊下淚) 모르고 어찌 토시를 부채라 하고 부채를 토시라 하는 도리를 알겠느냐?’

선사가 다시 이르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화두는  진보가 없으니 조주 스님의 무자화두(無字話頭) 드는 것이 옳다하고, ‘원돈문(圓頓門) 짓지 말고 경절문(徑截門) 다시 지으라하고 떠났다.

 

  정진하던  경허 선사를 경모(敬慕)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1898 7월에 선사가 계신 서산(瑞山) 부석사(浮石寺) 가서 지내다가, 경남 범어사 계명암 선원으로부터 경허 선사께 청첩장이 와서 선사를 모시고 계명선원에 가서 하안거를 마치고, 선사와 배별(拜別)  통도사 백운암으로 갔다.

 

마침 장마 때라 보름 동안을 갇혀 있던  새벽 종소리를 듣고 재차 깨달으니 요사장부(了事丈夫) 되었다.

31 (1901) 천장암에 돌아와 머무르며 지내다가, 34 (1904 7 15) 함경도 갑산(甲山)으로 가는 길에 천장암에 들른 경허 선사를 뵙고, 그동안 공부를 지은 것을 아뢰니, 선사가 전법게(傳法偈) 내렸다.

 

운월계산처처동(雲月溪山處處同)  수산선자대가풍(叟山禪子大家風)  은근분부무문인(慇懃分付無文印)  일단기권활안중(一段機權活眼中)

구름달 시냇물  곳곳마다 같은데  수산선자(叟山禪子) 대가풍(大家風)이여!  은근히 무문인(無文印) 분부하노니,  한조각 권세 기틀 안중(眼中) 살았구나.

 

1905 덕숭산에 금선대(金仙臺) 이름한 초암을 짓고 지내고,   수덕사(修德寺정혜사(定慧寺견성암(見性庵) 중창하고 선풍(禪風) 떨치다가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마하연(摩訶衍) 가서 3년을 지내고, 다시 덕숭산으로 돌아와 서산 간월도에 간월암(看月庵) 중창하였다.

 

말년에 덕숭산 동편 산정에 전월사(轉月舍) 이름한 한칸 띳집을 짓고 지내다, 1946(병술년) 10 20일에 목욕 단좌(端坐)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되었네 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였다. 나이 76, 법랍(法臘) 62. 제자들이 스님의 법어를 모은 「만공법어(滿空法語)」가 있다.

[참고] 『만공법어(滿空法語) (만공문도회 | 수덕사 능인선원

*꼬타리 ; ‘꼬투리(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실마리)’ 사투리.

*범연(泛然) ; ①두드러진 데가 없이 평범하게. ②특별한 관심이 없어 데면데면하게.

*학인(學人) ;  아직 번뇌가 남아 있어, 아라한(阿羅漢)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수행해야 하는 견도(見道 수도(修道) 성자.  수행승. () 닦는 수행승.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 있는 스님.

*철봉대(鐵棒臺) ; 체육 도구의 하나. 두 기둥 사이에 일정한 높이로 쇠막대를 평행하게 걸쳐 놓은 기구.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 했을까?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날새기 ; 저녁, 밤을 지나 날이 밝아  때까지 자지 않는 .

*발심(發心) ; ①불도(佛道=菩提=眞理)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②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을 . 깨달음의 지혜를 갖추려는 마음을 . (원어) 發起菩提心 발기보리심, 發菩提心 발보리심.

*분(憤/忿) ; 억울하고 원통하여 분한 마음.

*공안(公案) : 화두(話頭)。①정부 관청에서 확정한 법률안으로 백성이 준수해야  것。②선종에서 참선 수행자에게 참구하는 과제로 주어지는 지극한 이치를 표시하는 조사의 언구(言句) 문답이나 동작.

이것을 화두라고도 하는데 문헌에 오른 것만도 칠백이나 되며 황화취죽 앵음연어(黃花翠竹鶯吟燕語) — 누른 , 푸른 , 꾀꼬리 노래와 제비의 소리   자연현상도 낱낱이 공안 아님이 없다.

화두에 참구(叅句) 참의(叅意) 있다。이론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것이 참의요 사구(死句) 참선이며, 말길 뜻길이 끊어져서 다만  언구만을 의심하는 것이 참구요 활구(活句) 참선이다.

*마조원상(馬祖圓相) 공안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 지음) 5 165 원상(圓相)’ 공안.

馬祖因見僧參  畫一圓相云  入也打不入也打  僧便入  師便打  僧云和尙打某甲不得  靠却拄杖  休去.

