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因果) : ①원인과 결과. 현상을 생성시키는 것과 생성된 현상. ②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고, 결과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다는 이치. ③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는 도리.

무엇이나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콩 심은 데 콩이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서, 이 세상의 온갖 일과 모든 물건이 반드시 인과의 법칙대로 되어 가는 것이다。사람의 일도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고, 악한 짓을 하면 재앙을 받아서 길(吉) • 흉(凶) • 화(禍) • 복(福)이 하나도 우연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보응(報應)의 나타남이 원인을 짓는 그 즉시로 곧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사람의 환경이 복잡하고, 마음 쓰는 것이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에 무거운 쪽부터 먼저 실현되어, 짓는 그 당장에 받게 되는 순현보(順現報)와, 짓는 그 즉시에 받지 않고 그 다음 시기에 받는 순생보(順生報)와, 받기는 반드시 받되 언제 받게 될지 일정하지 않은 순후보(順後報)가 있다.

이 세 가지 과보(果報)는 금생(今生) 안에 실현되기도 하고, 여러 생(多生)을 통하여 되기도 한다。그러므로 착한 사람이 빈천하거나, 악한 사람이 잘되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일 따름이다.

 

(1) (20분 43초).

(2) (2분 31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18)—무오년 하안거 결제 법어(78.04.17)(세등18)

 

 

(1)-------------------

 

옛날에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에 보조국사(普照國師)라고 허는 큰 도인(道人)이 계셨습니다.

여러분도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이기 때문에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마는.

 

저 깊은 산중에서 어떤 스님이 그 고개를 넘어가다가 날이 저물어서 이리저리 방황을 하고 있다가, 연기가 폴폴 나서 그 연기를 찾어서 들어갔습니다.

들어가니 허연 영감님이 숯을, 그 옆에다가 숯불을 해놓고 숯을 굽는 할아버지가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가니까 쬐끄만 오두막을 하나 해놓고 거기서 자면서 좁쌀밥을 해먹으면서 숯을 굽고 있는데, “오늘 저녁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갑시다”

“그렇게 허시라”고. “이 산중에 여기 아니고 어디를 가시겠느냐”고.

 

그래 좁쌀을 벅벅 씻어가지고 좁쌀밥을 죽도 아니고 밥도 아니게 한 그릇을 삶아가지고 드렸는데 어떻게 배가 고픈지 그것을 맛있게 잡숫고, 그날 저녁에 거기서 자는데 방바닥이 울퉁불퉁해 가지고는 하룻밤을 그저 등어리가 아픈지 마는지 하두 대간하니까 하룻밤을 자고서 그 이튿날 떠났는데.

한 2~3일을 지나니까 등어리가 근질근질 아프고 이상해서 다른 사람보고 등어리가 무슨 까시가 백혔나 어떻나 좀 보라니까, 갈자리 까시가 백혀 가지고는 등어리가 곪아서 그래서 그 까시를 빼고 며칠 동안을 치료를 해서 낫기는 나았으나 좀 고생을 했습니다. 했는데, 그 스님이 누구냐 하면은 과거에 보조국사여.

 

보조국사는 큰 도인으로 고려 말기에 보조국사하면 참 대도사인데, 그 도인은 너무나도 도(道)가 훌륭허시기 때문에 그 나한전(羅漢殿)에 나한(羅漢)님허고 가끔 이야기도 하고 그런데, 그 나한님이 가끔 보조국사를 골리기도 허고 놀리기도 허고 그러는데, 하루는 나한이 나와 가지고는,

“큰스님, 그 떡을 좋아허시는데 제가 오늘은 떡을 잡숫게 해 드릴까요?”

“그래, 어디 떡을 좀 가져오라”고.

“가져올 게 아니라 제 등에 업히십시오. 떡 있는 데로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나한의 등에 떠억 업혔는데, “눈을 감으십시오” 떠억 업혀 가지고 눈을 감으니까, 휙 휙 휙 휙 휭 날아 가지고는 한참 날아가서 텅! 내려 놓는데, 눈을 딱 떠보니까 거기가 어디 절인지도 알 수가 없고,

그 나한전의 탁자 위에다 내려 놨는데—지금 한창 “제대성중(諸大聖衆)! 제대성중!”허면서 목탁을 치면서 기도를 허고 있는데, 그 탁자 위에다 떠억 내려놨는데 탁자에는 김이 물씬물씬 나는 떡이 한 시루가 있다 그말이여.

