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의심관(묘관)2016. 5. 26. 19:50

의심관(疑心觀) (세등선원No.68)—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안 되고, 긴완(緊緩)을 득기중(得其中)을 해야 한다.

 

*의심관(疑心觀) ; 화두를 거각하여 없는 의심이 현전(現前)하면, 없는 의심을 성성하게 관조(觀照) 하는 .

 

(11분 41초)

 

[법문] 송담스님(세등선원No.68)—정묘년 동안거 해제 법어(1988.01.17)(세등68)

 

방금 조실 스님의 녹음법문을 통해서 출가해서 스승을 찾아서 바른 깨달음에 이르는 활구참선!

활구참선(活句參禪) 의해서 화택(火宅)으로부터 해탈하는 법문을 고구정녕(苦口叮嚀) 육성으로 들었습니다.

 

활구참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본참공안에 대해서 사량분별(思量分別) 따지는 것이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말로 따지고, 더듬어 들어가고, 그렇게 해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적용해 보고, 이래 가지고아하, 바로 뜻이로구나.’ 이렇게 해서 사량분별로 공안을 따지는 거여. 따져서는 된다 법문을 들어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따지고 앉았어.

 

특히 두려운 것은 , , 열심히 화두를 참구(參究) 하는데, ‘이무엇고?’ ‘이뭣고?’ 마삼근(麻三斤) 하는 사람은어째서 마삼근이라 했는고?’ 끝없이 끊임없이 일구월심(日久月深) 이렇게 나가면 여법(如法)하게 나가다 보면,

그렇게 번뇌·망상이 일어나던 것이 번뇌·망상은 차츰차츰 줄어지고, 화두를 그렇게 들려고 해도 화두는 들렸던 것이 차츰차츰 화두가 들어지기 시작해. 화두가 차츰차츰 들어지는 시간이 불어남에 따라서 망상은 차츰차츰 줄어진다 그말이여.

 

그래서 몸도 편안하고, 마음도 편안하고, 마음이 고요하고, 깨끗하고, 무어라고 표현할 없는 그러한 경지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기에서 기쁨을 아니 느낄 수가 없어. 고요하고, 깨끗하고, 편안한 경계를 무어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

! 이것이 바로 법희선열(法喜禪悅)이라 하는 것이로구나.’ ‘이것이 바로 법열(法悅)이라 하는 것이로구나.’ ‘이것이 바로 () ()이라 하는 것이로구나.’ ‘이것이 바로 완전하게만 된다면은 이것이 생사해탈(生死解脫)이로구나.’ 그래 가지고 이런 상태로 계속해서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기를 바래는 것입니다.

 

생각을 내서 바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고요하고 깨끗한 경지에 빠져서 고요하고 깨끗한 것을 스스로 즐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리라 해서가 아니라, 너무 고요하고 깨끗하고 맑고 그러니까, 그냥 고요한 경지에 빠져 들어가서 그것을 떠억 즐기고 있다 그말이여.

 

거기에서 우리 활구참선을 허는 사람이 주의할 바는 아무리 고요하고, 아무리 편안하고, 아무리 맑고 깨끗하다 하드라도깨끗하다, 편안하다, 맑고 고요하다그런 데에 탐착해 가지고 화두를 잃어버리는 사실.

화두를 잃어버린다면 거기에서 벌써 공부는 삐뚤어져 버린 것이여. 거기에서 죽을 구덩이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여. 사견(邪見) 빠져 들어가는 것이여.

 

그렇게 고요하고 깨끗할수록에 그런 데에는 조금도 생각을 두지 말고, 오직 자기의 본참화두!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 했는고?’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를 나가야 되는 것이여.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힘을 쓰면서 용을 쓰면서,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허고 힘을 쓰면서 허라는 아니여.