마조 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와서 뵙자,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동그라미를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하고 물으시니,  스님이 원상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스님을   후려치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 했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가버리셨습니다.

 

[참고] 송담스님(No.282)-86 1 첫째일요법회(86.01.05)에서. (2분 19초)

마조 스님이 원상(圓相) 그려 놓고 입야타(入也打) 불입야타(不入也打)  원상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공안을 물은데 어떤 스님이  안에 들어갔어.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들어간  스님을 한대 후려쳤습니다. 치니까  스님이 말하기를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이랬습니다.

그러니까 마조 스님이 휴거(休去) 했습니다. 아무  없이 그냥 방장(方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원상 안에 들어가도 치고 들어가지 아니해도 친다  공안에  스님이  뛰어 들어가는 도리는 무슨 도리며,

들어가니까 마조 스님이 주장자로  방을 후려치니까  스님이  () 맞고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는 저를 치지 못했습니다.   스님이 그렇게 말한 데에 마조 스님이 아무 말없이 저리 가버렸으니...

이러한 공안에 확연(確然) 의심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이러한 공안이 문헌상에 오른 것만 해도 천칠백 공안이라 하는데, 이것이  부처님과 조사가 씹다가 버린, 먹다가 버린 찌꺼기에 지나지 못한 것이기는 하나, 이러한 공안이 바로 학자(學者) 소견(所見) 가려보는 데에는 좋은 시금석(試金石) 되는 것입니다.

*간파하다(看破--) ; 속내(드러나지 않은 일이나 숨겨진 마음) 꿰뚫어 알아차리다.

*보월 선사(寶月禪師) ; 보월성인(寶月性印 1884-1924). 만공 선사의 수법제자(受法弟子)이다. *수법제자(受法弟子)—스승으로부터 () 인가(印可) 받은 제자.

*용담(龍潭) 스님 ; 생몰년 미상. 성은 (), 법명은 초안(初眼)이며, 용담은 법호이다.

한용운(韓龍雲) 스님의 수제자로, 덕숭산 만공(滿空) 선사의 회상에서 지도를 받아 득의처(得意處) 인증(認證)받았다.   《선가구감》 연구에 골몰하여 완벽한 번역과 풀이를 위해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여러 고승들과 함께 「불교혁신총동맹」을 결성하여 불교혁신운동을 전개하였고, 「선학원」 부이사장, 「해동역경원」 부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8 419, 신의주에서 병원을 하고 있던 동생을 만나겠다며 김구 선생과 함께 「정당사회단체 대표자연석회의」에 참석하러 월북하였으나,   소식이 단절되었다.—[선가구감] (용담 스님 역주 | 효림) 편역자 소개에서.

*선가귀감(禪家龜鑑) ; 조선 서산대사(휴정, 1520-1604) 경전과 어록 중에서 수행의 지침이 선종(禪宗) 중심으로가장 요긴하고도 절실한 부분을 가려 뽑은 불교 개론서. 용화선원에서 번역 간행한 선가귀감 있다.

*설파(說破) ; 어떤 내용을 분명하게 드러내어 말함.

[참고 ①] 『선가귀감(禪家龜鑑)』 (용화선원刊) p171. (가로판 p179)
本分宗師의  全提此句는  如木人唱拍하며  紅爐點雪이요  亦如石火電光이니 學者實不可擬議也니라  故로  古人이  知師恩曰,  不重先師道德이요 只重先師不爲我說破라 하시니라

본분 종사가 이 구를 온전히 들어 보이심이 마치 장승이 노래하고 불 붙는 화로에 눈 떨어지듯 하며, 또한 번갯불이 번쩍이듯 하니 배우는 자가 참으로 어떻다고 헤아리거나 더듬을 수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 어른이 그 스승의 은혜를 알고 말씀하기를 「스님의 도덕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하여 주지 않은 것을 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시니라.