 

그래서 떡을 먹을라고 그러니까 나한이 손을 딱 잡으면서 “이것은 안됩니다. 이 떡은 나 먹으라고 지금 채려 놨으니까 내가 먼저 먹어야지, 아무리 큰스님이라도 큰스님이 먼저 잡수면 안됩니다”

“에이, 뭐라고 허냐 이놈. 큰스님 먼저 먹어야지 니가 먼저 먹어서 되냐”

먹을라고 탁 집어서 입에다 넣으니까, “스님이 내 말을 안 듣는다면 나는 가버립니다. 스님이 내 말을 안 듣기나, 내가 스님 말 안 듣기나 마찬가지. 나는 갑니다. 스님 떡 많이 잡수시오” 나한이 휙 날아가 버렸는데.

 

나한이 그 옆에 있을 때에는 그 탁자 위에 떠억 앉았는데도 그 기도하는 스님네도 보지를 못하고, 또 기도하러 그 궁녀(宮女)들이 와가지고, 그 울긋불긋한 원삼 족두리를 쓴 궁녀들이 여러 명이 와가지고 기도를 같이 하는데, 궁녀들도 보지도 못하고 그러더니,

아! 나한이 골을 내가지고 뚝 떠나 버리자마자, 보조국사가 탁자 위에 앉아 가지고 떡을 울근불근 먹고 있는 것이 떠억 보이는데, 그 부전(副殿) 스님이랑 궁녀들이 깜짝 놀랬다 그말이여.

온데간데없는데 어떤 스님이 떠억 탁자 위에 앉아 가지고 떡을 먹고 있으니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그날이 다른 날이 아니고 중국에 황후(皇后)가 등창이 나가지고 온 나라의 명의(名醫)는 명의는 다 불러대다가 침을 놓고, 쑥을 뜨고, 우황 사향으로 맨드는 종기약을 넣고 해도 백약(百藥)이 무효해서 헐 수 없이 등창이 점점 커져가지고 고름이 막 나와가지고 날이면 날마다 잠 한숨을 못 자고 허는데, 영 그 등창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절 나한전이 하도 ‘나한님이 영특하다’는 말을 듣고 거기에서 백일기도를 올리게 되었는데, 그날이 백일기도 회향날이다 그말이여.

 

그래서 하여간 스님을 갖다가 밖으로 내쫓을 수도 없고, 기도 회향(回向) 중에 큰소리 소란을 필 수도 없고, 그런대로 놓고는 기도 회향을 마치고 축원(祝願)을 다 했는데,

그 축원허는 소리를 듣고서 보조국사는, ‘아하, 오늘이 이 황후의 그 등창 병 낫으라는 백일기도 회향날이로구나!’ 그것을 딱 알았는데, ‘이거 큰 난리났구나, 이거 떡 좀 먹다가 이거 된통 걸렸구나’

 

기도 끝나고는 부전 스님이 “대관절 스님이 어디 절에서 이리 오셨습니까?”

“나는 한국에 순천 송광사에서 온 보조(普照)입니다”

“대관절 떡을 다 잡쉈으니 이리 내려 오십시오”

 

그래 내려 모셔서 밑에 객실에다 갖다 앉혀 놓고는, 바로 사람을 보내 가지고 천자(天子)한테 그 사실을 보고를 했습니다.

“오늘 백일기도를 회향을 마쳤는데, 기도 중에 한국 순천 송광사에 있는 보조 스님이라는 스님이 온데간데없이 탁자 위에 나타나가지고 떡을 먹고 있다 들켰습니다. 그러니 이 스님을 주리를 틀까요, 그냥 내보낼까요?”