처음에 공부를 모르는 사람은 힘을 써야 화두가 들리니까, 힘을 써서 허기도 하고, 자꾸 숨을 들어마셨다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한번 허고 한참 있으면 화두가 없어져 버리니까, 부득이 숨을 내쉴 때마다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허고 자주자주 들을 수밖에는 없지만.

 

이렇게 가다보면 그렇게 자주 들지 해도 화두가 들리게 된다 그말이여. 들려 있걸랑 화두를 다시 거기다 덮치기로 자꾸 들어 필요는 없는 것이여.

화두가 희미해져버리거나, 화두가 없어지고 생각이 들어오거나 하면 그때 한번씩 떠억 챙기면 되는 것이지, 화두가 이미 들어져서 없는 의심이 있는데, 거기다 대고 자꾸 화두를 용을 쓰면서 자꾸 들어 싸면 그것은 아주 서투른 공부다 그말이여.

 

그렇게 순일하게, 화두를 들려고 해도 화두가 터억 들려서 의단(疑團) 독로(獨露)하걸랑, 독로한 의단을 성성(惺惺) 가운데 묵묵히 그것을 관조(觀照) 하는 거여.

 

없는 의심의 ()이여. 의심관(疑心觀).

 

거기에는 고요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편안하다는 생각도 붙을 수가 없고, 맑고 깨끗하다는 생각도 어떻게 거기다 그런 생각을 붙일 수가 있냐 그말이여.

고요하고 맑고 깨끗하고 편안한 그런 생각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두어서도 되고, 그런 생각을 즐겨서도 되고, 그런 생각을 집착해서도 아니 되는 거여.

 

다맛 우리가 일은 없는 의단(疑團)만을 잡드리 나가는 거여.

너무 긴하게 잡드리를 해서도 되고, 너무 늘어지게 해서도 되고, () (),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그것이 묘한 ()이라 말할 수가 있는 거여.

 

()이라 하는 것도 일종의 생각이지만, 생각없는 생각을 ()이라 하는 거여.

 

우리가 참으로 올바르게 화두를 들을 모르는 사람은 부득이 해서 생각을 일으켜 가지고 화두를 참구를 하는데, 일구월심 정진을 해서 참으로 바르게 화두를 참구할 아는 사람은 바로 ()으로 들어가는 거여.

관이란 생각없는 생각으로 생각하는 것을 관이라 그러는 거여. 조금도 늘어지지도 않고, 조금도 긴하지도 아니한() 의심(疑心) ()’으로 나가야 되는 거여.

 

분의 백천 분의 같은 그런 짧은 시간도 생각을 일으켜서 일어나는 잡념을 물리칠라 것도 없고, 그렇게 화두가 순일하게 된다 해도 아주 미세한 생각은 이렇게 일어날 수가 있어. 일어나지만 그것을 일어나는 생각을 물리칠라고 생각을 내서는 아니되는 거여.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일어난 채로 그냥 놔둬버리고, 자기 화두만을 관해 나가면 생각은 자취없이 스쳐서 지내가 버리는 거여.

 

마치 앞으로 춥도 덥지도 않는 봄철이 돌아오겠지마는 봄철에 도량이나 동산에 나가서 산책을 하면서 포행을 하면서 정진을 때에 춥지도 덥지도 않는 봄바람이 귓전에 스쳐간다고 해서 봄바람 때문에 화두가 도망갈 필요는 없거든.

그냥 귓전을 스쳐서 지내가고, 옷자락이 팔랑거리거나 말거나 내버려둬 버리고, 나는 성성적적(惺惺寂寂)하게 의심의 () 단속해 나가는 것처럼,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번뇌가 일어난다 하드라도 그냥 놔둬 버려.

 

끝없이 일어났다가 없어지고 일어났다 꺼져버리고, 내가 거기에 따라주지만 아니하고, 집착하지만 아니하고, 물리칠라고 하지도 말고, 그러면은 그냥 결에 일어났다가 제물에 그냥 스쳐가 버리는 거여. 그까짓 것은 내가 공부해 나가는데 조금도 방해로울 것이 없는 것이여.