[참고 ②]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白雲景閑和尙 抄錄 | 원조각성 번역 · 주해 | 현음사) p533~534.
洞山良价禪師가 問雲嵓和尙호대 百年後에 忽有人이 問호대 還邈得師眞不아 하면 如何祗對닛고 嵓이 良久云只這是니라 師가 佇思어늘 嵓이 云承當者个事인댄 大須審細니라

동산 양개 선사가 운암 화상에게 묻기를 “백년 후에 문득 어떤 사람이 묻기를 ‘운암 스님의 모습을 그려서 얻을 수 있느냐?’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됩니까?”
운암 화상이 양구하고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이것이니라” 양개 화상이 머뭇거려서 생각하거늘 운암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일을 알아차릴진댄 크게 모름지기 자세하게 알아야 될 것이니라”

師가 猶涉疑러니 後에 因過水覩影하고 大悟前旨하야 乃有偈曰 切忌從他覓이니 迢迢與我踈라 我今獨自往에 處處得逢渠라 渠今正是我요 我今不是渠라 應須恁麽會하야사 方得契如如니라

양개 화상이 오히려 의심이 있었더니 그 후에 물을 건너다가 그림자를 보고 앞에서 운암 스님이 말씀하신 그 뜻을 크게 깨달아서 이에 게송을 하셨다.
간절히 딴데서 찾지 말 것이니 그러면 멀고 멀어서 나와 소원하네. 내가 지금 혼자 스스로 감에 곳곳마다 저를 만나게 된다.
저것이 지금 바로 나이고 나는 지금 바로 저것 아니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비로소 여여한 도리에 계합하리라.

[참고 ③] 『선문염송 · 염송설화(禪門拈頌 · 拈頌說話)』 제17권 (혜심 · 각운 지음 |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제682칙. ‘지시(指示)‘ p222~223.
洞山이 爲雲嵓諱旦하야 設齋陞座어늘 時有僧이 問하되 和尙이 在雲嵓處하야 得何指示닛고한대 師云하되 雖在彼中이나 不蒙指示로다하니 進云하되 旣不蒙指示인댄 何故爲佗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爭敢違背佗리요하다 進云하되 和尙이 旣發足南泉이어늘 何故로 爲雲嵓設齋닛고한대 師云하되 我不重先師道德이며 亦不爲佛法이요 只重佗當時에 不爲我說破로다

동산이 운암의 기일(忌日)에 공양을 마련하고 법상(法床)에 올랐는데 어떤 스님이 나와서 말하였다.
“화상께서 운암의 처소에 계실 때 어떤 지시를 받았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비록 거기에 있기는 했었지만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노라”

스님이 다시 말하였다.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다면 어째서 그를 위해 재를 마련하셨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를 배반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시 물었다. “ 화상은 이미 남전(南泉)에게서 발심했는데 어째서 운암의 재를 차렸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나는 선사(先師)의 도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며,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때 나에게 설파(說破)해 주지 않은 것을 소중히 여길 뿐이니라”

[참고 ④] 『서장(書狀)』 ‘답고산체장로(答鼓山逮長老 : 고산체 장로에게 보낸 답장)‘에서.
若使老漢 初爲渠 拖泥帶水 說老婆禪 眼開後 定罵我無疑 所以 古人云 我不重先師道德 只重先師不爲我說破 若爲我說破 豈有今日 便是遮箇道理也

만약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그를 위해 나 자신을 더럽혀가며(흙탕물을 뒤집어 쓰며) 노파선을 설하였다면 그가 안목이 열린 후에는 틀림없이 나를 비난했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고인(洞山良价)이 ‘나는 선사(先師 : 雲嵓)의 도덕을 중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선사가 나에게 설파하지 않았던 것을 중히 여긴다’라 하였고, 또한 (香嚴이 潙山의 은덕을 기리며) ‘만약 나에게 설파해 주었다면 어찌 오늘이 있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곧 이것이 이러한 도리(道理)입니다.

趙州云 若敎老僧 隨伊根機接人 自有三乘十二分敎 接他了也 老僧這裏 只以本分事接人 若接不得 自是學者根性遲鈍 不干老僧事 思之思之

조주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내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사람들을 접화(接化)한다면, 응당 삼승십이분교를 가지고 사람들을 접화할 것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써 사람들을 접화할 뿐이다. 접화되지 않는다면 원래 학자의 근성이 굼뜨고 둔한 것이어서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생각하고 또 생각하셔야 합니다.

[참고 ⑤] 『전등록(傳燈錄)』 제11권. (김월운 옮김 ㅣ 동국역경원) p718~720.
鄧州香嚴智閑禪師靑州人也 厭俗辭親觀方慕道 依潙山禪會 祐和尙知其法器 欲激發智光 一日謂之曰 吾不問汝平生學解及經卷冊子上記得者 汝未出胞胎未辨東西時 本分事試道一句來 吾要記汝