‘아! 그 무슨 말이냐. 이거 백일기도 회향에 반드시 기도성취할 그러헌 징조다. 그러니 바로 그 스님을 가마에다 모시고 궁중으로 모시고 오너라” 궁중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인자 한국에 보조 스님이 어떻게 해서 이 나한전에 오셔서 떡을 잡숫게 되었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나한님 등에 업혀서 왔단 말을 헐 수도 없고, “그럭저럭 이 중국으로 와서 행각(行脚)을 허다가 배가 고파서 그냥 가만히 들어가서 떡을 먹었습니다” 이 거짓말을 슬쩍 했습니다.

 

“그러니 한국에서 오셨으니 등창 낫는 무슨 좋은 약을 혹 모르십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기가 맥히다 그말이여. 그 등창을 꼭 낫어 줘야겠는데, “그러면 내가 목욕재계(沐浴齋戒)를 허고 잘 연구를 해야겠으니 일주일 동안 말미를 주시오”

“아, 그러시라”고.

 

일주일 동안을 목욕을 떠억 하고 향을 피고 정진을 하는데 암만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단 말이여.

등창이 쬐끄만 등창도 아니고, 아주 그냥 몇 달을 걸려 가지고 중국 천지에 명의는 명의는 다 불러 가지고도 못 낫은 등창인데, 도저히 낫을 길이 없어서 향을 피고는 ‘이런 때는 나한을 좀 불러가지고 꾀를 물어 볼 수 밖에는 없겠다’

 

향을 떠억 피고 참선을 허는데 나한이 떠억 나타나 가지고 “그 병은 약이 없습니다. 스님이 한번만 만지기만 해도 그 병은 낫습니다. 그러니 「만져 갖고 나쉈다」고 하면은 중국 천지, 한국 천지에서 등창쟁이는 다 몰려들어 가지고 스님 보고 만져 달라고 헐테니 그 헐 수가 없는 일이고,

찹쌀밥을 해가지고 입에다가 넣고 오래오래 씹어가지고 그놈으로 개떡을 맨들어 가지고 등에다 스님 손으로 붙여 주십시요. 그러면 영낙없이 고름 덩어리가 빠져 가지고는 새살이 차오를 것입니다”

 

아, 그래서 그말대로 일러주었습니다.

그래서 당장 찹쌀밥을 해가지고 씹어서 개떡을 맨들어 가지고는 그 보조국사 손으로 딱 만져 거기다가 붙여서 줬는데, 아! 시원헌 것이, 고름 덩어리가 당장 붙일 때부터서 그 욱씬욱씬허고 벌건 것이 시원해지면서,

그날 저녁부터 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하룻밤을 자고 나니까 고름 덩어리가 쑤욱 밖으로 삐죽허니 나오더니 이틀 사흘만에 주먹탱이 같은 고름 덩어리가 풍 빠지면서, 자꾸 또 개떡을 해서 붙이고 붙이고 해가지고는 며칠 안 가서 새살이 차올라서 낫었습니다.

 

보조국사는 갈라고 해도, “아, 기왕 오신 김에 여기서 좀 쉬어서 가시라”고. “우리도 좀 좋은 인연을 맺게 쉬어서 가시라”고. “낫은 것을 좀 보고 가시라”고. 이래 가지고는 며칠을 쉬었는데, 그래서 인자 영낙없이 낫게 되었는데.

 

“무엇이고 원하는 대로 좋은 것 하나를 드릴테니 말씀을 허십시오”

그거 뭐 스님이 되어 가지고 무슨 보물을 욕심을 내겠습니까? 금은보화를 욕심을 내겠습니까? 생각을 해보니, “아, 나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고.

“필요가 없어도 괜찮으니까 무엇이던지 말씀만 허시라”고.

 

그런데 천자로부터 황후로부터서 그 왕자 왕녀들이 주욱 와서 꿇어 앉어서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절을 허고 앉았는데, 아무것도 욕심나는 것은 없고 그 셋째 왕자를 보니까 잘 생겼는데, 그 셋째 왕자를 상좌(上佐)로 주면은 큰 도인(道人)이 되게 생겼다 그말이여.

 

그래서 “무엇이던지 내가 원하는 대로 주시지요?”

“아! 그 무슨 말씀 입니까? 드리고 말고요”

 

또 황후 보고도 “무엇이던지 내가 말하는 대로 듣겠습니까?”