 

우리 활구참선을 하는 수행자는 승속(僧俗) 막론하고 화두를 올바르게 잡두리 해나갈 줄만 알면 어디를 가거나 선불장(選佛場)이요, 그게 바로 선방(禪房)이요, 공부처(工夫處).(94~2045)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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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택(火宅) ; 번뇌와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을 불에 타고 있는 집에 비유한 . 불길에 휩싸인 무서운 세계. 법화경에 나오는三界無安猶如火宅라는 구절에 근거.

*고구정녕(苦口叮嚀 괴로울 /말할 /신신당부할 정성스러울 /간곡할 ) : 입이 닳도록(입이 아프도록) 정성스럽고() 간곡하게() 말씀하심().

*본참공안(本參公案) : 본참화두(本參話頭).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법희선열(法喜禪悅) ;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기쁨과 선정(禪定) 들어가 마음이 즐거운 .

*법열(法悅) ; ①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거나 배우는 기쁨. ②진리를 깨달았을 가슴에 잔잔히 사무치는 기쁨.

*생사해탈(生死解脫) ; 생사(生死) 떠나 깨달음의 세계에 드는 .

*이뭣고(是甚) / 판치생모(板齒生毛) / 마삼근(麻三斤) ; 분류화두(공안)’ 참고.

*잡드리(잡두리) ; ‘잡도리 사투리. ①잘못되지 않도록 엄하게 다룸. ②단단히 준비하거나 대책을 세움. 또는 대책.

*의단(疑團 의심할 /덩어리 ) ; 공안화두에 대한 없는 의심(疑心) 덩어리().

*독로(獨露 홀로오로지 /드러날 ) ; 홀로() 드러나다().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관조(觀照) ; 참된 지혜의 힘으로 사물이나 이치를 통찰함.

*긴완(緊緩) 득기중(得其中) 해야 ; [참고] [선가귀감] (용화선원刊) p61~62.

〇工夫는  如調絃之法하야  緊緩을  得其中이니勤則近執着하고  忘則落無明하리니惺惺歷歷하고  密密綿綿이니라.

 

공부는 거문고의 줄을 고르듯 하여 팽팽하고 느슨함이 알맞아야 하니, 너무 애쓰면 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성성하고 역력하게 하면서도 미세하게 끊임없이 하여야 하느니라。

 

<註解> 彈琴者曰緩急이  得中한  然後에야  清音  普矣라 하니工夫도  亦如此하야  急則動血囊하고忘則入鬼窟이니不徐不疾하야사  妙在其中이니라.

 

거문고를 타는 자가 말하기를 ' 줄의 느슨하고 팽팽함이 알맞은 뒤라야 아름다운 소리가 난다' 한다。공부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조급히 하면 혈기가 고르지 못한 병이 나고, 잊어버리면 흐리멍덩하여 귀신의 굴로 들어가게 된다。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게 되면 오묘함이 가운데 있을 것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 ; 온갖 번뇌 망상이 생멸하지 않고 마음이 고요[寂寂]하면서도 화두에 대한 의심이 또렷또렷한[惺惺] 상태.

*제물에 ; 혼자 스스로의 바람에.

*선불장(選佛場) ; 부처() 뽑는() 장소()라는 . 선원에 있어서 수행자가 좌선하는 .

[참고] 중국 고봉 스님의 《선요禪要》의개당보설(開堂普說)’, 거사(龐居士) 게송이 아래와 같이 있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세계 대중들이 자리에 모여, 저마다 함이 없는 (無爲) 배우나니, 이것이 부처를 선발하는 도량(選佛場)이라. 마음이 () 급제하여 돌아가네.’ (통광 스님 역주고봉화상선요어록’ p37,46에서)

*선방(禪房) ; 참선(參禪)하는 .

*공부처(工夫處) ; 배우거나 수행하는 .

 

Posted by 닥공닥정