등주 향엄지한 선사는 청주(靑州) 사람이다. 속세를 싫어하여 부모를 하직하고 사방으로 다니면서 도를 흠모하다가 위산(潙山)의 선회(禪會)에 의지했다. 영우(靈祐) 화상은 그가 법을 이을 만한 그릇임을 알고 지혜의 광명을 일깨워 주기 위하여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대의 평생 배운 견해와 경전이나 책에서 기억해 가진 것을 묻지 않겠다. 그대가 아직 태(胎)에서 아직 나오지 않아서 동쪽과 서쪽을 분간하지 못할 때의 본분사(本分事)에 대해서 시험 삼아 한마디[一句] 말해 보라. 내가 그대에게 수기하겠다”

師懵然無對 沈吟久之 進數語陳其所解 祐皆不許 師曰 却請和尙爲說 祐曰 吾說得是吾之見解 於汝眼目何有益乎 師遂歸堂 遍檢所集諸方語句無一言可將酬對 乃自歡曰 畵餠不可充飢 於是盡焚之曰 此生不學佛法也 且作箇長行粥飯僧兔役心神

대사가 어리둥절하면서 대답을 못하다가 오래 침음(沈吟)한 끝에 몇 마디의 견해를 말했으나, 영우가 모두 허락하지 않으니 대사가 말했다. “화상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영우가 말했다. “내가 말하면 나의 견해일 뿐이니, 그대의 안목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대사가 결국 방으로 돌아가서 수집해 놓은 제방(諸方)의 어구(語句)들을 뒤져 보았으나, 한마디도 대꾸할 만한 것이 없었다. 이에 대사는 스스로 탄식하였다. “그림의 떡으로는 굶주림을 채울 수 없구나”

그리고는 모두 태워 버리면서 말했다. “금생에 불법을 배우지 못할 바에는 먼 길을 떠나 죽이나 밥을 먹어치우는 중이 되어서 심신(心神)의 괴로움이나 면하리라”

遂泣辭潙山而去 抵南陽覩忠國師遺迹遂憩止焉 一日因山中芟除草木 以瓦礫擊竹作聲 俄失笑間廓然惺悟 遽歸沐浴焚香遙禮潙山 賛云 和尙大悲恩逾父母 當時若爲我說却 何有今日事也 仍述一偈云
一擊忘所知 更不假修治 動容揚古路 不墮悄然機
處處無踪迹 聲色外威儀 諸方達道者 咸言上上機

그리고는 울면서 위산을 하직하고 남양(南陽)에 이르러 혜충국사(慧忠國師)의 옛터를 구경하다가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잡초를 베다가 기와를 던진 것이 대나무에 부딪쳐 소리가 나는 찰나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면서 확연히 깨달았다. 급히 돌아와서 목욕하고 향을 피우면서 멀리 위산을 향해 절을 하며 찬탄했다. “화상의 대비하신 은혜는 부모의 은혜보다 높습니다. 그 당시에 만일 저에게 설명하셨다면, 어찌 오늘의 일이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게송 하나를 지었다.

한 번 치는 소리에 아는 바를 잊으니 다시는 닦고 다스리지 않게 되었네.
덩실덩실 옛길을 넘나드니 초조해 하는 근기에 떨어지지 않네.
곳곳마다 자취를 남기지 않고 빛과 소리 밖의 위의(威儀)로다
제방(諸方)의 도를 통달한 자들이 모두 상상기(上上機)라 말하네.

[참고 ⑥] 『몽산법어』 (용화선원刊) '박산무이선사선경어(博山無異禪師禪警語)' (p180-181) (가로판 p171~172)
做工夫호대  不得求人說破이니  若說破라도  終是別人底요,  與自己로  沒相干이니라.  如人이  問路到長安에  但可要其指路언정  不可更問長安事니  彼一一說明長安事라도  終是彼見底요,  非問路者의  親見也이니라.  若不力行하고  便求人說破도  亦復如是하니라

공부를 짓되 다른 사람이 설파(說破)하여 주기를 구하지 말지니, 만약 설파(說破)하여 주더라도 마침내 그것은 남의 것이요, 자기와는 상관이 없나니라.
마치 사람이 장안으로 가는 길을 물으매 다만 그 길만 가리켜 주기를 요구할지언정 다시 장안의 일은 묻지 말지니, 저 사람이 낱낱이 장안 일을 설명할지라도 종시(終是) 그가 본 것이요, 길 묻는 사람이 친히 본 것은 아니니라. 만약 힘써 수행하지 않고 남이 설파하여 주기를 구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참고 ⑦] 송담스님(No.122)—80년 5월 첫째일요법회 (80.05.04)에서.
학자(學者)에게, 참선(參禪)을 하려는 사람에게 이 공안을 설파해 주면 이 세상에 제일 큰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공안(公案)은 자기 힘으로 자기의 힘으로 타파(打破)를 해야지, 이론을 통하지 아니하고 자기가 스스로 타파를 해서 확철대오(廓徹大悟)를 해야지, 이 공안을 갖다가 요리조리 힌트를 줘가지고 알것께 맨든 것은 이것이 바로 사구선(死句禪)이 되아서 그것은 그럴싸하니 답을 알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깨달을 분(分)을 없게 맨들아 주는 것이 되는 것이여.