“아! 무엇이던지 드리겠습니다. 생명에 은인인데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왕자들 보고도 다 낱낱이 물어보니까 “그러겠다”고.

 

“그러면은 저 셋째 왕자를 저를 주십시오” 아! 가슴이 덜커덕 앓은다 그말이여.

말허기 전에는 모가지라도 떼어 달라면 드릴 것 같은데, 아! 아들 하나를, 그 아들이 자기네들 생각에도 제일 잘난 아들인데 그놈을 달라 하니, 쪽제비 잡아서 꽁뎅이 빼준 것처럼 도저히 못 주겠는데, 그렇게 다 다짐을 해놨으니 안 드릴 수도 없고.

 

“못 주겠습니까?”

“아, 그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드리고 싶습니다마는 황후가 어쩔런지 모르겠습니다”

 

“황후는 어떻습니까?”

“저는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마는 본인이 어쩔란가 모르겠습니다”

 

왕자 보고 “그대는 생각이 어떻소?”

“어머님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인데 왜 제가 마다하겠습니까? 저도 출가해서 스님과 같은 도인이 될 수가 있다면 제가 출가를 허겠습니다”

아! 본인이 간다는데야 아무리 부모 속이 쓰리고 애린들, 마다할 수가 없어서 보조국사를 딸려서 한국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갈 때는 나한님 등에 업혀서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날아갔지마는 올 때는 또 나한의 신세를 질 수도 없고, 걸어서 걸어서 중국 천지를 구경허면서 요동 평야를 건너서 압록강을 넘어오는데, 배를 타고 오는데 단 둘이에다 사공(沙工)하고 이렇게,

그리고 호위병은 압록강까지만 따라 보내고는 거기서부터서는 되돌려 보내고는—강을 건너서 순천 송광사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이 호위병들 딸려 보냈는디, 보조국사가 ‘안된다. 여기서는 돌아가거라’해서 딱 보내고는 배를 타고 오는데.

 

배에다 별 짐도 싣지도 않고 그랬는데, 배가 그냥 어떻게 무거운지 넘실넘실 넘실넘실 해가지고 강물이 곧 넘어오게 되었다 그말이여.

이거 참, 왕자라고 같이 오는데 ‘물에 빠져 죽었다’하면 이러헌 큰 난리가 없게 되어서, 참 가만히 생각한 결과 ‘이거 큰일났다, 이거’

 

그래서 왕자 보고 “버선을 벗어서 머리에다 이어라” 인자 상좌인데 뭐, 왕자고 뭣이고 뭐 그까짓 거 상좌인데 말 높일거... “너 버선을 벗어서 머리에다 이어라”

“머리에다 왜 버선을 입니까?”

“그럴 일이 있다” 스님의 명령이라 버선을 벗어서 머리에다 떠억 이니까, 그 곧 가라앉게 생긴 배가 벌떡 일어서가지고 푹 떠올랐다 그말이여. 그래 가지고는 버선을 내려 놓으니까 그때부터서는 문제 하나없이 압록강을 건너왔다.

 

“어째서 버선을 머리에다 이니까 배가 가벼워졌습니까? 그걸 좀 가리켜 주십시오”

“니가 과거에 복(福)을 너무 많이 지어가지고 복을 잔뜩 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그 복이 너무 무거와서 그렇게 배가 가라앉을라고 헌 것이다. 그러니 그 버선짝이나 신발이나 그 하복, 치마나 아랫바지 같은 것을 머리에다 이면 박복(薄福)해지는 것이다. 복이 없어지는 것이다. 복이 없어지니까 감소가 되니까 가벼워져서 이렇게 배가 안 가라앉게 된 것이다” “아! 그렇습니까”

 

절에서는 양말이나 또 고의나 하복(下服) 그런 것은 절대로 빨랫줄에다가 널어가지고 그 밑으로 사람이 왔다갔다 안 하는 것입니다.

 

양말 같은 거, 고의 같은 거, 그 속가(俗家)에 가 보면은 고쟁이를 사람 다니는 데다 떡 벌려서 널어 놓고는 아빠도 그 밑으로 들락날락, 엄마도 들락날락, 귀여운 아들도 들락날락 그러헌 것을 흔히 보고 아주 기분 나쁜 것을 많이 봅니다마는.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런 하복을 널라면은 저 한쪽으로 사람 다니지 아니헌 데다 너시고, 그리고 방에다가도 치마 같은 그런 것을 머리 위에다가 떠억 벽에다가 걸어 놓고 그 밑에 앉아서 꺼떡꺼떡 그 대단히 안 좋은 것입니다.

 

남자 분의 바지도 될 수 있으면 한쪽으로 너는 것이 좋은데, 여자 분 아랫도리 옷을 가지고 걸어 놓고 그건 아무리 안방이라도 그런 것은 참 조심허셔야 하고, 주무실 때 버선 양말짝 같은 것도 머리 위에다 놓지 말고 저 발 밑에다 놓고.

또 세숫대야에다가 발도 씻고 걸레도 빨고 그러지 말고, 세숫대야와 양말이나 발 씻는 대야는 별도로 표를 딱 해 놓고서 세숫대야는 세수만 하고, 발이나 걸레 그런 거 닦는 대야는 별도로 하고 이래야 됩니다.

 

그 밥그릇에다가 오줌 싸고 그런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어요?

아무리 깨끗허게 씻어 줄지라도 요강에다 밥 담아 먹을 수도 없는 것이고, 밥그릇에다 오줌 누고 그래서도 아니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잘 분간을 헐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사소한 일 같지마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오늘부터 당장 가셔서 세숫대야와 하복대야를 딱! 갈라서 표를 아주 딱 하셔야 돼. 빛깔을 달리 한다든가. 온 집안 식구들 조심하시고, 하복 잘 널고 그러는 걸 조심하시고.

 

지금은 제가 말을 하는 시간이니까 제가 하고, 제 말씀이 끝나거든 실컷 허셔요.

 

이렇게 해서 그 왕자를 무난히 압록강을 배를 타고 같이 건너오셔서 순천 송광사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왕자가 어떻게 열심히 공부를 했던지 대도(大道) 견성(見性)을 해서 그 왕자는 대각국사(大覺國師)가 되었습니다. 스님도 국사가 되고, 그 왕자도 그 상좌도 국사가 되어서 큰 도인이 되었습니다.(30분5초~50분46초)

 

 

 

(2)------------------

 

여러분, 그 산중에서 숯 굽던 할아버지가 그 공부하러 다니던—그때 그 스님은 국사가 아니고, 걸망짐 짊어지고 다니는 일개 초라한 수좌(首座) 스님에 지내지 못했습니다—그 공부하러 다니는 수좌 스님에게 좁쌀밥 한 그릇 대접헌 공덕으로 황후가 되았고, 그 황후 뱃속에서 국사(國師)를 낳게 된 것이여.

그 좁쌀밥 한 그릇으로는 황후가 되고 그 뱃속에서 왕자를 낳았지만, 그 울퉁불퉁한 방바닥에 하룻밤 재워 보내다가 그 갈자리 까시가 등에 백힌 그 과보로는, 중국 천지에 명의가 들어도 낫으지 못할 만한 어마어마한 등창을 앓게 되었다 이 말씀이예요.

 

가만히 이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시면 인과법(因果法)이라 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얼마나 과학적인 것인가를 잘 아실 수가 있을 것이예요.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는 그 무서운 인과법. 부처님 법을 믿는 부처님 제자들은 그 인과법을 올바르게 그리고 분명하게 믿고 알아야 합니다.

 

인과의 법칙! 인과의 법칙을 잘 이해하시고 실천하신다면은 이 세상에 법률도 필요 없고, 형무소도 필요 없습니다. 재판소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가 자기 알아서 온 일을 헐 수밖에는 없는 것이고, 착한 일을 헐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남을 눈꼽만큼이라도 남을 해칠 까닭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인과가 금방 돌아오는 것인데 어떻게 남을 해롭게 허냔 말여. 저 잘살기 위해서 제 욕심 챙기기 위해서 남을 해롭게 헐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법률이 없어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50분47초~53분18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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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국사(普照國師) ; (1158~1210) 고려의 스님. 스님의 휘(諱)는 지눌(知訥)이니 경서(京西)의 동주(洞州 : 황해도 서흥) 출신이다. 자호(自號)는 목우자(牧牛子)이며, 속성은 정씨(鄭氏)이다.