참선하는 것은 무량겁(無量劫)을 중생(衆生)이라고 하는 병을 앓고 신음을 하던 사람이 겨우 인자 그 병을, 병근(病根)을 끊고 일어서려고 하는 그러한 상태에 우리가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 공안을 갖다가 설파를 해주면 겨우 일어설라고 몸부림친 놈을 여지없이 몽둥이로 쳐서 꺼구러뜨려 버린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힘이 없어가지고 일어설라 말라 하는데 몽둥이로 쳐서 꺼꾸러뜨려 버리니 인자는 그 사람은 일어나기가 틀린 것입니다. 공안을 설파해 준 것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57분59초~59분25초)

*탁마(琢磨  / ) ; ①학문이나 덕행 따위를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②옥이나  따위를 쪼고 . ③옥을 갈고 돌을 닦듯이 한결같이 정성껏 애써 노력하는 . ④선지식에게 자기의 공부하다가 깨달은 바를 점검 받는 .

*천칠백 공안(千七百 公案) ;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천칠백일 명의 인물들이 보여준 기연어구(機緣語句, 깨달음을 이루는 기연에 주고받은 말과 경전·어록의 ) 수록하고 있는 것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오후보림(悟後保任) ; 깨달은 뒤에 선지식을 찾아 인가를 받고, 다시 숲속이나 토굴에 들어가 다생(多生) 습기(習氣) 제하고 () 역량을 키우는 보임(保任)공부. 장양성태(長養聖胎).

 

[참고] 보조국사 지눌(1158~1210) <수심결修心訣>에서.

頓悟者  凡夫迷時  四大爲身  妄想爲心  不知自性是眞法身  不知自己靈知是眞佛也  心外覓佛  波波浪走  忽被善知識  指示入路  一念廻光  見自本性  而此性地  原無煩惱  無漏智性  本自具足  卽與諸佛  分毫不殊  故云頓悟也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 범부(凡夫) 미혹했을  사대(四大) 몸이라 하고 망상(妄想) 마음이라 하여, 자기의 성품(自性)  법신(法身)  모르고 자기의 신령스런 [靈知] []부처인  알지 못하여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아 물결따라 여기저기 헤매다가,

홀연히 선지식(善知識) 지시로 바른 길에 들어가  생각 돌이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면,  성품(性品)자리에는 원래 번뇌(煩惱) 없고, 무루(無漏) 지혜 성품이 본래(本來) 스스로 구족(具足)하여 모든 부처님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으니 그러므로 돈오(頓悟, 단박 깨달음)라고 한다.

 

漸修者  雖悟本性 與佛無殊  無始習氣  卒難頓除故  依悟而修  漸熏功成  長養聖胎  久久成聖   云漸修也 比如孩子初生之日  諸根具足  與他無異    其力未充  頗經歲月  方始成人

 

점수(漸修, 차츰 닦음), 비록 본래 성품[本性]이 부처와 다름이 없음을 깨달았으나 오랫동안 익혀온 습기(習氣) 갑자기 모두 없애기는 어려우므로, 깨달음에 의지하여 닦아 점차로 익혀 () 이루어 성인(聖人) () 길러 양성하면, 오랜 동안을 지나 성인(聖人) 이루게 되므로, 점수(漸修, 점차로 닦음)라고 한다.

비유하면, 마치 어린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모든 기관[諸根] 갖추어 있음은 남과 다르지 않지만,  힘이 아직 충실하지 못하므로 제법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成人] 되는 것과 같다.

*열반(涅槃) ; ①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 ‘니르바나(nirvāna)’ 음역어로, 불가(佛家)에서 흔히 수행에 의해 진리를 체득하여 미혹(迷惑) 집착(執着) 끊고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解脫) 최고의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②스님의 죽음을 수행을 통해 해탈(解脫) 이르게 됨에 비유하여 이르는 .

*근기(根機 뿌리 /베틀 ) ;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있는 중생의 소질이나 근성. 보통 근기의 차등을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로 구분한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