의종(毅宗) 19년(1165) 8세에 구산선문(九山禪門) 중 사굴산파에 속하는 종휘(宗暉)에게 출가하였으나 일정한 스승을 두지 않고, 오직 도덕이 높은 스님이면 곧 찾아가서 배웠다. 명종 12년(1182) 25살 때인 임인(壬寅)에 대선고시(大選考試)에 합격하였다.

 

그 후 얼마되지 않아 전남 창평군 청원사(淸源寺)에 이르러 주석하던 중 하루는 육조 혜능의 「육조단경(六祖壇經)」을 읽다가 ‘진여자성(眞如自性)이 생각을 일으켜서 육근(六根)이 비록 견문각지(見聞覺知)하나 삼라만상에 물들지 아니하고, 진여(眞如)의 성(性)은 항상 자재(自在)하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스스로 얻은 바가 있었다.

명종 15년(1185 乙巳)에는 하가산(下柯山) 보문사(普門寺)에서 대장경을 열람하다 이통현(李通玄) 장자(長者)가 지은 「화엄경합론(華嚴經合論)」을 보다가 거듭 신심(信心)을 일으켜 화엄경의 오묘한 이치를 찾아내고 난해한 뜻을 드러내어 제가(諸家)의 설(說)과 비교하여 더욱 정통하였다.

 

1190년 팔공산 거조암(居祖庵)에서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을 지어 정혜쌍수(定慧雙修)할 것을 권하였다. 신종(神宗) 1년(1198 戊午) 몇 사람의 도반과 함께 지리산(智異山)에 들어가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은거하였다.

 

스님께서 일찍이 말씀하되 “내가 보문사(普門寺)에서 지낸 이후 10여년이 경과하였다. 비록 뜻을 얻고 부지런히 수행하여 허송한 적이 없으나 아직 정견(情見)이 사라지지 아니하여, 마치 어떤 물건이 가슴에 걸려 있어 원수와 함께 있는 것과 같아서 항상 꺼림직 하였다.

지리산 상무주암(上無住庵)에 주석하면서 정진하는 여가에 대혜보각선사(大慧普覺禪師 1089-1163)의 어록(語錄)을 보다가,

‘…… 선(禪)은 고요한 곳[靜處]에도 있지 않고 또한 분요한 곳[鬧處]에도 있지 아니하며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 일상생활에서 인연에 응하는 곳)에도 있지 않고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에도 있지 않습니다.

비록 이와같으나 제일(第一)에 정처(靜處)와 요처(閙處)와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와 사량분별처(思量分別處)를 버리고서도 아니됩니다. 참(參)하여 홀연히 눈을 뜨면 바야흐로 모두 다 자가옥리사(自家屋裏事 자기 집안의 일)입니다.’라는 구절에 이르러 뜻이 딱 들어맞아 마음에 깨달으니, 자연히 가슴이 후련하며, 원수와 멀리한 것 같아서 곧 마음이 편안하였다”고 하였다.

 

1200년(신종 3, 庚申)에 조계산 길상사(吉祥寺), 곧 지금의 송광사(松廣寺)로 옮겨 11년간 대중을 지도하여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그리고 대중에게 송지(誦持)하기를 권함에는 항상 『금강경(金剛經)』으로써 법을 삼도록 하고, 교의(敎義)를 연설함에는 『육조단경』을 강설하며, 통현장자(通玄長者)의 『화엄경합론(華嚴經合論)』으로써 주장을 펴고, 『대혜어록(大慧語錄)』으로써 함께 우익(羽翼)을 삼았다.

수행에는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과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과 경절문(徑截門)을 세워 수행자들을 지도함. 돈오점수(頓悟漸修)를 역설하고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는 정혜상수(定慧雙修)를 권하고 간화선(看話禪)으로 증오(證悟)할 것을 주창하였다.

 

1210년(희종 6년) 3월 27일 53세의 나이로 입적(入寂). 희종은 그에게 불일보조국사(佛日普照國師)라는 시호와 함께 그의 묘탑에도 감로(甘露)라는 이름을 내렸다.

3월 27일 아침, 스님께서 세수와 양치질을 한 다음, “이 눈은 조사(祖師)의 눈이 아니고, 이 코도 조사의 코가 아니며, 이 입은 어머니가 낳아주신 입이 아니고, 이 혀도 어머니가 낳아준 혀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법고(法鼓)를 쳐서 대중을 모이게 하여 설법을 하고 문답을 하신 다음, 마지막으로 어떤 스님이 묻기를 “옛날 유마거사가 비야리성(毘耶離城)에서 시질(示疾)한 것과, 오늘 조계산에서 목우자(牧牛子)가 작병(作病)한 것이 같은가? 다른가?” 하니, 스님께서 이르되 “너희들은 같은지 다른지를 배워라” 하고, 주장자(柱杖子)를 잡고 몇 번 내리치고 말하되 “천가지 만가지가 모두 이 속에 있느니라” 하고, 주장자를 잡고 법상에 걸터앉아 고요히 입적하였다.

 

저서 :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수심결(修心訣)·진심직설(眞心直說)·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원돈성불론(圓頓成佛論)·화엄론절요(華嚴論節要)·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염불요문(念佛要門) 등.

*도인(道人) ; ①불도(佛道)를 수행하여 깨달은 사람. ②불도(佛道)에 따라 수행하는 사람.

*대간하다 ; ‘고단하다(지쳐서 피곤하다)’의 사투리.

*갈자리 ; 삿자리(갈대를 여러 가닥으로 줄지어 매거나 묶어서 만든 자리).

*나한(羅漢) ; 아라한(阿羅漢)의 준말.

*아라한(阿羅漢) ; 산스크리트어 arhat의 주격 arhan의 음사.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 응공(應供)·응진(應眞)·무학(無學)·이악(離惡)·살적(殺賊)·불생(不生)이라 번역.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應供),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無學),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離惡),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殺賊), 미혹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불생(不生)이라 함.

*부전(副殿) ; 불전(佛殿)을 돌보고 의식(儀式)을 담당하는 직책, 또는 그 일을 하는 스님.

*회향(廻向) ; 회전취향(回轉趣向)의 뜻. ①방향을 바꾸어 향하다. ②자신이 쌓은 공덕을 다른 이에게 돌려 이익을 주려하거나 그 공덕을 깨달음으로 향하게 함. ③자신이 지은 공덕을 다른 중생에게 베풀어 그 중생과 함께 정토에 태어나기를 원함.

*행각(行脚) : ①수행자가 일정한 주소를 갖지 않고 스승이나 벗을 구하여, 자기의 수행이나 교화를 위해 곳곳을 편력하는 것。 ②스승의 슬하(膝下)를 떠나서 선(禪) 수행을 위해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좋은 벗을 구하여, 마치 떠도는 구름과 흐르는 물과 같이 발길 닿는 대로 여러 곳을 편력하는 것。 이것을 행하는 자를 행각승(行脚僧) 또는 운수(雲水)라고 함.

*목욕재계(沐浴齋戒) ; 제사나 중요한 일 따위를 앞두고 목욕을 하여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不淨)을 피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일.

*상좌(上佐 윗 상/도울 좌) ; 윗사람을 도운다는 뜻. 곧, 한 스승의 제자를 일컬음.

*세숫대야(洗手--) ; 세수(洗手 낯을 씻음)할 때 물을 담아 쓰는 대야.

*고의 ; ①남자의 여름 홑바지. ②속곳—속속곳(예전에, 여자가 아랫도리의 맨 속에 입던 속옷을 이르던 말)과 단속곳(여자들이 치마 안에 입는 속옷의 하나)을 통틀어 이르는 말.

*하복(下服) ; 버선이나 걸레같은 깨끗치 못한 옷. 하복을 빨래하는 그릇을 하복통 또는 하복대야라 한다.

*수좌(首座) ; ①선원(禪院)에서 좌선하는 스님. ②수행 기간이 길고 덕이 높아, 모임에서 맨 윗자리에 앉는 스님. ③선원에서 좌선하는 스님들을 지도하고 단속하는 스님.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